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0화 (20/170)

용기 있게 살자.

새해가 며칠 남지 않았다.

며칠이라고 하기에도 짧은 시간이다. 바로 모레가 새해이다.

‘올해는 정말 파란만장했구나. 정말 열심히 살았다.’

정말 많은 일이 일어난 일 년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6개월이었다.

이제는 미래가 없는 취준생에서 어엿한 너튜버가 되었다. 추운 날씨에도 따듯한 방에서 렉오 블록을 깔고 누워 개 사료를 먹는 내 인생은 정말 최고다.

‘개 사료가 칼로리가 많이 높나보네. 살이 좀 붙었어. 새해가 되면 운동 좀 해야겠다. 아니면 새해 일출 좀 보러 갔다 올까?’

너튜브 촬영도 하고, 일출도 보는 일석이조의 일정을 머릿속에 그려보았다.

‘아냐. 날이 이렇게 추운데, 집밖을 나가면 고생이야. 집에서 TV로 봐야겠다.’

10초도 안 되서 새해 결심을 포기하였다.

‘띠링’

[장기 퀘스트 발생 - 자신의 건강을 위해서 체력을 단련하시오. 퀘스트 전용 재능 - 마동식의 근육을 얻었습니다.]

‘응? 이런 퀘스트도 있었어?’

[마동식의 근육(퀘스트 전용 재능) - 운동의 효율을 세 배로 높여 줍니다. 운동 관련 재능을 얻으면 업그레이드를 시켜줄 가능성이 있습니다.]

내년에는 얼마나 심한 퀘스트를 시키려고 이런 재능까지 주시나. 아무래도 포기했던 새해 일출부터 보러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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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이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내가 새해 일출을 보고 싶다고 하니, 송이가 직접 버스표를 예약해주고 일정까지 짜주었다. 이 코스가 제일 핫하다며, 한 손에는 촬영용 카메라까지 쥐어주었고, 나를 열렬히 배웅해 주었다.

얼떨결에 동서울 터미널에서 버스를 탔고,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백무동을 오르고 있었다.

송이가 추천한 코스는 백무동-하동바위-참샘-장터목대피소-제석봉-천왕봉 코스였다.

이게 얼마나 힘든 코스인지는 가보지를 않아서 예상도 할 수 없었다.

‘우선은 장터목대피소에서 잠깐 쉬고 시간 맞춰서 올라가면 된다고 했지?’

머리에 쓰고 온 라이트가 요긴했다. 표지판을 빛에 비춰보니 장터목 대피소까지 5.8km였다.

‘5.8km?? 이 추위에! 이 어둠에! 눈밭을 걸어 5.8km를 올라가야한다고?’

송이에게 전화를 걸어보았지만, 받지를 않는다. 아무래도 나도 모르게 송이에게 큰 잘못을 했나보다. 이건 나를 죽이겠다는 암살계획의 일부인 것 같다.

사실 나중에 알게 된 사연은 봄, 가을 추천 코스였는데, 송이가 대충보고 핫하다는 코스를 선택한 것이었다.

‘에휴.. 이렇게 된 이상 열심히 해봐야지! 가자!’

카메라를 켜고 멘트부터 하였다.

“안녕하세요. 구독자님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저는 우리 구독자님들을 위해서 새해 일출을 촬영하기 위해 지리산을 왔습니다.”

“아직은 어둡고 춥지만, 우리 구독자님들을 위해서 제가 최선을 다해 올라보겠습니다. 구독자님들은 집에서 편! 안! 하게 지켜보시면 됩니다.”

결코 화가 난 건 아니다. 그냥 각오를 다진 것뿐이다.

등산로에 들어서자마자 돌계단이 나타났다. 생각보다 엄청 가파르고 길었다.

“우어! 훅! 훅! 후아!! 헉! 헥!”

온갖 신음성이 다 튀어나왔다. 처음부터 너무 힘들다. 이렇게 5.8km를 가는 건 아니겠지?

‘이 산을 오르면 나도 마동식님처럼 우람한 근육질이 될 수 있다! 할 수 있다! 아자!!’

[마동식의 근육]을 믿고, 미래의 내 모습을 상상하며 열심히 올라가기 시작했다.

하동바위를 지나 다시 나타난 돌계단.

“후! 후! 훅! 훅!”

심호흡을 몇 번하고 다시 열심히 오르기 시작했다. 몸에 열이 오르기 시작하니 이 추운 날씨에도 땀이 나기 시작했다.

‘어? 몸에 땀이 나기 시작했으니 [냉탕과 온탕사이] 쓸 수 있지 않을까?’

다행이 사용이 가능했다. [냉탕과 온탕사이]는 피부에 수분이 묻으면 사용할 수 있는 재능이다. 온도는 32도로 맞추었다.

답답한 패딩의 앞섬을 풀어 헤치고, 목도리도 가방에 넣어버렸다. 한결 걷기가 편해졌다.

3시간정도를 걸어 드디어 장터목대피소에 도착을 하였다.

‘아이고. 죽겠다. 그래도 여기서 잠을 잘 수 있다고 했으니까 조금 쉬다가 시간 맞춰서 올라가면 되겠다.’

그러나 나의 계획은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다.

“예약을 해야 한다고요?”

대피소를 이용하려면 미리 예약을 해야 한다고 한다. 너무 힘들어서 쉬고 싶은데, 쉴 곳이 없다. 거기에 걷는 걸 멈춰서니 땀이 나지 않아 [냉탕과 온탕사이]의 재능도 쓸 수가 없었다.

‘아..일출시간까지는 한참이 남았는데..’

그래도 열심히 촬영은 하고 있다. 내가 생각해도 대견했다.

“자 이곳에 테이블이 있네요. 평소에는 이곳에서 식사도 하고 쉴 수도 있다고 합니다. 물론 저는 못하고 있습니다. 이게 전부 제 동생 덕분입니다. 고맙다. 동생아.”

남는 시간에 열심히 너튜브 촬영을 하고 있었다. 그런 나를 유심히 보시던 50대 아저씨가 나를 불렀다.

“거기서 그러지 말고 내가 잡아놓은 방에서 조금 쉬어요.”

“어? 정말요? 정말 괜찮을까요?”

거절을 하기에는 쉴 곳이 너무나 간절했다.

“그럼요. 괜찮고말고요. 나랑 내 아들만 있으니 어서 들어와요.”

“정말 감사합니다.”

방안에 들어가니 아들로 보이는 청년이 누워 잠을 자고 있었다.

“어서 들어와요. 따뜻한 커피 한잔할래요?”

“아. 네. 감사합니다. 그리고 말씀 편하게 해주세요. 저희 아버지와 연배도 비슷해 보이시는데요.”

내말에 웃어 보이시더니 커피를 타러 일어나셨다. 무슨 사연인지는 모르겠지만, 언 듯 봐도 아들로 보이는 청년은 어딘가 몸이 불편해 보였다.

내가 아들을 바라보고 있자 커피를 들고 오신 아저씨께서 말씀을 해주셨다.

“내 아들인데. 이제 20살이 되었다네. 그런데, 작년에 사고로 허리를 다쳐서 하반신 마비가 되었어. 그동안 너무 힘들어해서 새해 일출을 같이 보면 조금은 나아질까 싶어서 데리고 왔다네.”

아저씨는 담담히 이야기를 계속 해나가셨다.

“내 아들이 어렸을 때 아내를 먼저 보내고, 나 혼자 키우느라 너무 오냐오냐하면서 키운 건 아닌지 걱정이 되서 답답한 마음에 처음에는 나도 화를 많이 냈다네.”

“아직 젊은데 너무 쉽게 삶을 포기하려고 하는 것 같아 보였거든. 그런데, 나도 내 아들의 입장이 되어보지를 않아서 잘 몰랐나보네.”

“얼마 전에 나도 암 진단을 받았다네. 워낙 늦게 알게 되어서 이제는 온몸으로 다 퍼졌다더구먼. 그제야 내 아들의 마음을 아주 조금은 이해할 것 같았다네. 얼마나 힘들었을까....”

아저씨의 사연에 아무런 말도 못하고 커피 잔만 들고 있었다. 너무나 사연이 기구하고, 안타까웠다.

“의사 선생님이 이제 얼마 안 남았다고 해서 죽기 전에 아들이랑 새해 일출만 보고 가려고.”

“그런데, 나도 나이가 들어서인지 여기까지도 겨우 업고 왔다네. 날이 밝으면 그냥 내려가야겠어. 결국 나는 내 아들한테 이정도일 뿐인가 보네.”

아저씨의 말을 듣고 나는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불쑥 들었다.

“아저씨. 제가 도와드릴게요. 저랑 같이 올라가요.”

“아니네. 내가 이러려고 말한 게 아니야. 그냥 자네가 이상하게 편안해서 말한 것뿐이네. 누군가에게는 말을 하고 싶었던가보이.”

‘띠링’

[퀘스트 발생 - 안타까운 사연의 아버지와 아들을 도와주시오. 제한시간 10시간.]

마침 퀘스트도 발생하였다.

나는 진심을 담아 이야기를 해드렸다.

“저도 얼마 전에 아버지께서 돌아가셨어요. 사정이 있어서 거의 10년을 떨어져 지냈거든요. 이제 겨우 같이 살 수 있게 되었는데, 아버지께서 많이 힘드셨는지 조용히 주무시다 떠나셨어요.”

“하나도 원망을 안했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이제는 조금씩 그 마음을 이해해 가고 있어요.”

“아저씨 아들도 똑같을 거예요. 삶을 살아가다보면 결국 아들은 아버지를 이해하게 되는 것 같아요. 같은 길을 걷다보니 먼저 걸어간 아버지의 입장을 아주 조금씩 알게 되는 거죠.”

“그래도 제가 아버지에게 꼭 하고 싶었던 말이 있었어요. 결국 하지는 못했지만요. 힘드실 때는 잠깐씩 도움을 요청하셔도 된다는 말이에요.”

“아저씨. 도움이 필요할 때는 조금 손을 내미셔도 되요. 생각보다 주변에는 좋은 사람들이 많아요. 그리고 저도 제 생각에는 꽤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내 이야기를 들은 아저씨는 굵은 눈물을 뚝뚝 떨어트리셨다. 잠시 눈물을 흘리시던 아저씨는 내 손을 잡아오셨다.

“힘들겠지만 나 좀 도와주게. 우리 아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네. 정말 간절하네. 도와주게나.”

“네. 제가 꼭 도와드릴게요.”

자고 있던 아들도 이불속에서 조금씩 들썩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우리는 따뜻한 온기를 느끼며 쉬고 있었다. 새해의 일출을 맞이하기 위해 체력을 비축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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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 헉... 헉...”

온몸이 천근만근이다. 허리가 끊어질 것 같고, 다리는 이제 후들거리다 못해 경련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우리는 남들보다 조금 더 이른 시간에 출발을 하였다. 아저씨와 번갈아가며 아저씨의 아들을 업고, 걷기 시작했다.

아저씨의 아들에게는 특별히 내 소개도, 사정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그래도 괜찮았다. 이미 알고 있을 걸 알기에.

그러다 천왕봉에 거의 도착할 때쯤에는 나 혼자 업고 올 수 밖에 없었다. 아저씨의 상태가 너무 안 좋았기 때문이다.

아저씨는 자신도 겨우 걷는 상태이시면서도 너무나 미안해 하셨다. 그래도 이를 악물고 걷다보니, 드디어 도착하게 되었다.

智異山[지리산] 天王峯[천왕봉] 1915

바위에 지리산 천왕봉이라고 적혀있었다.

“헉...헉.. 헉..”

“감사..합니다.”

등 뒤에서 아저씨의 아들이 감사인사를 해왔다.

“하나도.. 안..무거웠어... 헉..헉..”

나는 되지도 않는 허세를 떨어보았다. 그 사이에 아저씨는 힘든 몸을 이끌고 바닥에 은박지로 된 돗자리를 펴셨다.

그곳에 겨우 아저씨의 아들을 내려놓고, 나도 옆에 누웠다. 그리고 아저씨도 내 옆에 주저앉으셨다.

잠시 그렇게 우리는 말없이 누워있었다.

“일출이다!”

사람들이 일출이 시작된다고 말해주었다. 다들 핸드폰을 꺼내거나 DSLR 카메라를 꺼내들고 찍기 시작했다.

정말 운이 좋게도 날씨가 너무나 맑았다. 저 멀리 빨간 해가 솟아오르는 게 보였다.

우리는 말없이 서로의 손을 맞잡고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고 있었다. 한참을 그렇게 바라만 보고 있었다. 서로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말하지 않았는데도 마음이 전해져왔다.

[퀘스트 완료, 보상으로 50만원과 최하급 재능 ‘든든한 하체’를 습득하였습니다.]

퀘스트가 완료되고, 재능을 얻게 되었다.

[든든한 하체 - 하체의 근육이 발달하고, 걸음걸이가 안정이 됩니다.]

[든든한 하체가 마동식의 근육과 시너지 효과가 발생하여 상급 재능 차붐의 말 근육으로 승급합니다.]

‘어? 재능이 승급을 했다! 완전 최고인데?’

[차붐의 말 근육]을 얻자마자 허벅지와 장딴지 근육이 터질 듯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어?? 이러다가 옷이 터질 것 같은데?’

넉넉한 등산복이 터질 것 같아 조심스럽게 일어났다. 잘못 앉았다가는 위험할 것 같다.

한참을 말없이 앉아서 다 떠오른 해를 바라보던 부자에게 내가 말을 하였다.

“이제 내려가시죠. 내려가서 따뜻한 밥이라도 한 그릇씩 하면 좋겠네요.”

“감사합니다. 형. 정말 감사합니다. 흑.. 흑...”

“전부 아버지 덕분이지. 나는 아버지의 마음에 응답한 것뿐이야. 아버지가 원하시는 대로 열심히 살자.”

“네.. 저 이제 도전하고 싶은 게 생겼어요. 내려가면 저 한 번 시작해 볼래요.”

“용기야... 정말 다행이다.. 다행이야...”

그렇게 업그레이드된 나의 재능으로 내려올 때는 수월하게 아저씨의 아들을 업고 내려올 수 있었다.

그날은 그렇게 지리산에서 내려와 같이 밥을 먹고, 아저씨의 아들 용기와 연락처를 교환하고는 각자의 집으로 향하였다.

아저씨의 이름도 모른 채 우리는 그렇게 헤어지게 되었다. 나는 아저씨의 아들인 용기와 자주 연락을 주고, 받으며 용기의 꿈을 이루는 것을 도와주기 시작했다.

용기는 웹툰 작가를 꿈꾸며 도전을 했다.

습작을 그려서 나에게 보내주면 확인하고, 감상평을 전해주었다. 그리고 웹툰 관련한 책들도 보내주고, 공모전 일정 등을 확인해서 알려주기도 하였다.

그러다 벚꽃이 아름답게 피기 시작한 어느 날, 나에게 문자 하나가 도착하였다.

[향년 55세로 저의 아버님(배창신)께서 영면 하셨기에 삼가 안내드립니다.]

그렇게 어느 햇살이 좋은날, 아저씨의 이름을 알게 되었다.

검정색 양복을 꺼내 입고, 단정하게 머리를 빗어 넘겼다.

장례식장의 화장실에서 잘 지어지지 않는 미소를 애써 연습했다.

혼자 벽에 기대어 앉아있는 용기의 모습을 보니, 예전의 내가 떠올랐다.

아버지의 빈소에서 나는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러나 용기는 나와는 달랐다. 슬퍼하거나 낙심한 표정이 아닌, 무언가 다짐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용기야. 형 왔다.”

“형! 오셨어요?”

밝게 웃으며 나에게 인사를 해왔다. 나도 용기를 보며 미소를 지어주었다.

아저씨에게 인사를 하고, 마음속으로 말을 걸어드렸다.

‘아저씨. 아저씨가 노력하신만큼 용기가 정말 강하게 견디고 있어요. 저보다 훨씬 낫네요. 하늘에 가시면 저희 아버지와 같이 우리들 지켜봐주세요.’

아저씨에게 인사를 하고는 용기 옆에 앉아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였다. 별다른 내용들은 없었지만, 그냥 그렇게 사는 이야기를 하며 용기의 옆에 있어주었다.

아침이 되었을 때 용기가 나에게 말을 하였다.

“형. 저 이번 공모전 동상 받았어요. 잘했죠?”

“그래! 정말 잘했다. 장하다.”

우리는 그렇게 아저씨의 사진 앞에서 웃으며 아침을 맞이하였다. 그날 지리산에서 새해 일출을 볼 때처럼 셋의 마음이 이어진 채로 맞이하는 아침이었다.

‘용기 있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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