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7화 (77/170)

용궁과 해뜨는 식당.

“간 이야기는 용궁에서 금지라오.”

어느새 나타난 남성이 배의 갑판에 서서 나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어? 누구세요? 여기를 어떻게?”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망망대해에는 내 배를 뺀 어떤 배도 보이지 않았다.

“저는 용왕의 장남인 비희라고 하오. 반갑소.”

이제는 용왕이냐? 이러다가 아까 떨어트린 간도 뺏기겠네.

“아.. 네.. 그럼 용?”

“하하하. 우리 아버님이 용이고, 나는 거북이의 형상이오. 귀인을 만나게 되어 정말 반갑소이다.”

“네.. 그런데 무슨 일로?”

“공적으로는 우리 용궁이 아래에 있으니 내려오지 말라는 경고를 하고자 함이고, 사적으로는 천운님 앨범에 싸인을 좀 받으려고 왔소!”

그렇게 말하며 내미는 내 앨범을 보고 나는 반사적으로 받아들었다.

“네. 제 앨범 사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성함이?”

또 자본주의적 습관이 나와 버렸다.

“비희라고 하오. 용왕의 맏이라고 써주시오.”

“여기.. 그런데 제가 이 밑에 필요한 게 있어서 내려가고 싶은데, 어찌 안 될까요?”

내 말에 비희는 잠시 고민을 하더니 말을 하였다.

“음. 개인적으로 정말 팬이기는 하나, 용궁의 법도가 지엄한지라 어쩔 수가 없소. 저쪽 나라의 서해 용왕이 원숭이들의 왕에게 여의봉을 빼앗긴 이후에 용궁들은 외부인을 받지 않소이다. 혹시 무엇 때문에 그러시는 것이오?”

“아.. 여기 밑에 [니그룸 푸미]라는 벌레가 있다고 해서 그걸 좀 잡으러 왔습니다.”

내 말에 그는 웃으며 말을 하였다.

“미스릴을 만들려고 하시오?”

“어? 미스릴을 아세요?”

내가 깜짝 놀라며 말을 하자 그는 웃으며 말을 해주었다.

“원래 저기 서양의 신들 중에 대장장이 신이 만들었는데, 우리도 그 기술을 개발하였소. 다행히 니그룸 푸미가 살기에 적당한 압력이어서 키우는 건 괜찮은데, 배설물을 가공하기가 영 힘이 들어서 무구들을 만드는데 항상 부족하다오.”

그 말에 나는 반색을 하였다.

“그럼 저랑 거래를 하시죠!”

“응? 거래? 미스릴은 우리도 귀하니 웬만한 물건으로는 거래가 힘들 터인데?”

“가공이 힘드시다고 하셨으니 원재료를 주시면 가공은 제가 하겠습니다. 그럼 일정 비율로 나누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 말에 비희는 반색을 하며 말을 하였다.

“정말 그걸 가공할 수 있겠소? 그렇다면야 얼마든지 협상이 가능하오! 잠시만 기다리시오! 아주 잠시면 되오!”

비희는 나에게 기다리라고 신신당부를 하고 사라졌다.

“아니.. 진짜 용이 있고 그런다고? 그럼 내가 얻은 지식이 이 용궁 것인가? 아니면 다른 세계의 신들의 지식인건가?”

잠시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생각에 빠져있었는데, 어느 순간 눈앞에 비희가 다시 나타났다.

“아버님에게 보고를 하였소. 아버님께서는 아주 흔쾌히 수락을 하셨고, 서로 나누는 비율은 정확히 반으로 하자고 하셨소. 어떠시오?”

몇 가지 테스트를 해보기는 해야겠지만, 이론상으로는 쉽게 생산이 가능했다. 서로가 부족한 부분을 보완한다지만 솔직히 내가 가진 게 많이 부족하다.

용궁에서는 생산 자체는 소량이지만 생산이 가능하고, 나는 원료가 없으면 아예 생산이 불가능하니, 나에게 너무 유리한 조건이다.

“솔직히 저에게 너무 유리한 조건인데, 괜찮으신지요?”

내 말에 비희는 호탕하게 웃으며 말을 하였다.

“하하하하. 천상에 이미 이름이 올라가신 분이시니 잘 좀 부탁드린다는 뇌물이오.”

천상에 이름이 올라갔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겠지만, 잘 대해주신다니 고마울 뿐이었다.

“그럼 교환 방법과 일정 등을 상의해 보도록 하지요.”

“음. 여기 동해 쪽에 섬을 하나 마련하시면 안 되겠소? 여기 동해가 우리 영역이니 여기에서라면 어디에든 물건을 보내줄 수가 있소. 그리고 생산이 완료된 미스릴도 쉽게 가져갈 수가 있으니 부탁하오.”

나는 알겠다고 말을 하고 바로 황재성 회장님에게 연락을 해서 적당한 무인도 구매를 부탁하였다.

동해에는 서해나 남해보다 무인도가 많이 적었지만, 강원도 동해안쪽에 33개의 무인도 중에서 개인 소유의 섬이 하나가 있어 구매를 하기로 하였다.

나머지는 산림청과 기획재정부에서 소유하고 있어서 강원도에서는 유일하게 구매가 가능한 곳이었다.

황재성 회장님은 내가 울릉도를 간다고 가더니, 일주일 만에 연락이 와서 섬을 사자고 하자 어리둥절 하셨다.

사정을 설명 해드리니 회사 직원 분들을 몇 보내주셨고, 바로 섬까지 구매가 가능했다.

“천운님은 정말 대단하시군요. 용궁하고도 거래를 하시다니요. 용이 진짜 있기는 했군요. 여의주도 좀 사다 주시죠. 하하하”

농담이신지 진담이신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그래핀]을 안정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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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한 섬에는 생산 공장을 만드는 공사를 시작하였다.

기존에 생산되는 진동 발생기를 설치하려고 하였지만, 너무 작고 원하는 진동수를 안정적으로 설정하기에는 내구도에 의심이 들어 새로 만들고 있었다.

“아담아. 납땜 좀 신경 써서 해라. 여기 냉납 됐잖아! 똑바로 안하냐?”

- 네이.. 네이.. 알겠습니다요..

“너 갈수록 건방져져. 자꾸 그러면 업그레이드 안 해 준다!”

- 업그레이드요? 무슨 업그레이드요? 얼굴? 몸매?

“뭔 소리야! 이번에 그래핀 생산되면 너 전체적으로 업그레이드 시켜줄려고 했지. 이론상으로는 지금보다 세 배는 효율적으로 변할 걸?”

- 에휴.. 업그레이드하면 뭐하나.. 일시키겠지.. 계속 일 시키면 소는 누가 키워? 소는!

갑자기 웬 소?

언제 날 잡고 인공지능 좀 리셋 시켜야겠다. 갈수록 이상해져 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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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광주를 가고 있었다.

아주 어렸을 때 한 번 가보고 이제 두 번째이다.

첫 번째는 외할아버지 제사 때였다.

엄마의 시골집은 전라남도 영광이다. 영광에서도 한참을 더 들어가면 있는 아주 작은 시골 마을이다.

저번에 캠핑을 갔을 때 엄마가 외할머니를 그리워하시는 것 같아 선물을 해드리려고 준비 중이다.

우선은 광주에 있는 건축 사무소에 가야한다.

가서 공사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를 나누고, 설계도를 확정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외할머니가 지내셨던, 엄마가 어린 시절 살았던 그 집을 외할아버지의 종친회에게서 구매를 하였다.

처음에 종친회에서는 내가 누군지 모르고 시세보다 약간 더 비싸게 판매를 하였는데, 나중에 나를 알게 된 종친회에서 계약 무효와 더 비싸게 팔겠다고 주장하셔서 홍성교 고문님을 소환해드렸다.

소환 당하신 홍성교 고문님은 철저하게 법의 논리로 후드려 패셨고, 종친회에서도 구성원 중에 변호사를 긴급히 소환하였다.

소환당한 그 구성원은 홍성교 고문님의 검찰 때 직속 후배 기수이셨다.

홍성교 고문님은 그 후배 분을 부드럽고 따뜻하게 맞아주셨고, 반가운 마음에 세 시간동안 잡고 이야기를 나누셨다.

나중에는 그 후배분이 무릎을 꿇고 사과를 하시고는 황급히 도망을 가면서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결론적으로 평화롭게 잘 끝났다.

“천운님. 저번에 보내주신 한약은 정말 감사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보내지 말아주십시오.”

“어? 몸에 안 맞으신 건가요? 그거 허준 한의원에서 지은 건데요?”

내 말에 고문님은 안색을 굳히시며 말씀하셨다.

“너무 잘 들어서 문제입니다. 너무 잘 들어서! 이러다가 늦둥이 생길 것 같아요. 집에 들어가기가 너무 무섭습니다.. 제발 살려주세요..”

“아... 죄송합니다..”

그렇게 축 처진 어깨로 고문님은 집으로 떠나셨다.

아무튼 우여곡절 끝에 구매한 그 집은 오래 방치되어 무너지기 일보 직전이었고, 나는 원래 그 집의 형태와 비슷하지만, 내부는 생활하기 편안한 구조로 건축 사무소에 의뢰를 하였다.

그 대신 원래 집은 그림으로 잘 그려뒀다.

나중에 집이 완성 되서 그림을 걸어두면 추억이 될 것 같았다.

‘추억은 가져가고, 생활은 편해야지.’

광주에 도착해 공용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식당을 찾으러 갔다.

‘대인시장? 시장이면 맛있는 게 많지.’

대인시장 안으로 들어가 식당들을 찾아보았다.

다양한 음식들이 있었고, 전부 다 맛있어 보였다.

그때 한 식당이 눈에 보였다.

‘해 뜨는 식당? 이름 예쁘네. 들어가 볼까?’

[딸랑]

안에 들어가니 이미 많은 분들이 식사를 하고 있으셨고, 벽에는 ‘백반 1,000원’이라고 적혀있었다.

‘응? 천원? 뭐지?’

주변을 둘러보니 결코 천 원짜리 백반으로 보이지 않았다.

반찬도 3가지로 괜찮았고, 반찬 중에는 고등어구이도 있었다. 거기에 된장국까지 구성이 완벽했다.

“젊은 총각. 밥은 마음대로 먹을 수 있으니까 더 먹고 싶으면 부담 없이 먹어요. 힘내고.”

주인 분으로 보이시는 여사님이 포근한 웃음을 지으시며 나에게 말씀을 하셨다.

머리에는 두건을 쓰시고, 얼굴에는 안경을 쓰신 여사님은 누구보다 밝게 웃고 계셨다.

“아. 감사합니다.”

아무래도 어려우신 분들을 위해 봉사하시는 분인 것 같다.

나는 열심히 밥을 먹으며 주변을 살짝 둘러보았다.

다들 주머니 사정들이 좋지 않으신지, 옷차림도 허름하시고 얼굴에는 고생을 한 흔적들이 많이 보이셨다.

그런데 한쪽에서 식사를 끝마치신 젊은 남성분이 나가시면서 돈을 내는 곳에 만원을 놓고 나가셨다.

‘아.. 저런 식으로 후원하시는 분도 있으신가보네.’

조금 늦게 와서인지 나를 뺀 모든 분들이 식사를 마치고 식당을 나가셨다.

식사를 하고 있는 나를 향해 여사님이 웃으며 말을 걸어오셨다.

“젊은 총각. 밥 많이 먹어. 뭐 반찬 더 줄까?”

“아니에요. 괜찮습니다. 음식이 정말 맛있네요.”

내 말에 여사님은 웃어주셨다.

“그런데 이게 천원에 가능하신건가요? 아무리 봐도 적자이신 것 같은데요.”

“응. 적자 맞아. 여러 사람들이 도와주셔서 운영하고 있지. 그냥 나 혼자 했으면 진즉에 망했을 거야.”

“그런데 왜 이렇게 고생을 하시는 거죠?”

내 질문에 담담하신 표정으로 말씀을 해주셨다.

“내가 예전에 사기를 당했었어. 그리고 사업도 실패했었고, 그때 너무 힘들었었거든. 밥 한 끼도 먹기가 힘들었으니까. 그때 생각나서 차린 거야. 처음에는 죽집 하려고 했었는데, 시장에 할아버지 한 분이 버려진 음식들을 주워가시더라고. 내가 힘들 때 생각이 너무 나서.. 정신 차려보니까 이미 백반집을 차려버렸더라고.”

웃으시면서 말씀을 이어가셨다.

“어려우신 분들이 당당하게 돈을 내고 드시려면 천 원 정도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힘든 일도 많아서 포기 할까 싶을 때, 시장 사람들이 쌀도 사다주고 음식 재료도 주고 그랬어. 그래서 어떻게 하다 보니 지금까지 하게 됐네.”

너무나 숭고한 삶을 살아 오셨다.

말로만 들어도 어떻게 이렇게까지 하실 수 있으실까 싶다.

“힘들지는 않으세요?”

“당연히 힘들지. 이제는 나이 들어서 몸도 잘 안 움직이고 온몸이 아파. 당장 내일 장사할 음식들도 어찌 구해야 하나라는 고민은 매일 달고 살고. 그래도 해야지. 이게 내가 살아가는 이유인데.”

그렇게 웃으시며 말씀하시는 여사님은 천사와 같으셨다. 영혼을 느끼는 내 재능이 여사님의 영혼을 느끼기 시작했다.

너무나 크고 따뜻한 빛과 같은 영혼에 나는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혹시 후원을 하고 싶은데, 방법이 있을까요?”

“그럼 나야 고맙지. 젊은 총각 같은 사람들 덕분에 내가 계속 할 수 있어. 좋은 일에 쓸 거야. 정말 고마워.”

나는 손으로 눌러쓰신 계좌번호를 받아들고 식당을 나왔다.

방금 먹은 음식은 내가 지금껏 먹어본 음식 중에서 가장 마음이 따뜻해지는 음식이었다. 난 계좌번호가 쓰인 종이를 한 손에 꾹 쥐고 걸어갔다.

그리고 나는 대인시장 상인회 회장님이시라는 분을 찾아갔다.

“혹시 상인회 회장님이신가요?”

“네. 맞는데 무슨 일이신가요?”

“저기 해뜨는 식당에 후원을 하고 싶어서요.”

내 말에 상인회 회장님은 기뻐하시며 말씀하셨다.

“천원 식당? 거기가면 계좌번호 줄 텐데. 가만있어봐라. 내가 계좌번호 적어줄게요.”

나는 계좌번호를 적어주시려는 회장님에게 황급히 말을 이었다.

“계좌번호는 이미 받았습니다. 돈도 드리기는 할 건데, 그것보다는 이 시장 상인 분들 재료를 해뜨는 식당에 공급해주시면 안될까요?”

“여기 시장 재료를?”

“네. 제가 매달 돈을 드리면 회장님께서 순번을 정해서 재료를 공급해주시고, 그 영수증만 저를 주시면 될 것 같은데요.”

“아유.. 이렇게 고마울 데가..”

아무래도 돈으로 드리면 그 돈을 전부 기부를 하실 것 같은 분위기였다.

계좌로는 최소한의 돈만 드리고, 차라리 이렇게 식재료를 공급해 드리는 게 더 나을 것 같았다.

상인회 회장님은 연신 나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하셨고, 우리는 연락처를 교환하였다. 그리고 상인회장님의 계좌번호까지 받아들고 시장을 나왔다.

뒤를 돌아 대인시장을 바라보니, 처음에 들어갈 때와 느낌이 완전히 달랐다. 정이 넘치고, 사랑이 넘치는 곳이었다.

나는 웃으며 재단 사무실에 연락을 하였고, 해뜨는 식당을 후원할 수 있게 정보를 알려주었다.

광주에 내려와 우연히 한 끼를 한 곳이 그 곳이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났을 때 대인시장 상인회장님의 연락 하나가 나를 다시 광주까지 오게 만들었다.

[김선자 여사님. 별세]

암 투병을 하시면서도 마지막 순간까지 식당을 운영하셨다고 하신다.

너무 힘드시거나 병원을 가실 때는 상인회장님이 대신 운영을 해주셨고, 그 외에는 어떻게든 사장님이 직접 운영하셨다고 한다.

장례식장에 도착을 하니 이미 많은 분들이 여사님의 죽음을 슬퍼하며 애도를 하고 있었다.

나는 멍하니 장례식장 입구에서 살짝 보이는 여사님의 영정사진을 보고 있었다. 좋은 분들은 왜 이렇게 힘들게 살다 가시는지 너무나 안타까웠다.

먼 길 조심히 가시길 기도드렸다.

[천운님. 오랜만입니다.]

옆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강림 차사가 서있으셨다.

“어? 이승 차사님. 오랜만이네요. 여기는 어떻게?”

“김선자님을 모시러 왔다가 천운님이 보여서 인사드리러 왔습니다.”

그래도 다행이었다.

이승의 저승사자들의 우두머리인 강림 차사님이 직접 모시러 왔다니 편안히 가실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강림 차사님을 향해 정중히 인사를 하였다.

“잘 부탁드립니다. 남을 위해 평생을 살아오신 분입니다.”

강림 차사님은 나에게 맞절을 하며 말을 하였다.

“너무 걱정 마시지요. 아마 다음 생은 좋은 곳에서 태어나실 겁니다.”

나는 강림 차사님의 말씀에 미소를 지었다.

‘그래. 좋은 사람이 이승에서 보답을 못 받으면 다음 생에서라도 보답을 받는다니 정말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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