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소고와의 대결.
“자! 오늘은 미리 말씀 드린 대로 연습 시합이 있습니다. 상대팀은 고교 야구 최강팀인 덕소고입니다.”
“말도 안 돼.. 거기 최강이잖아!”
“우리 한 점도 못 딸 것 같은데?”
덕소고라는 말에 다들 사기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얘들아! 잠시만.”
내가 말을 하니 다들 나를 바라보았다.
“형이 봤을 때, 너희들도 충분히 강해. 훈련도 열심히 하고 있고 재능들도 있어. 그리고 가장 중요한건 아무도 너희들에게 덕소고를 이길 것이라고 기대를 하지 않고 있다는 거야.”
내 말에 귀를 기울이면서도 저게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기대를 안 한다는 게 좋은 건가?
“기대를 안 한다는 건 부담이 없다는 거야. 너희들이 실수를 하거나 경기에서 지더라도 다들 그러려니 한다는 의미야. 그런데 만약에 안타를 치거나 득점을 한다면 영웅이 되는 거지. 얼마나 좋니? 실수해도 문제가 안 되고, 성공하면 영웅이 되는 건데.”
“그..그렇긴 하지?”
“그러게? 못해도 부담이 없네.”
“그냥 하던 대로 하면 되겠네!”
내 말에 서서히 아이들의 사기가 오르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내가 있잖아. 내가 점수 한 점도 안줄게”
“맞아! 프로도 저 형 공은 절대 못 칠거야!”
“그럼! 그럼! 메이저리거도 못 쳐!”
“마이크 트라이도 못 칠걸?”
마이크 트라이은 너무 갔다. 그러다가 판타지 소설까지 나가겠네.
“자! 자! 다들 연습 한 대로만 하면 된다! 투수들은 50구를 던지면 바로 교체다! 한 구, 한 구 최선을 다해서 배운다는 마음으로 던지도록! 타자들은 노리는 볼만 치면 돼. 자기 스윙 알지?”
황선호 감독님이 깔끔하게 정리를 해주셨다.
“네!”
우리는 버스에 올라타서 경기장을 향하기 시작했다. 오늘의 경기장은 고척 스카이돔이다. 남호인 PD님이 혼신의 힘을 다하시는 것 같다.
그리고 오늘의 경기는 라이브 중계까지 잡혀있었다. 저번 주 토요일에 1편이 방영이 된 상태였고, 사람들의 관심은 엄청났다.
최고의 장면은 좌완으로 던진 152km가 나온 장면이었다. 처음으로 던진 공의 스피드가 KBO 기준 파이어볼러의 구속이 나왔으니 사람들은 난리가 났다.
그것도 지옥에서도 데리고 온다는 좌완 파이어볼러이다.
이번 경기는 아나운서와 해설자까지 섭외가 되어 정식 야구 중계와 동일하게 진행되었다. 다만 관중석에는 산일 중학교와 덕소 고등학교 선수들의 가족들만 초청을 하였고, 가족들은 관중석의 일부에만 모여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여기는 고척 스카이돔입니다. 저는 캐스터 현동명이고, 제 옆에는 박용태 해설위원님이 나오셨습니다.”
“안녕하십니까. 대한민국 KBO 통산 최다 안타를 기록한 박용택 선수보다 딱 천개가 부족한 1,504개의 사나이 박용태입니다.”
“...네. 오늘은 산일 중학교와 덕소 고등학교의 승부가 펼쳐질 예정입니다. 해설 위원님이 보시기에 이번 경기의 관전 포인트는 어떤 점일까요?”
“우선 중학생과 고등학생, 그것도 고교 야구 최강팀과의 경기라는 점에서 덕소 고등학교의 압승이 예상되는데요. 산일 중학교 학생들이 형님들을 맞아 긴장을 하지 않는지가 관건이 될 것 같습니다.”
“이번 경기에 힐링님이 선발로 예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부분은 어떻게 보십니까?”
“네. 저도 힐링님의 투구 영상은 잘 보았습니다. 그 정도 속구가 날아오면 프로를 포함해서 제대로 쳐낼 선수들이 몇 없을 겁니다. 하지만, 아직은 훈련을 시작한지 얼마 안 되기 때문에 체력에 문제가 있을 수가 있어요. 이 부분 때문에 마무리 정도로 등판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정확한 포인트 해설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덕소고에도 힐링님 못지 않는 고교 최강 강속구 투수가 있지 않습니까?”
“네! 덕소고에 최대 구속 157km의 심준식 선수가 있습니다. 이 선수는 메이저리그에서도 컨텍이 오는 아주 대단한 강속구 투수입니다. 개인적으로 이 두 선수의 맞대결이 성사되길 바랍니다.”
“자! 이제 산일 중학교와 덕소 고등학교의 경기 시작합니다. 함께 하시죠.”
“플레이 볼”
주심의 플레이 볼 선언과 함께 경기가 시작되었다. 산일 중학교가 홈팀, 덕소고가 원정팀으로 정해졌고, 자연스럽게 덕소고가 선공을 시작하였다.
홈팀인 우리는 수비를 준비했다.
“산일 중학교의 선발 투수는 윤순일 선수입니다. 대통령기 전국중학야구대회 MVP를 2학년에 받았던 엄청난 실력의 선수입니다. 황선호 감독의 애제자로 불리는 산일 중학교의 에이스입니다.”
“황선호 감독님 같은 경우는 제가 잘 알고 있습니다. KBO 통산 102승의 레전드이시죠. 그 102승 가운데 저의 역할이 최소한 20승은 있지 않나! 생각하는 바입니다.”
“해설 위원님과 같은 팀 이였던 적이 있으셨나요? 제가 알기로는 없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네! 그래서 제가 최소 20승은 드렸다! 이 말씀입니다.”
“...첫 투구가 시작됩니다.”
윤순일은 던질 수 있는 구종이 딱 하나 포심이었다.
황선호 감독의 주장은 중학생 때는 포심으로만 자세를 몸에 익히고, 고등학생 때 어깨와 팔꿈치에 무리가 가지 않을 정도의 변화구를 익히는 게 좋다는 것이다.
그리고 본격적인 변화구 습득은 프로에 가서 익혀야 부상을 당하지 않고, 오래 선수 생활을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다만, 이 포심 하나만으로도 대통령기 전국중학야구대회 MVP를 받을 수 있었던 건 타자의 가장 먼 쪽 하단에 정확히 던져 넣을 수 있는 제구력이었다.
황선호 감독이 다른 곳은 모르겠지만, 이 곳 만큼은 확실하게 던질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를 하는 코스로서 이 코스를 제대로 칠 수 있는 중학리그 타자는 거의 없었다.
그리고 그건 고교 최강 덕소고 타자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었다.
“스트라이크!”
“초구 스트라이크입니다. 타자에게서 가장 먼 대각선 하단에 정확히 꽂혔습니다.”
“네! 어린 선수답지 않게 아주 용감하게 던지고 있습니다. 황선호 감독님도 선수 시절에 저 코스를 정말 잘 던지셨어요! 저 공에 제가 헛스윙을 하다가 허리에 통증이 생겨서 한참 고생했습니다. 저희 집 근처 한의원 단골이 되었어요! 제가!”
“제 2구! 스트라이크! 이번에는 살짝 높은 코스였는데, 덕소고의 1번 타자가 공을 지켜봤습니다.”
“네. 아무래도 선두 타자로서 많은 공을 지켜보는 게 중요한 임무이죠? 이제부터는 비슷한 코스의 공은 전부 걷어내야 합니다.”
“제 3구! 헛스윙! 삼진! 와.. 첫 번째 던졌던 그 코스에서 반 개정도 더 빠지는 공이었죠?”
“저 공이 저렇게 들어오면 타자는 휘두를 수밖에 없습니다. 잘못하면 루킹 삼진이거든요! 제가 저 기분을 아주 잘 압니다.”
첫 시작이 좋았다. 3구 삼진으로 첫 타자를 잡아낸 순일이는 자신감 있게 투구를 계속했고, 1회 15구를 던진 끝에 3타자 연속 삼진으로 잡아내었다.
- 저거 중학생 맞냐? 우리 팀 에이스보다 볼이 더 좋은 것 같은데? 제구 봐라! 와!
⌎ 저렇게 대각선 먼 쪽에 들어가면 타자가 치기 힘들지. 오늘 중학생들이 이길 수도?
- 덕소고 애들 1,2학년들 주축으로 나온 거잖아. 4번만 3학년이다. 그리고 저 4번이 이번 청룡기 MVP잖아. 걸리면 넘어간다.
⌎ 쟈는 꼭 우리가 델꼬 와야한다. 우리 포수가 영 시원찮다!
⌎ 1라운드 지명될 것 같은데, 드래프트 순위가?
⌎ 우리는 항상 1번이다!
⌎ 나는.. 행복합니다.. 크흡! 힘냅시다.
시청자 댓글이 열심히 달리고 있었다.
현재 시청자수는 75만 명. 엄청난 관심이 집중되고 있었다. 한 번 댓글을 쓰면 한 동안 댓글을 쓰지 못하게 제한을 두고 있는데도 엄청난 양의 댓글들이 작성되고 있었다.
- 그래도 저 투수 내려가면 그때부터 맞기 시작할 걸? 중학교는 학교마다 에이스들 빼면 다 힘들다.
⌎ 이거 맞는 말. 그리고 투구 수 제한 있어서 4이닝 던지면 내려가야 한다.
시청자들은 거의 전문가 수준이었다.
예상한대로 순일이는 3회까지 완벽하게 막아내고 교체되었다. 4번 타자를 잡는데 무려 9구나 던졌기 때문에 4회는 올라가지 못하였다.
그동안에 산일 중학교 타자들은 초반 제구가 흔들린 덕소고의 1학년 투수를 상대로 1회에 안타 3개를 몰아쳐 1점을 획득하였다.
경기 초반 분위기는 산일 중학교에 있었지만, 어느 정도 몸이 풀린 덕소고 투수가 안정을 되찾았고, 에이스인 순일이가 내려가고 나서부터 위기가 시작되었다.
순일이를 이어서 등판한 투수는 같은 3학년인 부창운이었다. 창운이는 순일이보다 더 빠른 최대 132km를 던지는 강력한 어깨를 가졌지만, 제구력이 많이 안 좋았다.
최소한 존 안에 넣고, 빼는 정도만 되어도 괜찮은데 그게 쉽지 않았다.
그래도 4회를 3타자 연속 범타로 처리하고 내려갔다. 마음이 급한 덕소고 1,2학년 선수들이 안 좋은 공에도 쉽게 배트를 낸 까닭이었다.
4회가 끝나고 덕소고의 감독은 선수들 모두에게 집합을 걸었다.
그리고는 타자들에게 쉽게 타격을 하지 말고, 최소한 2개는 본 다음에 타격을 하라고 지시를 하였다.
그리고 그 지시는 정확하게 맞아 들었다.
“아.. 잘 던지던 부창운 투수가 연속 볼넷을 허용합니다. 무사 1, 2루! 위기입니다.”
“이럴 때는 포수나 감독이 마운드를 방문해 주어야 합니다.”
해설 위원의 말대로 감독님이 마운드를 방문 하셨다. 그런데, 투수를 진정시키는 것이 아니고 바로 교체를 지시하였다.
황선호 감독 입장에서는 더 이상 창운이가 던졌다가는 오히려 창운이에게 안 좋은 영향을 미치게 될 것 같았다.
원래부터 새 가슴인 창운이가 이 위기를 벗어나지 못하면 차후로도 창운이에게 악영향을 미칠 수 도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역시나 입술이 파랗게 질린 창운이는 감독님의 교체 지시에 오히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산일 중학교는 더 이상 투수를 내기가 힘들었다. 다들 아직까지 배우는 단계였고, 덕소고 선수들에게 통할만한 최소한의 실력의 선수는 윤순일과 부창운 뿐이었다.
덕소고의 1,2학년과도 실력 차이가 너무 많이 났다.
“아! 드디어 힐링님이 마운드로 올라오고 있습니다!”
“힐링님이 마운드에 올라왔습니다. 어떤 공을 던질지 개인적으로 엄청나게 기대가 되는데요! 그런 만큼! 광고 보고 오시겠습니다.”
- 드디어! 올라오는구나!
⌎ 153km! 153km!
⌎ 좌완 파이어볼러가 오셨다!!
⌎ 힐링님은 사이보그임.
감독님은 나에게 공을 넘겨주며 말씀하셨다.
“아직은 포수가 제대로 공을 받지 못하니까 변화구는 사용하지 마시고, 최대한 구석을...음.. 그냥 존 안에 던져 넣으세요. 아무도 못 칠 겁니다.”
“아.. 네.”
사실 제일 강한 변화구는 강속구다.
시속 144km의 공이 투수의 손을 떠나 스트라이크 존을 통과하는 시간은 약 0.4초 남짓이다. 152km이면 0.375초 남짓.
이 공을 눈으로 보고 반응하기는 쉽지 않다. 프로 레벨에서도 150km가 넘는 공을 정확히 타격할 수 있는 선수는 몇 없다. 수많은 경험을 통해 예측에 가깝게 판단하고 치는 거지 눈으로 보고 치는 선수는 손에 꼽는다.
감독님은 이 사실을 알기 때문에 그냥 존에 넣으라고 말씀을 하시고는 들어가셨다.
불펜에서 미리 몸을 풀고 와서 연습구는 가볍게 3개만 던졌다.
포수인 백산이와 미리 이야기한대로 우리는 싸인을 교환하지 않았다.
던지는 구종은 포심 하나.
위치는 백산이가 미트를 대고 가만히 있으면 그 곳에 정확히 꽂아 넣겠다고 하였다.
‘첫 구는 그렇지! 마음에 든다.’
포수가 미트를 대고 있는 곳은 우타자 몸 쪽 깊숙한 곳.
오른발을 높이 들고 투구를 시작하였다.
가슴까지 올라갔던 무릎을 앞쪽으로 힘차게 내려놓으며 팔을 채찍처럼 휘둘렀다. [꼬마 낙지의 웨이브] 재능 덕분에 기이할 정도로 유연해진 내 팔 관절은 뼈가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마지막까지 내 머리에 가려져 있다가 벼락같이 튀어나온 공은 우타자의 몸 쪽 깊숙한 곳에 정확하게 꽂혔다.
[펑!!!]
깜짝 놀란 덕소고 타자가 엉덩이를 뒤로 빼며 피해보았지만, 주심은 가차 없이 소리를 질렀다.
“스트라잌!!”
“154!!! 154km가 나왔습니다. 힐링 선수! 첫 구로 던진 저 공이 154km의 초 강속구가 나왔습니다!!”
“랜디 존스의 폼과 비슷합니다! 보시면 디셉션도 훌륭합니다! 저런 폼에서 저런 디셉션이면 타자에게는 최소한 2km는 더 빠르게 느껴질 겁니다!”
- ㅋㅋㅋㅋㅋ 덕소고 타자 쫄았다.
⌎ 저 속도에 몸 쪽으로 들어가면 안 쫄 타자가 없음.
⌎ 와... 우리 팀 에이스보다 더 공이 좋다....
⌎ 공이 꿈틀 거리는 거 봐라... 좌완 공이 저 정도면 누가 칠 수 있겠냐?
포수가 던져주는 공을 받아들고 다시 빠르게 투구 자세를 잡았다. 싸인을 주고받지 않으니 자연스럽게 투구 준비 시간이 짧아지고, 타자는 생각을 할 시간도 없이 타석에 설 수 밖에 없었다.
경험이 많은 타자였다면 타임이라도 걸었을 것인데, 방금 전의 몸 쪽 깊숙한 공을 본 타자는 정신줄을 살짝 놓은 것 같았다.
‘흐읍!’
[펑!!]
이번에도 같은 코스에 정확히 같은 속도의 공이 들어갔다. 포수의 미트는 그 자리에서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공을 받아냈다.
“스트라잌!!!!”
어쩐지 더 커진 듯 한 주심의 스트라이크 콜이다.
타석에서 물러난 타자가 습관적으로 스윙을 두 번 정도 돌려보고, 황급히 타석에 들어섰다. 내가 투구 준비를 끝냈기 때문이다.
‘마지막은 감독님의 트레이드 마크 바깥쪽 공이다!’
[펑!!!]
타자는 날아오는 공을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다. 안쪽 공 2개를 연속으로 보고난 후의 바깥쪽 공은 타자에게 너무나 멀게 느껴졌다.
“스트라~잌!!! 아웃!”
주심은 너무나 경쾌하게 삼진 콜을 하였고, 다음 번 타자가 사색이 된 채로 타석으로 들어왔다.
3타자 연속 3구 삼진.
5회 초. 덕소고의 공격은 허무하게 끝이 났다.
- 와...이건 말이 안 나온다...
⌎ 마지막공 155km 맞냐? 전광판 고장난거 아님?
⌎ 아니 고교 선수들 상대로 저렇게 던지면 어떻게 치라는 거임? 이거 반칙이잖아!
⌎ 덕소고에도 최고 속도 157km 찍은 애 있음.
⌎ 이거 괴수 대전이었음?
덕소고도 5회 말에 투수를 교체하였다. 바로 고교 최고 강속구 투수 심준식이었다.
“아! 드디어 올라옵니다. 강속구에는 강속구로 맞선다! 고교 최대어! 메이저리그에서도 관심을 갖는 그 선수! 최고 구속 157km의 주인공! 심준식 투수가 마운드에 올라왔습니다.”
가볍게 몸을 풀며 던지는 공인데도 140km대 후반이 찍혔다.
“우와... 저걸 어떻게 치냐?”
“맞추지도 못하겠는데?”
“잘못 휘두르면 방망이 구부러지는 거 아냐?”
덕소고는 나무 배트를 사용하지만, 중학생인 산일 중학교 학생들은 금속 배트를 사용한다. 1회에 뽑은 1점도 생각보다 반발력이 큰 금속 배트에 수비수들이 실책을 한 영향이 컸다.
“못 쳐도 되니까 너의 스윙을 하고 와. 보고 치면 늦어. 공 끝이 마지막까지 살아오니까 공의 살짝 윗부분을 때린다 생각하고 간결하게 스윙해!”
감독님은 타자들에게 강조를 하셨다.
그러나 조언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타자였다면 고교 최강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스트라이크! 삼진!! 덕소고도 맞대응을 놓습니다! 엄청난 강속구 대결입니다!”
“음.. 그런데 심준식 선수는 볼이 너무 많습니다. 아직 제구가 완전히 잡히지는 않은 것 같네요. 산일 중학교 타자들이 조금만 더 침착하게 대응을 한다면 좋은 결과가 나올 것 같습니다.”
이후로는 완벽한 투수전이었다.
내가 연속 삼진으로 타자를 제압하면, 심준식도 나보다 평균 2km가 더 빠른 강속구로 산일 중학교 학생들을 초토화 시켰다.
그러나 전부 스트라이크 존에 집어넣어 1이닝 평균 10개 정도의 공만 던지는 나와는 다르게 포심과 슬라이더를 섞어 던지면서도 제구력에 문제를 일으키며, 1회 평균 17개로 생각보다 많은 공을 던지고 있었다.
그리고 8회말. 나는 나와 배터리를 이루는 포수인 백산이를 붙들고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백산아. 내가 심준식이 나올 것 같아서 분석 좀 해봤거든? 쟤 나온 영상들은 전부 구해서 봤어. 그런데 풀카운트 상황에서는 60%확률로 바깥쪽 포심이더라.”
“풀카운트까지 갈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쟤 생각보다 제구가 안 좋아. 치는 자세만 취하고 가만히 서있으면 자연스럽게 풀 카운트 될 거다. 형만 믿고 풀카운트에 바깥쪽 포심! 가볍게 툭! 허리회전을 빠르게 하면 충분해.”
심준식은 초반부터 강속구를 뿌려댔지만, 너무 많은 공을 전력투구를 해서인지 힘이 많이 빠져있었다. 처음 156km까지 나오던 패스트볼의 속도가 140후반대가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손가락의 힘이 빠져서인지 공도 회전이 덜 먹기 시작했다. 백산이가 집중해서 공만 맞출 수 있다면 금속 배트의 반발력으로 큰 거 한 방도 노려볼 수 있을 것 같았다.
‘풀카운트 바깥쪽 직구. 풀카운트 바깥쪽 직구.’
드디어 8회 마지막 타자로 들어선 백산이는 내가 알려준 공을 계속해서 생각하며 타격 자세를 취했다.
“스크라잌!”
정중앙에 꽂히는 실투성 패스트볼이었다. 속도는 147km.
‘아... 아쉽다..’
집중하고 있었다면 충분히 안타로 만들 수도 있었던 공이었는데, 많이 아쉬웠다.
2구 바깥쪽으로 많이 벗어난 슬라이더. 1-1.
3구 안쪽으로 들어갔지만, 너무 낮은 슬라이더. 2-1.
4구 존안으로 들어온 149km의 패스트볼. 2-2.
5구 너무 높은 150km의 패스트볼. 3-2.
5구에 승부를 걸기위해 전력투구를 한 심준식이었지만, 손가락의 힘이 풀려 높이 뜨고 말았다.
‘드디어 풀카운트다! 바깥쪽 포심!’
백산이는 방망이를 몇 번 휘둘러보고, 다시 타석에 들어서며 집중을 하기 시작했다. 집중을 하기 시작하니 주변의 모습이 점점 사라지고, 오로지 투수만이 보이기 시작했다.
정통 우완 오버핸드의 투구가 시작되었다.
높은 곳에서 내려꽂히는 공은 정말 완벽하게 바깥쪽 보더 라인에 꽉 차게 들어왔다.
마치 슬로우 비디오를 보듯이 백산이의 눈에는 공이 천천히 날아오고 있었다.
‘허리 회전을 빠르게!’
[깡!!!!]
금속 배트에 맞은 공이 경쾌한 소리를 내며 하늘 높이 솟구쳐 올랐다. 생각보다 너무 잘 맞은 타구에 중견수가 뒤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서서히 뒤로 움직이던 중견수가 어느새 멈춰 섰다. 중견수의 등을 막아선 것이 있어서이다. 바로 외야 펜스였다.
“홈~런!!!! 엄청난 홈런이 나왔습니다!! 고교 최고의 투수가 중학교 3학년 선수에게 완벽하게 얻어맞았습니다!! 이게 야구입니다! 이게 바로 야구입니다!!!”
“우와!!!! 홈런이다!!!”
“백산!! 백산! 백산!”
백산은 금속 배트를 내려놓고, 얼떨떨한 표정으로 베이스를 돌기 시작했다.
1루를 돌아 2루로, 2루를 찍고 3루로, 3루에서 마지막 홈 베이스까지. 그리고 기다리는 건 산일 중학교 선수들의 엄청난 손바닥 세례였다.
[투다다다!!!]
“아!! 아! 누구야! 팔꿈치!! 읔”
미안하다. 팔꿈치는 너무 했나? 완벽한 스윙은 아니었지만, 부족한 힘은 금속 배트가 보완을 해주었다. 아슬아슬하게 넘어간 그 홈런에 심준식이 강판되었고, 덕소고의 마무리가 올라왔다.
가볍게 공 3개로 이닝을 마무리한 덕소고 투수는 마무리에 어울리는 선수였다. 하지만, 이미 승기는 우리에게 있었다.
마지막 9회 초. 나는 마운드에 올라가기 전에 흥분한 백산이에게 말했다. 마음 단단히 먹고 장갑 하나 더 끼라고.
내 말에 마른 침을 꿀꺽 삼킨 백산이는 비장한 얼굴로 장갑을 하나 더 끼었다.
“플레이!”
주심의 플레이 콜과 함께 내 9회 초 투구가 시작되었다.
“후압!”
[퍼엉!!!!]
전력투구! 말 그대로 전력을 다해 투구를 했다.
[161km]
전광판에 찍힌 어마어마한 구속에 순간적으로 인터넷 댓글창이 멈춰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