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탕
찜질방 입구 쪽에 아까 본 트로트 가수 분이 쭈그리고 앉으셔서 열심히 무언가를 줍고 계셨다.
“노래 잘 들었습니다. 혹시 제가 도와드려도 괜찮을까요?”
“네? 아휴. 감사합니다. 옷이 어딘가에 긁혔는지 비즈가 떨어져서요. 손님 분들 걷다가 밟으시면 아프니까 빨리 치워야 해서.. 고마워요.”
나는 도와주려고 다가오는 경호원 분들을 스마트워치를 통해 안 오셔도 된다고 하고, 열심히 비즈를 주웠다.
“그런데 찜질방에서 이런 공연도 하는군요. 저는 처음 봐서 정말 신기합니다.”
“찜질방만 하게요? 고추 축제, 동굴 축제, 삼겹살집 개업식, 미용실까지도 가봤어요. 호호호”
웃으시면서 덤덤하게 말씀해주시는데, 영혼을 느끼는 내 재능에는 씁쓸함이 느껴졌다.
“안 힘드세요?”
내 말에 비즈를 주우시던 손이 잠깐 멈칫했지만, 이내 다시 열심히 손을 놀리시며 말씀을 하셨다.
“노래 부르는 건 좋아요. 그런데 부를 무대들이 많지가 않아서.. 그건 좀 슬프네요.”
너무나 진하게 전해지는 슬픔의 감정에 나도 말을 하지 못하고 비즈만 줍고 있었다.
“혼자 다니세요?”
비즈를 거의 주워갈 때 쯤 나는 다시 궁금한 것들을 여쭤보기 시작했다.
“소속사 비슷한 게 있기는 한데, 거의 인력사무소 같은 곳이에요. 저 같은 무명들한테 무대 연결해주고 수수료를 받죠. 그래서 내가 스스로 코디도 하고, 메이크업도 하고, 운전도 하고 다 하죠.”
그렇게 마지막 비즈까지 다 줍고, 주운 비즈들을 그 분 손에 올려드리는데, 나에게 말씀을 하셨다.
“그래도 즐거워요. 저는 노래를 할 때가 가장 즐겁더라고요. 그런데 얼마나 이 생활을 더 할 수 있을지 걱정은 되네요. 오늘 제 노래 들어주시고, 이것도 도와주셔서 정말 고마워요.”
나에게 웃으시며 인사를 하시고, 그 분은 찜질방 입구로 나가시기 시작하셨다.
“잠시 만요. 저기 명함이나 연락처 있으시면 하나만 주시면 안 될까요?”
아직 생각이 정리되지는 않았지만, 이대로 보내드리면 후회를 할 것 같았다.
나는 지금껏 연습생 생활을 하다 실패한 아이들에 대한 생각만 했었다.
그런데 이렇게 또 다른 인생들이 있다는 것을 몰랐다. 내가 본 게 그게 전부였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어 드릴 수 있는 일이 있을지 찾아보고 싶어졌다.
“혹시나 어머님 환갑잔치도 가능하니까 부담 없이 연락주세요. 직접 연락주시면 더 싸게 해드려요. 원하는 곡이 있으시면 미리 알려주세요. 제가 최선을 다해서 해드릴게요.”
나에게 말씀을 하시며 명함을 한 장 주셨다.
[즐거운 인생 황선자, 각종 행사 가능]
나는 그 명함을 소중히 받아들고, 인사를 하였다.
[퀘스트 완료, 보상으로 50만원과 최하급 재능 ‘레몬은 껍질이 별미’를 습득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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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송이한테 되돌아가니 신우가 와있었다.
“형! 이제 오세요? 계란 까놨는데 이거 드세요!”
신우는 나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어이 신인 배우. 저번에 키스 신 잘 봤다. 아주 선수던데?”
“오빠! 조용히 안 해?”
“아..하.하. 형. 제발..”
“다음에 또 드라마 되면 키스 신 넣어달라고 광고 좀 넣어드려야겠어. 아주 보기 좋더라~”
“흐지마라그!”
송이가 이를 앙다무니 내가 보기에 매우 예뻐 보였다. 이런 예쁜 송이의 얼굴을 신우에게 맘껏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잠깐 놀려주었던 것이다.
우리 동생의 매력을 마음껏 발산할 수 있게 도와주는 나는 정말 좋은 오빠이다.
“오빠 자꾸 그러면 나도 혜미 이야기 꺼낼 수가 있어!”
아픈 기억을 건드리는 송이의 반격에 할 말이 없어졌다.
혜미는 나에게 진지하게 고백을 하였고, 한참을 고민한 나는 거절을 하였다.
사랑은 숫자에 불과하다고들 하지만, 나에게 미성년자인 혜미의 나이는 너무나 큰 벽이었다.
그리고 연예 감정이 살짝 들기는 하였었지만, 결국 친 동생 같은 마음이 더 컸던 나는 혜미의 마음을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친한 오빠 동생 사이로 지내자고 혜미가 먼저 말하였지만, 그건 너무 이기적인 것 같아서 혜미를 의도적으로 피하게 되었다.
좋은 오빠 동생 사이가 되자는 것은, 고백을 거절하면서 나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서 하는 핑계라고 생각한다.
그냥 내가 나쁜 사람이 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래야 혜미도 나를 잊고 다른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혜미는 좋은 동생에서 아는 동생이 되어버렸다.
“어? 송이야. 그 이야기는 좀...”
신우가 열심히 송이를 말리고 있었다.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아져서 가볍게 넘기고 말을 하였다.
“그런데 밥은 안 먹어? 엄마 뭐 드실래요? 여기 배달도 된다고 하던데.”
“오랜만에 중국집 음식 좀 먹을까?”
엄마의 메뉴 선택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송이! 신우! 짜장면, 짬뽕! 하나! 둘! 셋!”
“짜장!”, “짬뽕!”
나는 서로 다르게 말한 송이와 신우를 보며 흐뭇하게 웃어주었다.
“짜장이지! 뭔 짬뽕이야!”
송이의 선공이 시작되었다.
“어? 나는 자기 짬뽕도 먹고 싶어할까봐 나눠주려고.. 미안..”
신우의 철벽 방어에 다시 하트 눈이 된 송이가 꼴 보기 싫어졌다.
그래도 잠시 뒤, 중국 음식이 도착하니 다시 분위기는 화기애애해졌다.
“자! 엄마는 짜장, 나도 짜장, 신우는 짬뽕, 오빠는? 오빠꺼 없는데?”
“나는 탕수육 시켰는데?”
“뭐야! 탕수육은 당연히 같이 먹어야지! 그런 게 어디 있어?”
“돈을 네가 내시던가! 돈 낸 사람 마음이지!”
나의 이기적인 말에 송이와 다시 한 번 티격태격하고 있었다.
그동안에 신우는 엄마와 송이, 그리고 신우 자신의 그릇에 랩을 뜯어내고 짜장을 비벼주고 있었다.
한참을 송이와 티격태격하는데, 내 탕수육까지도 까주는 신우가 눈에 들어왔다.
“오~ 신우! 사랑받겠어! 고맙다! 어? 야! 안 돼!!”
“네?”
내 칭찬에 흐뭇한 미소로 화답을 하며 탕수육 소스의 랩을 뜯어주던 신우는, 폭주하는 기관차처럼 탕수육에 소스를 들이부어 버렸다.
“이런 기본이 안 된 청년을 보았나!”
지나가시던 할아버지 한 분이 나를 대신해 혼을 내주셨다.
“아니! 탕수육에 소스를 부어먹는 인사가 어디 있어? 어! 대학교에서 그런 건 안 가르쳐주나!”
아주 내 마음에 쏙 들게 혼을 내시는 할아버지 뒤로 할머니가 나타나셨다.
“그럼 탕수육이 소스를 부어먹지! 소주를 부어먹나?”
“그게 무슨 소리야! 자고로 바삭한 탕수육을 소스에 찍어먹어야 진리지! 물컹거려지면 어떻게 먹어?”
“원래 탕수육이 소스를 부어먹는 거라고 사전에 나와 있다고! 이런 못돼먹은 노인네를 보았나!”
급기야는 두 분이서 언성을 높이시며 싸우기 시작하셨고, 사람들은 황급히 두 분을 말리기 시작하셨다.
“아이고 어르신 참으세요. 아무리 탕수육이 찍먹이 진리라고 하시더라도 화를 내시면 안 됩니다.”
“그게 뭔 소리입니까? 이 할머님이 말씀하신대로 사전에 나와 있어요! 부어서 먹는 거라고!”
싸움이 점점 더 커지기 시작하였다.
“시끄러!!”
연세가 지긋해 보이시는 할아버지가 호통을 치셨다.
하얀색의 수염이 배꼽까지 길게 자라신 할아버지는 수염을 쓰다듬으시면서 말씀하셨다.
“싸우지 덜 말고, 탕수육 반만 소스 그릇에 넣어. 그럼 되잖어. 싸울 시간에 하나라도 더 먹는 게 남는 거여.”
그렇게 찜질방의 도사님 덕분에 유혈사태까지는 가지 않았고, 우리는 평화로운 식사 시간을 이어 나갈 수 있었다.
“야! 신우 너는 이따가 민트초코 아이스크림 먹어! 알겠어?”
“아니 형! 제가 아무리 잘못했다고 하더라도 그건 너무 심하신 거 아니신가요?”
그때 옆에서 앉아계시던 아주머니가 조용히 말씀하셨다.
“민트 초코가 뭐 어때서.”
그 말에 아주머니의 무릎에 누워계시던 아저씨가 버럭 화를 내셨다.
“그 맛 같지도 않은 민트 초코가 뭐가 어떻기는! 그게 음식이여? 그걸 좋아하는 사람도 정상이 아녀!”
“뭔 말을 그렇게 하신대요? 사람의 취향이 있는 거지!”
“취향이라는 것은 아이스크림을 좋아하냐! 싫어하냐! 이런 게 취향이고! 민트초코는 사람이라면 다 싫어하니께 취향이 아니여!”
“거 말이 너무 심한 거 아니요!”
저 옆에서 아이스크림을 드시고 계시던 아저씨가 뭐라고 한마디 하셨다.
그런데 아저씨가 드시고 계시는 떠먹는 아이스크림이 민트초코였다.
“아니 무슨 차력 쏘여? 저걸 통으로 먹는겨?”
이번에는 제 2차 전쟁이 발발하였다.
다수의 민트초코 혐오파와 소수의 민트초코 옹호파가 치열하게 싸우고 계셨고, 이번에는 찜질방의 도사님도 말릴 수가 없었다.
“사람이면 그 따위 걸 음식이라고 팔면 안 돼! 자라나는 애들이 음식인줄 알고 오해하잖여.”
도사님은 가장 앞에서 민트초코를 욕하고 계셨다.
“오빠. 목욕탕에서 목욕하고 두 시간 뒤에 입구에서 만나자.”
“어. 그래. 얼른 가자. 신우야 짐 싸.”
“네. 형.”
우리는 아수라장이 된 찜찔방에서 벗어나 목욕탕으로 대피를 하였다.
나는 갑자기 회사에서 갑자기 걸려온 전화를 받느라 조금 늦게 들어갔는데, 먼저 들어가 있던 신우가 온몸에 문신을 한 남자와 말다툼을 하고 있었다.
“애들이 다 그러면서 크는 거지! 젊은 놈이 어른한테 대들고 말이야! 너 몇 살이야?”
몇 살이야 공격을 하는 걸 보니 막돼먹으신 분인 것 같다.
나와 나이차이가 크게 나지 않아 보이는 아저씨는 언성을 높이고 있었고, 그 아저씨의 뒤로는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꼬마가 신우를 향해 혀를 내밀며 놀리고 있었다.
“아니. 애가 그러는 건 이해한다고 쳐도 아저씨가 그러시면 안 되죠! 아이가 잘못했으면 사과를 하라고 가르치셔야지. 그렇게 감싸면 되겠습니까?”
나는 상황을 지켜보기 위해서 신우의 매직워치에 블랙박스 전송을 요청하였고, 신우는 갑작스러운 요청에 살짝 움찔 했지만, 바로 승낙을 해주었다.
그런데 신우가 살짝 움찔한 것을 자신의 덩치와 문신에 겁을 먹었다고 생각해서인지 더욱 기세등등해져서 소리치고 있었다.
나는 신우에게서 받은 블랙박스를 재생시켜보았다.
팔에서 찍힌 장면이라 팔을 움직일 때마다 화면이 흔들려서 어지러웠지만, 참을 만은 하였다.
“어우. 따뜻하다. 얼마 만에 오는 목욕탕이냐. 나중에 송이랑 결혼하면 천운이 형이랑 자주 와야겠다.”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혼자 김칫국을 원샷 하고 있었다.
“이야야야!!” [촤악!]
“깜짝이야! 꼬마야. 찬물을 그렇게 뿌리면 다른 사람들이 놀라잖아. 조심해 해주지 않을래? 그리고 소리도 그렇게 시끄럽게 지르면 안돼요.”
“헹!! 이야야야!!”
신우의 말을 무시하고 또다시 소리를 지르며 뛰어다니는 꼬마였다.
“아니 애가 저러는데 아빠는 없나?”
잠시 투덜거리던 신우는 다시 몸을 물에 담그며 눈을 감고 누워있었다.
[촤악!!!]
“뭐야!!”
신우는 눈을 감고 있어서 못 봤지만, 매직워치에 찍힌 장면에는 분명히 그 꼬마가 일부러 신우의 머리에 물을 붓는 장면이 그대로 찍혀있었다.
“야! 이게 뭐하는 짓이야? 너 아빠 어디 있어!”
“메롱!”
신우에게 혀를 내밀고 도망가려는 꼬마를 신우가 순식간에 달려들어 팔을 잡았다.
“아야! 이거 놔!! 아빠!!”
“뭐야! 너 뭐하는 놈인데 내 아들 팔을 잡고 있어! 안 놔?”
어이없게도 바로 옆에 앉아있던 남자가 그 애의 아빠였다.
탕에서 몸을 일으키는 그 남자는 187이 넘는 신우보다는 작았지만, 대신 온몸에 문신으로 도배가 되어있었다.
그리고 그 뒤에 내가 목욕탕에 들어오는 장면까지 찍혀있었고, 나는 블랙박스 영상을 정지 시켰다.
“애가 뻔히 그러고 있는 걸 보고도 가만히 있다가 제가 애 팔을 잡으니 그때야 말을 하시는 게 정상입니까?”
“아유! 요 한주먹거리도 안 되는 놈이! 마! 내가 누군 줄 알아?”
“누구신데요?”
내가 중간에 끼어들었다.
그러자 그 문신남은 험악한 인상을 더욱더 찌푸리며 내 쪽을 돌아보았다.
“이건 또 뭐하...는.. 분이..시죠?”
옷을 입고 있을 때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온갖 운동과 격투기로 단련된 내 몸은 인간병기에 가깝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얻은 근육은 철갑을 연상케 한다.
그중에서도 [전성기 차붐의 말 근육]의 영향을 받은 다리 근육은 압도적이었다.
순간적으로 놀란 그 문신남은 움찔하고 있었다.
“상황을 보니 애가 잘못 한 것 같은데 사과하시고 끝내시죠.”
“어? 아니.. 그래! 너 몇 살인데! 어? 나이도 어린것들이 말이야!”
다시 한 번 나이 공격을 하는 그 문신남에게 뭐라고 하려는 순간이었다.
“어? 부회장님. 여기서 다 뵙는군요. 하하하.”
내 등 뒤로 거대한 벽이 생겨났다.
“어? 홍딸기 팀장님. 여기는 어떻게?”
“하하하하. 제가 찜질방 매니아입니다. 새로 생긴 곳은 무조건 다 방문을 하고 있지요. 그런데 여기서 부회장님을 만날 줄은 생각지도 못했네요. 하하하”
홍딸기님을 본 문신남은 조용히 자신의 아들 손을 잡고 목욕탕을 나가려다 문을 완전히 가리고 선 홍딸기님 옆에 얌전히 대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무슨 일 있으셨습니까? 큰소리가 나던데요?”
나는 그 문신남을 한 번 쳐다보고 씩 웃어드렸다.
내 웃음을 본 그 문신남은 벌벌 떨며 홍딸기님의 눈치만 보고 있었다.
“별일 아닙니다. 그냥 제 나이가 몇 살인지 누가 물어봐서요.”
“그러시군요. 그런데 어제 드라마 보셨습니까? 자기 자식이 사고를 쳤는데 부모가 사과도 안하고! 아우! 그냥 내 앞에 있었으면!!”
그러시며 주먹을 불끈 쥐시는데, 내 허벅지에 육박하는 팔의 근육이 힘차게 솟아올라 꿈틀거렸다.
그동안 홍딸기님의 카르마는 성장하였고, [감정이입]외에 또 다른 재능이 생성되셨다.
[감정과잉 - 부당한 상황을 보게 되면 분노가 일어납니다. 분노가 일어나면 신체능력이 최대 2배까지 상승합니다.]
감정과잉 상태의 홍딸기님은 나도 이길지 장담을 못할 정도로 위압감이 대단하시다.
“히익!! 정말 죄송합니다!! 너도 빨리 사과드려!!”
“나는 왜!”
“이놈이!”
[철썩! 철썩!]
자신의 아들 엉덩이까지 때리며 사과를 시키는 그 문신남을 홍딸기님이 바라보며 조용히 옆으로 비켜주셨다.
우리는 그제야 조용히 탕 속에 앉아서 여유를 즐기기 시작했다.
“오늘따라 사람들이 별로 없네요.”
“그러게. 조용하니 좋네.”
“제가 목욕탕을 갈 때는 항상 사람들이 없었습니다. 아무래도 제가 시간을 잘 선택하나 봅니다. 하하하하”
목욕탕 바깥의 탈의실에는 탕에 들어오지 못한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곰이 탕에 있잖어. 누가 들어갈 거여? 저게 곰탕이지 사람 탕이여?”
찜질방의 도사 할아버지가 모두의 마음을 대변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