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가지.
약속했던 4회의 음악 방송 스케줄이 드디어 끝나게 되었다.
‘나는 방송 체질은 아닌가 보다. 너무 힘들어.’
생각보다 대기 시간이 너무 길고, 사람들을 상대하는 게 너무나 힘들었다. 항상 웃는 얼굴로 사람들을 대해야하고, 누구라도 만나면 나에게 말을 걸어오니 나중에는 정신이 어질어질 해져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끔 화장실을 다녀오다 보면 대기실에 앉아서 꾸벅꾸벅 졸다가도 무슨 소리만 들리면 벌떡 일어나서 인사를 하는 아이돌 선배님들이 보였다.
연습생들이 그렇게 되고 싶었던 데뷔에 성공한 선배님들의 모습이 저럴 줄은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자신들의 꿈이었던 데뷔를 이루고 나서도 또 다른 냉혹한 현실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한 해에 데뷔를 하는 아이돌들이 얼마나 되고, 그중에 살아남는 아이돌들이 몇이나 될까?
만약에 20대까지 연습생만 하다가 결국 데뷔를 못할 경우에는 어떤 삶이 기다릴까?
아니. 데뷔를 하고도 조용히 묻히는 경우에는?
대부분의 10대 아이들이 가장 선망하는 화려한 직업의 속살을 조금 들여다 본 것 같은 기분이다.
‘이건 언젠가는 회장님과 이야기를 해봐야겠다.’
좋은 방법이 생각나면 최장군 회장님과 상의를 해보고 싶다. 우리 회사만이라도 뭔가 직업 훈련이나 관련 직군에 종사할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아봐야겠다.
아니면 하고 싶은 일을 지원하는 일이라든지.
우리 회사 아이돌 연습생들에게 성공적으로 정착을 시킬 수 있다면 다른 회사 아이돌 연습생들에게도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니 그때 다른 회사들에서도 우리를 따라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니면 그 아이들도 우리가 도와줄 수도 있겠지.
저렇게 자신의 10대와 20대를 화려하게 불태워버린 이후에 길이 보이지 않는다면 그건 너무 잔인할 것 같다.
어쨌든 화려한 나의 가수로서의 활동은 이렇게 잠정적으로 중단을 하였다.
“히잉.. 저만 두고 빠져나가시면 어떡해요! 외로운데..”
혼자 스케줄을 떠나는 혜미는 나의 옷 소매를 꼭 잡고 놔주지를 않았다.
요즘 혜미는 국민 여동생으로 불린다.
뭐. 국민은 나인가? 나는 국민, 혜미는 여동생?
예능에서도 비록 화려한 입담을 자랑하지는 못하지만, 잘 웃어 주다보니 화면에 자주 잡혔다. 노래의 인기와 밝게 웃는 모습으로 엄청난 인기를 얻게 되었다.
[미모] 재능이 열심히 힘을 발휘하는지 조금씩 예뻐지는 게 눈에 보일 정도이다.
그리고 틈틈이 나에게 자신이 작곡한 노래들을 들려주고 피드백을 받아가고 있었다.
[우리의 안식처]재능의 덕인지 혜미가 만드는 곡들은 잔잔하게 위로가 되는 곡들이 많았다. 듣고만 있어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 같다.
혜미도 자신의 채널을 만들었고, 자신이 만든 곡의 습작들을 올리게 되었다. 그리고 사람들의 평가도 꽤 좋았다.
나중에 노래가 더 쌓이면 인기가 좋은 곡들은 다듬어서 앨범도 내기로 하였다.
그렇게 모두 다 잘 되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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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가는 골목길 도로가 평소보다 엄청나게 막히고 있었다.
‘이 시간에 여기가 이렇게 막히나? 무슨 일이지?’
평소 5분이면 통과하는 길을 30분이 넘게 정체 하였다가 통과를 하게 되었다.
‘아니 공사를 한 것도 아닌 것 같은데 도대체 무슨 일이야?’
도저히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집에 도착해서 수능 공부를 하고 있는데, 송이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오빠! 오빠 퇴근하는 길 엄청 막히지 않았어?”
“어! 어떻게 알았어? 혹시 너냐?”
“뭔 소리야! 이거 보보드림에 올라온 글인데 여기 오빠 퇴근하는 그 길 맞지?”
송이가 보여준 핸드폰 화면을 보니 내가 퇴근하는 그 길이 맞았다.
화면 안에서는 자전거를 탄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남자 아이가 도로를 막아서고 비켜주지 않고 있었다.
차량 운전자가 한참을 기다리다 경적을 짧게 한 번 울리자 뒤를 돌아본 그 녀석이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세워주었다.
이 아름다운 장면에 운전자분이 아름다운 목소리로 반응을 해주셨다.
[야! 길 막고 뭐하는 거야! 얼른 안 비켜?]
- 뭐 어쩌라고! 무슨 상관이야! 아이xx. 짜증나네!
아이답지 않은 욕설이 들려왔다.
[너 뭐야! 너 엄마 어디 있어! 엄마 모시고와!]
- 니네 엄마는 어디 있는데?
참신한 아이의 대답에 너무나 기쁜 나머지 운전자분이 바로 반응을 보여주셨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화면에 운전자로 보이는 남자분이 그 녀석을 향해 걸어가자, 가운데 손가락을 다시 들어보이고는 자전거를 타고 앞으로 도망가기 시작했다.
뒤에 차들 때문인지 도망가는 자전거를 쫓아가지 않고, 다시 차로 돌아온 운전자가 차에 타서 운전을 시작하자 사건은 끝난 줄 알았다.
그런데, 영상의 남은 길이가 한 참 남아 있었다.
잠시 움직이던 차 앞으로 그 녀석이 다시 나타나 길을 막아섰다.
[빵! 빵!]
[야! 안 비켜!! 너 혼날래? 어!]
- 나 미성년자야! 혼내봐! 어쩔 건대?
이후로는 이 답답한 상황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고구마 수백 개를 물 한잔 없이 마신 것 같은 엄청난 답답함이 느껴졌다.
고작 이런 걸로 길에서 수백 명이 아까운 시간을 버렸다는 생각에 화가 났다.
“오빠! 이런 녀석 어떻게 못해? 우리나라 법이 왜 이따위야? 와... 체할 것 같다.”
“그런데 너 보보드림도 보냐?”
문득 든 생각에 송이에게 물어봤다.
“그때 오빠 차 사느라고 글도 좀 읽고, 차 추천도 받았었어. 그런데 처음에는 아방떼 괜찮냐고 물어봤었거든? 댓글 몇 번에 오빠 사준 외제차를 사게 됐어! 엄청 신기하지?”
송이는 정말 신기한 표정으로 말을 하고 있었다.
“이게 아방떼 사느니 쏘니타를 사라고 하더라고, 가격도 얼마 차이 안 난다고 하는 거야. 들어보니까 맞는 것 같더라고.”
“그래서 쏘니타 어떠냐고 물어보니까 그거 살 바에는 제너센스를 사라고 하는 거야! 또 그것도 맞는 말인 것 같아서 다시 제너센스를 물어보니까 국산차 탈 바에는 외제차를 탄다고 그러더라고!”
“그러다 보니까 아방떼가 외제차가 되더라.. 그래서 돈 모은 거 다 날렸어..”
송이는 마치 만화에서 ‘하얗게 불태웠어...’라는 대사를 외울 것 같은 표정이었다.
뭐라고 계속 중얼거리며 내 방을 나가는 송이를 보며, 나는 아까 전의 영상을 생각하고 있었다.
‘왠지 다시 만날 것 같은데..’
역시나 나의 예감은 거의 예언자 수준이다.
예언과 관련한 재능은 하나도 없었지만, 이상하게 이런 예감은 예언수준으로 잘 맞는다.
길 한 가운데 서있는 아이는 화면속의 그 아이가 맞았다.
“얘야! 길 좀 비켜줄래?”
“어쩔티비!”
오호~ 강하게 나오네.
“저쩔티비! 나오라고!”
나의 강력한 한 방에 몸을 살짝 움찔했다.
“뭐야! 어쩌라고! 끌어내던가!”
나는 차에서 내려 뒤에 멈춰서 있는 차량들을 향해 잠시만 기다려 달라는 제스처를 하고는 그 녀석을 향해 걸어갔다.
‘봉인했던 재능들을 꺼내는 건 아이에게 너무 가혹한 것 같고, 이럴 때를 위해서 나에게 이 재능이 생긴 거구나!’
밤길에 엄마를 찾아 헤매던 아이의 영혼을 도와주고 받은 재능이 있었다.
무려 중급의 이 재능의 이름은 [엄마? 엄마!!]이다.
감이 오지 않나? 이 재능을 사용하면 만 19세 이하라면 자신의 엄마가 소환되는 무서운 재능이다.
“후회하지 마라!”
나의 엄포에 아이는 눈을 좌우로 굴리더니 이내 결심한 듯이 다시 강하게 소리치며 말을 하였다.
“뭐! 뭐야! 뭐 어쩔 건대!!”
그런 아이를 보며 나는 씩 웃어주었다.
“엄마? 엄마!!”
갑작스러운 내 멘트에 아이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
“뭐야! 다 큰 어른이 엄마를 찾아? 겁나 웃기네!”
언제까지 웃나보자!
“야!! 사가지!!! 너 이놈 새끼!! 너 때문에 내가 고개를 못 들고 살아!! 빨리 이리로 못 나와?”
“엄마? 엄마!! 히익!!”
이름이 사가지인가보네. 잘 어울린다.
사가지는 자전거를 던져버리고 뛰기 시작했다. 그런데 사가지가 뛰는 방향이 공교롭게도 큰 도로 쪽이었다.
[부아앙!! 빵!!!! 끼이익!!]
모래를 가득 싣고 달려오던 트럭이 갑자기 나타난 사가지를 보고 급하게 경적을 울리며 브레이크를 밟기 시작했다.
‘분노의 급발진!!’
[두근. 두근! 두근!! 두근!!!]
부풀어 오르는 근육들이 전부 다 부풀지도 못한 상태에서 나는 사가지를 향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다가오는 트럭을 보게 된 사가지는 너무나 놀라서인지 그대로 멈춰서 버렸다.
‘1초 초고속 카메라!’
다가오던 트럭의 급브레이크에 앞으로 쏠리던 모래가 트럭의 앞으로 넘쳐흐르고, 다급한 운전기사님의 표정이 일그러지고 있었다.
느리게만 느껴지는 나의 손이 사가지의 뒷덜미를 잡고, 뒤로 당기자마자 [1초 초고속 카메라]가 끝이 났다.
[끼이이익!!! 쏴아악!!]
트럭이 엄청난 스키드 마크를 그리며 멈춰 섰고, 앞으로 쏠렸던 모래가 바닥에 비처럼 쏟아졌다.
“허억. 허억..”
순간적으로 너무나 급박하게 몸을 움직였더니 온몸의 근육들이 꿈틀거리며 움직이고 있었다.
“으어어어!! 엄마!!!!”
내 손에 잡혀있는 사가지의 바지가 축축해져 왔다.
“이놈새끼!! 왜 그랬어!! 왜!!”
사가지의 엄마가 황급히 달려와 사가지의 엉덩이를 몇 대 때리시더니 사가지를 부둥켜안고, 목 놓아 울기 시작하셨다.
나는 잠시 근육들을 진정시키고 버려진 사가지의 자전거를 도로 옆으로 치운 다음, 내 차를 빼주었다. 비상 깜빡이를 켠 상태에서 차를 끝 차선에 세워놓고, 다시 사가지 모자에게 다가갔다.
지나가는 차들이 전부 창문을 내리고, 운전자들이 엄지손가락을 내게 치켜 세워주며 지나가셨다.
“훌쩍.. 흐응.. 다음부터는 절대 위험하게 그러지 마”
“알았어.. 그런데 나 목이 너무 아파! 저 사람한테 치료비 받아야 하는 거 아냐?”
죽다가 살아났는데도 이 모양이다.
“이 놈이! 정신을 못 차렸네!! 엄마가 너 그렇게 가르쳤어? 어? 못 된 건 도대체 어디서 배운 거야!”
그래도 엄마는 제대로 된 사람이라서 다행이긴 하다.
“이거 너튜브에서 다 가르쳐 준단 말이야! 나 촉법 소년이라서 처벌 못해!! 협박하면 다 돈 준다고 했다고!”
“너 이제부터 너튜브 다시는 하지 마! 그렇게 알아!!”
“아빠한테 말하면 다 들어주는데! 엄마는 왜 맨날 잔소리야!!”
나도 너튜브를 하는 입장에서 이런 소리를 들으니 다시 한 번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내가 했던 컨텐츠들이 아이들에게 악영향을 미치는 건 아닌가 하는 고민이 되었다.
‘탄산을 코로 먹는 건 인성에 문제 되는 건 아니고, 고추냉이도 뭐... 개 사료는 조금 그러나? 개랑 싸울 지도 모르고..’
뭔가 모르게 괜히 반성을 하게 된다.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아들을 잘 못 키웠습니다.”
맞는 말이라고 하고 싶은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엄청난 인내심으로 겨우 참았다.
“아이가 계속 이러면 정말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운전하는 사람이 잠깐 한 눈을 팔면 바로 사고가 날 수 도 있어요.”
그때였다.
“야!!! 이 xx야! 너 뭐하는 놈이야! 미쳤어? 어!! 누구 인생을 망치려고!!”
트럭을 운전하시던 아저씨가 엄청나게 화를 내며 아이에게 달려오기 시작하셨다.
“히익!! 엄마!!”
황급히 자신의 엄마 뒤로 숨는 사가지였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아줌마!! 이거 어쩔 거야!! 차 브레이크 파열되고! 모래 쏟아진 거! 이거 어쩔 거야! 어? 어쩔 거냐고!!”
엄마 뒤에서 조용히 사가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쩔티비...”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네.
원래는 트럭 운전사님과 잘 이야기해서 내가 손해를 보전해드릴 생각이었지만, 이런 정도라면 제대로 혼이 나봐야 정신을 차릴 것 같다.
아이가 이정도로 망가져있다면 부모의 잘못도 엄청나게 큰 것이다.
비록 사가지 엄마의 행동이 보이기로는 지극히 정상이었지만, 아이가 이런 행동을 한다는 건 부모의 방치가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저기 기사님.”
“당신은 뭐야!! 당신 자식이야? 어!!”
“잠시 진정하시고요. 사고 장면 제 블랙박스에 다 찍혔으니까 이메일 주소나 전화번호 주시면 드리겠습니다. 그걸로 경찰과 이야기하면 증거자료로 사용하실 수 있을 겁니다. 증거 없으시면 본인이 사비로 전부 해결하셔야 할 수도 있어요.”
“어... 아.. 예. 감사합니다.”
나를 원망하는 표정으로 바라보는 사가지를 한 번 바라보고, 사가지의 엄마를 향해서도 말을 했다.
“어머님. 아들이 잘못하면 그건 부모님이 전부 감당하셔야 하는 겁니다. 어머님 집 상황은 잘 모르겠지만, 아이가 하루 이틀 만에 저렇게 되지는 않았을 것 같네요. 남의 집안일에 간섭하는 것 같지만, 저도 피해자이니 말씀 드렸습니다.”
남의 가정사이니 할 말은 아니지만, 나도 피해를 봤던 당사자이고, 아이의 목숨을 살려준 사람이니 이 정도는 말해도 될 것 같다.
“네.. 정말 죄송합니다...”
나에게 사과를 하는 자신의 엄마를 보고도 미안해하기는커녕 나에게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올렸다.
더 이상 나도 할 말이 없어서 트럭 운전사님의 연락처만 받고, 세워뒀던 차를 운전해서 집으로 향하였다.
김이 아예 빠져버린 탄산을 먹은듯한 찝찝한 감정이 차올랐다.
그때 학교를 갔다가 온 송이가 곧장 내 방으로 들어와 나에게 말을 했다.
“이거 오빠 맞지? 오빠 대박인데? 사람 목숨 하나 살렸네!”
목숨 살린 건 잘했지만, 뒷맛이 아주 씁쓸하다.
“이거 아주 유명한 놈이었어! 몇 사람이 글 올렸는데, 평소에도 문제를 아주 많이 일으키는 놈이야! 그런데 이놈 아빠가 더 문제인 것 같아. 아들이 저지경인데도 혼도 안내고 오냐오냐한다더라! 저놈 엄마만 막 사과하고 다니고 불쌍해.”
그렇구나. 어쩐지 엄마는 너무나 정상인 것 같은데 아이가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살고 있었다.
“그쪽 아파트에서는 주민 서명도 받았었대. 이사 가라고. 자동차 유리창도 전부 깨고 다니고, 베란다 창문도 돌 던져서 깨고! 완전 장난 아냐!”
“우리 송이는 저러지 않아서 다행이다. 고맙다 송이야.”
“아이~ 뭐야~ 갑자기 내 칭찬을 하고 그래~”
“너무 기특해서. 초딩같지 않게 의젓하고, 사고도 안치잖아. 얼마나 기특하니?”
“초딩한테 혼나볼래? 엄마? 엄마!!”
북파 공작원의 암살 기술이 들어왔다.
효과는 놀라웠다.
만 19세가 넘으면 효과가 없는 재능인데도 송이의 [엄마? 엄마!!]는 놀랍게도 엄청난 효과가 있었다.
“니들은 둘이 합쳐서 나이가 내일 모레면 50이다. 적당히 좀 해!”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