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1화 (121/170)

제일 친한 친구.

“네. 비희님. 어쩐 일이신가요?”

[귀인. 우리를 좀 도와주었으면 하오.]

비희님의 도움요청에 동해로 출장을 떠났다.

그래핀 생산 공장이 있는 섬으로 떠나는 무인선에 타고 동해 바다위에 떠있는 순간, 용오름과 함께 비희님이 나타나셨다.

“귀인. 빠른 걸음에 정말 감사하오.”

“그런데 무슨 일이십니까?”

“내 둘째 아우인 이문(螭吻)이 많이 아프오.”

이문.

용의 둘째자식으로서 치문 또는 치미라고도 불린다.

무언가를 바라보길 좋아하는 습성 때문에 동해의 문제가 될 만한 것들을 감시하는 역할을 하고 있고, 불을 막는데도 능력이 있어 예전에는 집을 지을 때 그 형상을 지붕에 얹었다고 하였다.

“제가 이문님의 병을 치료할 능력은 안 되는데요..”

“치료야 우리가 하고 있으니 분명 나아질 것이오. 문제는 이문이가 아픈 원인이요.”

비희님의 말씀으로는 바다 속에 떠다니는 미세플라스틱이 문제가 되었다고 하신다.

물고기가 주식인 이문님의 몸에 미세플라스틱이 쌓이다 병이 생겼다고 한다.

“아직까지는 버틸만하나 이제는 바다 생물들도 미세플라스틱의 영향으로 조금씩 병에 걸려가고 있소. 더 늦기 전에 해결을 해야 하나 용궁의 기술력으로는 방법이 없다오. 귀인의 도움이 필요하오.”

용궁의 정수 시스템은 유해한 바이러스나 세균들은 걸러낼 수 있지만, 미세 플라스틱은 요 근래에 심각하게 늘어난 것이라서 관련한 기술 개발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아예 용궁이나 동해 바다에 들어오지 못하게 방어막을 치면 바다 생물들이 방어막을 통과하지 못하고, 심지어는 바닷물 또한 제대로 통과하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질 정도로 미세 플라스틱의 크기는 작았다.

우선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말씀을 드리고 연구소로 돌아왔다.

그리고 관련한 자료들을 모아 연구를 시작하였다.

‘관건은 미세플라스틱을 걸러내는 게 문제이네. 너무 작다보니 필터 같은 물리적인 방법도 힘들고, 되더라도 그 넓은 바다를 전부 커버하는 것도 문제야.’

결국은 나노입자를 포집하는 전기집게 기술을 파보아야 할 것 같다.

‘우선은 테라 헤르츠파(1초당 1조 번 진동하는 전자기파)를 이용해서 미세 플라스틱의 공명 주파수를 알아내고, 그 주파수에 맞춰서 전기신호를 흘려주면 전기 영동법으로 플라스틱을 전극 쪽으로 흡착시킬 수 있겠다.’

이론은 완성을 하였지만, 실제로 가능한지 여부는 직접 실물을 만들어 테스트해봐야 한다.

“자. 다들 모여봐.”

내 말에 아담이와 조민이, 쫄랑이가 모였다.

“이번 프로젝트는 미세 플라스틱 제거 프로젝트이다.”

내 말에 다들 진지하게 듣기 시작하였다.

평소에는 나사가 하나씩 빠져있지만, 필요한 경우에는 이렇게 집중을 해주었다.

나는 내가 세운 이론에 대해서 설명을 했고, 전기 영동법을 실행할 제품은 아담이와 조민이에게 맡겼다.

그리고 미세 플라스틱의 검출과 공명주파수를 알아내는 센서는 나와 쫄랑이가 맡기로 하였다.

“자! 가라! 고고고!”

- 무브! 무브!

나는 테라 헤르츠파를 이용해 미세 플라스틱을 검출하고, 검출된 플라스틱의 공명주파수를 알아낼 수 있는 센서를 신속하게 개발하였고, 일차적으로 성능을 검증하였다.

그리고 어떤 형식으로 센서들을 운용해야 효율적인 운용이 가능할지 고민하기 시작하였다.

“쫄랑아. 물고기 로봇을 만들까? 부표 형식은 고정 좌표여서 좋기는 한데, 배가 지나가다가 위험할 수가 있잖아. 수 만 개를 띄워야 하는데, 배들이 전부 피할 수 있을까? 배에서 정보를 처리하는 것도 일일거야.”

[멍! 으르릉! 멍! - 공중과 바다 속 양쪽에서 처리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오! 그래! 드론으로 플라스틱들의 분포도를 확인하고, 얼마나 심한지는 드론에 실려 있던 잠수함을 바다 속으로 내려 보내는 거야! 그러면 정확한 밀도가 계산되고, 일정 밀도 이상이 확인되면 무인선을 보내서 플라스틱들을 수거하는 거지! 역시 쫄랑이!”

[멍! 멍! - 이힛! 충성!!]

우리는 개념이 서자마자 바로 제작에 들어갔고, 동해로 테스트를 하러 왔다.

“쫄랑 대원 준비됐나?”

[멍! - 옛썰!]

쫄랑이가 로봇팔로 드론을 원격 조종하기 시작하였다.

테스트가 끝나고 정식 생산을 한다면 인공지능이 제어를 할 테지만, 우선은 수동 조종으로 테스트를 진행 중이었다.

내 앞에 띄워진 홀로그램에 드론에서 확인한 미세 플라스틱 분포도가 보이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해류의 흐름과 비교를 해보니 얼추 비슷하게 분포도가 그려졌다.

“쫄랑아. 잠수함 투하해.”

[멍! - 라져!]

드론에서 잠수함이 떨어져 나와 운행을 시작하였다.

잠시 뒤에 수면으로 송신선을 올려 보낸 잠수함으로부터 미세플라스틱의 공명 주파수와 바다 깊이에 따른 밀도 정보가 도착하였고, 정확히 작동하는 것을 알게 된 나는 철수를 명령하였다.

물속과 공기는 매질이 달라 통신이 원활하지 않으니 잠수함에 연결 된 송신선이 수면으로 떠올라야 공중의 드론과 통신이 연결된다.

이 부분도 보완을 해야 할 것 같다.

바다 속과 통신하는 안테나와 수면 위에 올라와 있는 안테나를 부착한 부표들을 띄우면 될 것 같았다.

같은 매질끼리는 통신이 잘 되니, 매질이 달라지는 곳만 신경을 써주면 된다.

수면으로 떠오른 잠수함을 드론이 다시 잡아들고 날아오며, 우리의 테스트는 성공적으로 끝나게 되었다.

“쫄랑아 수고했다! 오늘은 최고급 한우로 구워줄게!”

[왕! 왕! 왕!! - 킹! 왕! 짱!]

기분 좋게 연구소에 도착을 하니 아담이가 큰 전극판에 붙어서 부들거리고 있었다.

- 전원 꺼주세요. 누님!

“와우! 이거 되는 거 맞지? 역시 나란 천재는 정말!”

- 끄라고!!

“어? 아! 미안!”

한심한 꼴을 보며 고개를 흔들었다.

“적당히들 하고 조금 쉬자. 아담이랑 쫄랑이는 할 거하고 조민이는 이리 나와. 퀘스트 하러가자.”

“아.. 조금만 더 하면 끝날 것 같은데요..”

공대생들의 ‘조금만 더’를 외치는 조민이를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너 며칠째 집에도 안 들어가고, 퀘스트 하러도 안 나가던데, 처음에 내가 뭐라 그랬지?”

“어... 죄송함다.”

“뭐든지 적당히 해야 오래 가는 거야. 납품 시기가 정해진 일도 아니고, 시간 들여서 천천히 하면 되는 일인데 뭘 그렇게 죽을 듯이 하고 있냐? 조금 쉬어.”

“네.. 하다 보니 조금 만 더 하면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요.”

“가자. 퀘스트 하면서 기분 전환이나 해볼까?”

“넵!”

기분 전환도 할 겸 한강을 보면서 산책도 하고 겸사겸사 퀘스트가 발생하면 해결하기로 마음먹고 행주산성 쪽 주차장에 주차를 하였다.

“우와~ 완전 바다 같아요.. 멀리서만 봤었지 한강에 이렇게 가까이 와 본 건 처음인 것 같슴다!.”

한낮의 한강은 바다 같은 느낌을 우리에게 주었다.

드물게 미세먼지가 하나도 없는 오늘의 날씨는 그림과도 같았다.

하늘에서부터 시작된 햇살이 한강의 물결에 부딛치며 산란되는 모습은 너무도 아름다웠다.

그리고 한강에서부터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은 마음속 깊은 곳까지 씻겨주는 선물과도 같았다.

조민이는 풀어놓은 강아지처럼 기분 좋은 웃음을 흘리며 뛰어다니고 있었다.

“가끔 이쪽 코스로 조깅하면 기분이 좋아. 너도 한 번씩 산책 좀 해.”

“알겠슴다! 우오! 저기 강에서 카누? 카약? 뭐지? 아무튼 그거 타고 있는 사람들도 있슴다!”

커피 광고냐?

한강의 강물위에서는 2인승 카약을 타고 한가롭게 오후를 즐기는 사람들이 있었다.

“어! 이쪽으로 옵니다! 구경 가시죠!”

“어? 뭘 구경까지야. 야!”

말만 권유이지 이미 달려가고 있었다.

강이기는 하지만, 수질이 아주 좋지는 않아서 강가는 갯뻘들이 쌓여있었다.

그곳을 향해 2인승 카약이 서서히 들어서고 있었다.

“아니! 그러니까 조심 좀 하지! 내가 처음부터 이야기 했잖아! 물속에 빠트릴 수 있으니까 조심 하라고!”

“내가 일부러 그랬어요? 실수지! 실수! 그렇게 걱정되면 당신이 챙기지 그랬어? 뭐만 하면 다 나한테 물건 맡기면서! 내가 완전 조수야! 조수!”

멀리서 볼 때는 행복한 커플이었는데, 가까이서 보니 심하게 말다툼을 하고 있었다.

조민이도 신나서 뛰어갔다가 두 분이 싸우시는 걸 듣고는 바로 뒷걸음을 치며 나에게 다가왔다.

“와우! 역시 레저를 즐기시는 부부니까 성격들도 화끈하네요.”

“그러게. 뭘 잃어버리셨길레 저렇게 화를 내신대?”

우리는 너무나 궁금했지만, 분위기상 차마 물어보지 못하였다.

그런데 우리의 궁금증은 바로 해결이 되었다.

‘띠링’

[퀘스트 발생 - 자동차 키를 물에 빠트린 부부의 원만한 부부생활을 위하여 차키를 찾아 주시오. 제한시간 5시간.]

“차키! 저기 배까지 있는데, 차 없이 집까지 어찌 가시려고.. 역시 우리가 출동할 이유가 있었네요!”

의욕에 차 있는 조민이를 보며 어떻게 할지 작전을 구상하기 시작하였다.

‘차 문은 [이번만 열어주는 거야] 재능으로 내가 열어드릴 수 있기는 한데, 퀘스트가 차키를 찾아달라고 했으니까 잠수해서 찾아야 되겠네. 시간도 넉넉하니까 연구소에 있는 잠수 장비를 드론으로 가져오면 되고, 도와준다고 말하는 건 스쿠버 다이빙을 하려고 하는데 겸사겸사 도와준다고 하면 될 것 같네. 이제 민이랑 작전을 상의해 볼까?’

생각이 마무리 되고 나서 조민이에게 말을 하기 위해 고개를 돌렸을 때, 이미 조민이는 그 부부에게 접근해서 말을 하고 있었다.

“저만 믿으세요! 제가 그 차키를 찾아드리겠습니다!”

“어? 누구.. 아니. 제가 차키를 잃어버렸다고 말을 했나?”

“어이고! 위험해요. 저기 물속에 빠트린 차키를 무슨 수로 찾겠어요? 긴급 출동 서비스 부르면 되니까 걱정 마세요. 아가씨.”

“어? 그럼 안 되는데.. 그 긴급 출동 서비스 오시기 전에 저희가 찾아드리면 되는 거죠? 갑니다!!”

나는 조민이가 사고를 치기 전에 황급히 달려가서 말리려고 말을 하였다.

“잠시만 기다려봐. 내가 드론으로..”

“헛! 둘! 서이! 우라랍!”

[첨벙! 첨벙!! 첨벙! 철푸덕!]

“합! 합! 하하하! 제가 수영을 좀 합니다! 걱정 마십셔!”

“야! 한강물에 그냥 잠수하면 물속이 보일 것 같아? 물안경이라도 쓰고 들어가야 할 거 아냐!”

“저걸 어째.. 저렇게까지 안 해도 되는데..”

내가 예전에 저런 식이었다.

퀘스트가 발생하면 다른 것은 하나도 눈에 보이지 않고, 오로지 퀘스트 자체에만 매달렸다.

차분히 상황을 파악하고, 최적의 효과를 낼 수 있는 전략을 세운 다음에 실행을 해야 하는데, 초창기에는 시간제한이 있다 보니 마음이 굉장히 조급해졌다.

조민이도 나름 천재 축에 속하는데도 처음 자대배치를 받은 신병처럼 사고를 치고 있었다.

나는 조민이의 매직워치에 접속해서 슈트를 가동시켰다.

‘잠수모드 발동’

자신의 말대로 수영은 좀 하는지 어느새 깊은 곳까지 헤엄쳐 들어갔고, 시력이 좋지 않으신 분들은 자세히 보이지 않을 정도로 멀어지자, 조민이의 슈트에 내장 된 잠수모드를 원격으로 발동시켜주었다.

- 당황하지 말고 차분히 잠수해. 그리고 나한테 공유받은 [한 달 운을 한 방에 땡겨 쓰지!] 발동시켜.

하고 많은 최하급 재능들 중에서 [분노의 급발진]을 이어서 공유 받은 [한 달 운을 한 방에 땡겨 쓰지!] 재능.

많은 재능들 중에서 이상한 것들만 고르는 조민이를 뭐라고 했지만, 사실 하나씩 따지고 보면 다 이상한 재능들이어서 그러려니 넘어갔는데, 오늘 제대로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한 달 운을 한 방에 땡겨 쓰지! - 한 달 동안 쓸 운을 한 번에 몰아서 사용합니다. 사용을 하고나서 한 달 동안 불운에 시달립니다.]

[넵! 알겠슴다! ‘한 달 운을 한 방에 땡겨 쓰지!’ 발동!]

매직워치로 민이가 알겠다고 대답을 하고, 재능을 발동시키는 것을 들었다.

잠시 뒤, 엄청난 운으로 그 넓은 한강 바닥에서 차키를 발견한 조민이는 수면위로 올라와 손을 들고 외치고 있었다.

“찾았슴다!! 긴급 출동 안 부르셔도 됨다!!”

그리고는 열심히 이쪽을 향해 헤엄을 치는 조민이의 슈트를 다시 일상모드로 변경해줬다.

“음하하하! 여기 있슴다!”

“아유.. 뭘 이렇게까지.. 고생이 많았어요.”

“아가씨 감기 걸리겠어! 어서 씻고 옷을 갈아입어야 할 텐데.. 우리 차로 가요. 캠핑카라서 간단하게 씻고, 우리 와이프 옷으로 좀 갈아입어요.”

“어? 아! 괜찮은데..”

“가서 갈아입자. 진짜 감기 걸리겠다.”

내가 말을 하니 그제야 민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저씨와 나는 카약을 들고 걸어가고, 아주머니와 민이는 먼저 차로 향하였다.

그런데 먼저 간 아주머니와 민이가 캠핑카 앞에서 난감한 표정으로 서있었다.

“뭐 해? 안 들어가?”

아저씨가 말을 하시자 아주머니가 우리를 보고 말을 하셨다.

“이거 고장났나봐. 문이 안 열리네..”

아무래도 물에 빠져 스마트키가 고장이 났나보다.

“그거 옆에 눌러보면 차키 있어. 그걸로 열어.”

그 말에 아주머니는 옆 쪽 튀어나온 부분을 눌렀고, 스마트키에서 열쇠가 튀어 나왔다.

그리고 바로 차키를 넣고 돌리셨는데, 캠핑카에서는 요란한 경보음이 울리기 시작 하였다.

“어머! 이게 뭐야!”

“엄마야!”

경보음이 울리자 아주머니와 민이는 깜짝 놀라 소리쳤다.

“그거 차키를 시동 거는 곳에 꽂고 ON 상태로 해놓으세요. 한 30초 정도 지나면 경보음 사라질 거예요.”

나는 침착하게 말씀드렸고, 아주머니는 황급히 차안으로 들어가 차키를 꽂고 기다리셨다.

3시간 같은 30초가 지나자 경보음은 멈추었고, 무슨 일인가 싶어 몰려든 사람들에게 간단한 사정을 설명하고 돌려보내 드렸다.

그래도 스마트키로만 작동하는 방식이 아니어서 다행이지, 안 그랬으면 굉장히 난감할 뻔하였다.

요즘 세단이나 SUV 차량들은 차키로 시동을 거는 부분이 사라지고, 스마트 시동키로만 시동을 거는 차량들이 많아져서 방금 같이 스마트키가 고장이 났다면 굉장히 난감해진다.

“아유. 어서 씻고 나와요. 옷은 이걸로 갈아입고.”

아주머니가 민이에게 자신의 옷을 주시며 씻고 나오라고 말씀을 하셨다.

샤워 시설은 없지만, 아쉬운 대로 화장실에서 조심히 씻으면 될 것 같았다.

“거기 총각도 이쪽으로 앉아요. 커피 좀 드릴까?”

“네. 부탁드리겠습니다.”

아저씨가 기분 좋게 웃으시며 커피를 권하셨다.

“블랙? 믹스?”

“믹스가 좋습니다.”

까나리 액젓이 가장 좋기는 하지만, 믹스도 좋아한다.

“역시! 배운 사람은 다르구먼! 믹스가 몸에는 안 좋아도 맛이 좋아! 천년만년 살 것도 아닌데 맛있는 거 먹어야지!”

“당신은 마시면 안 돼요! 여기 헛개나무 우린물이나 드셔요!”

“아니! 손님이 혼자 믹스커피를 마시게 하면 예의가 아니지!”

그게 뭔 예의까지 따지실 문제인가?

“으이그! 한 잔만 해요! 당신 간 이식 해드리고 몸에 기운이 없어서 걱정 되서 그러지!”

“간 이식이요?”

“어? 아. 간 이식하느라 간 조금 뗐어.

담담하게 웃으시며 말씀하시는 아저씨는 기분이 좋아 보이셨다.

“으이그. 간을 절반 넘게 잘라서 드렸는데, 무슨 조금이야?”

무슨 사연인지는 모르겠지만, 간 이식이면 가족 중에 누가 많이 아프셨나보다.

“사실은 우리 엄마가 간경화로 쓰려졌었는데, 이식 말고는 답이 없다고 하더라고. 처음에는 내가 검사를 받았는데 지방간 수치가 너무 높아서 안 된다는 거야. 그때 우리 아저씨가 자신이 기증하겠다고 검사를 받았는데, 우리 아저씨도 지방간 수치가 높아서 안됐지.”

“그때는 나도 몸무게가 100kg이 넘었었어. 우리 와이프도 푸짐했었고. 지금 몸의 두 배였어. 하하하”

“으이그! 두 배까지는 아니었어요! 아무튼 그때부터 우리 둘이 운동을 시작해서 간 수치가 더 빨리 좋아지는 사람이 이식해주기로 약속 했어. 그런데 이 사람이 갑자기 회사를 그만두더니 운동만 하는 거야. 그렇게 25kg이나 뺄 줄은 상상도 못했지.”

“내가 한다면 하는 사람이라고 당신한테 몇 번을 말했어? 꼭 이렇게 보여줘야 믿는다니까?”

아저씨는 쑥쓰러우셨는지 괜히 큰 소리를 한 번 내셨다.

“그래서 우리 아저씨가 우리 엄마한테 간 떼 줘서 살았지. 나도 조금만 더 뺐으면 가능했을 텐데, 괜히 저이가 먼저 빼버려서 후회돼. 그랬으면 저 사람 조수 노릇도 안하고 살 텐데..”

“뭔 소리야? 무슨 조수가 믹스 커피도 하나 못 먹게 하나?”

오고 가는 말들은 거치셨지만, 그 마음들만은 따뜻했다.

아저씨는 담담하게 이야기를 해주셨다.

“그러고 나서는 집도 팔아버리고 시골로 이사했어. 그동안에 집값이 꽤 올라서 은퇴해도 되겠더라고. 조그마한 상가건물 하나랑 조그마한 집을 사고, 남은 돈으로 이 캠핑카를 샀지. 내가 직장 생활 한다고 우리 와이프 고생 많이 시켜서 이제부터는 같이 놀러 다니면서 살려고.”

“말만 저러지. 본인이 놀러 다니고 싶어서 산거 아니에요?”

“들켰나?”

두 분의 모습을 보니 가슴이 따뜻해져왔다.

부부 생활이 오래되면 가장 친한 친구 사이가 된다고 하던데, 지금 모습이 딱 그러셨다.

처음 사회생활을 하면서 학창시절 친구들과 연락이 끊어지게 되고, 타지 생활을 하면서 고향 친구들과도 연락이 끊어지게 된다.

회사 생활을 계속하다보면 회사 동기와 선후배가 친구가 되고, 이직을 하면 연락이 끊어진다.

그러다 직급이 차오르면 회사에서도 친구 같은 존재들은 없어지고, 남는 건 가족밖에 없게 된다.

가족 중에서도 자식들은 커 갈수록 독립을 하고 싶어 하고, 자연스럽게 각자의 인생을 살아가게 된다.

그럼 남는 것은 남편과 아내뿐.

부부라도 같은 취미를 가지고, 같은 음식 취향을 가지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상대방의 취미를 알고, 무슨 음식을 좋아하는지는 누구보다도 가장 잘 안다.

와이프가 좋아하는 닭똥집을 사들고, 와이프가 좋아하는 드라마를 같이 보며, 맥주 한잔을 하다보면 세상에서 제일 친한 친구가 와이프가 되어 버린다.

인생의 동반자이며 서로를 가장 사랑해주는 사람들.

그분들이 지금 내 눈앞에 있었다.

“이거 앞뒤를 잘 모르겠어요! 도와주세요! 으헉!”

티셔츠를 뒤집어 입은 듯한 민이가 걸어 나오다가 발에 묻어있는 물기 때문에 미끄러져, 공중으로 떴다가 쿵 소리를 내며 넘어졌다.

“어이고. 이를 어째. 괜찮아요. 아가씨?”

[한 달 운을 한 방에 땡겨 쓰지!]의 부작용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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