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1화 (91/170)

얼마나 법을 신뢰할 수 있을까?

다음날, 엄마는 우리의 손을 잡고 동네 어르신들의 집을 일일이 방문해서 인사를 드리셨다.

인사를 받으신 할머니들과 할아버지들은 나를 엄청나게 칭찬하셨고, 엄마는 기분이 좋으신지 항상 웃고 계셨다.

할머니들은 나와 송이를 손주 사위, 손주 며느리 삼고 싶다고 말씀들을 하셨고, 엄마는 스마트폰으로 신우의 사진을 보여주며 사윗감이라고 자랑을 하셨다.

뭔가 팔불출 같으시면서도 너무나 귀여운 모습에 나와 송이는 웃기만 하였다.

그리고 추석에는 경호원분들과 함께 송편을 나눠먹고, 엄마의 생일 케잌도 같이 나눠먹었다.

그리고 엄마에게 몰래 전해드린 두툼한 봉투들은 경호원 분들의 주머니 속으로 들어갔고, 가족과 같이 할 수 없었던 경호원 분들은 내가 본 것 중에서 가장 환한 미소를 짓고 계셨다.

엄마는 송이의 손을 잡고 집의 뒷산을 다니며 밤을 줍고, 청설모들에게 이름을 지어주며 자신의 어린 시절의 추억을 전해주셨다.

엄마의 추억이 이제는 송이의 추억이 되었다.

그렇게 아름다운 기억들을 모두 다 전해주고 싶어 하시던 엄마가 유일하게 슬퍼하셨던 곳은 외할머니의 산소였다.

“살아생전에 그렇게 고생하셨는데, 돌아가셔서야 이씨 집안에서 벗어나셨네. 정말 다행이다.”

이씨 선산에 외할아버지와 같이 묻히지 못하셔서 서운해 할 것이라는 내 생각과는 달리 엄마는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을 하시는 것 같았다.

나와 송이는 같이 인사를 드리고, 조용히 자리를 비켜드렸다.

한참을 외할머니 산소에서 계시다 나온 엄마는 내가 본 것 중에서 가장 밝은 얼굴을 하고 계셨다.

“운아. 엄마는 여기서 한 달만 살다가 올라갈게. 너희들 먼저 올라가.”

나와 송이는 엄마를 추억 속에 놔 드린 채로 집으로 향하였다.

엄마의 집은 내가 계획한 스마트 제품들로 채워놨기 때문에 사시는데 아무런 불편함이 없으실 것이다.

[힐러]를 기본으로 선 없는 전자제품들로 채워 넣었다.

엄마가 편하시도록 만든 것도 있지만, 내가 계획하는 제품들을 실제로 사용해보는 테스트베드(Testbed)이기도 하다.

“오빠. 엄마 정말 좋아하신다. 그치?”

“그러니까. 진작 해드릴걸 그랬어.”

“그래도 오빠가 이번에는 정말 잘했네. 칭찬함!”

송이의 칭찬을 귓등으로 흘려들으며 나는 나만의 생각에 잠기기 시작했다.

나는 목적지를 신우네 집으로 맞춰놓고 누워서 생각에 잠겨있었다.

송이는 어느새 잠을 자느라 신우네 집으로 가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

‘스마트폰이 문제네. GB전자가 개발을 하는 건 문제가 아닌데, 생산 시설들을 전부 다른 용도로 리모델링을 해버렸는데, 이걸 다시 세팅하는 게 만만치 않을 텐데..’

사실 스마트폰 기술은 기존의 기술들도 남아있고, 새로운 기능들은 이미 다른 회사의 선례들이 있기 때문에 비슷하게만 개발해도 문제가 될 건 없다.

후발주자의 장점이다.

그리고 내가 개발에 참여하면 더 진보된 기술로 뒤처진 하드웨어를 펌웨어로 보완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생산 시설이었다.

스마트폰 생산 시설과 시스템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완벽히 세팅을 해야만 불량률도 줄어들고, 생산성도 올라간다.

이 문제를 계속해서 생각중인데 아직도 뚜렷한 해결책은 없었다.

방법은 정론대로 충분한 시간만이 해결할 수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조선그룹이 방해를 할 것 같다는 말이지.’

나와 GB전자가 협업을 한 이후부터 급격하게 조선전자의 홍보실의 외부 통화가 늘어났고, 외부 인사들과의 만남이 늘어나고 있었다.

이것은 우리를 방해하기 위한 준비가 되는 것이라고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 방해를 무시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은 조선그룹이 수작을 부릴 시간을 주지 않는 방법뿐이다.

그러려면 모든 것의 중심이 되는 스마트폰의 빠른 개발과 생산이 필수였다.

“오빠. 나도 오빠가 쓰는 매직워치 만들어주면 안 돼? 스마트폰은 손에 들고 다녀야해서 깜빡할 때도 있고, 불편한데. 오빠처럼 전화도 되는 걸로 하나 만들어줘.”

어느새 잠에서 깬 송이가 하품을 하며 나에게 부탁을 해왔다.

“그래? 어려운 것도 아닌데 뭘. 어떤 기능들이 필요한데?”

“그냥 스마트폰 기능들 다 넣어줘. 오빠도 그렇게 쓰는 거 아냐?”

“어. 그렇지? 내건 스마트폰 기능이 다 들어있지? 어? 그래! 이게 스마트폰이지!!”

갑작스럽게 다가온 깨달음에 나는 소리를 질렀고, 다행히 자율주행중이어서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다.

“아! 깜짝이야! 뭐야? 뭔데?”

내가 지른 고함소리에 송이는 깜짝 놀라서 나에게 소리를 질렀다.

“고맙다! 송이야! 정말 고마워! 너는 정말 천재인 것 같다.”

나의 혼란스러웠던 머릿속이 순식간에 정리가 되기 시작했다.

‘그래! 이미 나에게 모든 것이 다 있었어. 매직워치 생산 시설은 이미 갖추어져있으니 규모만 늘리면 돼.’

규모를 늘리는 것도 시간이 필요하지만, 아무것도 없는 것에서 시작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이미 최적화된 생산 공정에 대한 데이터가 있으니 동일한 환경으로 구축을 한다면 많은 시행착오들을 줄여줄 수 있다.

그리고 일단 생산 자체는 가능하니 부족한 물량은 차후에 해결하더라도 바로 생산을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은 사업적으로 완전히 다른 것이다.

나는 열심히 계획들을 점검 하였고, 어느새 내 차는 신우의 집 앞에 도착을 하였다.

“송이야. 나는 연구소에 빨리 들어가 봐야 해서 같이 못 들어가니까 신우한테 안부 좀 전해줘. 간다!”

“어? 뭐라고? 신우? 뭐야! 갑자기 여기에 내려주면 어떡해!! 나 머리랑 얼굴 엉망이란 말이야! 야!!”

나는 송이의 기쁜 외침을 뒤로 하고 차를 출발 시켰다.

신우 부모님과 같이 명절을 보내면 신우와 송이도 기쁠 것이다.

연구소에 도착한 나는 물구나무를 서서 걸어 다니는 아담이를 본체만체 하고 바로 컴퓨터를 켜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열심히 PPT 만들기에 몰두했다.

1. 매직워치의 스마트폰화 가능성

2. 생산 시설 확대 방안

3. 운영체제 공개 방안

4. 어플리케이션 개발 업체 기술 지원 방책

5. 예상 생산 단가

6. 주변기기 기술 공개에 따른 장점과 문제점

7. 메인 컨트롤러용 칩 생산 방안

대 주제들을 정한다음 세부적인 내용들을 채워 넣기 시작했다.

매직워치의 스마트폰화는 당연히 가능하다.

이미 내가 그렇게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문제는 운영체제를 어플리케이션 개발 업체들에게 공개를 해야 하는데, 짧은 시간 안에 이걸 이해할 수 있는지가 문제였다.

“아! 어플리케이션 개발 툴을 만들어서 배포하면 되겠구나!”

굳이 시간이 걸리는 운영체제에 대한 연구에 시간을 쏟기보다는 어플리케이션을 개발 할 수 있는 개발툴을 제공하면 될 것 같았다.

어플리케이션은 이미 다른 운영체제들에서 사용 중인 것들을 수정하여 만들면 쉽지만, 앞으로 제작될 많은 어플리케이션은 창의력이 필요하다.

인공지능을 이용하면 컨셉 카피를 통해 개발은 쉽지만, 새로운 무언가를 창조해내는 창의력은 다른 문제이다.

주변 기기들은 기존에 다른 스마트폰에 맞추어 생산하던 업체들이 빠르게 참여가 가능하도록 기술지원이 필요하다.

매직워치는 기본이 무선 통신인데, 그래핀 배터리 납품 계약과 기술지원은 해주어야 개발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다행히 매직워치와 주변기기는 블루투스 통신을 사용하니 프로토콜만 맞추어주면 쉽게 사용이 가능하다.

‘시간을 주면 알아서 잘들 하겠지만, 모든 것들을 순식간에 몰아쳐야 해. 그러려면 기술 지원은 필수이지.’

GB전자의 기술지원팀들이 있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인공지능 로봇들을 지원하는 방법도 준비해야할 것 같다.

아담이 같은 안드로이드가 아니더라도 주변을 인식할 카메라와 로봇팔만 달아주어도 기술지원은 충분히 가능하다.

“아! 그냥 아이디어 컨셉만 있으면 어플리케이션까지 개발해주는 AI 프로그램을 배포하는 거야! 그러면 굳이 개발자들이 아니더라도 아이디어만 있으면 누구나 어플리케이션을 개발하는 시대가 열리는 거지! 좋아!”

대신 어플리케이션 개발자들의 생계가 걱정되지만, 다른 회사의 운영체제에 적용할 어플리케이션은 개발되지 않게 락을 걸어놓으면, 문제될 게 없다.

아직은 매직워치가 얼마나 시장을 장악할지 모르기 때문이기도 하고, 신생업체가 아무리 잘 만들어내더라도 기존 업체들을 밀어내는 건 힘들기 때문에 당분간은 어플리케이션 개발자들의 생계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역시 메인칩은 TTMC에서 생산해야겠네.’

세계 최대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 회사인 TTMC에서 생산을 하는 게 지금으로서는 가장 나은 선택일 수밖에 없었다.

나는 여러 가지 시나리오들을 그리며 PPT를 완성해 나갔고, 얼른 연휴가 끝나서 관련 회의시간을 할 수 있기를 간절히 원하기 시작하였다.

드디어 연휴가 끝이 나고, 기다리던 회의를 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지만, 나는 개발회의를 진행할 수가 없었다.

친구의 장례식 소식 때문이었다.

나에게는 고등학교 친구는 없다.

그리고 중학교 친구들도 거의 없다.

친했던 친구들은 대부분이 같은 고등학교를 갔고, 그 친구들은 더 이상 나에게 친구가 아니기 때문이다.

박재영.

우연히 세발낙지를 먹다가 기도가 막힌 사람을 구해주고 만난, 119응급 대원이 된 초등학교 6학년 때 친구.

나중에 만나서 이야기 하자는 약속은 부고소식으로 되돌아오게 되었다.

친구의 핸드폰 연락처에 남아있던 내 번호로 단체 문자가 온 것이다.

나는 오랜만에 검정색 양복을 꺼내 입고, 친구의 장례식장을 찾아갔다.

친구는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는지 장례식장에는 부모님들과 동생들만 있었다.

나는 친구의 영정 사진에 절을 하고, 친구의 아버님과 동생들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 드렸다.

“형. 천운이형 맞지?”

친구의 한 살 어린 동생인 주영이었다.

우리는 아주 친한 친구 사이는 아니었지만, 가끔 세 명이서 보드게임을 했었기 때문에 기억에 남아있었다.

주영이는 다른 사람이 서울을 얻으면 항상 화를 내며 울었었기 때문에 더욱 기억에 남아 있었다.

“주영이 맞지?”

“기억하시네요. 저번에 형이 천운이형 만났다고 했었는데...”

우리는 장례식장에 마련된 식탁 앞에 마주 앉아 소주잔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저번에 봤을 때는 어디 아픈 곳도 없었는데..”

내 말에 주영이는 깊은 한숨을 내쉬기 시작했다.

“술 먹은 사람 병원까지 이송하다가 욕하고 행패를 부려서 형이 말렸대요. 그 사람이 형의 목을 커터칼로 그었어요.”

술에 취해 난동을 부리는 사람에 대한 신고가 들어왔다고 한다.

보통은 경찰에서 해결을 해야 할 일이지만, 그 술에 취한 사람이 난동을 부리다 넘어지는 바람에 머리 쪽에서 피가 난다고 119를 부른 게 사건의 시작이었다.

“나중에 알아보니 그 동네에서는 유명한 사람이더라고요. 항상 술에 취하면 사람들에게 행패부리고, 이미 전과도 몇 번 있었다고 하네요.”

아무래도 술만 취하면 주변에 행패를 부리는 일명 ‘주폭’인가보다.

“CCTV를 확인해보면 구급차 안에서 형을 엄청 폭행하더라고요. 형은 계속 맞으면서도 안정시키려고 노력을 했고요. 그런데 형이 맞아서 쓰러졌는데 주머니에서 커터칼을 꺼내서 형의 목을 그었어요. 그때 웃던 그 놈의 얼굴이 잊혀 지지가 않아요...”

이정도면 그냥 살인이 아닌가?

“그 사람은 어떻게 됐어? 검찰에서는 뭐래?”

“검사님이 자신은 무기징역을 구형할건데.. 잘해야 10년형정도 나올 것 같다고 하시네요.”

“뭐? 10년?”

말이 안 되는 상황이다.

아무리 술에 취해 심신미약이라고 하더라도 말한 대로의 내용이 CCTV에 찍혔다면 10년은 말이 안 되는 형량이다.

“검사님이 이건 보통동기 살인이라고.. 보통동기는 10년에서 16년 정도 나오는데, 술에 취했고 자수도 했다고 하네요. 어차피 도망도 못가는 상황인데 그게 무슨 자수에요! 그리고 우리는 원하지도 않았는데, 형사공탁으로 공탁금을 법원에 맡겨놔서 합의한 거와 비슷하게 감형되니 잘해야 10년이래요.. 그런데 항소를 하면 2심에서는 더 낮아질 수도 있다고 하네요..”

살인인데 10년이라니 나의 상식과는 너무나 맞지 않는 형량이었다. 그리고 그나마 잘 나와야 10년이라면 더 낮은 형량이 나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법이 있으니 따라야 하는 게 맞고, 사적으로 복수를 한다면 사회가 야만시절로 돌아가 혼란이 심해지게 되니, 공권력이 그에 맞는 처벌을 대신해 주는 것도 맞다.

그러나 최소한 피해자들이 납득할 만한 형량과 처벌이 이루어져야만 사법체계를 믿고 맡기는 것이지, 이런 정도로 일반인들의 상식과 법 감정에 동 떨어지는 처벌 수위면 국민들이 어떻게 믿고 맡길 수 있을지 의문이다.

나는 억울하다며 눈물만 흘리는 주영이를 달래주고 장례식장 밖으로 나와 벤치에 앉아 있었다.

내가 특별히 해줄 수 있는 게 없는 문제여서 더욱 힘들었다.

아니 아예 내가 해줄 수 있는 능력이 없었다면 같이 분개하고 화를 내며 아픔을 나눌 수 있었을 텐데, 나에게는 원하는 것을 해낼 수 있는 힘과 재력이 있었다.

그러나 그건 할 수 있는 일이지,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만약 엄마랑 송이가 저런 일을 당했다면 나는 참을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참을 수 없을 것 같다.

내가 남을 돕는 게 즐겁고, 내가 평생을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을 하지만, 만약 이런 일을 직접 겪는다면 과연 나는 인간혐오와 법에 대한 불신의 감정을 벗어날 수 있을까?

너무나 많은 법의 허점이 있고, 돈만 있으면 그 허점들을 이용해서 합법적으로 감형을 받을 수 있는 세상이다.

법이라는 게, 없는 사람들을 통치하는 수단이 되어버린 것 같은 기분이다.

돈이 있고 힘이 있으면 법 위에서 놀고, 돈 없고 힘이 없으면 법의 통제를 받으며 살아야 한다.

이게 과연 맞는 일일까?

나 또한 법위에서 살만큼 많은 힘과 재력이 있는데, 양심상 그렇게 살고 있지 않고 있다.

하지만 쉬운 길이 항상 옆에 있는데, 언제까지 참으며 살 수 있을지 나조차도 장담할 수가 없었다.

사실 조선그룹이 무슨 수를 쓰더라도 내가 가진 능력이면 하루아침에 공중분해를 시킬 수도 있다.

해킹을 통해 범죄 사실들을 알아내서 국민들에게 알려주고, 은닉한 재산들을 전부 빼돌리거나 봉인된 재능들로 조선그룹 임원들을 패인으로 만들어버릴 수도 있다.

주식 개미들의 피해를 모른 척 한다면 조선전자의 주식을 반 토막 내는 건 일도 아니다.

아직은 조선그룹도 본격적으로 움직이지는 않고 있지만, 조만간에 크게 부딪칠 것은 기정사실이다.

불법적이기는 하지만, 조선그룹에 대한 감시는 확실히 하고 있다.

딱 이정도가 내가 허용하는 불법의 선이다.

친구의 죽음과 범인의 예상 형량을 들은 지금 나는 [얼마나 법을 신뢰할 수 있을까?]

조선그룹이 불법적인 방법으로 나를 공격했을 때, 과연 나는 쉬운 길을 두고, 합법적인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을까?

내 스스로의 선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드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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