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인 좀...
모두가 기다리던 올림픽 야구 경기가 시작되었다.
최대한 많은 경기를 보여주고 야구의 부흥을 다시 한 번 일으키기 위한 조직위원회의 노력으로 항상 진행되던 토너먼트 방식이 아니라 8개 팀의 풀리그로 진행되었다.
우리나라의 첫 번째 경기가 시작되었다.
한국은 호주와 첫 번째 경기를 진행하였고, 모두들 한국의 무난한 승리를 예상하였다.
결과는 6대 3으로 대한민국의 충격적인 패배.
투수들은 제구력 난조로 볼넷을 남발하였고, 타자들은 타선의 응집력이 부족했다. 루상에 타자들이 나가도 홈으로 불러들이는 타격이 나오지 않았다.
병살타만 3개를 기록한 졸전이었다.
언론에서는 벌써부터 경우의 수를 계산하며 아직은 괜찮다고 다독여줬다.
그리고 이어진 도미니카 공화국과의 충격적인 2연패.
7대 1의 변명의 여지가 없는 패배였다.
그나마 9회 대타로 나선 노력이가 솔로 홈런으로 영점 패를 면했다는 게 그나마 위로가 되는 상황이었다.
각종 커뮤니티에서는 감독과 무기력한 선수들을 성토하였고, 어느 순간 왜 내가 출전을 하지 않았냐는 불만으로 변질되었다.
그리고 3번째 경기는 영원한 숙적인 일본전이었다.
“선수기용은 전적으로 제 권한입니다! 그렇게 마음에 들지 않으시면 저를 해임하시죠!”
정아집 감독은 걸려온 전화에 너무나 화가 났다.
“아니! 힐링인가 하는 놈이 뭐 대단하다고!”
“감독님. 그래도 한 번은 기회를 주셔야 감독님한테도 도움이 되실 겁니다.”
“자네도 그러나? 야구가 혼자서 가능한 스포츠야? 엄연히 팀 스포츠잖나! 아니 이길 수도 있고, 질수도 있는 게 야구인데! 다들 그럴 거면 지들이 감독하라고 해!”
불같이 화를 내는 정아집 감독을 수석 코치가 겨우 진정을 시키며 말을 하였다.
“감독님. 차라리 잘 되었습니다. 내일 일본전에서 중요한 순간에 힐링이를 올리는 거죠! 성공하면 감독님의 용병술이 성공을 한 것이고, 실패하면 힐링이가 잘못 한 거죠!”
“흐음... 그 것도 그렇군. 알겠네. 내가 잘 생각해 보지.”
일본전은 전 국민이 잠도 자지 않고, TV앞에 모여서 응원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미국 시간으로 오후 2시경에 시작한 경기는 한국에서는 새벽 3시정도에 중계가 되고 있었다.
“이번에는 꼭 이겨야 한다. 이 경기까지 지면 성적이 문제가 아니라 한국 못 돌아갈 수 도 있어. 다들 잘 알지?”
주장인 김홍 선수가 다른 선수들에게 말을 하였다.
대한민국 선수라면 가위바위보라도 일본에게 지면 안 된다. 선수들의 눈에 독기를 품기 시작했다.
그러나 경기는 치열한 투수전으로 진행되었다.
일본 최고의 투수가 지키는 마운드는 철벽이었다. 최고 구속 159km의 강속구와 한국에서는 이제 보기 힘든 변화구인 포크볼에 연신 배트를 헛돌렸다.
일본 최고의 투수에 맞서 한국은 벌떼 야구로 맞섰다.
조금의 위기만 생겨도 투수를 교체하는 강수를 두었다.
그렇게 8회까지 0의 행진이 계속되었다.
그리고 찾아온 9회 말 공격.
1아웃 상황에서 타석에 들어선 3번 타자 박노력이 풀 카운트까지 가는 승부 끝에 떨어지는 포크볼을 툭 하고 갔다 대었다.
그리고 1루에서 헤드퍼스트 슬라이딩까지 하며 혼신의 힘을 다한 노력이가 기적적으로 1루 세이프를 받아내었다.
일본의 비디오 판독 요청에 긴장되는 순간이 지속되었다. 그러다 결국 심판의 판정은 세이프가 선언되었다.
일본 에이스의 노히트 노런을 깨는 귀중한 타격이었다.
[우아아아아아!!!]
경기장과 대한민국이 함성으로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정아집 감독은 정말 중요한 순간에 대타 카드를 꺼내 들었다.
[대타 천운]
여기서 내가 해내지 못한다면 연장을 갈 것이 확실하다. 그러면 가용 가능한 대부분의 투수를 소모한 한국이 굉장히 불리해진다.
결국 내가 해내야만 한다.
내가 천천히 배트를 들고 타석에 들어서자 경기장에서는 엄청난 함성이 울려 퍼졌다.
장내 아나운서의 멘트가 들리지 않을 정도이다.
나는 여유 있게 배트를 어깨에 걸치고 투수를 바라보았다.
일본 최고의 투수.
내년 메이저리그 입성을 앞둔 대단한 선수였다. 이번 올림픽 무대를 자신의 쇼케이스로 생각할 정도로 여유와 실력을 모두 갖춘 진정한 에이스이다.
타석에 선 나를 보며 자신감 있는 표정으로 투구 자세를 잡았다.
나는 배트를 편안하게 들고 투수를 바라보았다.
와인드업이 시작되고, 혼신의 힘을 다한 투수의 공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160km]
9회 말의 상황에서 이번 경기 최고의 공을 던졌다. 코스도 기가 막히게 나의 가장 먼 곳 대각선 쪽이었다.
약간은 멀지만, 이 경기 내내 주심이 스트라이크를 잡아준 그 코스였다.
완벽하게 제어되어 날아가는 자신의 공에 일본의 에이스는 아주 만족하였다.
‘1초 초고속 카메라’
눈 깜빡할 사이에 날아오던 공이 멈췄다.
그리고 나의 타격이 시작되었다.
허리를 부드럽게 돌리며 배트를 든 양손을 자연스럽게 휘둘렀다. 엄청난 악력과 손목 힘으로 발생된 운동에너지는 날아오던 공을 반대 방향으로 날려 보냈다.
[딱!!]
경기장 안의 모든 사람이 하늘에 떠있는 공을 바라보았다. 공은 엄청난 속도로 솟구쳤고, 지켜보던 모든 사람들의 고개가 경기장 너머로 사라지는 공을 따라 움직였다.
그리고 나는 마지막 팔로우 스윙까지 마친 뒤에 자연스럽게 배트를 놓았다.
경기장 밖으로 날아간 홈런 볼 보다도 더 크고 아름다운 배트 플립이었다.
내가 베이스 런닝을 할 때 모든 선수들이 달려 나왔고, 결국 나는 홈까지 들어가지도 못하고 중간에서 선수들에게 잡혔다.
정신없이 헬멧을 두드려 맞고, 음료수 세례를 받았다.
결국 이날 나는 1루에 주자를 두고 홈런을 쳤지만, 1점의 타점만 얻게 되었다.
그래도 정말 행복한 날이었다.
대한민국에서 엄청난 함성이 터져 나왔다.
[우와아아아아!!!!]
모든 아파트 단지에서 사람들의 환호성이 쏟아져 나왔고, 이른 아침 출근길의 모든 사람들이 핸드폰으로 경기를 보다가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염라 대왕도 소리를 질렀다.
“으아아아아!!! 폭주한다!! 시스템이 폭주해!!”
“대왕!! 비상이옵니다!”
“누가 지금 비상인지 모르냐? 천운이 시스템이 폭주하잖아!!!”
“아니! 그게 아니라 옥황상제께서 오고 계십니다!”
“어? 누구?”
“대왕의 직속상관이시자 하늘의 업무를 담당하시는 그분이요.”
“비상!!! 야! 다 치워!”
“다 봤네. 이게 다 무슨 일인 겐가!”
“억!! 그.. 그것이..”
상황 설명을 다 들은 옥황상제는 말을 하였다.
“내가 비록 직책상 자네의 상관이네만, 자네는 저승의 지배자가 아닌가. 어찌 이리 안이하게 대응을 한 게야. 취지는 좋았으나 방법이 조금 어설펐네. 저기 천운이라는 자는 이미 천상에 한 발을 걸친 상태이니 이름을 천상에 등록해 놓겠네. 그럼 시스템에서 감당 못하는 카르마는 천상에 보관이 될 터이니 걱정하지 말게나.”
“감사하오. 내 옥황을 뵐 면목이 없소이다.”
“아니네. 자네 덕분에 대악마의 준동이 늦어지고 있으니 잘 한 결정이네. 그리고 나는 자네를 믿네.”
옥황상제는 부드럽게 웃어주고는 홀연히 사라졌다.
“휴... 식은땀이 다 나네. 야! 누가 경비 섰어! 누구야!”
“저.. 저이옵니다.”
“너 무간지옥 한 달!!”
“히익!! 억울하옵나이다!!”
아무튼 환호성이 난무하는 저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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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로 돌아올 때까지 우리는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모두들 지금까지 쌓아오던 스트레스를 한 방에 날려버리게 되었기 때문에 서로 눈만 마주쳐도 하이파이브를 하고 소리를 질러댔다.
그 광란의 흥분은 다음날 경기를 위해 스태프들이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겨우 진압이 되었다.
다들 프로들답게 승부욕이 대단했지만, 너무나 늦은 대표팀 소집에 시차 적응까지 실패를 해서 컨디션들이 말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번 일본전 승리를 하며 지금까지 쌓아둔 스트레스가 풀려나가며 컨디션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작 된 연승행진.
대만 전 7 대 3 승리.
멕시코 전 4 대 2 승리.
쿠바 전 5 대 3 승리.
그리고 기적적인 미국과의 1 대 0 승리.
미국전 승리의 주역은 자신의 인생 경기를 펼친 김광연.
메이저리그에서 인상적인 활약은 했지만, 결국 오래 버티지 못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고 모두들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 말을 자신의 혼신의 힘을 다한 역투로 잠재워버린 김광연이었다.
“내가 야구를 시작하고 가장 컨디션이 좋았던 날이었다.”
김광연 선배가 나에게 해준 말이었다.
“다음 미국전은 너가 해줘야 해. 솔직히 우리 투수 중에서 미국 타선을 막아낼 선수가 없다. 그리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고.”
나는 일본전의 극적인 홈런 이후에 다시 벤치에서 대기만 하고 있었다.
아직까지 여론은 나를 왜 쓰지 않느냐는 말이 더 많지만, 승리를 계속하고 있으니 어느 정도는 지켜보자는 쪽으로 바뀌고 있었다.
중요한 순간에 사용하기 위해 아끼는 게 아니냐는 전망이 우세했다.
그리고 새롭게 떠오른 스타는 바로 박노력이다.
일본전을 뺀 모든 경기에서 홈런을 쳐낸 강타자로 거듭났다. 그리고 대만 전부터는 주전 포수로 활약하며 수준급의 수비실력까지 보여주니 메이저 스카우트들의 관심까지 받게 되었다.
이번에 개발 된 세 개의 중급 재능들 덕분에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신하게 되었다.
[내가 제일 잘나가 - 내야 안타에도 세이프가 될 확률이 대폭 증가합니다.]
[사기꾼의 프레이밍 - 프레이밍으로 볼을 스트라이크로 만들 확률이 증가합니다.]
[송구합니다 - 루상의 주자가 도루를 시도할 때 팝 타임이 0.3초 줄어듭니다. 송구할 때 정확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전부 포수에게 중요한 재능들이었다.
그리고 나에게 전수 받은 [패스트볼 킬러]는 무려 상급의 재능으로 패스트볼 한정으로는 여포가 될 수 있는 무시무시한 재능이었다.
중요한 순간에 한 방씩을 해주는 노력이 덕분에 타선의 힘이 살아났고, 안정적인 포구와 프레이밍으로 투수들에게 안정감을 주었다.
사실 이 부분이 김광연의 완봉승에 지대한 역할을 하였다.
이번 올림픽은 모든 팀들이 한 번씩 경기를 하고, 3위와 4위가 동메달 결정전을 한다. 그리고 1위와 2위가 결승전에서 겨뤄 금메달과 은메달을 결정하게 된다.
모든 경기가 끝났을 때 1위부터 4위까지는 아래와 같았다.
1위 - USA 6승 1패
2위 - 대한민국 5승 2패
3위 - 일본 4승 3패
4위 - 도미니카 공화국 4승 3패
초반 2연패에 불안한 출발을 한 대한민국이 기적 같은 5연승으로 결승전에 진출하게 되었다. 대한민국은 야구 경기가 있는 날이면 축제 분위기가 되었고, 이제는 마지막 하이라이트만 남겨두고 있었다.
“하아.. 아무래도 힐링이 밖에 없겠지?”
“네. 결승까지 왔는데 허무하게 지면 여론이 만만치 않을 겁니다. 지금도 계속 이기고 있어서 참고 있었던 거지 계속 말은 나오고 있습니다.”
“광연이는 어때?”
“미국전 이후로 컨디션이 다시 올라오지 않고 있습니다. 그날 너무 무리를 한 것 같습니다.”
“그럼 선발은 힐링이로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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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운아. 오늘 컨디션 어때?”
“그냥 평상시대로?”
“그럼 퍼펙트네.”
설레발을 치는 노력이다.
어느새 국가대표 주전 포수 자리를 차지한 노력이는 나와 결승전에서 배터리를 맞춘다는 생각에 흥분을 감추지 못하였다.
‘드디어 마운드에 서보네. 정말 길고 긴 기다림이었구나. 사부님 말씀이 맞아들어 간다는 게 더 소름인데?’
사부님은 경기에 나가지 못하는 나에게 계속해서 멘탈 관리가 중요하다며 이야기를 해주셨다.
사실 나야 출전해도 그만, 아니어도 그만이지만 오히려 사부님이 그렇게 애써서 말을 해주시니 기분은 좋았다.
그리고 분명히 결승전인 미국전에서 내가 선발이 될 거라고 하셨다.
결승전 경기 시작 전에 팍스 보이즈 아이들과 아주 짧은 재회를 하고, 안부를 물었다. 그리고 너무나도 바쁜 일정을 소화중인 아이들은 시구만 하고 바로 떠날 수밖에 없었다.
“형! 꼭 이기세요!!”
아이들이 선발투수에게 부담을 주고 갔다.
“플레이 볼!”
주심의 경기 시작 사인과 함께 미국 선발 투수가 올라왔다.
맥스 슈어.
메이저리그 최고 연봉의 주인공이 투구를 시작했고, 우리나라의 1번부터 3번까지의 타석은 순식간에 삼진으로 끝나버렸다.
평균 구속 154km의 포심과 강력한 슬라이더로 오른손 타자들을 그냥 서있다 들어오게 만들었다.
그리고 드디어 나의 시간이 돌아왔다.
“후우...”
심호흡을 한 번 하고, 글러브를 왼손에 끼웠다.
“어? 왼손에 글러브를?”
타석에 들어섰던 미국의 1번 타자가 타임을 불렀다.
“뭐야! 양손용 글러브야?”
미국 벤치에서 분주한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타자. 빨리 타석에 들어와.”
시간을 끌던 1번 타자가 다시 타석에 서게 되었다.
‘국제대회 첫 투구인데 사부님 마음에 쏙 드는 공으로 던져야지.’
드디어 시작된 와인드업.
몸을 꼬았다 풀어내며 회전하는 내 몸에서 팔이 채찍처럼 휘어져 나갔다.
거의 사이드암에 가까운 언더핸드 폼의 공이 우타자를 맞출 듯이 날아갔다.
“오 지져스!!”
자신을 맞출 것처럼 날아오는 강속구에 타자는 황급히 몸을 돌리며 피했다.
“스트라잌!!”
들려오는 건 스트라이크 콜.
“왓?? 이게 스트라이크라고요?”
“분명히 들어왔어! 더 이상 항의하면 경고야!”
불만이 가득한 표정으로 타석에 서는 타자는 자신에게 도대체 무슨 공을 던졌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그러나 경기를 지켜보던 대한민국 국민들은 똑똑히 보았다.
타자를 맞출 듯이 날아가던 공이 마지막 순간에 엄청나게 휘어지며 포수의 글러브 안으로 들어가는 걸.
- 저거 법규 형님의 프리즈비 슬라이더다!!
⌎ 저거 반칙 아니냐? 사람을 맞추려고 위협하면 반칙이지!
⌎ 야알못 오셨네!
- 그런데 오른손으로 투구하다니 저런 걸 숨겨두고 있었네!!
⌎ 자세히 보면 글러브가 양손용인 것 같다.
⌎ 왼손 타자는 왼손으로 죽이고! 오른손 타자는 오른손으로 죽인다!!
한국은 축제 분위기였다. 미국 최고의 선수들로만 구성된 타선이 나 한 명에게 추풍낙엽처럼 쓰러지는 모습이 그 옛날 IMF시절의 영웅인 박찬오를 보는 것 같았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공격 시간만 되면 상황은 역전이 되었다.
맥스 슈어의 투구에 속절없이 삼진을 당하는 타자들을 보며 한숨만 쉴 뿐이었다.
그렇게 4회까지 양 팀 투수들의 퍼펙트는 이어졌고, 5회 초 선두타자에 4번 박노력이 서게 되었다.
‘천운이가 맥스 슈어 글러브가 많이 꺾이면 포심이라고 했어. 그것만 보고 치자.’
아주 미세한 차이이기는 하지만, 내 눈에는 분명히 보였다. 포심을 던질 때 전력투구를 해서인지 글러브가 미세하게 더 꺾어져 보였다.
아무래도 나와의 퍼펙트 페이스 대결 때문에 혼신의 힘을 다해 던지다보니 평소에 드러나지 않았던 부분이 들어난 것 같다.
[펑!!]
‘이거구나!!’
노력이의 눈에도 분명히 보였다.
비록 한 복판에 꽂히는 포심을 놓쳤지만, 다시 한 번 날아온다면 분명히 쳐낼 수 있었다.
“흐압!”
자신의 구위에 상당히 자신감을 가진 맥스 슈어가 연속으로 포심을 던졌다. 비록 몸 쪽으로 바짝 붙여 던졌지만, 집중력이 극에 달한 노력이는 이 공을 정확히 당겨쳤다.
[따악!]
좌측 담장을 살짝 넘어가는 홈런이었다.
“우아아아아아!!!!!!”
경기장이 온통 소리의 폭력에 시달렸다. 귀로 소리가 들리는 게 아니라 온 몸으로 소리가 느껴졌다.
너무나 잘 던진 공을 제대로 받아친 노력이를 보며 맥스 슈어는 허탈한 웃음을 보였다.
그렇지만, 홈런 한 방으로는 메이저리그 최고의 투수인 맥스 슈어를 무너트릴 수 없었다.
비록 퍼펙트도 노히터도 깨졌지만, 그 이후로도 완벽한 피칭을 이어나갔다. 9회 초까지 총 112개의 공을 던져 삼진 17개를 잡은 최고의 피칭이었다.
옥의 티라면 5회에 노력이에게 맞은 홈런 한 방.
이 단 한 방에 자신은 완벽한 피칭을 하고도 패전 위기에 놓이게 되었다.
나는 정말 다양한 투구를 보여주었다.
왼손 타자에게는 왼손 쓰리쿼터와 왼손 언더핸드를 번갈아가며 던져주었고, 오른손 타자에게는 오른손 쓰리쿼터와 오른손 언더핸드를 던져주었다.
타자에게 던진 모든 공이 전부 다른 구질로 들어가니 타자들 입장에서는 미칠 노릇이었다.
연신 헛도는 배트와 내 뱉는 욕설만이 그들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이었다.
9회 말 2아웃. 마지막 타자는 대타로 바뀌었다.
마이크 트라이.
쿠바와의 경기에서 몸에 맞는 공에 발목을 다쳐서 지금껏 출전을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이크 트라이가 없더라도 미국의 화려한 타선은 어느 나라 투수들이라도 전부 박살을 냈었다.
하지만, 올림픽 무대에서 퍼펙트라는 대기록의 희생양이 될 수 없는 미국 대표팀은 자신들의 자존심을 지켜줄 최고의 타자로 마이크 트라이를 선택하였다.
비록 최고의 몸 상태는 아니었지만, 마이크 트라이는 굉장한 흥분감에 집중력이 최고조에 달하고 있었다.
내가 선택한 마지막 투구폼은 랜디 존스의 투구폼도 아니고, 사부님의 언더핸드도 아니었다.
오른 손 오버핸드.
노력이의 표현대로면 대포가 자신을 죽일 듯이 날아오는 것 같다고 하였다.
다른 구질은 필요 없었다.
오로지 포심.
회전수를 최고로 올린, 전통 우완 오버핸드의 자존심.
‘이게 나 천운의 오리지널 투구다!!’
[콰앙!!!]
마이크 트라이가 날아오는 공에 반응도 못할 정도로 강력한 포심이었다.
[173km]
[우...우아!!!!!!]
아롤디스 채브먼이 2011년에 세운 107마일(172km)을 넘어서는 초 강속구였다.
그러나 마이크 트라이는 침착하게 머릿속으로 방금 날아온 공의 궤적을 그리며 배트를 휘둘러보았다.
“흐압!!”
[틱!!]
174km의 엄청난 강속구를 배트로 맞춰내는 마이크 트라이였다.
‘역시 대단하기는 대단하구나.’
집중력이 최고조에 달한 마이크 트라이는 나의 공에 반응을 해냈다. 그리고 누구보다 빠른 배트 스피드는 그 반응을 타격으로 바꾸는데 성공하였다.
비록 살짝 빗맞아서 파울이 된 타구였지만, 타이밍은 맞아 들어갔다.
나는 마이크 트라이를 바라보며 공을 잡은 손을 보여주었다. 선명하게 내가 공을 잡은 그립이 보였다.
포심.
마이크 트라이는 나를 보며 정말 환하게 웃어보였다.
그리고 배트를 저 멀리 하늘을 향해 겨누었다.
예고 홈런.
두 명의 천재들의 자존심을 건 마지막 공이 내손에서 드디어 발사되었다.
이번에는 앞선 두 개의 포심과 질적으로 다르다.
[뿌드드득!!]
정말 공이 터져버리지는 않을까 싶을 정도로 공을 찌그러트리는 내 악력이 마지막까지 공을 찍어 누르며 엄청난 속도로 공을 회전 시켰다.
너무나 긴장한 나머지 실수를 해서 폭투를 한 건 아닐까 의심될 정도로 바닥을 향해 던져진 그 공은 서서히 떠오르더니 마이크 트라이의 몸 쪽 깊숙한 스트라이크 존을 향해 날아갔다.
‘깊다!’
마이크 트라이의 집중력은 상상을 초월하는 나의 포심에도 흔들리지 않고 볼을 골라내었다.
“스트라잌!! 아웃! 게임 셋!!!”
하지만, 주심의 콜은 스트라이크.
뒤를 돌아본 마이크 트라이의 눈에는 기가 막히게 프레이밍을 한 노력이의 미트가 존안에 존재하는 모습이 보였다.
[사기꾼의 프레이밍]
배터리의 완벽한 합작이었다.
심판의 스트라이크 콜에도 한 동안 그 자세를 유지한 노력이가 벌떡 일어나더니 포수 마스크를 벗어던지고 나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나는 달려든 노력이를 안아들지 않고 옆으로 치우고, 마이크 트라이에게 걸어갔다.
타석에 계속 서있던 마이크 트라이는 다가오는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마이크 트라이의 손을 잡고 씩 웃어주었다.
“싸인 좀...” “싸인 좀...”
우리는 같은 말을 했고, 어색하게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다.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 LA올림픽 금메달 획득.
승리 투수 천운, 퍼펙트 달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