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
오늘은 평소보다 더욱 일찍 일어났다.
눈을 뜨자마자 어제 물에 불려놓은 미역을 확인했다. 꼬들꼬들하니 정말 잘 불려졌다.
먼저 밥을 하기 위해 쌀을 씻기 시작했다.
중간에 세 번째 쌀뜨물을 그릇에 잘 받아놓고, 밥을 전기밥솥에 넣어 작동시킨 다음, 본격적으로 메인 요리를 시작했다.
미리 사다놓은 소고기를 냄비에 넣고, 참기름을 살짝 뿌려준 뒤, 볶기 시작했다. 고기가 어느 정도 볶아진 걸 확인하고, 미역을 가위를 이용해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 넣었다.
참기름을 살짝 더 넣은 후에 미역의 색이 살짝 변할 정도까지 볶아줬다. 그런 다음 미리 준비한 쌀뜨물을 넣고, 다진 마늘을 넣었다. 마지막으로 국간장과 소금으로 간을 하고, 푹 끓여주었다.
“음~ 잘 됐네.”
오늘은 송이의 생일이다. 그리고 나의 생일이기도 하다.
특이하게 나와 송이는 생일이 같다.
처음 송이가 태어났을 때는 송이가 미웠다. 왜냐하면 내 생일을 건너뛰었기 때문이다. 나는 내 생일에 하고 싶은 일이 잔뜩 있었는데, 부모님은 선물만 전날 미리 주시고 다들 병원으로 가버리셨다.
사실 생일 선물로 3달 전에 놀이동산에 다녀왔지만, 나는 인정할 수가 없었다. 그때는 그때고 생일날은 생일날이었으니까.
그리고 다음 년도 생일 때는 송이의 돌잔치 때문에 내 생일은 또다시 뒷전이 되었다.
송이와 생일이 같은 게 너무나 싫었다.
그런데 우리 가족에게 비극이 일어난 날부터는 송이와 같은 날이 생일이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생활비도 빠듯한데, 서로의 생일이 같으니 생일 선물을 서로 퉁 칠 수 있었다.
대신 꼭 해주는 건 하나 있었다. 그건 바로 미역국 끓여주기였다.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송이의 생일 미역국을 차려주었다. 아무리 바쁘고 힘든 상황이었을 때라도 미역국만은 꼭 끓여주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이것뿐이어서 너무나 미안했다.
예쁘게 포장한 선물 상자를 식탁위에 올려놓고, 상쾌한 마음으로 아침 운동을 나갔다.
“오~ 이 차 정말 예쁘다. 나도 이런 차 살까?”
아파트 단지에 세워진 새 차가 보였다.
세련된 디자인에 하얀색이 너무나 잘 어울리는 SUV 차량이었다. 우리 단지에서는 처음 보는 차량인 걸 보니, 누군가가 새로 구매하셨나보다.
평소에는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라이언과의 대화 이후부터 나에게 조금 더 관대해지기로 마음을 먹어서인지 물욕이 생기기 시작했다.
‘아니야. 아직은 마음의 준비가 덜 되었어. 나중에 송이 졸업 할 때쯤에 송이꺼랑 같이 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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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내 선물! 어디있어?”
“식탁위에 놔뒀는데 못 봤어?”
“어디? 오~ 선물 상자 예쁜데~ 뭔지 한 번 볼까나?”
엄마는 우리들을 바라보시며 기분 좋게 웃으셨다.
남매간에 사이가 좋아 보이니 다행이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다.
“송이야. 밥부터 먹고 보자. 우리 천운이가 미역국 끓여놨네~ 다들 손 씻고 와.”
우리가 손을 씻고 식탁에 모이자 엄마가 아침밥을 차려놓으셨다. 내가 끓여놓은 미역국과 엄마가 미리 해놓으신 밑반찬들을 보니 식욕이 자극되었다.
“오늘은 두 그릇 간다! 나 말리지마!”
“언제는 한 그릇 먹은 줄 알겠네. 너 학교 조심히 가라. 내리막길에 굴러간다.”
나를 죽일 듯이 째려보는 송이였다.
그렇게 품위 있는 아침 식사 시간이 지나갔다.
“커피 드실 분? 엄마는 냉? 오빠는 뜨?”
“응. 엄마는 냉으로~ 설탕 많이~”
송이랑 노시더니 엄마의 어휘력이 많이 후퇴하셨다. 좋은 한글을 놔두고 송이와 엄마는 암호를 주고받으신다.
“나는 아주 뜨거운 냉커피요~”
“깔! 깔! 깔! 깔! 천부장님. 퇴사하실 시간입니다. 나가!”
그렇게 우리는 냉 커피 세 잔을 내려놓고 선물 공개의 시간을 가졌다.
“자. 이건 엄마가 너희들 주는 선물이야. 송이는 향수. 운이는 넥타이.”
“오~ 이거 내가 사고 싶었던 건데! 저번에 내가 보던 거 어떻게 알았어?”
“엄마가 우리 송이 다 지켜보고 있었지~”
말을 하시면서 손으로 망원경을 만드셨다.
우리 엄마 많이 어려 지셨네. 역시 송이의 바보병은 전염병인가 보다.
“그런데, 엄마 저는 양복이 없어요. 원래 있던 건 이제 안 맞을 거예요.”
“그럼 추리닝에 넥타이 매! 엄마 선물인데 그 정도는 해줘야지!”
“넥타이로 너의 목을 조르기 전에 조용히 해라!”
“옷장에 새 양복 넣어놨어. 이제는 양복 입을 일도 많을 건대 하나는 필요할거야. 와이셔츠랑 허리띠도 같이 놔뒀으니까 나중에 입어봐.”
“고마워요! 엄마!”
“오~ 엄마 센스!”
송이는 향수를 몸에 뿌려보면서 신나했다. 언제 어른이 될 건지 걱정이다.
“이제 오빠 선물을 뜯어보실까나! 두구두구두구!”
송이가 선물 상자를 개봉하고, 내용물을 확인하더니 비명을 질렀다.
“꺄악!!! 이거 0이 몇 개야?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엄청 많아!!”
내가 준 선물은 통장이었다.
지금까지 내가 정산 받은 너튜브 수익금의 절반을 넣어놓은 통장이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넣어줄 통장이기도 하다.
“너 졸업하고, 스스로 인생을 설계할 때 사용해. 돈 생겼다고 하는 일 소홀히 하거나, 공부 안할 때는 다시 압수야!”
“히잉... 나는 오빠가 돈 다 먹는 줄 알고 살짝 미웠는데.. 왜 나 나쁜 애로 만들어!!”
“생각보다 수익금이 너무 커서 고민 좀 했었어. 나도 많이 흔들리는 금액인데, 너한테는 더 할 것 같았거든. 미안.”
“이거면 지금 강남에 빌딩하나 살 수 있겠는데? 엄마! 나랑 빌딩 사러 가자!!”
“송이야! 오빠 말 못 들었어? 나중에 인생 설계할 때 사용하라고 했잖아!”
“빌딩 하나면 인생 계획 끝이지 뭐! 아얏!”
송이의 헛소리에 엄마의 손바닥 스매싱이 작렬하였다.
“자! 케잌은 항상 그렇듯이 넘어가고! 선물과 상관없이 이건 용돈.”
두툼한 봉투를 받아든 송이의 눈이 초승달처럼 변하였다.
“나도 이번에는 오빠 선물 있어!”
항상 편지로만 때우던 우리 송이가 용돈을 두둑이 받고 살아서인지 사람 구실을 하기 시작했다.
“오~ 기대해도 되지?”
“자! 이거!”
엄청나게 작은 선물 상자를 나에게 내밀었다. 별 기대 없이 선물 상자를 개봉해보니, 스마트키가 있었다.
“뭐야? 설마 열쇠만 주고, 다음에 벌면 사줄게! 이런 거야? 나 촉 되게 좋아! 딱 걸렸어. 아무튼 고맙다. 송이 너가 처음으로 주는 선물이네! 잘 간직할게.”
“그거 아파트 단지에 주차 해놓았어. 같이 보러 나가자.”
송이의 말에 얼떨떨한 기분을 느끼며 엄마와 송이에게 이끌려 집을 나섰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현관문을 나서니 아침에 보았던 그 차 앞으로 송이가 걸어갔다.
“짜잔! 이거야! 오빠 안전까지 고려해서 구매를 했지롱! 이쁘지? 완전 오빠 취향이지?”
예전에도 그랬지만, 송이와 나는 취향이 비슷하다.
“와...이게.. 무슨.. 너무 예쁘네... 아니! 그런데 너 돈은 어디서 난거야?”
“헤헤. 오빠 처음에 너튜브 수익 절반 줬었잖아. 그거 모아놨다가 샀지.”
“야! 그걸 그렇게 쓰면 어떡하냐? 아꼈다가 나중에 필요한 곳에 써야지!”
“이게 그 필요한 곳이야! 왜 이래? 나 이제 엄청난 거부라고! 내 통장에 돈이 얼마나 많은데!! 우히히히!”
“아들. 고마우면 고맙다고 해. 우리 시승식 해야지?”
“오빠. 고사 지내야지!”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고사야? 나 염라 대왕님과 친해서 괜찮아!”
“막걸리 한잔해야 하는데!”
“송이야!”
엄마의 호통에 목을 어깨 속으로 집어넣고 도망가는 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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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차 진짜 조용한데? 정말 좋다! 나 학교 매일 모시고 다니도록!”
“오늘만 특별히 태워주는 거야! 다음부터는 기대하지마라.”
티격태격하며 우리는 한국대 캠퍼스 안으로 차를 타고 들어갔다.
“오빠. 저쪽! 저기 건물 앞에 세워주면 돼!”
“오케이! 간다! 폭풍 후진 주차! 한 손은 운전대에! 다른 한 손은 조수석 목덜미 쪽에! 뒤를 보면서 똭!!”
“악!! 조수석 목덜미를 잡아야지! 내 머리를 잡으면 어떡해!! 놔라!”
아주 깔끔하게 주차를 성공시키고, 차에서 내렸다.
“우씨! 머리 다 엉망이 됐잖아!”
“아까보다 더 예뻐졌네. 완벽해!”
“진짜? 괜찮아? 뭐. 내가 원래 한 미모 하기는 하지!”
“정말 완벽한 쑥대머리야.”
“이걸 그냥!!”
마지막까지 투닥 거리고 있을 때, 걸어오던 여성분들이 우리를 보고 걸어왔다.
“송이야!”
“어? 안녕! 수업가자. 오빠는 이제 집에 가.”
갑자기 시크한 척을 하며 나에게 인사를 하고 친구들에게 걸어갔다.
“오~ 얼음공주! 남자친구?”
“무슨 소리야? 나 눈 엄청 높아. 우리 친오빠야.”
“친오빠? 엄청 잘 생기셨다. 나 소개 좀 시켜주면 안 돼?”
“너의 인생을 망칠 수는 없어. 포기해.”
“아! 뭔 소리야! 전화번호만 줘봐. 내가 찍어서 안 넘어간 사람이 없어!”
그때 옆에 있던 조용한 친구 분이 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을 했다.
“어! 어! 힐링! 힐링님이다!! 맞지? 와!!!!”
제자리에서 폴짝대며 뛰기 시작했다. 친구 분 취향이 참 독특하시다. 나를 좋아하시다니.
나는 송이와 송이 친구들에게 다가가서 인사를 했다.
“송이 친구 분들이신가요? 저는 송이 오빠 천운이라고 합니다. 우리 송이 잘 좀 부탁드립니다.”
“네..네. 혹시 진짜 힐링님이세요?”
“아.. 네. 맞습니다. 하하하”
“얼른 가라. 꺼져.”
이를 악물고, 나에게 조용히 말을 하는 송이를 무시하며 친구 분들에게 이야기를 계속하였고, 사람들이 조금씩 모이기 시작하자 작별 인사를 하였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우리 송이 잘 부탁드립니다.”
“네. 오빠. 조심히 들어가세요.”
“연락처 좀..”
마지막 말은 못들은 척하고 차에 타서 학교를 빠져나왔다.
‘학교생활 잘 하고 있는 것 같네. 기특하다. 우리 송이’
송이가 사준 차를 몰고 소속사 건물로 향하였다. 우리 송이가 사줘서인지 더 정이가고 마음에 들었다.
‘이름을 지어야겠다. 뭐가 좋을까?’
한참 이름을 고민하며 운전을 하자 어느새 소속사 건물에 도착을 하였다. 지하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엘리베이터를 타니 전화가 왔다.
“어! 라이언 일병! 바쁠 텐데 무슨 일이야? 미국 투어 중 아니야?”
“하하하 형 생일이어서 연락 드렸죠! 어디세요?”
“고맙다! 나는 지금 소속사 건물인데? 엘리베이터야. 오랜만에 혜미랑 아이들 먹을 것 좀 사주려고.”
“넵! 알겠습니다. 이따 뵙겠습니다.”
전화가 끊겼다.
“뭐야. 무슨 말이지? 이따 뵙겠다니?”
마침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곧바로 내렸다.
[펑! 펑! 펑!!]
“생일 축하드려요~”
“happy birthday!!”
“오빠! 축하해요!”
“힐링님의 생일을 축하합니다!!
회사 직원 분들과 아이돌 연습생들, 신우까지 모두 모여 있었다. 그리고 전미 투어중인 팍스 보이즈 아이들까지.
“어? 다들.. 어떻게...”
내 생일이라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주다니 감동이었다. 심지어는 지구 반대편에서도 날아와 주다니 너무나 고마웠다.
“어? 형 우는 거 아니죠? 하하하 형 생일인데 당연히 와야죠! 저녁에 바로 비행기 타고 가야돼요! 얼른 파티 시작해요!”
“오빠! 오늘은 우리들이 돈 모아서 먹을 거 샀어요! 어서 와요.”
“우리 예솔이도 오고 싶어 했는데, 아쉽네요. 허허허. 아니 어제는 우리 예솔이가.. 아얏!”
“여보! 오늘은 적당히 하시죠!”
너무나 즐거웠다.
너무나 즐겁고 행복하다보니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다들.. 정말 감사합니다.. 오늘을 평생 잊을 수 없을 거예요. 정말.. 제가 뭐라고..”
“형 아니었으면 우리가 어떻게 성공할 수 있었겠어요! 형은 우리의 정신적 지주입니다!”
“오빠! 오빠가 우리들 상담해주고, 간식 사주는 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데요! 울지 마세요. 히잉...”
“아.. 울면 근 손실 오는데.. 그래! 오늘 울고 미국가면 하체를 평소보다 두 배로 조지는 거야!”
다들 연습실에 모여 웃고 떠들었다.
서로의 얼굴에 케잌을 바르고, 손가락을 물어뜯고 소리를 질러댔다. 이렇게 성대한 생일 파티를 누가 해보았을까? 세계 최고 부자라는 중동의 왕족들도 부럽지 않았다.
내가 살아온 삶이 틀리지 않았다는 증거들이 눈앞에 있었다. 나름 잘 살아왔나보다.
“자!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지금 형 너튜브와 우리 회사 홈페이지, 공식 트워트, 톡톡, 우리스타그램 등등 거의 모든 SNS에서 형 생일 축하 게시물들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뭔가 엄청난 소식을 들은 것 같다.
서둘러 핸드폰을 켜서 확인을 해보니, 온라인 세상은 온통 #힐링 생일, #happy healing day, #로또의 신 탄생일 등 각종 축하 메시지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와... 우리는 형의 인기한테는 비교도 안 되네요. 나름 최단시간 빌보드 1위, 이미 따놓은 신인상, 역사상 가장 강력한 아이돌이라고 불리는데, 형의 인기 앞에서는 정말 초라해지는데요? 넘사벽이네.”
“오빠! 오늘 완전 세계적인 휴일인 것 같아요! 크리스마스가 부럽지 않아!”
그 말 대로였다.
사람들은 각종 게시물을 올리며, 웃고 떠들고, 기부 릴레이를 하기도 하면서 각자의 방식대로 나의 생일을 즐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의 생일 이벤트에 더욱더 환호하는 집단이 있었다.
“저놈 저거 그냥 저승으로 데려오면 안 되나?”
“대왕. 이러다가 정말 승천 하겠습니다. 그러면 우리 상관으로 승차 하시는 건데, 잘못 보이면 큰일 납니다.”
“하아... 생일 축하로 번개 좀 날려주고 싶네. 아!!! 번개 마렵다!!!!”
“그냥 정전기 정도로 만족하시지요.”
[파직!]
“아야! 무슨 이런 날씨에 정전기야? 깜짝 놀랐네.”
“형! 얼른 오세요! 형 좋아하시는 개 사료로 쫙 셋팅 해 놨습니다. 종류별로 드세요!”
“오! 역시 라이언 일병! 전우애는 살아있네!”
정말 즐거운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