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인생.
“오빠. 시니어 공연팀 준비 다 끝났어. 오빠가 추천해 줬던 황선자님은 에이스이시던데? 가창력도 어마어마 하시고, 노래도 대박이야. 이번 기획은 아주 좋았어! 칭찬함!”
찜질방에서 만난 트로트 가수인 황선자님과 그녀와 같은 처지의 분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하고 많은 고민을 했었다.
처음에는 예리엔터테인먼트에 소개를 시켜드리고, 내가 노래 몇 곡 드리면 괜찮지 않을까라고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일시적인 도움 말고 꾸준히 도와 드릴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할 것 같았다.
그래서 그런 분들을 위한 공연을 할 수 있는 무대를 만들어 드리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런 무대를 내가 원하는대로 만들 수 있는 곳은 힐링 타운뿐이었다.
그래서 송이에게 제안서를 내밀었다.
[시니어 공연팀 신설 제안서]
힐링 타운의 컨텐츠들이 가족 구성원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다고는 하지만, 솔직히 50대 이상의 분들을 만족 시키는 컨텐츠는 다른 세대들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빈약했다.
그저 가족끼리 함께 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같이 오시는 게 더 크다.
동물을 좋아하시면 강아지나 고양이를 구경하시고, 그게 별로이시면 미술관 투어를 하시는 정도이다.
그리고 중간에 이루어지는 연극이나 뮤지컬을 보시기도 하시지만, 대부분의 서민분들 취향과는 살짝 맞지 않는다.
대체로 부모님들의 취향을 잘 알지 못하고, 그냥 연세 드신 분들이 의례 이런 걸 좋아하시겠거니 여기고 만다.
그런데 나이가 들었다고 취향이 달라지지 않는다.
다만, 사회 분위기가 나이를 들어서 그런 걸 표현하는 게 민망하게 만들었을 뿐이다.
우리는 흥의 민족아니던가?
그래서 준비한 기획이었다.
시니어 분들로 이루어진 공연팀.
트로트 가수분들이 주축이 되지만, 다양한 장르의 가수분들을 모아 공연을 하는 것이다.
그 기획안을 보더니 송이가 몇 가지 부분들을 보완하기 시작하였다.
“공연팀 인원은 최소한 60분 이상을 모집해야겠네.”
“많으면 좋기는 한데, 그렇게 많이 모집하면 무대에 다 오르실 수 있을까?”
내 걱정에 송이는 대답을 해주었다.
“다들 연세들이 있으신데 매일 오전과 오후 두 번씩 무대에 오를 수 있으실 것 같아? 한다고 하셔도 우리가 말려야지. 한 분당 많아야 일주일에 삼일씩만 오전 또는 오후 한 타임만 공연하시게 하려면 최소한 60분은 모집해야 문제없이 운영하지.”
역시나 유능한 내 동생이다.
“허준 한의원하고는 우리 그룹 직원들 건강검진 해주기로 제휴 맺기로 했거든? 송이 너희 쪽도 같이 계약 했으니까 시니어 팀원분들도 진맥할 수 있게 체크 잘하고.”
“오! 허준 한의원! 좋지!”
다들 무대에 대한 갈망과 열정이 넘치시다보니 엄격하게 제한을 두지 않으면 무대에서 쓰러지실 때까지 안 내려가실 분들이시다.
스스로가 자신의 몸 관리를 잘 하면 좋겠지만, 쉽지 않은 일이니 우리가 신경을 써주어야 한다.
시니어 공연팀은 정직원으로 채용하기로 하였다.
정직원 계약서를 드리고 사대보험과 직원 복지에 대해서 설명을 해드리는데, 다들 눈물을 보이셨다.
인생에 처음으로 써보는 연봉계약서는 하나같이 눈물 자국이 묻어있었다.
오디션을 통해 통과되신 분들을 채용하고, 공연준비를 시작하였다.
아무리 열정이 넘치셔도 기본 실력이 너무 떨어지시는 분들은 아쉽지만 탈락을 하셨다.
대신 원하시는 분들은 언제든지 다시 오디션을 보실 수 있게 상시모집 체제로 유지를 해서 기회를 열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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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이 노래가 제 노래라고요? 정말 저를 주신다는 말씀이세요?”
나는 황선자님의 [즐거운 인생]을 편곡해드렸다.
새로 곡을 써드릴까도 생각했었지만, 가사는 생각보다 좋았고, 멜로디만 다시 만들면 나름 괜찮을 것 같았다.
그리고 가사는 직접 작사를 한 것이어서 더욱 애정이 가실 것이고, 자신의 가수 인생 내내 함께했으니 자식과도 같은 곡일 것이다.
이 노래로 꼭 성공하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새로운 곡을 만들지 않고, 편곡을 해보기로 하였다.
노래는 두 가지 버전으로 만들어 보았고, 가사는 동일하지만 느낌은 완전히 달랐다.
첫 번째는 락 발라드의 느낌을 섞은 버전이었고, 두 번째는 EDM버전이었다.
노래를 편곡하기 전에 황선자님의 성량과 실력들을 알아보기 위해 테스트를 해보았는데, 깜짝 놀랐다.
너무나 실력이 엄청나셔서이다.
맞지 않는 노래와 트로트 창법에 가려지셔서 그렇지, 성량이 어마어마하셨다.
노래만 잘 만나셨다면 대단한 가수가 되셨을 수도 있으셨는데, 운이 없으셨던 것 같다.
그래서 탄생한 락 발라드 버전.
즐거운 인생을 노래한 가사와 다르게, 락 발라드 버전은 너무나 애절한 곡이었다.
즐거운 내용의 가사가 애절한 멜로디와 만나다보니 오히려 더 슬프고 가슴을 아리는 감정을 느끼게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공연을 위해 만든 EDM버전.
이 버전은 나조차도 곡을 만들면서 흥을 주체하지 못해 춤을 추게 만든 마성의 곡이었다.
이 노래를 듣고 제자리에 앉아 있을 수 있는 사람은 단언컨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나는 황선자님을 예리엔터테인먼트 건물로 모시고 갔다.
“와.. 제가 여기를 올 수 있을지는 정말 상상도 못해봤어요.”
건물 입구에서 울 것 같으신 표정으로 말씀을 하시는데, 그 모습을 보고 나도 마음이 울렁거렸다.
건물일 뿐인데도 황선자님에게는 자신이 넘을 수 없는 어떤 벽처럼 느껴지셨나 보다.
녹음실에 들어가셔서는 처음 보는 장비들에 너무나 신기해 하시는 아이 같으신 모습에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어머니뻘에게 할 말은 아니지만, 정말 소녀 같으시고 귀여우셨다.
그러다 내가 들려드린 두 개의 버전을 들으시고는 펑펑 우셨다.
너무나 구슬피 우시는 모습에 나는 옆에서 손을 잡아드리는 것 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고마워요. 이제는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 같아요. 이제야 정말 가수가 된 것 같아요...”
그 말에서 가수에 대한 열망이 얼마나 깊으셨는지가 느껴졌다.
잠시 진정을 하시고 노래의 포인트가 되는 부분들을 설명 드렸다.
베테랑답게 너무나 쉽게 습득을 하셔서 바로 녹음을 시작할 수 있었다.
녹음을 시작하는데, 너무 많이 우셔서인지 목소리가 조금 잠기셨다.
그런데 묘하게 그 음성이 락 발라드 버전의 노래와 잘 어울렸다.
피아노 반주로 시작한 전주부분이 지나고, 시작된 노래의 조금은 허스키한 그 음성에 가슴이 아려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증폭되던 감정이 고음 부분에서 한꺼번에 폭발을 했다.
그 풍부한 성량을 위해 만든 하이라이트 부분은 고음을 전문으로 하는 가수들조차도 엄두를 낼 수 없을 정도의 높은 음이었다.
마치 스피커를 뚫고 나올 것 같은 그 성량과 감정에 녹음실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흘러나오는 눈물을 닦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리고 마지막 “오늘도.. 즐거운 인생...”으로 노래가 끝나자, 모두들 일어나 박수를 치기 시작하였고, 그 기립박수는 황선자님이 다음 곡을 부르기 전까지 계속 이어졌다.
조금 쉬셔도 되는데, 스스로가 참지 못하시겠는지 녹음 부스안에서 바로 녹음을 요청하셨다.
그리고 흘러나오는 강렬한 비트의 EDM.
기립박수를 치던 사람들이 순식간에 클럽을 방문한 사람들로 변하였다.
누구라고 할 것 없이 모두가 춤을 추며 정신없이 즐겼다.
심지어는 너튜브에 올릴 영상을 찍으러 오신 카메라 감독님도 같이 춤을 추시느라 카메라가 흔들리고 있었다.
모든 녹음이 끝나고 우리는 떠나갔지만, 그때부터 엔지니어님들과 너튜브 팀들은 본격적으로 업무를 시작하셨다.
야근을 못하게 하는 예리엔터테인먼트 사규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엔지니어들과 너튜브 팀들은 열심히 일을 하였다.
때로는 울다가, 때로는 춤을 추며 즐겁게 일을 하였다.
그리고 다음날 녹음실에서 촬영한 영상이 너튜브에 공개가 되었고, 오랜만에 내가 나온다는 소식에 다들 영상을 시청했다가 황선자님의 노래에 푹 빠지게 되었다.
- 와.. 이 분 누구신데 이렇게 고음이 대단하시냐?
⌎ 트로트 가수시라고 하시는데 검색해보면 무슨 고추축제 이런거만 나온다.
⌎ 가사는 똑같은데 전혀 다른 노래가 되었네.
⌎ 트로트에 락 발라드라니.. 생각지도 못한 조합이다. 그런데.. 너무 좋아.
⌎ 고음 부분에서 나도 모르게 펑펑 울었다. 뭔데 이렇게 감정을 막 건드리냐?
⌎ 역시 힐링이 발굴한 신인들은 전부 다 대단하다! 올해는 황선자님이 신인상 유망주!
⌎ 노망주 아니냐?
⌎ 미친! ㅋㅋㅋㅋㅋ
- 그런데 두 번째 곡은 너무 신난다!
⌎ 나도 울다가 막 춤을 추고 있으니까 엄마가 미친 거 아니냐고 ㅋㅋㅋ
⌎ 매직워치로 눈감고 듣고 있었으면 그럴만하지! 갑자기 펑펑 울다가 미친 듯이 춤추면 그게 미친거랑 뭐가 달라?
⌎ 우리는 그것을 ‘미친 사람’이라고 부르기로 했어요.
⌎ 춤추느라 몰랐는데, 한 열 번째 듣다보니까 영상도 흔들리고 있더라. 촬영감독님도 춤추시고 있었던 듯. ㅋㅋㅋㅋ
- 나 이거 공연하면 무조건 간다. 엄마도 이거 보시더니 같이 가자고 하시네!
⌎ 이거 힐링 타운에서만 공연한데! 이 주 뒤부터 한다고 함.
⌎ 안 그래도 힐링 타운에 사람 많은데, 이 주 뒤에는 터져 나가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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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우...”
“괜찮으세요?”
“처음 무대에 올랐을 때 보다 더 떨리는 것 같아요.”
나는 생수병 뚜껑을 열고 빨대를 꽂아 황선자님에게 건네 드렸다.
“잘 하실 겁니다. 연습 많이 하셨잖아요?”
내 말에 물을 조금 마신 황선자님이 웃어 주셨다.
[자! 모두가 기다려주시던 공연을 시작하겠습니다! 시작은 바로 이분이 열어주셔야죠! 너튜브 화제의 주인공! 즐거운 인생~ 황! 선자!]
“우와아아아!!”
어마어마한 함성이 울려 퍼졌고, 내가 선물해 드린 보라색 마이크를 손에 꼭 쥔 황선자님이 나에게 파이팅 포즈를 취해주시고는 무대에 올라가셨다.
[띠이~ 띠! 띠! 띠! 띠디~]
“여러분 안녕 하세요~ 즐거운 인생 황선자입니다! 신나게 놀아볼까요? 훠우!”
무대에 올라가시자마자 바로 분위기를 휘어잡으셨다.
화려한 의상을 뽐내시며 시작부터 흥겨운 기운을 마음껏 발산하셨다.
백댄서 분들도 너무나 신나게 춤을 추시는데, 일이 아니라 진짜 즐거워하면서 춤을 추시는 게 느껴졌다.
무대에 설치된 레이저의 불빛이 현란하게 움직여대고, 홀로그램 장치는 황선자님을 모두가 볼 수 있게 허공에 거대하게 띄워주었다.
50대 이상의 분들을 대상으로 기획을 했지만, 공연장에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가족들 모두가 모여서 춤을 추고 있었다.
꼬마 아이는 할머니의 손을 잡고 엉덩이를 흔들고 있었고, 젊은 부부는 아기띠를 메고 결혼 전의 클럽으로 되돌아갔다.
모두가 하나 되어 즐기고 있을 때, 하늘을 날아 도착한 드론에서 형형색색의 종이조각들이 비처럼 쏟아지기 시작하였다.
“우와아!!!”
[띠이~ 띠! 띠! 띠! 띠디~ 훠우!]
축제의 현장이였다.
황선자님의 노래가 끝났지만, 뒤이어 나온 가수분들도 흥겨운 노래들로 선곡을 해서인지 그 분위기를 그대로 가져가기 시작 하였다.
관객들은 지쳐 쓰러질 때까지 춤을 추며 즐기다 결국 마지막 무대를 남겨두고 다들 기진맥진해서 자리에 주저앉았다.
잠시 MC분이 과열된 분위기를 진정시키려 멘트를 하는 동안, 사람들은 자리에 마련된 생수들을 마시며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 모두의 표정은 아직까지 흥분이 가득해 있었고, 언제든지 음악이 나오면 다시 춤을 출 수 있다는 의지로 가득했다.
그리고 그때 들려온 피아노 전주.
조명이 비추는 곳에서는 내 첫 의수의 사용자이신 임수훈님이 무대 한쪽에서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으셨다.
나의 부탁으로 해외 공연일정 중간에 잠시 시간을 내어 공연에 참여해 주셨다.
나는 전세기를 동원해 최대한 불편함이 없도록 신경을 써드렸지만, 세계적인 피아니스트가 공연하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무대였다.
그래도 임수훈님은 이야기를 듣자마자 흔쾌히 허락을 해주셨다.
전주 부분의 피아노 연주가 들려오자 모든 사람들이 숨을 멈추고 음악에 빠져들기 시작하였다.
사람들은 세계적인 피아니스트인 임수훈님이 무대에 보이자 모두들 입을 다물 수 없었고, 무언가에 홀린 듯 홀로그램으로 보이는 임수훈님의 손가락만 보고 있었다.
영원히 끝나지 않았으면 싶은 순간이 끝이 나고, 어느새 무대 정중앙에는 단 하나의 조명만이 이 노래의 주인공을 비추고 있었다.
황선자.
노래 인생 30년째의 가수는 오늘 인생의 가장 화려한 순간을 맞이하였다.
첫 소절이 시작되었고, 임수훈의 연주를 감상하며 고조되었던 감정이 그대로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노랫말로 이어졌다.
잔잔하게 시작된 노랫말이 아까전의 그 흥겨웠던 노래 가사와 동일한 것인지 알 수도 없을 정도로 한마디 한마디가 아려왔다.
어떻게 저렇게 애절한 감정을 저런 노랫말에 담을 수 있는지 경이로웠다.
그리고 터져 나온 고음.
“나는! 정말!! 괜찮아!!!”
그리고 잠시간의 침묵.
다시 시작된 임수훈의 피아노 연주와 그녀의 노랫말.
그 오묘한 하모니에 다들 자신의 눈에서 흘러내리는 눈물도 인식하지 못한 채로 홀린 듯이 무대 위의 그녀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독백처럼 마무리 된 마지막.
“오늘도.. 즐거운 인생....”
노래가 끝이 났지만, 아무도 입을 열지 못했다.
입을 열면 이 감동이 사라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지금 이순간이 너무나 소중했다.
한 가수의 인생이 여기에 있었다.
너무나 간절하게 노력했지만, 결국 가수인생 30년 만에 이루게 된 지금 이 순간.
그 순간을 자신들이 함께 했다는 그 감동에 다들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앵콜..”
어디선가 들려오는 조그마한 목소리가 모두의 심정을 대변하였다.
“앵콜! 앵콜!! 앵콜!!! 우와아아아!!!”
공연장은 앵콜 소리와 환호성에 터져나갈 것 같았고, 무대 위의 그녀는 터져 나오는 울음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곧이어 시니어 공연팀 모두가 무대 위로 올라와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였다.
모두가 함께 부르는 [즐거운 인생]은 황선자님의 오리지널 노래였다.
비록 내가 작곡한 노래들보다 세련되지는 못했지만, 다 같이 부르는 그 트로트는 그네들의 인생이었다.
언제나 목말랐던 무대에 대한 갈증이 이 순간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있었다.
그렇다. 즐거운 인생이었다.
“여러분! 즐거운 인생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