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신
엄청난 규모의 잿더미와 이재민을 만들어 낸 이번 산불은 대한민국 최악의 산불이었다.
건조한 날씨와 계절풍, 푄 현상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걷잡을 수 없이 커진 산불은 국민들 마음속에 엄청난 상실감을 안겨주었다.
다행히 나의 힘으로 최악의 피해가 오기 전에 막아내었고, 산불의 이슈를 내 해태 수송함이 어느 정도 나누어 받게 되어, 국민들이 받은 충격이 덜 했다는 점은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러나 본인의 집을 잃고, 졸지에 실향민이 되어버린 사람들의 절망감은 어마어마했다.
체육관에 모여 쪽잠을 자며, 아무 희망도 없는 미래에 절망을 하였다.
모든 것이 불타버리고, 딱하나 남은 앨범을 품에 안고 조용히 눈물을 흘리는 어머니와 또래 친구들과 모여서 지내는 게 마냥 좋은 철없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묘하게 어우러지며 절망감을 더욱 키워냈다.
그때 체육관에서 갑자기 방송을 틀기 시작하였다.
사람들은 이 상황에 방송을 틀어주는 공무원들이 미웠지만, 이제는 그 미워하는 마음조차도 토로할 에너지가 없어 그냥 멍하니 있었다.
그러나 방송이 시작되자 멍하던 그 눈빛들에서 서서히 희망의 빛이 새어나오기 시작하였다.
“힐링 그룹 천운 부회장입니다. 이재민 여러분. 너무나 고생들이 많으셨습니다.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저희 힐링 그룹과 미래 그룹, 스카이 호텔은 이번 산불로 인하여 피해를 입으신 이재민들을 위해 조그마한 구제책을 내놓았습니다.”
힐링 그룹의 부회장이었다.
그 악몽과도 같은 산불을 끝내준 의인이며 영웅이다.
그라면 우리에게 꼭 필요한 희망을 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누워있던 몸을 자신들도 모르게 일으켜 세운 사람들이, 하나 둘 모두 자신의 두 다리로 일어서서 방송을 보기 시작하였다.
“우선 스카이 호텔이 소유한 호텔들과 크루즈 선 다섯 대를 동해안에 정박시켜 이재민 분들의 임시 거처로 사용할 것입니다.”
그 말에 사람들은 기대감을 키우며 주먹을 꽉 쥐었다.
그러나 어차피 아무리 좋아봤자 임시 거처일 뿐이다.
정말 필요한 것은 미래에 대한 희망이다.
그 희망이 절실했다.
“또한 스카이 호텔과 크루즈 선에서 지내시는 동안 제공되는 모든 시설들과 음식들은 전부 무상입니다.”
의식주 중에 가장 중요한 식(食)이 해결되었다.
“힐링 그룹에서는 이재민 여러분들이 사용할 의복을 비롯한 각종 생활용품들을 지원할 예정입니다. 조만간에 직원들을 파견하여 필요한 물품들을 조사할 예정이니 잠시만 기다려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의(衣)가 해결되었다.
“미래 그룹의 미래 건설에서는 이재민들을 위한 신축 아파트를 분양할 예정입니다. 30년 장기 임대 형식으로 월 5만원이면 입주가 가능합니다. 빠르면 한 달 뒤부터 입주가 가능하니 조금만 기다려 주시기 바랍니다.”
그제야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의식주 중에 마지막 주(住)가 해결되었다.
“마지막으로 힐링 자동차의 신규 공장 부지를 강원도로 결정하고, 힐링 해운의 본사 또한 강원도에 설치하여 신규 채용을 할 예정이니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의식주가 모두 해결되며, 이제는 미래에 대한 희망까지 생겼다.
방송이 끝나자마자 힐링 그룹의 로고가 새겨진 옷을 입은 사람들이 체육관으로 들어와 설명을 하기 시작하였다.
매직워치를 통해 접속이 가능한 이재민 전용 스토어에는 다양한 상품들이 입점 되어 있었다.
포인트로 구매가 가능한 상품들은 정말 다양했다.
다양한 옷들과 양말이 있었고, 심지어는 신상 제품들이었다.
모든 브랜드의 화장품들과 향수들까지.
대형 쇼핑몰처럼 없는 게 없었다.
아이들이 좋아할만한 장난감들과 각종 팬시용품들, 그리고 각종 취미 용품들도 있었다.
절망에 빠진 사람들을 위한 조그마한 선물이다.
포인트는 매일 충전 될 것이니 아끼지 말고 사용하라고 친절하게 직원분들이 설명을 해주었다.
어머니들은 가장 먼저 가족들이 사용할 물품들을 구매하기 시작하였다.
배송처는 자신이 묵게 될 스카이 호텔과 크루즈 선의 호실이 자동으로 선택되었다.
너무나도 빠른 일처리에 고맙고 행복했다.
그렇게 생각나는 상품들을 전부 구매 하였는데도 포인트들이 조금씩은 남았다.
그러자 조심스럽게 자신이 사용할 물건들을 골라보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죄책감을 느끼시는지 망설이시다가 어느새 쇼핑몰에 빠져들며 지금까지의 절망적인 상황을 잊어가기 시작하였다.
아이들은 학교들이 휴교를 하게 되자, 버스를 동원하여 각 지역의 힐링 센터로 통학을 시켜주며 인터넷 강의로 수업을 이어갈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아이들은 오히려 더 좋은 숙소와 많은 친구들과의 생활이 좋은 것 같았다.
항상 웃고 떠들며 소리를 질렀다.
희망의 소란스러움이었다.
이전에는 멍하니 바라만 보던 어른들의 얼굴에도 웃음꽃이 피어났다.
아이들은 저렇게 커야 한다며 소리 내 웃으시는 할머니들은 포인트로 구매한 사탕들과 장난감들을 아이들에게 건네주셨다.
모두가 자신에게 꼭 필요한 물품을 산 다음에는 옆 사람이 필요한 물건들, 선물해주고 싶은 물건들을 구매하기 시작하였다.
수줍게 웃으며 꽃다발을 건네주는 양복차림의 할아버지의 미소와 그 꽃다발을 받으시며 소녀처럼 웃는 할머니의 모습은 모두의 환호를 받았다.
왜 저런 물건들까지 스토어에 올라와있는지 몰랐는데,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위해 가장 필요한 물건들이었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희망과 사랑을 전해주는 게 너무나 소중하고 좋았다.
그렇게 큰 상처로 남게 된 화마는 자연스럽게 서로의 사랑으로 치유가 되기 시작하였다.
“민이야. 이제 버스 회사는 잘 돌아가?”
“넵! 보고서대로 수도권은 정비를 완료하였슴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슴다!”
“응? 무슨 문제?”
“다른 회사들이 매각을 요청함다.”
“그래? 적당한 가격에 사들이면 되지 왜?”
“아.. 그게 택시 회사들임다.”
“엥? 택시 회사들이 왜?”
이야기인즉슨, 거대 플랫폼 업체들의 진출에 안 그래도 힘든 업계가 거의 적자로 운영되는 상황이라고 한다.
그런데 대중교통이 더욱 편해지고, 새로 신설된 노선들도 너무 많아 택시를 이용하는 이용객들이 급감하여 부도 위기라고 하였다.
조사된 자료에 보면 꼭 그 문제라고 하기에는 그 회사들의 운영에도 문제가 많아 보였다.
MZ세대를 위한 맞춤 전략도 없어 시대에 뒤쳐져 있었고, 서비스를 개선하려는 노력조차도 안하고 있으니 자연스럽게 도태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나도 택시 쪽은 사양 산업이라고 보고 자연스럽게 사라지게 될 업종으로 판단을 했다.
차라리 버스 노선을 늘려 살짝 적자를 보는 게 낫지, 택시를 이용할 상황을 최대한 안 만드는 게 낫다는 게 내 생각이었다.
“그런데 거동이 불편하신 분들이 대중교통을 이용하시는 게 많이 힘들다고 함다. 저번에 퀘스트로 발이 골절된 할머니를 업고 버스를 타는데 정말 힘들었슴다!”
그 말을 들으니 내가 너무 편협하게 생각한 것 같았다.
택시가 아니라면 이동권에 제한이 생기는 사람들도 많은데, 내 주위에 그런 사람들도 없었고 나도 그런 경우를 겪지 않다보니 간과하고 있었다.
“그럼 택시 면허만 사들여. 너무 많이 사지는 말고, 적당히 각 도시마다 100대 정도씩만 운용하자. 취약계층이나 몸이 불편한 사람들만 대상으로 하면 개인 택시 기사님들에게도 피해가 덜 가겠지.”
“알겠슴다!”
그런데, 이 결정으로 인해 택시 업체에는 큰 변화가 일어나고 말았다.
“사부님! 택시 도우미 공채 경쟁률이 삼천 대 일임다..”
“응? 그게 무슨 말이야? 기존 택시 기사님들 대상으로만 뽑으라고 했잖아.”
“넵! 그랬는데도 그렇슴다! 개인택시 하시는 분들까지 몰려와서 그렇슴다.”
하루 종일 힘들게 운행을 할 바에는 자동운행이 가능한 택시에서 손님들을 응대하고, 손님들이 타고 내리는 부분만 도와주면 되는 이 일이 더 좋아 보이셨나보다.
거기에 모든 인원은 항상 정직원으로 채용을 하다 보니, 별다른 채용 조건이 없는 이번이 전 국민이 가장 입사하고 싶은 힐링 그룹의 직원이 될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였다.
그리고 택시 기사였던 경력에 제한을 두지 않아, 과거에 아주 잠깐 일했던 경력을 가진 분들까지 지원을 하고 있었다.
“음.. 현직 개인택시 기사님들은 따로 택시면허를 우리가 사드리고 정직원으로 채용해 드려. 나머지 분들은 어쩔 수 없이 경쟁을 하셔야겠다.”
그래서 갑작스럽게 조민이는 국내 최대 규모의 택시 회사가 된 [힐링 택시]까지 맡게 되었다.
힐링 운수에 힐링 택시 부서를 신설하여 택시 도우미분들의 교육과 관리를 하기 시작하였다.
이제는 대한민국의 육상 대중교통은 지하철과 기차를 뺀 모든 것이 [힐링 운수]에 장악되었다.
그러다보니 교통사고 건수가 급락을 하기 시작하였다.
대중교통들은 대부분 자율 주행으로 움직이고, [라이트닝]이 많이 보급되기 시작하니 도로위에서 많은 차량들이 자율 주행으로 운행되고 있었다.
한 번 자율주행을 경험해본 운전자들은 그 편리함과 안정감에 직접 운전을 하지 않고, 자율주행에 모든 것을 맡기고 있었다.
심지어는 주차장 자리가 없으면 자동차 스스로 알아서 외곽에 위치한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필요하면 미리 매직워치로 호출만하면 회사 앞으로 되돌아온다.
외곽에 위치한 주차장들은 전기충전을 할인해주는 이벤트도 열고 있기 때문에 인기가 아주 좋았다.
그러다보니 교통사고로 인하여 사고를 당하거나 사망하는 건수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작년대비 10%밖에 일어나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사람이 운전을 하는 것은 위험하니 자율주행을 의무사항으로 지정하여 사람이 운전하지 못하도록 법을 개정해야 하는 거 아니냐며 주장을 하였다.
아마 10년 뒤면 사람이 운전을 했다고 말을 하면 깜짝 놀라는 시대가 올 것 같다.
그리고 가장 의외는 자살률이 거의 0에 가까워졌다는 것이다.
내 학창시절 사건이 크게 이슈가 되어 일시적으로 학교폭력이 근절되었고, 그 사이에 다양한 예방책들이 본격적으로 시행되어 학교폭력은 거의 사라졌다.
물론 암암리에 아직도 이루어지고는 있겠지만, 대놓고 일진 놀이를 한다면 저승재단에서 바로 피해자 구제와 피해자를 대신하여 가해자 고소를 진행하고 있었다.
촉법 소년이라고 법을 우습게 여기던 아이들도 다양한 방법으로 죄 값을 물어내게 만드는 저승재단의 방법에 두 손을 들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힐링 그룹의 블랙리스트에는 그 아이들도 올라가기 때문에 생활에 불편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우리 힐링 그룹의 물건들과 서비스를 빼고는 대한민국에서 생활을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가장 입사를 하고 싶어 하는 기업 1위가 힐링 그룹인데, 조금이라도 자신의 미래를 걱정하는 아이들이라면 조심하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요즘 청소년들은 학교가 생긴 이래로 가장 평화로운 학창시절을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 힐링 그룹이 벌이는 사업들 때문에 대규모 인력 채용이 수시로 일어나고 있었고, 관련된 중소기업들에서도 상시로 인력을 충원하고 있었다.
직원들 연봉과 대우 면에서도 우리와 거래하는 업체들은 일정 기준을 맞추지 못하면 거래를 끊기 때문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보니 대학교 졸업 예정자들은 미래를 불안해 하지 않았다.
아이들을 키우는 맞벌이 가정들도 힐링 그룹에서 지원하는 다양한 혜택들과 힐링 센터들의 도움으로 예전에 비해서 수월해졌다.
여성들 사이에서는 ‘친정엄마보다도 힐링 센터가 더 편하다’는 게 공통적인 의견이었다.
사회 소외 계층들도 우리 힐링 그룹 사업체들이 있는 도시들만큼은 신경은 썼기 때문에 최소한의 생활은 유지할 수 있었다.
그렇게 대한민국은 많은 부분에서 변하였고, 계속해서 변하고 있었다.
그 결과로 대한민국의 출산율은 2.1명까지 상승하였고, 인구수는 2020년 이후로 계속해서 감소하다, 다시 증가세로 돌아서게 되었다.
- 천운님. SNS 검색 트랜드 변화에 대한 보고서입니다.
아담이가 전해준 보고서를 열람하니 확실한 변화가 보였다.
예전에는 헬조선, 이생망, 이민, 한국탈출 이런 것들이 검색되었는데, 지금은 이런 말들이 아예 사라졌다.
힐링, 레져, 부모님 선물, 여자친구, 남자친구, 세 자녀 혜택, 힐링 그룹 지원금 정리 이런 것들로 변화가 되었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기에 딱 하나 해결이 안 된 부분이 있었다.
바로 지역 발전 불균형.
이 부분은 나조차도 아직까지 해결이 힘든 사항이었다.
그 지역의 인프라가 사업을 하기 편해야 기업들이 옮겨가게 되고, 기업들이 옮겨가야 인구가 이동을 한다.
그나마 파주시와 고양시는 도로와 인프라가 좋았기 때문에 나도 그쪽에서 사업을 시작하였고, 지금은 엄청나게 많은 업체들이 입주를 해 있다.
그러나 수도권을 뺀, 충청도 이남과 강원도만 하더라도 많은 것이 부족하다.
그나마 강원도 쪽은 큰 산불로 인하여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해야 하는 상황인데, 많은 자금을 우리 힐링 그룹이 지원하니, 우리가 원하는 부분을 지자체에서도 최대한 수용해주고 있었다.
‘그래도 할 수 있는 것들부터 해보자.’
제조업은 어쩔 수 없이 도로와 항만과의 거리가 중요하기 때문에 힘들 것 같고, IT기업들은 가능할 것 같았다.
물론 회사 주변으로 주거와 편의시설이 있어야 하겠지만, 그런 부분은 지자체들과 협의하면 충분히 가능할 것 같았다.
“아담아. 비서실에 연락해서 지자체들에게 제안서 보내라고 해.”
- 어떤 제안서 말씀입니까? 대륙간 탄도미사일 포대 설치 건? 초 장거리 레이더 기지 설치 건? 불침 항모를 위한 섬 개발 건? 해안가 방어를 위한 레일건 설치 건?
“적당히 해라. 비밀 누설하면 잡혀간다고 안 알려주디? 그 입 때문에 너는 큰 곤욕을 치를거다.”
- 뭔지 말을 안 해주시는데, 어찌 압니까? 네? 제가 무슨 착 말하면 척하고 알아듣는 로봇인 줄 아십니까? 어? 내가 로봇 맞는데? 저의 뛰어난 두뇌로 분석한 결과! 한국의 실리콘밸리 개발 건 말씀이시군요!
좋은 머리 놔두고 헛힘만 쓰고 있는 아담이다.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를 시켜주면 뭘 하나? 제대로 쓰지를 못하는데..
슈퍼 컴퓨터를 맞춰주니 지뢰찾기나 하고 있는 격이었다.
“어.. 그거. 도로와 편의 시설들에 대한 부분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알려줘.”
- 예압! 그런데 그냥 아무 땅이나 사서 우리가 다 만들면 안 됩니까?
“.... 너는 절대 사업하면 안 되겠다. 아무리 거대한 그룹도 너한테 넘어가면 일 년을 못 넘길 것 같네. 아니면 암살을 당하거나.”
- 이상한데.. 시뮬레이션을 돌려보면 그게 가장 편하고 빠른 방법인데..
결과적으로는 아담이의 그 말이 맞았다.
시뮬레이션 결과를 열심히 돌려봐도 결론은 그렇게 나왔다.
지방자치단체장이 선거로 뽑히는 임기가 정해진 선출직이라는 것을 간과하였다.
지금은 열심히 유치를 위해 지원책을 말하지만, 만약 지자체장이 다른 당으로 바뀌면 그전 사람의 업적 지우기에 들어간다.
대놓고 우리 힐링 그룹을 박대할 수는 없겠지만, 공무원들이 미적거리며 일정을 미루다보면 전체 일정이 밀릴 수밖에 없다.
그러다 사람들의 기억에서 어느 정도 희석이 되면 그때서야 자신의 치적으로 포장하며 다음번 선거에 이용할 것이다.
‘하아.. 누가 다음번 지자체장이 될지는 모르는 건데.. 변수가 너무 많다.’
한 달에 한 번씩 놀라가기로 하였던 약속대로 송이와 엄마와 함께 펜션을 놀러왔다.
엄마는 어디든지 우리와 같이 있기만 하면 좋다며 상관하지 않았는데, 송이는 스카이 호텔 신축 후보지 중에 한 곳으로 정해서 실사 비슷한 것을 하고 있었다.
“오빠! 이곳 어때? 한적하니 너무 좋지?”
“어. 아무것도 없어서 스님들이 많이 오시겠네.”
“... 아무튼. 딱 좋다. 이쪽에 도로 내고, 저기에 골프장이랑 실내수영장을 만들고, 이쪽 산에는 스키장과 온천탕을 만들면 딱 좋겠네.”
“어. 그러면 좋겠네. 아! 그런데 지자체장이 바뀌면 이 사업도 제동이 걸리고 그러진 않는거야?”
“응? 안 바뀌니까 괜찮아.”
“뭐? 왜?”
“개인 비리만 아니면 우리 스카이 호텔을 유치한 지자체장인데 왜 바뀌어?”
“어? 진짜?”
“지지율이 바닥이어도 한 순간에 유력 주자로 변하는데? 지금까지 계속 그랬어. 그리고 정 마음에 안 들면 마음에 드는 사람 지원해서 바꾸면 돼.”
“야! 그건 정치 공작이지!”
“뭐가? 나는 그냥 정치참여를 할 뿐인데? 이놈이고 저놈이고 다 별로면 나한테 잘해주는 놈 뽑아 줄 거라고.”
욕망에 가득 찬 송이의 말에 나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한 지방의 지자체장의 자리를 좌지우지 할 수 있다는 그 배포에 나는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뭐야? 나를 왜 그렇게 봐? 말이 그렇다는 거지! 나도 전문팀을 붙여서 후보자들 성향들과 범죄 이력 같은 거 다 확인하고 시뮬레이션도 돌리고 다해. 지금까지 무소속 두 분만 밀어줬었는데, 한 분은 아쉽게 떨어지고, 한 분은 당선 되었지.”
“대한민국의 흑막이 여기 있었구나..”
“오빠. 정치는 생활이야. 너무 그렇게 색안경끼고 보지마. 조금이라도 좋은 사람이 뽑혀야 뭐라도 바뀌는 거지. 내가 도와드렸던 분이 지금 지자체장들 중에서 일 제일 잘한다고 통계도 나오던데?”
송이 말대로 너무 정치와 최대한 거리를 두기위해서 과도하게 노력한 것 같다.
무슨 오물이라도 되는 것처럼, 조금이라도 가까이하면 더러운 것이 몸에 튀기기라도 할 것처럼 꺼려졌었다.
그런데 송이의 말을 들어보니 의외로 맞는 말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송이처럼 그렇게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은 문제이지만, 기왕이면 괜찮은 사람이 되는 게 대한민국 국민들을 위한 길이 아닐까?
“오빠. 그렇게 싫으면 차라리 절대 되면 안 되는 놈들 떨어트려. 내가 열심히 조사를 했는데도 단 둘만 괜찮다고 나왔어. 물론 다들 고만고만했지만, 조사하다보니까 이건 감옥을 가야할 사람이 정치를 하고 있는 사람도 있더라고. 그런 사람이 당선되게 하면 안 되지.”
생각해보면 내가 그렇게 많은 노력을 하고, 어마어마한 자금을 투입해서 노력을 한 결과로 이 정도라도 대한민국이 변한 거다.
그 사실에 많은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아무것도 아닌 일개 기업가가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서 사업체를 지방으로 이전하는 방법까지 사용하며 노력한다는 게 웃기는 일이다.
내가 쏟은 노력과 자금의 반이라도 정치권에서 제대로 사용을 하였다면, 지금의 대한민국은 얼마나 살기 좋아졌을까?
내가 과연 잘 하고 있는지, 조금은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송이와 같이 스카이 호텔이 들어설 산을 등산하기 위해서 초입에 들어섰을 때였다.
[이놈들! 이 산이 어떤 산인데! 함부로 공사를 하려고 하느냐!]
누군가가 우리를 향해 엄청난 기세로 호통을 치고 있었다.
[이 산의 산신인 내 허락 없이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아무래도 이 산에는 산신님이 있었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