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0화 (40/170)

뭉게구름 미술학원

오늘은 한 달에 한 번 있는 야구 시합 날이다. 이번 상대는 대학리그의 강자인 동곡 대학교 야구부다.

나는 산일 중학교에서 고양 워너스 독립야구단으로 옮기게 되었다. 창단 한지는 몇 년 되지 않았지만, 창단 첫해부터 경기도 챌린지 리그에 참가해서 우승을 한 저력이 있는 팀이었다.

다들 프로선수를 꿈꾸다보니 이번 프로그램에 아주 적극적으로 임하였고, 선수들 또한 허슬 플레이를 마다하지 않았다.

고양 워너스의 구장은 파주에 있었고, 동곡 대학교는 홈구장이 고양시 식사동에 있다 보니 버스를 타고 이동을 하였다.

이번에 고척돔 경기장을 빌리지 않은 이유는 실제 프로가 아닌 야구단들의 현실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이렇게 열악한 환경에서도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후원을 받기 위함이다.

“오늘은 타자로 출전하시니 다들 놀라시겠네요.”

모두들 내가 투수로 출전할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남호인 PD님과 상의해본 결과, 타자로도 도전을 해보기로 하였다.

왜냐하면 야구에서 타자는 9명이지만, 투수는 기껏해야 한 번에 한 명씩만 올라올 수 있다. 한 경기에 많이 나와야 3명에서 5명이다.

프로를 꿈꾸는 선수들은 프로구단에 자신들의 실력을 어필해야한다. 투수들 입장에서는 내가 1회부터 9회까지 전부 던진다면 그 기회를 뺏는 게 되는 것이다.

선수들의 실력 어필도 필요하고, 프로그램의 인기를 유지해야하는 현실적인 목표를 위해서 생각해낸 방법이 마무리 투수로 보직을 변경하고, 지명타자로 나서는 것이다.

남호인 PD님은 나를 운동 천재로 착각하신다.

무슨 보직이던지 조금만 배우면 완벽하게 해낼 것이라고 생각하시고, 기획을 하신다. 그리고 어찌나 추진력이 좋으신지 ‘어?’ 하는 사이에 준비를 끝마치신다.

갑작스럽게 야구 배트를 들고 연습을 시작할 때는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었다. 그런데 막상 타격 연습을 해보니 엄청나게 재미있었다.

배트를 휘둘렀을 때의 느낌도 좋았고, 휘두른 배트에 공이 맞아 나가면 스트레스가 확 풀려 나갔다. 왜 사람들이 야구를 사랑하는지 알게 되는 시간이었다.

특별히 타자에 관련한 직접적인 재능들은 없었다.

그렇지만, 운동과 관련한 각종 재능들이 보조를 해주었고, [학습과 진화]의 힘으로 금세 타격에 적응을 하게 되었다.

한참 타격 연습을 하던 어느 날, 카메라가 고장이 나서 발만 동동거리던 카메라 촬영 동호회 1일차인 새내기분을 도와주고 얻은 재능이 문제가 되었다.

[1초 초고속 카메라 - 1초 동안 초고속 카메라로 촬영한 것 같은 동체시력을 준다.]

[학습과 진화]의 힘으로 깔끔한 타격폼을 엄청나게 많은 경험을 쌓은 나에게 [1초 초고속 카메라]가 선물해준 동체 시력은 반칙과 같은 힘을 주었다.

[딱!]

1번 타자로 나선 나는 동곡 대학교 선발 투수의 이번 경기 첫 번째 투구을 그대로 받아쳤다.

오른손 타자의 가장 먼 대각선 하단으로 절묘하게 걸친 142km짜리 포심을 그대로 걷어 올렸다. 엄청나게 빠른 내 스윙속도와 멈춘 듯이 보이는 동체시력은 말 그대로 치트키 수준이었다.

동곡 대학교의 외야 수비수들은 내가 타격을 하자마자 수비를 포기하고, 날아가는 공을 구경만 하였다.

경기장 밖으로 넘어가버린 초대형 장외 홈런이었다.

나는 조심히 배트를 내려놓고, 묵묵하게 베이스를 돌았다. 베이스를 다 돌고 덕아웃으로 들어오는 나에게 고양 워너스 선수들은 크게 환호하지 않고, 당연하다는 듯이 손바닥만 마주쳐 주었다.

지난주부터 본격적으로 타격 연습을 시작한 나에게 이미 익숙해진 고양 워너스 선수들이었기에 호들갑은 크지 않았다.

나에게 장외 홈런을 맞은 동곡 대학교 선발 투수는 볼넷 2개와 장타 2방을 허용하며, 1회에 이미 5점을 내주게 되었다.

황급히 올라오게 된 구원 투수는 몸이 아직 덜 풀렸고, 집중력이 최고조에 달한 고양 워너스 선수들은 엄청난 불방망이를 휘둘렀다.

그렇게 3회까지 8대 2로 압승을 거두는 중에 동곡 대학교에서 아끼던 에이스가 어쩔 수 없이 올라오게 되었다.

특이한 투구폼인 언더핸드 투수였다.

“와.. 포심이 휘어 들어오는데?”

“방금 슬라이더가 방망이를 피해 도망갔어..”

뜨겁게 달아올랐던 고양 워너스의 불방망이는 언더핸드 투수의 완벽한 투구에 꽁꽁 틀어 막혔다.

그리고 나의 세 번째 타석.

앞선 두 타석에서 모두 홈런을 날린 나는 내심 포볼로 거르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그건 동곡 대학교 에이스 투수의 자존심을 알지 못한 생각이었다.

타석에 선 나를 미소 띤 얼굴로 바라본 투수는 엄청난 커브를 던졌다. 언더핸드 특유의 아래에서 위로 솟구치는 업슛이었다.

[펑!]

“스트라잌!”

가만히 지나가는 공을 바라보는 나를 보며 투수는 마운드위에서 씩 웃고 있었다. 마치 이런 공을 칠 수 있겠냐는 자신감 넘치는 모습에 나도 같이 웃어주었다.

투수가 다시 한 번 와인드업을 시작하였다.

휘두르는 손이 땅에 닿는 건 아닌지 생각이 들 정도로 낮은 각도로 휘둘러졌다.

공이 정말 뱀처럼 휘어졌다.

나의 몸 쪽으로 오던 공이 바깥쪽으로 휘어져 나갔다. 몸 쪽 포심을 예상한 나를 비웃듯이 기가 막힌 슬라이더가 들어왔다. 아니 들어오고 있었다.

‘1초 초고속 카메라’

나의 방망이를 피해 달아나던 공이 그대로 멈춰보였다. 그리고 휘둘러지던 스윙의 궤적을 실시간으로 수정하였다.

[딱!]

오른쪽 담장을 멀찍이 넘어가는 커다란 홈런이었다.

넘어가는 홈런을 바라보는 투수를 잠시 바라보고, 서둘러 베이스를 돌았다. 베이스 런닝을 하고 있는 나를 동곡대 투수는 웃으면서 보고 있었다.

나에게 커다란 홈런을 맞고도 그는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6회 투 아웃까지 삼진 다섯 개를 잡으며 완벽하게 고양 워너스 타자들을 틀어막았다. 그리고 다시 만난 나와 투수의 두 번째 대결.

외곽 보더라인에 걸치는 공들이 연속으로 들어왔다. 정면승부를 피하지만, 쉽게는 보내지 않겠다는 투수의 전략이 보였다.

나는 보더라인에 걸치는 공들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어느새 3볼 2스트라이크.

방망이를 한 번도 휘두르지 않았는데, 풀 카운트가 되었다.

투수는 연신 포수의 사인에 고개를 흔들다 드디어 마음에 든 사인이 나왔는지 고개를 끄덕이고는 와인드업을 시작하였다.

‘저렇게 고개를 많이 흔들면 당연히 포심이겠지.’

역시나 포심이 몸 쪽 코스로 기가 막히게 들어왔다. 휘두르지 않으면 스트라이크가 될 수도, 볼이 될 수 도 있는 기가 막힌 코스였다.

[딱!]

몸 쪽 코스를 그대로 받쳐놓고 당겨 쳤다.

이번에도 멀찍이 넘어간 장외홈런 타구였다.

나를 뺀 모든 타자들은 3회부터 동곡대 에이스에게 안타를 빼앗지 못하였다. 나의 타석을 뺀다면 5와 3분의 1이닝 퍼펙트 피칭이었다.

그리고 동곡대 에이스는 다시 나를 뺀 퍼펙트 피칭을 이어나갔다. 정말 멘탈 하나는 타고난 선수인 것 같다.

그리고 9회 초. 또 다시 돌아온 내 타석에서는 숨겨놓았던 스플리터를 꺼내 들었지만, 처음 본 구질조차도 나의 [1초 초고속 카메라]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5타수 5안타 5홈런.

만화에서나 보던 성적을 타자로 처음 출전한 내가 기록하였다.

그리고 9회 말. 마운드에는 드디어 내가 올라왔다.

[펑!!!] 158km

[펑!!!] 157km

[펑!!!] 159km

공 세 개로 첫 번째 타자를 잡아내었다.

이어진 두 번째 타자도 가볍게 150키로 후반 대 공으로 삼진을 잡아냈다. 너무나 빠른 구속에 동곡대 타자들의 스윙 스피드가 따라오지를 못하였다.

마지막 타자가 될 지도 모르는 동곡대 3번 타자가 타석에 섰다.

이번 경기 3타수 3안타 1홈런. 선구안과 파워가 강력한 완성형 거포다. 올해 프로구단 입단이 확정된 4학년 선수로서 프로에서도 바로 주전으로 활약이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를 받는 선수였다.

타석에 들어서며 헬멧을 오른손으로 두 번 탁탁 치더니 방망이를 세 번 휘돌렸다. 그리고 타격 자세를 취하며 나를 불타는 눈으로 바라봤다.

‘여기서 쳐내면 영웅이 된다는 거네. 만만치 않은 타자이니 비장의 무기를 꺼내야겠다.’

사실 한 가운데 포심을 던져도 쳐낼 수 있는 타자는 KBO 리그에서도 손에 꼽을 테지만, 은근히 겁이 많은 천운은 여기서 비장의 무기를 꺼내들었다.

왼손 중지손가락과 새끼손가락을 오른쪽 어깨 쪽에 갔다댔다.

포수는 알겠다는 듯이 미트를 주먹으로 팡! 팡! 두 번 치고 자세를 잡았다.

투구판을 밟고 투구 준비를 시작했다. 가볍게 심호흡을 하며 오른발을 들어올렸다.

그리고 시작되는 체중 이동.

[뿌드드득!]

엄청나게 강력한 하체 근육이 터질 듯이 부풀어 오르며 강력한 운동 에너지를 만들어 내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운동 에너지가 둔부와 허리, 어깨를 지나왔다.

전완근의 강력한 힘을 받아 공을 터질 듯이 잡았던 내 중지손가락이 마지막까지 공을 꽉 눌러주며 공을 잡아채었다.

오른손 타자의 몸에 맞을 듯이 날아가는 이공에 타자는 급하게 몸을 뒤틀며 공에 맞을 충격에 대비를 하였다. 하지만, 몸에 맞을 듯이 날아오던 공이 급격하게 왼쪽으로 휘어져 나갔다.

타자의 몸에 맞을 듯이 날아오던 공이 타자에게 가장 먼 바깥쪽 스트라이크 존에 걸치는 공의 궤적은 마법과도 같았다.

[휘잉! 펑!!]

몸을 비틀며 공을 피하던 타자는 믿을 수 없는 걸 봤다는 듯이 멍하니 서있었다.

“타자! 타격 준비해.”

심판의 말에 겨우 정신을 차린 동곡대의 3번 타자가 자신의 루틴도 실행하지 못하고, 타석에 서게 되었다.

타석에 선 타자의 눈동자가 급격하게 흔들렸다.

[펑!!]

다시 한 번 1구와 완전히 동일한 공이 들어왔다.

타자는 이전 타석의 경험에도 불구하고 본능적으로 몸을 피했고, 공은 포수의 미트에 정확하게 들어가게 되었다.

마지막 1구.

혼신의 힘을 다해 검지손가락으로 마지막까지 공을 눌러주었다.

타자의 바깥쪽으로 멀찍이 나가는 공이었다.

‘실투인가보다. 다행이네.’

동국대 타자는 그 공에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휘리리릭! 펑!!]

바깥쪽으로 아주 멀리 나가던 공이 그림과 같이 정중앙으로 휘어져 들어왔다.

“스트라잌!! 아웃! 게임 끝!!!”

삼구 삼진.

그림과 같은 내 마구에 생방송으로 지켜보던 700만 명은 채팅도 치지 못하고 그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저번 생방송에서 500만 명이 채팅을 치기 시작하니 서버가 버티지를 못했고, 이번에 서버를 증설하기는 하였지만 그 때보다 더욱 많은 700만 명의 시청자가 몰리게 되어 채팅이 금지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만큼 각종 인터넷 게시판에서는 관련한 대화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 초구 홈런 실화임?

⌎ 투수 운다 울어.

⌎ 애들 상대로 너무하네! 이번에는 힐링님 반성해야 할 듯!

⌎ 애는 무슨! 그나저나 타격폼이 정말 깔끔하긴 하다.

⌎ ㅇㅇ 무슨 물 흐르듯이 부드럽게 허리가 돌아가네.

- 투수 바뀌었다.

⌎ 와!! 공이 솟아 오르네? 저게 라이징 볼 인거야?

⌎ 아니. 저건 언더핸드 투수의 커브야. 일명 업슛

⌎ 커브는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거 아님?

⌎ 언더핸드 선수는 반대야. 김병연 선수가 전성기 시절에 저 공으로 메이저에서 타자들 다 후드려 패고 다녔지.

⌎ 김병연이면 예능인 아님?

- 와!! 또 홈런!! 대박이네!

⌎ 근데 투수 웃는데? 정신 줄 놓아버린 듯.

⌎ 놓을만하지. 저 슬라이더를 바로 스윙 궤적을 바꿔서 때려버리잖아. 심지어 비거리 봐라.

⌎ 그런데 그 다음 타자를 삼진으로 잡아버리네. 멘탈이 대단하다.

⌎ 힐링님은 포기했으니까 저 투수라도 우리 팀에 데려와라! 뭐하냐? 일해라 프론트!!

- 마무의리! 등장!

⌎ 언제 적 개그임?

- 삼구 삼진!! 공 좋다!!

⌎ 구속 죽여주네!

- 굳 모닝! 굳 애프터눈! 굳 바이!

⌎ 위에 뭐하냐?

⌎ 메이저에서는 삼구 삼진을 저렇게 말한다.

- 근데 겁나 쉽게 타자들 잡아내네. 한 가운데 들어가는 공인데도 못 치네.

⌎ 국내에 저공을 칠 수 있는 타자가 있을까?

- 자! 마지막 타자! 등장!!

⌎ 오!! 포스가 있는데? 이번에 안타 하나 맞을 듯!

⌎ 그러게! 이때 한 방 맞아줘야 드라마인데.

- .... 저게 뭐냐? 무슨 UFO야?

⌎ 느린 화면으로 보이는데, 포심 그립인데?

⌎ 마법이야? 저게 뭐야? 엄마 무서워...

마지막 타자를 상대한 내 공 세 개에 엉덩이가 무거웠던 메이저리그의 수석 스카우트들이 일제히 한국행 비행기 표를 구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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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게구름 미술학원.

아담한 3층 건물의 2층에 있는 미술학원이다. 저번에 공원에서 도와드렸던 그 원장님이 운영하시는 미술학원이었다.

[딸랑!]

문을 열고 들어가니 복도에 많은 그림들이 걸려 있었다. 아이들이 그린 그림들이었는지 하나같이 조잡했다. 하지만 그런 만큼 독특하고, 재미있는 그림들이었다.

조금 더 걸어 들어가니 원장실이 보였다.

[똑똑똑!]

“네. 들어오세요.”

“안녕하세요. 원장님. 혹시 저 기억하실까요?”

“어? 그때 그분! 하하하 그때는 너무 감사했습니다. 도와주시지 않으셨다면 집에서 쫓겨났었을 수도 있었습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웃으며 원장님께 상담을 드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여기 아이들만 배울 수 있는 곳인가요? 저도 미술에 대해서 조금 배워보고 싶은데, 가능할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가능하시죠! 성인반을 따로 운영하지는 않지만, 미대 입시반에서 같이 하셔도 됩니다.”

“아. 저는 그냥 취미로 할 건데, 아이들에게 방해되지 않을까요?”

“무슨 말씀이세요. 방해라니요. 아이들도 다들 자신들 그림에 집중해서 서로 관심도 없습니다. 걱정 마세요.”

아무래도 원장님은 나의 정체에 대해서 잘 모르시나보다. 아이들이 그림에 집중을 할 수나 있을지 모르겠다.

나는 원장님과 상담을 받고 바로 등록을 하였다.

“아니! 돈은 필요 없습니다. 제가 그때만 생각하면 아직도 식은땀이 나는데, 어떻게 돈까지 받겠습니까? 괜찮습니다.”

“어.. 그럼 제가 너무 불편해서요. 편하게 학원 다니려면 원칙대로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이해 부탁 드립니다.”

“아..그러시군요. 그럼 지인 할인으로 50%만 받겠습니다. 우리 서로 양보해서 중간에서 협상을 마치시죠. 하하하하”

그렇게 극적 타협을 보게 되었고, 오늘은 견학을 하게 되었다.

“이쪽이 입시반입니다. 입시 준비생은 5명이니 화실이 좁지는 않을 겁니다.”

한참 그림에 빠져있는 아이들이 보였다.

앞치마를 하고, 연신 물감으로 덧칠을 하고 있는 아이들이 보였다. 그리고 앞에는 마네킹이 서있었다.

“회화계열 입시를 준비하는 아이들입니다. 요즘 입시는 인체 수채화가 많아서요. 마네킹으로 연습을 하고, 2주일에 한 번 정도씩 실제 모델을 불러서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정말 진지하게 색칠을 하고 있는데, 아이들이 앉아있는 각도에 따라 마네킹의 옷 색도 미묘하게 다르게 표현되고 있었다.

“천운님은 취미로 하실 거니까 기초적인 부분을 배우시고 나면 아이들처럼 인체 수채화를 그리셔도 좋고, 정물화를 그리셔도 좋습니다. 제가 신경 써서 알려드릴게요.”

우리가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보면서 이야기를 하고 있자 그 중 한 아이가 궁금하였는지 우리 쪽을 쳐다봤다. 그러다 나와 눈이 마주친 그 아이는 완전히 굳어버렸다.

손에 들고 있던 붓은 바닥으로 떨어졌고, 눈은 깜빡이지도 않은 상태로 크게 뜨고만 있었다.

“저...저.. 저...”

“뭐야? 뭐하냐? 장난치지 마라.”

옆에 앉아서 색칠을 하던 아이가 떨어트린 붓에서 튀긴 물감에 양말과 바지가 더러워지자 인상을 쓰며 말을 하였다.

그러다 놀란 아이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방향을 바라보다 나를 보게 되었다.

“꺄악!!!! 힐링!!! 힐링!!!!”

“너희 뭐해? 손님 앞에서 그렇게 소리 지르고 그러면 어떡하니?”

원장님이 아이들에게 뭐라고 하셨지만, 아이들에게는 원장님의 말은 들리지도 않았다.

“힐링님!! 맞으시죠? 우와!! 우와! 우와!!!”

한 아이는 마치 고릴라가 된 듯이 우와만 외치고 있었다.

처음 나를 발견한 아이는 어느새 입술이 파랗게 변하며 떨고만 있었다.

“어? 학생! 천천히 숨 쉬어! 천천히! 그래. 들어 마시고, 내쉬고! 잘하고 있어.”

내 응급조치에 겨우 호흡이 돌아온 아이는 나를 보며 웃다가 쓰러졌다.

“아니.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다들 왜 그러는 거야?”

“힐링님이시잖아요!! 원장님이 힐링님하고 아시는 사이라니. 대박이다...와..”

“힐링님? 그게 뭔데? 이분은 천운님이셔. 다들 진정들 좀 해.”

“힐링님 이름이 천운님이세요! 아니 원장님은 힐링님도 모르세요?”

한 아이가 나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해 주었고, 원장님은 생각지도 못한 나의 유명세에 당황스러워하셨다.

“그런데 원장님은 어떻게 힐링님과 아시는 거예요? 알려주세요!”

“어? 어. 그냥 공원에서 반지를 찾아준 사이?”

“어? 그때 저도 있었어요! 와.. 그럼 반지 찾은 우승자가 힐링님이셨어요?”

여기도 그날의 이벤트 참여자가 있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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