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0화 (130/170)

산불(1)

“이제부터 버스 운행은 자율주행에게 맡깁니다! 그럼 여러분은 무엇을 해야 하겠슴까? 조교님?”

조민이가 빨간 모자를 쓰고 옆에 서있는 중년의 남성을 바라보며 말을 하자, 그 중년의 남성이 움찔하며 대답을 하였다.

“그.. 뭐냐.. 할머니들 짐도 들어드리고.. 음.. 아! 임산부들도 부축해드리면 될까요?”

자신 없어 하는 말투와 옆에 서있는 민이 눈치를 보는 모습이 조금은 안타까워보였다.

“임산부가 아님다! 임신부! 임산부는 인부와 산부 즉! 임신부와 아기를 갓 낳은 여자까지 포함된 개념입니다! 간난 아기를 안고 있는 여성에게는 다가가지 않습니다! 세균이 옮겨갈 수 있슴다!”

“아.. 네.. 제가 잘 몰라서..”

“모르기 때문에 배워야 함다! 이 자리는 잘 아는 사람들이 모인 자리가 아님다! 지금까지 여러분은 버스 경로를 외우고! 버스를 제시간에 운행하는 게 일이었지만! 이제는 아님다! 여러분의 할 일은 바로 서비스! 버스를 이용하는 고객님들의 편안함과 행복! 이게 할 일임다! 알겠슴까!”

“네!! 알겠습니다!”

강당에 모인 버스 운전기사 복장을 한 인원들이 한 목소리로 대답을 하였다.

옆에 서 있는 중년 남성과 달리, 강당에 모인 기사님들은 사기가 하늘을 찌를 듯 높았다.

박봉에 고된 운전이라는 직업을 택한 스스로를 항상 원망했었다.

친구들과의 술자리도 음주운전을 피하기 위해서는 포기한지 오래다.

커가는 자식들을 위해 힘들지만, 할 수 있는 게 이 일밖에 없어서 계속하고 있었다.

자신들이 시민들의 안전과 편의를 위해 일한다는 개념도 별로 없었다.

온갖 진상 손님들을 만나다보면 그렇게 되어버린다.

그런데 갑작스러운 회사의 합병 소식.

어딘가와 협상을 하고 있다는 소식이 기사들 사이에 소문이 나버렸고, 불안한 마음에 파업까지 고려하며 닥쳐올 구조조정이라는 칼날을 대비하고 있었다.

원래 회사의 합병은 구조조정이라는 해일을 동반한 천재지변이기 때문이다.

[힐링 운수 출범. 고양시, 파주시를 시작으로 수도권 전역을 대상으로 하는 운수회사가 목표.]

[본격적인 자율주행 시동. 이미 검증된 시스템이지만, 시민의 안전을 위해 안전 시스템을 점검 중이라는 힐링 운수]

[자율주행 때문에 일자리를 잃을까 고민하던 기사들. 그러나 알고 보니 신규 일자리가 기존의 두 배!]

그러나 기사님들의 걱정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바로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선망하는 그 회사의 정직원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힐링 운수의 출범 소식을 라디오로 들은 기사님이 너무나 기뻐 운전 중에 버스정류장에 잠시 차를 세우고 춤을 추셨고, 승객들은 한 분도 화를 내지 않고 박수로 환호를 해주신 영상이 SNS의 핫한 영상으로 올라왔다.

[운전기사는 이제 안녕! 이제는 버스 도우미로 불러주세요!]

[한 버스에 남성과 여성, 두 명의 버스 도우미 배치]

[힐링 운수 신임 CEO. 아나바다 CEO인 조민 대표 취임]

[미래 그룹의 후계자 조민. 본격적인 후계자 싸움 임박? 천운 부회장과 조민 대표의 힘겨루기 시작.]

마지막 기사는 이제는 중소 언론사가 되어버린, 기존의 대한민국 최고의 언론사의 눈물겨운 노력으로 써 낸 소설이다.

어떡해서든지 분란을 일으켜보고 싶어 그들의 소망을 신문이라는 매체를 통해 써보았지만, 미래 그룹 큰 회장님이 ‘절대 그럴 일 없다’는 말씀과 조민이의 공식 기자회견장에서의 ‘사부님의 그림자도 밟지 않도록 노력중이다.’라는 발표에 바로 수그러졌다.

그런데 저 말이 농담이나 비유가 아니라, 정말로 내 그림자를 밟지 않으려고 노력하다가 연구소 부품상자를 쓰러트려버려서 하루 종일 정리만 하고 있었다.

‘적당히’가 없는 아이다.

아무튼 힐링 운수는 출범을 하였고, 가장 처음 인수 합병된 업체는 그 7728 버스의 기사님이 있던 고양운수였다.

특별히 회사를 인수하고 나서 그 7728 기사님을 모셔다 [버스 도우미 조교]라는 직책을 맡기고, 버스 도우미님들의 교육을 책임지는 자리에 앉혔다.

동료 기사님들과 근무 평점들을 확인해보니 원래는 괜찮은 분이셨다.

동료 기사님들이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먼저 나서서 발 벗고 도와주시는 심성과 20년이 넘는 세월동안 범칙금 하나 없는 안전운행의 대가셨다.

그런데 근무 노선이 세달 전에 7728번 노선으로 바뀌게 되었고, 그날부터 계속해서 배차시간을 놓쳐 벌금을 물게 되셨다고 한다.

다른 기사님들은 신호위반도 적당히 하시면서 시간을 맞추었는데, 모든 교통 질서들을 다 지키시다보니 그게 어려우셨나보다.

사장실에서 만난 그 기사님은 화들짝 놀라서 진짜 무릎을 꿇으려고 했고, 나와 민이는 황급히 말리고 괜찮다고 말을 해드렸지만, 아직까지도 우리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기존의 기사님들과 신규 채용한 직원들의 교육을 책임져야 하는 중책인데, 차라리 혼자 시작을 했다면 시행착오를 겪으시더라도 알아서 잘 해나가셨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의욕이 넘치는 조민이가 가장 중요한 교육은 자신이 먼저 해야 한다고 솔선수범을 자청해서 애꿎은 [도우미 조교]님만 곤욕을 치르고 계셨다.

“자! 이번에는 제가 할머니 역할을 해보겠슴다! 조교님이 도우미 역할을 해주십쑈!”

“네. 알겠습니다.”

급기야 상황극까지 벌어지기 시작하였다.

“기사양반. 이 버스 어디까지 가나?”

“아. 이 버스는.. 어? 이거 노선이 뭐죠?”

“잘 보셨슴까? 이렇게 하면 안 됨다!”

“아니! 버스 노선도 안 정하시고 그냥 하시면은...”

나는 거기까지만 보고 고개를 저으며 강당 밖으로 나왔다.

회사 CEO의 체면이 있으니 직원들 앞에서 뭐라고 하기는 그렇고, 나중에 적당히 하라고 해야겠다.

“아니! 거기서 연기를 그렇게 하면 안 되지. 딱! 할머니 목소리를 내면서! 기사님... 이거 탄현역.. 가우? 이렇게 딱! 해야 하는데! 캬아! 내가 봐도 잘하네!”

[짝짝짝짝!]

나도 모르게 몰입해서 연기를 하고 있었는데, 강당 문 앞에 앉아있던 안내 직원 두 분이 일어서서 박수를 쳐주고 있었다.

“와. 연기가. 정말. 대단하십니다. 부. 회장님.”

“그러니. 까요. 저는. 진짜. 할머니인줄.”

부회장이어서 좋다.

뭘 해도 칭찬을 받으니.

“감사합니다. 두 분 어디 가서 말하면 안 됩니다.”

두 분에게 막대사탕 하나씩을 쥐어주며 황급히 자리를 벗어났다.

[강원도 울진에 산불이 발생하였습니다. 비록 큰 불은 아니지만, 인근 주민들은 불안한 마음으로 추이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소방당국은...]

매년 일어나는 산불이 또 다시 발생하였다.

“사부님. 산불 괜찮을까요?”

“음.. 소방 헬기도 있고, 소방관님들도 경험들이 있으니 금방 잡히겠지. 우리는 혹시나 이재민들 발생하면 지원해줄 대비나 하자.”

“넵!”

항상 일어나는 산불이다 보니 대처가 되어 있을 것이다.

아마 길어야 오늘 아니면 내일이면 잡힐 것이다.

[산불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번져가고 있습니다. 그제 새벽. 어느 정도 잡혀가던 산불이 갑작스럽게 불어온 강풍의 영향으로 동해안 일대의 산들로 급속히 번져갔고, 현재는 다시 엄청난 기세로 타오르고 있습니다. 전국에서 5천여 명의 인력과 370여대의 소방차, 진화헬기를 투입하였지만, 너무나 강한 산불의 기세로 인하여 인가로 내려오는 불길만 겨우 막아서고 있는 상황입니다.]

아무래도 이번에는 심각한 것 같았다.

“소방장님! 이제 가셔야 합니다!”

“먼저들 준비해! 나는 몇 집만 더 돌아보고 갈게!”

“안됩니다! 지금 바로 앞까지 왔다고요! 이제 아무도 없을 거예요! 빨리 오세요!”

강환인 소방장.

올해로 16년차인 강환인 소방장은 내년이면 소방위 진급을 앞두고 있었다.

위험한 현장직을 벗어나 간부가 되기 일보직전인 상황에서 발행한 대형 산불.

전국에서 출동이 가능한 모든 소방관들이 이곳으로 모여들었고, 강환인 소방장도 파견을 나오게 되었다.

어린 시절 자신을 키워주신 할머니를 자신의 실수로 일어난 화마에 보내드리고 난 이후부터, 자신의 인생 목표는 소방관으로 정해졌다.

할머니에 대한 최책감으로 시작된 일이지만, 이제는 이 일에 대한 엄청난 자부심과 자신이 구해낸 사람들의 감사 인사 덕분에 계속해내고 있었다.

20대 중반부터 시작된 이 일은 어느새 40대 중반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이제는 현장에서 움직이는 게 슬슬 힘에 겨워가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아직은 눈앞에 불길이 있고, 구해야 할 사람들이 있기에 최선을 다할 뿐이다.

“하아.. 하아.. 이 집이 마지막인가? 빨리 확인하고 가야겠구나.”

이미 마을을 덮친 화마에 마을의 반 정도가 불에 타오르고 있었다.

계속해서 불어오는 바람에 실려 날아오는 불꽃들은 마을 곳곳에 사뿐히 내려앉아 다시 새 생명을 얻어 타올랐다.

노인 분들이 많은 시골 마을의 특성 상 뉴스나 재난 방송을 안 보시고 집에만 계시는 분들도 많았다.

믿을 수 없겠지만, 집을 버리고 가느니 그냥 집과 같이 타 죽겠다는 분들도 계신다.

진심으로 그러신다기 보다는 설마 내 집이 그러겠냐는 심리가 더 강하시다.

지금껏 그렇게 살아왔는데, 죽지 않고 살아있지 않냐는 것이다.

할머니를 자신의 실수로 잃고 난 이후부터 화재 현장에서 만나는 모든 할머니들이 자신의 할머니 같았다.

없는 살림에도 어떻게든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해주시기 위해서 노력하신 할머니.

그때는 그걸 잘 몰랐다.

그저 말귀를 못 알아듣는 할머니가 답답하기만 했었다.

철없던 내가, 친구가 먹었다고 자랑하던 치킨이 먹고 싶다고 땡깡을 피우니, 알겠다고 하시며 만들어주신 치킨 같지 않은 닭요리.

반죽도 없이 그냥 생닭을 잘라, 기름이 아까워 후라이팬에 조금만 두르고 튀기다보니 조금 타고, 모양도 이상했다.

내가 원하던 치킨은 이게 아니라고 소리를 지르고 방으로 들어가 한참을 화를 내며 울었다.

왜 부모님은 맞벌이를 해서 나를 혼자 두는지 화가 났고, 말이 안 통하는 할머니가 답답했다.

그렇게 한참을 화를 내다 잠깐 잠이 들었고,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저녁나절이었다.

밥을 안 먹고 자서인지 너무나 배가 고팠다.

밖을 나와 보니 할머니는 잠시 어디 가셨나보다.

아직 엄마가 자신을 데리러 올 시간은 안 된 것 같았다.

부엌에는 할머니가 차려놓은 밥과 반찬이 식어가고 있었지만, 나는 이런 것 보다는 치킨이 먹고 싶었다.

‘기름을 많이 두르고 튀겼어야지!’

할머니가 실수한 것은 기름을 조금만 넣어서일 것이다.

TV광고에서도, 가득한 기름에 닭고기가 잠기도록 빠트리는 장면이 나왔었다.

기름을 가득 넣으면 분명 맛있는 치킨이 될 것이다.

부엌을 뒤져 찾아낸 콩기름을 전부 후라이팬에 가득 넣었다.

거의 후라이팬의 끝까지 올라온 기름을 보고 만족을 하였다.

이정도면 충분히 닭고기들이 기름에 퐁당 빠져서 잘 튀겨질 것이다.

그런 다음에 가스렌지의 불을 켜고, 닭을 찾기 시작하였다.

냉장고 문을 열고 한참을 찾고 있는데,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

‘할머니는 도대체 어디다 둔거야!’

또다시 화가 나기 시작하였다.

모든 것이 닭고기를 눈에 띄지 않게 놔둔 할머니 때문인 것 같았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펑!!]

가스렌지에서 엄청난 불길이 솟아올랐다.

“뭐야! 어.. 물!! 물을 부어야 돼!!”

본능적으로 물을 찾았다.

싱크대의 수도를 켜고 그릇에 물을 가득 담아, 치솟은 불길을 향해 황급히 쏟아 부었다.

[콰앙!!!]

눈앞에서 엄청난 폭발이 일어났다.

살면서 이렇게 놀란 적은 처음이었다.

너무나 놀라 자신의 방으로 뛰어가 문을 닫고 이불을 뒤집어썼다.

“할머니!! 할머니!!!”

한참을 본능적으로 할머니만 목이 터져라 외치고 있었다.

그런데 점점 뜨거워져 오고 있었다.

처음에는 이불을 덮고 있으니 당연히 더운 줄 알았지만, 그게 아니었다.

불이 온 집안에 번지고 있었던 것이다.

어린 생각에도 이대로 있다가는 죽을 것 같아 밖으로 빠져나오기 위해 문을 연 순간, 엄청난 폭발과 함께 뒤로 날아가 기절해 버렸다.

그리고 정신을 차렸을 때는 병원이었다.

아빠는 내 손을 잡고 걱정스럽게 보고 있으셨고, 엄마는 보이지 않았다.

“아빠..”

“어? 어! 정신이 들어? 어디 아픈 곳 없어?”

“어.. 그런데 엄마는?”

아빠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지셨다.

“응.. 잠깐 외할머니 보러 갔어..”

“할머니랑?”

그 말에 아빠는 더 이상 참지 못하시고 눈물을 보이셨다.

처음으로 보게 된 아빠의 눈물은 너무나 낯설고 두려웠다.

“지금은.. 크흠.. 조금 더 쉬어.. 연기를 너무 마시고, 화상을 조금 입어서 쉬어야 한데..”

그리고 며칠 동안 엄마를 보지 못하였다.

아빠도 잠깐씩 어디를 다녀오시는지 자리를 비우셨고, 다녀오실 때 마다 검정색 양복을 입고 눈이 빨개져서 돌아오셨다.

집으로 돌아올 때에서야 엄마를 보게 되었고, 그 날부터 엄마는 일을 그만두고 집에서 나와 같이 있었다.

“근데 할머니 집은 안가? 정리 다 한거 아니야?”

엄마는 할머니 집을 이야기 할 때마다 불 난거 정리해야 해서 힘들다고만 말씀하셨다.

그렇게 매일 가던 할머니집을 못 가게 되었지만, 엄마와 같이 있을 수 있어서 정말 행복했다.

엄마는 할머니와 달리 내 말을 잘 알아 들으셨다.

그게 모두 할머니의 희생으로 이루어진 행복인지는 꿈에도 몰랐다.

나중에야 알게 된 할머니의 죽음은 자신의 인생을 모조리 바꾸어 버렸다.

엄청난 불길을 맨몸으로 뚫고 들어와 나를 안고 나가시다 큰 화상을 입으신 할머니는 끝내 회복이 되지 않으시고 돌아가셨다고 했다.

입고 있는 옷이 불에 타 피부에 엉겨 붙고, 뽀글거리던 파마머리는 모조리 불에 타 사라져 버리신 상황에서도, 물에 젖은 이불에 나를 감싸 안고 그 엄청난 불길을 뚫고 구해오셨다고 했다.

의사선생님조차도 이런 몸 상태로 움직였다는 게 기적이라고 하셨다고 한다.

중환자실에 하루 동안 입원하셨다가 잠깐 정신이 들었을 때, 나오지도 않던 목소리로 연신 ‘환인이’만 입술을 달싹이시며 말을 하셨고, 겨우 알아들으신 간호사님이 ‘손자는 괜찮다’는 말을 하시자, 가뿐 숨을 몰아쉬시다 운명하셨다고 한다.

엄마는 계속해서 내 잘못이 아니라고 하였지만, 그때부터 나는 할머니를 잡아먹고 살아난 괴물이 되어버렸다.

내 스스로가 그 생각에 밤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아무것도 먹을 수 없었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내가 그렇게 할머니를 사랑하고 있었는지, 나 조차도 알 수가 없었다.

그렇게 말라죽어가던 어느 날 밤.

할머니는 꿈에 나타나 웃으시며, 내 손을 잡아주셨다.

‘우리 환인이 이름이 왜 환인인지 아니? 단군할아버지의 할아버지 이름이 환인이란다. 그분처럼 꼭 다른 사람들 도와주는 사람이 되렴. 할머니는 괜찮아. 항상 지켜보고 있을게.’

너무나 생생하게 느껴지던 그 손의 감촉과 목소리는 절대 꿈이 아니었다.

그날부터 내 꿈은 소방관이 되어 사람들을 도와주는 것이 되었다.

“할머니! 정신 차리세요!!”

마지막 집에서 드디어 사람을 찾게 되었다.

아무도 없었으면 했지만, 만에 하나의 가능성이라도 남겨두고 싶지 않아 모든 집을 뒤져보았다.

연기에 질식해 쓰러져계신 할머니가 자신을 대신해 돌아가신 외할머니 같았다.

황급히 자신의 산소마스크를 씌워드리고 끌어안아 밖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다행히 연기만 자욱했지 불길은 그리 심하지 않았다.

그렇게 방문을 나와 부엌 쪽을 지나쳐 밖으로 나가려는 순간이었다.

[콰앙!!!]

어린 시절 보았던 그 폭발음이 생각나는 폭발이었다.

아니 그보다 몇 십 배는 큰 폭발이었다.

LPG 가스통의 폭발인 것 같았다.

아무래도 불에 가스관이 타버리며 가스가 누수 된 게 원인인 것 같았다.

몸이 날아가는 상황에서도 원인을 분석하는 직업병이라니 너무나 우스웠다.

날아가는 내 몸과 안고 있던 할머니가 천천히 날아가는 게 보였다.

등 뒤에서 폭발한 폭발에 앞으로 날아가는 데, 이대로라면 할머니가 크게 다치실 것 같았다.

시간이 왜 이렇게 느리게 흘러가는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다행이었다.

할머니의 손을 잡고, 다시 내 몸 쪽으로 끌어안았다.

그리고 몸을 돌려 내 등부터 바닥에 떨어지도록 만들었고, 등에 메고 있던 산소통 때문에 등에서 엄청난 충격이 느껴질 때, 다시 시간이 빠르게 흘러가기 시작하였다.

“크엌...”

잠깐 정신을 잃었던 것 같았다.

엄청난 연기에 주변의 시야가 하나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끄응..”

자신의 몸 위에 쓰러져 계신 할머니를 다시 끌어안고 일어서려던 순간.

등에 엄청난 통증이 느껴졌다.

“하아.. 하아..”

빨리 빠져 나가지 않으면 유독가스에 중독돼 사망에 이를 것 같았다.

벌써부터 목이 아파오고 숨이 가빠온 걸 보면 그 시간이 그리 길지 않은 것 같다.

다행히 할머니는 씌워드린 산소 마스크 덕에 최악의 상황까지는 가지 않으실 것 같았다.

산소의 양도 넉넉하니 빨리 구조만 이루어진다면 가능성이 있었다.

그런데 발가락을 움직여보려고 하였지만, 허리 아래의 감각이 없다.

‘하아.. 어쩔 수 없네..’

그대로 바닥에 누워 방화복 상의를 벗기 시작하였다.

엄청난 통증이 느껴지는 등 때문에, 겨우 겨우 상의를 벗을 수 있었다.

그리고 할머니의 몸 위에 씌워드리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

자신이 나타나지 않으면 후배놈이 분명히 구조하러 올 것이다.

‘저 이제 할머니 만나러 가요. 오래 기다리셨죠? 할머니 말씀대로 다른 사람들 많이 도와 드렸어요. 이 정도면 되죠? 저 이제 너무 힘들어서 은퇴해야겠네요. 하하하....’

할머니가 저승사자와 함께 마중 나오셨나보다.

그 따뜻했던 할머니의 손을 맞잡고 먼 길을 떠나기 시작하였다.

[산불 화재 현장에서 구조 작업을 펼치던 소방관 순직. 할머니는 기적적으로 아무 이상 없이 구조완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