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1화 (131/170)

산불(2)

“아무래도 안 되겠다.”

나는 헬기를 이용해 산불이 발생한 현장 근처로 급히 날아갔다.

이제는 산불이 걷잡을 수 없이 커져버려서 이대로 놔둔다면 언제 불길이 잡힐지 기약이 없었다.

이미 너무도 많은 임야들이 불에 타 잿더미가 되어 버렸고, 이재민들도 엄청난 숫자들이 발생하여 이제는 모여 있을 곳도 부족하기 시작하였다.

직접 상황을 보고 대처를 해야 할 것 같았다.

헬기에서 바라본 산불의 현장은 지옥이었다.

지옥 중에 대초열지옥이 있다.

살생, 도둑질, 음행, 거짓말, 음주, 사기죄를 범한 이들이 떨어지는 지옥이다.

그곳에는 뜨거운 용암이 흐르는 커다란 화산이 있다고 한다.

저기가 바로 거기가 분명하다.

뉴스 화면과 텍스트로만 보던 것과 달리, 실제 눈으로 본 산불의 현장은 말이 나오지 않을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인간이 무슨 수를 쓰더라도 도저히 어찌 해볼 수 없는 자연재해였다.

계속해서 소방 헬기들이 물을 쏟아 붓고 있었지만, 역부족이었다.

그저 인가가 있는 곳으로 옮겨가지 않도록 노력하는 게 지금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너무나 많은 이재민이 발생하였고, 심지어는 소방관님 한 분까지 희생되었다.

이제는 더 이상 인간이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상황을 벗어났다.

‘여의주 발동’

동해 용왕님의 장자인 비희님에게 받은 기상변환 장치.

비록 호우에 대한 조절만 가능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그 기능이 너무나 절실했다.

[여의주 발동합니다. 500km2에 호우를 불러옵니다.]

생각보다 넓은 지역이지만, 너무나 부족하다.

서울의 면적이 605.2km2이니 넓다면 넓은 면적이었다.

하지만 산불은 길고 넓게 퍼져 있어서 불길이 번지고 있는 곳의 절반도 안 된다.

아무래도 최대한 빨리 충전이 되기를 기다려서 다시 한 번 발동을 시켜야 할 것 같았다.

[쏴아아아아!!]

기적과 같이 내리는 비에 소방관님들이 환호하기 시작하였다.

일기예보에는 전혀 예측되지 않았던 비였기 때문에 더욱 의외였고, 더욱 기뻤다.

전문가들은 큰 불 때문에 수증기가 증발하며 화재적운이 발생하였고, 보통은 비가 내리지 않지만 대기가 불안정할 경우에는 적란운으로 발달하여 소나기가 올 수 있다며, 비가 오는 이유에 대해서 열심히 설명을 하고 있었다.

심지어는 제갈량과 사마의의 전투에서 제갈량이 호로곡에서 사마의를 상대로 화공을 펼쳐 궁지로 몰았으나 비가 내려 화공이 실패한 모사재인(謀事在人) 성사재천(成事在天) 불가강야(不可强也)의 고사까지 꺼내들며, 그 화공이 실패한 원인인 비가 이 경우일 것이라고 주장하기까지 하였다.

지식인이 방송에 맛을 들이면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서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상황이다.

반나절동안 계속해서 내리는 비에 끝없이 타오를 것 같았던 산불이 겨우 진화가 되었다.

하지만 그건 비가 내리는 곳일 뿐이었고, 비가 내리지 않는 곳에서는 여전히 산불이 그 세력을 더욱 크게 일으키고 있었다.

나는 부지런히 움직여 그 산불 근처의 냇가에 내 [라이트닝]을 이동시켜놓은 곳을 향해 뛰어갔다.

그리고 도착하자마자 냇가에서 물을 떠 세차를 시작하였다.

그러자 하늘이 점점 어두워지더니 비가 한 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하였다.

급히 실내로 들어가 먼지들을 걸레로 닦아내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더욱 굵어지는 빗방울에 안도의 한 숨을 쉬었다.

[손 세차했죠? 비가 오죠!]

왜 상급의 재능인지 몰랐지만, 여의주에 비견되는 능력이다 보니 상급이 맞나보다.

다만 최상급은 아니다보니 범위가 여의주에 비해서는 현저히 좁았다.

‘내가 할 만큼은 다 했는데.. 아직도 많이 부족하네.’

여의주는 아직도 충전 중이었다.

처음에는 관심이 없어서 몰랐는데, 지금은 너무나 절실하여 계속 그 기운을 느껴보니, 이대로라면 한 달은 있어야 가득 찰 것 같았다.

[손 세차했죠? 비가 오죠!] 재능도 손 세차만 하면 비가 와서 거의 두 세 달에 한 번씩만 손세차를 해서 몰랐는데, 자리를 옮겨 손 세차를 했는데도 비가 오지 않았다.

내가 모르는 무슨 쿨타임 같은 게 있나보다.

기적과도 같은 빗줄기에 산불의 삼분의 2는 잡혔지만, 나머지가 문제였다.

불길이 향하는 방향에 강릉 시내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계속해서 산불의 추이를 지켜보았는데, 아무래도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었다.

강릉 시내 방향으로 번지지 못하게 총력을 다하는 것으로 소방 당국이 전략을 수정하자, 불길은 반대방향으로 엄청나게 번져가기 시작하였다.

물론 강릉 시내 방향으로 향하는 불길도 약해진 건 아니었고, 계속해서 가까워져 갔다.

강릉 시내까지 불타오른다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피해가 예상되었다.

소방 당국은 인명 피해보다는 재산피해를 선택하였지만, 이 상태라면 모든 것을 전부 잃을 것 같았다.

‘하아.. 안되겠다.’

어쩔 수 없이 결단이 필요했다.

“아담아. 프로젝트 가동시켜라.”

- 라져! 해태 부대 출동합니다.

이제는 더 이상 감출 수가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해태 프로젝트 중, 국가 재난 상황에 대비한 프로토콜이 실행되었다.

곧바로 국방부 쪽에 해태의 제원과 관련된 정보가 전달되었고, 관련 기관에 비행 허가를 요청하였다.

그리고 소방방재청에 프로젝트에 관련된 정보를 전달하였다.

비행 허가를 요청하였지만, 허가를 기다리는 건 시간낭비이다.

뭘 알아야 비행 허가도 나오는 것이지, 본인들이 이해하기도 힘든 사건이기 때문에 판단도 힘들 것이다.

그러므로 비행 허가는 나오지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

무의미하게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는 우선 법을 위반하고, 처벌을 받으면 된다.

미리 관련 법령을 검토한 결과, 과태료만 내면 될 것 같았다.

잠시 뒤, 하늘을 가르며 엄청난 속도로 날아오는 로봇 10대가 보였다.

- 해태부대 도착하였습니다. 주변 수원 확인 중입니다. 경포 호수 확인 완료. 해태 변환합니다.

이미 경포호수에서 대기하고 있던 내 머리 위에서 해태들이 변환을 시작하였다.

커다란 몸체들이 전부 해체되고 합체하였다.

곧이어 넓게 펼쳐지더니 하나의 거대한 우주전함 같은 모습으로 변환되었다.

- 해태 수송함으로 변환 완료. 화제 진압합니다.

추진기 10대가 힘차게 작동을 시작하였고, 수송함의 하단이 열리며 텅 빈 안쪽이 보였다.

서서히 호수의 수면을 향해 내려앉고, 몸체를 호수에 완전히 빠트린 전함이 순식간에 날아올라 화제 현장으로 날아가 버렸다.

재난 방송을 하던 방송국 카메라에 하늘을 날아 물을 쏟아내는 그 전함이 똑똑히 잡혔다.

[산불 현장-LIVE]

“여러분. 제가 보고 있는 게 진실인지 모르겠습니다! 현재 답이 보이지 않던 그 재앙과도 같던 산불이 급속도로 잡혀가고 있습니다. 보이십니까? 비행선? 비행기? 전함? 아무튼 저 거대한 구조물이 공중에서 엄청난 물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TV에서는 비현실적인 장면이 보이고 있었다.

[힐링]이라고 적혀있는 우리 그룹의 로고가 선명하게 그려져 있는 거대한 그 구조물의 아래 부분 일부분이 열리며, 엄청난 규모의 물이 뿌려지고 있었다.

인간이 만들어낸 인공 비가 끔찍했던 자연재해 위에 뿌려지고 있었다.

엄청난 기세로 타오르던 불길은 얌전한 아이처럼 숨을 죽였다.

한 번씩 뿌려댈 때마다 산 하나가 완전히 물에 젖어 불씨라고는 눈을 씻고 봐도 하나도 찾을 수가 없었다.

모든 방송국 헬기들이 [해태 수송함]을 찍기 위해 접근하기 시작하였고, 물을 담아가는 경포 호수에는 엄청난 사람들이 모여들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저거! 밑에 로고가 힐링 그룹 아냐?”

“진짜다! 힐링이 만든건가 보다!”

“에이.. 뭐야. 힐링이 만든 거네. 우주인이 나타난 줄 알았더니. 별거 아니었네.”

“그러게. 나는 우리나라 국방부에서 비밀 무기로 만든 건 줄 알았네. 별거 아니네.”

사람들은 [해태 수송함]에 그려진 힐링 그룹의 로고를 보고는 이상하게 실망을 하기 시작하였다.

내가 우려한 것과 다르게 사람들은 내가 만들었다고 하니, 그러려니 했다.

“그래도 변신 합체라니! 힐링이 개그는 몰라도 로망은 아네!”

“그러니까! 그때 스포츠카에서 부스터 나오던 거 봤냐? 나는 컴터 배경화면을 그 사진으로 해놨잖아! 캬! 역시 힐링이 멋을 안다니까!”

“뭐. 힐링이면 우주선도 아마 만들어 놨을거야. 힐링 타운이 화성으로 이주할 우주선이라는 소문도 있던데?”

“그래? 뭐야. 아직도 화성 테라포밍 시작 안 한 거야? 힐링이 뭐 그래? 일해라 힐링!”

옆에 서있는 나한테 다 들리게 말을 하는 교복을 입은 학생들을 보며, 우리나라의 미래가 아주 밝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 너희들 정보는 기록해 뒀다. 나중에 우리 회사 입사하면 빡세게 일 시켜주마. 그런데 우주선 프로젝트는 아직 시작도 안했는데 어디서 정보가 샌 거야?’

의외로 잘 들어맞는 음모론이었다.

불길은 서서히 잡혀가고 있는데, 다른 곳에서는 엄청난 불길이 커져가고 있었다.

“야! 항공법이 뭐? 저게 드론이라고? 그게 할 말이냐!”

“아.. 이게 조금 애매합니다. 저런 걸 예상하고 만든 법이 아니라서요. 그냥 최대 200만원의 과태료 처분 대상입니다.”

“허.. 그게 말이 돼?”

법을 집행해야 하는 기관에서는 관련법의 미비 때문에 골머리를 싸매고 있었다.

“저런 게 만들어지는 동안 너희들이 한 게 뭐야! 나라 안보에 구멍이 뚫렸는데! 밥이 목구멍에 쳐 들어가냐! 당장 가서 정보 알아와!!”

정보를 담당하는 기관에서는 밥도 못 먹게 쪼이는 상사 때문에 전 직원이 굶으며 비상근무를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미스터 천이 저걸 우리 영토 상공에 보내면 요격이 가능한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저렇게 10대가 변신 합체하는 것은 이번에 알게 되었지만, 인공위성 사진에 한 번 잡힌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레이더에는 아무것도 잡힌 게 없었던 것을 보면, 스텔스 기능이 우리의 기술력보다 훨씬 우위에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속도도 최소 마하 10 이상입니다. 현재 기술로는 탐지도 힘들고, 요격도 불가능합니다.”

“음.. 심각하군. 우방국의 인물이고 성향 상 문제될 건 없지만, 저 기술력은 우리나라의 안보에 심각한 위협이 되는데... 어찌해야겠나?”

“암살 또는 무조건적인 회유가 답인 것 같습니다.”

“암살은 힘들어. 동맹국의 유력한 인물을 암살했다가는 큰일이 발생할거야. 그리고 자신의 유고시에도 대비가 되어 있을 것 같은데?”

“네. 저희 분석 결과로는 AI들을 이용한 사이버 공격을 예상했는데, 저런 기술력을 보아서는 실제 공격도 가능할 것 같습니다. 저 전함에 폭탄만 싣고 와서 터트려도 속수무책으로 당해야 합니다.”

“그럼 회유를 기본으로 전략을 세워봐. 할 수 있으면 우리나라 국민으로 만들어 볼 수 있게 최선을 다하게.”

가장 강력한 군사력을 지닌 국가의 최고 수뇌부의 회유 전략이 수립되었다.

“저 인간이 나를 잡기 위해서 저런 무기까지 만든 것이냐! 내 이대로는 억울해서 죽을 수 없다!”

“관백님. 진정하시지요. 아직까지 관백님을 노리는 공격들은 없었습니다. 아무래도 그 인간이 거짓말을 한 것 같습니다.”

“뭐? 그럼! 저번에 도쿄에서 발견된 안드로이드는 뭔데! 말을 해봐!”

“그건.. 죄송합니다.”

“보안을 더 강화하고 24시간 경계해! 내가 잠을 잘 수 있게 만들란 말이야!”

“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내가 이대로 말라 죽을 줄 아느냐! 가만 두지 않겠다!”

바다건너 여우 한 마리의 분노를 자극하기도 하였다.

“오빠. 도대체 뭘 만들고 다니는 거야? 그리고 제대로 안 알려주니까 우리 회사 홍보실에게까지 문의 전화 오잖아. 우리가 엄연히 다른 회사인데 이렇게 피해를 주는 건 아니지! 피해 보상 청구할거야!”

우리 그룹과 미래 그룹의 모든 업무는 마비가 되고 있었다. 너무나 많은 문의 전화에 아무런 일도 못하고 있었다.

심지어는 조직도에 공개되어있는 모든 부서로 많은 국민들이 문의 전화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의 지시로 핵심 부서들 몇 빼고는 전부 전화선을 빼버리고 해서 겨우 업무를 진행하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답답해하던 사람들이 송이네 회사로까지 전화를 하고 있나보다.

대한민국 최악의 산불은 이미 잡혔지만, 대한민국 이슈의 불은 아직도 불타오르고 있었다.

“어? 미안. 그런데 우리 사이에 무슨 손해 배상이냐?”

“가까운 사이일수록 더 정확해야 하는 거야! 아무튼 손해 배상 해줘!”

땡깡 피우는 송이를 이길 방법은 별로 없다.

“얼마를 원하는데?”

“돈은 필요 없고! 저거 한 대만 만들어줘. 내 결혼식에 피로연은 저기에서 한다! 딱 좋네! 그러고 나서 저걸 VIP전용으로 만들어서 전 세계 투어를 하면 대박날거야!”

돈 독이 올랐구나.

“저거 다른 나라 입국 허가는 어찌 받으려고? 우리나라에서도 지금 특별법 만든다고 난리인데?”

“어.. 그거까지 해결해 주면 좋고..”

“그리고 저건 이제 소방방제청에 기증할거고, 다시 안 만들거야.”

“아 왜! 한 개만 더 만들어줘! 아! 아니다 아담이를 꼬셔봐야지!”

“저거 설계도는 암호 걸려있어서 아담이도 못 봐. 포기하셔.”

“아깝다. 저거 있으면 전 세계 호텔 업계 1위도 가능할 것 같은데...”

해태는 소방방제청에 기증을 할 예정이다.

이미 제안을 넣었고, 무조건적인 승인이 떨어질 것이다.

대신 운용은 AI가 할 것이니 다른 기관에서 운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가령, 국방부 같은 기관.

기증하는 조건에 화제나 재난 구조에만 사용이 가능하다고 명시를 하였기 때문에 타 기관에서는 사용이 불가능하다.

그렇지 않다면 주변 국가들과 미국의 심기를 건드릴 수 있기 때문이다.

벌써부터 중국과 러시아, 일본은 외교채널을 이용해 관련 자료를 내놓으라고 압력을 넣고 있었다.

그런데 의외인 것은 미국이 공식 성명을 발표하며, 산불 피해에 대한 지원과 해태의 재난 현장에서의 활약을 칭찬하였다는 것이다.

미국이 압박을 하면 우리나라 관료들은 관련한 자료를 알아서 가져다주었을 것인데, 미국의 태도가 이상했다.

‘아니다. 이미 전부 다 알고 있겠지.’

미국이 원하기 전에 먼저 가져다 받쳐야 칭찬을 받는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아는 관료들이 있어서 거의 실시간으로 정보가 전달되었을 것이다.

심지어는 대통령에게 하는 보고보다 미 국무부가 더 정보를 빨리 입수한 적도 있었다.

나도 [까치]가 아니었다면 몰랐을 것이다.

원래는 미국의 정치권을 설득하기 위해 대규모 로비를 준비하였는데, 필요가 없어질 것 같았다.

‘돈 아끼고 좋지 뭐.’

뭔가 찝찝했지만, 알 수 없는 일에 신경 쓰기에는 너무나 정신이 없었다.

송이가 자기 회사로 돌아가고 나서도 할 일은 넘쳐나고 있었다.

“부회장님. 항공분야에 진출하실 것이냐는 질문이 기자들을 통해 비서실에 전달되고 있는데, 답변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신기하게도 내 [해태 수송함]을 보고나서 항공관련 기업들의 주식이 일제히 상승을 하였다.

아마도 내가 항공분야에도 진출을 할 것으로 생각하나보다.

역시 주식은 모르겠다.

“항공 분야는 진출하지 않을 겁니다. 관련 산업 인력들을 구하기도 힘들고, 미국의 견제도 심할 겁니다. 그 시간에 기존 사업들 정비를 하는 게 신규인원 채용에 더 유용할 것 같군요.”

“네. 그럼 그 부분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답변하겠습니다.”

“그렇게 해주세요.”

“그런데 국방부 쪽에서 계속 면담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국방부 쪽은 계속 정중하게 거절해주세요. 우리나라 군사력이 향상되면 좋겠지만, 주변국들을 자극할 수가 있어요. 공식적인 만남은 갖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공식적으로는 만나지 않겠지만, 비공식적으로는 참모총장님과 잠깐 만나 이야기를 해보았다.

총장님부터가 군 인사들의 보안을 걱정하셔서 공식적으로 진행하지는 못했지만, 몇 가지 기술들은 전달을 해드렸다.

기존의 기술들을 업그레이드 시켜주는 수준으로만 전달해드렸는데, 어차피 미국 쪽 기술력으로 이미 구현이 되어 있는 기술들이니 미국 쪽 심기를 아슬아슬하게 건드리지 않는 수준이다.

이 기술을 가지고 방산 업체들에게 실물 제작을 의뢰한다고 하는데, 잘 할지는 의문이다.

어쨌든 어마어마한 재산 피해와 몇 명의 사망자를 만들어낸 동해안의 산불은 끝이 났다.

“엄마! 나 친구들하고 놀다와도 돼?”

“그래.. 그러렴..”

커다란 체육관에 매트들이 깔려있고, 그 매트에는 사람들이 공허한 표정으로 멍하니 누워만 있었다.

아이들은 뭐가 그리도 좋은지 또래 아이들과 뛰어다니며 소리를 지르며 놀고 있었다.

아마도 수련회나 소풍을 온 기분인가 보다.

대가족을 경험하지 못했던 아이들이다보니, 이런 경험들이 신기한 것 같았다.

“하아...”

아이들과는 달리, 간간히 들려오는 한숨 소리만이 유일한 어른들의 대화 소리였다.

이제는 시원해지는 날씨가 되었는데도, 체육관의 공기는 너무나 무겁게 사람들의 몸을 짓눌렀다.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그들을 누르고 옥죄고 있었다.

그건 바로 ‘절망’이라는 감정이었다.

모두의 고통이 만나 거대한 절망이 되어 그들을 짓누르고 있었다.

살아는 있지만, 미래는 없는 죽은 인생과도 같았다.

이번 산불은 예전과는 달리 태울 수 있는 모든 것을 불태워 버렸다.

집을 불태웠고, 그 집에서의 추억까지 하나도 남겨주지 않았다.

편안했던 우리 집이 이제는 생각하기도 싫은 공포의 공간이 되었다.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멍하니 바라보며, 머릿속으로는 끊임없이 어찌 살아야하나 걱정만 되었다.

품에 안고 있는 앨범 하나만이 남은 모든 것이었다.

그때 체육관에서 갑자기 방송을 틀기 시작하였다.

“힐링 그룹 천운 부회장입니다. 이재민 여러분. 너무나 고생들이 많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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