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혈 청춘 만화의 주인공.
- 10년 전 가족[아내, 딸]과 필리핀으로 이민.
- 이민 후, 1년 동안 한인 식당 운영, 크게 성공.
- 마약 소지 혐의로 필리핀 경찰에 체포.
- 무기징역형 선고.
- 현재 필리핀에서 복역 중.
- 아내와 딸 행방불명.
“이... 이게..”
형제보다 더 가까웠던 아버지를 배신한 결과가 무기징역이라는 것인가? 뭔가 통쾌해야할 상황 같은데, 뭔지 모르게 너무나 씁쓸했다.
“우리 부모님이 고생한 건 누구에게 보상을 받아야 되지? 나는 누구를 원망하고 살아야하는 거야....”
“천운님. 잠시 앉아서 마음을 다스리세요.”
재단장님은 나를 자리에 앉혀주시고, 따뜻한 녹차를 우려내 주셨다.
“제가 알아본 바로는 필리핀 범죄자 조직의 전형적인 수법에 당한 것 같습니다.”
“범죄자 조직이요?”
“외국인 중에 돈이 좀 있어 보이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데, 우선은 가정부를 협박하거나 조직원을 가정부로 넣습니다.”
“집 구조와 가족들의 동선을 파악하고, 기회를 노려서 마약을 숨겨놓습니다. 그리고 조직원 중에 경찰이 갑작스럽게 수색을 합니다. 물론, 신고는 가정부가 했다고 합니다.”
“자연스럽게 마약이 발견되고, 체포를 한 뒤에 재산을 전부 빼돌립니다. 필리핀은 마약 소지 시에 최소 20년에서 무기징역까지 선고가 됩니다.”
“운 좋게든지, 힘을 써서이든지 감옥에서 나왔을 때는 이미 재산은 전부 사라지게 됩니다.”
너무나 충격적인 형사님의 설명이었다.
“그럼. 이 사람도 그렇게 당한 것 같다는 말씀이시죠?”
“네. 맞습니다. 그런데, 그 가족들은 제가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범죄경력이 있어야 추적 할 수 있는 재능이어서요.”
많은 도움을 주시고도 오히려 미안해하시는 형사님이셨다.
“이정도만 해도 정말 감사한 일이죠.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할지...”
“음..그러시면 부탁 좀 드릴 게 있습니다.”
“어떤...”
무표정한 얼굴로 가방에서 A4용지를 한 가득 꺼내놓으셨다.
“싸인 좀 부탁드립니다.”
“네? 싸인이요?”
“제 여자 친구와 여자 친구 부모님. 우리 경찰서 동료들이 전부 힐링님 팬입니다.”
“아..하하하 감사합니다. 얼마든지 해드릴 수 있습니다. 주세요!”
“그럼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쿵!!]
가방에서 또 한 무더기의 A4 용지가 나왔다.
“어?”
“우리 경찰서 동료들의 가족들도 전부 팬입니다.”
“하...하..하..”
30분 동안 싸인만 했다.
그나마 [내 손은 두 개지]라는 재능 덕분에 양손으로 싸인을 해서 빨리 끝냈다. [내 손은 두 개지] 재능은 나를 양손잡이로 만들어주는 재능이다.
“그럼. 이제 그만 가 봐도 될까요?”
또 가방에서 A4 용지를 꺼내실까봐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부탁이 있습니다.”
“무슨...”
정의남 형사님의 말에 살짝 두려움이 느껴졌다.
“같이 사진 좀 부탁드립니다.”
생긴 건 남자답게 잘 생기신 분이 무표정으로 말을 하시니 조금 무섭다. 어색한 포토타임이 끝나고 정의남 형사님이 먼저 자리를 떠나셨다.
“하하하 정 형사님이 많이 부끄러우신가 보군요.”
“네? 전혀 안 그래 보이셨는데요?”
“아까 책상 밑으로 다리를 엄청 떠시더군요.”
뭔가 새롭다.
나보다 더 출중한 재능을 가지신 시스템 사용자가 나의 팬이라고 해주시니 자존감이 엄청 올라갔다. 나는 아직 수습 사용자인데, 무려 최상급 시스템 사용자가 나의 팬이라니, 믿기지 않는다.
“그럼. 저도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그래요. 조심히 들어가세요.”
“아! 그리고 보약 좀 사고 싶은데, 그 한의사님도 연결 부탁드립니다.”
“연락드리라고 할게요.”
“감사합니다.”
“하하하 우리 재단에 가장 많이 기부를 하시는 기부자님이신데, 제가 더 잘 해야죠.”
“하하하 부끄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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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가는 길은 고뇌의 시간이었다. 내 손에 들려있는 서류 봉투를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빠졌다.
‘엄마와 송이에게 말을 해야 할까? 아니면 그냥 모르고 살게 하는 게 나을까?’
수많은 생각이 몰아쳤다.
그러다 결국은 나만의 비밀로 남겨두기로 하였다.
모든 것을 잊고 살지는 못하겠지만, 지금은 우리 가족끼리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이 상황에서 그런 고민거리를 엄마와 송이에게 넘겨주고 싶지 않았다.
나의 이기심일 수도 있겠지만, 그냥 그러고 싶었다.
그리고 나도 지금의 생활에 최선을 다하며 살다보면, 언젠가는 이 모든 것들을 웃으면서 추억으로 생각하는 날이 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할 일만 열심히 하며 살자.’
시스템도 내 결심에 동의를 하는 건지 바로 퀘스트가 발생하였다.
‘띠링’
[퀘스트 발생 - 반지를 잃어버린 아이를 도와주시오. 제한시간 1시간.]
‘가자! 가서 열심히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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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여기서 잃어버렸다는 거지?”
“네... 반지야.. 어디 있어? 훌쩍..”
최현정. 반지를 잃어버린 아이의 이름이다.
혼자서 울고 있던 아이는 내가 도와주겠다고 말을 하자 내 손을 잡고 도와달라고 했다.
“현정아. 걱정하지 마. 아저씨가 이런 거 진짜 잘 찾아!”
저번에는 준석이의 오백 원도 열심히 찾아주었었다. 물론 오백 원은 준석이의 가방에 있었지만.
‘설마! 현정이도 반지를 다른 곳에 보관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문득 든 생각에 현정이의 귀여운 손가락을 바라봤지만, 역시나 반지는 없었다.
‘어쩔 수 없지. 또 열심히 바닥을 뒤져봐야겠구나.’
나는 오백 원을 찾을 때처럼 바닥에 얼굴을 대고 바닥을 훑어보았다. 제한 시간이 1시간이어서 빨리 찾아야 한다.
“반지야! 어디 있어? 이리와! 힝...”
아직은 어린 아이라서 그런지 반지를 부르며 찾고 있다.
‘귀엽네. 그런다고 반지가 대답을 할 리가 있나.’
[멍!]
“반지야! 반지 맞아?”
“현정아. 저 소리는 반지가 아니라 강아지 소리야. 반지는 대답을 못해.”
[멍! 멍!]
“우리 반지 맞아! 반지야!!”
[멍! 멍! 멍!!]
현정이 키만 한 강아지가 목줄을 한 채로 현정이에게 달려들어 애교를 피우기 시작했다.
‘반지가... 강아지 이름이었어?’
30분이 넘게 바닥에서 구른 나는 도대체 뭐를 한 거지? 자괴감이 느껴졌다.
“아저씨! 감사합니다.”
[멍!]
“어? 어. 그래.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이다.”
현정이와 반지는 그렇게 나를 두고 떠났다.
[퀘스트 완료, 보상으로 50만원과 최하급 재능 ‘우리집 강아지는 뽀삐’를 습득하였습니다.]
뭔가 공짜로 재능을 얻은 것 같으면서도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우리집 강아지는 뽀삐 - 강아지 이름이 ‘뽀삐’이면 최상급의 친밀감을 가지게 한다.]
요즘에 누가 강아지 이름을 뽀삐라고 짓나? 무슨 화장지야?
“뽀삐야! 이리와! 왜 거기로 가니?”
[헥! 헥! 헥! 헥!]
강아지 한 마리가 내 다리를 빙빙 돌며 꼬리를 엄청나게 빨리 흔들고 있었다.
“뽀...삐?”
[왕!! 왕! 왕!!!]
자신의 이름을 불러줘서인지 엄청나게 좋아해줬다.
“뽀삐야! 왜 그래! 이런 애가 아닌데.. 정말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하하하 그런데, 혹시 이름이 뽀삐면 화장지?”
“네? 화장지요? 그게 무슨.. LOL 챔피언 이름인데..”
나와 떨어지기 싫어하는 뽀삐를 안고, 뽀삐의 주인분이 황급히 도망가기 시작했다.
‘나 때는 뽀삐는 무조건 화장지인데... 하. 하. 하.“
나도 모르게 라떼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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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어디 갔다가 오는 거야? 얼른 와! 지금 무박 2일 시작 한단 말이야!”
“어?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어?”
엄마와 송이는 벌써부터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어서 앉아.”
엄마 옆에 앉아서 나도 같이 시청자 모드로 돌아섰다. 오랜만에 이렇게 다 같이 앉아있으니 너무 기분이 좋았다. 역시 그 사람의 이야기는 나만의 비밀로 간직해야겠다.
“자! 오늘은 특별한 게스트를 모셨습니다.”
PD님의 멘트를 시작으로 무박 2일이 시작되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핫한 남자! 다재다능의 대명사! 발차기의 신! 힐링님을 모십니다!”
“안녕하십니까. 힐링입니다.”
TV에서 내가 나오는 모습은 너튜브와는 다르게 많이 어색하다.
“오~ 오빠 조금 멋있게 나오는데?”
“우리 아들 정말 잘 생겼다.”
가족들의 칭찬에 민망해져왔다.
“자! 오늘 간식이 걸려있는 첫 번째 게임은 바로! ‘까나리 액젓을 피해라’입니다.”
“오빠 저거 진짜 까나리액젓이야? 아주 조금 섞은 거지?”
“아니. 원액에 가까워.”
“으엑!! 저거 걸린 사람 있어?”
“봐봐.”
화면에서는 내가 첫 잔부터 마지막잔까지 순서대로 전부 마시는 장면이 나오고 있었다.
“아들! 괜찮아?”
“역시 오빠는 또라이..아얏”
말실수를 한 송이의 허벅지를 엄마가 때리신다. 고놈 참 고소하네.
“먹을 만 했어.”
TV에서는 계속해서 내가 활약을 하는 장면과 내가 활약을 하면 할수록 난감해 하는 제작진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뭐야! 하하하하 오빠 저거 진짜 다 한 거야? 푸흡!! PD님 찐으로 당황하시는데?”
“그래도 제작진이 나 많이 연구한 것 같아. 내 너튜브 영상에 있는 건 하나도 안했어.”
무박 2일은 어느새 야외 당직게임의 차례가 되었다.
“이번 게임은 노래방 점수 내기입니다! 점수가 가장 낮은 세 분은 야외 당직입니다.”
PD님의 멘트에 송이가 말을 했다.
“오빠 박치잖아! 그럼 잠 못 자고 부업 한 거야?”
“아들. 괜찮은 거야?”
“그냥 보면 알아요.”
내 입으로 상황을 말하기는 너무 쑥쓰러웠다.
단단 형님과 라바 형님의 엄청난 퍼포먼스와 강정민 형님의 의외의 노래 실력까지 보여줬다. 그리고 하이라이트인 문서윤 형님의 노래가 시작되었다.
“푸훕!! 하하하하하! 저게 뭐야! 너무 웃기다”
역시나 문서윤 형님의 노래는 파격적이었고, 재미가 있었다.
“아. 웃다가 눈물 났다. 오빠는 좋았겠다. 저걸 눈앞에서 보고.”
“저 형님들 진짜 찐으로 재미있는 분들이셔.”
이번에는 내가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나왔다.
“오~ 최정민 노래! 오빠 쓰러지는 거 아냐?”
나는 회심의 미소만 지으며 소파에 기대어 앉았다. 거만하게 다리를 꼬며.
“너와 함께 하려고 지금껏 혼자 인거야”
[우와.... 대박.. 어머!!]
내 노래의 첫 소절과 스태프들의 반응이 교묘하게 편집되어 있었다.
“뭐야? 오빠 뭐야! 무슨 일이야?”
송이는 호들갑을 떨다가 엄마가 조용히 좀 하라고 해서 입을 손으로 막고, 조용히 내 노래를 듣고 있었다. TV와 나를 번갈아보면서 혼란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렇게 두손 모아 기~도~할~ 게...”
내 노래가 끝나자 촬영장에 정적이 흘렀다.
조용히 스태프들의 눈물을 닦는 영상들이 뒤를 이었고, 강정민 형님이 호들갑을 떠는 모습이 지나갔다.
그렇게 내 노래는 긴 여운을 남기면서 끝이 났다. 곧바로 야외 부업을 하는 멤버들이 부업거리를 받고, 나머지는 실내 취침을 하러 들어갔다.
그리고 잠시 뒤, 방문이 열리며 내가 나오는 장면이 찍히기 시작했다.
“어? 저것도 찍고 있었네?”
“뭔데? 무슨 일인데?”
“그냥 내가 부업 좀 도와줬거든.”
“올~~~ 멋있는 척! 이미지 관리 좀 하셨네!”
“송이야! 오빠한테!”
“히잉!”
“잠이 잘 안와서 나와 봤어요. 그거 저 좀 주세요.”
“야~ 안 해도 돼~ 이겼으면 쉬어야지~”
“으허허허 그래도 같이 하니까 빨리 끝나겠다.”
은근슬쩍 내 앞으로 인형을 밀어주시는 연정후 형님과 철없는 강정민 형님의 모습이 화면에 잡히고, 곧 이어서 나의 엄청난 바느질 실력이 공개되었다.
제작진이 편집으로 내가 바느질을 하는 동안, 화면 하단에 시간을 표시해주었다. 조금 빠르게 감기는 화면은 정확히 32분 12초에서 멈추었고, 그 시간동안에 박스 세 개의 인형들을 전부 끝마쳤다.
“끝! 이제 다들 주무시러 가시죠.”
“고맙다. 천운아. 덕분에 처음으로 날 새기 전에 부업 끝낸 것 같다.”
우리는 훈훈하게 웃으며 자러 방으로 들어갔다.
“오빠! 저게 가능 한 거야? 편집이지?”
“편집은 무슨. 열심히 한 사람한테 할 말이야?”
“말도 안 돼...”
다음날 기상 미션으로 러브러브의 춤을 추는 미션을 하는 장면에서 송이가 눈을 가리고 소리를 질렀다.
“아악!! 내 눈!! 저거 안본 내 눈이 필요해!! 아악!”
나도 부끄러움에 잠시 고개를 돌렸다.
‘빨리 감기 기능은 없나?’
PD님과 환상의 댄스 듀엣을 끝내고 아침밥을 먹으면서 무박 2일이 끝이 났다.
“아! 재미있었다. 오빠 이번 편 정말 대박 재미있었어!”
“그러게. 우리 아들이 나와서 그런지 더 재미있네.”
“나도 촬영하면서 정말 재미있더라. 촬영인지도 잊고 놀다 왔어.”
[특별 영상! - 힐링님의 촬영 뒷이야기]
“어? 뭐지? 특별 영상 나오는데?”
다 끝이 난 줄 알았던 방송이 계속 나오기 시작했다. 화면에서는 촬영을 시작하기 전에 커피차를 대접하는 나와 매니저인 화랑이가 보였다.
“힐링님처럼 다정하신 출연자분은 드물죠. 정말 최고에요! 커피 잘 마실 게요~”
스태프들의 인터뷰 영상도 함께 나오기 시작했다.
“올~ 오빠 뭐야? 커피차도 쏜 거야? 대박! 나도 시험기간에 커피차 좀 보내줘!”
송이가 또 헛소리를 시작했다.
잠시 후에 화면이 바뀌며 족구 시합 장면이 나오기 시작했다. 음향팀 감독님의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시작으로 우리 팀으로 들어온 화랑이의 엄청난 발차기들이 보여 졌다.
멋있게 편집되어 있어서 뭔가 있어 보였지만, 결과는 전부 실패.
“뭐야? 저 매니저님은 무슨 발차기만 멋있는데?”
“어. 화랑이가 태권도 국가대표 상비군 출신이라서 발차기가 멋져.”
드디어 3, 4위 결정전이 시작되었다.
비장해 보이는 우리들의 모습이 화면에 보여 지고, 나의 화려한 발차기가 화면을 꽉 채우기 시작했다.
[두다다다! 휘릭!! 쿠왕!!!]
공중에서 한 바퀴 반을 돌며 발뒤꿈치로 공을 내려찍는 장면이 연속으로 다른 각도로 보여 졌다.
“우와....오빠 맞아?”
계속해서 화려한 발차기 장면이 지나갔고, 마지막 1점이 남은 장면에서 나의 오버헤드킥이 작렬하였다.
[와!!! 짝짝짝짝!!! 휘이익!!! 힐링!! 힐링!! 힐링!!]
나를 보며 환호하는 스태프들과 그 환호에 화답하는 주먹을 높이 치켜드는 나를 보며, 나는 고개를 숙였다.
‘아. 너무 창피하다. 내가 왜 그때 손을 들었지? 하아...’
무슨 열혈 청춘 만화의 주인공 같았다.
고개를 든 내 앞에 송이가 서있었다.
“뭐야?”
송이는 조용히 오른쪽 주먹을 높이 치켜들었다.
“내가 바로! 힐링이다! 우와!!!”
저걸 죽여 말어! 크흑! 봉인된 탈모 빔이 풀리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