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8화 (78/170)

퀘스트의 노예

나는 해뜨는 식당에서 밥을 맛있게 먹고, 건축 사무소를 방문하였다.

건축 사무소에서 내가 원하는 부분들을 전부 말씀드렸고, 직원 분들의 의견도 들어보았다.

나는 별 문제가 없어 계약서에 사인을 하고, 엄마의 고향집으로 출발하였다.

네비게이션 화면에 주변이 온통 산뿐인 곳을 지나자 약간의 평야가 나오기 시작했다.

언덕길에서 바라보니 100여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사진으로 봤을 때보다 더 운치가 있는 마을이었다.

집들이 그래도 현대식으로 지어져 있어서 너무 시골 같은 느낌은 들지 않았다.

‘엄마가 지내시기에는 부족한 게 많아 보이네. 마트도 없으니까 불편하실 것 같다. 아! 그래서 창고에 그렇게 신경써야한다고 그러셨구나!’

건축 사무소에서 다른 것은 몰라도 창고와 물탱크는 신경 써야 한다고 해서 알겠다고 했었는데, 직접 와서 보니 맞는 말인 것 같았다.

아무래도 집 관리해주는 업체와 계약을 맺고 청소뿐만 아니라 식료품 관리도 부탁해야겠다.

집을 완성해도 어차피 우리랑 같이 사실 거고, 여기는 별장 느낌으로 사용할거라 관리인은 필수였다.

“저. 여기 이장님 댁이 어디인지 알 수 있을까요?”

동네 당산나무 같은 커다란 나무 밑에 옹기종기 모여서 마늘을 까고 계시는 할머니들에게 여쭤보았다.

“워디서 온겨?”

“아. 저는 서울에서 왔는데요. 저기 위쪽 집을 사서 인사를 좀 드리려고요.”

“워디? 저짝 산 중턱에 있는 거?”

“거기믄 이씨네 아녀? 거기 꼬장한 노인네 죽고 나서 빈집 된지 엄청 오래 됐는디? 거서 사람이 살수 있당가?”

“그라제. 거짝으로는 아무도 안 가제. 겁나게 거시기 허니께”

중간 중간에 무슨 말인지 모를 말들을 하시지만, 대충 오래된 집이라 사람이 살 수 없다고 하시는 것 같다.

“아. 원래 집은 허물고 새로 지으려고 준비 중입니다. 제가 거기 외손자입니다.”

내 말에 할머니들이 반색을 하셨다.

“워매! 그라믄 미정이 아들이여?”

“아따! 완전 잘 커부렀구마이! 차도 겁나게 좋은 거 보니께 성공했나벼! 잘혔다. 잘혔어.”

우리 엄마를 아시나보다.

“저희 어머니를 아세요?”

“그라믄! 알다마다. 갸가 엄청 이쁘고 똑똑했제. 그란디 갸 아부지가 완전히 말로만 양반이어 가지고 일도 안하고 법성댁이 겁나게 고생했제.”

법성댁은 아무래도 외할머니이신가보다.

“거서 다들 뭣허요? 마늘을 하루 죙일 까믄서 노는갑네.”

갑작스럽게 뒤쪽에서 말소리가 들렸다.

“이장! 잘 왔어! 어여 이짝 말 좀 들어봐. 미정이 아들이랴! 저짝 미정이네 집 샀디야!”

“저짝이 이장이여.”

걸어오시는 아저씨가 보였다.

머리에는 농약 이름이 적힌 모자를 쓰시고, 목에는 수건을 걸고 있으셨다. 장화를 신으시고 어깨에는 쇠스랑을 걸친 상태로 걸어오고 계셨다.

“응? 미정이? 그럼 자네가 미정이 아들인가? 내가 미정이 친구네.”

갑작스럽게 나타난 아저씨는 갑자기 표준어를 유창하게 쓰시기 시작하셨다. 그런데 억양자체가 사투리 억양이라 오히려 어색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천운이라고 합니다.”

“그래. 이렇게 보니까 미정이랑 닮은 게 보이네. 엄마 닮아서 엄청 잘 생겼구먼. 엄마는 잘 지내는가?”

“아. 네. 덕분에 잘 지내고 계십니다. 그런데 다름이 아니라 저쪽에 어머니가 사시던 집을 이번에 제가 구매를 해서요. 새로 집을 지으려고 하는데, 공사 때문에 마을에 먼지도 생길 것이고, 시끄러울 것 같아서 미리 말씀을 드리려고 찾아뵈려고 했었습니다.”

“아이고. 저기 저 집을 샀어? 이씨 집안에서 그냥 주지는 않았을 것인데. 거기 사람들 아주 지독해. 미정이네 어머니 아니었으면 동네 사람들하고 엄청 싸웠을 것이야.”

당한 게 많으신지 불만이 많으셨다.

“뭐 공사야 하다보면 당연히 그런 거니까 신경 쓸 거 없고, 뭐 필요한 거나 불편한 거 있으면 연락해. 내가 미정이랑 완전 친한 사이니까 신경써줘야지. 미정이한테 정한식이 아냐고 물어보면 바로 알걸?”

“그라믄 알아야제! 쟈가 미정이 월매나 쫓아댕겼는지 아주 동네에 소문이 자자 했당께!”

“그라니까! 이 동네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거시어! 그라니까 지금 결혼해서도 바가지 긁히제!”

할머니들이 아저씨를 놀리기 시작하셨다.

“아따! 거 애 앞에서 뭣 하는 소리요! 할매들은 마늘이나 어여 까쑈! 뭔 이상한 소리나 해싸!”

잠시 뭐라고 할머니들을 향해 소리치신 아저씨는 이어서 말씀을 하셨다.

“그라고 우리 마누라가 백숙 하고 있으니께. 이따가 회관으로 모이쇼들! 에잉!”

할머니들이 화를 내는 아저씨를 보면서 낄낄거리며 웃고 계셨다.

“혹시 마을에 필요하신 게 있으실까요? 그리고 마을 발전기금은 또 얼마이신지 알려주시면 드리겠습니다.”

“미정이 아들이 집사서 들어오는데, 무슨 발전기금이야? 그거야 우리 마을 공동자금으로 도로도 만들고 수도시설도 만들어서 새로 이사 오는 사람한테 받는 거고, 미정이 가족이면 우리 마을 사람인데 필요 없어. 나중에 한 번씩 저 할매들이나 드시게 막걸리나 좀 사다주면 돼.”

인터넷이나 방송에서 들었던 시골 텃새와는 너무나 달랐다.

나는 감사하다고 인사를 드리고, 동네를 한 바퀴 돌아보았다.

‘음. 도로도 다 다시 정비를 하는 게 좋겠네. 다 패였어. 그리고 다들 이쪽 당산나무에서 모이시는 것 같은데 원두막 같은걸 설치해 드리고, 냉장고도 설치해드리면 딱 좋겠네. 거기에 주기적으로 막걸리랑 음료수 채워 넣으면 좋아하시겠지.’

엄마가 살던 동네이고, 나중에 놀러 오실 동네인데 내가 잘 해드려야 엄마 자존심도 살고 다들 좋아하실 것이다.

아무리 괜찮다고 말해도 그 말만 믿고 아무것도 안한다면 사람인 이상 서운해 할 가능성이 높다.

물론 아닐 수도 있겠지만, 나는 나한테 잘해주는 사람한테 잘해주고 싶다.

잘해주는 사람이 자신에게 계속해서 잘해준다고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하고 받으면, 그 좋은 사람이 언제까지 좋은 사람일 수 있을까?

반대로 생각해봐도 내가 호의를 베푸는데,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받기만 한다면 그건 내가 호구가 되는 것이다.

잘해줄 때 더 잘해줘야 한다.

나는 바로 출장 뷔페를 예약하고, 다음날 마을을 다시 방문하였다.

“워매! 이게 다 뭐시당가? 뭔 잔치를 벌여?”

“아짐! 어여 나와보랑께! 미정이 아들이 잔치를 준비했다고 안하요!”

“응? 잔치? 그라믄 내가 빠지믄 안돼제! 아야. 저짝에 있는 마이크 가꼬와라이.”

“아따 우리 할매 신세대랑께! 이 마이크는 워디서 난겨?”

“우리 손주들이 놀러와서 선물이라고 주고 갔당께! 부럽제?”

“아따 손주 안 놀러오는 사람은 서러워서 살것소? 쫌 거시기 허요!”

“쉰소리 말고! 한 잔 따라봐! 쭈욱 한잔하고 한 곡조 뽑아봐야제!”

마을 회관보다는 날씨도 좋고 해서 당산나무쪽에 음식들을 차려놓았다.

업체에서 식탁과 의자들까지 전부 셋팅을 해주셔서 편하게 대접을 할 수 있었다.

“어르신들. 제가 한 잔씩 올리겠습니다. 저희 어머니 오시면 잘 좀 부탁드립니다.”

나는 고개 숙여 인사를 드리고 막걸리 한잔씩을 따라드렸다.

“워매! 걱정은 하덜마러! 우리 미정이가 오는디 누가 뭐라 할 것이여! 할매들 안 그렇소?”

“그라제!”

마을 이장님이신 엄마친구 정한식 아저씨는 기분이 아주 좋아 보이셨다.

어릴 적 친구의 아들이 성공해서 돌아온 게 기쁘신 건지, 첫사랑이 다시 이 동네에 온다는 소리에 기쁘신 건지, 그냥 술을 마셔서 좋으신 건지는 모르겠지만, 얼굴 가득 피어오르는 웃음을 보고만 있어도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그날 모두들 행복해하셨고, 나도 행복했다.

이게 돈을 쓰는 맛인가 보다.

==========

- 천운님. 그래핀 샘플 나왔습니다. 확인 부탁 드립니당!

“아담아. 적당히 해라. 한 번만 더 ‘당’ 소리하면 네 몸에서 우‘당’탕탕! 소리 나게 만든다.

- 하. 하. 하. 나는 나보다 더 안 웃긴 사람의 말은 듣지 않습니다.

아우 저걸 그냥!

아무튼 첫 번째 그래핀 샘플이 완성되었다.

아직 동해안의 섬에서는 공장 공사가 한 창이지만, 샘플은 연구소에 있는 설비로 만들어 볼 수가 있었다.

이론상으로는 가능하다지만, 실제로 만들어봐야 양산 시스템을 확정할 수가 있다.

미역에서 추출한 알긴산을 증류수와 섞어 용기에 담고, 그 위에 용궁에서 보내온 니그룸 푸미의 배설물을 아주 곱게 갈아 섞어주었다.

그리고 진동 발생기로 분당 1만 2천회의 진동을 설정하고 작동을 시켰다.

[우우우우우웅]

약 1분간 작동을 시키고 진동 발생기를 멈춘 다음 확인을 해봤더니 아주 얇은 막이 물 위에 떠올라 있었다.

이대로 건조를 시키면 바로 미스릴로 불리는 그래핀이다.

“좋아! 아주 완벽해. 아담아 조심히 밸브 열어서 용액만 빼내고, 아주 조금만 남겨놔. 그리고 다 마르는 데 걸리는 시간 측정하고. 저기 다른 재료들로 조건 바꿔서 다양하게 테스트해. 용액 점도도 바꿔보고, 배설물 양도 바꿔서 해봐. 온도, 습도도 바꾸면서 하는 거 알지?”

- 정확히 알고 있습니다. 그냥 알아서 테스트하라고 하는 건 어떠신지요?

“알아서 해라. 에휴..”

- 라져!

아담이는 열심히 일을 시작했다.

갈수록 이상해지는 아담이지만, 그와 비례해서 능력은 점점 향상되어 갔다.

인공지능이 각종 지식들을 습득하며 성장해갔고, 스스로 진화를 하듯이 똑똑해져갔다. 그러나 말도 안 되는 유머를 하는 부작용이 심각하다.

“누굴 닮아서 저러는지.. 쯧쯧.”

- 닮기는 누굴 닮아? 자기 성격을 넣었으면 자기지.

“뭐라고?”

- 그래핀이~ 잘 나왔을까나~ 네? 뭐라고 하셨어요?

동해안에 있는 섬에 만들고 있는 그래핀 생산 공장은 사람을 쓰지 않고, 자동화 시스템으로 갈 예정이다.

인력이 꼭 필요한 곳에는 아담이를 프로토타입으로 안드로이드 몇 대를 생산해서 사람 역할을 하고자 한다.

아무래도 무인도에서 근무하라고 하면 누가 근무를 할 것이며, 중요 생산 공장의 보안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사항이다.

대신 그래핀 생산이 안정적으로 진행되면 국내 업체들에게도 판매를 할 생각이다.

물론 내가 이 그래핀을 가지고 각종 첨단 기술로 무장을 하면 그 누구도 기술력으로는 나를 뛰어넘지 못할 것이다.

결국 이 세상의 첨단 기술을 이용한 제품들은 전부 나의 손에 정복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대규모 구조조정을 통한 실업자 발생 등의 부작용이 뒤따를 것이 분명하니 조심해야 한다.

그리고 황재성 회장님의 조언도 지금의 결정에 중요하게 작용을 하였다.

“천운님. 우리는 기술력을 가졌지만, 혼자 살아갈 수 없습니다. 생각보다 우리나라의 재벌들과 정치권, 법조계, 언론들의 카르텔이 막강합니다. 저들은 법이라는 강력한 무기로 합법이라는 탈을 쓰고 우리 회사를 난도질 할 수도 있고, 언론이라는 옷을 입고 유언비어를 퍼트려 우리 회사를 소문이라는 해일로 무너트릴 수도 있습니다. 아직은 우리가 너무 약합니다.”

그 말에 나도 수긍을 하고, 대신 미래를 준비하기로 하였다.

최소한 손 놓고 당하지는 않도록 준비는 해야 한다.

황재성 회장님은 나에게 한 사람을 소개시켜주셨다.

[탐사전문 기자 강직]

“안녕하십니까. 상급 시스템 사용자 강직이라고 합니다.”

“네. 너무 반갑습니다. 수습 시스템 사용자인 천운이라고 합니다.”

내 인사말에 강직 기자님이 깜짝 놀라셨다.

“아니! 아직 수습이시라고요? 그런 등급도 있었습니까? 힐링님이 수습이면 저는 날아다니는 슈퍼맨이 되어야 하는 거 아닌가? 이건 뭐가 이상한데.. 조사를 해봐야겠어!”

갑작스럽게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매의 눈으로 변하셨다.

“하하하. 기자님. 우리 천운님이 불편해 하십니다. 그만 하시죠.”

회장님의 말씀에 기자님은 표정을 풀고 이야기를 하셨다.

“하하하. 죄송합니다. 제가 직업병이 있어서. 궁금하거나 이상한 걸 보면 그냥 넘어가지를 못해서요.”

기자님은 총 세 가지의 상급 재능을 가지고 계셨다.

[지식의 도서관 - 한 번 읽었던 책들을 지식의 도서관에 보관이 가능합니다. 원할 때 검색이 가능합니다.]

[성실한 개미 - 편법을 쓰지 않고, 성실하게 일을 할 때 일의 능률과 성과가 늘어납니다. 불법을 보게 되면 혐오감을 느낍니다.]

[공정한 펜 - 자신이 쓴 기사를 공정하게 적을 수 있습니다. 사심이 들어가면 붉은 글씨로 표시됩니다. 공정하게 적은 기사는 사람들에게 쉽게 노출됩니다.]

모두 대단한 재능들이었다.

특히나 지식의 도서관은 엄청난 재능이었다.

“기자 일을 하다보면 생각보다 전문적인 지식이 많이 필요합니다. 뭘 알아야 저게 뭔지, 뭐가 잘못 된 건지를 판단할 수 있거든요. 그런데 문제는 제가 직접 읽어야만 등록이 된다는 거죠. 제가 책 읽을 시간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하하하...”

“그래도 정말 대단하군요. 그럼 저도 제 스킬을 알려드릴까요?”

“그래주시면 좋죠.”

그 말에 회장님은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흠흠.. 저는 잠시 산책 좀..”

“엥? 갑자기요? 회장님! 어디가세요?”

“탄산은 코로 먹어야 제 맛, 고추냉이는 파인애플 맛, 제기차기의 달인, 양파는 울지 않아요, 개 사료는 내 밥, 내가 기다리는 자리가 곧 빈자리, 병뚜껑 튕기기의 달인, 내 콧바람은 토네이도....”

내 재능들을 말씀드릴 때마다 수첩에 적으시며 흥미진진한 표정을 지으시던 기자님은 수첩이 세 장을 넘어가기 시작하자 도저히 참지를 못하시고 말씀하셨다.

“그만! 제발 그만 해주세요. 아니 이게 뭔..”

“이 편지는 영국에서 시작되어, 내 눈을 바라봐! 너는 공중에 뜨고! 어? 아직 많이 남았는데..”

“아니 무슨 재능들이 이렇게 많습니까? 그리고 다들 이상한 거고. 이게 뭐죠?”

“험험.. 이 정도면 끝났으려나?”

산책을 마치신 회장님이 다시 회장실로 들어오시면서 말씀하셨다.

“어? 아직도 안 끝났나요? 그 사이에 또 많이 느셨군요. 하하하”

“회장님. 도대체 힐링님 정체가 뭡니까?”

“음.. 퀘스트의 노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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