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노을
마라톤이 끝나고 한 동안은 밖을 나가지도 못하고 집에만 있었다. 쓰레기를 버리러 잠시라도 집밖에 나가게 되면.
“천운 총각! 아유. 어쩜 그렇게 사람이 착해! 사람 목숨도 다 살리고! 참. 내가 잘 아는 친구의 딸이 다니는 회사의 대리가 주말마다 다니는 교회의 집사님 딸이 그렇게 참하다는데 소개시켜줄까?”
“네? 아니요. 괜찮습니다.”
“그러지 말고, 만나보기라도 해봐~ 내가 아무나 소개 안 시켜준다니깐!”
“802호! 지금 뭐하는 거야?”
“어머. 혜미 엄마 왔어? 어.. 아참! 나 가스렌지에 뭐 올려놓고 왔는데 가볼게. 천운 총각 잘 생각해봐~”
“생각은 무슨 생각이야? 우리 예비 사위한테 꼬리치면 다 잘라 버릴 거야! 알지? 내 성격!”
몰래 쓰레기를 버리고 도망가려는 나를 혜미 어머니가 잡으셨다.
“예비 사위! 어디가? 이따가 집에 좀 올라와서 반찬 좀 가져가~ 간장 게장 담았는데 좋아하지?”
“아..네. 감사합니다. 저희 어머니가 항상 감사하다고 전해달라고 하셨어요.”
“호호호 우리 사이에 무슨 감사야~ 이따가 꼭 올라와~”
계속 이런 식이었다.
아파트 단지의 아주머니들은 내가 집밖을 나서면 귀신처럼 나타나셔서 누군가를 소개 시켜주시려고 하시고, 혜미 어머니는 어떻게 아시는지 귀신같이 나타나셔서 철벽 방어를 하신다.
저번에 영력 발산이 약했나보다. 이 동네 귀신들은 전부 사라진 줄 알았는데...
밤이 되면 몰래 빠져나와 미술 학원만 다니고 있다.
요즘 들어 그림을 계속 그리다보니 내가 느끼기에도 내 실력이 부쩍 늘었다. 이전에는 감정에 신경을 쓰면 붓 터치에 실수가 많았는데, 이제는 그런 잔 실수가 거의 없어졌다.
처음 운전을 하다보면 네비게이션 보랴, 옆 차들 신경 쓰랴, 핸들 돌리랴 정신이 없었지만, 운전이 익숙해지면 내 몸과 같이 차를 움직일 수 있고, 귀로는 라디오도 듣고, 눈으로는 주변 자동차의 흐름도 볼 수 있게 된다.
지금 내가 이런 상태였다.
눈을 감고 어릴 적을 떠올렸다.
아버지는 항상 바쁘셨지만, 꼭 토요일 저녁만큼은 나와 산책을 다니셨다.
금요일 밤에 아무리 술을 많이 드시고 오시더라도 토요일 저녁에는 나와 동네 산책을 다니셨다.
연신 입으로는 하품을 하시면서도 나의 손을 꼭 잡고 내가 이끄는 대로 따라다니셨다. 나는 우연인척하면서 꼭 문방구 쪽으로 아버지를 이끌었고, 아버지는 알면서도 끌려가셨다.
문방구에 도착해서는 아버지의 손을 뿌리치고, 신나서 문방구 안을 구경하고는 했다. 그리고 문방구에서 나올 때는 뭐라도 하나는 꼭 들고 나왔다.
엄마는 항상 아버지에게 버릇 나빠진다며 뭐라고 하셨지만, 아버지는 그냥 웃기만 하셨다.
그게 너무 좋았었다.
항상 아버지와 손을 잡고 돌아다니던 그 시간에는 주황색의 달콤한 노을이 있었다.
내가 주황색 노을을 보며 달콤한 소스 같다고 한 뒤부터는 우리에게 노을은 달콤한 노을이 되었다.
나는 눈을 뜨고 색을 조합했다.
[르네상스 시대의 대 화가]는 그 달콤하고 따뜻했던 노을 색, 추억의 색을 완벽하게 재현해 주었다.
노을 진 하늘아래 아빠와 아들이 손을 꼭 잡고 걸어가는 가슴 따뜻한 풍경이 캠퍼스에 그려졌다.
바닥에 물방울이 ‘또옥’ 떨어졌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나왔나보다.
‘보고 싶어요. 아버지.’
그렇게 나의 그리운 마음은 또 하나의 그림으로 완성되었다.
어느새 내가 그린 그림들은 내 연습실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이제는 이 그림들을 어떻게 하지 않으면 그림을 그릴 공간도 부족할 것 같다.
‘창고를 구해봐야하나?’
이제는 슬슬 구해봐야 할 때인 것 같기도 하다.
가끔 혜미는 내가 그림을 그리면 집에 들르는 길이었다면서 구경하러 왔다.
그리고는 한참을 내 그림을 보며 눈물 흘리다가, 미소를 지었다가 하며 구경하고 집으로 간다.
“오빠 그림은 슬프면서 따듯해요. 아련한 기분도 들었다가 제 어린 시절이 떠오르기도 해요. 원래 그림이 이렇게 대단한 건가요? 시간되면 다른 작가들 전시회도 구경가보고 싶어졌어요.”
나는 혜미의 말을 들으며 미소를 지었다. 내가 담아 그린 감정을 오롯이 느껴주는 혜미가 고마웠다.
“오빠. 그런데 송이 언니가 회사에 우리 비밀 프로젝트 보고하고 정식으로 허락 받았어요. 너튜브에 정식으로 올려도 되고, 음반도 내 준다고 하셨어요. 정말 고마워요 오빠.”
원래는 몰래 올리려던 노래는 송이가 회사에 보고를 하면서 정식 프로젝트가 되었다.
처음에는 연습생인 혜미가 부른다는 소리에 다들 반대를 했지만, 혜미가 녹음한 음악을 들어보더니 만장일치로 통과가 되었다.
다음 주면 나와 혜미의 노래가 너튜브에 업로드가 될 예정이다. 그리고 앨범까지.
나와 혜미가 각자 부른 버전과 듀엣으로 부른 버전이 실린 앨범으로, 표지는 내가 처음에 그렸던 [고요한 달밤]으로 결정되었다.
회사에서는 내가 그린 [고요한 달밤]을 보더니 칭찬을 멈추지 않았다.
우리 회사 가수들 앨범 자켓 사진은 전부 내가 그린 걸로 바꿔야겠다고 농담을 할 정도였다.
그림을 그리는 동안 켜놓았던 녹화영상을 멈추었다. 너튜브를 하던 버릇이 있어서인지, 그냥 습관인지는 나도 모르겠지만, 그림을 그릴 때는 항상 녹화를 해두었다.
‘언제 그림 그리는 영상들만 따로 올려야겠다.’
오늘 그린 [가장 달콤한 노을]을 한쪽 구석에 잘 말려놓고 학원을 나섰다.
‘오늘은 이쪽으로 뛰어야지.’
사람들이 거의 다 자는 시간이 되어서야 조깅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조금 더 나에 대한 관심이 사그라들어야 [아웃사이더의 존재감]이 힘을 발휘할 것 같다.
지금은 조금만 닮은 사람만 봐도 전부 힐링 아니냐고 의심하는 상황이니 별다른 수가 없다. 그저 시간이 흘러 조금은 관심이 수그러들기만을 기다려야 한다.
대신 요즘에는 사람들이 아닌 것들의 퀘스트를 하고 있었다.
‘띠링’
[퀘스트 발생 - 길을 건너다 교통사고로 죽은 귀신이 잃어버린 가족 반지를 찾아 주시오. 제한시간 2시간.]
이런 식의 퀘스트가 자주 발생하였다.
귀신들의 퀘스트는 대부분이 2시간이었다.
우연히 다시 만난 미선씨를 괴롭혔던 장군신을 만나 귀신 세계의 상식들을 물어보게 되었다. 장군신은 벌벌 떨면서도 성실하게 설명을 잘 해주었다.
이승에 미련이 많이 남은 혼령은 저승으로 떠나지 않고 이승에 남아있게 되는데, 그게 바로 귀신이라고 하였다.
자신의 무덤이나 유골함을 떠나면 예전 식으로는 한 시진, 즉 2시간이 일반적으로 귀신이 활동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나라에 큰 공을 세웠거나, 선한 카르마를 많이 쌓은 귀신의 경우에는 그 활동 시간이 많이 늘어난다고 한다.
그러다 자신의 시체가 완전히 자연으로 돌아가면 그때부터는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고, 그때부터는 귀신도 카르마를 쌓을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저승사자는 경찰 같은 존재였다. 악령만 되지 않는다면 저승사자들도 귀신들을 잡아 가지 않는다고 하니 나의 상식과는 조금 다른 귀신들의 세계다.
나는 퀘스트 네비게이션이 가리키는 곳을 향해 열심히 뛰기 시작했고, 곧이어 도착한 초등학교 앞쪽 도로가에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목격자를 찾습니다. 6월 11일 12시 경 횡단보도를 건너던 20대 여성을 신호위반한 흰색차량으로 추돌하는 장면을 보신 분은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그 현수막 바로 앞에서 한 여성 귀신이 하염없이 바닥을 바라보며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내가 가까이 갔지만, 여성 귀신은 나에게 조금의 관심도 없었다. 당연히 자신을 볼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는지 잃어버린 반지만 찾고 있는 것 같았다.
‘옆집 형은 금속 탐지기로 탐지하는 게 취미지!’
온갖 금속들이 내 눈에 반짝이며 자신들의 존재감을 자랑하고 있었다. 신호등 기둥, 바닥의 배수구 뚜껑, 누군가가 버린 캔이 나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것은 쉽게 보이지 않았다.
아직 선명하게 남아있는 교통사고 피해자 모양의 흰색 스프레이 표시의 머리와 손 부분에 변색된 피의 흔적들 쪽으로 가보니 길가 보도블록 사이에서 무언가가 반짝이고 있었다.
이펙트가 없었으면 흙으로 살짝 가려져 있어서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교묘하게 가려져 있었다.
‘이건가 보네.’
나는 카드를 이용해 보도블록 사이에서 반지를 빼내었다. 완전히 휘어져서 반지인지도 모를 그것을 손에 들고 여성 귀신에게 다가갔다.
“이거 찾으시는 거죠?”
[네? 제가 보이세요? 어! 그거 제 거예요!! 손이 잘려나가서 잃어버렸던 제 가족반지에요. 겨우 찾았다.]
“이 반지는 어떻게 해드릴까요?”
[제 납골당 주소를 알려드릴 테니 그 곳에 넣어주세요. 그래야 제 손에 반지가 생길 거예요. 엄마와 아빠를 이제야 당당하게 만날 수 있을 것 같아요. 안 그러면 나중에 만났을 때 엄마가 많이 서운해 했을 것 같네요.]
밝게 웃는 그녀에게 왠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사고를 낸 것도 아니지만, 이상하게 귀신들을 보면 미안한 마음이 자꾸 든다.
그리고 혹시나 하는 마음이 들어서 아버지에게 찾아가 보지 못하고 있었다. 만약에 납골당에서 아버지를 만나면 뭐라고 해야 할지 정말 모르겠다.
그런데, 이제는 뒤로 미룰 수가 없어졌다.
여성 귀신이 알려준 납골당이 바로 아버지가 모셔진 그 곳이었다.
집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웠지만, 한 숨도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날이 밝는 대로 찾아가보려고 하였지만,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러다 결국 오후 3시가 넘어서야 차를 운전해 납골당에 도착하였다.
납골당에는 의외로 귀신들이 별로 없었다.
다들 죽은 자리에 있는 건지, 아니면 귀신들이 별로 없는 건지 잘 모르겠다.
먼저 반지를 부탁한 여성분의 자리로 향하였다.
[故 김하영]
밝게 웃고 있는 미소가 아름다운 그녀가 있었다.
나는 잠시 그녀의 사진을 바라보다 유골함이 들어있는 곳의 자물쇠를 내 재능을 이용해 열었다.
[이번만 열어주는 거야 - 물리적인 잠금장치만 열수 있습니다.]
[딸깍]
특수 잠금 장치가 있는 곳도 있지만, 여기는 그냥 자물쇠로 열고 잠글 수 있는 구조였다.
유골함 안에 찌그러진 반지를 넣어주었다.
그리고 유골함을 조심히 넣고, 자물쇠를 다시 잠갔다. 그러자 김하영씨가 나타났다.
[정말 감사합니다. 드디어 반지가 생겼어요.]
나에게 손가락을 내민 그녀의 왼손 약지에는 깔끔한 실반지가 생겨났다.
“아주~ 아주! 오래 뒤에 부모님 잘 만나세요.”
[네. 정말 감사합니다. 얼른 부모님이 내 유골함에 놀러오셨으면 좋겠네요. 이제 뺑소니차도 그만 찾으셨으면 좋겠어요. 엄마가 너무 야위셨어요.]
자신의 죽음보다 자신의 어머니를 걱정하는 그녀가 너무 안쓰러웠다.
[퀘스트 완료, 보상으로 50만원과 최하급 재능 ‘튼튼한 손가락’을 습득하였습니다.]
그녀에게 인사를 하고, 이제는 아버지를 만나러 가야하는 시간이 왔다.
평소보다 느린 발걸음으로 아버지의 유골함에 도착하였을 때, 다행히 아무도 없었다.
아니. 다행인지 모르겠다.
막상 아버지의 영혼을 만나지 못하니 또 아쉬웠다. 나도 내 마음과 감정을 모르겠다. 보고 싶은 마음도 들고, 보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도 들었다.
‘그렇게 고생하셨는데도 미련이 남지 않으셨나 보네요.’
만나면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다.
어떻게 내가 살아왔는지 말해드리고, 아버지는 어떤 삶을 사셨는지 듣고 싶었다. 그리고 지금 나를 보며 자랑스러워하시는지 궁금했다.
‘한 번만이라도 다시 보고 싶네요. 우리 가족이 전부 저승 갈 때까지 기다려 주실 거죠? 먼저 환생하시면 안돼요. 우리 다 같이 손잡고 환생해야 돼요.’
한참을 그렇게 아버지의 유골함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어디선가 만화영화 소리가 들려왔다.
‘응? 이게 무슨 소리지?’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향하니 거기에는 바닥에 앉아있는 30대 후반 정도의 남성이 있었다. 옆에는 피자가 놓아져있고, 유골함 쪽으로 핸드폰 화면을 향한 채로 만화영화를 틀어놓았다.
그리고 열심히 무언가를 만들고 있었다.
“아빠가 이번 주는 조금 늦었지? 미안해 아들. 요즘 유행하는 주머니몬 빵을 구해서 오려고 했는데 한 개도 못 구했어. 대신 우리 영훈이가 좋아하는 피자 사왔으니까 용서해줘.”
담담하게 말을 하는 그에게서 진한 감정이 느껴졌다.
“다음에 올 때는 꼭 사올게. 요즘에 영훈이 친구들 사이에서는 이게 그렇게 유행하고 있어. 그래서 우리 영훈이한테도 보여주고 싶었는데, 미안해. 그래도 우리 아들 요즘 너무한 것 같아. 왜 요즘에는 아빠 꿈에 안 나와? 뭔가 서운한 거 있었어?”
너무나 담담하게 말을 하는데, 왜 이렇게 슬픈 감정이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아빠가 사과하는 의미로 우리 영훈이가 제일 좋아하는 렉오 블록 사왔어. 이번에 새로 나온 건데, 비행기를 만들 수 있대. 근데 아빠가 렉오 블록을 잘 못 만들잖아. 오래 걸려도 기다려줘. 열심히 해볼게.”
나도 모르게 두 눈에서 눈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영훈이가 잘 보던 신비 빌라 새로운 에피소드가 나왔어. 그래서 아빠가 틀어놨으니까 이거 보면서 기다리면 지루하지 않을 거야. 비행기 다 만들면 꼭 아빠 꿈에 나와 줘야 한다. 약속!”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열심히 렉오 블록을 조립하고 있는 그 옆에는 어린 남자 아이가 남자의 얼굴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괜찮아 아빠. 천천히 만들어도 돼. 아주 천천히 만들어줘. 아빠랑 더 오래 있고 싶어.]
너무나 가슴이 먹먹한 장면에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 볼을 따라 흘러내리는 눈물은 나의 의지로는 도저히 막을 수가 없었다.
담담하게 말하는 아빠와 그런 아빠와 있는 것만으로도 좋아하는 아들의 영혼은 내 가슴을 아려오게 만들었다.
한참을 그렇게 렉오 블록을 조립하는 남성과 그런 남성을 바라보는 아이의 영혼, 그리고 그런 모습을 보고 있던 나는 시간이 멈춰버린 세상에 있었던 것 같았다.
“자. 다 됐다. 아빠 잘하지? 우리 영훈이 꿈에 보고 싶어서 아빠가 최선을 다했어. 이제 다 만들었으니까 꼭 꿈에 나와야 한다. 보고 싶어 영훈아... 제발.. 꼭 와야 돼...”
[아빠 가지마.. 그냥 여기 있어주면 안 돼? 비행기 필요 없어! 아빠가 필요해!]
‘염라 대왕님 제발.. 제발! 도와주세요..’
‘띠링’
[퀘스트 발생 - 아이를 먼저 보낸 아빠의 꿈에 아이를 보내 주시오. 제한시간 없음.]
[1회용 재능 ‘현몽’을 습득하였습니다. 1회용 재능은 한 번 사용하면 삭제가 됩니다. 사용에 제한은 없습니다.]
‘아.. 감사합니다.’
나의 간절한 바램을 들어주셨나보다. 그런데 1회용 재능이라니 특이했다.
그렇게 아이의 아버지에게 재능을 사용하려고 할 때 무언가 내 눈을 사로잡았다.
‘사용에 제한이... 없어?’
분명히 재능의 설명에는 사용에 제한이 없다고 나와 있었다. 몇 번을 다시 봤는데도 동일한 걸 보면 맞나보다.
‘아버지를 볼 수 있겠다.’
퀘스트를 무시하고 나에게 이 재능을 사용한다면 그렇게 보고 싶던 아버지를 볼 수 있게 된다. 정말 하고 싶었던 많은 말들을 아버지의 얼굴을 보며 할 수가 있게 되는 것이다.
‘퀘스트를 실패해도 패널티가 없었어.’
몇 번의 실패에도 특별한 패널티는 없었다.
나만 모른 채 하면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퀘스트가 발생했는지 저 아저씨도 모르고, 저 꼬마 영혼도 모른다.
아무도 모른다. 오로지 나만 빼고...
그렇게 멍하니 있었다.
어느새 만화영화는 끝나있었고, 피자는 차갑게 식었다.
아저씨는 자신이 만든 비행기를 품에 안고 누워 잠이 들었다. 잠에 든 아저씨의 두 뺨에는 굵은 눈물 자국이 새겨져 있었다.
‘아.... 아버지 정말 죄송해요.’
아버지를 만났을 때 자랑스럽게 말을 할 수가 없을 것 같다.
아버지에게 저 이렇게 열심히 잘 살았다고 할 수가 없을 것 같다.
아버지에게 다른 사람들 열심히 도우며 살았다고 자랑할 수가 없을 것 같다.
“현몽 사용.”
[대상을 선택해 주세요.]
나는 쏟아지는 눈물 때문에 흐려진 두 눈을 애써 닦아내며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분에게 사용해주세요.”
아저씨의 몸이 한차례 밝게 빛나고, 옆에서 자고 있는 아저씨를 바라보던 아이가 아저씨의 머릿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나는 그렇게 한 참을 차안에서 울고 있었다.
퀘스트 완료창이 떠 있었지만, 그것도 인식하지 못한 채로 하염없이 울고만 있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덧 노을이 지는 저녁이었다. 아버지와 함께 손을 잡고 산책을 하던 그 때의 그 달콤한 노을이 보였다.
핸드폰을 꺼내보니 엄마로부터 온 부재중 전화와 메시지가 와 있었다.
[운아. 오늘 낮잠 자는데 너희 아빠가 나오더라. 자기는 잘 살고 있으니까 우리 운이랑 송이 더 이상 슬퍼하지 말고 웃으며 살라고 하시네. 아마 우리 운이가 힘들어 하는 거 알고 말해주러 엄마한테 온 것 같아. 그러니 이제 그만 힘들어하고 집에 와. 우리 운이가 좋아하는 갈비찜 해 놓았어.]
정말 미치도록 달콤한 저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