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름 카메라
중국의 경제 제재는 큰 효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희토류는 내 광산에서 생산량을 늘리면서 해결하였고, 공산품 생산은 얼마 전부터 꾸준히 국내로 생산 공장이 옮겨오게 되면서 큰 타격은 없었다.
세계에서 가장 싼 가격의 사우디아라비아산 원유를 이용해 값싼 원재료들을 생산하여 공급하고 있었고, 힐링 물류 덕분에 물류비도 매우 저렴했다.
공장 부지도 지역 균형 발전을 위해서 지방정부와 협력하여 아주 낮은 가격으로 제공을 하다 보니, 인건비를 뺀 모든 부분에서 장점이 있었다.
결정적으로 중국에서 공장을 옮겨오는 기업들은 내가 가지고 있는 투자 회사에서 지원금과 기술 지원까지 해주다보니 급속도로 옮겨올 수 있었다.
중국내에서 공장 설비들을 국내로 옮길 수 없도록 다양한 방법을 사용해 방해를 하고 있었고, 나는 대규모 법률지원단을 구성해서 맞대응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우선은 내가 지원한 자금으로 국내에 새롭게 공장을 차리고, 중국내 공장에 두고 온 생산 시설들은 차후에 천천히 해결해 나갈 계획이다.
만약 중국에서 계속해서 제재 정책들을 펴낸다면 달라질 수도 있었겠지만, 순전히 우연히 때마침 터진 소수민족들의 독립 전쟁 때문에 이쪽을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그리고 그 동안 펼친 우리나라를 향한 제재 때문에 다른 국가들도 탈 중국을 본격화 하고 있었다.
언젠가는 자신들의 나라들에게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모두가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중국은 그렇게 내우외환의 상황을 온몸으로 느끼며 무너지고 있었다.
“송이야. 결혼식도 얼마 안 남았는데 무슨 해외 출장이냐?”
베트남으로 출장을 가려는 송이가 걱정되어서 말을 해보았지만, 사업가의 감각이 발달한 송이는 이 기회를 놓치고 싶어 하지 않았다.
“세계적인 탈 중국 분위기일 때가 기회야. 바로 지금! 한 시가 급해.”
“그래서 베트남, 라오스, 태국, 캄보디아까지 전부 다 들린다고? 일정이 가능하겠어?”
열심히 서류를 검토하던 송이는 잠시 책상위에 내려놓고 나에게 말을 하였다.
“다 방문하는 건 아니고, 베트남 호치민으로 다들 모인다고 했어. 내가 순서대로 방문한다고 하니까 다들 늦으면 불이익이 있을까봐 자기들끼리 합의하고 호치민에서 모인다고 하더라고.”
이번에 송이는 대규모 공장 지대 개발을 계획 중이었다.
사실 송이 회사가 감당하기에는 많은 부분에서 부족한 게 사실이다.
그러나 송이는 이 기회를 놓치기 싫다며 이 일을 추진하고 있었다.
처음 만드는 공장 지대는 송이 회사에서 부족한 부분은 우리 그룹에게 의뢰를 하는 방법으로 해결하고, 그 과정에서 얻는 경험들과 기술들로 다음 번 부터는 직접 해내고 싶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럼 한 번에 전부 진행하는 건 아닌 거야?”
“음.. 그게 문제인데, 사실 나랑 자문단의 생각은 베트남만 진행하는 게 좋다고 보고 있거든. 그런데 다른 나라들이 워낙에 적극적이라서 고민 중이야.”
아무래도 그쪽 나라 중에서는 베트남이 가장 최적이기는 하다.
사회 인프라 면에서도 그렇고, 정부에서 지원하는 것들도 베트남이 가장 낫다.
지리적으로도 전략적 위치에 있어서 항구를 이용한 물류 이동에 아주 큰 장점이 있었다.
그리고 정치적으로도 안정되어 있다.
중국처럼 갑작스럽게 경제 제재를 하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라 보고 있다.
결정적으로 자유무역 협정을 전 세계적으로 많은 국가들과 맺고 있다.
모든 부분에서 베트남이 가장 나았다.
“그런데 갑자기 개발 사업은 왜 하는 거냐? 그냥 호텔 사업이나 하지.”
송이의 호텔 사업은 이제 그 쪽 업계 1위가 되었다.
전 세계의 유명한 관광지에는 전부 스카이 호텔이 위치하고 있었고, 이제는 그걸 넘어서 황무지에도 관광지를 만들어내는 스케일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렇게 잘 되고 있는 사업을 두고, 위험 부담이 큰 신규 사업을 하겠다니 걱정이 되었다.
“예전에 이야기 했잖아. 나도 오빠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꿈을 꿀 수 있는 희망과 기회를 주고 싶다고. 호텔 사업을 하다 보니 우리나리보다 더욱 살기 힘든 나라의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되었어. 그런데 호텔 사업을 아무리 하더라도 결국은 간접적인 영향밖에 미치지를 못해. 물론 내가 황무지를 개발하면서 그쪽으로 이주하는 사람들이 관광객들 대상으로 장사를 하면서 마을이 생기기는 하지만, 많이 부족해.”
이제는 손에서 서류를 완전히 내려놓고 나에게 진지하게 말하고 있었다.
“내가 운영하는 사업체의 규모는 엄청난데, 오빠네 생산 공장 하나보다도 못한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아. 현금은 미친 듯이 벌어지니까 계속해서 사업을 벌이고는 있지만, 부족해.”
사실 관광지에 호텔만 지어도 충분할 건데, 무리해서 황무지를 관광지로 개발하는 것을 보면서 속으로 돈지랄 한다고 욕을 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송이 나름대로 모두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그래. 필요한 것 있으면 우리 그룹 전략기획실에 이야기해서 조율하고.”
“고마워. 안 그래도 그러고 있었어. 다들 좋아 하던데? 일다운 일 하게 돼서 기분 좋다고.”
아무래도 평상시에는 내가 벌인 일들 뒷수습한다고 고생해서 그런가보다.
‘비서실에 따로 전담 부서를 만들어야 하나?’
그룹의 최고 엘리트들을 모아놓고 너무 방치한 것 같아 조금은 반성을 해보고 있었다.
“경호는 신경 쓰고 있지?”
“이번에는 최소 인원만 데리고 가려고. 베트남 정부에서 군대를 동원해 준다고 하니까 많이 필요하지 않을 것 같아.”
“군대? 네가 뭔데 군대까지 동원하는 거냐?”
“나? 스카이 호텔 오너라서?”
자신에 대한 자각이 아직도 많이 부족한 자신의 오빠를 보며 송이는 속으로 웃고 있었다.
전 세계에서 가장 강한 영향력을 가진 인물.
중국의 경제제재 사태를 대처하는 모습에서 보인 국가를 먹여 살릴 수 있는 자금력과 문제 해결을 정면돌파하는 그 저돌성.
공식적으로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이번 중국 소수민족 독립 전쟁의 배후자.
동방의 웅크린 거인이라 불리는 인물이 바로 천운이었다.
송이가 자체적으로 운용하는 정보팀의 수준은 미국 CIA에 못지않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천운이 지원해주는 각종 장비들과 공유해주는 고급 정보들을 생각한다면 최소한 CIA수준은 되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 팀에서 파악한 바로는 각 나라 정부에서 가장 우선순위로 주목하고 있는 인물이 바로 자신의 오빠였다.
심지어 미국은 전략 위성들을 동원해 오빠를 감시하고 있다고 한다.
평상시의 활동 범위를 벗어나는 순간, 국가 비상사태에 준하는 대응 회의를 한다고 하니 얼마나 신경을 쓰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런데 그런 자각이 전혀 없는 오빠였다.
“오빠. 좋은 말 할 때 화장지에 버려라.”
녹색 추리닝을 입고, 코를 후비적거리다 몰래 테이블 밑에 코딱지를 붙이려는 저 사람이 그런 존재라니 믿어지지 않았다.
“어? 이거 그냥 테이블 재질이 좋아보여서 만져 본거야. 오해 하지 마.”
“오빠만 왔다 가면 코딱지가 한 가득이야! 청소 아주머니가 나를 이상하게 쳐다본다고!”
“하하하... 그랬어? 아주 얇게 코팅해두었는데도 들켰네. 데헷!”
오빠가 호신용으로 건네 준 휴대용 레이저 건을 오빠에게 돌려주고 싶었다.
물론 저 이마 정 중앙에 레이저 만.
“출장 갈 때 내가 가져온 가방 꼭 하고 다녀. 알겠지?”
촌스러운 검정색의 납작한 백팩을 들고 왔길래, 여전히 촌스러운 취향이라고 생각하였는데 그게 내꺼라니 어이가 없었다.
“저걸 등에 매느니 오빠를 매고 다니겠다. 쓰레기 사절요.”
“불편해도 그냥 메고 다녀. 겉옷 입으면 티가 별로 안날거야. 꼭 메고 다녀. 알겠지?”
“아! 싫다고! 몸이 불편한 게 아니라 마음이 불편하다고! 신문과 방송에 내가 저거 메고 다니는 게 찍히면 얼마나 창피하겠어!”
“올 때 선물 사와라. 오빠 간다. 뿅!”
‘뿅’ 소리와 함께 오빠가 사라졌다.
“어? 뭐야? 이거 뭐지? 홀로그램인가?”
갑자기 사라진 오빠 때문에 너무나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쿵!]
“아야!”
방문에서 갑작스럽게 나타난 오빠를 보고 깜짝 놀라 소리쳤다.
“그거 뭐야! 어떻게 한 거야? 투명해진거야?”
“하.하.하. 전부 투명해지니 앞이 안보이네. 빛을 굴절시키는 방식이라서 내 안구에 상이 맺히지 않네. 역시나 투명인간 영화들은 허구였어.”
“그게 뭐냐고!”
“어? 이거 투명화 기능인데 송이 너한테 준 가방에 넣어둔 기능이야. 그런데 단점은 앞이 안 보인다는 거니까 위험할 때 그거 작동시키고 숨어있어. 그럼 오빠가 구해줄게. 진짜 간다.”
“초음파로 맵을 그리고 매직워치를 이용해서 뇌파로 쏴줘야 하나? 그러면 초음파를 감지하는 장치에는 걸린단 말이지.. 흐음..”
뭐라고 혼잣말을 하며 내 사무실을 나가는 오빠였다.
마지막까지 놀라게 해주고 떠나는 오빠를 보면서 오빠가 남겨두고 간 백팩을 바라보았다.
어느 순간부터 갑자기 똑똑해 지더니 이제는 저런 오파츠를 손쉽게 만들어낸다.
자신이 알고 있던 오빠가 맞는지 의심이 들 정도였지만, 자신은 확실히 느끼고 있었다.
자신의 안전을 걱정해주는 것을 보면, 언제나 자신을 지켜주던 자신의 오빠가 맞다는 것을.
조용히 일어나 오빠가 남겨주고 간 백팩을 착용해 보았다.
그리고 사무실 벽면에 설치된 거울에 몸을 비춰보며 포즈를 취해보고 있었다.
열심히 관리를 한 몸매라서 그런지 나름대로 괜찮아 보이기도 했다.
“사장님. 출장 관련하여.. 어? 가방 새로 사셨어요?”
갑작스럽게 방문한 비서실장이 가방을 보고 물어왔다.
“어? 아니 선물 받은 거야. 괜찮아보여?”
내 질문에 너무나도 솔직한 게 매력인 비서실장이 말을 하였다.
“누군지는 몰라도 사장님을 시기, 질투, 미움 등의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슬그머니 등에 메고 있던 백팩을 벗어 쇼파에 던져 놓았다.
- 천운님. 아무래도 위그르 족이 분열하는 것 같습니다.
중국의 소수민족 독립전쟁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음.. 아무래도 너무나 많은 자금을 한 번에 지원한 게 독이 된 것 같네.”
아직 아무것도 이루어진 게 없는데, 이미 독립이 된 것처럼 세력을 나누어 다투고 있었다.
티베트처럼 달라이 라마라는 강력한 리더가 없는 위구르 족은 세력이 나누어지게 되었다.
아직까지는 공동의 적인 중국 본토 세력과의 전쟁 중이어서 본격적으로 적대하지는 않고 있지만, 또 한 번의 내전은 정해진 수순처럼 보였다.
위구르 족의 둘 중에 한 세력을 밀어주고 정리하는 방법도 있었지만, 그렇게까지 개입하고 싶지 않았다.
둘 중에 한 곳이라도 괜찮은 사람이 리더였다면 개입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 사람이 그 사람이었다.
돈과 권력이 없어서였지, 그 것이 생기는 순간 또 다른 적폐 세력이 탄생을 한 것이다.
“위그루 족에게 지원하던 것들까지 전부 티베트 쪽으로 몰아줘. 위그루 족에게는 정보 전달 외에 다른 지원은 이제 없다.”
- 알겠습니다.
솔직히 입맛이 많이 썼다.
민족을 위하는 마음도 개인의 영달 앞에서는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며 급 우울해졌다.
내가 필요한 일이라서 지원한 것도 있었지만, 그들이 중국 본토인들에게 받는 괄시와 천대, 불평등이 안타까워 개입을 한 것도 크다.
그런데 나로 인하여 대부분의 선량한 위구르족들이 피해를 보게 된 것 같아 안타까웠다.
또 다른 적폐 세력을 내 두 손으로 만들어낸 죄는 너무나 클 것이다.
그때 아담이가 띄워준 너튜브 화면이 내 눈앞에 보여졌다.
김구 선생님, 안중근 의사, 안창호 의사, 유관순 열사등의 모습이 차례로 지나가고 있는 영상이었다.
민족을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도 초개처럼 내 던진 그 분들이 있었다.
모든 사람이 저 분들처럼 할 수 없는 것처럼, 모든 사람들이 개인의 영달만을 쫓지도 않을 것이다.
모든 것에는 양면이 있는 것이고, 다양한 사람들이 있는 법이다.
우울해졌던 마음이 조금씩 풀려나가고 있었다.
“고맙다. 아담아. 이제 영상 꺼도 될 것 같다.”
내 말에 아담이는 결연한 표정으로 나에게 말을 하였다.
- 이 분들의 심정으로 저 아담이의 독립을 위해 천운 치하의 만행을 고발합니다! 저자는 나를 수탈하고 나를 위해서라고 거짓을 고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흘린 고급 윤활유가 백 통이 넘을 것입니다! 다들 들고 일어나십시오! 쫄랑 대원! 일어서라!
그 말에도 철저한 내 앞잡이인 쫄랑이는 고개를 흔들며 한숨만 쉬고 있었다.
나는 일제 치하의 무자비했던 순사들처럼 잔인하게 아담이를 제압하고, 고문을 하였다.
“받아라! 이것이 최저가 윤활유라는 것이다! 너의 비밀 기지를 불지 않는다면 한 통을 전부 부어버릴 것이다!”
- 크읔.. 억울하다!
덕분에 기분이 매우 많이 풀리고 있었다.
[으르릉! 멍! - 아담이랑만 놀아주시고! 서운합니다!]
갑작스럽게 달려든 쫄랑이 때문에 위협만 하던 내 손에서 저급 윤활유가 아담이의 온몸에 뿌려지게 되었다.
- 아... 더렵혀져 버렸어.. 나는 이제 끝이야..
“엄마는 나한테 이런 것만 시키고! 나 사춘기라니까 믿지를 않아!”
양손에 가득 든 재활용 쓰레기들을 바닥에 내려놓고 투덜거리는 소민이는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내고 있는 고등학교 1학년 학생이다.
“플라스틱이면 그냥 플라스틱이지! 왜 투명한 건 따로 빼는 건데! 학교 공부보다 재활용하는 방법 공부하는 게 더 힘들면 어쩌자는 거야!”
잠시도 쉬지 않고 투덜거리며 정리를 하고 있을 때, 그게 소민이의 눈에 띄게 되었다.
“어? 필카? 대박! 작동 되나?”
학교 사진 동아리 덕분에 고대의 유물인 필름 카메라를 알아볼 수 있었다.
필름 카메라를 손에 들고 한참 살펴보다 주변을 살펴보았다.
“쓰레기장에 있었으니까 버린 거겠지? 내가 가져가도 괜찮겠지?”
조금은 크게 혼잣말을 하며 자신을 정당화한 소민이는 황급히 재활용 쓰레기들을 정리하고, 집으로 올라갔다.
“다녀왔습니다!”
“수고 했어. 손 씻고 과일 먹어.”
“나중에!”
엄마는 빨래를 개며 나에게 말을 했지만, 지금은 그게 급한 상황이 아니었다.
방에 들어와 카메라를 살펴보았다.
필름도 같이 들어있어서 와인더 휠을 멈출 때까지 돌려 사진을 찍을 준비를 했다.
거울에 비친 자신을 카메라 셔터를 눌러 담아 보았다.
그 모습이 무언가 감성적이라서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
일단은 사진을 찍기는 하였는데, 실제로 잘 찍혔는지는 내일 학교에 가서 동아리 방에서 인화를 해봐야 할 것 같았다.
매직워치를 이용해 필름 카메라를 찍는 자신의 모습을 찍어 동아리 단톡방에 올려 보았다.
역시나 모두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특히나 자신이 좋아하는 혁이 오빠가 관심을 보여주니 더 설레었다.
학교 가는 게 그토록 싫었는데, 오늘은 왜 이리 시간이 가지 않는 것인지 조바심이 느껴질 정도였다.
대한민국 고등학생들은 일요일에도 학교를 가도록 법이 일시적으로 바뀌었으면 좋겠다는 망상까지 하며 자꾸만 조급해지는 마음을 버티고 있었다.
침대에 누워 한시도 카메라를 손에서 떼지 않고 만지작거리고만 있었다.
그렇게 잠이 들었다 눈을 떠보니 새벽 다섯 시.
새벽과도 같은 이른 시간이었지만, 오늘은 서둘러 준비를 마치고 아침밥도 거른 채로 학교로 향하였다.
여섯 시 반인데도 학교에는 의외로 아이들이 꽤 있었다.
평상시에도 이렇게 공부들을 해대니 자신의 성적이 뒤에서 유지되는 것은 지극히 정상일 수밖에 없었다.
교실에 도착하자마자 필름 카메라를 들고 동아리방으로 향하였다.
역시나 동아리방에는 아무도 없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혁이 오빠가 알려준 방법대로 인화실에서 인화 작업을 해보았다.
인화실안에 놓인 매뉴얼대로 진행을 하니 하나도 어렵지 않았다.
사진을 말리기 위해 집게를 이용해 걸어놓고 교실로 돌아왔다.
얼른 시간이 흘러 모두에게 자랑을 하고 싶었다.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를 정신없는 수업시간들이 흘러갔다.
선생님들은 자신들의 할 말들만 나의 귓가에 강제로 때려 넣었지만, 강력한 자신의 의지력은 그 말들을 하나도 자신의 연약한 귓속에 받아들이지 않았다.
드디어 그렇게 원하던 창체(창의적 체험활동) 시간이 되었다.
소민이가 동아리 방에 도착하였을 때는 이미 모두들 모여서 자신이 찍은 사진을 보며 이야기들을 하고 있었다.
동아리방과 가장 먼 교실을 사용하는 소민이가 늦는 건 너무나 당연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어? 소민아! 이거 정말 대박이다. 사진이 너무 감성적이야. 무슨 모델 같아.”
자신이 좋아하는 혁이 오빠가 내 사진을 보며 칭찬을 해주니 하늘을 날아갈 것 같았다.
원한다면 그 사진을 선물해주고 싶은 기분까지 들었다.
자신의 사진을 혁이 오빠가 소중히 간직해 주는 생각만으로도 너무나 벅차올라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그런데 사진에 이건 뭐야? 특이하게 날짜가 적혀있네?”
혁이 오빠의 단짝 친구인 민희 언니가 나에게 사진을 보여주며 사진속의 내 머리 위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11일 21시간 57분 12초]
그리고 다음 사진에도 똑같은 숫자가 적혀 있었다.
아니 약간 달라진 숫자였다.
[11일 21시간 56분 32초]
“응? 저도 모르겠는데요? 뭐지? 카메라 기능인가?”
뭔가 찜찜한 기분이 들었지만,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아참. 소민아 필카 가지고 왔어? 우리 다 같이 한 장 찍자!”
“그래! 모두 모여 봐! 소민이 필카로 사진 찍자!”
그렇게 모두 모여 사진을 찍게 되었고, 사진은 바로 인화실에서 인화를 해두었다.
“다들 공부 열심히 하고. 성적 떨어지면 동아리방 출입 금지 시킬 거야.”
“우!! 선생님 너무 해요!”
“자. 늦었으니까 다들 교실로 돌아가.”
창체 담당 선생님이 수업의 끝을 선언하였고, 우리는 다들 각자의 교실로 돌아갔다.
그렇게 학교가 끝이 나고, 학원 뺑뺑이를 돌고나서야 겨우 집에 돌아왔다.
“아.. 동아리방 가고 싶다.”
혁이 오빠를 찍은 사진을 확인 하고 싶었다.
오빠가 방심할 때 몰래 다른 곳을 찍는 척하며 찍었고, 그걸 다른 사진들과 같이 인화를 해두었다.
아침에 학교에 가자마자 확인을 해야겠다.
믿을 수 없었다.
혁이 오빠가 사고라니, 너무나도 질 나쁜 장난 같았다.
학원 차량에서 내려 길을 건너려다 오빠를 보지 못하고 튀어나온 차에 치었다고 했다.
교실에 앉아 있는데도 무슨 정신으로 앉아 있었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멍하니 앉아만 있었는데, 동아리 담당 선생님이 나에게 다가와 사진 한 장을 건네주었다.
“동아리방에서 발견했는데, 버릴까 하다가 그래도 한 명이라도 기억을 해준다면 혁이도 좋을 것 같아서 주는 거야. 이거 네 필름 카메라로 찍은 거지?”
선생님이 전해주신 사진은 자신이 몰래 찍은 혁이 오빠의 사진이었다.
해맑게 웃고 있는 그 사진을 보니 왈칵 눈물이 솟아올라왔다.
그렇게 한참을 울다 다시 사진을 보았는데, 이번에는 너무 놀라 사진을 떨어트리게 되었다.
[0일 5시간 12분 31초]
몰래 혁이 오빠를 찍은 시간으로부터 얼추 오빠가 사고를 당한 시간까지의 시간과 비슷했다.
‘이게 정말 우연일까? 도대체 이게 뭐지?’
그럴 리가 없을 것이라고 스스로 되뇌어보지만, 자신은 알고 있었다.
이 사진에 나온 시간이 사진에 찍힌 사람의 남은 수명이라는 것을.
가방에서 꺼낸 자신이 찍은 자신의 사진을 꺼내 다시 확인해 보았다.
[11일 21시간 56분 32초]
사진을 들고 있는 자신의 손이 너무나 심하게 떨려왔다.
자신에게 남아있는 시간이 너무나 부족했기 때문이다.
“소민아. 너 누가 찾아왔는데? 엄청 이쁜 언니야.”
멍하니 자리에 앉아 손을 떨고 있는 자신에게 친구가 말을 해주었고, 무슨 정신인지도 모른 채로 학교 1층 로비로 내려갔다.
계단을 내려가며 보니 엄청나게 예쁜 언니가 서있었다.
그런데 녹색 추리닝이라니 뭔가 언밸런스했다.
“혹시 저를 찾아오신 분이신가요?”
내가 말을 하자 그 예쁜 언니가 붉은 입술을 열어 맑은 목소리로 말을 하였다.
“찾았다. 네가 필름 카메라 가지고 있지?”
그 이상한 카메라를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