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2화 (52/170)

하시죠. 계약.

“여기가 한국인가? 음. 생각보다 엄청나게 발전한 나라인데?”

윌리엄 터브먼은 처음 보게 된 인천 공항을 보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여러 나라들을 다녀봤지만, 이렇게 공항이 잘 되어 있는 나라는 그리 많지 않았다.

유럽이나 미국 등의 선진국들에서나 볼 수 있는 규모와 디자인이었다.

“한국은 선진국 중에 하나에요. 팍스 보이즈 모르세요? 문어 게임은? 김치! 김연아! 선흥민! 모르세요?”

친 오빠이지만 윌리엄과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소피아는 전 세계 주류 문화 중에 하나가 되어 가고 있는 한국 문화에 관심이 많았다.

“오~ 전부 메이드 인 한국이야? 대단하군. 이런 문화강국이니 힐링님 같은 대가도 나오나보군!”

“시간만 되면 가보고 싶은 곳이 너무 많아요. 너무 스케줄을 짧게 잡으신 거 아닌가요? 아무래도 일 끝나면 저는 한국에서 휴가 좀 써야겠네요!”

“지금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휴가야? 나 자리 못 잡으면 소피아 너도 백수가 되는 수가 있어.”

신임 회장으로 취임한지 얼마 안 된 윌리엄은 할 일이 너무나 많았다.

회사에서는 자신의 사람들을 핵심 부서에 임명해야하는 정치 싸움이 기다리고 있고, 처음으로 진행하는 프로젝트를 성공시켜야하는 부담감도 있다.

윌리엄으로서는 회사 내, 외적으로 해내야 하는 일들이 엄청나게 많이 산적해 있었다.

동생이기는 하지만, 뛰어난 업무 능력을 보이는 실질적인 자신의 손발인 소피아가 휴가를 낸다면 자신의 운신에 많은 제약이 생길 수밖에 없다.

“오케이! 알겠어요. 대신 팍스 보이즈의 소속사에서는 구경할 수 있게 하루만 휴가를 주세요. 여기서만 구할 수 있는 굿즈들이 있단 말이에요.”

“하아.. 일이 잘 성사되면 내가 전부 사주지.”

“회장님. 차량 준비 되었습니다.”

50대의 능글맞아 보이는 남성이 윌리엄에게 말을 하였다.

“고맙습니다. 지사장님이 직접 나오시다니 과하십니다.”

“아닙니다. 회장님이 오시는데 당연히 제가 나와야죠. 하하하 가시죠.”

굽혀진 허리는 완전히 펴지지 않고, 양손은 서로 맞잡은 채로 말을 하는 소더비 한국 지사장을 보는 윌리엄의 눈썹이 미세하게 찌푸려졌다.

“한국 미술계는 어떤가요?”

소피아의 질문에 지사장은 자신만만하게 말을 하였다.

“흠흠. 한국은 재벌들과 일부 상류층이 주도하고 있지요. 제가 나름 인맥과 신망이 있어서 굵직한 건들은 잘 받아오고 있습니다. 이번에 삼송의 전 회장님 유품들 중에서 몇 개 정도는 제가 관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사장의 말을 들은 소피아가 웃으면서 말을 하였다.

“지사장님이 많은 노력을 하시고 계시다니 다행이군요. 그런데 한국에서는 MZ세대가 새로운 구매층으로 떠오른다고 하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분석이 되고 있나요?”

“아.. 그.. MZ 세대요? 음.. 어린 사람들이 돈이 있으면 얼마나 있겠습니까? 자고로 한 번에 수억씩은 움직일 수 있어야 경매도 참여하고 그러지 않겠습니까? 하하하”

웃고 있는 지사장을 보며 윌리엄은 한심하다는 듯이 고개를 살짝 저었다.

‘자신의 나라 미술계가 어떤 흐름으로 나아가는지도 모르다니. 능력도 별로고 권력에 과하게 충성하는 걸 보니 글렀군. 돌아가면 한국 지사장부터 교체해야겠어. 그러고 보니 전임 회장 라인이라고 했었지? 흠.. 물갈이는 이자부터 해야겠군.’

윌리엄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는 지사장은 차로 이동하는 내내 열심히 자신의 충성심에 대해서 어필을 하고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이런 종류의 사람들을 많이 만나본 윌리엄도 짜증이 날 정도로 노골적이고, 적극적이었다.

“그 힐링 화가님에 대해서는 알아보셨습니까?”

“아! 제가 조사를 해봤는데, 현재 주소는..”

“제가 주소까지 알 필요는 없는 것 같은데요? 어떠한 성향인지,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삶에 대한 가치관은 어떤지 등등. 그 분을 설득할 수 있을 만한 정보가 필요합니다.”

“어.. 그. 너튜브를 하는 사람이니 돈이 중요한 거 아니겠습니까? 그 돈 때문에 이상한 것들도 먹고, 이상한 행동들도 하던데 계약금만 많이 주면 전속 계약도 충분할 겁니다.”

“계약금을 얼마나 줘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그 사람이 작년에 얼마를 벌어들였는지 알고는 있으신가요? 그리고 예술가들이 돈이 일순위인 경우가 몇 번이나 있는지 아십니까? 예술가들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그만한 조사와 정성이 필요합니다.”

너무나 어이없는 대답에 소피아가 질책을 하였다.

사실 한 나라의 지사장이면 서열상 소피아와 비슷하기에 서로 존중을 해야 하지만, 회장의 동생이자 비서실장인 소피아는 회사의 실세이다.

“어.. 아직 젊으니 10억 정도면 충분할 겁니다. 저에게 맡겨주시면 제가 어르고 달래 보겠습니다.”

“힐링님이 작년에 너튜브 광고 수입으로만 천억이 넘게 벌었습니다. 그것도 시작한 그 해에만 말입니다. 올해는 최소 5배는 더 벌거라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10억이라뇨? 그 정도는 힐링님이 숨을 깊이 들이쉬고 참고 계시면 그동안에 벌 겁니다.”

사실 한국 지사의 직원들은 유능하다.

그래서 소피아가 말한 내용들을 포함한 다양한 자료들을 지사장에게 이미 보고서로 작성해서 제출을 하였다.

심지어는 심리 전문가들에게도 의뢰해서 성향부터 설득 방법까지 전부 보고서로 작성하였다.

그러나 아무리 잘 준비를 해도 상급자가 보지를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차안에 냉랭한 공기가 흐르고, 소더비 한국 지사까지 가는 동안 아무도 대화를 이어나가지 않았다.

사실 다들 오해를 하지만, 천운이는 딱히 돈이 싫지가 않았다. 그리고 당연히 그림을 파는 일인데 돈 말고 뭘 더 이야기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예솔이 아버님 말 대로면 최소한 200억은 될 거니까. 수수료나 세금, 이런 거 다 빼도 100억은 남겠지? 한 50억은 [희망] 펀드의 자본금을 늘리는데 사용하고, 나머지는 소외가정 지원을 우리 구 전체로 늘릴까? 비싸게 팔리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게 소시민인 천운이의 한계였다.

“오빠. 내가 생각을 해봤는데..”

“생각만 해. 입 밖으로 내 뱉으면 생각이 아니잖아.”

“어우 씨! 좀 들어봐!”

“말해 보거라!”

“이번에 경매로 그림이 팔리면 돈이 생길 거잖아. 그럼 오빠는 이 돈을 바로 뭐 [희망] 펀드에 넣고, 소외가정 돕는데 쓰고! 이럴 게 뻔 하단 말이야.”

내 마음속에 도청장치를 설치했나보다! 와.. 소름.

“오빠 생각하는 게 뭐 뻔하지. 근데 그러지 말고 그걸 자본금으로 해서 지속적으로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는 게 낫지 않아?”

“그래? 그렇게 되면 더 낫긴 하겠지. 무슨 아이디어가 있어?”

송이의 말을 듣고 생각을 해보니 맞는 말 같았다.

“저번에 오빠가 잠깐 이야기를 했잖아. 아이돌 데뷔를 못하거나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 도와주고 싶다고. 그래서 생각해본 방법인데.”

송이의 말은 건물을 하나 사서 사업을 하자는 것이다. 1층에 카페, 2층부터는 네일샵, 필라테스, 방송 댄스, 너튜브 스튜디오 등을 한 건물에서 할 수 있게 설계를 하고, 자신의 적성에 맞춰서 아이들을 교육하고 채용하자는 것이다.

솔직히 카페는 너무 맛없지만 않으면, 서비스와 일하는 직원의 외모에 매출이 좌우되기 때문에 가능성이 컸다.

그리고 나머지 사업들도 확실히 사업성이 괜찮은 것들이었다.

자본금이 없을 것이니 처음에는 직원으로 채용하고, 돈이 모이면 독립을 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도 한 방법이다.

송이가 생각한 방법치고는 무언가 그럴 듯 했다. 확실히 실현 가능성도 보이고, 자금만 확보된다면 해볼 만 했다.

그렇다고 정말 말한 것처럼 건물을 사서 종합 센터처럼 만든다는 건 조금 허황된 것 같고, 그 아이디어는 조금만 더 다듬으면 괜찮을 것 같다.

“그런데 그걸 하려면 엄청난 자금이 필요할 건데, 그림 팔아서 그게 될까? 나 모았던 돈들은 펀드에 넣어버려서 이제 다시 모아야 하는데?”

“그거 나도 같이 투자할게. 오빠가 말했던 인생 설계가 딱 이거인 것 같아.”

송이가 정말 제대로 마음을 먹은 것 같다.

“우선은 교육 기관 비슷한 걸 만들어야겠어. 자기가 하고 싶은 분야들을 설문조사해서 강사진을 꾸리는 거야. 그리고 그 사람들이 일할 수 있는 직장을 만들면 자연스럽게 해결되는 거지!”

“그럼 번화가에 건물 마련해야하는데, 그게 한 두 푼이겠냐?”

“아니면 오빠가 땅 싼 곳에 건물 올려! 아니면 마을을 만들던가. 힐링 타운을 건설해서 오빠 그림들도 전시하고! 노래도 하고! 쇼도 하고! 뭔가 확실히 보여드리겠습니다! 하면 사람들도 몰릴 거 아냐? 요즘 놀러 다닐 곳도 없는데 종합 힐링 타운이 되는 거지!”

스케일 큰 거 보소.

확실히 아버지를 빼다 박았다. 사람 좋아하고, 일 벌리는 거 좋아하는 게 딱 이다.

나는 엄마를 닮아서 안정적인 걸 좋아하는데, 송이는 완전히 반대다. MBTI를 하면 완전 반대 성향일거다.

“우선은 큰 그림만 그려보고 차근차근 생각해보자. 내 그림이 확실히 팔린다는 보장도 없잖아.”

“어우! 그거 팔린다고! 딱 봐도 비싸 보이잖아! 거기에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또라이가 그린 건대! 소장 가치 확실하지!!”

아주 정확한 평가다.

그에 상응하는 조취가 취해져야 일의 능률이 오른다.

“너에게 보너스를 내리겠다!”

“오!!! 성은이 망극 하옵나이다!”

“보너스는 용돈 -50%이니라!”

“내가 오빠 목 따고 지옥 간다!!”

날뛰는 송이를 조용히 제압을 하고 회의실로 향하였다. 회의실에는 나특 팀장님과 예솔이 아버님이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회장님!”

“우리 피카소 오셨습니까!”

예솔이 아버님이 나를 반갑게 맞이해주셨다.

“아이고 피카소라니요~ 저는 고흐 학파입니다. 하하하”

“피카소는 부자였고, 고흐는 가난해서 부자이신 천운님은 피카소 과입니다.”

참으로 칭찬을 전문적으로 하신다. 미술에 조예가 깊다고 하셨는데, 사실이신가보다.

“사실 천운님이 우리 회사 소속만 아니었어도 천운님 그림을 샀을 겁니다. 그런데 미술품은 가격을 매기기가 정말 힘들지 않습니까? 나중에 제가 산 가격보다 분명히 더 오를 건데, 그럼 천운님과 사이가 안 좋아질 것 같아서 참고 있었습니다. 하하하”

회장님의 진담 같은 농담에 분위기는 화기애애해졌다.

“이건 예솔이 선물입니다.”

사회생활은 약간의 아부와 철저한 뇌물로 원활하게 돌아간다.

“아니! 이건... 대단하군요.. 와.. 이건 예솔이 시집갈 때 이걸 팔아서 건물 한 채 해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내가 드린 선물은 그림이었다.

처음 예솔이를 만난 날의 예솔이의 모습이었다. 그 순수한 영혼의 미소가 주변을 밝게 비추어주고 있었다.

영혼을 표현할 수는 없었지만, 나의 그림 실력은 예솔이의 영혼을 표현한 것처럼 느껴지게 그려내었다. 따뜻하고 천진난만한 순수한 영혼이 캔버스 안에 담겨있었다.

내 그림을 본 나특 팀장님은 계속해서 감탄만 하고 있었다.

“원더풀!! 대단합니다! 아기 천사의 영혼이라니! 르네상스 시대 대가의 작품 같습니다!”

감탄의 목소리와 함께 등장한 것은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금발의 잘생긴 중년과 금발의 깔끔한 오피스룩의 여성이었다.

그리고 그 뒤로 30대 후반정도 나이의 깔끔한 인상의 남성이 같이 들어왔다.

“안녕하십니까. 오늘 약속을 한 소더비의 윌리엄 회장님과 비서실장이신 소피아님이십니다. 그리고 저는 이번에 새로 소더비 코리아의 지점장이 된 최철두입니다.”

아주 철두철미하게 생긴 인상과 이름이다.

“반갑습니다. 회장님. 제가 최장군입니다.”

“안녕하십니까. 나특 팀장이라고 합니다.”

“안녕하십니까. 회장님. 제가...”

“오! 대가님이 힐링님이시죠? 정말 반갑습니다. 정말 뵙고 싶었습니다.”

윌리엄 회장은 다짜고짜 내 손을 잡고는 계속해서 놓지 않고 계셨다.

다들 영어로 말씀하시는데, 다행히 여기 있는 사람들은 영어는 전부 능숙하게 사용할 수 있었다.

“회장님? 힐링님이 불편해 하십니다. 예의를 지키시죠.”

소피아 비서실장님이 말려주신 덕분에 겨우 손을 뺄 수 있었다.

손을 놓고서도 윌리엄 회장은 나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계속 웃고 있었다.

“윌리엄 회장님? 저희 힐링님 작품의 경매를 맡고 싶으시다고요?”

“아! 그렇습니다. 저희 업계에서도 유명하신 최회장님이시니 대화가 쉬워지겠군요! 저번 경매에서 뵈었었죠? 회장님의 그 안목은 제가 꼭 사고 싶었는데, 이미 자수성가하신 큰 회사의 주인이시니 정말 아쉽습니다.”

예솔이 아버님. 정말 인지도가 높으시구나.

“덕분에 좋은 그림 잘 구매 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하하하 지금 미술계는 최장군님의 이혼 소식을 가장 기다리고 있습니다.”

엥? 이게 무슨 악담이란 말인가? 저 큰 주먹에 맞으면 한 방에 저승 구경할 건데, 무섭지도 않으신가?

“하하하하 저야 이혼은 절대 생각하지 않고 있으니 제 작품들이 경매에 나올 일은 없을 겁니다.”

“그러니까요. 저라도 부인분 정도의 미모면 평생을 충성하며 살았을 겁니다. 하하하하”

아.. 이제야 이해가 되었다.

이혼을 하면 재산 분할 때문이라도 소장된 그림들을 경매로 처분 할 수밖에 없나보구나.

남의 불행이 돈벌이가 된다는 게 조금은 불편했다.

“아! 혹시 그림들을 볼 수 있을까요? 제가 너튜브로는 전부 확인을 하였지만, 실제로 보고 싶어서 안달이 납니다. 한시라도 빨리 보고 싶네요.”

“하하하하 사실은 저도 천운님의 그림을 보고 싶습니다. 아직까지 저도 실물로는 못 봤거든요. 듣기로는 너튜브에 올린 그림뿐만 아니라 다른 그림들도 꽤 많다고 들었습니다.”

“그럼 바로 이동하실까요?”

내 주변은 왜 다들 이리 성격들이 급하신지 모르겠다. 다행히 박고흐 원장님께는 미리 연락을 드려놓은 상황이라서 가는 길에 다시 연락을 드렸다.

[네. 조심히 오세요. 저는 잠시 자리를 피하겠습니다.]

“네? 원장님이 왜 자리를 피하세요?”

[생각을 해보세요. 소더비 회장님에 우리나라 제일의 아니. 전 세계에서 몇 손가락에 꼽히는 연예 기획사 회장님에 천운님까지 오시는데, 저 심장 떨려서 못 있습니다. 아이들도 오늘은 수업 전부 빼놔서 아무도 안 올 겁니다. 편안하게 보다 가세요.]

“아.. 네. 정말 감사합니다.”

내가 너무 민폐를 끼치는 것 같다.

요 근래에 내가 다니는 학원이라고 소문이 나서 온갖 너튜버들과 SNS 인플루언서들이 다녀간다.

조용히 건물만 찍어 가시는 분들이 대다수이지만, 간혹, 아니 꽤 많은 분들이 무작정 들어와서 카메라를 들이댄다고 하셨다.

‘이제는 정말 따로 작업실을 구해봐야겠다.’

우리는 학원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내 작업실로 들어갔다.

“지저스! 와우!! 여기가 천국이군요. 대영박물관에 처음 발을 들였을 때보다 더 감동입니다. 아.. 어떻게 그림에서 이런 진한 감정이 느껴지는지...”

“아.. 진작 졸라서라도 와 볼걸 그랬습니다. 제가 수집한 그림들이 정말 초라해지는군요. 제가 진정한 예술을 옆에 두고도 알아보지 못했다니 정말 부끄럽습니다.”

“오! 최회장님뿐만 아니라 저도 마찬가지 입니다. 영상으로 봤을 때는 대가의 작품으로만 보였는데, 직접 보니 감정이 이렇게 진하게 느껴질지는 몰랐습니다. 이건 신화적인 작품입니다. 아.. 신이 있다면 이 그림에 축복을 내려주실 겁니다.”

입에 버터를 발랐나 왜 이리 간지럽게 말씀하시는지 모르겠다.

한참을 그러고 있는데, 이대로는 도저히 안 될 것 같아서 소피아 비서실장님에게 도움을 요청하려고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깜짝 놀랐다.

“엇! 왜 그러세요?”

소피아 비서실장님은 나를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저.. 실례가 안 되신다면 부탁드릴 게 있습니다.”

깜짝 놀라기는 했지만, 별다른 일은 없었고 나의 고객님들이시니 최선을 다하는 게 맞겠다고 생각했다.

“네. 그럼요. 뭐 코로 탄산 먹는 거 보여드릴까요?”

“아! 그것도 부탁드리고요. 여기에 싸인 좀..”

비서실장님이 조심스럽게 내미신 것은 나와 혜미의 음반이었다.

“아하하..네. 이리 주세요. 네. 이름이?”

혹시나 모를 팬 분들의 사인 요청을 대비해서 항상 매직펜을 가지고 다니고 있었다. 그러다 나도 모르게 사인을 해주던 버릇대로 이름을 물어봤다.

“소피아(Sophia) 터브먼(Taubman) 이에요.”

“엇! 죄송해요. 제가 버릇이 되어서.. 하하하.. 응? 그런데 회장님과 성이 같으시네요? 혹시..”

“오우! 실례입니다! 우리 오빠랑 부부로 오해 받는 건 정말 실례에요!”

“남매? 엇! 하하하....”

“어머! 제가 너무.. 호호호호 사람들이 가끔 돈 많은 부자를 꼬신 머리 빈 여자로 생각을 해서요. 저희 친 오빠가 맞아요! 아빠가 같죠.”

“아빠가 같으시다는 건...”

“예리하시네요. 어머니는 달라요. 그래도 우리는 사이가 좋답니다. 저희 오빠가 제 고용주라서 사이가 좋아야만 해요. 아니면 자꾸 감봉을 시켜서. 너무 짜증나지 않나요?”

제 이야기를 정면에서 이렇게 하시면.. 하하...

“그리고 농담은 뭐 그리 재미없게 하는지. 사람들이 돈 많고 회장이라서 웃어주는 거지! 자기가 웃겨서 웃어주는 줄 아나? 정말 최악이에요!”

그... 그만..

“거기에 자뻑도 너무 심해서 아주 말도 못해요. 뭐 자기 정도면 어디 가서 빠지는 외모가 아니라니! 하수도에 빠졌던 외모면서!”

제발 그만!

“호호호 제가 너무 심했죠? 요즘 스트레스가 쌓이다보니.”

“아.. 네. 저도 동생한테 잘해야겠네요. 하.하.하.”

미안하다 송이야.

“힐링님. 우리 바로 계약하시죠. 제가 최고의 대우와 서비스를 제공해 드리겠습니다. 힐링님은 마음 편하게 그림만 그리시죠. 판매는 저희가 책임지겠습니다. 수수료도 없이 해드리죠.”

한참을 구경하시던 윌리엄 회장님이 말씀하셨다.

수수료 0원은 못 참지!

“하시죠. 계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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