저승 재단
“그런데 기부금은 거기 행사 측에서 지정한 곳 말고 다른 곳으로 하시죠.”
무슨 말씀이시지? 행사 측하고 사이가 안 좋으신가?
“사실 대한민국의 기성세대로서 부끄러운 일이기는 하지만, 기부금을 제대로 사용하는 단체들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희 회사 임직원들은 따로 검증된 단체에 기부를 하고 있습니다.”
처음 알았다. 나는 여태까지 기부금을 받는 단체는 나라에서 운영하는 곳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닌가 보다.
최 회장님은 나와 회장실까지 걸어가며 기부 단체에 대해서 조금 설명해주셨다.
대한민국에 기부금을 제대로 사용하는 단체는 몇 없다고 하신다. 기부금 사용 내역도 공개하지 않고, 간부들의 골프장 사용료나 생활비로 사용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이런 소리를 듣고 나니 머리가 멍해졌다.
“그래서 저희는 기부 내역도 투명하게 공개하고, 봉사활동도 꾸준히 하고 있는 단체를 통해 기부를 하고 있습니다. 힐링님도 괜찮으시면 그곳에 하셨으면 합니다. 뭐. 잘 아시는 곳 있으시면 그곳에 하셔도 되고요. 하하하”
“네. 제가 아는 곳이 없어서요. 추천해 주시는 곳으로 해야겠네요.”
“제가 연락처를 드릴 테니까 연락 해보시고, 가능하면 한 번 방문하셔서 확인도 해보세요. 자신이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진행하셔야죠. 큰 금액인데요.”
“네. 그래야겠네요.”
“그리고 회사 회계팀하고 이야기해서 힐링님 기부 가능한 금액도 확인하고 가시고요.”
“네? 기부 가능한 금액이요?”
“아! 간단하게 말씀드리면 세제혜택이 가능한 금액이 있습니다. 뭐 회계팀에 이야기하면 계산을 해줄 겁니다.”
모르는 이야기가 정말 많았다.
“아마 관리 직원들이 이야기를 해줄건대, 제가 아는 부분까지만 미리 알려 드린 겁니다. 자세한건 직원들에게 물어보면 설명해 줄 겁니다.”
사실 회장님이 이런 부분까지 알려주신 건 엄청난 호의이다. 예솔이 덕분인지 나를 정말 좋아해주시고 진심으로 대해주신다.
예솔이 생각이 하다 보니 갑자기 보고 싶어졌다. 엄청 귀여웠는데.
“아. 예솔이 보고 싶네.”
나도 모르게 혼잣말을 해버렸다.
“예솔이요? 아이고! 우리 예솔이가 글쎄 어제는 아빠 사랑해요! 라고 편지를 썼지 뭡니까! 하하하하. 아주 천재가 따로 없어요! 아니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인데..”
말을 잘못 꺼냈다. 한 시간이 넘게 회장실에 붙들려서 예솔이 이야기를 듣다가 회장님을 찾아온 직원 분 덕분에 겨우 풀려 나왔다.
예솔이가 처음 태어난 날부터, 처음으로 노래 부르던 부분까지 들었다.
예솔이를 가수로 키울지, 학자로 키울지 같이 고민하다가 겨우 빠져나왔다.
‘음. 기부도 잘 알아보고 해야겠구나.’
사실 이제는 버는 돈의 금액이 상당하다. 처음 백만 원, 2백만 원이 통장에 찍힐 때는 너무나 기쁘고, 떨려왔다.
그런데, 그 금액이 천 단위가 되고, 억 단위가 되다보니 돈이 그냥 숫자로 보이기 시작했다.
돈이 생기다보니 집도 더 좋은 곳으로 사서 옮기고 싶었고, 엄마와 송이를 위해 필요한 물건들도 전부 다 사주고 싶었다.
그런데, 엄마는 그런 나를 말리셨다.
집은 우리 가족이 살기에 충분히 넓고, 송이 학교에서도 가까우니 만족하고 살자고 하신다. 그래서 지금 사는 집을 엄마 몰래 구매를 하였고, 나의 큰 소비는 거기서 끝이었다.
아무래도 전세는 불안하다.
엄마는 나와 송이에게 돈 쓰는 씀씀이도 갑자기 커지면 안 된다고 조심하라고 여러 번 강조하셨다. 아무래도 10년이 넘게 돈 때문에 고생하셔서인지 돈을 굉장히 무서워하신다.
사실 나와 송이도 돈이 그리 많이 필요하지는 않다. 적당히 필요한 물건을 살 정도만 되도 충분하다. 거의 평생을 아끼며 살다보니 돈 쓰는 방법을 잘 몰랐고, 무서웠다.
나도 백이 넘어가는 지출은 본능적으로 꺼려졌다.
송이 가방 하나만 엄마 몰래 겨우 사주었다. 한창 멋 부릴 나이인데, 지금까지는 들고 다닐 백 하나도 없었으니 내 마음에 걸렸다.
그런데, 이상하게 기부금은 하나도 아깝지가 않았다. 내가 이런 재능을 가지게 되어 얻게 된 돈이다 보니 이게 온전히 나의 돈이라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기회가 되면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사용하기로 마음을 먹고 있었고, 이번 기회에 정기적으로 하는 것도 고려를 해봐야겠다.
[저승 재단]
회장님이 소개해 주신 재단의 이름이다. 이름이 아주 살벌하다. 그래도 대한민국에서 가장 믿을 수 있는 재단이라고 한다.
‘뭐. 비리를 저지르면 저승 가겠다는 의미인가?’
명함에 적혀있는 전화번호로 전화를 거니 금방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거기 저승 재단인가요?”
“천운님이시죠?”
어? 내 전화번호를 알고 계신건가? 회장님이 미리 연락을 드렸나?
“어? 네. 제가 천운입니다. 혹시 어떻게 알고 계신 걸까요? 최장군 회장님이 연락을 드렸나요?”
“하하하 아닙니다. 아무튼 좋은 세상 만들기 시스템 수습 요원 천운님이 맞으시죠?”
“어! 어..어떻게.. 헙!!”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도 좋은 세상 만들기 시스템의 사용자입니다. 자세한 건 만나서 이야기 하시죠.”
전화를 끊고,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졌다.
‘생각해보면 나만 시스템 사용자인 것도 그렇긴 하지. 나 혼자 좋은 세상을 만들 수는 없으니까.’
내가 시스템 사용자이면, 다른 사람들 중에서도 사용자가 있을 것이라는 것은 당연히 유추할 수 있는 내용이었는데, 생각조차도 하지 않았었다.
‘그래. 이번 기회에 시스템에 대해서도 더 자세히 알아보고, 다른 시스템 사용자들도 만나보자.’
결심을 하자마자 바로 출발을 하였다. 아직까지 차를 사지 않았고, [내가 기다리는 자리가 곧 빈자리] 재능 덕분에 지하철이 가장 편했다.
가끔 나를 알아보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긴가민가하면서 망설이다가 내가 웃어주면 그때서야 와서 조용히 싸인만 받아가셨다.
대한민국 국민들의 매너는 정말 좋다.
파주 문산역에서 내려 5분정도를 걸어가니 목적지가 보였다. 5층 건물의 3층에 간판이 달려있었다.
굉장히 허름한 건물이었는데, 안으로 들어가니 내부는 굉장히 깔끔했다.
[저승 재단]
문 앞에서 잠깐 심호흡을 하고, 노크를 하였다.
“들어오세요.”
문을 조심히 열고 들어가니, 50대의 중후한 신사분이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안녕하세요. 천운이라고 합니다.”
“어서 오세요. 제가 저승재단 재단장인 황재성입니다. 그리고 좋은 세상 만들기 시스템의 상급 사용자입니다.”
와! 상급 사용자라니. 나는 이제 수습인데, 갑자기 주눅이 들고 어깨가 움츠러들기 시작했다.
“네..”
“어서 이리로 앉으세요. 수습 사용자분은 처음이라서 더욱 반갑네요.”
“수습이 저 혼자인가요?”
“제가 알기로는 천운님 혼자이십니다. 제가 퀘스트 완료 보상금을 입금 시켜드리거든요. 수습 사용자들만 50만원씩 보내드리는 걸로 규정이 되어 있습니다.”
어! 나한테 입금 시켜주시던 (주)저승이 저승 재단이었나 보다.
“아. 저승 재단 말고 제 개인 사업체인 저승에서 보내드리는 것입니다. 재단 재산은 제 마음대로 할 수가 없어서요.”
“아. 감사합니다. 덕분에 크게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안 보내주셔도 될 것 같습니다.”
“규정이라서요. 규정을 안 지키면 시스템에서 제재가 오기 때문에 어쩔 수 없습니다. 하하하”
“규정도 있나요? 저는 자세한 내용은 하나도 듣지를 못해서 잘 모르겠습니다. 좀 알려주시면...”
“사실 저도 많은 것은 알지 못합니다. 우선 제가 알고 있는 사용자분들도 10분정도밖에 안됩니다.
그분들도 우연히 기부를 하시러 오셨다가 제가 알아보게 되어 이야기를 조금 한 정도고요.”
“전부 상급 사용자들이셨나요?”
궁금한 내용을 물어보기 시작했다.
“다섯 분이 중급, 세 분이 상급, 두 분이 최상급이십니다.”
“아.. 그럼 재능들이 다들 엄청나시겠네요. 저는 종류는 많은데 소소한 것들 이라서요.”
물론 나는 내 재능들을 사랑한다. 나에게 새로운 인생을 살게 해준 재능들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 중에서도 정말 아무리 고민해 봐도 애매한 재능들도 많았다.
[지렁이는 꿈틀꿈틀] - 지렁이가 꿈틀 거리는 모습을 흉내 낼 수 있다.
[개똥 레이더] - 반경 10미터 안쪽의 개똥을 알아볼 수 있다.
[감자는 한 개만] - 감자를 한 개만 먹어도 배가 부른다.
[찾아라 네잎 클로버] - 네잎 클로버가 있으면 자동으로 클로즈업 된다.
[도레미파솔라시도] - 도레미파솔라시도의 음을 칠 수 있다.
이외에도 꽤 많은 애매한 재능들이 많았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처음에 얻었던, [탄산은 코로 먹어야 제 맛]은 정말 운이 좋은 것이었다.
“다른 분들은 무슨 재능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대부분 2개에서 3개정도씩 가지고 있을 것 같습니다. 저도 세 개를 가지고 있습니다.”
황재성 재단장님은 총 3개의 재능을 가지고 있으셨다.
[회계의 왕] - 회계 장부의 이상여부를 정확히 판단할 수 있습니다. 수입이 20% 증가합니다.
[진실의 눈] - 상대방의 진실 여부를 판단할 수 있습니다. 부하 직원의 재능을 알아볼 수 있습니다. 시스템 사용자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동정여론] - 재단의 기부금이 증가합니다. 재단의 원칙을 정확히 지킬수록 금액이 늘어납니다.
엄청난 재능들이었다.
개인 사업은 회계의 왕과 진실의 눈 덕분에 승승장구를 하고 있었고, 재단은 동정여론 덕분에 수월하게 운영되고 있었다.
그리고 진실의 눈 덕분에 시스템 사용자를 알아볼 수 있었다고 한다.
“와.. 엄청나네요. 그럼 처음부터 재능을 가지고 시작하셨나요?”
“처음에는 회계의 왕 하나뿐이었습니다. 그러다가 퀘스트를 계속 하다 보니 나머지 두 개도 얻게 되었고요. 아무래도 사회에 좋은 영향을 미칠수록 인과율을 채우게 되고, 일정한 인과율을 채우면 재능을 얻는 것 같습니다.”
나는 내가 가진 재능들을 재단장님께 알려드렸다. 내 재능들을 들어보신 재단장님은 굉장히 난감해 하셨다.
“어. 재능들 숫자가 많긴 한데.. 다들.. 하하하...”
“저는 제 재능들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너튜브를 할 수 있게 되었거든요.”
“본인이 만족하신다니 정말 다행이군요.
아마도 천운님 같은 경우는 수습이시다보니 최하급 재능들만 얻게 되시는 것 같습니다. 최하급 재능들은 요구하는 인과율이 적어서인지 퀘스트를 깰 때마다 받으시는 것 같네요.
아마 승급을 하신다면 퀘스트를 깰 때마다 재능을 받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얻게 되는 재능들은 자신의 일과 관련된 재능들을 받는 것 같습니다. 음.. 천운님의 경우는 약간 애매하기는 하지만요. 하하하”
이외에도 궁금한 내용들을 물어보았지만, 사실 재단장님도 더 이상은 아시는 내용들이 없으셨다.
사실 이정도만 해도 많은 도움이 되어서 이정도 에서 시스템에 관해서는 그만 물어보았다. 그리고 기부에 관해서 문의를 드리고, 금액은 정해지는 대로 연락을 드리기로 하였다.
“자주 연락 드릴게요. 심심하면 찾아올 수 도 있습니다. 하하하”
“언제든지 오세요. 저는 회사에 있거나 재단 사무실에 있을 겁니다.”
황재성 재단장님이 인자하신 모습으로 나를 보며 웃어주셨다. 그냥 봐도 정말 좋은 분이신 게 느껴질 정도로 잘 웃으시고, 말씀도 품격 있게 하셨다.
내가 나이가 들었을 때, 재단장님처럼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에는 정말 좋은 사람들이 많은가보다.
예전에는 그걸 몰랐다. 내 주변에는 항상 나쁜 사람들만 있었다고 생각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나의 마음이 여유롭지 못해서 좋은 사람들을 알아보지 못해서였던 것 같다.
지금은 내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좋은 사람들이다. 나도 그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이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