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잘한 것 같다.
“...아.. 운....”
무슨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너무나 편안해서 눈을 뜨고 싶지가 않은데, 자꾸만 귀찮게 말을 걸어온다.
그러다 문득 기억이 떠올랐다.
달려드는 자동차와 당황한 운전자 눈빛.
내가 온 힘을 다해 아이를 밀쳐냈던 기억.
[1초 초고속 카메라]를 사용한 것도 아닌데, 모든 것이 멈춰보이던 순간.
차에 부딪쳐 하늘을 날아가며 보았던 맑은 하늘.
“허억! 이게 뭐지? 내가 살아있나?”
누워 있다가 정신이 들자, 급하게 상체를 들어올렸다. 분명히 죽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하나도 아프지가 않았다.
깜짝 놀라서 주변을 돌아보는데, 온통 하얀색의 공간이었다.
그리고 내 옆에는 누군가가 앉아서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운아. 괜찮니?”
“응? 누구.. 어? 아버지?”
“그래. 아빠야. 운아 이제 괜찮니?”
“아버지! 정말 아버지세요? 정말로요?”
“그래. 맞아. 나 아빠야.”
“어? 그럼 여기는 저승인가요? 제가 알던 모습하고 조금 다른데요?”
“저승은 아직 아니고 너의 의식속이야.”
“어? 그럼 어떻게 아버지가 여기 계실 수 있는 거죠? 그냥 제 상상인가요? 아니죠?”
“염라대왕님께서 힘을 써주셨어. 저승에서 너 올 수도 있다고 준비하고 있거든. 아무래도 지금 운이 너 상태가 많이 안 좋은가봐.”
그래도 아직 죽지는 않았는지 이상한 공간 안에서 존재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잘 지내고 계셨어요?”
“그럼~ 아빠는 저승에서 잘 지내고 있었어. 너희 엄마 올 때까지는 기다리려고. 너랑 송이는 서운할지도 모르겠는데, 너희들까지 기다리기에는 너무 오래 걸릴 것 같아서. 하하하”
너무 오래 기다릴 것 같다고 하셨는데, 내가 너무 일찍 와버렸다. 솔직히 지금 당장이라도 저승으로 갈 수도 있는 상황인 것 같았다.
아버지를 보자 그동안 하고 싶었던 말들을 하기 시작했다.
“저 아버지 없는 동안에 정말 많이 힘들었어요. 솔직히 아직도 아버지의 선택이 맞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제가 가장이 되어보니 심정만은 이해가 되더라고요. 그래도.. 아직은 많이 서운해요.”
“정말 미안하다... 아빠가 정말 너무 미안해.. 아빠는 너희를 잃을까봐 너무 무서웠어. 어떻게 해야 할지, 어떻게 하면 좋을지 물어볼 사람도 없어서 너무 두려웠단다. 아빠도 아빠는 처음이었거든...”
그렇다.
너무나 강해보이셨던 아버지도 사실은 아버지 역할이 처음이셨다. 그리고 어린 나이에 부모님을 여의셨던 탓에 의지할 사람도 없으셨을 것이다.
그리고 고아라는 사실에 외할아버지의 인정을 받지 못한 아버지는 실질적으로 기댈 곳이 아무 곳도 없었다.
그저 가족을 위해 몸이 부서져라 일만 하셨던 아버지셨는데, 그런 아버지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큰 사건이었다.
그리고 사채업자들의 협박도 무서웠을 것이다.
“그래도 제가 원망하는 건 이해 해주세요. 아버지와 엄마 없이 너무 힘들었거든요. 아무리 힘들었어도 같이 지냈어야죠.”
“그래. 그렇게 지내면서 얼마나 후회했는지 모르겠다. 몇 번을 돌아가자고 엄마랑 이야기를 했었는데, 결국에는 용기가 나지 않더구나. 너희들에게 원망을 들을 용기가 부족했어...”
아버지의 말에 나는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한 인간으로서 견딜 수 있는 최대치의 불행을 겪으신 아버지다.
어린 나이에 혼자가 되셨고, 사랑하는 엄마를 만났지만 외할아버지는 우리 아버지를 인정하지 않으셨다.
그렇게 외할아버지는 돌아가실 때까지도 아버지를 찾지 않으셨고, 나는 외할머니를 외할아버지 장례식장에서 처음 뵙게 되었다.
그리고 그 다음해에 외할머니도 돌아가셨다.
아무도 의지할 곳이 없는 상황에서 가족보다도 더 믿었던 형제 같은 친구에게 배신을 당하셨다.
그리고 지옥 같은 빚쟁이 생활을 이어오시며 몸과 영혼은 전부 망가지셨을 것이다.
아버지의 원망을 들을 용기가 없었다는 말이 내 마음을 아프게 찔러왔다.
“아버지랑 엄마가 그렇게 떠나시고, 그 조그마한 집을 지키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어요. 그런데 어린 나이의 학생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더라고요. 그나마 가능한 곳도 부모님 동의서를 써오라고 하는데, 차마 거짓말로 써갈 수가 없었어요.”
내가 말을 시작하니 아버지는 조용히 내 손을 잡고 말을 들으셨다.
“새벽에 폐지나 박스 줍는 일을 시작했어요. 리어카는 구할 수가 없어서 길에 버려져있던 쇼핑카트를 밀고 다녔죠. 그러다가 할아버지들과 할머니들에게 많이 맞았어요. 힘든 사람들끼리 도와주며 살 줄 알았는데, 더 하더라고요.”
내 손을 잡은 아버지의 손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숨겨놨던 카트도 사라져버려서 어쩔 수 없이 포기하고, 택배 물류 창고에서 밤에 일하게 되었어요. 운이 좋았죠. 정상적이면 일할 수 없었을 건데, 현금으로 받기로 하고 일을 시작했어요. 첫날은 너무 힘들어서 주저앉았는데, 아저씨들이 발로 차더라고요. 제가 안하면 자기들이 해야 한다고. 그렇게 일하고 처음 받은 돈이 5만원이었어요. 그걸 손에 쥐고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내 손을 잡고 있던 아버지는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눈물만 흘리셨다.
“사실 이런 건 아무렇지도 않았어요. 오히려 뿌듯했거든요. 아버지랑 엄마에게 보란 듯이 잘 살고 싶었어요. 두 분이 버리고 간 우리가 이렇게 잘 살고 있다고. 그런데 처음으로 아버지가 걸어온 전화에 알게 되었죠. 우리를 버린 게 아니구나..”
“엄마 아빠는 너희를 절대 버리지 않았어.. 정말 미안하다..”
“알아요. 사실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는데, 그냥 미운 마음에 고집을 부린 것뿐이에요.”
나의 말에 아버지는 다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셨다.
“제가 제일 힘들었던 건 친구라고 생각했던 애가 저를 괴롭힐 때였어요. 처음에는 말로만 괴롭히다가 나중에는 많이 맞았어요.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지만, 버티는 것 밖에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어요.”
잠시 그때의 감정이 되살아나서 말을 멈추었고, 겨우 감정을 추스르고서야 말을 이어나갔다.
“아무도 저를 도와주지 않았어요. 선생님도. 친구라고 생각했던 같은 반 아이들도. 오로지 저랑 송이만이 같은 편이었어요. 아무도 우리 편이 아니더라고요.”
나는 아직도 그때의 동창들을 친구라고 생각지 않는다. 그저 같은 나이에 같은 학교, 같은 반에서 수업을 들은 사이일 뿐이다.
“그러다 결국은 큰 일이 벌어졌고, 운 좋게도 그 애가 전학을 가게 되었어요. 그때는 정말 너무 기뻐서 밤새 울었어요. 그리고 계속해서 기도했어요. 그 애 아버지가 국회의원 선거에 꼭 붙게 해달라고. 그래야 그 애를 다시 안 볼 것 같았거든요.”
다행히 지금은 그 모든 게 해결이 되었다.
“그리고 어찌어찌 대학을 들어가게 되고, 군대도 다녀오고, 졸업을 하게 되었을 때, 지금까지 겪은 건 정말 새 발의 피라는 걸 알게 되었어요. 그때는 희망이라도 있었는데, 취업은 정말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혹한 현실이더군요. 서서히 죽어가는 날들이었어요. 언제 죽어도 이상할 게 없는 상태로 살아가는데, 그 때 버틸 수 있었던 건 아버지도 엄마도 아닌 송이였어요.”
그랬다.
내가 송이를 먹여 살렸다고 송이는 말을 하지만, 사실은 송이가 있었기에 내가 살 수 있었다. 송이가 없었다면 예전에, 아주 예전에 이 삶을 끝냈을 것이다.
“그러다 저에게 기적이 일어났어요. 그래서 돈도 아주 많이 벌었거든요. 그때 아버지랑 엄마랑 같이 살 수 있다는 생각에 밤잠을 설쳤는데... 며칠만 더 빨리 전화 주시지.. 아니. 제가 조금만 더 적극적으로 연락 할 방법을 알아뒀었다면 아버지가 그렇게 허무하게 돌아가시지 않으셨을 거라는 생각에 미칠 것 같았어요.”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에 정말 내 스스로를 많이 원망했었다. 뭐가 그렇게 정신이 없었는지, 조금만 더 빨리 연락을 드릴 방법을 찾았으면 달라졌을 텐데...
“그래도 지금은 너무나 행복해요. 저 아버지 만나면 꼭 자랑하고 싶었어요. 저 이렇게 힘든 상황에서도 나쁜 짓 하지 않고, 정말 열심히 살았어요. 여유가 되는대로 사람들을 위해서 노력했고요. 아버지가 항상 말씀하셨잖아요. 맛있는 노을 보면서 다른 사람 도와주는 착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저 정말 그렇게 살아왔어요. 잘했죠?”
내 말에 아버지는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래! 정말 장하다! 내 아들이 이렇게 잘 커줬어.. 정말.. 정말 장하다.. 운아...”
나는 울고 있으신 아버지를 끌어안아주었다.
그리고 아버지는 흐느끼며 말씀하셨다.
“그때 그렇게 말해주지 말걸... 다른 사람 도와주는 착한 사람이 되라고 하지 말걸... 우리 아들 목숨 걸고 남을 도와줄지 알았으면 그러지 말걸... 내가 너무 원망스럽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끌어안고 한참을 울었다.
그러다 하얀색만 있던 그 공간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토요일 저녁이면 항상 아버지와 같이 보던 그 맛있는 노을이 눈앞에 펼쳐졌다.
“아빠. 제가 이 장면을 보면서 그림을 그렸는데요. 얼마에 팔렸는지 아세요?”
“그럼~ 아빠는 우리 운이 하는 일 다 보고 있었어. 아빠가 평생 번 돈보다 훨씬 많이 벌던데? 아주 대단했어.”
“저 다시 살아나면 아주아주 돈을 많이 벌 거예요. 그리고 사람들도 많이 도와주고 싶어요. 제가 이 능력을 얻은 건 전부 사람들을 도와주라는 뜻일 거예요.”
내 손을 잡고 있는 아버지의 손이 떨려왔다.
아마도 자신이 한 말 때문에 그렇게 힘든 길을 가려고 하는 건 아닌지 걱정되셔서일 것이다.
“아버지 때문이 아니에요. 이건 그냥 제가 하고 싶은 일이어서 그래요. 그냥 재미있는 게임을 하고 싶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은 그런 마음과 똑같은 거예요.”
내 말에 그제야 아버지는 웃음을 띤 얼굴로 나에게 손을 내미셨다. 아버지와 같이 손을 잡고 바라보는 노을이 점점 더 밝아져왔다.
그러다 이제는 온 세상을 밝게 비추는 빛이 되었다.
“운아. 너는 아직 할 일이 정말 많다. 네가 말한 대로 사람들 도와주려면 정말 많은 시간이 필요할 거야. 최대한 늦게 와. 아빠가 엄마만 기다린다고 한 거 사실 거짓말이야. 아주..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려도 아빠가 기다려 줄게. 하고 싶은 거, 해야 하는 거 다 하고 와. 알겠지?”
아버지의 말에 대답을 하려는 순간 정신을 잃어버렸다.
아니. 정신이 되돌아왔다.
오른쪽 눈에 밝은 빛이 보였다가 사라졌다가를 반복했다. 흐릿한 눈에 누군가가 후레쉬를 이용해 내 오른쪽 눈에 빛을 비추는 게 어렴풋이 보였다.
“으음..”
“어? 정신이 드세요? 환자분! 정신 잃지 않도록 노력하셔야 합니다.”
조금만 방심해도 정신을 잃을 것 같았지만, 필사적인 의지력으로 겨우 정신을 붙잡을 수 있었다.
“환자분! 대답하기에는 힘드실 테니까. 제 말이 들리시면 눈을 깜빡여보세요.”
그 말에 나는 내 눈을 겨우 감았다가 떴다.
내가 살면서 가장 큰 힘을 발휘한 것 같았다. 그 조금의 깜빡임이 나에게는 너무나 힘든 일이었다.
“환자분은 오일 만에 깨어나신 거예요. 어떻게 된 일인지 기억나세요? 기억나시면 눈을 깜빡여 보세요.”
흐릿하지만 다 기억이 난다.
자동차와 부딪치던 그 장면은 희미하지만, 사고가 났다는 사실만은 확실하게 기억을 한다.
눈을 깜빡였더니 이제는 한계가 찾아왔다.
조용히 눈을 감았다가 다시 정신이 돌아왔을 때는 이미 한밤중이었다.
눈을 뜨니 주변에는 아무도 없고, 기계 소리만이 들려오고 있었다.
사실 아무도 없는 건 아니었다.
“다들 이제 그만 돌아들 가시게. 귀인께서는 아직 때가 아니신 것 같네.”
월직 차사 김시덕님이 다른 저승사자님들을 돌려보내시고 계셨다.
“거 강림 차사도 돌아가시게. 여기는 내가 있으면 되네.”
“하하하 이승 차사로서 제 할 일을 할 뿐입니다. 월직 차사님은 지하의 일을 신경 쓰셔야죠.”
“자네 요즘 많이 컸구먼. 이러다가 한 대 치겠네?”
“하하하 직급 내려놓고 한 판 붙으면 제가 더 유리하지요.”
“뭐라? 하하하 지금 본국검의 달인인 나에게 유리하다고 했나?”
“헹! 아시다시피 우리 일이 직급하고 상관없이 제일 험하다는 건 아시겠죠? 성주신하고 붙어보셨습니까?”
“.....다....요..”
내가 겨우 힘을 내서 말을 하니 두 차사님이 황급히 나에게 달려와 말을 하였다.
“천운님. 괜찮소? 내가 옆에 있으니 힘이 나시는가 보오!”
“저승사자가 옆에 있는데 힘이 나다니 무슨 해괴한 소리이신지?”
또다시 싸우려는 두 차사를 향해 힘겹게 말했다.
“두...분....”
“어서 말해 보시오!”
두 차사가 내 입 쪽에 귀를 대었다.
황급히 귀를 내 쪽으로 들이대다 월직 차사님의 갓이 내 이마를 찍었고, 엄청난 고통에 눈물이 났다.
“어이쿠! 미안하오!”
“제...바알...가...”
“험.. 험.. 그럼 쾌차하시오!”
“죽을 것 같으실 땐 꼭 저 강림 차사를 불러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저승까지 편안하게 모시겠습니다. 하하하하”
겨우 두 차사를 보내놓고 겨우 안정을 취할 수 있었다.
‘운전자분은 살았을까?’
문득 그 사실이 궁금했다.
고개를 돌릴 수도 없는 상황인 걸 보면 내 상태가 많이 안 좋기는 한가보다.
[응원] 재능이 있는데도 이 정도라면 보통 사람이면 진즉에 죽었을 것이다.
사실 자동차에 맨몸으로 들이박혔는데 안 죽은 것만 해도 기적이다.
‘그때는 왜 그랬을까...’
남을 돕더라도 내 목숨까지 위험한 일은 하지 않았던 나인데 그날은 왜 그랬는지 정말 모르겠다.
아마 머릿속으로 많은 생각을 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반응을 해 버렸나보다.
그래도 살아났으니 정말 다행이다.
내가 죽는 게 무서운 것보다 엄마와 송이에게 또 다시 가족을 잃는 슬픔을 줄 수도 있었다는 사실이 너무나 무서웠다.
아버지를 잃고, 시력까지 잃을 상황에 처할 정도로 큰 스트레스를 받았는데, 그런 고통을 내가 가장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또다시 줄 뻔 했다는 사실에 아찔해져왔다.
‘그래도.. 잘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