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속에서
“부회장님. 힐링 물류 정비가 끝이 났습니다.”
내 비서실장이신 석우 형님이 힐링 물류의 정비 작업이 끝났다고 보고를 해왔다.
아직도 정비를 할 게 많이 남았지만, 우선은 직원들의 인성 검사와 기본적인 정비를 끝냈으니 나머지는 일을 하면서 부족한 부분들을 보완하면 되는 일들이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언제든지 사람이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형님.”
“회사입니다. 실장으로 불러주십시오. 부회장님.”
역시나 일 할 때는 정말 깐깐하시다.
“그럼 제대로 불러드려야겠네요. 힐링 물류 대표님.”
“네? 그게 무슨...”
“보고서를 살펴봤고, 직원들의 평판들도 알아봤습니다. 다들 실질적으로 힐링 물류의 CEO로 인정하고 있더군요. 그러니 정식으로 발령을 내드려야죠.”
석우 형님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유능했다.
처음부터 엄청난 카리스마로 힐링 물류를 휘어잡으시면서도 직원들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전부 외우고 경조사까지도 외우는 노력을 하셨다.
매직워치의 스티커를 사용하면 편하게 도움을 받으실 수도 있었지만, 이런 부분에서는 고집을 피우셨다.
부하 직원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라며.
저 분들은 자신의 이름을 아는데, 자신은 몰라서 되겠냐는 논리에 나도 감화가 되어 전 직원들의 이름을 외우기 시작하려다가 포기했다.
‘5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을 어떻게 다 외워? 그러다가 머리 터지지.’
임원들과 과장급 이상에게는 무서운 저승사자 같은 분이 나머지 직원들에게는 천사가 따로 없었다.
집안에 경조사가 있으면 다른 직원들 몰래 봉투를 건네기도 하고, 직원 결혼식까지 참석해서 감동을 받게 하니 안 좋아하려야 안 좋아할 수가 없었다.
그러니 석우 형님의 힐링 물류 CEO 취임은 명함만 새로 인쇄해 드리는 격이었다.
“그런데, 진형우 과장은 어떻습니까?”
“얼마 전에 사직서를 제출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사직서를 제출하기 전에 이미 상벌조정위원회를 열었고, 해고자 명단에 올랐습니다.”
“그렇군요. 그 정도면 되겠습니까? 형님 아버지 회사도 억울하게 빼앗겼는데요.”
“그건 억울하지만, 법정에서 다퉈야 하는 문제이죠. 제 사적인 감정 때문에 회사의 룰을 어기면 안 됩니다. 해고도 요건이 되었기 때문에 정당하게 상벌조정위원회에 회부를 한 것입니다.”
저렇게까지 철저하게 굴 수 있다니 대단했다.
그런데 나는 아직까지 저런 인성이 안 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피해를 끼친 사람은 나도 싫다.
“우리 그룹에 블랙리스트 고객 명단이 있다는 건 알고 계시죠?”
“정식으로 홈페이지에 공개가 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힐링 그룹은 공식 홈페이지에 블랙리스트 고객 명단을 공개하고 있다.
이름 한 글자를 지운 이름과 사유가 적혀있는데, 이 블랙리스트 고객 명단에 오르면, 힐링 그룹의 모든 제품을 구매하거나 이용할 수 없었다.
힐링 물류에서 운영하는 택배도 배달하지 않고, GB그룹의 매직워치와 가전제품도 판매하지 않는다.
또한 스카이 호텔과 힐링 타운까지도 입장이 불가능하다.
앞으로 내가 벌이는 사업의 영역이 점점 넓어질 것인데, 이 블랙리스트 고객 명단에 오르면 삶이 많이 불편해질 것이다.
지금까지 올라있는 명단은 나에게 의족과 의수 때문에 사고가 났다고 사기 기자회견을 하였던 사람들과 예전 오성자동차 시절의 조합장과 그에 동조한 조합위원들, 힐링 의수 사옥 앞에서 폭력을 행사한 불법 시위자들이었다.
일부 사람들은 이 블랙리스트 고객 명단은 너무 한 것이 아니냐는 비난을 쏟아냈지만, 취업 제한을 하는 것도 아니고 제품 판매를 하지 않는 것뿐이어서 법적으로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리고 그 사유들 또한 공개해 놓았으니 비난은 일시적이었다.
오히려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인물들 이름을 거론하며 블랙리스트에 올려달라고 요구 중이다.
“그 명단에 그쪽 집안사람들도 올렸습니다.”
이번에는 사유를 부회장 직권으로 해놓아서 다들 의아해 했지만, 내가 정했다고 적어놨으니 다들 무슨 이유가 있겠거니 했다.
“아니. 그건 룰이 아니지 않습니까.”
“저도 사람인데 룰 한 번 어기죠 뭐. 대신 이번 달 월급은 감봉 조치했습니다. 그러니 형님이 밥 좀 사주십시오.”
내 말에 석우 형님은 몇 번이나 입을 열려고 입술을 달싹이다가 결국에는 한 마디만 하셨다.
“고맙다. 운아..”
이렇게 직위의 힘을 남용하니 기분은 좋았다.
“진짜 월급 못 받았으니 국밥으로 사주세요.”
이렇게 말을 하는데도 농담으로 받아들이시는 것 같았다.
“형님! 진짜 밥 사주셔야 돼요!”
“운아. 영광 한 번 내려와 줄 수 있겠니?”
엄마가 연락이 왔다.
저번에 일본 관백 구미호가 방문하였을 때, 영광에 내려가셨다가 몸이 많이 불편하신 대성동 할머니를 보살피신다며 그대로 머물러 계셨다.
“왜요? 대성동 할머니 아프세요?”
“그게 아니라.. 병원에 한 번 모시고 가봐야 할 것 같아서..”
나는 엄마의 전화를 받자마자 라이트닝을 타고 영광으로 향하였다.
밤이어서 고속도로에 차가 별로 없다보니 생각보다 빠른 시간에 도착을 하였다.
아직은 너무나 어두운 밤중에 도착을 하였고, 나는 차에서 내려 동네 어귀를 산책하고 있었다.
시골의 밤은 고요했다.
마을에 간간히 설치되어 있는 가로등 말고는 어떠한 인공적인 빛도 없었다.
풀벌레 소리는 고요한 마을이 심심할까봐 잔잔히 울려주었고, 밤하늘의 별들은 도시의 하늘에서 벗어나 여기에 다 모여 있었다.
조용히 고독을 즐기며 걷는 시골길은 내가 걷는 곳마다 잠시 풀벌레 소리들이 멈춰주는 매너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동네 분들의 부모님들과 조상님들이 모여계시는 산소에는 두 분이 말싸움을 하고 계셨다.
- 아니랑께! 쟈가 이짝에 둔거랑께! 내가 어찌 아줌씨꺼 먹것써라!
- 아따! 먹을수도 있제! 그란디 내꺼를 그렇게 쎄베가면 안되제!
- 말이 좀 거시기 하요! 내짝 묘똥(무덤)쪽에 있었당께!
“무엇 때문에 싸우시는 건가요?”
- 워매! 천운이 와부렀냐? 내 말 좀 들어봐라이! 내짝에 음식이 이써가꼬 내가 우리 자손들이 줬는갑다 하고 먹었는디! 저짝 아줌씨네 매누리가 제삿밥을 놔뒀는다고 워찌나 나를 잡아 잡술려고 하신다야!
- 뻔히 내 제삿날인지 암시롱 먹었당께!
“마을에 두 분밖에 안 남으신 수호신님들이 싸우시면 되겠어요? 조만간에 제가 제사상 올려드릴게요. 싸우지들 마세요.”
- 아따! 내가 먹는 것 땀시 그런당가? 그 맴이 미워서 그라제!
- 그거가꼬 쪼잔허게! 나도 참말로 거시기 허요!
이 작은 마을을 대를 물려가며 지켜주시는 수호신들께서 이번 대에서는 사이가 조금 안 좋으셨다.
- 저 아줌씨 얼렁 승천하고, 대성동이가 와야허는디 갑짜기 회춘을 해가꼬 한참 걸리겄네!
수호신님들이 말씀하시는 대성동 할머니는 다음번 수호신으로 점 찍혀 있었다.
가장 먼저 죽음이 가까워져 왔고, 성품도 동네 사람 누구에게도 미움을 받지 않으시는 분이어서 점 찍어 놓았는데, 갑자기 상태가 많이 호전 되었다고 하신다.
나도 엄마에게 연락을 받았을 때는 그게 말이 되나 싶었는데, 수호님들의 말을 들어보니 정말 상태가 많이 좋아지신 것 같았다.
나는 날이 샐 때까지 수호신 할머니들을 달래드리고, 아침 해가 뜨는 것을 보며 엄마의 집으로 향했다.
“어서오세요. 천운님.”
당직을 서시는 보디가드 누님이 나에게 인사를 해오셨다.
“수고가 많으십니다. 저희 어머니 잘 좀 부탁 드려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다들 항상 같이 하다 보니 이제는 가족 같은 분들이 되었다.
“이번에 집으로 차들 보내드렸으니까 사용하세요. 아직은 차종이 하나뿐이어서 ‘라이트닝’으로 보내드렸는데, 중형차 나오면 바꿔드릴게요.”
“어?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가족끼리 이정도도 못 해드릴까 봐서요? 제가 안 해드리면 저희 어머니가 서운해 하실 거예요.”
“저희 사장님께서 조카들 대학교 등록금도 내주셨는데.. 차까지는 너무 부담입니다.”
송이가 그래도 잘 하고 있으니, 내 마음도 안심이 되었다.
“이미 보냈으니 이제 제 건 아닙니다. 알아서 하셔야 돼요.”
“아.. 네. 정말 감사합니다.”
이분들이 있기에 나도 마음 놓고 엄마를 맡길 수가 있었다.
“어머니는 일어나셨나요?”
“보통 이시간이면 일어나시는데, 확인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니에요. 그냥 앉아서 기다리죠 뭐. 커피 드실래요?”
“제가 가지고 오겠습니다.”
“일 하셔야죠. 커피 3 스푼, 설탕 2 스푼 맞으시죠?”
“네. 기억하시네요?”
경호원분들의 음식 취향이나 커피 비율 같은 것도 같이 하다 보니 기억하게 되었다.
내 것과 경호원 누나의 커피를 타서 자리에 앉아있는데, 서서히 태양이 떠오르며 마을이 밝아오는 모습이 몽환적이었다.
마을을 내려다보는 언덕위에 있다 보니, 이 몽환적이고 아름다운 모습을 쉽게 볼 수가 있었다.
“이 풍경은 볼 때마다 감탄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항상 같은 것 같으면서도 달라요.”
경호원님은 아름다운 풍경을 보시며 다시 한 번 빠져들었다.
“그러게요. 어머니가 왜 이 집을 그렇게 사랑하는지 알겠어요.”
그렇게 아침의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보고 있을 때, 엄마가 조용히 내 옆에 앉으셨다.
“오느라 수고가 많았어. 운아.”
“덕분에 이런 풍경도 보게 되고, 너무 좋네요.”
“그래. 그렇게 생각해주니 고마워.”
“그런데 대성동 할머니가 진짜 많이 좋아지셨어요?”
“응. 요즘에 회춘을 하시는지 너무 상태가 좋아지고 계셔. 정신도 계속 멀쩡하시고, 식성도 많이 좋아지셔서 이제는 멀쩡해지신 것 같아. 처음에는 가실 때가 되셔서 잠깐 기력이 돌아오시는 줄 알았는데 갈수록 상태가 좋아지시더구나.”
정확한 것은 할머니는 직접 뵙고 상황을 봐야 알겠지만, 엄마의 말과 수호신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정말 많이 좋아지신 것 같다.
“언제부터 그러셨는데요?”
“음.. 한 달 전부터? 일산 병원에서 내려오시고는 며칠 동안 누워서 잠만 주무셨거든. 그런데 어느 날 부터는 바깥외출을 하시는 거야. 계속 ‘아부지’만 찾으시면서 걸으셔서 동네 사람들이 걱정 많이 했었어. 금방 가실 때 되신 줄 알고.”
시골에서는 죽을 때가 되면 아시는 분이 데리러 온다고 믿는다.
아마 대성동 할머니가 ‘아부지’를 부르며 걸어다니시니 돌아가실 때가 되신 줄 아셨나보다.
“그러더니 한 달 전부터는 동네 사람들도 전부 다 알아보시고, 밭일도 나가시더구나. 이제는 너무 멀쩡해지시고, 기력도 넘치셔.”
혹시나 싶어서 대성동 할머니에게 채워드린 매직워치의 추억보정 영상을 불러왔다.
그러자 눈앞에 펼쳐진 것은 진달래꽃으로 뒤덮인 마을이었다.
원래는 대성동 마을이었을 동네가 지금은 할머니가 지금 살고 있는 이 동네로 바뀌었다.
그리고 웃으며 서있는 중년의 남성은 나를 닮아있었다.
아무래도 대성동에서 나를 보며 할머니의 아버지인줄 착각하시고 나서 기억이 뒤섞이셨나보다.
할머니의 추억의 영상은 아주 따뜻했다.
따뜻한 봄날은 날씨가 좋아서가 아니라, 마음이 좋아서 다 좋아 보이는 것 같았다.
할머니가 보시는 풍경의 햇살은 따뜻하고 달콤한 핑크빛의 진달래 색이었다.
‘아... 할머니는 추억 속에서 살고 계시는구나. 마음이 어려지시니 몸도 영향을 받는 걸까?’
사실 대성동 할머니의 상태를 보고나서 알츠하이머 병을 치료해보려고 연구를 해봤었는데, 조기 진단과 상태가 악화되지 않게 하는 방법이 최선이었다.
이미 손상된 뇌를 되돌리는 방법은 내가 똘똘이를 치료하기 위해서 만든 [빨간약]뿐이었다.
조만간 대성동 할머니의 DNA로 [빨간약]을 만들려고 하는 찰나였는데, 이렇게 좋아지실 줄은 몰랐다.
우리는 아침밥을 차려먹고 대성동 할머니를 뵈러 가보았다.
“할머니. 계세요?”
“응? 미정이 왔어?”
엄마가 자주 찾아오셔서인지 목소리만 듣고도 바로 알아보셨다.
방문이 열리며 할머니가 웃으시면서 걸어나오시다 나를 발견하시고는 맨발로 마당으로 뛰어나오셨다.
“어이고! 우리 운이 왔어? 밥은 먹었고? 어서 들어와. 어서.”
진짜 손자인 것처럼 너무나 반겨주시니 나도 가슴속에 따뜻한 마음이 채워지기 시작하였다.
나는 할머니의 손에 이끌려 마루에 앉았고, 밥은 먹었다는 말에 손수 식혜를 대접에 따라서 가지고 오셨다.
나와 엄마, 근무를 교대한 경호원 팀장 송보라 누나는 그 식혜를 마시며 기분이 좋아졌다.
“요즘은 괜찮으세요? 언제 저랑 검진 좀 받으러 병원가요.”
“아니야. 요즘에는 아픈 곳이 한 군데도 없어. 정신도 말짱하고 좋아. 우리 운이가 선물해준 요거 덕분에 항상 기분이 좋아서 그런지 많이 좋아졌어.”
말씀을 하시며 내가 채워드렸던 매직워치를 손에 들어보여 주셨다.
“그럼 아버지 꿈도 자주 꾸세요?”
“꿈에서는 오히려 잘 안 나오셔. 모르는 남자가 가끔 나오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아파. 그런데 낮에는 요거 때문에 우리 아버지 얼굴을 볼 수 있어서 좋아.”
아.. 진짜 아버지의 얼굴을 보시면 너무나 슬펐던 기억 때문에 거부감이 드시나보다.
그리고 나와 같이 대성동에서 있었던 추억이 그 자리를 대신하며 아픔을 기쁨으로 바꾸어주는 것 같은데, 마음이 혼란스러워졌다.
원래 아버님의 기억과 추억을 지우시는 게 더 나은 건지, 원래의 기억을 찾아드리는 게 맞는 건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너무도 밝고 건강하신 모습을 보니 차마 진실을 말씀드리기가 힘들었다.
“할머니. 오늘 시간 괜찮으시면 제가 그림이라도 하나 그려드릴까요?”
“응? 그림? 남사스러워서 그런 거 못하는데.. 사진이나 하나 찍으면 되지. 뭘 그렇게 고생한다고 그래.”
“할머니. 그러지 마시고 하나 그려달라고 하세요. 우리 운이가 그림을 아주 잘 그려요. 저기 서울에 운이 그림 전시장도 있어요.”
“그래? 우리 운이가 그렇게 그림을 잘 그려? 그럼 그려야지. 잠시만 기다려라. 내가 옷 좀 갈아입고 나올터이니.”
나는 마을 어귀에 넓은 풀밭에 자리를 잡고, 엄마 집에서 가져온 그림 도구들을 세팅하기 시작하였다.
엄마 집에서 바라보는 풍경들이 너무 아름답다보니 그림 몇 점을 그리느라 가져다놓고, 잘 보관하고 있었다.
그리고 바닥에는 돗자리를 몇 개 펴놓고, 이젤의 앞쪽에는 대성동 할머니를, 내 옆에는 엄마와 보라 누나를 앉혔다.
“할머니. 오래 걸릴 수도 있으니까 손목에 차고 있으신 거 작동시켜서 주변 풍경 구경하고 계세요.”
“그래. 나는 너무 걱정 말고, 우리 운이 천천히 해도 돼.”
할머니가 매직워치로 추억보정 기능을 켜신 순간, 같은 풍경을 공유 받은 내 시야도 할머니가 보시는 마을의 풍경으로 순식간에 변하였다.
온통 진달래꽃으로 뒤덮인 공터는 싱그러운 대성동의 봄바람으로 살랑살랑 춤을 추고 있었다.
발밑에는 이름 모를 꽃들이 수줍게 피어있었고, 온갖 나비들이 서로의 아름다움을 뽐내며 이 꽃과 저 꽃을 날아다녔다.
그러다 할머니가 내미신 손가락 위에 사뿐히 내려앉은 나비는 그 아름다운 날개를 천천히 움직이며, 어린 영옥이의 따뜻한 온기를 느끼고 있었다.
잠시 뒤, 어린 영옥이의 머리위에는 이름 모를 꽃들로 만들어진 어여쁜 화관이 살포시 얹어졌다.
그리고 그 앞에는 영옥이의 아부지가 밝게 웃으시며 예쁘다고 칭찬을 하고 서 계셨다.
“우리 영옥이가 세상에서 제일이다. 우리 딸 시집가면 아부지는 어찌 살꼬.”
“저는 아부지랑 평생 살 건데요? 아부지도 저랑 평생 같이 살아요!”
지켜질 수 없는 약속이었지만, 결국에는 이렇게 지키게 되었다.
영옥이는 이게 분명 현실이 아님을 알고 있었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꿈에서도 그립던 아부지와 이렇게 같이 있을 수 있는데.
이렇게 아부지가 자신의 눈앞에서 자신을 보며 웃어주시는데.
원할 때면 언제든지 그날의 이 따뜻한 봄날로 돌아갈 수 있는데.
이곳이 바로 천국이었고, 고향 대성동이었다.
캔버스에 그려진 어린 영옥이와 그녀의 아버지는 세상의 모든 근심과 걱정을 벗어던진 얼굴이었다.
그들의 표정에는 오로지 서로에 대한 사랑의 감정만이 그려져 있었고, 서로를 위해 웃어주는 게 가장 즐거운 일인 것처럼 느껴졌다.
“아.. 어쩜..”
옆에서 그림을 구경하던 경호원 팀장인 보라 누나가 감탄을 하고 있었다.
“이게 대성동 할머니가 보시는 세상이시구나.. 이렇게 아름다웠다니..”
엄마도 내 그림을 보시며 할머니의 추억을 엿 보시고는 감탄을 하셨다.
“이렇게 아름다운 추억을 보시고 계시니 행복하시겠구나. 이제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시면 되었지.”
그렇게 완성된 그림은 대성동 할머니와 엄마, 그리고 마을 사람들을 지켜주는 귀물이 되었다.
- 워매! 기운이 넘쳐버린다이! 뭐시당가!
- 저짝 대성동이네에서 나오는 기운인갑서! 아따 이게 무슨 일이당가!
그리고 마을을 지켜주시는 수호신 할머니들의 기운도 덩달아서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