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신기록
요즘에는 지하철을 타고 퀘스트를 얻으러 다니고 있지 않다.
아무리 [아웃사이더의 존재감]이 있더라도 이제는 사람들이 나를 몰라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선택한 방법은 조깅이었다.
새벽부터 뛰기 시작한다.
새로운 길로 계속 뛰다보면 기분도 상쾌해지고, 모험하는 기분도 들었다. 그러다 퀘스트가 발생하면 수행하고, 다시 뛰고 있다.
그러다보니 성장한 재능이 있었다.
[전국 약수터 연합회 최강자 - 달리는데 힘이 덜 듭니다. 오르막을 더 쉽게 오릅니다.]
최하급이었던 재능이 어느새 중급까지 승급을 하였다.
이 재능이 생기고 나서부터는 지치지를 않는다. 원래부터 좋았던 체력이 이 재능을 만나고부터는 아무리 뛰어도 지치지를 않게 되었다.
마라톤에 나가면 세계 신기록도 가능할 것 같다.
한참을 그렇게 뛰다보니 한낮이 되어 있었다. 잠시 쉬기 위해 벤치에 앉았을 때, 드디어 퀘스트 알람이 울렸다.
‘띠링’
[퀘스트 발생 - 손자가 원하는 햄버거를 사러왔지만, 키오스크 사용이 힘든 할머니를 도와주시오. 제한시간 1시간.]
‘그래. 나이 드신 분들이 키오스크 사용이 힘들지. 그런데, 매장에 일하시는 분들이 있을 텐데, 왜 이런 퀘스트가 생겼지?’
조금은 의아한 마음을 가지고 들어간 패스트푸드점은 역시나 시원했다.
‘아.. 여기가 천국이구나.’
잠시 에어컨 바람을 느끼며 행복감을 충전한 다음에 퀘스트 네비게이션이 가리키는 곳으로 향하였다.
“저기.. 이거 좀 알려주면 안 될까요? 제가 이게 너무 어려운데..”
“아이씨. 바뻐 죽겠는데. 거기 옆에 다른 사람들한테 물어봐서 하세요. 지금 시간은 키오스크만 주문 가능한 시간대에요! 아 정말 짜증나 죽겠네. 저런 것도 못할 거면 왜 이런 곳에 들어오는 거야?”
나는 귀를 의심했다.
저게 손님에게 할 수 있는 말인가? 나이도 한참 어린 사람이 할머니한테 말하는 투와 내용도 모두 다 수준 이하였다.
“할머니. 제가 도와드릴게요. 어떤 걸 사실 거예요?”
“미안해요... 내가 늙어서 이런 걸 잘 못해요.. 우리 손자가 따블 치즈? 그거가 있다고 하는데.. 아무리 봐도 못 찾겠어요..”
“아. 더블 치즈 버거 말씀이신거죠? 그거에 세트로..아니 그냥 버거만 하실 거예요? 아니면 음료수랑 감자튀김도 하실 거예요?”
“그거 감자튀김 그걸로 부탁해요.”
“네. 그럼 여기에 카드 넣으시고요. 네. 이제 이거 들고 기다리시면 여기 써진 번호 부르실 거예요. 그럼 받아 가시면 돼요.”
“정말 고마워요.. 내가 나이가 들어서 정말 미안해요..”
할머니는 계속해서 미안해하시고, 고마워하셨다.
“아니. 나이 드신 게 왜 미안해요. 괜찮습니다. 할머니. 요즘에 이런 거 너무 복잡해서 젊은 사람들도 헷갈리고 그래요.”
“늙으면 죽어야 하는데.. 내가 죽으면 손주하나 남아서..”
“1..5..번 손... 주문하신 더.. 치즈......나왔습니다.”
직원분이 뭐라고 말하는데 잘 안 들린다.
할머니건가 싶어서 다시 들어보려고 하는데, 직원분이 소리를 치기 시작했다.
“175번 손님! 안 가져가세요? 아이씨 바빠 죽겠는데! 뭐야?”
175번. 할머니 번호이다.
“할머니 제가 받아올게요. 잠시 만요.”
“응? 고마워요..”
픽업 받는 곳을 향하는 나는 전국에서 가장 싸가지 없는 직원에게서 우선 햄버거 세트를 받아들었다.
그리고 할머니에게 전달해 준 다음 할머니에게 인사를 하고 보내드렸다.
그런 다음 다시 매장 안으로 들어와서 그 직원에게 말을 하였다.
“여기 관리하는 매니저 불러주세요.”
“당신 뭔데? 아까부터 혼자 잘난 척 쩔던데? 그렇게 살면 뭐 대단한 사람이라도 되는 줄 알았어? 어!”
“당신하고 말해봤자 말이 안 통할 것 같으니까 매니저 오라고 하세요. 거기! 네. 당신이 매니저 불러주세요.”
옆에서 일하던 다른 직원분이 싸가지 없는 직원 눈치를 보며 안절부절 못했다.
“본사에 연락하기 전에 빨리 부르시는 게 좋을 겁니다.”
주방 안쪽에 있던 다른 직원이 몰래 전화를 하는 게 보였다.
“야! 다들 전화하면 내가 가만 안 둬! 알지? 내 친구 인터넷 방송하는 거! 열 받으면 너희들 신상 다 인터넷 방송에서 공개할거야!! 알아들어?”
이제 보니 완전히 정신이 나간 싸가지였다. 인터넷 방송을 하는 게 무슨 벼슬인줄 알고 있었다. 심지어는 자신이 하는 것도 아니고 친구가 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직원들 반응을 보니, 이미 몇 번 당한 사람이 있나보다. 이건 심각한 범죄인데, 이 부분에 대한 최소한의 죄의식도 없어 보였다.
“그거 협박입니까? 그리고 방송에서 허락 없이 개인 신상을 공개하고 하면 처벌 대상인거 모릅니까? 그리고 허위사실 유포까지 했다면 가중 처벌입니다.”
“뭐라는 거야? 니가 그렇게 잘났어? 어? 그래! 너도 당해보면 질질 짜면서 후회하겠지! 안 그래도 내 친구가 방송하는 곳이 이 근처야! 너 한 번 당해봐라!!”
너무 어이가 없었지만, 친구를 부르는 싸가지를 말리지 않았다.
내가 직접 당해야 처리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다른 직원들 분위기를 보니, 내가 도와준다고 말해도 도움을 거절할 것 같다.
이런 말을 하면 안 되겠지만, 그 밥에 그 나물이다. 다른 사람이 당할 때 같이 대응을 하지 않았으니 당하는 거다.
그리고 할머니가 그리 고생하실 때도 다들 나 몰라라 했다. 최소한의 양심이 있었다면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것이다. 이게 전부 자업자득이다.
잠시 기다리니 손에는 셀카봉을 들고, 연신 입에서는 상스러운 말을 하는 남자가 패스트푸드점 문을 열고 들어왔다.
“아니! 형님들! 여기에서 글쎄 갑질을 하는 쌍x이 있다고 합니다! 예? 당연히 제가! 누굽니까! 그런 xxx는 제가 확실하게! 신상을 털어주겠습니다. 형님들! 신상 공개하면 테러 부탁드립니다!!”
나타난 남자를 보던 다른 직원들은 황급히 몸을 돌려 얼굴이 화면에 나오지 않게 조심했다.
“네? 저번에 그 여직원이요? 하하하 깔x하게 생겼었죠? 다시 보여드리겠습니다! 야! 고개 돌려! 너! 그래! 고개 돌리라고!”
더 이상은 참을 수가 없었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이게 무슨 행패에요? 방송 안 끕니까? 다른 사람들 얼굴 동의 없이 내보내면 초상권 침해인거 몰라요?”
내 말에 그 싸가지 없는 직원이 소리쳤다.
“야! 그놈이야! 그 놈이 내가 말한 놈이라고!”
“아하! 오케이! 초상권 침해 같은 소리하네! 니놈이 뭐라고 초상권이야? 그렇게 자신 있으면 이름이랑 주소 대봐! 못하겠냐?”
“보니까 한두 번 해본 게 아닌 것 같네. 원래는 사과 하면 받아주고 끝내려고 했는데, 너는 안 되겠다. 인생은 실전이야. 각오해.”
잠시 후면 홍성교 법무팀 고문님이 오실 것이다. 연락 드렸을 때 20여분 정도 걸리신다고 하셨으니 금방 오실 것 같다.
“오~ 무서운데~ 완전 중 2병 이시군여~ 형님들! 여기 정신 못 차리는 놈 보내 버려야겠습니다! 원하시는 방법으로 처리 할 테니 후원 보내주세요! 응? 뭐라고요? 힐링? 그 사람이 뭐요? 여기 힐링이 있어요?”
갑자기 고개를 돌리며 매장 안을 돌아보았다.
“형님들! 장난 치고 그러세요! 여기 왜 힐링이 있습니까! 그 사람 내가 개인적으로 잘 안다고 했죠? 이 시간이면 여자들하고 놀러 다니고 있을 거예요! 어제도 나랑 술 한 잔 빨면서 여자들하고 진하게! 어? 하하하 아시면서!”
어이가 없었다.
“어? 그놈이 힐링이라고요? 에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누군가가 후원을 했는지 기계음이 들렸다.
[그 사람이 힐링이 맞고. 너는 인제 x 된 거야. 재미있었는데 이 방송도 이제 날아가겠구나]
“에이! 무슨 농담을 그렇게!”
[딸랑]
“천운님! 저희 왔습니다! 괜찮으십니까?”
나특 팀장님도 같이 오셨다.
“아니 팀장님은 또 왜 같이 오셨어요?”
“당연히 와야죠! 우리 회사 에이스 관리를 제가 해야지 누가 합니까?”
“하하하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천운님.”
“죄송합니다. 고문님. 제가 도움을 요청드릴 곳이 고문님뿐이어서요.”
“죄송하다니요. 아닙니다. 제 일인걸요. 전화상으로 대충 듣기는 했는데, 저 사람입니까?”
“네. 저기 방송하는 사람과 저쪽에 있는 남자분이 제가 말씀드린 사람입니다.”
“거기 방송하시는 분. 방송 종료 하시고, 이쪽으로 오시죠. 그리고 거기 남자분도 같이 오세요.”
홍성교 고문님의 아우라에 방송하던 놈과 싸가지 없는 놈이 조심히 우리 앞으로 다가왔다.
“우선 방송 하시던 분은 본인 방송 정보와 개인 신상 정보를 여기에 적어주시고요. 조만간에 저희 쪽에서 연락이 갈 겁니다. 초상권 침해 소송을 진행 할 예정인데, 방금 방송영상을 보고 명예 훼손이나 허위사실 유포 문제도 같이 검토해 보겠습니다.”
“아니. 제가 별거 한 거 없는데... 지금까지도 이걸로 뭐 처벌받고 그러지 않았어요. 방송은 바로 지우겠습니다.”
“음. 생방송으로 진행 하신 것 같은데, 이미 늦으신 것 같습니다. 여기 천운님의 현재 추정되는 시장 가치가 1년이면 1조원이 넘으신데, 그에 상응하는 민사소송이 들어갈 겁니다. 미리 준비를 잘 하시기 바랍니다.”
“1조!!! 말도 안 돼!!”
“정식으로 인정되는 기관의 보고서이니 법원에서도 인용 될 겁니다. 아무튼 저희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여기 제 연락처를 드릴 테니 변호사 선임하시면 이쪽으로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서로 이야기로 잘 풀면 법원까지 가지 않을 수도 있으니 좋은 변호사 선임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통보를 하고, 밖으로 나왔다.
“정말 감사합니다. 고문님. 그런데, 제 가치가 1년에 1조라뇨! 하하하 너무 크게 부르셔서 그쪽에서 안 속으면 어쩌시려고.”
“정식 기관의 보고서입니다. 얼마 전에 저희 회사 소속 연예인들 전부 시장 가치 평가를 의뢰했었습니다. 아무래도 상장된 회사다보니 회사의 자산 가치를 평가하기 위해서 필요한 절차입니다.”
“정말 제가 1조원의 가치라고요?”
“사실 보고서상에서는 천운님이 광고라든지 수익을 극대화하지 않아서 너튜브와 관련한 부분만 평가를 했다고 합니다. 비공식적으로 수익을 극대화 한다면 그보다 5배는 넘는 가치가 있을 것으로 판단하시더군요.”
“아...예..”
너무나 비현실적인 숫자에 나조차도 질려버렸다.
“천운님. 다른 거 다 떠나서 지금 메이저리그 구단에서 얼마나 전화가 많이 오는지 아십니까? 지금 최고 많이 부른 구단이 3년 1억 5천만 달러입니다. 그것도 옵션을 뺀 순수 금액 만요. 연봉으로 치면 한화로 650억에 가깝습니다.”
나특 팀장님이 열변을 토하시기 시작하셨다.
“이것도 아직 메이저에서 검증이 안돼서 이 정도에요. 쇼케이스라도 하거나 메이저에서 몇 년 만 뛰면 연봉으로 1천억 찍는 것도 꿈은 아닙니다.”
또다시 엄청난 숫자의 향연에 정신이 아찔해져왔다.
“만약에 야구 말고 축구를 하셨다면 저 금액이 세 배는 뛸 겁니다. 천운님 신체 능력이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축구를 하시죠! 야구 보다는 역시 축구죠! 선흥민과 천운! 딱이네!!”
우리 나특 팀장님 축빠시네.
“흠흠. 역시 축구가 낫죠.”
조용히 홍성교 고문님이 말을 하셨다.
“그리고 이건 통계로 잡고 있지는 않지만, 천운님 너튜브에 출연하는 우리 회사 연예인분들의 홍보 효과가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이 부분은 생각을 안 해봤다.
“솔직히 천운님 너튜브 출연 효과는 황금시간대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 TV광고보다 효과가 더 좋습니다. 그것만 생각해봐도 우리 회사가 얻는 직접적인 이익이 1년이면 몇 백억은 넘습니다. 거기에 파생되는 이익까지 하면 어마어마하죠.”
솔직히 그런 면이 없잖아 있기는 하다.
소속 연예인들이 드라마를 시작하거나 영화를 개봉할 때면 내 너튜브에 출연을 한다.
그리고 그 드라마나 영화의 완성도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초반 흥행은 확실히 보장이 되었다.
‘진짜 내 가치가 1조원이 넘나?’
은근슬쩍 내 자존감이 치솟고 있었다.
우리는 웃으며 헤어졌다. 고문님은 뒷일은 걱정하지 마시고, 입금되는 합의금만 잘 받으시면 된다고 말씀하셨다.
뭐. 입금되어봤자 얼마나 되겠냐만, 나쁜 놈들 혼내준다는 게 중요한 거다.
‘띠링’
[입금 500,000,000원. 합의금]
어... 5억? 입금된 금액도 정말 중요하네.
홍성교 고문님께는 성과보수로 5천만 원을 입금 시켜드리고, 나특 팀장님께는 연락을 드렸더니 밥이나 사달라고 하셔서 너튜브 기획팀 회식을 시켜드렸다.
그리고 그 패스트푸드 회사는 온라인상에서 그날의 상황이 퍼지게 되어 불매운동으로 이어졌고, 그 지점은 폐업을 했다.
패스트푸드 회사의 시가 총액 30퍼센트가 날아갔다고 한다.
[퀘스트 완료, 보상으로 50만원과 최하급 재능 ‘분노의 급발진’을 습득하였습니다.]
내가 조금 급발진 하기는 했지. 그래서 이런 재능을 주신건가?
[분노의 급발진 - 10초 동안 아드레날린과 온몸의 근육을 폭발시켜 최고의 효율을 낼 수 있다.]
어.. 급발진이 이 급발진이었어?
이거 쓸데가 있을까? 뭐 모든 재능들이 그렇듯이 언젠가는 쓸 일이 있겠지 뭐.
항상 그렇지만, 생각보다 일찍 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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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이번 기획은 하계 올림픽 특집이라는 거죠?”
“네! 맞습니다. 힐링하면 운동! 운동하면 힐링! 아니겠습니까?”
“힐링하면 또라이지. 무슨 운동이야.”
송이야 다 들린다. 혼잣말이 너무 큰 것 같은데.
“흠흠. 어쨌든! 천운님이시라면 이 종목들 전부 잘 하실 수 있을 겁니다!”
“아니. 할 수 있는 게 문제가 아니라 이 기획이 너무 말이 안 돼서요.”
“네? 어떤 부분이요?”
“그냥 체험하는 게 아니라 대표 선발전에 나간다니요? 이게 말이 되나요? 협회들에서 허락을 해주겠습니까?”
“아주 적극적이던데요? 다들 우리나라에서는 비인기 종목이라서 천운님이 나와 주시는 것만 해도 홍보가 된다고 좋아하셨고, 만약에 성적이 아주 좋으면 그것대로도 좋은 거라고 적극 찬성들을 하셨습니다. 나중에는 서로 싸우시던데요? 서로 자기들 종목 참가해 달라고.”
아...공정과 원칙이 무너지는 구나..
“대신 이 컨텐츠로 벌어들이는 수익은 그 종목 선수들의 지원과 복지로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네.. 그건 잘 하셨네요. 그런데, 무슨 종목들을 하나요?”
“아! 우선 같이 가시죠.”
“네? 바로 촬영인가요? 어디 가시는 거죠?”
“대구입니다. 대구 스타디움으로 가면 됩니다. 자! 다들 출발 하시죠. 촬영팀은 먼저 가 있으신 거죠?”
“네. 이미 도착해서 셋팅 중이라고 합니다. 우리만 가면 되요.”
“가시죠.”
어? 이거 또 입에 콩을 물고 번갯불에 들이대야 하겠네.
사실 내 스케줄이 너무 바쁘다보니 이렇게 하지 않으면 언제 찍을 수 있을지 모르는 상황이다.
대회 일정에 내 일정을 맞춰야지 대회 일정을 내 일정에 맞출 수는 없으니 어쩔 수 없다.
일주일에 최소 2일은 퀘스트를 위해서 스케줄을 잡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남은 5일 동안에 모든 스케줄이 몰려있으니 빠듯하다.
도착한 대구 스타디움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국가대표 육상선수 선발전이 준비 중인 상황이어서 선수들과 선수들의 지인들, 구경하는 관중들까지 많은 사람들이 보였다.
나는 몰랐지만, 이미 내 참가 소식이 전해져서인지 육상대회에 어울리지 않게 관중들이 많은 것이라고 한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아주 준비도 없이 해도 되는 거예요?”
“사실 천운님의 성적은 중요한 게 아닙니다. 물론 성적이 좋으면 나쁘지 않겠지만, 천운님이 종목에 참가한다는 것 자체가 이 비인기 종목들에는 도움이 되는 겁니다. 아무리 천운님이라도 프로 선수들하고 비교가 되겠습니까? 하하하”
“그럼 진작 그렇게 말씀해 주시지. 알겠습니다. 부담 없이 경기 뛰고 오겠습니다. 그럼 어떤 종목 나가나요?”
“전부 다요.”
“네? 전부라는 종목이 있나요?”
“여기에서 하는 모든 종목이요.”
“고용노동부 전화번호 아세요?”
“네? 갑자기요?”
“부당노동행위로 신고합니다. PD님 조심하세요! 저에게는 홍성교 고문님이 있습니다!”
“개그가 많이 느셨군요. 어서 옷이랑 신발 갈아 신고, 100미터 경기부터 나가세요. 오늘은 생방송으로 공중파에서도 같이 하니까 멘트 조심하시고요.”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야 하는 노예 인생이다. 알겠습니다. 주인님.
내가 트랙의 출발선에 서니 선수들이 나를 보고 웅성거렸다.
“진짜 힐링님이시다! 저 팬이에요!!”
“오~ 몸매 정말 좋으시네요!”
다들 나를 신기해하고 좋아해주셨다.
아무래도 실력으로 자신들과 붙을 수는 없고, 이벤트성으로만 생각하는 것 같아 경계하지 않으시는 것 같다.
경기는 나를 포함해 9명이 출전하였다.
나를 뺀 모든 선수들은 스타팅 블록에 발을 얹고 크라우칭 스타트 자세를 잡고 있었다. 나는 하는 방법을 몰라 그냥 서있었다.
[레디! 탕!]
모든 선수들이 엄청난 반응 속도를 보이며, 달리기 시작했다. 나도 출발 신호를 듣고 뛰기 시작했는데, 다른 선수들보다 뒤에서 달리고 있었다.
‘그래도 너무 허무하게 지면 다들 실망할 수 있으니까 최선을 다해보자.’
제대로 하겠다고 마음을 먹자 최상급 재능인 [전성기 차붐의 말 근육]이 반응을 하였다.
[텅!!]
한 번씩 발을 구를 때마다 내 몸이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순식간에 앞선 선수들의 등이 다가왔다.
그러다 생각났다.
할머니를 도와주고 받았던 그 재능.
한 번도 테스트를 안 해보았지만, 지금이 사용을 할 기회였다.
‘분노의 급발진!’
[뿌드득!!! 두근. 두근! 두근!! 두근!!!!]
재능을 사용하자마자 온몸의 근육이 폭발할 것처럼 부풀어 올랐다. 대지를 박차는 내 다리가 폭탄을 발사하는 발사대가 되어 내 몸을 발사했다.
갑작스러운 폭발력에 넘어지지 않게 필사적으로 몸을 앞으로 숙였다.
심장은 내 귀에 들릴 정도로 강하게 펌프질을 하며, 강제로 내 몸을 각성 시켰다.
엄청난 양의 아드레날린이 분비되며 정신이 몽롱해졌다.
'아..답답하다.’
공기가 나를 막아서는 게 너무나 답답했다.
나를 가로막는 이 공기의 저항을 전부 다 찢어버리고 싶은 강렬한 충동이 일어났다.
내 짐승의 본능과도 같은 간절한 소망에 [전성기 차붐의 말 근육]이 다시 한 번 반응을 하였다.
터질 듯이 부풀어 오른 허벅지 근육이 공기의 저항을 이겨내며 나를 밀어내주었다.
‘아... 미칠 것 같다!!!’
해방감에 미쳐버릴 것 같았다.
나를 잡아끌던 공기를 갈가리 찢어 버렸다.
어느새 내 눈앞에는 아무도 없었다.
보이는 건 결승선 뿐.
계속 뛰고 싶었는데, 트랙이 너무 짧다.
너무 아쉽다.
[9초 78] 나는 한국 신기록을 갱신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