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 터지는 어느 여름밤.
“뭐. 밑져야 본전인데 한 번 믿어볼까?”
자신의 혼잣말에 누군가가 환호성을 질렀다는 건 절대 모르는 천운이었다.
침대에서 일어난 나는 간단하게 씻고, 아침 운동을 나가기 전에 잠시 핸드폰으로 촬영을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구독자 여러분. 오늘은 제가 여러분들에게 행운을 나눠드리기 위해서 촬영을 하게 되었습니다.”
“오늘이 무슨 날이죠? 바로! 토요일입니다. 토요일 하면 바로! 로또의 날이죠? 제가 나눠드릴 행운은 바로!! 로또 1등 번호입니다.”
“무슨 말인지 궁금하시죠? 제가 방금 꿈에서 염라 대왕님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저와 염라 대왕님은 아주 각별한 사이입니다.”
“그래서!! 염라 대왕님이 저에게 로또 1등 번호를 알려주셨습니다. 저를 믿는다면 다들 한 장씩 사세요! 자 불러드립니다. 적을 준비 하세요!”
“1, 2, 3, 4, 5, 6”
“쉽죠? 속는 셈 치고 다들 하나씩만 사세요~”
영상을 촬영하고 바로 내 채널에 올렸다.
- 이제는 신내림까지 하는 거임?
⌎ ㅋㅋㅋㅋ 이제는 너무 갔다.
⌎ 염라 대왕님은 조금 신선했다. ㅋㅋㅋ
⌎ 염라 대왕님이 점지해주신 이 번호! 아주 귀한거죠!
- 저게 진짜 1등 번호면 정말 웃기겠다.
⌎ 누가 저런 번호를 해? 장난으로도 안하겠네. ㅋㅋㅋ
⌎ 그러니까! 아침부터 영상 올라와서 뭔가 했더니 개그 영상이었네.
- 저는 힐링님을 믿습니다! 바로 사러 가겠습니다!
⌎ 저도 참여합니다!
⌎ 저는 100만원 어치 사겠습니다!
⌎ 윗분! 로또는 1인당 10만원까지만 구매 가능합니다. 남는 돈은 저 주세요~
원래 올라오는 시간대가 아닌데도 많은 분들이 알람설정을 하셨는지 수많은 댓글이 달렸다. 대부분은 웃긴 영상이라며 재미있게 웃고 넘어가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이런 분위기가 바뀐 건 오후 8시 35분경 이루어진 로또 추첨 시간 이후였다.
“자!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이번 주 로또 번호는요!”
“1번”
“2번”
“3번”
“4번! 아! 정말 특이하네요!”
“5번? 어.. 5번입니다!”
“마지막! 6번!! 이번 주 로또 번호는 1번, 2번, 3번, 4번, 5번, 6번입니다. 2등 번호는 24번입니다.”
“오늘 로또 사상 가장 특이한 번호가 나왔네요! 아마 1등은 한 명도 안 나올 것 같은데요! 저는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한 명도 안 나올 것이라고 예상한 로또 1등이 무려 2만 명이 넘게 나왔다. 역대 가장 많은 1등 당첨자. 역대 가장 적은 당첨금.
어떻게 봐도 가장 역대급의 로또 회차였다.
- 성지다!!! 여기는 성지야!!
⌎ 의심했던 저를 반성합니다!
⌎ 힐링님을 믿습니다!! 회계합니다!!
- 힐링교 창설 임박!!
⌎ 와... 진짜 나 신도 할래.
⌎ 저는 전도사!
⌎ 저는 권사!
⌎ 나는 마법사!
⌎ 나는 용사!
- 아.. 살 걸.. 친구한테 웃으면서 말해줬더니 10장 샀다네..
⌎ 친구한테 고기 사달라고 하세요!
⌎ 고기가 문제임? 로또 1등인데?
⌎ 1등 당첨금 세금 떼고 60만원. ㅋㅋㅋㅋ
⌎ 그 놈은 10장사서 600이라고!! 아.. 배 아파..
⌎ 원래 배고픈 건 참는데, 배 아픈 건 못 참는 겁니다.
나는 다가오는 모의고사 시험을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런데 9시 즈음이 되자 내 전화기에 엄청난 톡톡 메시지와 문자 메시지, 전화가 오기 시작했다.
‘응? 무슨 일 있나?’
[덜컥! 쾅!!]
“오빠!!!!”
“뭐! 뭐야! 무슨 일이야?”
“어떻게 된 거야!! 어떻게 안 거야!! 왜 그걸 다 알려줘!!! 아악!!”
“야! 진정하고 천천히 이야기 해봐!”
“아들!!! 어떻게 된 거니?”
엄마까지 내 방에 들어오시면서 소리를 지르셨다.
“다들 진정하고 천천히 말해 봐요.”
내 말에 엄마와 송이는 잠시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조금 진정된 송이가 엄청난 랩을 시작했다.
“아침에 올렸던 영상! 그 영상!
로또 번호 알려준 영상! 그 영상!
혼자만 알면 됐지 왜 알려 줬냐!
아니면 나한테만 알려줬어야지!”
“와~ 라임이 살아있네! 그런데 무슨 영상? 로또? 그게 왜?”
“그거 1등 번호랑 똑같잖아!! 지금 난리 났어! 1등이 2만 명이 넘어!!”
난리 났다.
그날 이후로 내 채널에 올라오는 모든 영상에 로또 번호를 알려주라는 댓글밖에 없었다.
내가 무슨 행동이나 말을 하다가 숫자와 조금만 연관이 되어도 이번 주 로또 번호를 다들 추측하기 시작했다.
“조만간에 모의고사를 볼 예정입니다. 모의고사 성적이 400점 만점에 390점만 넘으면 수능대비 강의 컨텐츠를 할 예정입니다.”
내 강력한 의지를 표명한 컨텐츠 제작 설명은 이상한 부작용을 낳았다.
- 오! 이번 주 번호는 4 또는 40! 3또는 9! 또는 39!
⌎ 이야기 하실 때 손가락 1개를 펼쳐서 설명하셨으니 1번도 포함!
⌎ 눈을 32번 깜빡이셨음! 32번 체크!
- 저 옷의 색깔을 캡쳐해서 RGB로 변환을 하니 그린 153이였음! 15와 3도 체크!
⌎ 16진수로 변환하면 #000099입니다! 9도 포함!
“오빠. 온통 로또 이야기뿐이야.”
“에휴..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냐. 시간이 흐르면 괜찮아지겠지. 시간이 약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번 로또 사건으로 조회수는 평소의 2배 가까이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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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 혈압이야! 야! 번개라도 하나 쏴!!! 저놈 머리에 한 방 날리라고!!”
“대왕 진정하시지요.”
“너지?”
“네? 뭐.. 뭐가 말이십니까?”
“네놈이 로또 번호 알려주자고 했지? 내가 똑똑히 기억해! 너 무간지옥 일주일 형!”
“대.. 대왕!! 억울하옵니다!!”
“끌고 가!”
참으로 평화로운 저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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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로또 사건이 어느 정도 잠잠해진 어느 날 저녁이었다.
“오늘은 해가 지니까 그래도 선선하네. 요즘은 너무 더웠어.”
오늘은 항상 가던 산책로가 아니라 공원 쪽으로 와봤다. 가끔은 이렇게 낯선 길로 산책을 나오면 여행을 온 기분이어서 새로웠다.
“아.. 정말 어디 갔는지 모르겠네.. 왜 반지를 손가락에서 빼서.. 하아...”
나이는 대략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으로 보이시는데, 잘 보이지도 않는 어두운 밤에 바닥을 열심히 바라보며 뭔가를 찾고 있으셨다.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서 뭘 찾으시려는지 여쭤보려는 찰나였다.
‘띠링’
[퀘스트 발생 - 와이프 심부름을 나왔다가 잃어버린 반지를 찾아주시오. 제한시간 30분.]
‘아.. 반지를 찾으시는구나.’
나는 아저씨를 향해 걸어갔다.
“저기. 혹시 뭘 찾으세요?”
“아.. 예. 제가 반지를 잃어버려서요. 결혼반지인데.. 잃어버렸네요. 하아.. 아무리 찾아도 못 찾겠어요. 이거 와이프 알면 큰일인데.. 이게 세 번째 반지라 이번에도 잃어버리면 쫓겨나는 건 아닌지 모르겠네요.”
아무리 그래도 세 번이나 잃어버리셨다니 신기하다.
손가락에 끼워져 있는 반지가 어떻게 손가락에서 빠지는지 정말 신기했다.
“저도 같이 찾아볼게요. 어느 쪽에서 잃어버리셨나요?”
내 말에 아저씨는 미안해 하시면서도 범위를 알려주셨다.
“제가 와이프 먹고 싶다는 떡볶이를 사서 오다가 이쪽 벤치 근처에서 아이스크림을 하나 먹었거든요. 그런데 제가 손가락에서 반지를 만지는 습관이 있다 보니 어느 순간 저도 모르게 빼 버렸나 봐요. 아마 이 벤치 근처에 있을 것 같은데.. 아무리 찾아도 안보이네요.”
“알겠습니다. 그럼 제가 이쪽 바닥을 찾아볼 테니, 아저씨는 저쪽 바닥부터 찾아보세요.”
우리는 열심히 바닥을 찾아보고 있었다.
다 큰 어른 두 명이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뭔가를 찾고 있으니 지나가는 사람들이 한 명씩 모이기 시작했다.
‘아.. 사람들 더 모이기 전에 얼른 찾자. 옆집 형은 금속 탐지기로 탐지하는 게 취미지!’
금속으로 된 것은 전부 반짝거리며 나를 유혹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금속이 너무나 많았다.
벤치 쪽만 하더라도 벤치 자체의 틀이 금속 이다보니 벤치 자체가 빛나고 있었다.
‘아.. 이거 한 참 찾아야겠는데..’
그때였다.
“뭐 찾아요?”
10살 정도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가 아빠와 산책을 나왔는지 지나가다가 호기심에 우리에게 다가와 물어보았다.
“어.. 아저씨가 반지를 잃어버려서..”
아저씨는 아이에게 간단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그러자 아이는 자신의 아빠에게 소리쳤다.
“아빠! 우리도 도와주자! 반지 잃어버렸대.”
“어? 그럴까? 저는 이쪽을 찾아보겠습니다.”
핸드폰을 꺼내시더니 후레쉬를 켜고 바닥을 훑어보시기 시작했다.
“어? 여기서 뭐해?”
“어! 잘 왔다! 너도 빨리 찾아!”
지나가던 남자아이가 여자아이에게 아는 척을 하였고, 여자아이는 남자아이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반지 찾기에 동참을 시켰다.
“알겠어! 엄마! 얼른 찾자!”
아이의 엄마까지도 참전하셨다.
“호호호. 여기서 뭐해? 뭐 찾아?”
또 다른 아주머니가 참전을 하셨다.
“엄마! 나 배고파. 그런데 뭐 찾는 거야?”
학생이 엄마를 따라 또 참전을 시작하였다.
“뭔데? 무슨 이벤트인가? 우리도 찾아보자!!”
“야! 저기 뭐 하나봐! 가보자!!!”
어느새 공원은 핸드폰 후레쉬로 뒤덮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밝게 빛나는 벤치의 의자 틈새 사이에서 조금은 옅게 빛나고 있는 반지를 발견하였다.
다들 바닥만 찾고 있었는데, 결국은 벤치의 틈새 사이에 있었다.
“찾았습니다! 여기 찾았어요!”
내가 소리치는 모습에 모든 사람들이 내 쪽으로 핸드폰 후레쉬를 비추었고, 나는 마치 연극의 주인공처럼 화려한 조명으로 둘러쌓였다.
“우와!!! 저 분이 찾았어!!!”
“대박! 축하합니다!!”
모든 분들이 박수를 쳐주셨다.
나는 기분 좋게 웃으며 잠시 주변 풍경을 바라보았다.
아스라이 피어난 가로등이 부드럽게 공원 벤치를 밝혀주고 있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니 수줍은 달이 구름 사이로 빼꼼 얼굴을 내밀었다.
사람들의 핸드폰은 나를 향해 축하의 조명을 비춰주고 있었다.
“흠..흠.. 고맙습니다. 제가 큰 은혜를 입었군요. 여기 제 명함입니다. 시간 되실 때 찾아오시면 크게 사례를 하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나에게 명함을 주시고 황급히 자리를 피하셨다.
아무래도 자신 때문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이게 된 게 너무나 부끄러우실 것 같았다. 나는 도와준 사람들에게 잠시만 기다려달라고 말을 하고, 황급히 뛰어가 아이스크림을 사와 나눠드렸다.
“호호호. 너무 재미있었어요. 어렸을 때 보물찾기하던 기분도 들고.”
“아저씨. 아이스크림 고맙습니다.”
“다음에는 제가 찾을 거예요!”
다들 한여름 밤의 이벤트에 만족을 하시며 각자의 갈 길로 가시기 시작했다. 나는 아저씨가 주고 가신 명함을 쳐다보았다.
[뭉게구름 미술학원 원장 박고흐]
왠지 해바라기를 잘 그리실 것 같은 이름이다.
[퀘스트 완료, 보상으로 50만원과 최하급 재능 ‘미술은 선긋기부터’를 습득하였습니다.]
‘미술이라.. 재미있을 것 같은데?’
문득 라이언과의 대화가 떠올랐다.
“형! 형은 왜 아끼면서 살아요?”
“응? 뭐가? 사람이 당연히 아끼면서 살아야지”
“그렇긴 한데, 아껴도 너무 아끼세요. 다른 사람들한테는 잘 쓰시는데 형한테는 하나도 안 쓰시는 것 같아요.”
“아니야. 나도 잘 써! 책도 사고 그래~”
“음.. 형 정도 벌면 차도 사고, 건물도 사고 그러는 게 정상인데 전혀 안 그래서요. 취미도 없으신 것 같고.”
“그런가?”
생각해보니 그랬다.
생각해보면 평소에 비싼 차를 사고, 좋은 옷을 입고, 멋있는 시계를 사는 게 죄를 짓는 것 같은 약간의 찜찜한 생각이 있었다.
솔직히 내가 버는 수입과 비교하면 저런 것들은 아주 작은 소비에 불과하다.
‘그런데 나는 왜 죄책감이 드는 걸까?’
명확하게 결론을 내리지 못하였다.
하지만 이제는 나를 위해서도 돈을 쓰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너무 과하게만 하지 않는다면 괜찮을 것 같다. 그러던 차에 받은 미술학원 명함은 나의 감성을 한껏 자극하였다.
방금 전에 보았던 아름다운 풍경을 캔버스에 담아보고 싶어졌다.
‘내 감성을 담은 그림을 그리는 건 어떤 기분일까? 내가 원하는 감성이 그림에 제대로 담길 수 있을까?’
조금은 두려우면서도 설레는, 기분 좋은 감정이었다. 생각보다 미술학원 원장님에게 빨리 연락을 드릴 것 같다.
그림을 그려보고 싶다는 생각 덕분인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평상시와는 다른 감성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항상 걷던 그 길인데도 가로등의 불빛이 너무나 아름다웠고, 길가에 자라나는 나무들의 나뭇잎 하나하나가 예뻤다.
심지어는 길바닥의 보도블록마저도 뭔가 감성적이었다.
낮에 볼 때와는 또 다른 매력에 나는 산책에 푹 빠지게 되었다.
‘아.. 항상 걷던 길인데도 내 마음이 변하니 모든 게 전부 다 변하는 구나.’
힘들었던 예전에는 야간 아르바이트가 끝나고 집으로 가는 길은 아름답거나 새롭지 않았다. 그저 빨리 집으로 돌아가 씻고 자고 싶을 뿐이었다.
주변의 풍경을 그대로 느낄 여유가 없었다.
이제와 보니 그런 시간들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이런 아름다움을 모르고 살았다는 게 억울하기까지 하였다.
‘이제부터라도 많이 보고, 많이 느끼자. 남은 시간들은 억울하지 않게.’
너무나 감성 터지는 어느 여름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