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4화 (114/170)

선택

요즘에 백신 쪽에 관심이 가기 시작하였다.

세상에는 아직도 인류를 위협하는 바이러스들이 많았고, 가난한 나라의 사람들은 백신을 맞을 돈이 없어 죽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새로 발생하는 바이러스들 중에서는 아직까지 백신이 개발되지 않은 것들도 많았다.

[빨간약]을 개발할 때 얻은 지식들을 탐구하다보니 이쪽 지식들도 얻게 되었다.

“그런데 백신 연구를 하려니 왜 이렇게 찝찝하지?”

이전에 얻었던 다른 지식들과 다르게 무언가 계속해서 찝찝했다.

그래도 백신을 싸게 만들어서 푼다면 많은 사람들이 허무하게 죽지는 않을 것 같아서 연구를 해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백신이 끝나면 불치병들도 연구를 해봐야겠다.’

그렇게 마음을 먹고 연구를 시작할 때였다.

- 천운님. 그쪽 연구는 그만두시는 게 좋겠소.

월직 차사님이 나타나셔서 나를 만류하셨다.

“응? 월직 차사님? 우선 여기 앉으세요. 커피 드실래요?”

- 그 루왁이 좋소이다. 크흠.

나는 별로인데 선물을 받은 것이라서 나뒀다가 월직 차사님한테 비싼거라고 한 번 대접을 해드렸더니 아주 좋아하셨다.

“뜨거우니까 조심하세요. 그런데 어떤 연구요?”

- 크으.. 좋구나.. 아! 의학 쪽은 그만 두시는 게 좋겠소. 특히나 백신 쪽은 정말 아니 되오.

“이유가 뭐죠? 저도 이상하게 이쪽을 연구하려고 하니까 굉장히 찝찝하던데요.”

- 의학 쪽은 천상에서 특별히 관리를 하고 있소. 특히나 백신 쪽은 천상에서 허가한 지식까지만 허용이 된다오.

“응?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인류의 지식을 제한한다는 건가요?”

- 그렇소. 인류의 위협이 되는 지식도 제한이 되지만, 인류의 수명을 대폭 늘리는 지식도 제한이 된다오.

이해가 되지 않았다.

위협이 되는 지식이 제한이 된다는 것은 이해가 되었지만, 수명을 늘리는 지식도 제한이 된다니 이해가 안 되었다.

내 표정을 봐서인지 루왁 커피를 마시려던 손을 내려놓고 월직 차사님이 다시 설명을 이어나가셨다.

- 크흠. 제한된 지식은 아니니 설명 드리겠소. 카르마가 윤회 시스템에 귀속되는 게 언제인지 아시오?

“죽었을 때가 아닙니까?”

- 정확하게는 저승에서 이승의 죄업의 대가를 치루며 악한 카르마를 중화하고, 다음 생을 시작할 때이라오.

“그렇군요. 그런데 그게 왜요?”

- 인간의 수명이 늘어나면 카르마가 수급되는 주기가 늘어난다오. 그리고 보통 나이가 들면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이 줄어들기 때문에 효율성을 따지면 60대까지가 가장 카르마를 많이 만들어내고, 그 이후부터 적어진다오. 물론 아닌 인간들도 있겠지만, 평균적으로는 그렇다오.

월직 차사님의 설명을 듣자마자 알게 되었다.

- 인간들에게는 불합리할 수도 있겠지만, 환생 시스템 입장에서는 효율의 문제라오. 그리고 영혼의 입장에서 생각을 한다면 늙은 몸보다는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게 더욱 좋은 일이 아니겠소?

다음 생이 있는지도 모르는 인간의 입장에서는 굉장히 불합리한 말이었지만, 시스템과 영혼의 입장에서 본다면 타당한 말이었다.

- 아마 천운님도 찝찝하게 느낀 게 본능적으로 윤회 시스템의 금기를 느꼈기 때문일 것이오.

“아닐 수도 있는 거 아닐까요? 수명이 늘어나도 다시 젊음을 유지할 수 있게 한다면 카르마 생산량이 늘어날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나는 내가 만든 [빨간약]을 생각하며 말을 하였다.

조용히 루왁 커피를 마시던 월직 차사님이 잠시 눈을 감고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았다.

- 염라 대왕님이 허락을 해주었으니 이야기를 해주겠소. 천운님은 이 세상이 유일한 세상이라고 아시는 게요?

“네? 우주 어딘가에는 우주인이 있다는 말씀이신가요?”

- 인간들 말로는 다른 차원이 가장 근접한 말일게요. 이 세상과는 다른 세상들이 아주 많고, 천상에서는 그들과 교류를 하고 있다오. 그중에서는 우리 세상보다 더욱 발달한 세상도 있고, 아직 인류의 문명이 초창기인 세상도 있다오.

생각지도 안 해 본 이야기에 흥미가 생기기 시작하였다.

- 우리보다 더욱 발달한 세상의 시스템을 보고 배우기도 하고, 우리보다 덜 발달한 세상은 우리를 보면서 시스템을 정비한다오. 천운님이 얻은 아카식 레코드가 어디서 온다고 생각하시오? 지금 이 세상에 천운님이 얻은 지식을 이룬 인류가 있었다고 생각하시오?

어렴풋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 다만 다른 세상이 아니라 그저 우주 어딘가에 있을 인류의 지식이라고만 생각을 했었다.

- 그리고 인류가 멸망을 하여 시스템이 정지한 세상들도 있다오. 전쟁으로, 기아로, 치명적인 바이러스로, 심지어는 영생을 얻어 멸망한 세상도 있다오. 우리는 인간의 영혼을 벌주고 악귀를 잡는 것만 하는 게 아니고, 이 세상을 멸망으로 향하게 하는 다양한 것들을 경계하고 인류에게 주어져서는 안 되는 지식까지도 통제를 한다오.

무슨 말씀이신지 이제야 알겠다.

내가 생각한 것을 이미 해봤다가 멸망한 세상이 있었나보다.

- 그중에 천운님은 우리 통제에서 이미 반쯤 벗어나 있으시오. 허가되지 않은 지식까지도 습득하실 수 있으시니 스스로가 경계를 하시오. 이번처럼 찝찝한 그 감각을 잊지 말시길 바라오.

“감사합니다. 차사님. 아! 그럼 소설에 나온 판타지 세상도 있는 건가요?”

커피를 마시던 월직 차사님이 내 질문에 잠시 생각에 빠지셨다가 말씀을 해주셨다.

- 뭐 이미 다 말을 했으니 마저 해드리겠소. 맞소. 있소이다. 그런 세상이 멸망을 하면 여러 세상에서 영혼들을 모시러 간다오. 그런데 이쪽 세상의 ‘이승의 일을 잊게 만들어주는 차’가 간혹 그쪽 세상의 영혼의 기억을 온전히 지우지 못할 때가 있다오. 그런 영혼이 환생을 하면서 지식이 조금씩 퍼져 나간 것이라오.

역시. 그런 세계가 있었구나.

- 한 번은 저쪽의 신들 중에 로키라는 자가 ‘레테의 강물’에 영혼을 빠트리는 곳에서 다른 세계 영혼을 하나 빼돌려 그냥 환생을 시켜버린 것이오. 그래서 한 번 난리가 났었다오.

“응? 그럼 그 영혼이 환생을 했다면 다른 세계 이야기를 한 것 아닌가요? 저는 그런 소리는 못 들어 봤는데요?”

- 들어보셨을 것이오. J.R.R 톨킨스라고.

“아.. 그렇군요.”

듣고 보니 그랬다.

근현대 판타지를 정립한 작가이자 언어학자.

팔찌의 제왕에서 보여준 완성된 세계관.

소설 속에서 사용하고자 만든 언어들.

단순히 단어들만 만들어내는 수준이 아니라, 언어의 변천사, 문법, 발성법까지 설정을 하는 변태 같은 완성도.

실제로 그가 만든 요정어로 대화를 하는 톨키니스트들도 있다.

‘그런데 실제 세상의 이야기를 했으니 그렇게 완성도가 높았겠구나.’

“아! 그런데 영혼들은 숫자가 정해져있나요? 인구수가 증가할 때는 새로운 영혼을 모집하는 건가요?”

- 영혼을 만들기 위해서는 카르마가 필요하다오.

기승전 카르마구나.

- 인구가 늘어나서 대기하던 영혼보다도 많은 인간이 태어난다면 윤회 시스템에서 카르마를 소모해서 영혼을 만들게 된다오. 그리고 인구수가 감소를 하게 되면 영혼들은 환생을 대기하는데, 그게 너무 심해진다면 선한 카르마를 많이 만들어내지 못한 영혼부터 다시 카르마로 돌아간다오.

“카르마로 돌아간다는 의미가 소멸을 말하는 건가요?”

- 영혼의 입장에서 보면 그 말이 맞소이다. 윤회 시스템의 입장에서는 유휴 에너지를 재활용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고대에는 자신들의 영향 안에 있는 인간들을 부추겨 영토 싸움을 했다오. 그러면서 영혼들을 빼앗기도 하고, 두 나라의 윤회 시스템도 통합되고 하는 거라오.

생각보다 무서웠다.

다행히 우리나라의 출산율은 서서히 증가하고 있었는데, 그게 우리 힐링 그룹과 GB그룹 덕분이지, 우리를 뺀 나라 전체로 보면 감소세였다.

만약 계속해서 출산율이 감소했다면 내가 아는 사람들의 영혼도 소멸될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드니 등골이 오싹해졌다.

- 아무튼 천운님은 스스로를 항상 경계하시오.

“네. 감사합니다. 월직 차사님 덕분에 많은 것을 알게 되었네요. 항상 감사합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금단의 지식을 알려준 월직 차사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렸다.

- 커험. 그럼 이거 한 잔만 더 주시오.

빈 잔을 조용히 내미는 월직 차사님께 루왁 커피를 한 잔 더 내려드렸다.

- 후우~ 뜨겁구먼.

[김시덕! 그만 놀고 복귀해!]

- 히익!! 앗 뜨..뜨!

연구소에 걸어놓은 염라대왕님의 초상화 귀물에서 호통 소리가 들려왔다.

[천운님한테 설명 다 했으면 빨리 복귀해! 뭘 그렇게 놀고 있어!]

- 갑니다! 지금 일어났습니다! 천운님. 다음에는 고양이 마을에서 보면 좋겠소.

황급히 도망가신 월직 차사님이 남겨놓은 루왁 커피를 치우는데, 염라대왕님께서 나에게 말을 하셨다.

[저기 바다 건너 천벌 받을 놈들의 수장이 움직이는 것 같소이다. 내가 있으니 주술이나 저주는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지만, 요술이나 정치인들 또는 기업을 움직이면 귀찮아 질 것이니 대비를 하시오.]

“감사합니다. 대왕님.”

한동안 잠잠하더니 다시 움직이나 보다.

아키무네라는 이름의 음양사를 처리하고 나서 몇 차례 음양사들이 한국에 입국을 하였었지만, 염라대왕님의 힘 덕분에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일본으로 돌아갔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음양사들의 수장이라는 관백이 직접 움직이는 것 같았다.

관백.

일본어로는 칸파쿠라고 불리는 일본의 옛 관직의 이름이다.

정무를 총괄하는 일본의 관직으로, 메이지 유신 이전까지는 조정대신 중에서 사실상의 최고위직이었다.

전하.

일본어로는 덴카로 경칭되는 이 관직은 그 위로는 일본의 일왕뿐이다.

지금의 총리보다도 오히려 더 막강한 자리였다.

그런데 지금은 사라진 관직의 이름을 사용하는 음양사의 우두머리가 우리나라에 입국을 하려고 한다.

될 수 있으면 만나고 싶지 않은데, 이 나라에는 아직도 일제강점기를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이 많은가보다.

“청와대에서 일본 총리 방문 때 경제인들을 초청하고자 하는데, 우리 쪽에서는 저 말고 천운님을 직접 거론하며 참석해 달라고 합니다.”

황재성 회장님이 나에게 말을 하셨다.

분명히 그곳에 음양사들의 수장인 관백이 나올 것이니 회장님보다는 내가 가는 것이 회장님의 안전상 나을 것 같았다.

그런데 별로 만나고 싶지 않은데, 방법이 없을지 고민을 해봐야겠다.

“별로 만나고 싶지 않은데요. 거기 음양사들의 우두머리가 올 건데, 찝찝하네요.”

“안가면 귀찮게 할 것인데, 정 싫으시면 제가 대신 가겠습니다.”

회장님의 말씀에 나는 황급히 말을 하였다.

“위험하세요! 그냥 제가 가겠습니다.”

“아니면 그냥 무시를 할까요? 딱히 우리 회사가 잘못 한 게 없으니 조금 귀찮더라도 참아보죠.”

“아휴.. 그 조금 귀찮은 게 각종 규제들을 들이대면서 방해할 것이니까 그렇죠. 안 그래도 회장님 고생하시는데, 제가 그냥 다녀오는 게 낫겠습니다.”

걱정하시는 회장님을 안심시켜 드리며 결심을 하였다.

‘뭐. 이 땅에서 뭘 하겠어? 주술이나 저주가 아니면 암살을 하려고? 대한민국에서 총기는 사용하기 너무 힘든데, 정말 그냥 대화만 하려는 걸까?’

머리가 복잡했다.

==========

“이쪽 한 번 봐주세요! 네. 이번에는 오른쪽으로요. 감사합니다.”

“천운 부회장님. 일본 총리와 개인 면담 시간은 있으신가요?”

“일본에서 매직워치 규제가 심각한데, 이번 만남에서 돌파구가 뚫릴 수 있을까요?”

기자분들이 열심히 질문을 하셨지만, 웃어만 주고 청와대 경호원분의 안내에 따라 만찬장으로 들어갔다.

너무 일찍 왔는지 만찬장에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잠깐 앉아있는데 드디어 내가 아는 분이 만찬장으로 들어오셨다.

“아이고! 귀인. 여기 계셨군요! 아차. 천운님! 하하하”

“오랜만에 뵙습니다. 도재호 사장님.”

GB전자의 CEO이자 호국 도깨비 일족의 도깨비인 도재호 사장님이셨다.

“저기 바다 건너 천벌 받을 놈들은 만나기가 싫은데 자리가 자리인지라 어쩔 수 없이 참석을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천운님을 만나게 되니 갑자기 기분이 좋아지는 군요. 하하하”

도깨비답게 호탕하신 도재호 사장님은 큰 목소리로 말씀을 하셨다.

청와대 직원분들이 ‘천벌 받을 놈’이라는 말에서 움찔하며 말려야 하나 고민을 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런데 이번에 일본에서 건너온 일행 중에 음양사들의 수장이 있습니다.”

“아니! 그 요망한 구미호가 이 땅에 들어왔다는 말입니까! 아무래도 저희 일족에 연락을 해서 처리를 해야겠습니다. 다행히 천운님이 만드신 귀물 덕분에 이 땅에서는 주술이나 저주의 힘을 쓰지 못하니 쉽게 처리가 될 것입니다.”

“참으세요. 알아보니 외교관 중에 하나로 입국을 한 것 같은데, 잘못하면 한일 간의 외교 분쟁이 심각해질 겁니다.”

“그런 요망한 것을 그대로 두어야 하다니!”

아직까지 시간이 많이 남아있어서 관백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사장님께 다시 설명을 들었다.

나름대로 조사를 했지만, 아는 건 많을수록 좋으니 사장님의 말씀을 경청하였다.

백면금모구미호.

일본어로는 하쿠멘콘모큐비노 키츠네.

최초로 발견 된 것은 중국 고대 은나라 주왕 시절이었다.

주왕의 첩이었던 수양을 잡아먹고 둔갑하여 이름을 달기라고 바꾼 뒤에 그 유명한 주지육림의 고사를 만들어내었다.

그러다 주나라 무왕에게 잡혀 처형을 하기로 하였는데, 요술로 처형인을 매혹하여 형을 진행하지 못하게 하였다.

그때 강태공이 조마경이라는 귀물을 꺼내 그녀를 비추자 구미호의 정체가 드러나 도망을 치려다, 강태공이 보검을 빼어 던지자 구미호의 몸이 셋으로 나뉘어 사라졌다.

그리고 다시 나타난 것은 주나라 유왕 시대에 포사라는 여성이었고, 유왕을 유혹해 나라를 멸망하게 만들었다.

그 다음에는 천축의 마가다 왕국의 반족 태자의 태자비인 화양부인으로 등장하여 나라에 기근이 오게 만든다.

그러다 마가다 왕국 금봉산의 약왕수로 만든 지팡이를 맞고 도망을 쳤다.

마지막은 일본이었다.

힘을 많이 잃은 그녀는 부녀자들을 잡아먹으며 힘을 키우다가 구미호 토벌군을 맞이하게 된다.

미우라노 요시아키와 카즈사 히로츠네를 동, 서장군으로 삼고, 음양사 아베노 야스나리를 참모로 삼아 10만의 군사로 공격을 하였다.

그러나 구미호의 요술로 많은 전력을 잃고 첫 번째 공격은 실패를 하게 된다. 그리고 철저히 준비를 한 두 번째 공격에 결국 구미호는 잡혀 죽고 만다.

그러나 구미호가 죽고 나서 거대한 독석(毒石)으로 변해 가까이 다가오는 인간이나 동물들의 생명을 빼앗았다.

그 이후로 그 독석을 살생석이라 부르며 주변 마을을 공포에 빠트렸다.

그런데 죽은 줄 알았던 그 구미호가 사실은 음양사 아베노 야스나리로 변신하여 살아남아 음양사의 우두머리가 되었다는 것이다.

“구미호는 아홉 번 분신을 희생해 죽음을 피할 수 있지요. 제가 알기로 고대 중국에서 두 번, 천축에서 한 번, 일본에서 한 번을 죽었다 살아났으니 이제 다섯 번의 목숨이 남았을 겁니다.”

아홉 번의 목숨을 잃으면 평범한 여우가 되어 살아간다고 한다.

아마 이번에 오는 구미호도 분신일 것이다.

“대통령님과 총리님은 따로 회담을 하시고 계시니, 일본 측 분들과 경제인분들께서는 먼저 식사를 시작하시면 됩니다.”

청와대 의전비서관실 행정관이 우리에게 일정에 대해서 말을 해주었다.

말을 하고 나서 조금 있으니 일본 쪽 인물들이 만찬장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가장 마지막에 들어온 일본 여성분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응? 대놓고 여우 얼굴인데? 아무도 모르는 건가?’

여우 얼굴을 하고 들어오는 여성분은 누가 봐도 구미호였다.

“도재호 사장님. 저기 저 여성분 얼굴이 여우가 아닌가요?”

“어? 저한테는 그냥 여자 얼굴입니다. 아무래도 환술을 쓰나보군요. 역시 귀인께는 저 정도 환술은 통하지 않나봅니다.”

다른 사람들한테는 그냥 사람으로 보이나보다.

나는 매직워치의 악세서리 중에 카메라 목걸이를 이용해 그 여성분을 찍어보았다.

‘역시나 여우 얼굴이구나.’

사람들의 눈은 속일 수 있어도 기계장치는 속일 수가 없었다.

아마도 인식 장애의 환술 같다.

그런데 그 구미호가 나를 향해 똑바로 걸어오고 있었다.

“이야기를 좀 하고 싶은데.”

유창한 한국어로 말을 하니, 도재호 사장님이 자리에서 일어나 다른 곳으로 자리를 피해주셨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이쪽에서 멀리 떨어져 앉기 시작하였다.

“환술인가? 요술?”

“흐응. 역시나 너한테는 통하지 않나보구나. 인간 주제에 제법 강하네.”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내 앞 자리에 앉으며 말을 하였다.

여우 얼굴에서 표정이 느껴져서 신기했지만, 기분이 좋지 않았다.

“무슨 일이냐. 왜 가만있는 나를 건드리지 못해서 안달난거야?”

“호호호. 그야 돈과 인신공양 할 재물이 필요해서이지. 너희 쪽 조선그룹이 우리를 잘 섬기거든. 그런데 이런 일을 처리해주지 않으면 우리를 잘 섬기겠어?”

“그래서 뭐 어쩌자는 것이냐? 여기서 나를 습격이라도 하게? 간 빼 먹으려고?”

“으엑.. 생간이라니 나를 뭘로 보고 그런 말을 하는 거야? 세상에 맛있는 게 얼마나 많은데 그런 혐오스러운 것을 먹어? 흐응.. 그래도 네놈 영혼은 맛있어 보이는구나.”

무슨 수작인지는 모르겠지만 더 이상 하고 싶은 말이 없었다.

“나는 할 말 없으니까 조용히 있다가 이 땅을 떠나라. 후회하기 전에.”

“후회? 내가 왜? 이렇게 재미있는데? 잠시 이것 좀 볼래?”

구미호가 꺼내든 스마트폰에서는 영상통화가 걸려있었다.

“허가되지 않은 통화는 하지 못하게 되어 있는데, 청와대 보안이 아주 엉망이군.”

“흐응? 그런 게 중요해? 잘 보라고.”

스마트폰에는 중년의 여인이 줄에 묶여 누워있었다.

“엄마?”

“호호호. 내가 설마 너를 직접 노릴 줄 알았어? 인간은 피붙이라면 사족을 못 쓰더라고. 네놈 동생은 납치하기가 조금 힘들어서 네놈 어미를 잡아뒀지. 이제 조금 재미있어?”

“우리 어머니 털끝 하나라도 건드리면 곱게 죽지는 못할 것이다!”

나의 분노의 외침에 구미호는 몸을 배배 꼬며 즐거워했다.

“호호호호. 선택해. 너가 죽을거야? 아니면 네놈 어미를 죽일거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