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9화 (89/170)

신의 한수.

- 게임을 시작하지.

[빡!]

“어디서 반말이야? 똑바로 못해? 죄송합니다. 제가 잘 못 키워서...”

나에게 뒤통수를 맞은 아담이는 벌떡 일어나 직원 분에게 90도로 인사를 하였다.

- 죄송합니다.

“아..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아담이의 박력 있는 인사에 직원 분은 괜찮다고 손사래를 치셨다.

그리고 시작된 조선전자의 Best와 아담이의 대국.

시작은 흑돌과 백돌을 정하는 것에서부터였다.

둘의 실력을 모르니 ‘돌가리기’를 통해 흑백을 나누어야 한다.

- 제가 더 상수이니 백을 하겠습니다.

아담이가 먼저 선수를 쳤다.

먼저 둘 수 있는 흑돌을 포기하고 백돌을 먼저 선택해 버렸다.

- 덤은 안주셔도 됩니다.

먼저 두는 흑돌은 바둑에서 엄청나게 유리하다.

그래서 보통은 흑돌에게 패널티를 주는데, 보통은 6호 반이나 5호 반을 준다.

즉 바둑을 모두 마친 후에 집의 수효를 계산할 때 흑집에서 일정 수효의 집을 빼는 것이다.

즉, 아담이가 말한 것은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는 것으로 자신이 완전한 상수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웅성거리기 시작했고, 직원 분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당황하셨다.

“괜찮습니다. 그렇게 해주시죠.”

나의 말에 경기는 그대로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그냥 평범하게 시작되었다.

각자의 전략에 따라 원하는 곳에 두기 시작했고, 이변이 생기기 시작한 것은 35수에 둔 아담이의 한 수 때문이었다.

이해할 수 없는 그 수에 해설을 하시던 분들도 당황했고, 지켜보던 사람들도 이해를 하지 못하였다.

Best의 자체 승률 계산 결과가 80%로 치솟았다.

- 아... 이건 정말 큰 실수다.

⌎ 잘 두다가 이건 뭐냐?

⌎ 처음에는 자신만만하다니 뭐 저런 수를 두냐?

- 힐링이는 이제 끝이다. 저따위 로봇으로 무슨 최고의 기술을 자랑한다고 하는 거냐?

⌎ 로봇 자체는 엄청나게 잘 움직이는데요? AI가 문제이지 로봇 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인데요?

인터넷 상에서도 갑론을박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중반으로 넘어간 대국에서 갑작스럽게 Best의 속도가 느려지기 시작하였다.

그에 반해서 아담이는 생각이라는 것을 아예 하지 않는 것처럼 Best가 놓자마자 바로 자신의 백돌을 바둑판에 놓고 있었다.

- 바둑 두는 인공지능 어디 갔나?

Best의 속도가 느려지다 못해 멈춘 것 같은 상황이 일어나자 아담이가 참지 못하고 한 마디를 하였다.

그러다가 나의 눈빛에 황급히 고개를 숙이고 대국에 집중을 하였다.

한참을 그렇게 고민을 하던 Best는 흑돌을 놓았고, 자신이 계산한 승률은 어느새 32%까지 떨어졌다.

- 마무리를 지어보실까?

[딱!]

이해할 수 없었던 35수에 둔 그 백돌과 교묘하게 만나는 수였다.

- 이게 바로 신의 한수다!

그리고 Best의 화면에서는 [You Win]이라는 팝업창이 생겨났다.

- 거 잔금은 이쪽 통장으로 쏴주시오. 저짝 사람에게 주면 안 돼!

바둑을 두시던 직원 분에게 몰래 계좌번호가 적힌 종이를 건네주다가 나한테 걸려서 빼앗겼다.

“야! 창피하게 하지 말라고! 집에 가서 보자!”

- 아니! 내가 이긴 건데! 돈은 천운님이 다 가져가시려고 하니까 그러죠!

“너한테 줘봤자 또 주머니몬 빵 살 거잖아! 적당히 해야지! 이걸 확!”

- 저 들어 눕습니다! 예? 반띵이라도 해!

티격태격하는 우리를 카메라는 열심히 촬영하고 있었다.

- 야. 저건 그냥 사람인데?

⌎ 심지어는 사춘기인 것 같다.

⌎ 그러게.. 우리 막내 동생하고 똑같아.

- 분명히 사람이 안에 들어있을 거야! 분해한 모습을 보여줘라!!

⌎ 야이씨! 사람이 AI를 이기면 그게 사람이냐? 뭐 이삼돌이야?

⌎ 그러게! 사람이 AI를 이기는 게 더 말이 안 되지!

“아우! 이걸 그냥! 바둑도 겁나게 못 두면서 왜 이렇게 깝죽대? 한 판 붙어?”

- 헹! 저는 이미 신의 한수를 구사했습니다! 이미 천운님을 뛰어넘었다고요!

그렇게 우리는 우리끼리 2차전을 하였다.

갑작스럽게 걸린 천만 달러짜리 내기 바둑에 사람들은 다시 집중을 하였고, Best를 위한 대국장은 어느새 나와 아담이의 대국장으로 변하였다.

이번에는 내가 백돌을 쥐고, 흑돌은 아담이가 쥐게 되었다.

“야! 안 봐줄 테니까 집중해라!”

그 말에 슬그머니 두려움이 생겼는지 아담이가 조용히 말을 하였다.

- 덤은 필요 없으시죠?

그렇게 대국은 시작되었고, 125수만에 백 불계승을 거두었다.

그리고 시작된 인터뷰.

“아직까지 AI는 인류를 따라잡지 못하였습니다. 전 세계 AI중 가장 뛰어난 성능을 자랑하는 저의 [아담]이도 저한테는 부족합니다. 앞으로도 많은 투자가 필요한 분야이니 여러분들의 지속적인 관심 부탁드립니다.”

그 말에 사람들은 할 말을 잃었다.

이미 AI는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프로바둑 기사들을 정복을 하였고, 이제는 그들만의 세계에서 경쟁하는 판국인데, 갑작스러운 인류 최강설을 말하니 할 말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말로만이 아니라 정말로 인공지능을 이겨버린 내 바둑 실력에 인류 최강설을 안 믿을 수도 없었다.

- 저건 그냥 힐링이가 대단한 거 아니냐?

⌎ 그러게? 저건 인류가 승리한 게 아니라 힐링이가 승리 한 거네.

⌎ 그냥 힐링이가 힐링한 걸로...

⌎ 그러게.. 그냥 그런 걸로 합시다.

그렇게 조선그룹에서 Best를 위해 마련한 무대는 나와 아담이 때문에 모든 것이 묻혀버렸다.

마지막 아담이와의 대결은 조금 즉흥적이었지만, 오히려 더 나은 결과를 보여주었다.

결국 남은 건 나와 아담이의 상금 분배에 대한 토론과 아담이의 기술 수준이 어떠한 수준인지에 대한 토론뿐이었다.

아담이는 로봇이니 주인인 내가 가져야 한다는 의견과 아담이는 이미 하나의 생명이라는 의견이 갈려서 치열하게 다투고 있었다.

그리고 전문가들과 로봇 마니아들은 아담이의 그 부드러운 동작성과 완벽한 균형감각, 주변을 인식하는 센서들을 유추하며 불타오르고 있었다.

결론은 아담이가 현존하는 모든 안드로이드 기술의 정점이라는 공통된 의견.

“천운님. 다시 주문량이 엄청나게 늘고 있습니다. 그런데 부작용이 심각합니다. 이제는 의사들도 교통사고를 당한 환자들에게 힘들게 사지를 살리고 재활을 받느니 의수나 의족을 사용하기를 권유하는 사태까지 벌어지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일부 의료 선진국을 제외한 나라들에서는 차라리 크게 다치면 절단을 하고, 의수나 의족을 권유하는 경우가 생기기 시작했다.

접합수술의 성공률이 높지도 않고, 재활 기간도 길어 병원비가 더 나오는 수술보다, 더 저렴하고 쉽게 적응이 되는 의수나 의족은 더 나은 대안이 되고 있었다.

“어.. 그건 조금 더 지켜보며 대안을 마련해 봐야겠네요.”

뭔가 비인간적인 것 같은 점에서 거부감이 들지만, 열악한 의료 시설과 돈이라는 현실적인 문제 앞에서는 쉽게 말하기 힘든 문제였다.

결국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과 토론이 필요한 사안이었다.

그리고 이상하게 아담이가 인기를 얻었는데, 내 [응원] 재능의 효율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아담이도 내 소유이기 때문에 아담이의 인기도 내 걸로 포함되나?’

어쨌든간에 좋은 현상이었다.

나는 한 바탕 지나간 폭풍 같은 인공지능 대결에 대해서 생각을 하다가 바둑에 대한 재능을 얻게 된 일에 대해서까지 생각이 미치기 시작했다.

그날은 생각 없이 뛰다보니 어느새 탑골 공원까지 가게 되었다.

그곳에는 수많은 할아버지들이 모여서 장기를 두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셨다.

‘여기가 말로만 듣던 탑골공원이구나. 진짜 할아버지들이 장기를 엄청나게 많이 두시고 계시네.’

무언가 역사 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고, 나도 모르게 그쪽으로 걸음이 향하게 되었다.

그런데 다들 옹기종기 모여 장기를 두고 있으신데, 할아버지 한 분만 구석에 앉아 혼자서 장기를 두고 계셨다.

할아버지의 오른손은 내가 만든 의수가 착용되어 동작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어르신. 혼자이시면 같이 두어도 될까요?”

나는 의수가 반갑기도 하고, 혼자 계신 할아버지가 조금 안타까워서 말을 걸어드렸다.

“응? 나? 괜찮아. 혼자해도 재미있어.”

얼굴은 뭔가 아쉬워 하시면서도 내 눈치를 보시는 게 같이 하고 싶어 하시는 것 같았다.

“저도 심심해서 그러는데, 같이 해주세요.”

내가 끈덕지게 달라붙자 할아버지는 어쩔 수 없으시다는 듯이 자리를 권하셨다.

“그럼 몇 판만 해 볼까?”

“감사합니다. 어르신.”

우리는 자리에 앉아 장기를 두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장기를 두며 두런두런 사는 이야기를 하는데, 할아버지의 사연이 조금은 안타까웠다.

“집에 있으면 며느리가 불편해 할까봐서 내가 오히려 불편해. 나 때문에 며느리가 마음대로 쉬지도 못하고, 눈치만 봐. 놀러 나가고 싶어도 나 밥 차려줘야 하니까 못나가는 게 눈에 보여. 그래서 이렇게 저녁까지 있다가 들어가는 거야.”

나는 할아버지의 안타까운 사연을 들으며 할아버지의 의수를 잡았다.

“제 포는 왜 가져가십니까! 어르신? 아까 제 졸 하나 몰래 가져가시는 것도 모르는 척 해드렸는데요.”

가만 보니 혼자 장기를 두시는 이유가 있으셨다.

자꾸 몰래 내 장기알을 가져가시거나 몰래 자신의 장기알의 위치를 바꾸신다.

저러니 상대방들이 싫어해서 상대를 안 해주시나 보다.

“허허허. 좀 하는구먼. 바둑은 조금 둘 줄 아나?”

할아버지는 갑작스럽게 나에게 바둑에 대해서 물어오셨다.

어렸을 때 한창 바둑 붐이 일어난 적이 있었다.

바둑이 국민 스포츠이기도 했고, 바둑을 배우면 머리 회전에도 좋다는 소문이었다.

그래서 엄마는 싫다는 나를 억지로 기원에 세 달간 보내셨다.

그리고 기원이 너무나 싫었던 나는 아버지에게 내 생일 선물 대신에 기원을 다니지 않도록 해달라고, 울면서 애원해서 더 이상 다니지 않을 수 있었다.

그래서 아주 기본만 알고 있었다.

“그냥 둘 줄만 압니다.”

“그럼 바둑 몇 판만 둬 보세나.”

장기판을 뒤집으니 바둑판이 보였다.

할아버지는 흰색돌을 잡으시더니 나에게 먼저 두라고 하셨다.

몇 점 잡아두시겠다는 말씀도 없이 초보인 나를 무지막지하게 몰아 붙이셨다.

정신없이 세 판을 내리지고 나니 오기가 생기기 시작했다.

이때껏 해왔던 바둑의 기보들을 눈을 감고 떠올리기 시작했다.

[노력으로 인하여 초보 바둑기사가 생성됩니다.]

최하급 재능인 [초보 바둑기사]가 생성되었고, 그 다음 판에서는 나름 몇 수를 볼 수 있는 눈이 생겨났다.

조금은 더 버텨냈지만, 여전히 할아버지의 기력은 엄청난 수준이었다.

어설프지만 바둑에 대해서 조금은 알게 되니, 할아버지의 기력이 더 무섭게 다가왔다.

그러나 나는 포기하지 않고, 한 판을 질 때마다 왜 졌는지, 어떤 수에서 패착을 두었는지 분석을 하기 시작했다.

얼마나 많은 판을 뒀는지 모르겠다.

[천재 프로바둑 기사가 신의 한수로 승급합니다.]

상급 재능인 [천재 프로바둑 기사]가 최상급 재능인 [신의 한수]로 승급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마지막 판.

[딱!]

기적과 같이 121수만에 흑 불계승을 거두었다.

“보았는가?”

“네. 보았습니다.”

우리는 선문답과 같은 문답을 나누고는 마주보며 웃었다.

“내 젊은 시절에 적수가 없었지. 예전에 이름 좀 있다는 프로기사들은 전부 나에게 무릎을 꿇었어. 그래서 너무나 시시했다네. 그러다 내기 바둑이라는 세계를 알게 되었지.”

할아버지는 과거를 회상하시는지 아련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해주셨다.

“자네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금액들이 걸리는 내기 도박판이었어. 한 번 빠지면 헤어 나올 수 없는 개미지옥이었지. 그러나 나는 너무나 즐거웠다네. 온갖 비열한 수들을 사용한다지만, 기사들의 실력은 엄청났다네. 나는 그들을 하나씩 무릎 꿇리며 이름을 알려갔다네.”

할아버지의 이야기에 점점 더 빠져들기 시작하였다.

“그러다 마지막 모든 것을 건 한 판의 대국이 잡히었지. 그때 내 마누라가 아들을 낳은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였어. 그놈들은 내 마누라를 인질로 잡고 협박을 했다네. 그런데 그 판에서 나는 그토록 꿈꾸던 [신의 한수]를 보게 되었네. 방금 전 자네가 본 그 한수 말이네.”

할아버지는 그때 당시의 대국 상대의 수를 나에게 보여주셨다.

그리고 나는 할아버지가 말씀하신 그 [신의 한수]를 보게 되었다.

그리고 아담이가 조선전자의 AI인 Best에게 둔 바로 그 수였다.

“결국 나는 그 수를 두지 못하였다네. 전날 우리 마누라 발목을 그놈들에게 받았거든. 내 마누라는 살려야 하지 않겠나? 그리고 나는 오른손이 잘리고 그 판을 떠났다네. 오랜 세월이 지나서 자네 덕분에 마누라 의족과 내 의수를 달게 되어서 너무나 기뻤다네. 너무 고마워서 내 뭐라도 해주고 싶었어. 나는 괜찮았지만 우리 마누라에게는 항상 미안했다네.”

처음부터 나를 알아보셨나보다.

“회장님. 이제 가셔야 할 때입니다.”

얼굴에 칼자국이 선명하게 그려진 중년의 남성이 할아버지에게 다가와 말을 하셨다.

“언제든지 도움이 필요할 때 연락하게나.”

[전재웅]

할아버지가 건네주신 명함에는 전재웅이라는 이름과 연락처뿐이었다.

어쩐지 조깅을 하는 나를 감시하는 눈빛이 느껴져 불쾌했었는데 자주 겪던 일이라서 넘어갔었다.

아마 나의 동선을 감시하던 할아버지의 심부름꾼이었던 것 같다.

나는 알지 못했던 일이지만, 할아버지 입장에서는 나에게 큰 은혜를 입었다고 생각을 하시나보다.

아마 평생을 부인에게 미안하셨던 마음을 조금이나마 덜어낼 수 있어서 나에게 고마우셨을 수도 있다.

나는 일어서시는 할아버지에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드렸고, 집으로 돌아와 할아버지에 대해서 조사를 해보았다.

‘이 할아버지가 우리나라 사채업의 제왕이시네. 보유한 현금만 10조원에 육박한다고? 부동산까지 하면 정말 어마어마하시네.

나도 나름 현금이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너무나 큰 금액에 입이 떡 벌어졌다.

자산 가치를 전부 따진다면 내가 월등히 더 많겠지만, 현금은 또 다른 힘이다.

그런데 나는 돈은 부족하지 않으니, 아무래도 정치권에 대한 도움이 필요하면 연락을 달라는 말씀이신 것 같다.

내가 조선그룹과 맞설 수밖에 없는 것은 이쪽세계의 알만 한 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이다.

‘전재웅이라는 분은 분명히 정치권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실 수 있겠지? 주 거래대상도 은행이나 대기업이니 당연할 수밖에 없지.’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 인맥을 사용하는 날이 없기를 바랄 뿐이었다.

==========

“아니 이놈은 왜 연락이 없어? 돈 빌려달라고 하면 몇 천억 빌려주고 빚진 마음 정리하려고 했는데. 돈이 생각보다 많나?”

동상이몽인 두 사람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