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구지왕.
‘띠링’
[퀘스트 발생 - 족구시합에 부족한 한 명의 선수가 되어 숫자를 맞춰주시오. 제한시간 3시간.]
‘응? 퀘스트?’
“잠시만요. 매니저님.”
나는 매니저님에게 말을 하고, 잠시 주변을 돌아보았다.
“야! 한 명 없어? 이번에는 우리 꼭 이겨야 한다고! 저번에 나 회식비로 돈 다 털려서 와이프한테 혼났단 말이야. 이번에도 지면 쫓겨나!”
“네. 그런데 막내가 발이 생각보다 많이 아프데요. 다른 팀에서 빌려올까요?”
“야! 너 같으면 지네 팀 지게 열심히 하겠냐? 대충 하다가 중요한 순간에 실수하겠지! 아. 방법이 없나?”
아무래도 팀별 대항전을 하려나 보다.
“저.. 혹시 괜찮으시면 제가 껴도 될까요?”
“응? 어! 힐링님! 아직 안가셨어요?”
음향팀 감독님이 나를 보고 반갑게 인사를 해주셨다.
“보니까 한 명이 모자라는 것 같은데, 제가 껴도 될까 싶어서요. 제가 수비를 좀 합니다!”
“어..음.. 괜찮으실까요? 혹시나 다치시거나 그러시면..”
“아이고! 걱정 마십시오. 제가 군대에서 별명이 헤딩크였습니다.”
“네? 헤딩크면 감독이신데?”
“아..하하하. 제가 헤딩을 잘해서요.”
“하하하하. 알겠습니다. 같이 하시죠!”
사실 내 별명인 헤딩크는 우리 헤딩크 감독님과는 무관하다. 헤딩만 하면 크게 넘어간다고 해서 헤딩크다.
하지만, 그때와 나는 전혀 다른 존재가 되었다. 각종 운동 관련한 재능들과 나를 수비 요정으로 만들어주는 핵심 재능이 있다.
[왜 자꾸 나만 맞나]와 [머리를 좀 써라]는 재능이다.
[왜 자꾸 나만 맞나]는 공이 나를 따라 다닌다는 설명대로 축구나 족구 등의 구기 종목 운동을 하면 공이 나를 따라다닌다. 이것도 왜 최하급 재능인지 모를 정도로 좋은 재능이다.
축구에서면 내가 적진에 침투하는 순간 우리 편이 어떻게 차던지 간에 나에게 공이 도착한다.
[머리를 좀 써라]는 처음에 공부 관련된 재능인줄 알고 좋아했었다. 더 공부할 것도 없기는 하지만, 평생을 수험생과 취준생으로 지내다보니 본능적으로 머리가 좋아지는 것 같은 재능은 환영한다.
그런데, 이 [머리를 좀 써라]는 그것과 전혀 관계가 없다.
[머리를 좀 써라 - 머리를 이용해 공을 튕기면 원하는 방향과 속도로 정확하게 날아간다.]
드디어 경기가 시작되었다.
나는 음향팀 감독님께 말씀 드린 대로 가장 뒤에서 수비를 맡기로 하였다. 참가 팀은 총 4팀으로 2번만 이기면 된다.
1위 팀은 0원.
2위 팀은 10만원.
3위 팀은 20만원.
4위 팀은 50만원.
돈은 팀장님들이 내고, 모은 돈으로는 회식비로 사용한다고 하신다. 상당히 재미있어 보였다.
음향팀은 매번 3위와 4위를 오간다고 한다. 의외로 덩치들은 좋은데, 발재간들이 별로여서 가망이 없다고 팀장님이 투덜거리셨다.
팀장님의 말로는 ‘개 발들의 모임’이라고 하신다. 그중에서 자신은 불독 이라고. 이유는 공을 한 번 잡으면 안 놓아서 라고 한다.
“안 놓으면 안 되지 않나요?”
“그래서 항상 져요...”
“아....”
“자! 시작하겠습니다. 선공은 진행팀! 플레이볼!”
[팡!]
진행팀에서 서브를 넣었다. 약간 길었지만, 이 정도는 쉽게 해결이 가능하다.
“팀장님! 바로 공격입니다!”
[퉁!]
각도와 높이가 예술이었다.
이건 초등학생이라도 쉽게 넘길 수 있고, 조금 한다는 사람이면 강 스파이크를 넣을 수 도 있는 기가 막힌 공이었다.
그리고 팀장님의 플레이는 기가 막혔다.
“어흑!!”
공을 넘기려던 팀장님은 그대로 자신이 넘어가 버렸다.
‘아... 저게 어떻게 저렇지?’
공만 바라보며 네트를 보지도 않고, 뒤로 물러나다가 네트에 걸려 넘어졌다. 그리고 바로 경기장 밖으로 실려 나갔다.
‘저 팀의 문제는 팀장님이었구나.’
대체 선수가 없던 우리 팀은 결국 우리 매니저님까지 호출하게 만들었다.
“잘 부탁드립니다.”
언 듯 봐도 운동 좀 하신 우리 매니저님은 팀장님이 빠진 자리를 채워 넣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우리 팀의 환상적인 플레이가 코트를 수놓았다.
“자! 바로 갑니다!”
[팡!]
“우라얍!!!”
[쾅!!!]
와.. 공중에서 회전했다.
만화에서나 보던 화려한 발차기였다. 내 상급 재능인 [태권도 국가대표의 발차기]보다도 더 화려한 것 같다.
상대방인 진행팀은 서브만 넣고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공이 저 하늘위로 날아가서이다.
‘이 팀은 글렀어...’
화려하기만한 매니저님의 발차기는 연신 밖으로 나갔고, 그럴 때마다 매니저님은 말씀하셨다.
“아.. 몸이 안 풀렸네. 몸만 풀리면... 하하하하. 저만 믿으십시요!”
매니저님의 몸은 결국 마지막까지 풀리지 않으셨다.
그리고 3, 4위 결정전.
우리의 상대팀은 조명팀이었다. 조명팀 팀원들은 3점차이로 졌기 때문인지 많이 아쉬워했다. 그리고 상대가 우리라는 것에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분위기가 좋았다.
나는 의기소침해 있는 우리 팀을 소집하였다.
“제가 받으면 무조건 공중으로 띄우세요. 실수해도 되니까 무조건 띄우시고, 몸들 피하세요.”
내 말에 모두들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이제 몸이 어느 정도 풀렸는데, 제가 공격하겠습니다.”
매니저님의 말에 아무도 대답하지 않고, 파이팅만 외치고는 바로 코트 안으로 들어갔다.
“자! 3, 4위전 시작합니다. 선공은 조명팀! 플레이볼!”
화기애애한 조명팀이 서브를 넣었다.
[팡!]
조명팀의 서브를 내가 머리로 리시브를 하고, 바로 외쳤다. 안 그러면 공격본능을 발휘해 공격을 할 분이시다.
“매니저님 공중으로 띄우세요!”
뭔가 아쉬워하는 표정으로 공을 위로 차올렸다. 생각보다 너무 높은 공에 우리 팀들의 표정이 다들 안 좋았다.
[두다다다! 휘릭!! 쿠왕!!!]
뒤에서부터 달려온 나는 힘껏 점프를 하며 몸을 사선으로 회전시켰다. 공중에서 한 바퀴 반을 돌며, 오른발 뒤꿈치로 정확히 공을 내려찍었다.
거의 3미터에 육박하는 높이까지 뛰어올라 내리 꽂은 내 발차기에 다들 고개를 들어 공중에 떠있는 나를 멍하니 보고만 있었다.
공은 조명팀의 코트 바닥에 정확히 내려 꽂히고, 멀리 튕겨져 날아갔다.
“음..음향팀! 1점! 우와!!!!”
심판을 보시던 스태프가 환호성을 질렀다.
“와!! 대박이다! 무슨 영화야? 뭐야 이거!!”
지켜보던 다른 스태프들도 같이 환호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다른 일을 하던 스태프들도 하나 둘씩 모이기 시작했고, 결승전을 준비하던 촬영팀이 하나 둘씩 카메라를 설치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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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마지막 하나! 받으세요!!”
중간에 결국 공격본능을 참지 못하고 엄청난 발차기를 선보이신 매니저님은 옆에서 구경하시던 하불복 PD님을 KO시키시고는 PD님을 간호하러 떠났다.
초반에 부상을 당하신 음향팀 감독님이 대신 교체되어 들어오셨다. 그리고는 부상 투혼을 발휘하시어 어떻게든 공을 띄워주시고 있었다.
중구난방으로 날아가는 공들을 어떻게든 따라잡아 다양한 발차기를 날려주었다.
오히려 예상하지 못한 각도에서 날아오는 공들에 조명팀은 더욱 당황을 하였다.
마지막 1점.
넘어오는 공을 내가 팀장님에게 띄워주고, 팀장님은 이번 경기에서 가장 완벽하게 공중으로 리시브를 해주셨다.
[두두두두!!]
“흐압!!!”
네트 앞까지 최대 속도로 뛰어와 점프를 했다.
점프를 하며 온몸을 비틀어 머리가 아래로, 다리를 위로 하며 오버헤드킥을 완벽하게 날렸다.
[콰아앙!!!!]
공이 터져나갈 것 같은 소리를 내며 조명팀의 코트에 내려 꽂혔고, 조명팀은 내 오버헤드킥을 보며 패배를 직감했다.
[와!!! 짝짝짝짝!!! 휘이익!!! 힐링!! 힐링!! 힐링!!]
스태프들이 스포츠 영웅을 보는 듯이 환호를 해주며 힐링을 다 같이 외치기 시작했다.
나는 환호에 화답하는 주먹을 높이 치켜들었다.
“자! 선수들 정렬! 인사!”
“수고 하셨습니다. 힐링님 선수 하셔도 되겠습니다.”
“세팍타크로 선수 같았습니다. 와. 영상으로만 보던 발차기를 실제로 보니까 정말 대단하네요.”
상대팀의 모든 사람들이 나에게 다가와 인사를 하였다. 나는 일일이 손을 맞잡고 웃어주었다.
‘정말 재미있었다.’
샤워를 하고 나오니 한참 족구 결승전이 진행중이었고,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결국 진행팀이 우승을 하게 되었고, 2위부터 4위까지의 팀장님들은 울상을 지으며 지갑을 열고 있었다.
“저. 오늘은 제가 내도록 하겠습니다. 이걸로 회식하세요.”
내가 내민 두툼한 봉투에 팀장님들의 얼굴은 급격히 밝아졌고, 스태프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힐링님! 사랑합니다!!”
“결혼해 주세요!!”
중간에 결혼해 달라는 분이 분명 남자이신 것 같은데, 잘못 들었나보다.
나는 스태프들과 인사를 하고, PD님을 간호하시던 매니저님을 호출하였다.
고속도로를 타고 가며 매니저님과 많은 이야기를 하였다.
“매니저님 오늘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하하하 아닙니다. 제가 몸만 풀렸어도 다 끝났을 건데, 그게 좀 아쉽습니다.”
다 끝나기는 했다. 게임이. 그리고 하불복 PD님의 인생이 끝날 뻔 했다.
“그런데, 매니저님은 이일 오래 하신건가요?”
“아닙니다. 시작한지는 이제 6개월 정도 되었습니다. 원래는 국가대표 태권도 상비군을 했었는데, 부상 때문에 잠시 쉬고 있습니다.”
“그래서 발차기가 정말 대단하셨군요.”
“힐링님에 비하면 어린아이 재롱 수준이죠. 힐링님이 정말 대단하시던데요?”
매니저님은 이 일을 조금 더 하다가 태권도 도장을 차리실 것이라고 하셨다. 같이 동업을 하기로 한 친구가 아직 일이 정리가 안 되서 그사이에 잠시 일을 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어? 그럼 나특 팀장님의 사촌 동생이신 거예요?”
“네. 이종사촌입니다.”
“하나도 안 닮으셨는데.. 하하하”
“그렇죠? 제가 훨씬 낫긴 합니다. 하하하”
나특 팀장님이 혹시나 해서 경호 역할도 할 수 있는 자신의 사촌동생을 보내신 것이다. 나를 많이 생각해주시는 것 같아 너무나 감사했다.
집으로 향하는 길은 4시간이 넘는 먼 길이었지만, 매니저님과의 대화는 그 시간이 길지 않게 느껴지게 해주었다.
매니저님은 유머가 있었고, 자신의 주관이 뚜렷하셨다.
그런 남자다운 면이 정말 부러웠다.
어떤 상황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자신을 믿고 나아가는 그 모습이 존경스러울 지경이었다.
우리는 금방 형, 동생을 하게 되었고, 나이는 2살 차이였다.
26살의 상남자 매니저 김화랑.
이름부터가 태권도를 잘하게 생겼다.
나중에 도장을 차리면 꼭 놀러오라고 하였고, 나는 도장을 차릴 때 꼭 연락을 달라고 하였다.
요즘 들어 마음에 드는 형과 동생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나조차도 놀랄 정도로 쉽게 형, 동생을 하게 된다.
예전에는 나보다 나이가 많던, 적던지 간에 존댓말을 하였다. 그건 나 나름대로의 사람들과 거리를 두는 방법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러지 않고 산다.
이런 사소한 변화들이 쌓이다보니 인간관계가 많이 유연해졌다. 친한 형과 동생들이 많이 생겼다. 그리고 앞으로도 더 많아 질 것이다.
“천운이 형. 조심히 들어가세요! 나중에 대련 한번 해요!”
“그래! 너도 재활 잘 하고, 몸 관리해. 심심하면 연락하고!”
“하하하하 네. 갑니다!”
떠나는 차를 잠시 바라보았다.
부드럽게 아파트 단지를 빠져나가던 차가 화단 턱을 밟고 덜컹 거렸다. 참으로 유쾌한 매니저 동생이다.
[퀘스트 완료, 보상으로 50만원과 최하급 재능 ‘유연한 오른팔’을 습득하였습니다.]
[유연한 오른팔이 마동식의 근육과 시너지 효과가 발생하여 상급 재능 유연한 신체로 승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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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들어가는 길에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시는 경비 아저씨가 보였다.
“안녕하세요~”
“아.. 예.. 안녕하세요..”
왠지 기운이 없어 보이시는 아저씨는 한손에는 쓰레기가 가득 든 쓰레기봉투를 들고 걸어가시고 계셨다.
‘집이 우리 단지이신가? 아닌 것 같은데. 왜 쓰레기봉투를 들고 가시지?’
대수롭지 않게 지나치며 집으로 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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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흐~~ 아! 좋다! 역시 렉오 블록이 최고야!”
촬영과 장거리 이동으로 쌓인 피로가 렉오 블록위에서 잔 하루 밤 만에 완전히 풀렸다.
“이 재능은 나 혼자만 사용하기에는 정말 아깝단 말이야. 엄마랑 송이도 적용되면 정말 좋겠는데.”
개운한 마음으로 일어나 씻고 외출 준비를 하였다. 부지런히 움직여야 퀘스트를 하나라도 더 할 수 있다.
뭐 이제는 퀘스트도 퀘스트지만, 사람들을 도울 수 있다는 것이 더 좋긴 하다. 왠지 내가 이 세상에 필요한 존재가 된 것 같은 기분이다.
현관을 나서는 데, 퀘스트 알림음이 들렸다.
‘띠링’
‘왠일로 집을 나서자마자 퀘스트가 발생하지?’
요즘에는 조금 더 멀리 이동을 해야 퀘스트가 발생했다. 그래서 아침부터 지하철을 타고 수도권 이곳저곳을 이동한다.
그러다 퀘스트가 발생하면 지하철에서 내려 해결을 하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내용을 확인해 볼까?’
[퀘스트 발생 - 입주민의 지나친 갑질로 삶을 포기하시려는 경비아저씨를 도와라. 제한시간 3일.]
‘어! 이거 뭐지? 우리 아파트 이야기인가?’
퀘스트 네비게이션은 정확히 우리 아파트 1층 계단을 가리키고 있었다.
조심히 1층과 2층 사이의 계단 쪽으로 걸어가니 어제 보았던 그 경비 아저씨가 계단에 앉아 있으셨다.
“흑..흑...흑.. 후웁...하...”
60대의 아버지뻘의 어른이 계단에 앉아 울고 계시니 믿기지가 않았다. 민망해 하실까봐 조용히 뒤로 돌아 아파트 단지 앞에 서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지? 왜 울고 계신 걸까?’
퀘스트 상으로 보면 입주민의 지나친 갑질 때문이라고 하는데, 우리 단지 분들은 그런 분들이 없는 것 같았다.
이사 온지 많은 시간이 지난 건 아니지만, 이사를 오면서 떡을 돌리며 안면을 쌓았고. 오며가며 인사도 하면서 친분을 쌓았다.
그러다보니 우리 단지의 모든 분들과 인사를 하는 사이가 되었다. 사람 속마음은 모르는 것이지만, 내가 받은 인상으로는 그렇게 갑질을 할 만한 분들은 보이지 않았다.
‘혹시 한 달 전쯤에 이사 오신 그 집인가?’
한 달 전쯤 우리 아파트 단지에 새로 이사 온 집이 있었다. 젊은 부부로 보였는데, 이사를 오자마자 몇 번을 싸웠다.
엘리베이터에서 음식물 국물을 흘리고도 치우지 않아서 그걸 지적한 할머니와 욕을 하며 싸웠고, 강아지 목줄도 하지 않고 엘리베이터에 타다가 우리 윗집 아주머니와 싸웠다.
잠시 추측을 하고 있는 중에 경비아저씨가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안녕하세요. 아저씨.”
“아..네.. 안녕하세요..”
“혹시 괜찮으시면 이야기 좀 해도 될까요?”
“무슨...”
조금 꺼려하시는 경비아저씨를 겨우 설득해서 아파트 경비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거기에서 들은 이야기는 정말 나를 제대로 화나게 만들었다.
“와.. 뭐 이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