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있어도 웃음이 새어나왔다.
오늘도 힘든 하루가 끝이 났다.
언제부터인가 아무런 의지 없이 그냥 관성처럼 살아오는 것 같았다.
연습생 생활은 고되었지만, 버틸 만 했다.
정작 버티기 힘든 건 끝이 보이지 않는 데뷔의 길이었다.
매일 새벽부터 일어나 지칠 때까지 춤 연습을 하고, 노래를 부른다.
거기에 이제는 연기 연습까지.
그리고 이 모든 게 빚이었다.
나중에 데뷔를 하면 까낼 수 있다고 하지만, 사실 데뷔를 할 수 있을지도 이제는 모르겠다.
항상 데뷔 조 문턱에서 떨어지는 이 순간들이 몇 번에 걸쳐 일어나다보니 이제는 알 수 있었다.
자신은 그저 들러리라는 것을.
나는 회사에서 선택을 할 수 있는 몇 가지 옵션일 뿐이고, 나에게 부족한 끼라는 그 알 수 없는 재능 때문에 데뷔는 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걸 인정해버리면 지금까지 해왔던 모든 노력들이 아무런 의미가 없어질 것 같아서 인정을 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노래를 부르면 항상 칭찬을 받아왔다.
엄마가 즐거워 해주시고, 할머니가 칭찬을 해주셨다. 모르는 사람들도 내가 노래를 부르면 박수를 쳐주고, 기뻐해주었다.
나는 그저 그게 좋았을 뿐이다.
아빠가 항상 말씀하신 ‘좋아하는 일을 하렴.’을 따랐을 뿐이었다.
그런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런 상황이 되어 버렸다.
좋아하는 일을 이제는 더 이상 좋아만 할 수 없는 날이 되다보니 현실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나의 10대는 꿈으로 가득 찬 날들이었다.
TV에서 보는 연예인들이 자신의 미래인 것 같았고,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회사에서 가끔 보이던 선배님들이 인사를 해줄 때는 나도 저 세계에 금방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가끔씩 만나는 어릴 때 친구들하고 아이돌 선배님에 대해서 말을 할 때는 내가 다 우쭐거리곤 했다.
그러나 나이가 하나씩 늘어갈 때 마다 나의 자존감은 줄어만 갔다.
트레이닝 비용과 숙소비용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아르바이트가 필수였다.
언제까지 부모님에게 손을 벌릴 수도 없고, 뭐라도 하지 않으면 불안해서 견딜 수 없어서이기도 하다.
같이 연습하던 친한 언니가 데뷔를 하고, 나랑 동기였던 친구가 TV에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새 내가 연습생 생활을 알려주었던 동생들이 이제는 데뷔를 한다.
이신아. 7년차 연습생. 22세.
지금 나의 현재 상황이다.
7년이면 할 만큼 한 건 아닐까?
저번 주 주말에 오랜만에 집에 갔다가 부모님이 싸우시는 소리를 들었다.
아파트 담보 대출이라는 소리를 들었고, 장사라도 해야 하지 않겠냐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그날 바로 황급히 회사로 돌아와 미친 듯이 연습을 했다.
지쳐 쓰러질 때까지 연습을 했지만, 현실은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고, 내 마음도 편해지지 않았다.
너무나 답답하고, 두려웠다.
이제 와서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게 너무나 막막했다.
트레이닝 선생님들도 춤과 노래, 연기는 가르쳐 주시지만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는 알려주시지 않으셨다.
이제 그만 두어야 할 때라는 걸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용기가 없었다.
그저 흘러가는 강물에 떠내려가는 나뭇잎처럼 시간의 흐름에 몸을 맡길 뿐이었다.
‘차라리 그때 말한 스폰이라도 할까? 아니야! 그러면 아빠가 슬퍼하실 거야...’
너무나 답답한 마음에 나쁜 생각까지 하게 된 그날, 한 줄기 빛을 보게 되었다.
트레이닝 선생님이 보시고 내려놓으신 [강직 일보]라는 신문의 광고였다.
[미래가 보이지 않는 연습생 분들은 힐링 타운에 연락주세요. 같이 미래를 꿈꾸며 살아요.]
간단하기 그지없는 광고 문구였다.
나는 홀린 듯이 이 신문을 손에 들고 전화를 걸었다.
친절하게 전화를 받아주신 상담원 분에게 많은 질문을 하였고, 거기에서 나는 희망을 보았다.
면접은 엄청나게 무섭게 생기신 덩치가 아주 큰 아저씨가 보셨다.
이름도 특이했다.
[홍딸기]
그래도 무려 인사담당 팀장님이라고 적혀있었다.
“여기 지원하게 되신 동기가 어떻게 되시나요?”
외모와는 다르시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질문을 해오셨다.
나는 계속된 연습생 생활과 좌절, 앞이 보이지 않는 미래, 간절한 도움의 필요성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다.
“연습생을 그만두고 싶어도 그동안에 쌓인 비용 정산이 필요하다고 해서요. 여기서 일하면서 갚아 나가고 싶습니다.”
혹시나 면접에 떨어질까 봐 몇 번 눈물이 나올 것 같은 상황을 겨우 참아내며 씩씩하게 말을 끝냈다.
그리고 고개를 들었을 때 너무나 놀라서 일어설 뻔 했다.
“흐어어엉... 어떻게... 이렇게.... 흐엉... 훌쩍.. 면접은..크흥! 끝났습니다. 아마 좋은 소식 갈 거예요. 합격하시면 그쪽 소속사에 계약 해지 관련해서 우리 법무팀이 찾아 갈 겁니다. 아마 트레이닝 비용은 안 내셔도 될 거에요. 혹시나 필요한 경우에는 무이자로 대출도 가능하니 너무 걱정 마세요. 크흥!!”
덩치가 커다라신 분이 울고 있으니 마치 곰이 우는 것 같았다. 그래도 내 말에 공감을 해주시는 모습을 보니 좋으신 분인 것 같았다.
말씀해주신 대로 며칠 만에 나의 연습생 계약은 종료가 되었다.
나의 어린 시절의 모든 것을 함께한 이곳과의 인연이 이렇게 쉽게 끝이 나다니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날부터 힐링 타운에 있는 직원용 숙소에서 지내게 되었다.
조그마한 원룸에 6명이서 생활하던 연습생 때와는 너무나 달랐다.
1인실을 원하면 1인실을, 2인실을 원하면 2인실을 배정해 주셨다.
나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 때 안 좋았던 기억 때문에 1인실을 요청했다.
그리고 정말 꿈에 그리던 공간을 갖게 되었다.
넓은 방안에 따뜻한 햇살이 비춰주는 곳이었다. 마치 이 공간이 나를 축복해주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한 번도 나에게 이런 공간이 주어질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었다. 너무나 좋아서 오히려 불안해져왔다.
힐링 센터에서 가장 먼저 한 것은 건강검진과 정신과 진료였다.
결과는 살을 조금 더 찌우라는 것과 우울증 약 처방이었다.
그리고 하루에 한 시간씩 무조건 산책을 하라는 지시였다. 그 외에는 아무것도 터치하지 않으셨다.
일주일 동안 적응을 하고, 그 뒤부터 원하는 수업을 자유롭게 들을 수 있었다.
심지어는 수능 공부까지도 가능했다.
모든 비용은 일 년간 무료였다.
그 뒤에는 사정에 따라 일 년 더 연장이 가능하고, 그런 다음에는 다음 사람들을 위해 비워줘야 했다.
‘일 년 안에 꼭 나갈 거야. 이제부터는 내가 스스로 살아가야 돼. 누군가에게 의지를 하면 또 다시 무너질 뿐이야.’
그리고 정말 열심히 수업을 들었다.
경제 상식, 운전 면허증, 요리, 바리스타 수업을 들었다.
그리고 유일하게 강제로 들어야하는 마음 수업.
처음에는 도움이 되는 수업들만 듣고 싶어서 이 시간이 아까웠지만, 이제는 조급한 마음을 달래주고, 꿈을 키워주는 가장 좋아하는 소중한 수업 시간이다.
밤에도 자는 시간을 줄여가며 공부를 이어갔다.
하고 싶은 꿈이 생겼기 때문이다.
목표는 집 근처의 힐링 센터 카페.
직원으로 열심히 근무를 하면 운영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고 하였으니 정말 열심히 해보고 싶었다.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는 이 시간들이 너무나 소중하고 고마웠다.
뭔가를 열심히 해야 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뭘 어떻게 노력을 해야 하는지는 정말 몰랐었다.
그런데 지금은 친절하신 선생님들에게 어떻게 노력을 해야 하는지를 배울 수 있어서 행복했다.
어두운 터널의 끝이 어딘지도 모르고 무작정 뛰던 상황에서, 희미하지만 끝이 어디인지 알려주는 안내선이 생겨났다.
그 희미한 안내선이 너무나 소중했다.
바리스타 수업을 받고, 테스트를 받은 후에 근무지가 배정되었다.
힐링 타운 중에서 모두가 가장 근무하고 싶어 하는 미술관에서 근무하게 되는 행운이 뒤따랐다. 새로운 자신의 삶을 축복해주는 것 같은 행운이었다.
손님들도 가장 점잖으시고, 다른 곳에 비해 바쁘지도 않아 직원들이 가장 선호하는 곳이다. 물론 계속 여기에서 근무할 수는 없고, 일주일에 한 번씩 순환 근무를 한다.
그래도 첫 시작이 좋았다.
뿌듯한 노동의 시간이 지나고 조그마한 카페를 정리하고 있었다. 몸은 힘들지만, 마음만은 너무나 행복했다.
“으흥흐흥~ 흥~~”
콧노래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잠시 주변을 돌아보고 아무도 없자, 소리 내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부른 노래는 그토록 열심히 연습할 때보다 더 잘 불러졌다.
고음도 너무나 깔끔하게 나오고, 무엇보다 내 감정이 노래에 실리는 것 같았다.
“진작 이랬으면 데뷔 했겠네.”
[짝짝짝짝!]
“어? 누구세요?”
누군가가 듣고 있었다고 생각을 하니 갑작스럽게 부끄러워져 왔다.
예전에는 누구에게라도 노래를 불러주고 싶었는데, 이제는 부끄럽다.
사람이라는 게 정말 간사한가보다.
“여기에서 일하는 사람인데요. 노래가 너무 좋아서요. 마침 제가 작곡을 한 노래가 있는데 괜찮으시면 불러보시는 건 어떠신가요?”
말을 하는 그 사람을 자세히 바라보니 그 분이었다.
“혹시 힐링님? 맞죠? 우와!”
“하하하. 맞습니다. 그런데 정말 노래를 잘 하시네요. 노래에 감정이 실리는 게 엄청난 실력자이신데, 왜 그 꿈을 포기하셨어요?”
관광객들이 퇴관을 할 시간이 되어 산책을 할 겸 연구소에서 나오다가 노래를 듣게 되었다.
맑고 청아한 목소리에 고음도 완벽했다.
그리고 가장 좋았던 건, 그 감정의 전달이었다.
‘이정도면 완전 잘 부르시는 건데? 왜 꿈을 포기 하신거지?’
카페에서 실습을 하시는 걸 보면 연습생을 포기하시고 제 2의 삶을 준비하는 것 같은데, 왜 그런 결정을 하셨는지 궁금했다.
‘마침 이번에 작곡한 곡도 있으니 드려보자.’
“힐링님이 작곡하신 곡이요? 히트곡 제조기!”
연예계에서는 나를 히트곡 제조기로 부른다.
작곡하는 곡마다 항상 1위를 독차지 하니, 그렇게 부를 만하다.
“네. 한번 불러보시고 마음에 드시면 앨범 작업도 컨설팅 해드릴 수 있습니다. 예리엔터테인먼트랑 계약도 주선해 드릴 수 있고요.”
그 말에 흔쾌히 알겠다고 하실 줄 알았던 그 분이 한참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정말 감사하지만, 정중히 거절하겠습니다. 저는 지금 이 생활이 너무나 좋아요. 비록 어렸을 때부터 꾸던 꿈은 아니지만, 지금 꾸는 이 꿈도 정말 소중해요. 하고 싶은 일이 생겼거든요. 힐링님이 작곡하신 그 곡을 불러본다면 다시 이 꿈으로 돌아오지 못할 것 같아요.”
그 말을 들으니 내가 얼마나 남의 마음을 쉽게 생각했는지 반성하게 되었다.
내 스스로가 꿈의 무겁고 가벼움을 나누고 있었다.
가수의 삶이 카페를 운영하는 삶보다 더 낫다고 무의식중에 생각했나보다.
직업의 귀천이 없듯이 꿈의 무게도 다 다른 법인데, 내가 너무 편협하고, 오만했다.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쉽게 판단을 했네요.”
“아니에요. 제가 더 감사하죠. 어렸을 때부터 제가 노래 불렀을 때 칭찬해 주신 분들이 너무 고마웠어요. 아까 쳐주신 박수는 정말 오랜만에 들어보는 칭찬이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잠시 생각하다 다시 한 번 말을 했다.
“그래도 이곡은 드리고 싶어지네요. 가수를 포기했다고 해서 노래까지 포기하신 건 아니시잖아요? 꼭 불러주세요. 아까 전의 그 목소리로 부르는 노래가 듣고 싶네요.”
그 말에 망설이시던 그 분은 이내 고개를 끄덕이셨다.
“이신아예요.”
“반갑습니다. 저는 천운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그제야 늦은 인사를 하고, 서로를 바라보며 웃어버렸다.
며칠 뒤 이신아씨가 쉬는 날, 예리엔터테인먼트에 이신아씨와 같이 방문하였다.
“이사님. 오랜만에 오셨네요. 녹음 하시려고요? 신인 가수?”
“가수는 아니고요. 그냥 일반인이세요. 제가 만든 곡에 어울리는 목소리와 감성이라서 제가 쓴 곡을 선물로 드리려고요.”
“아. 그러시군요. 녹음실 셋팅 해놓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나는 이신아씨에게 힘내라고 해주고 녹음을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긴장을 해서인지 만족스럽지 못했지만, 내가 괜찮다고 거듭 말을 해주니 조금씩 안정이 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가 그날 들었던 그 감성이 터져 나왔다.
“언젠가는 저 내리는 비가 될 거야....”
녹음실에 있던 모든 직원들이 입을 쩍 벌렸다.
“아니! 일반인이시라고요? 이렇게 노래를 잘하시는데? 신인 발굴 팀장님 불러!! 아니! 회장님 불러!!!”
예리 아버님한테 전화를 걸려는 직원 분을 이사의 힘으로 멈춰 세우고 겨우 탈출을 하였다.
녹음이 완료된 파일은 조금만 만져서 내 메일로 받기로 하였다.
“어떠셨나요?”
“이제는 정말 가수의 꿈을 포기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꿈꾸던 녹음까지 끝냈으니 홀가분하네요.”
이신아씨는 정말 편안한 표정으로 나에게 웃으며 말씀하셨다.
“원하시면 제 채널에 올려드리거나 힐링 타운에서 방송 송출이 가능한데, 해드릴까요?”
내 말에 단호하게 거절을 하셨다.
“아니요. 나중에 제 카페가 생기면 그때 제 손님들한테 들려드리려고요. 그게 지금은 제 꿈이에요.”
“그 꿈을 응원하겠습니다. 항상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그 말에 이신아씨는 웃으면서 말씀을 하셨다.
“이미 힐링 타운으로 저에게 꿈을 꿀 수 있게 해주셨어요. 힐링님이 아니었다면 꿈을 꾸는 게 사치인 삶을 살았겠죠. 정말 감사합니다.”
그 말을 들으니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저 나의 욕심으로 시작한 일일 뿐이었다.
그저 방황하는 아이들의 앞날에 조그마한 힘이 되어주길 바랬을 뿐이다.
그저 단 한명에게라도 도움이 된다면 족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한명이 내 눈앞에서 고맙다고, 감사하다고 말을 하고 있었다.
‘정말 잘했다. 정말 잘했어...’
그날 나는 너무나 행복하고 뿌듯했다.
가만있어도 웃음이 새어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