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음식
[응원] 재능을 얻고 난 이후에는 피곤이라고는 모르는 몸이 되어버렸었다.
그래서 남들의 2배에 가까운 시간을 연구에 쏟을 수 있어서 짧은 시간에도 많은 성과를 내는 게 가능했다.
그런데 요즘 들어서 이상하게 조금씩 피곤해지기 시작했다.
‘조금씩 피곤이 느껴지네. 뭐지?’
마치 어떤 선이 있는데, 이 선을 넘어가면 피곤함보다 회복력이 위에 있어서 피곤함을 모르게 되고, 이 선보다 낮으면 피곤함이 회복력보다 위에 있어서 피곤함이 누적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잠시 쉬면 금방 괜찮아지지만, 그럴 땐 집중이 깨지게 되어 다시 집중하기까지 시간이 걸리기 시작했다.
‘뭐지? 왜 그럴까?’
그러다 문득 생각이 들었다.
‘요즘에 퀘스트를 하러 나가면 깜빡하고 마스크를 안 해도 사람들이 잘 알아보지 못했어.’
예전에는 내가 힐링이라는 것을 금방 알아보는 사람들 때문에 항상 조심했었다.
그런데 요즘에는 나에 대해서 소개를 하면 그때서야 알게 되는 분들도 많아졌다.
‘아무래도 내가 너튜브를 너무 오래 쉬었나보다. 대중들에게서 조금씩 잊혀 지내다보니 [응원] 재능도 효율이 떨어지나 보네.’
원래 [응원] 재능의 효율은 컨디션이 약간 좋아지는 정도였어야 하는데, 나의 인기가 너무나 엄청나다보니 최상급 재능 이상의 효율을 발휘했을 뿐이다.
교통사고로 너튜브에서 은퇴 비슷하게 생활한지도 거의 1년이 넘어간다.
그동안 힐링 타운도 완전히 개발이 완료되었고, 송이의 스카이 호텔도 준공이 되었다.
아직 동해의 섬에 만드는 공장은 마무리가 안 끝났지만, 그것도 마지막 점검중일 뿐이다.
엄마의 시골집은 거의 완성을 했다가 경호원 분들도 머물 수 있는 공간까지 추가를 하다 보니 아직 공사 중이다.
그래도 엄마 생신 때 까지는 완공이 될 것 같다.
‘기분은 한 3년은 지난 것 같은데, 1년 밖에 안 지났네. 그나저나 나도 금방 있으면 30대가 되는구나.’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중에 전화가 걸려왔다.
‘응? 재준이?’
“어. 재준아. 오랜만이네. 잘 지냈지?”
[네. 형. 잘 지내시고 계시죠?]
“나야 항상 똑같지. 그리고 프로그램 잘 보고 있다. 여전히 재미있더라.”
[하하하. 그거 이제 후배한테 물려주고, 저 다른 프로그램 준비 중입니다.]
“응? 잘 되는 걸 왜 물려주고 새로운 걸 해?”
[제 꿈이 유한도전 같은 프로그램 만들고 싶다고 했잖아요. 실제로 그런 프로그램을 만들지는 못하지만, 계속해서 여러 프로그램들을 도전해 보려고요.]
안정된 일상에서 새로운 도전을 선택하는 것은 정말 대단한 결심이다.
사람이 진화를 해온 결과로 안정된 일상을 추구하는 게 본능인데, 그 본능을 이겨낼 수 있는 도전정신은 작게는 자기 자신을, 크게는 인류를 진보시키는 커다란 힘이다.
“그래. 좋은 생각이네. 그럼 나 출연해달라고 전화한 거지? 명절 때마다 굴비랑 소고기 보내주더니 이러려고 한 거였구나?”
[아니! 형. 그건 제가 너무 고마워서 그런 거고! 출연해 달라고 하는 건 맞기는 한데.. 하하하..]
“알겠어. 우리 재준이가 필요하다는데 당연히 도와줘야지. 무슨 프로그램인지 기획서만 하나 보내줘.”
[고마워요. 형.. 제가 아직은 많이 부족해서 형 도움을 많이 받는데, 나중에는 꼭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할게요.]
“너는 나한테 항상 큰 도움이 되고 있어. 그런 생각 하지 마. 네가 준 주머니몬 빵 아니었으면 지금의 나도 없다.”
[하하하하 저는 다 잊고 있었는데, 아직도 그걸 기억하시네. 그 이야기 하시니까 옛날 생각나네요.]
“아무튼 너무 미안해하지 말라고. 녹화 때 보자.”
[고마워요. 형.]
나의 은인인 재준이의 일이니 당연히 도와주고 싶다.
별거 아니라면 별거 아닌 주머니몬 빵이었지만, 그 당시의 인기와 영향력은 일개 알바생이 본인 판단으로 아무한테나 팔 수 없는 단골 유지용 영업 전략 제품이었다.
그런데도 자신의 안위보다도 나의 부탁을 먼저 들어준 착한 동생이자, 첫 번째 퀘스트를 도와준 은인이다.
잠시 뒤, 메일로 보내온 기획서를 보며 준비할 게 뭐가 있나 생각해봤다.
[스타 셰프의 대결 - 추억을 요리하다.]
프로그램 이름만 봐도 대충 감이 오는 기획이었다.
게스트를 초대하고, 그 게스트의 추억의 요리를 제현을 해준다.
그리고 방식은 셰프들 끼리의 대결 방식.
한 번 녹화에 두 명의 게스트를 초청해서 2회 분량을 촬영하는 방식 이었다.
나는 이 프로그램의 첫 번째 게스트이고, 다른 한 분과 같이 출연을 하면 되는 것이다.
‘생각보다 별거 없네. 그래도 기획은 좋다.’
추억과 음식은 항상 성공하는 베스트셀러 같은 기획이다.
너무 모험적인 프로그램에 도전하는 건 아닌지 걱정을 했지만, 생각보다 안정적으로 일을 진행하니 안심이 되었다.
진보적인 생각과 무모함은 한 끗 차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응원] 재능 때문이라도 조금씩 활동을 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던 때라서 타이밍도 정말 좋았다.
‘그런데 내 추억의 음식은 뭐지?’
여러 가지 음식들을 생각해 보았지만, 다 좋아하는 음식들이지 추억의 음식은 아니었다.
그러다 한 가지 음식이 불현듯 떠올랐다.
처음으로 택배 물류 창고에서 야간 일을 하고 받은 5만원을 손에 쥐고, 울면서 집에 들어온 새벽에 가까운 밤이었다.
송이가 깰까봐 조심히 들어와 숨소리도 내지 않으며 조용히 화장실에서 씻고 나왔다.
너무나 피곤해서 지금 자면 못 일어날 것 같다는 생각에 송이의 아침밥을 미리 준비해놓으려고 주방으로 들어갔을 때였다.
‘응? 이게 뭐지?’
식탁위에 볶음밥과 편지가 놓여있었다.
[오빠.
나 버리지 않아서 고마워.
공부 열심히 할게.
처음이라 조금 탔어. 미안.
먹고 힘내.]
왈칵 눈물이 났다.
나는 그저 우리를 버리고 간 엄마와 아버지에게 보란 듯이 잘 살고 싶다는 생각에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솔직히 송이를 위해서 돈을 번다는 생각은 없었다.
그저 치기어린 몸부림이었을 뿐이다.
그런데 송이의 편지를 보니 내 마음속에 책임감이라는 것이 생겨났다.
그때서야 비로소 내가 아닌 우리를 위해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피어났다.
의자에 앉아 조용히 볶음밥을 먹기 시작했다.
살짝 탄 맛이 혀를 자극하였고, 간이 되어 있지 않아 밍밍했지만, 맛있었다.
밍밍한 것은 내 눈에서 흐르는 눈물이 보충해 주었기 때문에 정말 완벽하게 간이 맞았다.
깨끗하게 다 먹어치운 그릇을 싱크대에 넣어놓고, 한참을 식탁의자에 앉아 있었다.
혀끝에 남은 그 음식 맛을 영원히 기억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게 내 추억의 음식이다.
[살짝 탄 밍밍한 볶음밥]
그 때 생각에 잠시 기분이 이상해졌다.
이상하게 송이가 보고 싶어졌고, 나는 송이의 사무실을 찾아갔다.
“오빠 무슨 일이야? 무슨 일 있어?”
갑작스러운 나의 방문에 송이는 깜짝 놀라 말을 하였다.
아무래도 내가 너무 무심했나보다.
일이 있어야만 송이 사무실을 찾다보니, 내가 오면 일이 생겼거니 생각하는 송이에게 정말 미안했다.
오리탕집 주인아저씨 귀신을 도와주고 얻은 중급 재능인 [요리의 기본] 덕분에 완벽하게 그날의 음식 맛을 재현할 수 있었다.
“너 일하느라 밥도 많이 거른다고 해서 요리 좀 해왔어.”
“오~ 웬일? 요즘에는 밥도 잘 안 해주더니. 어디 맛 좀 볼까?”
내가 가져온 그날의 볶음밥이 책상위에 놓여졌다.
송이는 기대감 있는 얼굴로 한 수저 가득 퍼서 입에 넣었다.
[오물. 오물.. 오물....]
“오빠. 내가 뭐 잘 못했어? 힐링 타운 투자금은 꼬박꼬박 갚고 있는데? 말해봐. 뭔데?”
내 추억의 음식을 먹고 화를 내는 송이에게 말을 해줬다.
“네가 나한테 처음으로 해준 음식이야.”
그 말에 송이는 모든 동작을 멈췄다.
“몇 년 전 일을 지금 복수 하는 거야?”
나는 송이의 말을 물 흐르듯이 귓등으로만 듣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이어나갔다.
“그날 정말 힘들었는데, 네가 만들어준 이 음식을 먹고 기운이 나더라고. 아마 내 평생에 잊을 수 없는 맛 일거야. 고맙다 송이야. 잘 커줘서.”
내 말에 송이는 안절부절못했다.
“간다. 그거 먹지 말고, 이거 먹어.”
따로 챙겨온 두부조림 도시락을 건네주었다.
송이가 제일 좋아하는 두부조림이다.
민망해서 그대로 나가려고 하는데 송이가 말을 하였다.
“오빠. 사실 두부조림이 내가 제일 좋아하는 요리인 이유가 있어. 두부를 싫어하는 나 먹으라고 오빠가 손 데여가면서 만들어 준거잖아. 이상하게 그때부터 두부조림이 좋더라고... 그냥.. 그렇다고.”
우리는 서로에게 느껴지는 이 감정을 어색하게 느끼며 서둘러 각자 할 일을 하기 시작했다.
추억이란 게 그런 것 같다.
싫어하는 음식도 좋아하게 만드는 마법 같은 힘이 있다.
항상 그 당시에는 힘든 일만 내 관심의 대상이었는데, 지나고 보면 힘든 일들보다는 좋았던 일들만 기억난다.
처음 아버지에게 자전거를 배웠을 때도 그렇다.
그날은 손을 놔버린 아버지 때문에 무릎과 손에 큰 상처가 생겨서 정말 아팠는데, 지금은 그 아팠던 기억보다는 아버지와 함께 했었던 따뜻한 기억만이 남아있다.
지금도 그럴 것 같다.
지금은 해야 할 일들이 나의 관심사이지만, 시간이 흘러 이때를 생각하면 나는 어떤 추억으로 이때를 기억하고 있을까?
미래를 보고 올 수 있다면 살짝 들여다보고 싶은 마음이지만, 그럴 수가 없으니 내가 할 수 있는 좋은 추억들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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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 정말 고마워요.”
“맨날 고맙다고 하냐? 명절 때마다 보내는 선물이 그 말을 대신하고 있으니까 그만 좀 해.”
내 말에 재준이는 머리를 긁적였다.
“아. 우선 인사들 하세요. 여기는 셰프님들.”
“안녕하세요. 천운입니다.”
“정말 반갑습니다. 팬입니다. 이따가 싸인 좀 부탁 드려도 될까요?”
오른쪽의 검정색 요리복을 입으신 요리사님이 말씀을 하셨다.
“그럼요. 당연히 되죠.”
“저는 여기 요리복에 해주시면 안 될까요? 저희 식당에 걸어놓고 싶은데요...”
왼쪽에 흰색 요리복을 입으신 셰프님이 말씀하셨다.
“기왕이면 새것에 해드리면 좋으니까 제 연구소로 보내주세요. 예쁘게 싸인해서 보내드리겠습니다.”
“아이고.. 정말 감사합니다. 정말 영광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덕담을 나누고 대기실에서 한담을 나누고 있었다.
그러다 문이 열리고 엄청나게 사나운 인상의 남성분이 대기실로 들어오셨다.
너무나 포스 있는 인상과 외모에 나는 깜짝 놀랐지만, 셰프님들은 아주 반갑게 그 분을 반겨주셨다.
“차범재 배우님. 정말 팬입니다. 드라마 잘 봤습니다.”
“이야! 포스가 장난 아니시군요. 정말 반갑습니다.”
그러자 차범재 배우님은 정말 순박하게 웃으시며 고개를 숙이셨다.
“아이고. 제 작품도 봐주시고 정말 감사합니다. 우리 고객님들 어서 앉으세요. 어깨 좀 주물러 드릴까요?”
외모와는 다르게 너무나 싹싹하시고 잘 웃으셨다.
“힐링님 맞으시죠? 신우한테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항상 커피랑 음식 잘 먹고 있습니다. 하하하”
신우하고도 같이 촬영하셨다고 하시니 더욱 반가웠다.
“정말 반갑습니다. 천운이라고 합니다.”
“하하하 저는 힐링님이 입에 붙어서요. 힐링님이라고 불러도 되죠?”
“그럼요. ‘야!’라고만 안하시면 됩니다. 하하하하”
그 말에 갑자기 정색을 하신 배우님이 나에게 말을 하셨다.
“소주 한 잔 하면서 ‘야!’라고 말할 정도로 친해지고 싶었는데. 이렇게 먼저 거절을 하시는군요...”
내가 당황할 정도로 너무나 실망을 하시는 모습을 보니 내가 다 죄책감이 느껴졌다.
“어? 아닙니다! 끝나고 소주 한 잔 하시죠!”
그러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웃으시며 말씀을 하셨다.
“하하하하 알겠습니다. 제가 잘 아는 곳으로 모시죠! 소주에 곱창이면 최고 아닙니까?”
아무래도 연기셨나 보다.
‘재능 낭비 제대로 하시네. 의외로 재미있는 분이시구나.’
내가 깜빡 속을 정도로 연기를 잘하셨다.
입담도 대단하시고, 은근히 남을 배려해주시는 모습 덕분에 우리는 재미있게 대기실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자! 이 프로그램의 첫 번째 게스트 분들을 모셔 보겠습니다.”
진행자분의 멘트로 녹화가 시작되었다.
“우리들의 영웅! 파도 파도 미담만! 힐링님을 소개합니다.”
나는 카메라를 보고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리고 성격파 중견 배우의 선두주자! 무표정으로 있으면 딸도 운다는 그 마스크의 소유자! 차범재 배우님입니다.”
차범재 배우님은 싸늘한 눈빛으로 진행자분을 보시다가 카메라를 향해 웃어주셨다.
“아.. 저를 보시는 눈빛에 너무 놀라서 그러는데, 대기실 좀 다녀와도 될까요?”
진행자분이 멘트를 던지셨다.
“뭐 놔두고 오셨나요?”
“아.. 제가 바지를 갈아입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너무 놀라서 그만.. 하하하하”
진심인지 농담인지는 모르겠지만, 덕분에 분위기는 화기애애해졌다.
“자. 첫 번째 요리 대결의 주제는 힐링님의 추억의 음식입니다. 설명을 해주시죠.”
나는 설명을 시작하였다.
“제 추억의 음식은 바로 볶음밥입니다.”
볶음밥이라는 말에 셰프님들이 자신감 있는 표정을 지어보이셨다.
“제가 어렸을 때 집이 너무나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동생과 같이 지내야 했는데....”
나는 담담히 나의 어린 시절과 그날의 이야기를 해드리기 시작했다.
내 이야기가 계속될수록 스튜디오의 모든 분들이 숙연해지기 시작했다.
이미 나의 이야기를 알고 있으신 작가님들조차도 다시 눈시울이 붉어지시며 훌쩍이고 있으셨다.
“그때 먹었던 그 맛이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그 맛을 평생 기억하고 싶어서 노력한 보람이 있네요. 비록 그때처럼 울면서 먹지는 않을 테니 간이 안 맞겠지만, 맛 보다는 그때의 추억을 떠올릴 수 있게 부탁드립니다.”
그 말에도 셰프님들은 대답을 못하시고 연신 눈물만 닦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