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8화 (138/170)

퇴사 마렵네.

“축하드립니다. 선생님. 힘들지는 않으셨습니까? 어떤 생각으로 이 일을 하신 건가요?”

재준이의 물음에 그 아저씨는 천천히 대답을 하셨다.

“제가 많이 아팠습니다. 그런데 병명이 없는 병이어서 보험도 적용이 되지 않았습니다. 긴 시간동안 저를 간호해주고, 집안의 생계까지 책임져준 우리 아내와 해준 것 하나도 없었는데도 잘 커준 아들을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리고 꼭 도와드리고 싶은 분이 있어서 죽을힘을 다했습니다.”

손은 계속되는 삽질로 물집이 터지다 못해 짓물러 있어서 피고름이 나오고 있었고, 시커먼 잿더미들과 흙들로 인하여 손톱 밑의 때는 한가득이었지만, 아저씨는 밝게 웃고 계셨다.

“아.. 지금은 괜찮으신 건가요?”

“네. 다행히 허준 한의사님을 만나게 되어서 치료를 받게 되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치료비도 받지 않으시고... 정말...”

밝아 보이시던 아저씨도 이번에는 감정을 잡기 어려우셨는지 살짝 뒤돌아 흙과 먼지, 땀에 절여있던 옷 소매로 눈을 닦아내셨다.

몸은 아픈데, 병명이 없었다.

계속되는 검사에도 원인을 알 수 없으니 약은 진통제 뿐이었다.

모아두었던 돈은 의미 없는 검사비용으로 하나 둘 사라지게 되었고, 가장 먼저 쓸모없는 보험부터 해약을 했다.

낼 때는 온갖 해택이 다 될 것처럼 말을 하였지만, 정작 필요할 때는 온갖 핑계와 관련 자료들을 요구하며 도움을 주지 않았다.

역시나 해약을 하니 원금도 건지지 못했다.

그래도 목돈이 들어오니 한 동안은 숨통이 틔였다.

그러나 그건 극히 짧은 시간일 뿐이었다.

가족의 미래와도 같던 적금을 해지하고, 아파트 담보 대출을 받았다.

그래도 부족하여 결국은 아들을 위해 마지막까지 남겨두었던 청약 통장을 해지하고 돌아와 화장실에서 숨죽여 흐느꼈다.

이까짓 고통이 무어라고 가족들의 미래까지 구렁텅이에 빠트리는지, 너무나 이기적인 자신이 원망스러워 졌다.

그저 병명만 알게 된다면 좋을 것 같아 아무런 대책도 없이 병원들만 옮겨 다니며 비싼 검사를 해대었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병원들마다 별다른 게 없었다.

전부 다 같은 검사들뿐이었다.

그리고 의사들도 같은 말 뿐이었다.

원인을 알 수 없다고.

원인을 알 수 없으니 병명도 모르겠다고.

다른 검사를 더 해보자고.

화장실에서 울고 있는 지금은 이미 너무나 늦어버렸다.

수중에는 아무것도 없었고, 자신에게 남은 건 지독한 고통과 가족들에 대한 미안함뿐이었다.

흐느껴 울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일찍 죽어버릴걸.

그랬다면 가족들은 고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늦었지만, 가족을 위해서는 지금이라도 해야만 하는 일이다.

후회가 되는 건, 보험을 해지하기 전에 죽어버릴 걸 하는 생각이었다.

그랬다면 가족들에게 조그마한 도움이라도 되었을 것인데, 내 헛된 희망 때문에 모든 것을 날려버렸다.

너무나 미련했다.

마음을 정한 날 오후.

정성을 다해 가족들의 저녁밥을 차려주었다.

음식이라고는 평생 해보지 않았다보니, 많이 짜고 탔다.

그래도 죽기 전에 한 번은 꼭 자신의 손으로 해주고 싶었다.

평생을 자신을 위해 밥을 차려준 아내는 그럴 자격이 넘치도록 있다.

새벽부터 일하러 떠난 와이프가 집에 없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같이 있었다면 밥도 차려주지 못하고 몰래 떠났어야 하니까.

밥을 차려놓고, 정성들여서 몸을 씻기 시작하였다.

사람들이 자신을 발견하였을 때, 흉해 보이지 않았으면 싶었다.

몸을 씻다 또다시 시작된 갑작스러운 통증에 가슴을 부여잡고 신음만 토해냈다.

예전에는 몰랐는데, 너무나 고통이 크면 숨도 쉬지 못한다.

지금 자신이 그렇다.

너무나 큰 고통에 가슴을 손가락으로 하도 쥐어뜯어, 자신의 왼쪽 가슴은 자신의 새로 생긴 손톱자국과 이전의 흉터들이 난잡하게 뒤엉켜 새겨지고 있었다.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다시 쥐어뜯다보니 이제는 항상 피고름이 차 있었다.

죽을 것 같이 심한 통증이 사라지자, 이제는 칼로 가슴을 잘라내는 듯 한 통증이 시작되었다.

너무나 아파 펑펑 울었다.

이 병에 걸린 이후부터는 아이가 된 것 같았다.

평생 살아오며 울었던 순간들보다 이 병에 걸린 3년이 더욱 많이 운 것 같다.

시도 때도 없이 갑작스레 덮쳐오는 통증은 사라질 때도 갑작스럽다.

겨우 몸을 씻고 나와 직장 생활을 할 때 입었던 양복을 찾아 입었다.

이제는 입을 일이 없는데도 아내는 시간이 날 때면 다림질을 해놓는다.

꼭 나을 것이니 미리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포기를 하였지만, 아내는 여전히 포기를 하지 않았나보다.

역시나 강한 여자다.

조심히 입고 있던 그 새하얀 양복의 가슴부위가 빨갛게 물들어 간다.

마치 자신의 미래를 보여주는 것 같아 우울해졌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아본다.

구두를 신고 집 밖을 나섰지만, 갈 곳이 없었다.

산에서 죽기에는 거기까지 가는 길이 너무나 험난하다.

분명히 쓰러져 병원에 실려 갈 것이다.

그러면 와이프가 다 알게 될 것이고, 다시는 이런 기회가 없을수도 있다.

아내는 아직도 나를 포기하지 않았으니.

그렇다고 아파트 옥상에서 뛰어내린다면 그 흉측한 모습에 이웃 주민들에게도 민폐일 것이다.

혹시나 아들놈이 집에 들어오다 발견이라도 한다면 많은 충격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가는 모습은 흉해 보이고 싶지 않았다.

어디에서 죽을지 생각을 하며 집을 나서는데, 익숙한 길이 보였다.

아프기 전에는 우리 가족이 항상 같이 걷던 한강 강변의 산책길로 향하는 그 길이었다.

아무런 생각 없이 그 길을 따라 걷기 시작하였다.

한참을 걷다보니 저녁의 아름다운 한강이 눈앞에 펼쳐졌다.

노을에 비친 한강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그리고 그 아름다운 한강을 가로지르는 다리에는 수많은 차량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멀쩡하게 잘 살아가는데, 왜 자신은 이렇게 아픈지 원망스러웠다.

정말 신이 있다면 너무한 건 아닌지 묻고 싶었다.

남에게 한 번도 피해를 주지 않고 착하게 살아왔는데, 도대체 왜 자신인지 모르겠다.

심지어는 무단 횡단 한 번도, 바닥에 침을 뱉은 적도 없었다.

원망의 말을 쏟아내는 자신조차도 누구인지 모를 그 누군가를 원망하며 걷다보니, 어느새 다리 위였다.

생각해보니 자신이 죽기에는 너무나 적당한 곳이었다.

차라리 물에 빠져 죽는다면 내 시체를 찾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자신의 초라하게 죽어있는 모습을 아내에게 보여주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우연히도 정말 적당한 곳이었다.

자신은 정말 오늘, 이 자리에서 죽어야만 하는 인생인 것 같았다.

집에서 나올 때 유서는 써두었으니 아내와 아들은 내가 실종된다면 죽은 줄 알 것이다.

구두를 벗고 가지런히 난간 앞에 모아두었다.

그리고 난간 앞에 서서 이미 어두워진 한강을 잠시 바라보았다.

적당히 어두워 두려움이 오히려 사라졌다.

지금 죽기에 딱 적당했다.

‘그래. 하자!’

마음을 먹고 난간을 넘어가기 위해 다리 하나를 난간에 걸쳤을 때였다.

“아저씨!! 안돼요!! 위험해요!!!”

갑작스러운 외침에 옆을 돌아보니 녹색 추리닝을 입은 청년이 크게 소리치며 달려오고 있었다.

“어?? 어? 오지..마!! 오지마!!’

너무 당황해서 소리치며 황급히 난간을 넘어가려는 순간, 그 청년은 자신의 옷을 잡고 잡아당겼다.

오늘이 아니면, 바로 지금이 아니면, 다시 죽을 용기가 생기지 않을 것 같아 몸부림쳤다.

죽는 순간까지도 이렇게 자신의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자신의 신세가 너무나 원망스러웠다.

마지막만이라도 자신의 의지대로 하고 싶어, 혼신의 힘을 다해 몸부림을 쳤다.

그런데 원하지 않은 일이 벌어져 버렸다.

“안 돼!! 으아아아아!!!”

“어!! 어!! 위험해!!!”

[풍덩!!!]

그 녹색 추리닝을 입은 청년이 내가 몸부림치는 힘에 못 이겨 난간 밖으로 튕겨나가, 자신을 대신해 물에 빠져버렸다.

그 청년을 잡으려던 내 손만 의미 없이 허공을 휘졌고 있었다.

죽어야 하는 자신 때문에 젊은 목숨이 위험해졌다.

머리가 하얗게 변해버렸지만, 본능적으로 119로 전화를 하고 어두운 강물을 간절한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혹시라도 그 청년이 물 위로 떠오른다면 구급대에게 알려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어두운 한강에 구조대가 탄 보트들이 도착을 하고, 대낮처럼 밝게 빛나는 서치라이트를 이용해 수색을 하였지만, 결국은 찾지 못하였다.

멍한 정신에도 경찰 분에게 상황을 설명해드리고, 경찰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무슨 정신으로 돌아온지는 몰랐지만, 아파트 입구에 도착하였을 때 맨발로 뛰쳐나온 아내의 모습을 보는 순간, 죽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

나와 아내는 서로를 끌어안고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그날부터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다시 하기 시작하였다.

시도 때도 없는 통증에 너무나 고통스러웠지만, 젊은 목숨을 대신해 살아났으니 이까짓 고통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죄가 자신을 집어 삼킬 것만 같았다.

낮이면 아픈 몸을 이끌고 일을 하였고, 밤에는 악몽을 꾸었다.

자신을 구하려던 그 청년의 모습과 그 청년을 잡아내지 못하고 빈 허공만 휘저었던 자신의 손길만 생각나 잠이 오지 않았다.

아주 조금만 더 빨리 손을 내밀었다면, 그 청년을 구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자책하며 뒤척이다보면 그 모습 그대로 악몽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그 악몽이 너무나 고마웠다.

자신이 그 청년의 죽음을 무디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증거이니까.

그 청년의 죽음이 아무렇지 않아지면, 자신은 인간이 아니게 되어버릴 것 같았다.

그렇게 지옥 같은 삶을 살아가다 보게 되었다.

그 청년이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인 힐링이 그 청년이 분명했다.

매일.

매 시간.

숨을 쉬는 그 순간들마다 그때 일을 후회하며 그 청년을 구하는 상상을 했기 때문에 그 얼굴이 손에 잡힐 듯 선명했다.

그리고 그 녹색 추리닝.

그 청년이 입었던 옷이 분명했다.

“살아있었어!! 살아있었다고!!”

아내에게 소리치며 기뻐했다.

무릎을 꿇고, 누군지도 모를 그 원망하던 존재에게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이름도 알 수 없던 그 병의 통증보다도 더욱 지독하게 아프던 마음의 병이 나았다.

그 죽을 것 같이 아픈 몸의 병보다, 미안하고 미안한 그 마음의 병이 자신을 죽여가고 있었다.

비록 몸의 병은 죽을 듯이 아프지만, 죽지는 않는다.

미칠 듯이 아프지만, 미치지 않는다.

그러나 마음의 병은 자신을 미치게 만들고, 죽어가게 만들고 있었다.

이제는 그 마음의 병이 다 나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지옥 같은 삶에서 한 줄기 빛이 내려쬐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빛은 또 다른 희망을 만나게 만들어 주었다.

기적같이 만나게 된 한의사님.

자신을 보며 인자하게 웃으시던 그 분은 무려 한 달 동안이나 우리 집에 머물며 치료를 해주셨다.

처음에는 사기꾼인줄 알았지만, 자신을 대하는 모습이 진실 됨을 마음으로 느낄 수 있었다.

잠도 편히 주무시지 못하시며 치료를 해주시는 모습에 너무나 미안하고 고마웠다.

사례를 하고 싶었지만, 저승에서 사례를 받고 있으니 되었다는 조금은 이상하신 말로 거절을 하셨다.

마지막 치료를 끝마치신 그 분은 나에게 마지막 치료라며 조언을 해주셨다.

“살아있는 이유가 있어서 살아있을 터이니 열심히 사시게나.”

나는 그렇게 두 명의 의인 덕분에 살아났다.

그리고 나를 구해준 첫 번째 의인이 도움을 요청하는 방송을 보게 되었다.

그날 밤, 아내와 아들에게 처음으로 그날 있었던 일들에 대해서 자세히 말을 해주었고, 자신을 위해 목숨을 걸어준 저 사람을 도와주고 싶다고 말을 하였다.

아내와 아들은 가만히 듣고 있다가 흔쾌히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아들은 직장에 휴가를 길게 낼 수가 없어서 목요일과 금요일에만 매주 휴가를 내었고, 목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열심히 묘목을 가져다주었다.

그리고 항상 내 편인 아내는 자신보다도 더 열심히 아들이 차로 가져온 묘목을 자신에게 옮겨주고, 사진을 찍어 인터넷에 게시물을 올려주었다.

자신의 남편을 살려준 고마운 사람을 위한다며 잠시도 쉬지 않았다.

묘목 한 그루를 심을 때마다 마음의 짐이 덜어졌다.

그에게 커다란 행운이 함께 했으면 싶은 마음에 7777개를 심기로 마음먹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잠시도 쉬면 안 된다.

결국 마지막 날 오후.

죽으러 가던 길에 보았던 그 한강의 노을처럼 아름다운 노을을 바라보며, 마지막 7777번째 묘목을 심고는 마음껏 소리쳐 외쳤다.

“만세!!”

나를 찍어주던 아내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고, 나는 그제야 그 동안 나를 얽매고 있었던 그 지독한 죄책감을 벗어낼 수 있었다.

이제야 모든 병이 전부 다 나았다.

“제가 죽고 싶을 때 저를 구해준 의인 두 분이 계십니다. 한 분이 아까 제 몸의 병을 고쳐주신 허준 한의사님이시고, 다른 한 분이 힐링님이십니다. 오늘은 제 마음의 병까지 고쳐지게 된 날이니, 이제 제 인생을 살고 싶습니다. 아내와 같이 한강 산책로를 걷고 싶네요. 그리고 그림은 힐링 타운에 기증하겠습니다.”

그 방송을 본 사람들은 도대체 무슨 사연이기에 그 비싼 그림을 기증까지 하겠다는 것인지 궁금해 했다.

그러나 끝내 자세한 사연은 말씀하지 않으신 아저씨 때문에 의문으로만 끝나버렸고, 나 또한 입을 열지 않았다.

“살아 계셨군요. 걱정 많이 했었습니다. 서로가 아는 게 없었으니 알아볼 수도 없었네요.”

“정말 미안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그리고 정말... 감사합니다.”

내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시는 아저씨의 영혼은 너무나 맑았다.

이렇게 맑은 영혼을 가지신 분이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하셨는지, 겉으로 보이는 외모는 이미 많이 늙으셨다.

50대 후반에 불과한 연세로 알고 있었는데, 보기에는 60대 후반으로 보이셨다.

그러나 그건 겉으로 보이는 외모일 뿐이다.

그 분의 영혼은 내가 만나본 누구보다도 맑았다.

한평생 남을 위해 살아오신 고승이나 수녀님의 영혼이 있다면 이럴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림은 아저씨의 말씀대로 기증을 하려다 생각을 바꾸었다.

경매를 열어 그림을 팔았다.

사연이 있는 그림이었기 때문에 엄청난 금액에 팔리게 되었다.

낙찰자는 알파티흐 왕세자님.

“내 형제가 좋은 일에 쓰고자 하니, 나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네.” 라며 1조원에 구매를 해주셨다.

나는 수익금 전부를 이용해 희귀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기금을 저승 재단에 조성했다.

희귀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 중에서 생계가 어려운 분들을 위한 지원과 치료를 위한 연구비를 지원하는 기금이다.

그리고 허준 한의사님이 행하시는 모든 진료비와 치료비까지 지원을 해드렸다.

이제 허준 한의사님은 돈 걱정하지 않으시고, 마음껏 진료 행위를 하시고 계신다.

기금의 이름은 아저씨의 이름을 따 [김산 기금]이라고 붙였고, 아저씨는 그 소식을 듣고는 감사하다며 눈물을 보이셨다.

김수혁 대리는 하늘같은 회장님을 만나러 회장실에 방문을 하였다.

“김수혁 대리님이라고 하셨죠?”

“네! 회장님. 전략기획실 소속입니다!”

“눈여겨보겠습니다. 그리고 이건 아버님에게 전달해 주세요. 직접 드리면 안 받으실 것 같아서 김수혁 대리님 성과금으로 돌려서 드리는 겁니다. 세금은 제가 이미 처리했으니 걱정 안하셔도 됩니다.”

“감사합니다.”

아버지에게 회장님과의 일을 듣게 되었을 때는 거짓말 같은 상황에 너무나 당황하였다.

회장님이 우리 아버지를 구해주셨다니 말도 안 되었다.

회장님이 원래부터 사람들 돕기를 좋아하신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자신의 아버지까지 도움을 받았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것도 아버지를 대신해 목숨을 걸기까지 하셨다니 정말 대단하신 분이시다.

회장님이 건네주신 봉투에 얼마가 들어있는지 궁금하였지만, 꾹 참았다.

생각보다 얇은 것을 보면 자그마한 성의인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언 듯, 글씨가 적혀있는 종이가 같이 있는 걸 보면 편지도 들어있는 것 같았다.

일을 하면서도 전혀 집중이 되지 않았다.

하루 종일 시계만 쳐다보고 있었다.

“자! 오늘도 수고들 많았어요. 다들 퇴근합시다.”

여섯시가 되자 부장님이 말씀을 하셨고, 6시 칼 퇴근이 사규인 힐링 그룹답게 다들 웃으면서 인사를 하고 퇴근을 시작하였다.

자신이 속한 전략기획실도 회장님이 가끔 치는 사고만 아니면 칼 퇴근을 한다.

다른 회사들은 그룹의 미래의 전략을 짜고 그룹을 움직인다고 하는데, 우리 그룹의 전략기획실은 회장님의 사고를 처리하는 게 주 업무 같은 기분이었다.

‘다시는 회장님 욕하지 말아야지.’

회장님이 사고를 치실 때마다 뒷수습을 하느라, 그룹 비서실과 함께 야근을 하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속으로 회장님 욕을 했었다.

그런데 이제는 절대 욕을 하지 말자고 다짐을 하였다.

평소라면 버스를 타고 퇴근을 하였겠지만, 너무나 마음이 급해서 힐링 택시를 예약했다.

빌딩을 나와 도로가를 보니, 시외 주차장에서 오는 자율주행 차량들을 기다리는 짧은 줄 옆에 힐링 택시가 서있었다.

황급히 택시에 타자, 내 매직워치와 연결이 되며 신원이 확인 되었다.

안전벨트를 매달라는 안내 문구대로 안전벨트를 하자, 부드럽게 출발을 하였다.

“아버지! 이리로 나와 보세요!”

집에 들어가자마자 안방에 계시는 아버지를 불렀다.

“무슨 일인데?”

주방에 계시던 엄마가 놀라서 거실로 나오셨다.

“수혁아. 무슨 일이냐?”

아버지도 내가 부르는 소리에 황급히 거실로 나오셨다.

“오늘 회장님이 불러서 회장실에 다녀왔는데, 이걸 아버지한테 전해달래요.”

나는 소중하게 보관하던 봉투를 아버지에게 전해드렸다.

아버지는 자신이 내민 봉투를 받아 드시고는 내용물을 꺼내보셨다.

봉투 안에는 내 예상대로 편지와 수표가 들어있었다.

그리고 봉투에서 꺼낸 수표에는 엄청나게 많은 ‘0’들이 적혀 있었다.

‘일. 십. 백. 천. 만. 십만. 백만. 천만. 억. 십억? 십억!!’

엄청난 액수에 말을 하고 싶어서 입을 달싹이고 있었는데, 편지를 읽고 계신 아버지 때문에 아무런 말도 못하고 있었다.

이윽고, 편지를 다 읽으신 아버지는 웃으시며 말씀을 하셨다.

“나는 그 분에게 죄책감을 갖고 살았는데, 그 분은 그 조차도 미안해하시는구나. 그리고 오히려 내 덕분에 인생이 변하게 되었다고 하시는데, 잘은 모르겠지만 나를 위해서 그리 말씀해 주신 것 같다. 그 돈은 너 장가갈 때 내 자존심 세우라고 주신건데, 수혁이 네가 가져가거라.”

“이 돈을요? 이거 십억이에요! 이걸 제가 어떻게...”

“괜찮다. 우리가 이 돈을 어디다가 쓰겠니. 너 청약 통장 해지하면서 내가 얼마나 너한테 미안했는지 아니? 받아 두거라. 그래야 내 마음이 편할 것 같구나. 그리고 우리는 그 돈 쓸 시간도 없으니 걱정 말거라.”

“네?”

아버지는 웃으시며 엄마에게 말을 하셨다.

“우리 한 1년 크루즈 타러 가볼까?”

“응? 그게 무슨 말씀이셔요?”

“그 분이 정말 감사하게도 크루즈 여행권을 주셨어. 우리 가족 중에 자네가 가장 고생했을 거라면서 호강 시켜주라고 하시네. 허허허. 내가 못해 준 걸 그 분이 다 해주시고... 이리도 선한 분이 나 때문에...”

“또 그 이야기 하신다. 이제 다 털어내셨다면서요.”

“크흠.. 그러게.. 미안함은 다 털어냈는데, 고마움이 남네. 아무튼 밖에 차를 보낸다고 했으니까 바로 가자고!”

“응? 밥은 어쩌고요?”

“크루즈에 뷔페 있겠지! 아들! 알아서 잘 챙겨먹고 집 잘 봐라. 내년에 보자.”

“네. 네? 그게 무슨...”

“필요한 물건들은 전부 크루즈에 실어놓았다고 하니까 몸만 오래. 옷도 필요 없으니까 빨리 나와.”

“이게 무슨 일이래요.”

엄마는 어리둥절 하시면서도 앞치마를 벗어놓으시고는 아버지를 따라 나서셨다.

“아들. 냉장고에 상할만한 것들부터 먹어. 잘 할 수 있지?”

“네? 아니 이게 무슨..”

엘리베이터 안에서 열심히 당부사항들을 이야기하는 엄마의 말이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주차장을 보니 엄청나게 멋있는 리무진이 서 있었다.

“김산님 부부 되십니까?”

양복을 입은 남성이 우리를 향해 정중히 물어왔다.

그룹 비서실에서 자주 보던 과장님이셨다.

나의 고개 숙인 인사를 살짝 미소 지으시며 받아주신 과장님은 아버지의 대답을 기다리셨다.

“네. 제가 김산입니다.”

“힐링 그룹 비서실에서 나왔습니다. 공항에 전용기가 준비되어있으니 바로 출발하시면 됩니다. 바로 태국으로 향할 계획인데, 그곳에서 크루즈선을 타시면 됩니다. 불편하신 사항이나 필요한 것이 있으시면 말씀해주십시오.”

그렇게 자신만 남겨놓고 부모님을 태운 리무진은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황당한 마음에 어리둥절하였지만, 집에 들어와 늦은 저녁을 챙겨먹고 잠을 청했다.

그리고 다음날부터 매일 아버지로부터 사진들과 영상들이 도착하였다.

자신이 본 중에서 가장 밝게 웃으시는 엄마와 아버지의 모습에 자신도 그 사진들을 보며 웃을 수 있었다.

[띠링!]

“응? 또 보내셨네.”

어제 분명히 소말리아는 그냥 지나가고 그 다음 나라에서 내리신다고 하셨으니 분명히 배 위에 계실 것이다.

처음에는 바다 사진을 열심히 보내오셨는데, 너무 많이 보내시는 게 조금 그러셨는지, 이제는 바다 사진은 보내지 않으신다.

‘오랜만에 바다 사진을 보내셨나?’

가볍게 생각하며 보내주신 사진을 보게 되었다.

“어? 이게 뭐야? 우주선? 우주전함? 이게 뭐지? 그런데 왜 우리 회사 로고가 그려져 있어? 노틸러스? 뭐야!”

아버지가 보내온 사진에는 거대한 비행선이 떠 있었고, 우리 회사 로고가 선명하게 그려져 있었다.

“아... 회장님 또 사고 치셨나보네.. 내일부터 또 전화 지옥 시작인가?”

정말 고마운 회장님이시지만, 가끔 이렇게 사고를 치시면 정말 눈앞이 캄캄하다.

잠시 뒤, 그 사진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이번에는 조금 늦으셨네. 이러면 또 괴담 퍼지는 거 아냐? 사고를 치시려면 미리 딱! 대비를 다 해놓고! 치셔야지! 어우...”

단톡방에 부장님과 과장님의 글들이 올라오기 시작하였다.

보나마나 속옷 챙겨오라는 것이겠지.

힐링 그룹 내에서 유일하게 야근을 하는 부서 중 하나인 전략기획실 소속이니 어쩔 수 없었다.

“어우.. 퇴사 마렵네.”

전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가장 선망하는 그룹의 직원도 퇴사는 항상 마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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