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를 위하여.
회사에 도착한 우리는 바로 프로듀싱 팀을 찾아가서 도움을 요청했다.
그리고 내가 음악을 작곡했다고 하니 프로듀싱 팀장님은 흥미로운 표정으로 내 허밍과 노랫말을 듣기 시작하셨다.
노래가 끝났을 때 팀장님이 벌떡 일어나시더니 나에게 말을 하셨다.
“우리 팀으로 오시죠. 최고의 대우를 약속드립니다.”
“어.. 저는 그냥 지금 이대로가 좋은데요.”
“얼마면 되겠습니까! 제가 계약금도 최고 대우를 약속드립니다. 계약금 10억에 연봉 2억을 약속드립니다!”
“저기 팀장님. 우리 천운 오빠가 한 달에 그보다 더 버는 것 같은데요. 헤헤”
“아... 그.. 그렇군요.. 정말 아쉬운데..”
어찌 어찌 도움은 잘 요청 하였다. 그리고 완성된 멜로디는 다음날 오후에 듣게 되었다.
“이거 너무 화려하면 오히려 감정이 안살 것 같아서 피아노와 기타 정도만 얹었습니다. 목소리가 잘 들어나야 좋을 것 같더군요. 혹시 가이드는 누가 녹음하실 거죠?”
“제가 하려고요.”
“아. 확실히 작곡가가 부르면 그 느낌이 잘 살 것 같네요. 바로 가시죠!”
얼떨결에 바로 녹음실까지 가게 되었다.
“음량이랑 확인 하실 거 하시고, 말씀 해주세요.”
가볍게 노래를 불러보며 몇 가지만 조율을 하고, 바로 오케이를 하였다.
“자. 긴장하지 마시고, 가이드는 그냥 느낌만 살려도 되니까 편안하게 불러보세요.”
눈을 감고 내가 이 노래를 작곡했던 그 순간을 떠올렸다. 처음에는 나를 위로하는 노래였지만, 이제는 우리 모두를 위로하고 싶었다.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었으면 한다.
“고요한 달빛이 비춰주는 이 거리를 걸어본다.
아무도 없는 이 거리를 쓸쓸하게 걸어가는 나.
이 길이 끝나는 곳에는 내가 원하는 것이 있을까.
영원할 것 같은 이 밤에 나를 비춰주는 건 오로지 머리위의 저 달빛 뿐.
달빛에 비춰 주위를 둘러보니
수많은 내가 걷고 있었네.
우리는 같이 걷고 있었네.
저 멀리 빛나는 새벽을 찾아 떠난다.
걷고 걷다보면 언젠가는 밝아 올 거야.
이 손을 잡아. 우리는 혼자가 아니야.
이 밤의 끝까지 같이 가자.”
담담하게 시를 낭송하듯이 시작된 노래는 하이라이트 부분에서 감정이 폭발하였다.
나는 내 힘들었던 과거와 지금 힘든 시기를 보내는 아이들을 위해 내 모든 감정을 다해 소리쳤다.
잘 하고 있다.
괜찮다.
손을 잡아 줄게.
우리 같이 가자.
노래가 끝나고 부스를 나왔는데, 다들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혹시 노래가 별로였나요? 어느 부분이 별로였을까요? 알려주시면 다시 불러볼게요. 제가 이런 건 처음이라서..하하하..”
다시 보니, 다들 코를 훌쩍이며 옷소매로 연신 눈을 훔치고 있었다.
“크흠.. 아닙니다. 그게 아니라.. 제가 처음 음악을 시작할 때가 생각나서요. 그때는 정말 많이 힘들었거든요. 정말 잘 만들었다고 생각한 곡들이 쓰레기통에 버려질 때 그 심정이 생각나서요. 다들 비슷한 감정들을 느끼고 있을 겁니다.”
조용히 녹음실 안에 계시는 분들을 돌아보았다.
하나같이 과거를 생각하시는지 감정들이 북받쳐 올라오는 것 같았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말을 하였다.
“누구나 그런 시절이 있었고, 그 시절이 지금일 수도 있겠죠. 하지만, 끝이 없는 어둠은 없습니다. 언젠가는 긴 터널이 끝나고 좋은 날이 올 겁니다.”
나의 담담한 말에 다들 귀를 기울여주었다.
“그때 우리가 해야 할 건 아직 터널 안에 있는 우리 아이들에게 빛을 비춰주는 역할입니다. 행복하게 잘 사세요. 그래야 우리를 보고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겁니다.”
내 담담한 말은 [위로의 목소리]의 힘을 빌려 모두의 마음을 위로해주었다.
“아..왜 다들 힐링님. 힐링님. 하는지 알겠네요. 저보다 더 어리신 분이 이리 마음이 단단하시니 대단하십니다. 그리고 노래는 정말 최고였습니다. 제가 같이 작업한 가수들이 많은데, 그중에 가장 제 마음속에 스며드는 목소리였습니다.”
팀장님의 말씀에 엔지니어분이 고개를 끄덕이시고 있었다.
“그럼 파일만 저한테 주시면 제가 노래 부를 가수에게 전달하겠습니다.”
“네. 누군지 모르겠지만, 이 곡을 받으신 가수 분은 정말 복 받으신 겁니다. 이거 최소한 탑 10은 할 수 있는 곡입니다.”
“에이. 그 정도는 아니에요. 하하하”
“제가 말씀드린 건 우리 가요계 역대 탑 10을 말씀드린 겁니다.”
매우 진지한 목소리로 팀장님이 말씀하셨다.
아무리 그래도 역대 탑 10이라니 말만이라도 너무 기분이 좋았다.
아직 팀장님에게는 이 노래를 연습생인 혜미에게 준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누구한테 허락을 받아야 하는지 몰라서 그냥 송이에게만 말하고 영상 찍어 올려보려고 한다.
내 가이드 버전과 혜미의 정식 버전을 너튜브에 올리고, 반응이 괜찮으면 회사에 말해서 정식 음원으로 발매도 해보고 싶다.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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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이거 진짜 제 노래 맞아요? 그냥 오빠가 사용하시는 게.. 너무 노래가 좋아서 무서워요..”
내 가이드 곡을 들어본 혜미가 노래를 부르기 무서워했다.
“하나씩 가르쳐 줄게. 걱정 하지 마. 너가 느꼈던 그 감정들을 표현하기만 하면 돼. 나를 믿어.”
[스승의 마음이 발동합니다. 사용자의 재능 중 우리를 위로하는 감정이 상대방에게 전수됩니다. 상대방의 학습 능력이 최대치가 됩니다. 사용자에게 존경하는 마음을 갖습니다.]
[스승의 마음의 효과로 상대방의 숨겨진 재능인 ‘싱어송 라이터’, ‘순수한 마음’, ‘미모’가 개발됩니다. 꾸준한 연습이 동반되면 완전히 개발이 완료됩니다. 재능의 개발이 완료되면 사용자에게도 동일한 재능이 생성됩니다.]
‘어? 재능이 세 개? 이거 영웅이보다 더 천재인가 본데? 그런데 음악 관련한 재능은 ‘싱어송 라이터’ 하나뿐인 것 같은데?’
나는 계속해서 혜미의 노래를 들으며 코칭을 하기 시작했다.
“그 부분은 조금 더 담담하게 말하듯이 하는 게 좋을 것 같아. 감정을 너무 넣으면 오히려 작위적인 느낌이 들게 돼. 그냥 최대한 담담하게 부르는 게 오히려 더 감정이 잘 전달 될 것 같아.”
“그래! 그렇게 하이라이트 부분에서는 감정을 모두 폭발 시켜야 돼. 아니! 소리를 크게 하라는 게 아니라 감정을 실어야 돼. 그렇지!!”
“자! 이제 마지막으로 전체를 한 번 쭉 불러보자. 아주 좋아.”
혜미는 나의 코칭을 받으며 빠르게 성장하기 시작했다.
이미 보컬 능력은 어느 정도 수준에 올라와 있었고, 나의 최상급 재능인 [우리를 위로하는 감정]이 전수되기 시작하자 묘한 매력을 발산하기 시작했다.
나와는 다르게 위로가 되는 그런 감정보다는 뭔가 더 잔잔했다. 위로라기보다는 휴식 같은 감정이 느껴졌다.
내가 부른 버전은 힘든 시기를 이겨내자는 강한 응원의 느낌이라면, 혜미가 부른 버전은 힘들면 잠시 쉬다 가라는 느낌이 강했다.
같은 멜로디와 같은 노랫말이었지만, 부르는 우리의 감정에 따라 전혀 다른 곡이 되었다.
“오빠! 혜미씨 정말 대단하다. 저 정도 실력인데도 연습생인거야? 와.. 저쪽 동네 살벌하네.”
촬영을 하던 송이가 혜미의 노래에 연신 감탄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모든 녹음이 끝나자 나의 재능 전수도 완료되었다.
[스승의 마음이 발동합니다. 스승의 마음의 효과로 상대방의 숨겨진 재능들이 개발됩니다.
최상급 재능 ‘우리를 위로하는 감정’이 상급 재능 ‘우리의 안식처’로 전수됩니다.
‘싱어송 라이터’, ‘순수한 마음’, ‘미모’가 개발되었습니다.
재능의 개발이 완료되어 사용자에게도 동일한 재능이 생성됩니다.]
[싱어송 라이터]와 [순수한 마음]은 중급 재능이었고, 의외로 [미모] 재능이 상급이었다.
[싱어송 라이터]는 말 그대로 작곡과 노래가 가능한 재능이고, [순수한 마음]이 정말 특이한 재능이었다.
[순수한 마음 - 한 사람을 사랑할 때 보유한 다른 재능들의 등급을 한 등급 상승시킵니다. 상승시키는 한계는 상급까지입니다.
최하급 -> 하급, 하급 -> 중급, 중급 -> 상급]
이제 내가 한 사람만 사랑한다면 어마어마한 시너지가 발생할 것이다.
‘뭐 이런 재능이 다 있냐?’
별의 별 재능을 다 봤지만, 이런 재능은 정말 처음이었다. 무슨 김정국 가수의 [한 남자]야?
[미모 - 사용자의 신체균형이 완벽해집니다. 쉽게 살이 찌지 않습니다. 피부가 좋아집니다. 미모가 상승합니다.]
‘어... 이건. 신우처럼 곱상하게 변하면 어쩌지?’
나는 내 외모에 별로 불만이 없다.
특별히 잘생긴 얼굴은 아니지만 또 못생긴 얼굴도 아니었다. 그냥 평범한 얼굴이다. 그래도 뭐 잘 생겨져서 나쁠 건 없고 오히려 좋겠지만, 잘못해서 기생오라비처럼 생겨지면 그건 좀 별로일 것 같다.
‘그래도 신체균형이 완벽해진다니 운동할 때는 좋겠네.’
“오빠! 제가 생각해도 이번에는 노래 완전 잘 부른 것 같아요. 이제야 제 노래 같았어요! 정말 고마워요. 오빠. 헤헤헤”
녹음 부스에서 나온 혜미는 너무 좋아서 자신의 양손을 마주 잡고 빙글 빙글 돌고 있었다.
“노래 정말 최고에요!”
송이가 혜미에게 엄지손가락을 들어주자 혜미도 엄지손가락을 들더니 송이의 손가락에 자신의 손가락을 꾹 찍어 주었다.
“어? 혜미씨도 이거 알아요?”
“어! 언니도? 우와! 이거 아는 사람 한 명도 없었는데!”
그게 뭐라고 둘은 헤어졌던 친 자매가 만난 것처럼 손을 마주잡고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나는 잠시 화장실을 다녀오려고 밖을 나갔고, 둘은 내가 나가는지도 모르고 계속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화장실을 다녀와서 문을 열고 들어가려니 말소리가 들려왔다.
“언니! 진짜요? 우와.. 그 오빠가.. 와.. 하긴 언니 미모가 웬만한 여배우 못지않으니까 넘어올 만하네요. 헤헤헤”
“너도 만만치 않아! 이 피부 봐. 완전 부럽다. 그리고 여기! 와.. 이렇게 날씬한 애가 가슴까지 크면 반칙이잖아!”
더 이상한 말이 나오기 전에 문을 열고 들어갔다.
“흠...흠. 송이 너 안가냐? 얼른 가서 일해.”
“그러니까 거기가 그렇게 좋더라니깐! 우리 같이 가자.”
“좋아요! 같이 가서 사진도 찍어요. 헤헤헤”
내 이야기가 안 들리나 보다.
“여러분! 다들 이제 갈길 갑시다!”
박수를 치면서 소리를 쳐 보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거기랑 여기가 그렇게 핫한 곳이야. 나도 아직 못 가봤는데, 가봐서 괜찮으면 나중에 알려줄게! 너도 우리 오빠랑 같이 가봐.”
핸드폰으로 무언가를 보여주며 말을 하고 있었다.
“네! 언니가 먼저 선발대 해주시면 고맙죠! 커플 오리 배라니 너무 낭만적이야.”
뭐라는 거야.
“야! 송이 너! 남자친구 있냐?”
“어? 아냐! 내가 무슨 남자친구야! 말도 안 돼는 소리를! 그런데 우리 이야기하는데 왜 엿듣고 그래? 매너는 화장실에 두고 오셨나?”
“헤헤헤헤 오빠 몰래 듣고 계셨어요?”
“무슨 몰래는 몰래야! 문도 세게 열고, 헛기침도 얼마나 했는지 목에서 피 나오겠다. 다들 이제 할 일들 해. 송이 너도 빨리 편집해서 올리고.”
“알겠어! 잔소리는! 에베베베!”
“용돈 삭감이 저번 달에 끝났었나? 아.. 용돈 삭감 마렵네.”
“저는 일이 너무 즐겁습니다! 지시를 더 내려 주십시오! 충성!”
귀찮은 표정으로 손을 휘휘 저으니 송이는 혜미 손을 한 번 더 잡아주고 밖으로 황급히 나갔다.
혜미는 나가는 송이의 뒤를 바라보며 손을 흔들어 주었고, 나는 혜미에게도 나가서 할 일 하라고 말해 주었다.
“오빠! 이따가 집에 언제 가세요? 우리 같이 가요~”
“나는 집에 안 들어가는데? 저녁때까지 수능 공부하다가 미술 학원가야 돼.”
“미술 학원이요?”
“어. 요즘 그림 배우거든.”
“저도 구경하면 안돼요? 제발요!!”
정말 간절해 보이는 얼굴로 두 손을 맞잡고 나에게 말을 하였다. 이게 뭐라고 그렇게 간절하게 말하나?
“너는 숙소에 들어가야 되는 거 아냐?”
“헤헤헤 의무 사항은 아니에요. 집에 가서 영상 통화로 총괄 트레이너님한테 보고하면 돼요. 뭐. 가끔 불시에 연락 주시기도 하는데, 이상한 곳만 안가면 문제 될 건 없어요.”
“나 오늘은 차도 안가지고 왔는데 괜찮아?”
“연습하면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혼자 가시면 안돼요!”
“어. 그래. 알겠어.”
위 아랫집 이웃사촌인데 같이 가면 심심하지도 않겠지. 의외로 혜미가 아재 스타일이라 재미가 있다.
그리고 내 유일한 장점인 개그를 구사해도 잘 웃어주니 더 좋다. 집에서는 내 개그를 질투하는 송이 때문에 개그를 구사할 수 없지만, 혜미한테는 빵빵 터진다.
“혜미야.”
“네?”
“나갈 때 조심해!”
“뭘요?”
“나! 갈 때 조심히 따라오라고!”
“헤헤헤헤 오빠! 뭐에요! 너무 웃겨!”
[쾅!]
“그딴 개그하면 내가 목 졸라 버릴 거야! 그건 한글 낭비야! 세종대왕님한테 사과해!!”
밖에서 듣고 있었는지 문을 박살낼 것처럼 열어젖히고는 송이가 들어왔다.
“언니! 천운 오빠 원래 이렇게 웃겨요? 너무 웃겨. 헤헤헤헤”
“너는 정말... 날개 없는 천사거나, 두뇌 없는 전사다.”
열심히 수능 공부를 하고, 강의할 내용들을 정리하다보니 어느새 저녁 7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으~아. 렉오 블록 없으니 피곤하네. 슬슬 가볼까?”
혜미를 데리러 연습실로 향하니 혜미가 보이지 않았다. 다른 연습생 아이에게 물어보니 작곡 수업을 들으러 갔다고 한다.
작곡 수업을 하는 곳을 향해 가니 열심히 전자 피아노를 치며 오선지에 음표를 그리고 있는 혜미가 보였다.
“여~ 성사장! 오래 걸리시나?”
“어? 천사장! 이거 반갑구만! 반가워요!”
설마 했지만, 이런 옛날 개그도 받아준다.
“너 이런 것도 알아? 나이 속인거야?”
“응? 이거 응답하라 시리즈에 나오는 건데요! 헤헤헤”
응답하라 시리즈가 뭔지 몰라서 그냥 고개만 끄덕였다.
“아무튼 오래 걸려? 오래 걸리면 옆에서 기다리고.”
“아니에요! 그냥 갑자기 작곡이 하고 싶어져서 조금 해보는 중이에요. 막 악상이 떠올라요! 아.. 이게 천재인 것인가?”
아무래도 개화한 재능인 [싱어송 라이터]의 영향인 것 같다. 그런데 저런 착각은 부작용 같기도 하고.
“괜찮은 곡 나오면 프로듀싱 팀에게 검증받고 통과되면 불러보면 되겠네. 너도 너튜브 채널 하나 만들어야 하는 거 아냐?”
“음.. 그건 회사에서 허락해야 가능해서요. 지금은 작곡하고 노래 부르는 게 그냥 좋아요. 헤헤”
“알겠어. 나는 잠깐 앉아 있을 테니까. 다 끝나면 가자.”
“5분만 기다려 주세요. 저 정리만 할게요.”
지하철을 타고 우리 동네로 향하는 길은 재미있었다.
평소에도 지하철을 타면 지하철 안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보며 혼자 상상을 많이 했었다.
‘저기 저 남자 분은 어제 여자 친구에게 이별 통보를 받았을 거야. 그래서 지금 여자 친구에게 사과를 하러 가는 거지’
‘저 할머니는 알고 보면, 건물 5개 이상의 엄청난 부자이신데 이렇게 노인 분들은 공짜인 지하철을 애용하시며 돈을 더 불리시는 거야.’
평소에는 이런 생각을 속으로만 했는데, 옆에 있는 혜미에게 귓속말을 해주었더니, 같이 상상을 하기 시작했다.
“저 남자 분은 회식자리에서 영상통화를 안 받은 거지. 그래서 여자 친구가 오해를 할 수 밖에 없었던 거야!”
“저 할머니는 전쟁 통에 남편을 먼저 보내고, 사 남매를 혼자 키우신 거죠! 국밥집을 운영해서 큰돈을 버셨을 거예요.”
“근데 왜 하필 국밥집?”
“제가 국밥을 좋아해요. 헤헤헤”
“돼지 국밥! 순대 국밥! 하나, 둘, 셋!”
“순대 국밥!!”
“아! 뭐야~ 완전 천생연분!! 헤헤헤”
이런 걸로 엮지 마라.
사실 나는 둘 다 좋아한다. 그냥 내 재능 중에 [이심전심 게임의 달인]이 있을 뿐이다.
“뭉게구름 미술학원? 여기가 오빠가 다니는 미술 학원이에요?”
“어. 아담하지?”
사실 내 그림 실력을 보신 박고흐 원장님은 나에게 더 이상 가르칠 능력이 없다고 하셨다. 다만, 마음 편히 그림을 그릴 수 있게 작업실과 도구들을 대여 해주셨다.
“이쪽이 내가 그림 그리는 작업실. 그런데 물감들 때문에 냄새가 좀 심하게 날 수도 있어.”
“실례하겠습니다~”
혜미는 뭐가 그리 신기한지 내 작업실 이쪽저쪽을 둘러보았다. 그러다 내 작품인 [고요한 달밤]과 [우산]을 발견했다.
“와..... 이거 정말 대단해요. 이걸 진짜 오빠가 그린 거예요? 진짜?”
“응. 그냥 내가 느끼는 감정들을 그려보는 거야. 아직은 조금 조잡하지?”
“전혀요! 이거 완전 교과서에서 보던 그런 그림들 같아요. 특히 저는 이게 완전 좋아요.”
혜미는 [고요한 달밤]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아마 내가 선물한 노래인 [이름에게]와 같은 감정선 상에 있어서인 것 같다.
“오빠! 이거 앨범 내면 앨범 표지로 사용하면 안돼요? 이거 진짜 마음에 드는데!”
“그래. 너가 내 작품을 그렇게 마음에 들어 하니 나도 기분 좋네.”
“예쓰!!! 우호!!”
혼자서 어깨춤을 추던 혜미는 나를 보더니 민망해 했다.
“나는 이제 그림 구상도 하고, 그리기도 해야 하니까 혜미는 집에 들어가.”
“헤헤헤 오빠. 내일도 회사 가실 거예요?”
“아니. 내일은 일정이 있어서. 회사는 그냥 시간 날 때만 가는데?”
내일은 퀘스트를 하러 돌아다녀야 한다.
나름대로 성공한 인생을 살고 있지만, 내 능력의 근본인 퀘스트는 평생을 안고 가야하는 일이다.
아무리 바빠지더라도 꼭 퀘스트 할 시간은 만들어 하고 있다.
“아.. 아쉽다. 알겠어요! 저도 열심히 노력할 테니까! 오빠도 파이팅하세요! 헤헤헤”
“그래. 너튜브에 우리 노래 올리고 반응 봐서 회사에 이야기 해보자. 혜미 데뷔를 위하여!”
나의 어처구니없는 말에도 열심히 웃어주었다. 그 웃음에 나도 용기를 내어서 말을 해보았다.
“아참! 혜미야.”
“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말을 하였다.
“닭에게 작은 옷을 입히면?”
“작죠?”
“꼬끼오~”
“헤헤헤헤 오빠는 너무 웃겨요.”
바닥에 혜미 배꼽이 굴러간다. 갈 때 잘 주워 가라.
오늘도 나의 개그 자존감이 한없이 올라가는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