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5화 (45/170)

신내림

[9초 78]

엄청난 기록에 TV를 시청하던 시청자들은 경악을 금치 못하였다.

분명히 처음 출발할 때는 다른 선수들보다 늦었다.

그래도 열심히 달리는 모습에 사람들은 응원을 하였는데, 어느 순간 폭발적인 스피드를 보이며 모든 선수들을 따돌리고 결승선에 가장 먼저 도착을 해버린 것이다.

그리고 달성한 한국 신기록.

“아니! 천운님! 이게 무슨!! 어떻게..”

나의 기록에 PD님의 말문이 막히셨다.

잠시 결승선에서 숨을 고른 나는 흥분이 채 가시지 않아 더 뛰고 싶은 마음을 간신히 진정시키고 있었다.

“다음 종목은 뭔가요?”

“아무리 힐링님이라도.. 이건 정말...”

내 질문에도 PD님은 정신을 차리시지 못하고 횡설수설하고 있으셨다.

“어.. 사실 전 종목 출전은 아니고요. 100미터, 멀리뛰기, 창던지기만 출전 할 겁니다. 마라톤은 내일 출전하시면 됩니다.”

대답은 카메라 감독님이 해주셨다.

역시나 나를 골탕 먹이고 싶어 하시는 PD님의 농간이 있었지만, 항상 당하시는 건 PD님이시다.

“이제 멀리뛰기 경기장으로 가시면 됩니다. 이쪽으로 가시죠.”

나는 카메라 감독님을 따라서 멀리뛰기 경기장으로 향하였다.

우리는 모르고 있었지만, 또다시 인터넷은 나로 인하여 혼돈의 도가니가 펼쳐지고 있었다.

- 한국 신기록 실화냐?

⌎ 힐링님은 사이보그다.

⌎ 이제는 이 댓글을 반박할 수가 없다.

- 처음에 멀뚱히 서서 출발 하길래 엄청 웃겼는데, 중간부터 폭발적으로 달리는 걸 보고 입을 떡! 벌리고 멍하니 있었다.

⌎ 나도 멍하니 보고 있었네.

⌎ 나는 왜 숨을 안 쉬고 있었냐? 결승선 통과하고 나서 몰아쉬었네. 숨차서 죽을 뻔.

- 저거 자세 제대로 배우고 조금만 훈련하면 진짜 금메달 따는 거 아니냐?

⌎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하고 싶지만, 이제는 포기했다.

- 근데, 저 허벅지 보니까 엄청나기는 하다.

⌎ 슬로우로 보여주는데, 중간에 허벅지가 부풀어 올랐어.. 와.. 만져보고 싶다..

⌎ 잘 보면 온 몸의 근육이 전부 부풀어 올랐어. 와.. 이게 벌크 업 그런 건가?

⌎ 그거는 헬스에서 몸체 키우는 거고! 이거는 펌핑! 근데 일반적인 펌핑 수준이 아니다. 몸이 순간적으로 1.3배는 커진 것 같았어.

중계 방송 화면이 멀리뛰기 경기장으로 변환되고, 내가 보이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다시 화면에 집중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내 재능창을 보며 멀리뛰기에 도움이 될 만한 재능들을 확인해보고 있었다.

‘[내 종이컵은 방수야]는 아니고, [모기! 우리 헤어져!] 이건 좋은 재능이지 암. 어? 이게 언제 중급으로 승급했지?’

최하급이었던 [개구리 왕눈이는 폴짝]이 중급 [우물 안에서 탈출한 개구리 왕눈이]로 승급해 있었다.

[우물 안에서 탈출한 개구리 왕눈이 - 무릎 관절을 보호해 줍니다. 높고, 멀리 뛸 수 있습니다.]

솔직히 얼마나 뛸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멀리뛰기 선수들은 나를 포함해서 5명이라서 규정상 각자 6번씩을 뛸 수 있었다. 나는 선수들이 뛰는 모습을 보면서 동작들을 기억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아무래도 첫 시도는 [흉내쟁이]를 이용해서 따라해야 할 것 같다.

앞선 선수들의 1차 시기가 전부 끝났고,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나는 심호흡을 하며, 트랙에 들어섰다.

머릿속으로 방금 뛰었던 선수의 동작을 되새겨보고, [흉내쟁이]를 발동 시켰다. 서서히 달리기 시작하다 속도를 올렸다. 그리고 순식간에 최고 속도에 도달했다.

발 구름판이 순식간에 다가오고, 안전하게 그보다 훨씬 앞쪽에서 뛰었다.

앞선 선수가 한 것처럼 공중에서 발을 움직이며 걸어가는 것처럼 휘젓다가 마지막에 온몸의 탄력을 이용해 튕겨주었다.

그리고 착지.

[8m31]

다시 한 번 한국 신기록이 갱신되었다.

다시 한 번 인터넷이 난리가 난건 모른 상태에서 조금 더 나은 기록을 위해 전략을 세우고 있었다. 사실 자신이 한국 신기록을 세운지도 모르고 있었다.

‘달리는 속도는 [분노의 급발진]으로 보완할 수 있어. 그리고 [1초 초고속 카메라]를 이용해서 구름판에 최대한 가까이 밟을 수 있을 거야.’

어느새 나의 2차 시기가 다가왔다.

‘분노의 급발진!’

[뿌드득!!! 두근. 두근! 두근!! 두근!!!!]

급격하게 심장 박동이 빨라지기 시작하고, 급격하게 증가한 혈류량에 온 몸이 붉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온몸의 근육은 순식간에 펌핑이 되고, 달리기 시작한 내 두 다리는 트랙을 발사대로 삼아 나를 날려 보냈다.

두 팔은 강력하게 휘둘러지며 균형을 잡아주었고, 온몸의 근육이 오로지 달리기 위해 정교하게 작동을 시작했다.

‘1초 초고속 카메라!’

엄청난 아드레날린 때문에 몽롱한 상태에서도 정확한 타이밍에 재능을 발현하였다.

달리던 나를 포함해 모든 것이 멈춰보였다.

구름판을 밟는 나의 성공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집중하는 심판들의 머리가 내가 일으킨 바람에 아주 미세하게 흔들리기 시작하고 있었다.

바로 옆 트랙을 뛰고 있는 육상 선수들의 다리도 아주 천천히 땅을 박차고 있었고, 그 바로 뒤를 혼신의 힘으로 달리다 발을 접질린 선수가 천천히 공중에서 바닥을 향해 넘어지고 있었다.

[텅!]

[1초 초고속 카메라]의 재능이 끝나고, 나는 하늘을 날고 있었다.

날개가 달린 것도 아닌데, 정말 하늘을 날았다.

엄청난 해방감이 느껴졌다.

금방이라도 소리를 지르고 싶은 충동을 겨우 진정시켰다.

영원히 날 것 같았던 시간이 지나고, 서서히 내 몸이 지상을 향해 떨어지기 시작했다.

너무나 아쉬운 나는 온몸의 근육을 등 쪽으로 이완시켰다가 혼신의 힘을 다해 급격히 수축시키며 몸을 앞으로 강하게 튕겨냈다.

[펑!]

공기를 튕겨내는 소리가 들릴 리 없었지만, 내 귀에는 분명히 들려왔다.

두 발로 착지를 한 후, 바닥을 굴렀다.

아주 조금이라도 더 나아가고 싶은 내 마음에 착지까지 신경 쓸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 미쳤다!!! 와!! 저건 하늘을 난거다!!

⌎ 와... 공중에서 몸을 튕겼어.. 이게 무협지에서 말하는 허공답보냐?

⌎ 이건 운룡대팔식에 가깝다. 쩐다 진짜..

- 근데 저거 세계 신기록 아냐?

⌎ 기존에 세계 신기록이 8m95인데 확실히 넘은 것 같다. 와...

[9m 12]

압도적인 거리였다.

발 구름판도 완벽에 가깝게 밟았다.

같이 경기를 하던 선수들도 믿을 수 없는 기록에 아무런 말도 못하고, 입만 벌리고 있었다.

내 기록의 영향인지 다른 선수들은 이후로는 연신 실수를 해대었고, 결국 내 기록이 최고 기록이 되었다.

[9m 15]

마지막 6번째 시도에서 결국 내가 세운 세계 신기록을 다시 한 번 경신하였다. 멀리뛰기를 계속 반복하다보니 뛰는 타이밍과 요령들이 몸에 붙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학습과 진화] 재능의 사기적인 능력이 발휘 된 것이다.

대신 심각한 부작용이 있었다.

‘분노의 급발진은 적당히 써야겠다. 힘들어 죽겠네.’

온몸의 혈류를 급격히 순환시켜 근육을 펌핑하고, 아드레날린으로 강제 각성을 시키는 [분노의 급발진] 재능을 연속으로 사용하다보니 몸에 무리가 오기 시작했다.

아마 최상급 재능인 [전성기 차붐의 말 근육]이 없었다면 한 번 사용하고 탈진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우물 안에서 탈출한 개구리 왕눈이가 하늘을 나는 개구리 왕으로 성장하였습니다.]

중급이었던 [우물 안에서 탈출한 개구리 왕눈이]가 결국 상급 [하늘을 나는 개구리 왕]으로 승급을 하였다.

[이쪽 동네 산소는 다 내꺼가 그 산소는 내거니까 놔두고 가라로 성장하였습니다.]

승급한 [그 산소는 내거니까 놔두고 가라]는 중급 재능이다. 이제는 심폐 능력도 엄청나게 성장을 하였다.

‘확실히 집중하니까 성장이 빨라지네.’

[학습과 진화] 재능이 나의 몸을 급격하게 변화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의 마지막 종목인 창던지기를 하러 창던지기 경기장으로 이동하였다.

“천운님. 지금 난리가 났습니다. 잘 하시는 줄은 알았지만, 이건.. 정말...”

“창던지기만 하면 오늘은 끝인 거죠?”

“아! 네. 맞습니다. 설마 창던지기까지 기록을 세우시는 건 아니시겠죠? 이제는 무섭습니다. 이러다가 정말 올림픽에서 전부 메달 따시는 건 아니신지..”

“네? 제가 메달 따면 안 되는 건가요?”

“아니. 너무 잘 나가시면 이제 너튜브 안하시는 건 아닌지 솔직히 두렵습니다.”

“에이. 너튜브 그만 할 거였으면 진작 그만 뒀죠. 걱정 마세요. 우리 팀들 절대 버리지 않습니다. 제가 아무것도 아닐 때부터 저를 위해서 다들 노력해주셨잖아요. 그런데 제가 어떻게 그럴 수 있겠어요. 그럼 창던지기는 대충 할까요?”

“아이고! 아닙니다. 최선을 다하셔야죠! 하하하”

PD님은 내 대답을 듣고는 조금은 홀가분해진 마음으로 나를 응원해 주셨다.

‘이번에는 특별히 사용할 재능이 없네.’

창던지기는 야구에서의 투구와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완전히 달랐다. 스텝이 달랐고, 던지는 방법과 사용하는 근육들도 달랐다.

그나마 도움이 되는 재능들이라고는 [돌팔매]와 [전성기 차붐의 말 근육], [분노의 급발진]정도인 것 같다.

그나마도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이번에는 정말 평범한 기록이 나오겠네.’

이번에도 멀리뛰기와 동일한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8명 이하일 경우에는 총 6회를 던져서 기록을 측정하고, 그 이상일 경우에는 각 3회씩을 던져 기록이 우수한 8명이 다시 3번을 던져 기록을 비교한다.

창던지기는 나를 포함해 7명이 참가했다.

첫 번째 시도에서는 별다른 재능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냥 다른 선수들이 던지던 방식대로 다섯 걸음을 내딛으며 던지는 방식을 따라해 보았다. 다만 실험삼아서 [돌팔매] 재능을 사용해 보았는데, 내가 예상하지 못한 기능이 있었다.

최대한 먼 곳을 조준하고 던지려고 하자 몸이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앞으로 뛰어갔다.

어이없는 실수에 인터넷 댓글들이 힐링도 사람이구나라며 이번 창던지기는 예능으로 받아들였다.

‘이거 돌팔매는 내가 원하는 거리를 어떻게든 맞추어 주나보구나. 어쩌면 이거 엄청난 재능인지도 모르겠다.’

전형적인 최하급 재능답지 않은 최하급 재능이었다.

두 번째 시도에서도 [돌팔매]를 이용해 내가 현재 상태에서 얼마나 멀리 던질 수 있는지 테스트를 해보았다.

이번에는 정지선 살짝 너머에서 창을 던졌고, 실격이 되었다. 이 장면을 본 사람들은 다들 웃었지만, 몇몇 사람들은 이상하게 생각하였다.

생각보다 날아간 거리가 엄청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 번째 시도.

현재 몸 상태에서는 [돌팔매]로 확인하니 최고 거리가 98m였다.

98m 지점을 목표로 정한 후, 도움닫기를 시작했다. 앞서 두 번의 시도를 한 후여서인지 자세가 굉장히 안정되었다.

도움닫기 후, 창을 던진 나는 알게 되었다.

‘여유가 남는구나.’

아무래도 그 사이에 또다시 성장한 것 같다.

던져진 창은 32도 각도로 하늘을 날아가기 시작했다. 영원히 날아갈 것 같던 창이 떨어져 대지에 꽂힌 거리는 정확히 98m.

세계 신기록에 0.48m 부족한 한국 신기록이었다.

이후로는 돌팔매 재능도 사용하지 않았다. 다만 돌팔매로 던졌던 근육의 움직임과 감각을 계속해서 되새겼다.

그리고 마지막 6번째 시도에서 완전히 몸에 익은 창던지기는 그 기록을 깨버렸다.

[98.51m]

그 기록이 전광판에 새겨지는 순간. 전 세계 언론이 속보를 쏟아내었다.

[대한민국 스타 힐링! 육상 세 종목 신기록 작성.]

[그의 한계는 어디인가! 좌완으로는 파이어볼러! 우완으로는 창던지기 세계 신기록 달성]

[코로 먹는 탄산의 힘인가? 고추냉이의 힘인가? 그의 엄청난 신체 능력의 비밀을 파헤쳐 보았다.]

[개 사료는 완벽한 식품. 힐링의 비밀은 여기에 있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안에서 나는 녹초가 되었다.

아무리 체력이 강한 나라도 엄청난 집중력이 필요한 종목을 연달아 세 종목이나 뛰었고, 결정적으로 [분노의 급발진] 재능을 너무 남발하였다.

‘아...얼른 집에 가서 렉오 블록위에 눕고 싶다.’

대구에서 집으로 오는 길은 순식간이었다.

잠깐 눈을 감았다가 뜬 것 같은데 어느새 집이었다.

늘어지는 몸을 이끌고 엘리베이터에 오르려고 했는데, 1층에 도착한 엘리베이터에서 윗집 아주머니가 내리셨다.

“어머! 천운 총각! 오늘 TV 봤어! 어쩜 그리 운동도 잘해? 아주 사위 삼고 싶어 죽겠어!”

“안녕하세요. 아주.. 혜미 어머니.”

“어머! 알고 있었어? 나도 얼마 전에야 혜미한테 들었다니깐.”

“혜미가 우리 윗집에 사는 줄은 생각지도 못했어요.”

“언제 우리 집에 올라와요. 같이 밥이라도 먹어~”

“네. 감사합니다.”

“피곤할 텐데 어서 올라가서 쉬어요! 나중에 우리 혜미가 집에 오면 꼭 놀러와~”

인사를 하고 엘리베이터에 탔다.

그리고 엘리베이터에서 꾸벅 꾸벅 졸고 있었다.

[문이 열립니다.]

“어머. 천운 총각! 여기서 뭐해? 집에 안 갔어? 한 참 지났는데 아직도 이러고 있었어?”

아... 11층을 안 눌렀나보다.

“많이 피곤한가보네. 남자는 체력인데. 아무래도 보약이라도 한 채 해줘야겠네. 호호호 우리 남편이 먹는 보약이 있는데, 내가 몰래 몇 개 챙겨줄게~”

왜 저한테 보약을...

엘리베이터에 타시더니 11층과 12층을 눌러주셨다.

“아니 글쎄 우리 윗집 사람들 이사 가고 나서 누가 이사를 왔는데, 누가 왔는지를 모르겠어. 인사도 없어서 내가 수박을 들고 찾아갔는데, 문도 안 열어 주더라니깐.”

“저도 아직 얼굴을 못 뵀어요.”

“그러니깐! 그런데 이상한 게, 문 앞에 서있는데 이 더위에도 으스스하니 몸이 춥고 떨리더라니까. 그리고 밤마다 윗집에서 일정하게 쿵쿵거려. 심하지는 않는데, 굉장히 신경이 쓰이더라니깐.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어.”

[문이 열립니다.]

“아무튼 푹 쉬어요~ 우리 혜미도 잘 부탁하고~”

“네. 걱정 마세요. 다음에 뵐게요.”

너무 피곤해서 겨우겨우 집에 들어와 방으로 들어갔다. 송이와 엄마는 내 얼굴을 보고는 얼른 침대에 누워 쉬라고 하고는 자리를 비켜주셨다.

힘든 몸 상태에서도 겨우 렉오 블록을 침대에 깔아두고 그 위에 누웠다. 그렇게 겨우 한 숨을 돌리며 쉬려는 순간이었다.

‘띠링’

[퀘스트 발생 - 귀신의 괴롭힘을 받는 신 내림을 거부하는 여자를 구해 주시오. 제한시간 1주일.]

‘아...이제는 귀신까지도 퇴치해야 하는 거야? 이거는 뭐 어떻게 해? 무당이라도 불러야 되나? 염라 대왕님? 대답 좀 해주세요.’

[타탓]

“어우! 무슨 정전기야 또!”

한참을 침대에 누워 염라 대왕님께 텔레파시를 보냈지만, 정전기만 몇 번 일어났지 응답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우선은 상황을 알아봐야 뭘 해보던지 하지. 십자가를 가져가야 하나, 부적을 써봐야 하나. 저승이 있으니까 귀신도 있을 것 같긴 한데. 내가 퇴마사도 아니고.. 하아...’

피곤한 몸을 이끌고 올라온 13층은 혜미 어머니의 말씀대로 계절에 어울리지 않게 으스스한 한기가 느껴졌다.

[띵동!]

초인종을 눌렀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띵동!]

다시 한 번 초인종을 누르니 그때서야 문이 살짝 열렸다.

“돌아가세요. 여기는 다시 오지 마시고요.”

“잠시만요. 혹시 귀신 때문에 고생하고 계시 나요?”

“어..어떻게... 그걸..”

“제가 도와드릴 수도 있으니 잠시만 대화 좀 해보면 안 될까요?”

잠시 고민하던 그 여성분이 결국 문을 열어주셨다.

집안에는 정말 꼭 필요한 가구만 있었다. TV도 없고, 액자도 없었다. 거실 한 가운데에 탁자 하나만 있는 삭막한 집이었다.

“드릴게 없어서 죄송해요.”

“괜찮습니다. 우선 이야기 좀 들어볼 수 있을까요?”

“네. 그게 그러니까..”

김미선씨는 평범한 25살의 여성이었다.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고 안정된 직장에서 일하시던 중에 어느 날부터 몸이 급격히 안 좋아지셨다고 한다.

여러 곳의 병원들을 다녀보고, 정밀 검사도 여러 차례 받아보았지만 결과는 약간의 빈혈증상이라는 진단 뿐이었다. 그러다 큰 어머니의 권유로 찾아간 무당집에서 알게 되었다.

신병이라고.

솔직히 믿을 수가 없었다.

시대가 어떤 시대인데 신병이라니.

그런데 며칠 뒤부터 꿈에서 귀신을 만나기 시작했다. 매일 꿈에 나타나 신 내림을 받으라고 협박을 하는 귀신을 보며 도저히 일상생활을 할 수가 없었다.

결국 휴직을 하고, 도망치듯이 이사를 왔다고 한다.

혹시나 이사를 가면 쫓아오지 못할까 싶은 마음에 급하게 이사를 감행했지만, 결국은 똑 같았다.

“어떤 귀신인지 아시는 게 있으신가요?”

“장군 복장으로 나타나서 고려시대 장군이라고 했어요. 이름은 모르겠고, 요즘에는 낮에도 눈에 보여요.”

“혹시 지금도 여기 있나요?”

손가락으로 내 옆을 가리키셨다.

속으로는 흠칫 놀랐지만, 나는 염라 대왕님을 믿고 말을 하였다.

“잠시 이야기 좀 하시죠. 나와 보세요.”

[고놈 참. 대담하구나!]

모습은 보이지 않고, 목소리가 들렸다.

“장군님이라고 하셨는데, 이름이 어떻게 되십니까?”

[그걸 네놈이 알아서 뭐하려고 그러는 게냐?]

나는 핸드폰을 꺼내 고골을 실행시켰다.

“진짜 장군님인지 확인 좀 해보게요. 모셨던 왕의 이름과 본인의 성함. 직책을 말씀해 보시죠.”

[어? 어.. 그게.. 이잇! 네놈이 말한다고 알 것 같으냐!]

“구라치다 걸리면 손모가지 날아간다는 건 못 들어보셨습니까? 제가 염라 대왕님과 친분이 상당합니다.”

[염라 대왕!! 그.. 그게...]

“이분 괴롭히지 마시고 떠나세요. 그렇지 않으면 지금 바로 저승 사자를 소환 할 겁니다!”

나는 허세를 떨며 귀신을 몰아 붙였다.

[불러봐!! 어디 인간 주제에 사자를 부를 수 있다는 말이냐!!]

“저승사자는 이곳으로 오너라!!”

[히익!!!!]

나의 외침에 귀신은 혼비백산을 하며 벌벌 떠는 신음 소리만 내고 있었다. 그런데 어차피 나의 허세였으니 저승사자가 나타날 리가 없었다.

나는 너스레를 떨며 지금은 일이 있으니 차후에 불러서 혼내주겠다고 허세를 떨어보려고 하는 찰나였다.

- 부르셨소.

진짜 저승사자가 나타났다.

[히익!!! 진짜 사자다!! 어잌후!!!]

“어? 진짜 오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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