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혼부
“엄마. 우리 사랑이 잘 좀 부탁 드려요.”
“사랑이 걱정은 하지 말고, 너 몸이나 조심해. 군대에서 다치면 서러운 법이야.”
아직 너무나 어린 딸은 아무것도 모르고 하품만 하고 있었다.
태어난 지 이제야 세 달째.
한창 부모의 손길이 필요한 신생아인 딸은 공식적으로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아이다.
분명히 이렇게 자신의 품안에서 꿈틀대며 귀엽게 하품을 하고 있는데, 이 나라의 시스템에는 없는 존재가 되어있었다.
친구의 소개로 잠깐 사귀다 헤어진 여자친구.
너무나 짧게 사귀었다보니 아는 게 거의 없었다.
이름과 전화번호가 유일하게 쓸모 있는 정보였다.
그 외에는 좋아하는 음식과 싫어하는 음식, 술은 소주 1병반을 마실 수 있다는 아무런 도움이 안 되는 정보들뿐이다.
군대를 가기 전에 휴학을 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지내던 어느 날, 헤어진 여자 친구에게서 거의 1년 만에 연락이 왔다.
조금 망설였지만, 한 번 만이라는 말에 약속장소로 향했다.
잘 살고 있었는지, 어떻게 변했는지 궁금한 마음도 있었고, 솔직히 군대를 가기 전에 잘하면 원나잇도 가능하지 않을까라는 속된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카페에서 만난 그녀의 품에는 간난아이가 있었다.
결혼했다는 소리는 못 들었는데, 애까지 있었다니 충격이었다.
애 있는 유부녀가 왜 나에게 연락을 했는지 혼란스러웠지만, 애써 침착한 목소리로 안부 인사를 하였다.
그러나 그녀는 내 안부인사에는 대답도 없이 나에게 아이를 내밀었다.
얼떨결에 아이를 안아든 나는 이어지는 그녀의 말에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우리 애야. 이름은 사랑이로 지었어.”
“어? 우리 애? 뭐??”
그리고는 옆에 있던 커다란 가방을 나에게 내밀며 말을 이어갔다.
“나는 이민가기로 했어. 그러니까 사랑이는 네가 키워. 간다. 안녕.”
나에게 이별을 통보할 때와 똑같이 단호하게 말을 하고는 바로 카페를 나가버렸다.
“야! 야!”
내가 지르는 큰 소리에 카페에 있는 사람들이 전부 쳐다보았고, 놀랐는지 아이는 울기 시작했다.
[흐앵..흐앵..]
나는 어쩔 줄 몰라 그대로 서있었고, 들리는 건 아이의 울음소리뿐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황급히 밖을 나가보았지만, 이미 보이지 않았다.
전화를 걸어 봐도 받지 않았고, 방법이 없었다.
소개를 해주었던 친구가 생각나 연락을 해봤지만, 자신도 요즘에는 연락을 안 해봐서 모르겠다고 한다.
친구도 수소문을 해보겠다고 하는데, 솔직히 기대는 되지 않았다.
어떻게 집까지 왔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품안에는 아이를 안고, 손에는 큰 가방을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멍하니 쇼파에 앉아있는데, 일 끝나고 돌아오신 엄마가 무슨 애냐고, 도대체 무슨 일이냐고 물어왔다.
나는 횡설수설하며 아이에 대해서 말을 했고, 엄마는 유전자 검사부터 해보자고 하셨다.
‘그래! 내 애가 아닐 수도 있어. 그냥 나한테 떠넘기려는 수작일 수도 있지!’
나는 열심히 현실도피를 하며 희망을 키워나갔고, 나를 너무나 닮은 아이는 내 얼굴을 보며 입을 오물거리고 있었다.
다음날 바로 유전자 검사 기관에 다녀왔다.
며칠 걸릴 줄 알았는데, 의외로 빨리 결과가 나왔다.
오전에 했는데 오후에 결과가 나왔다고 한다.
택배로 보내줄지 물어왔지만, 그 정도로 내 인내심이 강하지 못하였다.
퀵으로 요청하였고, 도착한 퀵 기사님에게 현금을 지불하였다.
잠시 아이를 바라보며 망설이다, 이내 결심을 하고 결과지를 확인해 보았다.
확인한 검사 결과는 99.99997086%가 일치하였다.
사랑이는 내 친딸이 맞았다.
나는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지만, 엄마는 더 냉정하게 판단을 하셨다.
“우선 출생신고부터 하자.”
아버지를 사고로 먼저 보내시고, 아들하나를 키워내시느라 온갖 일들을 겪으신 엄마는 나보다 훨씬 침착하셨다.
그러나 그 침착하시던 엄마도 출생신고가 불가능하다는 말에는 당황을 금치 못 하셨다.
“아니! 유전자 검사 결과도 이렇게 있는데! 왜 안 된다는 거예요?”
“아이의 모(母)를 알 수 없으면 우선은 기아로 신고하시고, 유전자 검사를 하신 후에 비송사건을 청구하셔야 해요.”
[기아 - 부모 또는 보호자로부터 버려진 아동]
[비송사건 - 법원의 관할에 속하는 민사사건 중 소송절차로 처리하지 않는 사건 즉, 소송이 아닌 사건]
한국말인데도 무슨 말인지 이해 자체가 되지 않았다.
그래도 친절하게 설명해주시는 공무원분의 말에 따르면 먼저 부모에게 버려진 아동으로 신고를 하고, 법원에서 유전자 검사 자료를 토대로 비송사건을 청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니! 내 딸인데 왜 버려진 아동으로 신고합니까?”
“죄송합니다. 법이 그래서요.”
법이 그렇다니 공무원분도 어쩔 수 없으신 건 이해가 된다.
그런데 법이 뭔가 많이 이상했다. 이런 법이 도대체 왜 있는 건지 이해 할 수가 없었다.
“이게 예전에 첩이나 씨받이가 있었잖아요. 생모에게서 애를 뺏어서 친부 혼자 호적에 올리는 경우 때문에 금지되었거든요.”
열심히 설명해주시는 공무원분이 정말 감사했지만, 설명을 들으면 들을수록 더 기가 막혔다.
“아니.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첩입니까? 하아..”
그렇게 소득도 없이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인터넷에 관련한 내용을 열심히 찾아보고, 평상시에 자주 가던 커뮤니티에 글을 올려서 물어도 봤지만, 아무런 소득이 없었다.
오히려 커뮤니티에서는 온갖 조롱이나 사랑이 엄마가 이쁘냐는 물음만 달렸다.
열심히 활동했던 커뮤니티가 인생의 낭비였다는 사실만 깨달은 뒤에 점점 더 절망 속으로 빠져들기 시작했다.
인터넷에서 실제로 미혼부가 출생신고를 성공한 사례들을 찾아보며 희망을 보았고, 실제로 성공한 사람들이 몇 백 명중에 100명도 안 되는 숫자라는 것에 절망을 하였다.
그리고 생계도 문제였다.
미혼모를 도와주는 정책들은 부족하기는 하지만, 조금씩 있었다. 그러나 미혼부를 도와주는 정책은 아무리 찾아보고, 관련된 곳들에 연락을 해봐도 없었다.
남자는 경제력이 있다는 전제하에 제도들이 만들어지다 보니 생기는 사각지대였다.
‘아니! 내가 할 수 있는 게 현실적으로 아르바이트 뿐인데 무슨 경제력이야! 그리고 군대에서 월급을 몇 백씩 주나? 이게 말이 돼?’
한참을 그렇게 컴퓨터에 앉아 정보만 검색하고 있었다. 그러다 사랑이의 울음소리에 화들짝 놀래서 달려갔다.
“어? 어디 아픈가? 전화!”
황급히 일하시고 계시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일하시는 중에는 연락을 드리지 않는데, 지금은 도움을 받을 곳이 엄마뿐이었다.
“어! 사랑이가 울어서. 어? 기저귀? 손으로 만져보라고? 잠시만.”
스피커폰으로 바꿔놓고 기저귀에 손을 넣어봤다.
약간 눅눅했지만, 잘 모르겠다.
평상시 비위가 약한 편이어서 오줌을 싼 기저귀를 만지지 못할 것 같았는데, 의외로 아무렇지 않았다.
[지금은 한 번만 싸도 갈아줘야 돼. 잘 모르겠으면 그냥 갈아줘. 안 그러면 엉덩이 짓물러.]
“어? 어. 그런데 어떻게 하는지 잘 모르겠어.”
엄마의 지시대로 하나부터 해 나가다보니 겨우 기저귀를 갈 수 있었다.
기저귀 하나를 가는데 거의 10분 가까이 걸린 것 같은데, 앞으로 어찌해야하나 막막했다.
그러다 가만히 누워서 자기의 발가락을 입에 넣고 빨고 있는 사랑이가 보였다.
‘예쁘네.’
처음에는 잘 몰랐는데, 사랑이는 너무나 예쁜 아기였다.
아이답지 않게 머리카락도 예쁘게 자라있었고, 피부는 정말 백옥과 같았다.
그 백옥 같은 피부에 반해서 사귀었던 엄마를 닮았나보다.
‘손가락이랑 발가락은 전부 다 있나?’
문득 든 생각에 조심히 손가락과 발가락을 세고 있었다.
그런데 손가락을 하나씩 만져가며 세고 있던 내 검지손가락을 사랑이가 덥석 잡아왔다.
그 순간 나는 알 수 있었다.
내 딸을 위해서는 뭐든지 할 수 있다는 것을.
사랑이를 내 호적에 올리기 위해서는 전문가인 변호사의 도움이 필요할 것 같은데, 집에 여윳돈이 없었다.
그나마 군대를 다녀온 뒤에 다음 학기 등록을 하기 위해 미리 각종 아르바이트를 하며 벌어놓았던 돈이 있었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할 것 같았다.
그리고 자신은 다음 달이면 입대를 해야 한다.
말이 다음 달이지 실제로는 이주일 뒤다.
저 어린아이를 엄마에게 맡기고 군대를 가야만 한다니 미칠 것 같았다.
내 품안에서 열심히 꼬물거리는 이 아이를 놔두고 어떻게 떠나야할지 막막했다.
사랑이도 문제지만, 엄마도 문제다.
먹고 살려면 일을 해야 하는데, 저렇게 어린 아이를 두고 어떻게 일을 할 수 있을까 걱정이다.
이런저런 고민에 잠도 자지 못하고, 며칠을 끙끙 앓고 있었다.
“재우야. 너무 걱정마라. 엄마가 알아서 할게. 너는 군대만 잘 다녀와.”
“죄송해요. 제가 너무 못나서..”
엄마는 정말 괜찮다며, 나에게 말을 해주셨다.
“엄마가 힐링 센터에서 일하잖아. 그래서 센터장님한테 혹시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물어봤어. 센터장님이 본사 쪽에 문의를 했는데 담당자를 보내준데. 사연을 들어보고 규정에 맞으면 방법을 찾을 수 있다니까 너무 걱정 마.”
엄마의 말에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무도 나와 내 딸을 도와주지 않았는데, 그 사람이라면 우리를 도와줄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힐링 센터는 주식회사 힐링에서 운영하는 곳이다.
그리고 그 주식회사 힐링은 힐링님이 설립한 곳이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힐링님의 개그는 까도 인성은 못 깐다는 사실은 누구나 인정한다.
제발 무슨 도움이던지 도와주었으면 싶었다.
지금 자신에게는 도움이 너무나 간절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힐링님의 개그를 욕한 자신을 후회했다.
‘다시는 그런 댓글 쓰지 않겠습니다. 제발 도와주세요.’
바로 다음날 힐링 센터에서 면담이 잡혔다.
나는 사랑이를 안고 엄마와 함께 힐링 센터 1층의 힐링 카페에서 담당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윽고 카페 문이 열리며 어떤 분이 들어오셨다.
처음에는 곰이 들어오는 줄 알고 깜짝 놀랐다.
그런데 그 곰.. 아니 사람이 우리 쪽으로 걸어와 인사를 하였다.
“안녕하십니까. 주식회사 힐링의 인사담당 팀장 홍딸기입니다.”
안녕 안하면 죽을 것 같았다.
“네. 정말 안녕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나의 이상한 인사에도 표정하나 변하지 않으시고 자리에 앉으셨다.
그리고는 자리에 앉으시자마자 나의 사정에 대해서 물어보시기 시작하셨다.
답답한 마음에 한참을 열심히 주저리주저리 말을 하였다.
처음에 무서웠던 인상 때문에 얼굴은 쳐다보지도 못하고 사랑이 얼굴만 보면서 넋두리만 내뱉었다.
그리고 군대를 가야하는데, 엄마와 사랑이를 어떻게 해야 할지 너무나 막막하다는 말까지 하고, 고개를 들었을 때였다.
“헉!”
그 무서운 분이 눈물을 펑펑 흘리시면서 연신 눈물을 닦아내고 있으셨다.
“어떻게 그런... 흐응.. 너무 걱정 하지 마세요. 크흠.. 저희 주식회사 힐링의 직원들은 각 지역에 마련되어있는 탁아소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크흥.. 그리고 상황을 보면 군대도 상근으로 뺄 수 있을 것 같으니 아이와 아예 떨어져 지내지 않아도 될 겁니다.”
“그런데 제가 직원이 아닌데요. 저희 어머니도 힐링 센터에서 부업을 하시고 계신데, 정직원도 아니시고요.”
“네. 맞습니다. 저희 부회장님께서 사정을 들으시고는 인턴으로 받아주라고 하셨습니다. 인턴 기간은 군 복무 기간으로 정하고, 그 이후에는 계약이 종료됩니다. 저희가 해드릴 수 있는 게 이 정도라서 정말 죄송합니다.”
많은 도움을 주시고도 미안해하시니 너무나 죄송했다.
“그리고 사랑이 출생신고 문제는 저희 법무팀에서 도움을 드릴 겁니다. 아마 시간은 걸리겠지만, 큰 문제없이 처리가 될 것이니 너무 걱정 마시죠.”
그 곰처럼 커다란 덩치가 너무나 사랑스럽게 보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나와 엄마는 연신 감사 인사를 드렸다.
“그리고 지금 다니는 대학교의 전공이 호텔 경영학 이라고 하셨는데, 열심히 노력하시면 스카이 호텔에 지원해보시는 것도 추천 드립니다. 전국적으로 호텔을 늘릴 계획인데, 제대하시고 졸업하실 때쯤이면 일자리가 많이 생길 겁니다.”
“네. 정말 열심히 하겠습니다. 최선을 다할게요. 정말 감사합니다.”
그 천사 같은 팀장님은 나를 보며 웃으시고는 내 품안에 안겨있는 사랑이를 바라보셨다.
“아빠를 많이 닮았네요. 혹시나 필요한 도움이 있으시면 여기로 연락주세요.”
그 분이 내민 명함을 소중히 품에 안고 우리는 집으로 향하였다.
“엄마. 나 정말 열심히 할 거야. 조금만 더 도와줘. 우리 사랑이랑 엄마 호강시켜줄게.”
“너만 건강하면 된다. 엄마는 괜찮아.”
너무나 답답한 법의 한계에 절망했던 우리는 힐링이라는 빛을 만나 다시 희망을 찾게 되었다.
‘정말 열심히 살 거야.’
끊임없이 다짐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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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딸기 팀장님의 보고를 듣고 생각에 잠기었다.
‘사랑이 엄마 좀 찾아볼까?’
얼마나 독하신 분이시길래 자신의 딸까지도 버릴 수 있는지 궁금했다.
사랑이와 사랑이 아빠를 도와주는 것과 별개로 사랑이 엄마에 대한 미운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사랑이를 버릴거면 사랑이 이름은 또 왜 이렇게 지었는지 모르겠다.
‘전화번호 있으니까 찾는 건 금방이지.’
그 사이에 전화번호는 해지를 하였는지 없는 번호로 나왔다.
그러나 개인정보를 확인해서 하나씩 정보를 모아갔다.
대략 5분정도가 지나니 사랑이 엄마의 과거와 현재가 모두 정리되었다.
그런데 괜히 찾아보았나보다.
“국립 암센터?”
진료 기록을 찾아보니 췌장암이었다.
그것도 현재 아주 위험한 상태이다. 아마 아이를 위해서 항암치료를 거부한 상태로 오래 방치를 한 게 영향을 심하게 미친 것 같았다.
차라리 병원에서 상담을 받으며 아이에게 영향이 가지 않는 항암치료를 했다면 달라질 수도 있었을 텐데, 처음 진단을 받은 이후로 진료 기록이 없었다.
혹시나 가족들이 알게 된다면 아이를 낙태시키라고 할 것 같아서 숨긴 것이었을 수도 있다.
나는 내가 알게 된 정보를 사랑이 아빠에게 알려드려야 할지 그냥 나만 알아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아.. 괜히 찾아봐서..’
사랑이 엄마는 자신을 원망하며 잊기를 바란 것 같은데, 그러면 사랑이 엄마가 또 너무나 불쌍하다.
결국 나는 고민 끝에 사랑이 아빠에게 연락을 해드렸다.
“네. 국립 암센터입니다. 며칠 뒤에 수술할 것 같은데 솔직히 많이 위험하신 상태 같습니다.”
나는 내가 알게 된 정보들을 사랑이 아빠에게 알려드렸다.
의료법 위반과 개인정보 보호법 위반의 아주 심각한 중죄였지만, 사랑이 아빠가 신고를 할리는 없으니 전부다 알려드렸다.
[우리 사랑이를 위해서 항암 치료를 포기 한 것 같다고요?]
예상대로 사랑이 아빠는 너무나 큰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나는 전화를 끊고도 계속해서 고민이 되었다.
알려드린 게 옳은 선택이었는지, 비밀로 해드리는 게 더 나은 선택이었는지 계속해서 혼란스러웠다.
내가 무슨 권리로 둘 사이에 끼어들었는지 후회가 되기도 하고, 사랑이 엄마가 너무나 불쌍하다는 연민도 들었다.
그렇게 고민을 하던 시간들이 지나가고, 사랑이 아빠의 연락을 받게 되었다.
[저 사랑이 엄마와 혼인신고 했습니다. 이제 사랑이도 가족이 생겼어요. 출생신고도 했고요. 출생신고가 늦었다고 과태료도 물었는데, 그 돈을 내면서 기뻐서 눈물이 나더군요.]
나는 들을 자격이 있다고 하시면서 그 동안에 있었던 이야기를 해주셨다.
연애 초기에 암 발병 사실을 알게 되었고, 헤어질 결심을 한 사랑이 엄마는 이별을 선언했다고 한다.
그런데 암 치료를 하려고 준비하던 중에 사랑이를 임신한 것을 알게 되었고, 고민 끝에 사랑이를 낳을 결심을 하였다고 한다.
초음파 검사에서 사랑이의 심장 박동 소리를 듣는 순간 낙태는 이미 선택지에서 사라져 버렸고, 혹시나 의사선생님과 상담을 하면 항암치료나 낙태를 권할 것 같아 숨겼다고 한다.
차라리 솔직히 상담을 받았다면 아이에게 영향이 적은 방법들로 치료를 병행했을 텐데, 어설픈 지식이 독이 되어 돌아왔다.
사랑이 엄마를 찾아간 사랑이 아빠는 긴 설득 끝에 결국 사랑이가 아직도 출생신고를 하지 못했다는 말로 설득을 하여 수술 전에 혼인신고를 했다고 한다.
다행히 기적적으로 사랑이 엄마는 수술이 잘 끝나 지금은 회복을 하고 있는 상태이고, 사랑이 아빠는 상근 입대 조건이 되지 않아, 현역 입대를 했다고 한다.
지금은 첫 휴가를 나오자마자 가족과 함께 처음으로 사진을 찍으러 사진관을 찾아갔다가 잠시 쉬는 시간에 나에게 연락을 주셨다.
힘들지만 희망을 가지고 열심히 살아가겠다고 한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마음속에 담고 있었던 큰 짐을 내려놓게 되었다.
“사랑이 아버님. 정말 감사합니다. 알려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가족과 나의 안전이라는 미명하에 불법 정보 수집을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다행히 이번일은 잘 끝났지만, 나와 가족들의 위협이 되는 정보가 아닌데도 너무나 거리낌 없이 쉽게 정보를 습득했다.
‘견제되지 않는 권력은 부패할 수 있다.’
나를 견제해줄 사람이 없으니, 스스로가 항상 경계하고 조심해야 한다.
나는 폭군이 되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