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운의 편지
어느새 몸이 많이 좋아지게 되었다.
재활 훈련도 꾸준히 하다 보니 이제는 거의 정상인과 비슷한 수준까지 올라왔다.
비록 왼손과 왼쪽 다리가 아직도 조금씩 불편하지만, 생활하기에는 크게 무리가 가지 않는 수준까지 회복이 되었다.
‘솔직히 왼쪽 다리가 장애가 남는 건 아닌지 많이 겁이 났는데, 괜찮을 것 같네. 이게 모두 나를 응원해주시는 분들 덕분이지.’
솔직히 [응원] 재능이 아니었다면, 아직도 병원 침대에 누워서 생활해야 했을 것이다. 이 재능을 얻게 되어서 정말 다행이다.
의사 선생님은 믿을 수 없는 회복 속도에 놀라셨지만, 이제는 그러려니 하시며 내일 퇴원을 해도 좋다고 말씀 하셨다.
그렇게 퇴원 전날 밤에 엄마는 집으로 먼저 가셨다.
집을 너무 오래 비워두어서 먼지가 많을 거라시며 청소를 좀 하고, 내일 퇴원할 때 송이와 함께 오시기로 하셨다.
밤이 되자 병원이 고요해졌다.
나는 침대에 누워있기 심심해서 병원 복도라도 산책하려고 병실에서 나왔다.
낮에 돌아다니면 다른 환자들이나 간호사님들에게 방해가 되었기 때문에 꼼짝없이 방에서 인터넷 서칭만 해야 했다.
어린 아이를 대신해서 사고를 당한 나는 대한민국의 영웅이 되어 있었다. 이런 내가 낮에 돌아다니면 병원 업무에 방해가 된다.
이렇게 사람이 아무도 없는 밤에 병원 복도를 지나다니면, 귀신들을 만나 이야기도 들을 수 있어서 심심하지 않았다.
병원에는 귀신들이 꽤 있었다.
다들 뭐가 그렇게 억울한지 자신을 수술한 의사선생님을 원망하고, 치료를 잘못한건 아닌지 의심했다.
살아있을 때는 혹시나 기분 나쁘시면 치료를 잘 안 해주실까봐 의사선생님께 대든다는 것은 생각지도 못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미 죽고 나니 그런 게 다 무슨 소용이냐고, 저 의사 죽을 때 내가 멱살 잡고 저승 간다는 말들을 하였다.
그런데 유독 한 의사선생님만 그런 귀신들이 하나도 붙어있지 않았다.
위암 전문의 최민혁.
항상 얼굴을 굳히고 다니시며 인사도 잘 안받아주시는 선생님이시다. 말투도 냉정하셔서 다들 꺼려하는 선생님이시기도 하다.
그런데 어떤 귀신도 저 선생님에게는 붙어있지 않았다. 그게 너무 신기했다.
‘귀신들도 너무 무서워서 안 붙어있나?’
그렇게 의문을 가지고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띠링’
[퀘스트 발생 - 자신의 담당의였던 의사선생님에게 자신의 편지를 전달해 달라는 귀신을 도와주시오. 제한시간 3시간.]
[도와주십시오. 저번에 저승사자님들과 함께 있는 걸 봤습니다. 무당이 맞으시죠?]
고개를 돌려보니 50대 정도로 보이는 귀신이 서있었다.
“무당은 아니지만 보고, 들을 수 있습니다. 할 말이 있으신가요?”
[아. 정말 다행이군요. 다름이 아니라 제 담당의사 선생님이셨던 분에게 편지를 좀 전해 주시면 안 될까요?]
“편지요?”
[제가 수술 들어가기 전에 편지를 써서 간호사님에게 전해 달라고 부탁 드렸는데, 잊어버리신 건지 선생님께 전해주지 않으셔서요. 그게 3년 전인데 아직도 편지가 그 간호사님이 사용하셨던 책상 서랍에 있습니다. 제발 부탁드립니다.]
너무나 간절한 표정으로 나에게 부탁을 하시니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그 간호사님 책상이 어디에 있나요?”
[따라오세요.]
나는 그 귀신을 따라 열심히 병원 복도를 가로 질렀다.
당직을 서시는 간호사님들 눈에 띄지 않게 기어 다니기도 하고, 복도의 양쪽 벽을 박차며 천장에 거의 붙어 있다가 간호사님들이 지나가면 다시 지나갔다.
거의 어쌔신에 비교될 만한 움직임이었다.
내 앞에 서서 걸어가는 귀신아저씨는 앞에 누가 있던지 아무 상관없이 일직선으로 가셨다.
내가 들키지 않게 조심히 움직여주면 좋을 텐데, 귀신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할 때는 주변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그러다 그 귀신은 엘리베이터 문을 통과해서 사라지셨다.
‘아니! 엘리베이터 타면 들킬 것 같은데, 계단으로 가셔야지.. 하아..’
어쩔 수 없이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고 화분 뒤에 숨어있었다.
[문이 열립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린 틈으로 살짝 바라보니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뒤를 바라보며 조심히 뒷걸음질 쳐서 엘리베이터를 탔고, 문이 닫히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왜 이렇게 늦게 오세요?]
“으헙!!! 헛! 딸꾹!”
엘리베이터 바닥에서 머리만 쑥 올라와서 이야기를 하시는 아저씨를 보고 발로 찰 뻔했다.
“갑자기 그렇게 나타나시면 위험합니다. 제 몸이 흉기에요. 저한테 한 번 잘못 맞으면 소멸되실 수도 있어요!”
나의 말에 말도 안 되는 허세를 떤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 아저씨는 지하 2층을 누르라고 하시고는 다시 사라지셨다.
지하 2층에 도착하니 아저씨는 창고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여기 안에 책상이 있습니다. 거기에 편지가 있어요.]
다행히 전자자물쇠가 아니고, 열쇠로 여는 커다란 자물쇠였다.
“이번만 열어주는 거야.”
내 재능 중에 물리적인 자물쇠만 열수 있는 재능이 있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한쪽 구석에 책상이 있었다.
[여기! 여기입니다.]
책상 서랍을 열었는데 편지가 보이지 않았다.
모든 서랍을 열어봐도 보이지 않아서 무슨 일인가 싶었는데, 아저씨가 머리를 책상 안으로 쑥 집어넣으시고는 말씀하셨다.
[여기 뒤로 넘어갔었네요. 그래서 드리지 못했나 봐요.]
나는 책상 서랍을 완전히 분리하고 손을 집어넣어 편지를 꺼냈다.
약간 누렇게 변색된 편지지는 주인을 찾고 못하고, 3년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는 주인을 찾아가야 할 시간이다.
“이제 그 의사분이 누구인지 알려주세요.”
[최민혁 선생님이십니다.]
그 냉동 인간 같으신 의사 선생님에게 편지를 보냈다니, 나는 혹시나 욕설을 적어놓으셨는지 편지지를 열고 편지를 읽어 보았다.
- 최민혁 선생님. 저 황동구 환자입니다.
내일이 수술인데 솔직히 두렵습니다. 선생님께서 우리 희망을 버리지 말자고 하셔서 수술을 허락 한 거지, 다른 사람이 이야기를 했다면 그냥 남은 인생 정리하며 조용히 죽을 때를 기다릴 거라고 했을 겁니다.
처음에 제가 너무 심하게 굴었지요?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그렇게 막 대해도 얼굴 한 번 찡그리시지 않고 웃어주시다니 정말 대단하세요. 저희 아내와 아이들도 저를 포기했는데, 유일하게 선생님만 저를 포기 하지 않으셨네요.
사실 제 상태는 제가 더 잘 알고 있습니다.
아마 수술하더라도 얼마 못 살겠죠. 아니 수술 중에 죽을 확률이 더 많을 겁니다.
다른 의사선생님이 선생님께 이야기 하는 이야기 다 들었습니다.
첫 번째 담당 환자라서 그런 건 알겠는데, 무리해서 수술하다가 테이블 데스 되면 선생님 경력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하시더군요.
유가족이 소송도 걸 수 있다고 하시던데, 그건 제가 와이프에게 이야기 해 놨으니까 걱정 마세요.
마지막으로 드리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저 죽어도 선생님 잘못 아닙니다.
아무도 저에게 강요하지 않았어요. 제가 전부 선택한 일이니 선생님은 아무 잘못도 없으십니다.
- 황동구 드림.
‘아... 내가 오해했네..’
옆을 바라보니 황동구 아저씨가 나를 보며 웃어주셨다.
[악필이죠? 조금 부끄럽네요. 사실 제가 죽을 날이 다가오니 그 스트레스를 주변 사람들에게 심하게 부렸어요. 가족도 제 성격을 못 받아주고 방치했는데, 최민혁 선생님만은 포기하지 않으시고 항상 웃어주시면서 저에게 살 수 있다고 하셨어요.]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최민혁 선생님이 웃는 모습을 상상해 보았지만, 전혀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았다.
[최민혁 선생님이 웃지 않게 되신 건 저 때문이에요. 저에게 너무 정을 쏟으셔서 지치셨을 겁니다. 저 이후로는 환자들에게 정을 주지 않으시려고 많이 노력하시더라고요. 그런데 밤이면 항상 환자들 차트를 보면서 울고 계셨어요. 그리고 항상 저한테 미안하다고, 살수 있다는 헛된 희망을 주셨다고 많이 후회하시더군요.]
안타까운 사연이다.
[이제는 그 마음의 짐을 털어버리시면 좋겠어요. 그래야 저도 저승을 마음 편히 갈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번에 저승사자님이 말씀해주셨는데, 이승에 더 있으면 인간으로 환생할 수 있는 카르마 양이 부족해질 거라고 하더군요. 이제는 가야 할 것 같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황동구 아저씨는 나에게 정중히 인사를 하시고는 사라지셨다.
나는 손에 쥔 편지를 바라보았다.
‘제가 잘 전달해 드리겠습니다. 조심히 가세요.’
==========
“안녕하세요. 선생님.”
간호사님이 인사를 했지만, 살짝 고개만 끄덕인 냉막한 표정의 남자는 자신의 방으로 조용히 들어갔다.
자신의 성격과도 비슷한 책상은 쓸데없는 물건은 하나도 없이 삭막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오늘은 그 책상위에 처음 보는 물건이 있었다.
“응? 이게 뭐지?”
자리에 앉아 책상위에 있던 종이를 펴 보았다.
그리고 한참을 그 종이에 적힌 글씨들을 읽고, 또 읽었다. 그러다 그 차가운 얼굴에 굵은 물방울 두 개가 흘러내렸다.
“선생님. 커피 좀 드릴까요? 어머..”
울고 있는 최민혁 선생님을 보고 깜짝 놀란 간호사님이 다시 방을 나갈 때 까지도 편지를 열심히 읽고 계셨다.
==========
“안녕하세요! 오늘은 컨디션 좀 어떠세요?”
“어? 아.. 네. 오늘은 어제보다 몸이 조금 더 가뿐하네요. 하하하..”
“네. 어디 불편하신 곳 있으시면 말씀해주세요.”
의사 가운을 입은 남성이 기운차게 인사를 하며 회진을 돌고 있었고, 그가 지나간 자리에서는 환자들이 다들 모여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최민혁 선생 맞아? 뭐 쌍둥이라도 대신 온 거 아냐? 사람이 완전히 달라졌는데?”
“그러니까! 냉동 인간이 완전히 꽃 미남이 됐던데?”
“얼굴은 원래 잘 생겼는데 인상 쓰고 다니니까 무섭게 보여서 그랬지. 웃고 다니니까 완전 배우네. 배우야.”
그날부터 최민혁 선생님은 이 병원의 가장 인기 좋은 인기남이 되셨다.
[퀘스트 완료, 보상으로 50만원과 최하급 재능 ‘이 편지는 영국에서 시작되어’를 습득하였습니다.]
==========
나는 앞으로의 계획을 머릿속으로 정리하기 시작했다.
‘어차피 힐링 타운은 송이가 다른 분들 도움을 받아서 하면 되니 신경 쓰지 말자. 가끔 보고서 보내오는 것만 잘 확인하면 될 것 같고, 이제 퇴원을 하면 개발만 열심히 하면 된다.’
개발에 대한 전체적인 로드맵은 그려져 있는 상태이고, 이 부분은 재단장님에게 자문을 구했다.
그 말을 들은 재단장님이 진짜 개발 할 수 있냐고 물으셨고, 나는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자신감 있게 대답을 드렸다.
그러자 재단장님이 개발 계획에 따라 사업 계획을 세우시기 시작하셨다.
재단장님은 연구소로 사용할만한 건물을 바로 알아봐 주시기로 하였고, 나는 내가 원하는 장비들을 정리해서 메일로 보내드리기로 하였다.
‘기계 제작을 할 수 있는 선반, 밀링기, 머시닝, 드릴링기, 연삭기, 3D 프린터가 필요하고, 음.. 뭐 더 필요하면 그때 사야겠네.’
공작 기계들은 이정도만하고, 이제는 전자 쪽도 정리를 해야 한다.
‘납땜 장비들이 필요하고, 오실로스코프랑 멀티미터, 전원 공급기, 주파수 응답 분석기도 있어야하고, 아! 아날라이저도 필요하지. 펌웨어 개발툴도 갖춰놓으면 대충 끝났네. 컴퓨터도 좋은 걸로 사달라고 해야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준비할 물품들이 있었다.
‘의학 쪽은 잘 모르니까 공부하면서 하나씩 사거나 직접 만들어봐야겠다. 어차피 내가 필요한 장비들은 다시 만들어야 하니까 천천히 하자.’
첫 번째 사업 아이템은 의족, 의수 제작이었다.
재활 치료실에서 만나는 사람들 중에서 사지가 절단되신 분들도 꽤 보였다. 그러한 분들을 위해서 사업을 시작하고자 한다.
돈이 많이 되는 사업은 아니지만, 앞으로 진행할 다른 사업을 위한 기술을 먼저 확보할 수 있으면서도 이슈가 될 만한 사업으로는 이 의족과 의수가 딱 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자신하는 이유는 현대 과학의 수준을 뛰어넘는 출처를 알 수 없는 지식이 생겼기 때문이다.
‘인공 피부를 통해서 감각도 느끼고, 뇌에서 보내는 신호를 감지해서 움직일 수도 있다니, 우리 인류의 기술 수준도 정말 대단하구나.’
현재 과학 기술로도 절단 된 부위와 연결하여 뇌의 신호를 의수에 전달하고, 의수에서 발생하는 간단한 정보를 뇌에 전달할 수도 있었다.
아직은 초보적인 기술이고 상용화까지 해결해야하는 관문들이 많이 남았지만, 그래도 대단한 기술력이었다.
그런데 나에게 생긴 지식은 이것을 아득히 뛰어넘은 기술이었다.
인간의 뼈를 대체할 인공 뼈를 만드는 방법과 인공 근육, 인공피부까지 거의 인간의 신체와 동일한 인공 신체를 만드는 방법이었다.
그리고 근육과 뼈, 신경까지 인간의 신체와 연결되는 링크 시스템이야말로 인공 신체 기술의 핵심이며 백미였다.
그러나 이 기술들을 그대로 사용하기에는 세상에 기술적인 설명을 할 수가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였고, 이걸 현대의 기술로 재현하는 게 내가 할 일이다.
결국 완벽한 기술은 있지만, 그대로 사용할 수 없어 다운 그레이드를 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리고 겸사겸사 정말 가능한지도 테스트를 해봐야 한다.
‘이건 도대체 언제 적 기술일까? 아카식 레코드에는 인류가 알게 된 모든 지식들이 모인다고 했으니까 누군가가 이미 개발한 기술일 건데, 이런 게 있다는 말은 들어본 적도 없고, 자료도 없는데.’
열심히 공부를 하다보면 또 다른 지식들이 생겨날 것을 기대하며 오늘도 고골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인간의 뇌파를 변형해서 컴퓨터를 해킹할 수 있다니 이것도 정말 대단하다.’
뇌파를 이용한 해킹 시스템이 들어가 있는 USB가 노트북에 꽂혀 반짝거리고 있었다.
전 세계 연구소의 기술 자료와 보고서들을 마음껏 볼 수 있는 기술이 생겨서 정말 많은 도움이 되고 있었다.
그냥 너무 자연스럽게 온갖 자료에 접근이 가능하다보니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공부 삼매경에 빠지게 되었다.
그러다 FBI의 비밀 자료까지도 열람을 하게 되었다.
‘어? X 파일? 이건 못 참지. 아니! 멀더가 실존 인물이었어? 우와!’
어린 시절의 우상에 대해서 더 자세히 알게 된 유익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