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4화 (84/170)

이제부터 진짜 시작이다.

우여곡절 끝에 첫 번째 녹화가 끝이 났다.

한바탕 눈물바다가 되었지만, 다행히 그 뒤부터는 다들 웃으며 재미있게 진행이 되었다.

볶음밥을 누가 더 맛있게 만드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내 기억속의 그 맛과 가장 가까운 음식을 만드는 게 중요했다.

두 분 셰프 모두 싱겁고 살짝 태운 맛은 잘 내주셨지만, 승리는 검정색 옷의 셰프님이 가져가셨다.

나는 가슴에 별을 달아드리며 승리를 축하드렸다.

“힐링님. 어떤 점에서 승자를 결정하시게 되셨나요?”

진행자분의 질문에 나는 웃으며 말씀을 드렸다.

“네. 제 동생이 너무나 어릴 때여서 재료 손질을 잘 못했습니다. 그래서 재료들이 두꺼워 잘 익지를 않았었죠. 그래서 재료가 덜 익은 볶음밥을 선택하였습니다.”

두 셰프님의 표정이 이긴 건지, 진건지 모를 정도로 갸우뚱 거리시는 게 너무 웃겼다.

그리고 쉬는 시간에 송이가 만들었던 그 맛을 그대로 만들어 대접을 해드렸다.

“아! 눈물을 흘리시며 드셔야 제대로인데, 어떻게 한 방씩 때려드릴까요?”

그 말에 맛을 보시던 두 분의 셰프님들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는 듯이 허겁지겁 볶음밥을 먹기 시작하셨다.

차범재 배우님은 내 사연을 들으시고는 쉬는 시간에 내 손을 꼭 잡아주시며 어깨를 토닥여주셨다.

마치 납치한 인질범에게 ‘너를 한 시간 뒤에 죽여 주겠어’라고 다정히 말씀하시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

마음이 안정되어 왔다.

그리고 시작된 두 번째 녹화.

이번에는 차범재 배우님의 차례였다.

“저는 어머님이 해주신 불고기와 제육볶음이 먹고 싶습니다. 어머님이 제 생일이면 꼭 같이 해주셨거든요. 보통은 고기반찬이 하나인데, 제가 워낙에 고기를 좋아해서 어머님이 꼭 그 두 개를 같이 해주셨어요.”

특이하다면 굉장히 특이했다.

보통은 각각이 메인요리인데, 같이 드셨다니 재미있었다.

“저희 어머니께서 세 달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제가 한창 드라마를 촬영하는 중이어서 임종도 못 지켜드렸어요. 와이프가 옆에 있어드려서 다행이기는 했지만, 아들 된 입장에서는 정말 큰 죄를 지은 거죠.”

밝은 모습만 보여주시던 분의 사연이 왜 이렇게 슬픈지 모르겠다.

“그날 아침에도 전화를 드렸었어요. 그런데 어머니는 저에게 차 조심하라고.... 크흠.. 어렸을 때 어머니와 길을 가다 차 사이드밀러에 살짝 부딪쳤었습니다. 그때부터 어머니는 항상 차를 조심하라고 하는 게 인사가 되셨죠.”

이번에도 세트장에 있는 분들의 눈시울이 붉어져 오기 시작했다.

“하하하 아니 다들 왜 그렇게 심각하세요. 그냥 평범한 어머니와 아들의 안부 인사일 뿐입니다.”

그 말에도 아무도 웃지를 못하였다.

“그렇게 그날도 평범한 안부 인사를 하고 일을 시작했죠. 그런데 그날따라 왜 그렇게 연기가 잘되는지, 신이 났었습니다. 스태프들도 동료 연기자들도 모두 다 칭찬이 자자했습니다.”

물을 한 잔 하신 배우님이 다시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그리고 점심에 힐링님이 보내주신 밥차 음식도 제가 좋아하는 불고기와 제육볶음이 나왔었죠. 우리 어머니가 제 생일이면 항상 해주던 그 음식입니다. 그렇게 모든 게 그날따라 좋았습니다. 딱하나 와이프의 전화만 빼고요.”

잠시 말을 멈추신 배우님은 감정을 추스르시기 시작했다.

“크흠.. 저는 너무나 신이 나서 와이프가 말하기 전에 열심히 말을 했습니다. 오늘 연기 정말 잘 되었고, 밥도 내가 좋아하는 것들만 나왔다. 덕분에 촬영이 빨리 끝나서 지금 올라가고 있다. 조금만 있다가 보자. 어머니는 어떠시냐. 와이프가 울고 있는 것도 몰랐어요. 바보같이...”

여기까지 이야기를 하시고, 녹화는 잠시 중단이 되었다.

배우님의 메이크업도 다시 손을 보고, 스태프들은 서로의 얼굴에 붙은 화장지 조각을 떼어주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다시 시작된 녹화에서는 두 셰프님들이 어떻게든 그 맛을 재현해 드리고 싶다는 의지로 가득 찼다.

“불고기 단맛의 정도는 어느 정도였나요?”

“제육볶음에서 국물이 있었나요? 아니면 국물이 없었나요?”

셰프님들은 여러 가지를 물어보셨다.

맛있는 음식이 필요하다기 보다는 가장 추억에 근접한 음식을 만드는 게 핵심이니 디테일한 부분까지도 물어보셨다.

심지어는 깨를 뿌렸는지, 어느 정도나 뿌렸는지까지 체크를 하셨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요리를 시작한 셰프님들의 화려한 요리 스킬들이 주인공이 되었다.

웍에 기름을 가득 둘러 불을 붙이며 모두의 눈길을 사로잡으셨다.

그 모습을 보시며 차범재 배우님이 말씀하셨다.

“우리 어머님이 저 정도는 아니셨는데..”

그 말에 셰프님들이 웍을 후라이팬으로 황급히 바꾸시고는 얌전히 요리를 하시기 시작하셨다.

드디어 요리가 완성이 되었고, 셰프님들이 각각 만드신 불고기와 제육볶음 4개가 배우님의 자리에 셋팅이 되었다.

젓가락을 이용해 맛을 보시는 배우님의 얼굴을 셰프님들은 긴장하며 바라보고 있었다.

“음.. 불고기는 이쪽이 더 가깝네요.”

그 말에 검정색 옷을 입으신 셰프님이 두 손을 번쩍 들어 올리셨다.

“제육볶음은 이쪽이 더 가깝고요.”

그 말에 이번에는 흰색 옷을 입으신 셰프님이 어퍼컷 포즈를 취하셨다.

“둘 다 너무 맛있어서 못 고르겠네요. 하하하 여기에 된장국 하나만 있으면 딱 제 생일 상이네요.”

그 말에 내가 일어섰다.

‘띠링’

[퀘스트 발생 - 어머님의 손맛이 담긴 된장국을 그리워하는 남자에게 된장국을 대접해 주시오. 제한시간 1시간.]

퀘스트 때문이 아니더라도 된장국을 대접해드리고 싶었다.

나에게는 [엄마의 레시피]라는 재능이 있기 때문에 배우님 어머니의 된장국과 동일한 맛을 내는 게 가능하다.

할 수 있는 일이 있는데, 해드리지 않는 건 양심에 걸려서 일어섰을 뿐이다.

퀘스트는 그 다음이었고, 의심되면 스크롤을 위로 올려 확인해 봐도 무방하다.

“제가 된장국은 정말 잘 끓입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나는 레시피가 시키는 대로 배추를 넣은 된장국을 끓이기 시작했다.

“어? 우리 어머니가 하시는 그 방식인데? 딱 보면 아시는 건가요? 정말 신기하네.”

나는 그 말에 웃으며 마지막에 청국장 한 숟갈을 넣었다.

“아니 그건 또 어떻게... 청국장 넣는 건 정말 아무도 모르는데.. 허.. 참.”

그렇게 끓여낸 된장국을 뚝배기에 담아 배우님 앞에 놓아드렸다.

숟가락을 들고 한참을 된장국만 바라보시던 배우님은 이내 조심히 된장국 한 수저를 떠서 입에 넣으셨다.

그리고는 조용히 눈물을 흘리기 시작하셨다.

“아.. 엄마..”

얼마 전에 돌아가신 어머님 생각이 나시는지 굵은 눈물을 흘리셨다.

방금 전까지 가슴 아픈 사연을 이야기 하시면서도 끝내 흘리지 않으셨던 눈물이 흐르기 시작하셨다.

잠시 눈물을 흘리신 배우님은 열심히 밥에 된장국을 드시기 시작하셨다.

된장국 국물이 하나도 남지 않을 때까지 정말 소중히 드신 배우님은 벌떡 일어나 나에게 다가오셔서 나를 안아주셨다.

“다시는 이 맛을 못 볼 줄 알았는데.. 정말 감사합니다.. 제가 한 번 해보려고 따라 해봤었거든요. 그런데 그 맛이 안 났어요.. 그런데..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나는 배우님을 향해 웃으며 말씀을 드렸다.

“언제든지 드시고 싶으시면 연락 주세요. 형님.”

그 말에 차범재 형님은 활짝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그래. 내가 동생 덕 좀 보지 뭐. 고마워.”

그리고 그날 두 번째 승리 셰프는 내가 되었다.

차범재 형님은 나에게 별을 달아주시고는 안아주셨다.

그렇게 우리의 촬영은 끝이 났고, 방영된 첫 번째와 두 번째 방송은 시청자들의 눈물을 쏙 빼 놓았다.

첫 번째 방송이 나간 날은 배달 어플의 1등 주문이 볶음밥이었고, 두 번째 방송이 나간 날은 된장국이 1등 주문이었다.

그리고 재준이는 MBSS 방송국 사장님에게 금일봉을 받았다.

“재준아. 금일봉 받았으면 한잔 해야지. 범재 형님도 부른다.”

그렇게 우리는 같이 술잔을 기울이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람 사는 게 이런 맛인가 보다.

[퀘스트 완료, 보상으로 50만원과 최하급 재능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를 습득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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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운님. 볶음밥 드실 거면 직접 하시지 왜 저를 시키시나요? 저는 먹지도 못하는데?

“오랜만에 우리 송이가 해줬던 그 맛이 먹고 싶어져서”

- 오! 천송이님도 요리를 잘 하셨나보군요. 오늘은 내가 요리사!

가끔 이렇게 송이의 볶음밥을 먹고 싶을 때면 아담이에게 요리를 시킨다.

그러면 기가 막히게 그때의 그 맛을 그대로 재현을 해준다.

어떻게 하면 저렇게 살짝 탄 밍밍한 볶음밥이 만들어지는지 신기하다.

나야 재능들이 있어서 보조를 한다지만, 아담이는 그런 것도 없는데 그 맛을 제대로 살려낸다.

- 재료를 썬다. 밥을 볶는다. 야채를 넣는다. 토마토 소스를 붓는다. 불을 다시 켠다. 댄스를 춘다! 호잇!! 완성!

뭔가 순서도 이상하고 중간에 왜 춤을 추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오늘도 이 맛이 그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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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회장님. 디자인 공모전 마감되었습니다. 20작품들 순위가 정해졌으니 암호를 해제해주시기 바랍니다.]

악세서리 디자인 공모전이 끝이 났다고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총 20개의 작품 중에서 국민들이 투표한 투표수에 따라 순위가 결정되었다.

핸드폰 본인 인증 후에 투표가 가능한데도, 참가한 인원이 무려 1억 명이 넘어버렸다.

이 어처구니없는 결과에 무슨 일인지 알아보니, 우리나라 국민들만의 축제인 줄 알았던 이번 공모전에 전 세계인들이 참여를 한 것이었다.

투표에 참가한 사람들 중에서 추첨하여 힐링 타운 자유이용권과 스카이 호텔 숙박권을 준다는 이야기가 각종 커뮤니티에 퍼지게 되었고, 이 소식은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그래서 이런 엄청난 투표수의 결과로 돌아오게 된 것이다.

대상은 한 명. 상금은 50억.

금상은 두 명. 상금은 10억.

은상은 세 명. 상금은 각 4억.

동상은 네 명. 상금은 각 2억.

장려상은 나머지 10명. 상금은 각 1억.

어마어마한 상금의 공모전이었다.

입상자들 중에서 원하는 사람들은 직원으로 채용을 하였다.

그리고 비록 입상은 하지 못하였지만, 가능성이 보이는 작품들의 경우에는 개별로 연락을 하여 작품을 구매하거나, 채용 의사를 물어보았다.

안타깝게도 최송희씨는 입상을 하지 못하였다.

비록 입상은 하지 못했지만, 심사위원들이 선택한 작품들 중에 하나가 다행이도 최송희씨의 작품이어서 작품의 구매와 디자인팀 입사 여부도 물어보았다.

그런데 민희를 돌봐줄 사람이 없어 망설일 때 주식회사 힐링의 복지를 듣게 되었다.

회사 내에 존재하는 어린이집과 초등학생 대상 돌봄 센터, 중학생과 고등학생들을 위한 스터디 카페까지 모든 것이 직원들과 직원들의 가족들에게 무료로 제공되었다.

심지어는 휴게실과 오락실까지도 모든 게 무료였다.

그리고 회사 근처에 초, 중, 고등학교까지 있었다.

대학교는 대학교 입학 축하금과 등록금도 무이자 대출이 되었다.

그리고 회사 주변에 전세 아파트도 지원을 해주었다. 물론 회사에서 계약을 하는 것이므로 소유권은 회사에게 있다.

최송희씨는 복지에 대해 하나씩 들을 때마다 너무나 기뻐서 환호성을 질렀고, 설명해주던 인사팀 직원은 너무나 기쁜 마음으로 열심히 알려드렸다고 한다.

결국 입사를 결심하신 최송희씨는 민희의 손을 꼭 잡고 회사에서 지원하는 아파트에 입주를 하게 되었다.

“축하드립니다. 이제는 좋은 일들만 있으실 거예요.”

집들이를 온 나를 보며 최송희씨는 고개 숙여 인사를 하셨다.

“정말 우리 가족의 은인이세요. 정말 천운님 아니셨다면 우리는 미래가 없는 삶을 살았을 거예요. 아니. 삶을 살 수나 있었을까요?”

그 말에 나는 손사래를 쳤다.

“아닙니다. 다 있는 제도들이었는데 모르셔서 혜택을 받지 못한 것뿐이셨어요. 저야 설명만 해드리고, 조금만 도와 드린 것뿐인 걸요. 그리고 공모전도 송희씨의 노력 덕분이지 제가 해드린 게 없는 걸요.”

“누군가에게는 정말 작은 도움일지도 모르겠지만, 절실한 사람들한테는 하늘에서 내려온 동아줄이에요.”

우리는 서로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웃어 넘겼다.

나도 내가 하는 일들이 잘못 된 게 아니라는 확신을 받는 기분이어서 최송희씨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아직까지도 커뮤니티에서는 나에 대한 비방글도 열심히 올라오고 있었다.

- 저거 돈 지랄 하는 거다! 저러면서 나는 위대해! 이런 미개한 것들! 하면서 혼자 즐기고 있을 걸?

⌎ 주식회사 힐링입니다. 비방 글에 대한 법적 대응을 예고해 드립니다.

⌎ 죄송합니다. 바로 삭제 하겠습니다. ㅠㅠ

- 저것도 정신병이야! 그리고 준다고 헤벌쭉 하면서 받는 것들은 다 거지들이다!!

⌎ 주식회사 힐링입니다. 비방 글에 대한 법적 대응을 예고해 드립니다.

⌎ 해봐!!

예전에 대규모 고소 사건 이후로 한 동안 없어졌던 나의 비방 글들이 잠시 방심했더니 다시 생겨났다.

그래서 다시 회사 홍보팀이 열심히 일을 하고 있다.

이번에는 커피차도 밥차도 없이 열심히 조사를 받으셔야 한다.

물론 선처는 없다.

“이제 디자인은 확보 되었으니까 일반인 대상 제품들도 판매를 해야 하는데, 아직도 조선전자는 연락이 없네. 이러면 그냥 내가 해버려?”

아직까지도 내가 신청한 제품 인증에 대한 답변이 없다.

반려가 되었으면 반려가 되었다고, 통과가 되었다면 통과가 되었다고 연락이 와야 하는데 아무런 연락이 없다.

아무래도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겠다.

‘정 안되면 진짜 한국을 뺀 나머지 스마트폰 업체들 전부와 협업하던지 해야겠다.’

지금도 나에게는 협업을 요청하는 연락들이 많이 오고 있다. 특히나 스마트폰 업체들에서 연락이 많이 온다.

그러나 아직까지 기다리고 있었던 건 한국 기업에게 먼저 기회를 주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이제는 더 이상 기다리기에는 시간이 너무 아깝다. 그리고 기다리는 시간동안 발생되는 고정비용들이 아까워지기 시작했다.

회사는 하루를 유지하면 하루어치의 비용이 발생한다.

아무리 내가 돈이 많다고 하더라도 이런 무의미한 낭비는 옳지 않다.

“회장님. 조선 전자 말고 GB 전자 쪽과 연락을 해보시고, 거기도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면 해외 쪽과 같이 하시죠. 더 이상은 안 될 것 같습니다.”

GB전자가 얼마 전에 스마트폰 시장에서 철수를 해서 배제를 했었는데, 그래도 마지막으로 국내 기업에 기회를 주고 싶은 마음에 연락을 부탁 드렸다.

내 연락에 회장님은 기다리셨다는 듯이 바로 일을 진행하셨다.

그리고 GB 전자에서 바로 연락이 왔다.

제안서에 대한 내부 회의를 해보고 삼일 뒤에 미팅을 원한다는 연락이었다.

‘이제부터 진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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