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5화 (115/170)

구미화 퇴치와 호랑이 굴.

“호호호호. 선택해. 너가 죽을거야? 아니면 네놈 어미를 죽일거야?”

기분 좋게 웃고 있는 구미호를 향해 조용히 말을 하였다.

“좋아? 나는 별로인데.”

나의 차분한 말에 구미호는 웃음을 멈추고 말을 하였다.

“흐응? 뭐야? 강한 척 하는 거야? 네놈 어미 손가락 하나 떨어져 나가봐야 실감이 날 것 같아?”

“네가 움직인다는 소리를 듣고 시뮬레이션을 돌려봤지. 그래서 가장 확률이 높은 세 가지 시나리오가 나왔어.”

내 말에 구미호가 흥미 있는 얼굴로 나를 돌아보았다.

“그래서 내기를 했거든. 그런데 그중에서 가장 확률이 낮다고 판단한 시나리오를 선택했네? 그래서 기분이 안 좋아. 내가 내기에서 졌거든.”

온갖 변수들을 고려해서 시뮬레이션을 돌려 봤었다.

그래서 도출된 가장 유력한 세 가지 시나리오.

첫 번째, 일본 외교관중 한명이 나와 단 둘이 있다가 자살하며, 나에게 살해를 당했다고 누명을 씌우는 시나리오.

두 번째, 여자를 이용해 나를 유혹해서 성폭행이나 성추행을 했다고 자작극을 하는 시나리오.

세 번째, 가족을 인질로 잡고 협박을 하는 저질 시나리오.

나는 첫 번째를 선택했다.

인간 목숨을 쉽게 생각하는 음양사들의 습성과 나에게 오는 타격이 셋 중에서는 가장 큰 시나리오였다.

그리고 아담이는 두 번째를 선택했다.

우리나라에서 성폭행이나 성추행은 남성에게 아주 불리하다. 특히나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는 무죄추정이 원칙이지만, 이 성 문제만큼은 그렇지가 않았다.

그동안은 남성들이 실제로 가해자인 경우가 많았고, 그로 인해서 여성을 사회적 약자로 보호를 하는 게 필요했었다.

그런데 그로인하여 억울한 일을 당하는 남성들도 조금씩 늘어나는 반작용이 있었다.

마지막까지 나도 첫 번째와 두 번째 시나리오 사이에서 고민했었지만, 사회적인 타격은 첫 번째가 두 번째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크기 때문에 첫 번째를 선택했었다.

마지막 막장 인질극은 쫄랑이가 선택을 하였다.

이건 뒤가 없는 저질 계획이다.

만약 성공을 하더라도 일본과 한국의 외교 분쟁이 일어날 것이고, 심할 경우에는 전쟁까지도 일어날 수 있는 문제이다.

설마 머리가 있다면 절대 선택 안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진짜 머리가 없었다.

“너 때문에 내 사료들 전부 쫄랑이한테 뺏기게 생겼잖아!”

“무슨 소리를 하는 게냐! 미친것이야?”

“염라대왕님이 인간을 죽였을 때 카르마가 상승하는 경우가 있다고 하시더군.”

나는 구미호의 말은 쿨하게 귓등으로 들어주고 내 할 말만 했다.

대성동 할머니의 스킬이다.

“이 땅을 침범한 적을 처리할 때! 너희는 이 땅을 침범했다. 아담아 시작해라.”

[라져!]

구미호가 들고 있는 스마트폰에서 엄마가 응답을 했다.

엄마의 눈이 붉은 빛을 내기 시작하며 묶어놓은 밧줄을 가볍게 뜯어냈다.

[타켓 설정 완료. 제거 합니다.]

[칙쇼! 으아아아!!]

뭔가 부러지는 소리들이 연이어서 들려오고 있었다.

“이.. 이게 무슨 일이냐!”

“우리 엄마랑 완전 똑같지?”

이런 일을 대비해서 로봇의 뼈대에 인공 근육과 피부를 입혀 엄마와 동일하게 만들어놨었다.

그리고 경호원분들도 똑같이 만들어 놨다.

엄마는 영광 시골집에 잠시 내려가 계셨고, 집에는 안드로이드들을 배치해 놓았다.

“내가 왜 염라대왕님의 귀물을 만들면서 저주와 주술만 막았는 줄 알아? 전부 너를 노린거야. 가장 살상력이 떨어지는 요술이지만, 요술을 쓸 수 있으면 너는 최악의 경우라도 도망갈 수 있다고 판단하겠지? 그래도 설마 했는데 걸려들 줄은 정말 몰랐어. 내가 너를 너무 똑똑하게 여겼나봐. 그런데 너는 목숨이 이제 세 개 남았지?”

도재호 사장님은 구미호의 목숨이 다섯 개 남은 줄 알고 계셨지만, 나는 비밀을 알고 있었다.

“너가 이 땅을 싫어해서 일본 막부를 부추겨 임진왜란도 일으키고, 일제강점기도 너 때문에 일어난 일이란 것도 알고 있다.”

여유로운 표정은 온데간데없이 나를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천축 마가다 왕국에서 죽고, 이 땅으로 피신을 왔었을 때! 일본으로 건너가지 않고 이땅에서 자리를 잡으려고 했었지? 그러다 삼신할머니에게 한 번, 월직 차사님께 한 번, 용왕님에게 또 한 번, 총 세 번을 이 땅에서 죽었어. 그래서 이 땅을 그렇게 싫어한 거잖아?”

그런데 구미호가 다시 웃으며 말을 하였다.

“맞다. 그런데 그게 뭐? 나는 아직도 세 번의 목숨이 남아있고, 너는 나를 죽일 수 없는데?”

공식적으로 외교관 자격으로 입국한 인물을 죽일 수는 없다.

“괜찮아. 기계 장치는 너의 환술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으니까. 이제부터 아까 본 안드로이드 부대를 일본으로 보낼거야. 안드로이드들의 얼굴은 항상 바뀔 거니까 찾기 어렵겠지? 그런데 안드로이드들은 너의 환술이 안 통하는데 어쩌나?”

내가 말을 하니 구미호가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잘 숨어. 평생 숨어 지내야 할 거야. CCTV던지 스마트폰이던지 매직워치던지 인터넷이 연결된 카메라에 너가 잡히는 순간, 너는 죽은 목숨이야. 조만간 인공위성도 많이 띄울 건데 하늘도 조심해. 그리고 너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의심하도록 해. 내가 보낸 안드로이드인지 모르잖아? 너는 스스로 너를 가둬야 살 수 있을 거야. 살고 싶으면 그렇게 조그마한 골방에서 영생을 살며 숨어 지내. 알겠니?”

“흥! 재미없어졌어!”

구미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나는 떠나려는 구미호를 향해 마지막 말을 전했다.

“이 땅에서 그냥 나가면 또 재미없지. 너랑 똑같이 생긴 안드로이드를 제작했다. 자료를 찾아보니 실제 있는 외교관이던데, 나도 구분이 안 갈 정도로 똑같이 만들어졌더군. 아무도 너와 안드로이드를 구분하지 못할 거야. 과연 일본으로 가는 비행기를 탈수나 있을까?”

내 말에 구미호는 나를 한 번 째려보고 황급히 만찬장을 빠져나갔다.

[천운님. 모두 제압했습니다. 죽은 인원은 없습니다. 계획대로 용궁으로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구미호에게는 죽인다고 했지만, 사람을 죽인다는 것은 아직까지 두렵다.

나중에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오면 망설이지는 않을 것이지만, 오늘은 생각보다 여유가 있었다.

수많은 시뮬레이션을 통해 가능한 시나리오에 대한 대응들을 마련해 놓으니, 신속하게 처리가 가능했다.

역시 공대생은 준비하는 자이다.

체포한 일본과 한국 용병들은 용궁의 해저 감옥에 죽을 때까지 가둬놓을 것이다.

탈출하고 싶으면 탈출해도 된다.

그런데 탈출하면 만나는 장소가 심해 1,985m의 우산해곡이니 감옥 탈출이 바로 이승 탈출이다.

그리고 구미호가 변신한 외교관 모습의 안드로이드를 만들었다는 말은 거짓말이었다.

내가 눈으로 직접 보기 전까지는 누구로 변신한지도 몰랐는데 어떻게 미리 만들 수 있을까?

나의 블러핑에 제대로 당황을 해서 황급히 도망간 구미호였다.

‘이제는 전자기기들과 인간들을 피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온갖 의심들과 싸워나가며 피폐한 삶을 살도록 해라.’

실제로 죽이지는 못하겠지만, 인천 공항에 안드로이드를 몇 대 보내 놨다.

그리고 일부러 구미호에게 접근을 시켜서 마지막까지 긴장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이 땅을 생각만 하더라도 치가 떨리게 만들어줘야 한다.

“천운님. 왜 혼자 앉아 계시는 겁니까?”

도재호 사장님이 환술에서 풀려나셨는지 내 옆으로 다시 다가와 앉으셨다.

그리고 나를 발견한 경제인들이 나에게 다가와 열심히 말을 걸어왔다.

조선그룹 사람만 빼고.

“그래핀은 조만간에 생산량을 늘릴 계획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회사를 통해 안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하하하. 이제야 한 숨 돌릴 수 있겠군요. 갑작스러운 만찬 초대라서 망설였는데, 천 부회장님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니 정말 잘 온 것 같습니다.”

처음 나의 존재는 재벌들 사이에서 인정받지 못하였다.

딴따라가 갑작스럽게 돈 좀 벌었다고 사업을 한다고 하니 그들이 보기에는 웃기는 일이었을 것이다.

아니. 관심조차도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갑작스러운 의수, 의족, 의안을 개발하면서 기술력을 증명해 냈고, 그래핀으로 대한민국을 들썩이게 만들어놨다.

그리고 GB그룹과의 합작으로 만들어낸 매직워치는 시대를 선도하는 제품이 되어 버렸다.

‘어?’ 하는 사이에 이미 나의 힐링 그룹은 대기업 반열에 올라버렸고, 이제는 영향력 또한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게 되어버렸다.

우리가 계획한대로 대응할 시간을 주지 않고 빠르게 밀어붙인 게 결과적으로 성공하게 된 것이다.

중간에 조그마한 위기들도 있었지만, 조선그룹의 방해뿐이었지 나머지 재벌 카르텔들은 관심이 덜 했었고, 방해도 없었다.

그래도 대기업 CEO들답게 방해를 할 시기를 놓치자마자 나에게 친한 척을 하며 친분을 쌓으려고 노력을 해왔다.

아마 원래는 본인들이 직접 오는 게 아니라 후계자들이나 관련 업종 계열사 사장들을 보냈을 것인데, 내가 참석한다는 소식에 회장들이 직접 온 것 같았다.

“이번에 물류 쪽도 진출 하시는 것 같던데, 이쪽은 아주 힘듭니다. 남는 게 없어요.”

대한민국 최고의 물류 회사 오너께서 앓는 소리를 하고 계셨다.

전국에 가장 많은 마트와 영화관을 가지고 있고, 택배 회사의 택배비 전쟁을 일으키신 분이 저런 소리를 하니 웃겼다.

“저희 같은 영세업체가 회장님 같은 큰 회사와 경쟁이 되겠습니까?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나의 저자세와 각종 재능들 덕분에 처음에 칼이 숨겨져 있던 말투에 조금은 훈풍이 불기 시작하였다.

“하하하하. 차후에 같이 연계할 수 있는 프로젝트가 있으면 같이 해보시죠. 저희야 자체 유통망이 주력이고, 택배는 곁가지이니 너무 심하게 경쟁만 하지 않으면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겁니다. 화물차나 창고를 같이 사용하면 시너지 효과도 나고, 아주 좋을 겁니다.”

택배 쪽은 어느 정도 양보할 테니, 마트 쪽은 쳐다도 보지 말라는 말을 우아하게 해주셨다.

“감사합니다.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험... 이제 내가 이야기 좀 해도 되겠는가?”

“어? 어이구. 큰 회장님. 당연히 가능하시죠.”

조강모 회장.

일명 큰 회장님으로 불리며 대한민국의 건설과 자동차를 대표하는 대기업의 오너이다.

재계순위 2위의 오너가 다가와 말을 걸어오니, 다들 먼저 말을 할 수 있게 양보를 해왔다.

실제로 나이도 지금 회장들의 아버지들과 같은 세대로서, 같이 경쟁을 하던 사이이다 보니 다들 더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

“반갑소이다. 나 조강모요.”

나는 조강모 회장님에게 구십 도에 가깝게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하였다.

우리나라 대기업 오너 중에서는 드물게 존경할 만한 분이셨다.

이름없는 독립 운동가의 자손으로, 대한민국에서 독립운동가의 자손으로는 아주 드물게 성공하신 분이셨다.

건설인부로 시작하시어 건설사 사장까지 역임을 한 자수성가의 대표적인 인물이고, 저돌적인 승부욕으로 불가능해 보였던 공사들을 연이어 성공을 시키신 신화적인 분이시다.

그저 저돌적이기만 했다면 문제가 되었을 것이지만, 누구보다 건설 현장에 대해서 잘 아시고, 최신 공법에 대한 공부와 연구도 누구보다 열심히 하시다보니 남들은 못하겠다고 판단한 것들도 이 분의 눈에는 성공이 가능한 것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리고 일용직 인부에게까지도 친절하신 성품은 누구나 존경할만해서 큰 형님 같은 카리스마를 풍기신다.

대한민국 1위, 2위 자동차 회사를 거느린 이유도 2위 회사가 부도위기에 처해 해외 사모펀드에 팔릴 위기에 처하자 국부 유출을 걱정하시어 인수를 하신 것이었다.

그리고는 합병이 아니라 경쟁 체제를 유지시키며 독점이 되지 않도록 경계를 하셨다.

다만, 자식 농사는 성공하지 못하시어 아직까지도 회장직을 유지하시고 계시는 게 유일한 단점이시다.

“그만 고개를 드시게나. 어찌 한 회사의 부회장이 이리 쉽게 고개를 숙이시나? 사람 민망하게 만들지 말고 어서 고개를 드시게.”

“존경하는 분을 만나게 되니 저도 모르게 이리 되었네요. 천운이라고 합니다.”

“허허허. 볼수록 마음에 드는구먼. 아직 결혼은 하지 않았다고 들었는데, 혹시 혼인할 여성은 있으신가?”

“아닙니다. 사귀는 여성은 없습니다.”

“좋구먼. 그럼 우리 손녀는 어떤가?”

갑작스러운 말에 잠시 당황을 하였다.

“어이고. 미안하네. 내가 너무 마음에 들다보니 앞뒤도 없이 말을 해 버렸구먼. 알다시피 내 자식 놈들은 둘 다 회사에 미련도 없고, 능력도 없네. 다들 교수한다고 자기들의 길을 정해버렸으니 내 후계자가 없어. 그래서 나도 모르게 마음이 급해져 버렸나보네. 사과하겠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하하하”

나를 좋게 봐주시니 기분은 좋았다.

“그래도 언제 시간 좀 내주시게나. 우리 손녀가 정말 예쁘다네. 성격도 아주 좋아.”

계속해서 말씀을 하시자 나도 더 이상은 그냥 넘길 수 없어 말씀을 드렸다.

“사실 저는 결혼 생각이 없습니다.”

“허어.. 그렇구먼. 그래도 후계가 안정이 되어야 그룹도 안정이 될 터인데.. 아쉽구먼.”

보통 노인들 같으면 남의 의견을 잘 듣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시는데, 큰 회장님은 그런 부분이 보이지 않으셨다.

대한민국 재계 서열 2위의 오너이시며, 그 자리를 오랜 세월 지켜오셨다면 남에게 강요를 하시거나 지시를 하시는 게 익숙해서 자신이 그런지도 모르고 그럴 수 있었을 텐데, 그런 부분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럼 언제 우리 회사 좀 방문해주게. 내 긴히 제안할 말이 있네.”

“네. 회장님이 시간되실 때 바로 찾아뵙겠습니다.”

“허허허허. 성격도 아주 좋고, 윗사람 공경도 할 줄 아니 더 마음에 드는구먼.”

회장님은 주변을 한 번 돌아보시고는 나에게 귓속말을 해주셨다.

“사실 자네한테 내 회사를 팔고 싶네.”

“네?”

깜짝 놀라서 회장님을 바라보았는데, 회장님은 진정하라는 손짓을 하시고는 다시 말을 해주셨다.

“사실 내 나이가 은퇴를 해야 할 나이가 한참을 지나버렸네. 물려줄 사람이 없어서 내가 하고 있었지만, 언제까지 그럴 수는 없지. 알다시피 내 자식들은 다들 회사에 관심이 없네. 자식 농사를 잘 지은건지, 잘 못 지은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아무한테나 회사를 물려줄 수는 없지 않겠나?”

그렇지만 그걸 왜 나한테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의아할 수도 있겠지만, 원래는 내 자식들에게 지분을 물려주고 전문 경영인 체제를 가지려고 하였네. 그런데 내 자식들이 회사에 대해 아주 조금이라도 알아야 뭐가 잘 못 돌아가는지 파악이라도 하지. 그래서 고민하던 중에 자네를 알게 되었네.”

잠시 나를 인자하신 눈빛으로 바라보시던 회장님은 다시 말을 하셨다.

“자네가 회사를 운영하는 철학을 보았다네. 혼자 다 갖지 않고 베풀면서 살더구먼. 나도 그렇게 할 수가 없었는데, 자네는 내가 생각하던 이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었어. 그렇게 베풀면서 살아가는 사람에게 내 회사를 물려주고 싶어졌네.”

나를 바라보는 회장님의 눈빛은 밝게 빛나고 있었다.

“내가 죽으면 이 회사가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악독하게 굴 수 도 있지 않겠나? 나는 그게 싫다네. 전쟁 이후에 살 집이 없어서 고생하던 사람들을 위해 나는 건설 사업을 시작했네. 하다 보니 회사가 커졌지만, 아직까지도 처음 사업을 시작할 때의 마음은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네. 혹시 조이수라는 인물에 대해서 들어보았나?”

“처음 들어봅니다.”

“내 아버지일세. 일제강점기때 독립군들을 숨겨주다가 일본 순사에게 끌려가 고문을 당해 돌아가셨다네. 그런데 아무도 우리 아버지가 어떤 분이신지, 어떠한 일을 하셨는지 모른다네. 역사 교과서에도 올라가지 못할 정도로 그저 흔한 조선인이셨어. 그래도 나는 내 아버지가 자랑스럽다네. 역사책에 올라가지 않았다고 그 독립에 대한 염원과 이 나라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작다고 생각되지 않는다네. 그리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 일세.”

이런 분이 있으니 일제의 잔재가 여전히 남아있는 우리나라가 버티며 살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나 말고 다른 사람들도 많을 텐데 갑자기 이런 말씀을 하시니 많이 당황스러웠다.

“오늘은 그저 내 두 눈으로 자네를 직접 보고 싶어서 왔었는데, 실제로 보게 되니 내 마음이 조급해졌다네. 은퇴하면 나 때문에 고생만한 마누라랑 여행을 떠나기로 하였는데, 빨리 가고 싶네. 지주회사 지분만 인수하면 되니, 그리 큰돈도 필요 없을 것이야.”

“고민해보고 다시 찾아뵙고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아! 그리고 자네 회사 회장님이 저승재단 이사장님 아니신가?”

“네. 맞습니다.”

“허허허. 역시 좋은 사람은 좋은 사람들과 일을 하는가 보구먼. 조만간에 소개 좀 시켜주게나. 나도 은퇴하면 재단을 하고 싶은데, 도움을 좀 받고 싶다네. 아니면 같이 해도 되고. 죽어서 돈 싸 짊어지고 갈 것도 아닌데 나누어야지.”

말을 듣다보니 황재성 회장님과 정말 비슷한 성향을 가지고 계신 것 같았다.

돈에 욕심이 없으시고, 사명감 때문에 일을 하시는 것이지, 기회만 된다면 얼른 그 자리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셨다.

영혼을 느끼는 내 재능으로 봤을 때, 만찬장에 있는 대부분의 기업 오너들의 영혼이 많이 혼탁한 게 사실인데, 큰 회장님은 너무나 크고 밝았다.

솔직히 저 큰 회사를 나에게 물려주신다고 하시니 뭔가 얼떨떨하고 부담이 많이 되었다.

돈이 목적이라면 꿈과도 같은, 말도 안 되는 제안이지만, 돈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보니 망설여지게 된다.

사실 회사 경영에 크게 신경을 안 쓰다 보니 버티고 있는 것이지, 어깨에 올라있는 그룹의 직원들을 생각할 때면 지금도 너무나 버거웠다.

예전에는 내가 뭔가를 잘못 판단하면 나와 내 가족들만 피해를 보고 끝이었지만, 지금은 엄청난 숫자의 직원들과 그 직원들의 가족들까지도 피해를 입는다.

사업 초기에는 모든 것들이 기분에 따라 즉흥적으로 판단을 하고 진행했었지만, 회사가 커져갈수록 하나의 선택을 하더라도 시뮬레이션을 충분히 돌려보고, 전문가들의 의견도 경청을 하면서 선택을 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들이 많이 답답하고 부담스러웠는데, 이번에는 우리 회사보다 더 큰 회사라니 너무나 부담이 되었다.

그리고 이 회사는 황재성 회장님에게 경영을 맡길 수 없는, 오롯이 내 판단으로 운영될 회사가 될 것이라는 게 더 부담이었다.

사업 영역도 자동차 부분이 겹치는데, 이것도 골치가 아프다.

고민을 하는 내 모습을 본 큰 회장님은 연신 흐뭇한 미소를 지으시며 나를 바라보고 계셨다.

“좋구먼. 아주 좋아! 황금이 눈앞에 있어도 고민하는 모습을 보니 더욱 탐나는구먼. 그런데 진짜 내 손녀 한 번 안 만나 볼 텐가?”

왠지 더 말을 섞으면 손녀사위가 될 것 같은 분위기에 어색한 웃음으로 넘겼다.

큰 회장님은 조만간에 꼭 연락을 달라며 만찬장을 빠져나가셨고, 다른 사람들이 말을 걸어왔지만 내 머릿속은 온통 회장님의 제안으로 가득차서 혼란스러웠다.

‘나라면 저럴 수 있을까?’

사실 나는 송이가 자식을 낳으면, 너무 인성이 나쁘지만 않다면 회사를 물려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직은 한참 먼 미래이지만, 나조차도 피붙이에게 물려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데, 큰 회장님은 일면식도 없던 나에게 이런 제안을 하신다는 게 큰 충격이었다.

나름대로 큰 회장님은 자신의 판단 근거가 있어서 제안을 하셨겠지만, 제안을 받은 내 입장에서는 너무나 큰 제안이라 아직도 얼떨떨하다.

물론 내가 하고자 하는 일에 엄청나게 큰 도움이 되고, 내가 그려놓은 로드맵의 몇 단계를 뛰어넘는 엄청난 일이지만 많이 망설여졌다.

지금까지는 크던 작던, 모든 일을 혼자서 해내지 못하고, 믿을 수 있는 분들의 도움을 받아왔다.

처음 시작한 해피 의수도 이장혁 사장님이 회사 운영을 해주셨기 때문에 나는 개발만 신경 쓰면 되었다.

지금 힐링 그룹도 황재성 회장님이 있으시니 나는 하고 싶은 것들만 하고, 필요한 경우에만 마치 용병처럼 일을 해결해 왔다.

그런데 오롯이 혼자서 그런 일들을 해내야 한다는 것이 엄청난 부담이었다.

‘구미호 퇴치하러 왔다가 호랑이 굴에 들어가게 생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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