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4화 (144/170)

성장통

[0일 14시간 12분 31초]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연구소를 뛰쳐나갔다.

어제 소민 학생이 연구소에 들어온 시간이 오후 3시 12분 경.

사진을 찍은 시간은 오후 3시 22분경이었다.

그리고 그 시간으로부터 14시간이 지난 시간은 바로 15분 뒤였다.

새벽의 거리에는 사람들이 드문드문 있었다.

도로에는 자율 주행 차량들과 힐링 버스가 활기차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내 망막에 띄워 놓은 남은 시간은 [13분 32초]

‘차로 가면 늦다!’

차로는 과속을 하더라도 약 20분 정도가 걸리는 위치에 소민 학생의 집이 있었다.

오랜만에 미친 듯이 달리고 있었다.

특수하게 제작된 런닝 머신에서 뛸 때보다 족히 두 배는 빠르게 뛰는 것 같았다.

공중으로 점프를 한 내 발밑으로 저 멀리 인도와 차도들이 아찔하게 보이고 있었다.

‘좌측 빌딩 옥상으로. 지금!’

[팍! 팍! 팍! 투확!!]

비슷한 높이의 빌딩 옥상으로 옮겨가며, 엄청난 속도로 달려가고 있었다.

아니. 날아가고 있었다.

눈앞에 띄워놓은 카운트는 어느새 [32초]

아직 소민 학생의 아파트는 보이지 않는다.

‘분노의 급발진!’

오랜만에 써본 [분노의 급발진]은 새로웠다.

강인하게 단련된 근육들이 펌핑 되다, 오히려 압축이 되었다.

그리고 심장 박동은 거대한 울림을 일으키며 내 몸의 모든 감각을 일깨웠다.

내 몸이 무언가 다른 차원에 들어선 것 같았다.

비록 최하급의 재능이지만, 지금 나에게 만큼은 최상급 이상의 효율을 발휘해 주었다.

육체의 한계를 잠시 넘게 해주는 재능이었지만, 인간의 한계를 초월해 단련한 나의 한계를 살짝 넘게 해주니 새로운 세계가 펼쳐졌다.

초인지(超認知) 감각으로도 빠르다고 느껴질 정도의 힘과 속도였다.

[퍼엉!]

나를 막아서던 것들이 터져나갔다.

내가 땅을 딛는 소리가 내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그 한계를 넘어서니 오히려 달리기가 수월해졌다.

그러나 수월해진 것은 뛰는 그 자체가 편해진 것 뿐이었다.

내 몸에 부딪치는 공기의 칼날에 옷이 예리하게 잘려나가고, 내 얼굴의 피부가 약한 화상을 입기 시작하였다.

남은 시간은 [9초]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

하늘 마을.

소민 학생의 아파트 단지가 보이기 시작하였다.

눈을 때리는 공기와의 마찰에 눈을 질끈 감고 싶었지만,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하며 눈을 부릅떴다.

‘103동 15층!’

내 인지 능력은 순식간에 위치를 잡아내었다.

베란다 창문이 열린 집이다.

베란다 창문에서 누군가가 베란다에 설치된 추락 방지 난간을 넘어서고 있었다.

[3초]

아슬아슬하게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내 착각이었다.

사진속의 그 시간은 죽는 시간을 표시하였으니, 그 죽음을 위해 행하는 행동은 3초 남은 지금이었다.

15층에서 낙하하는 그녀가 보였다.

무엇이 그리 슬펐는지 모르겠지만, 지금 내 눈앞에서는 안 된다.

12층.

내 눈앞에서 저리 어린 아이의 목숨이 끝나는 것을 나는 용납할 수 없었다.

8층.

아무리 힘들어도 살아있어야 모든 것이 의미가 있다.

5층.

끝이 보이지 않는 삶이지만, 살아있어야 미래가 있다.

1층.

그러니 힘겹겠지만, 살아야 한다.

[콰앙!!! 우르르릉..]

소민 학생은 엄청난 높이에서 나에게 떨어졌지만, 그 충격은 나에게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하였다.

그러나 달려오던 속도에 화상을 입은 내 피부와 실명한 눈동자에서 오는 고통.

그리고 소민학생을 받아내고도 너무나 빠른 속도에 멈추지 못해 들이박은 아파트 벽에 부딪친 것이 치명타였다.

아파트 벽에 부딪치는 순간, 살짝 정신을 잃을 뻔 하였지만, 너무나 큰 고통에 다시 정신이 되돌아왔다.

“커억..”

내장이 상했는지 토할 것 같았고, 머릿속에서는 계속 위잉 거리고 있었다.

입에서는 기침과 함께 무엇인가가 내 입에서 토해져 나오고 있었다.

[삐웅! 삐웅! 삐웅!]

내가 부딪친 아파트 벽은 무너져 내렸고, 아파트 단지에 주차된 차량들에서는 경보음이 울리고 있었다.

잠시 뒤, 아파트 단지에서는 사람들이 맨발로 뛰쳐나오는 소리가 들렸다.

“지진이야? 뭐야?”

“폭탄 떨어진 거 아니에요? 전쟁 난거야?”

“엄마... 무서워..”

터져 나오는 기침을 참아내고, 품안의 소민 학생의 심장 박동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질끈 감고 있는 두 눈에서 엄청난 통증이 느껴졌지만, 나보다는 소민 학생의 상태가 더 중요했다.

움직이지 않는 소민 학생이었지만, 다행히 고르게 뛰는 심장 소리와 숨소리가 느껴졌다.

떨어지는 상황에 대한 심리적인 충격에 잠시 기절한 것 같았다.

“살았구나.. 정말 다행이다.. 쿨럭..”

힘겹게 아담이에게 연락을 해서 뒷수습을 맡겼다.

그리고 나는 곧이어 도착한 민이의 도움을 받아 사방을 더듬거리며 겨우 차에 올라타, 사고 현장을 벗어날 수 있었다.

- 아. 아. 이장입.. 아니. 아담입니다. 전략기획실과 비서실 분들은 긴급히 상황 정리를 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분이 이번에는 아파트를 무너트릴 뻔 하였습니다. 다행히 벽만 무너트렸으니 아파트 복구 작업과 주민들 피해보상만 해주시면 되는 아주 작은 일입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보너스는 평소처럼 300% 지급될 예정이니 최선을 다해주시기 바랍니다.

마치 여러 번 해본 것처럼 뒷수습은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하아.. 내 다시는 회장님 욕 안하기로 했었는데..”

“수혁대리 뭐해? 104동은 다 돌았어?”

“네! 지금 105동 돌 차례입니다!”

“그래. 수고 좀 해줘. 나는 관리사무소 들려서 마무리 협의 좀 할게.”

“네. 수고 하십시오.”

아무래도 오늘도 비밀 일기장에는 회장님에 대한 내 욕으로 도배가 될 것 같았다.

“크윽...”

“정신이 드십니까?”

아무래도 차에 타자마자 기절을 했었나보다.

“고맙다. 민아. 그런데 생각보다 상태가 괜찮은 것 같네.”

보이지 않던 두 눈에 걱정스런 표정의 민이의 얼굴이 선명하게 잘 보였다.

아무리 내가 [응원] 재능 덕분에 괴물과도 같은 회복력을 지녔다지만, 진짜 괴물은 아니다.

“아! [빨간약]을 주사 했습니다. 상태가 너무 심각해보여서 주사했는데, 그냥 놔뒀어도 괜찮을 뻔 했나요? 그런데 사부님의 회복력이 게임에 나오는 트롤 급입니다! 아! 그래서 ‘론’ 하실 때 트롤 짓을 자꾸 하시는 건가요?”

“야! 그건 탑신병자인 네가 문제인거고! 시도 때도 없이 정글 불러대는데 내가 클 수가 없잖아! 2대 1이면 뒤로 빼야지 왜 자꾸 들이 대냐고!”

“아니! 한 대만 더 패면 죽이고 점멸로 빠져나오면 되는 각이었는데! 어떻게 참습니까!”

“그래서 나까지 말려들게 한 게 잘못이 아니라고?”

“저... 정말 죄송해요..”

둘이서 한 참 티격태격 하고 있는데, 옆에서 사과의 말소리가 들렸다.

“아. 소민학생 괜찮아요?”

얼마나 울었는지 눈이 거의 떠지지 않고 있는 소민 학생이었다.

“정말 죄송합니다..”

고개를 다시 숙이고 사과만 하고 있는 소민학생을 의자에 앉히고 달래주었다.

“음.. 많이 슬프고 힘들죠?”

“네? 네...”

“슬프고 힘든 게 너무나 당연해요. 많이 슬퍼하고 힘들어 해도 되요. 그래도 죽지는 말아요. 지금 느끼는 그 슬픔과 고통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느끼게 하지 말았으면 해요.”

“아...”

“저도 제 아버지를 잃어보았어요. 너무나 큰 고통에 실명을 할 뻔도 했고요. 그런데 그 고통을 다른 가족에게까지 겪게 하고 싶지 않더라고요. 그 생각으로 버텼어요. 소민 학생도 버티세요. 버티다 보면 살아지게 되요. 아무것도 못할 것 같지만, 하게 되요. 밥을 먹게 되고, 잠을 자게 되요. 학교도 갈 거고, 친구들의 장난에 웃게도 될 거에요.”

내 말이 이어지고 있는 동안에도 소민 학생은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꽉 쥔 무릎위의 주먹에 일정한 간격으로 물방울이 떨어져 흘러내리고 있었다.

“죄책감이 들 거예요. 맛있는 걸 먹을 때도, 친구의 장난에 웃을 때도, 좋아하는 음악을 들을 때도 마찬가지예요. 그래도 살아요. 살다보면 무뎌지는 때가 올 거예요. 그렇게 견디며 사는 게 인간인 법이예요. 많은 시간이 흘렀을 때도 가끔 가슴 한구석이 아려올 테지만, 견딜 만해질 거예요. 제가 장담해요.”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끼는 소민학생을 민이가 조용히 안아주었다.

“저만 혁이 오빠를 좋아하는 줄 알았어요... 바보같이.. 그냥 제가 먼저 말을 할 걸.. 뭐가 그렇게 무서웠는지 말을 못했어요.. 그냥.. 제가 차일 용기만 있었다면 서로가 한 발짝 씩 더 가까워졌을 텐데..”

한 소녀가 인생에서 가장 큰 아픔 중에 하나를 겪으며 성장하고 있었다.

내 눈앞에 있던 여리디 여렸던 학생은 지독한 성장통을 겪고 있었다.

큰 고통을 견디어 내면 그 대가가 반드시 되돌아온다.

이 어린 학생은 크나큰 상실의 고통을 견디어 내기 위해 노력을 시작하였다.

“제가.. 잘 살아갈 수 있을까요?”

거기에 아주 약간의 용기만 더 있으면 된다.

“많이 아프고, 많이 힘들겠지만 견딜 수 있어요. 사람은 생각보다 더 잘 견디고, 잘 버텨내요. 그리고 아주 작은 도움이겠지만, 우리가 도와줄게요.”

이미 신청해놓은 체험 학습 시간을 그대로 진행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원래 계획했던 소민학생을 지키고자 준비했던 것들이 아니라, 소민학생이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주기 위해 노력하였다.

아이돌 연습생들의 새로운 인생을 위한 수업들에 소민 학생도 같이 참여를 하였다.

바리스타 수업도 듣고, 제빵 수업도 들었다.

미래에 대한 계획들을 세우는 연습생 출신들의 언니, 오빠들의 옆에서 소민 학생도 미래에 대해서 고민해보고 있었다.

그렇게 약속된 시간들이 지나고 소민학생은 떠날 시간이 되자 웃고 있었다.

“저 사실은 하고 싶은 게 하나도 없었어요. 그냥 나중에 원하는 게 생겼을 때 취미로 하면 된다고 들었었거든요. 제 주변 친구들도 전부 그렇고요. 그런데 정말 열심히 노력하는 언니, 오빠들을 보면서 많은 것을 느끼게 되었어요. 저도 이제 하고 싶은 일이 생겼어요.”

“그렇군요. 다행이네요. 실례가 안 된다면 하고 싶은 일이 뭔지 알려줄 수 있을까요? 너무 궁금하네요.”

그 말에 수줍게 웃으며 말을 해주었다.

“상담사요. 힐링님처럼 힘든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졌어요.”

생각보다 훨씬 빨리 어른이 되어가고 있었다.

처음 보았을 때의 그 여린 학생이 이제는 당당하게 자신이 하고 싶어 하는 일에 대해서 말을 하고 있었다.

“들어서 알겠지만, 이번 체험 학습을 이수하면 힐링 그룹 입사에 가산점이 있다고 했죠? 꼭 우리 회사에 지원해줘요. 힐링 타운에는 소민 상담사님이 필요합니다.”

내 말에 두 볼이 빨개진 소민 학생이 수줍게 웃고만 있었다.

“자. 이제 마지막이니 선물하나 드릴게요. 사실은 많이 고민하고 망설였는데, 소민 학생이 잘 견딜 수 있다고 생각이 들어서 드리는 선물이니 잘 버텨줘요.”

[띠링!]

소민 학생의 매직워치에 알림음이 들려왔다.

“어? 일기장 어플? 저 이거 이미 있는 건데요?”

“거기 잘 보면 비밀 일기장이 있을 거예요. 나중에 혼자 있을 때 읽어봐요.”

뭔지 모르겠다는 표정의 소민 학생을 웃으며 집으로 돌려보냈고, 나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정말 길게 느껴진 시간들을 되돌아보았다.

누구에게나 상실의 고통은 아프다.

사람들마다 느끼는 고통의 강도는 다를 수 있겠지만, 고통 그 자체는 누구나 느낀다.

소민 학생처럼 너무나 큰 슬픔에 자신의 삶을 포기하고 싶어지는 사람들도 있고, 나처럼 견디다 무뎌지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그렇게 각자의 방식대로 그 아픔들을 견디어 내는 것이 사람이고, 그게 인생이다.

내가 떠나갈 때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덜 고통스럽고, 덜 슬펐으면 싶다.

그러려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납득할 만한 인생을 살아가야 하고, 모두의 곁에서 편안하게 눈을 감아야 한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행복하게 살다 편안하게 눈을 감고 싶다.

“오랜만에 아버지 보고 싶네.”

언젠가는 아버지의 멈춰있는 나이와 같아지는 날이 올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보다 더욱 많은 나이가 될 것이다.

지금 내 나이 즈음에 아버지는 고통스러운 삶을 시작하셨다.

나와 송이를 남겨두는 선택을 하셨을 때는 어떤 기분이셨을까?

돌이켜보면 내 나이의 아버지는 나에게 너무나 큰 어른이셨다.

뭐든지 다 하실 수 있을 것 같았고, 그 키는 천장에 닿을 듯이 커보였다.

내가 아무리 힘든 일이 생기더라도 아버지는 척척 다 해내셨다.

먹고 싶은 음료수 병 뚜껑이 열리지 않을 때에도, 인형 뽑기 기계에서 원하는 인형이 뽑히지 않을 때에도 아버지는 너무나 쉽게 해내셨다.

‘그래도 인형 뽑기에 10만원은 너무 과했지. 하하하’

엄마의 ‘그냥 돈 주고 사지’라는 말이 아직도 뇌리에 남아있었다.

아버지가 엄마에게 혼날 때 나는 그저 아버지가 뽑아준 그 인형이 너무나 좋아 신나하고만 있었다.

사실은 그 옆에 있던 인형을 가지고 싶었지만, 이제는 그 인형보다 이 인형이 더 좋아졌다.

‘응? 그런데 그 인형이 어디 갔지? 기억이 안 나네.’

[띠링!]

매직워치에 송이가 보내온 사진과 메시지가 도착하였다.

[베트남 도착! 여기 정말 좋다. 나중에 엄마랑 오빠도 같이 놀러 오자. 수고해!]

메시지와 같이 보내온 사진에는 예쁜 모자를 쓴 송이가 비행기에서 내리기 전에 웃으며 손가락으로 브이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송이의 캐리어에 낯익은 인형이 보였다.

“어? 저게 저기 있었네. 아! 맞다! 그때 송이한테 줬었지?”

엄마와 아버지가 우리를 남겨두고 떠난 날.

송이는 울다 지쳐 잠이 들었다.

그런 송이를 지켜보던 나는 그저 멍하니 앉아만 있었다.

송이는 자다 깨서 다시 울고, 울다 지쳐 다시 잠이 들길 반복했었다.

나는 멍하니 앉아 그런 송이를 지켜만 보며 내가 제일 아끼는 그 인형을 만지작거리고만 있었다.

그러다 다시 깬 송이가 울려고 하자 그 인형을 송이에게 줘버렸다.

우리를 버린 아버지가 미웠고, 아버지가 미워지니 그 소중했던 인형도 미워졌다.

그리고 송이의 우는 소리도 듣기가 싫었다.

그래서 그 인형을 송이에게 줘버렸다.

평상시에도 항상 가지고 싶어 하던 눈치였지만, 워낙에 내가 애지중지하니 말도 못하던 송이였다.

다시 울려던 송이는 내가 내민 인형을 보고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나를 올려다보았다.

“너 가져. 그만 울고.”

“고마워.. 오빠..”

송이는 내가 준 그 인형을 손에 꼭 쥐고 잠들었다.

그렇게 송이와 나만 존재하는 첫날밤이 지나갔다.

“아직까지 가지고 있었네.”

몇 번 터져서 내가 다시 꿰매주고는 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나에게 더 이상 부탁을 해오지 않았다.

소중한 물건이니 자신이 직접 하고 싶다고, 열심히 조그마한 손가락을 이용해 바느질을 하던 송이가 생각났다.

손가락을 찔려 눈물을 찔끔대면서도 기어코 해내던 의지가 강하던 내 동생.

연구실 책상위에 소중히 놓여있는 청첩장이 보였다.

가장 먼저 주고 싶었다고 하며 건네준 송이의 가장 첫 번째 청첩장.

어차피 결혼해서도 같은 마당을 공유하며 살아야하니 별반 달라질 게 없는데도 마음이 싱숭생숭 했다.

방금 전 고치를 깨고 성장을 한 소녀를 보게 되어서인지 감정이 고조되어 있어서 그런 것 같았다.

누구보다 강인한 내 동생은 잘 해 나갈 것이다.

항상 그랬다.

나는 바보처럼 이리저리 휘둘려 다닐 때도 송이는 씩씩하게 모든 것을 잘 해 나갔다.

어떤 때는 송이가 오히려 누나 같을 때도 있었다.

그런 송이가 이제는 내 곁을 벗어나 스스로의 가정을 이루려고 하고 있었다.

몇 번을 다시 읽어본 청첩장이었지만, 읽어볼 때마다 감정이 북받쳐 올라왔다.

“잘 커줘서 고맙다. 우리 송이.”

[긴급 구조신호 발생. 대상자 천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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