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장가.
‘천마 강림이 천마인 강림 차사라는 말이었어?’
- 하하하. 어쨌든 불러 주셨으니 세시진(여섯 시간) 동안은 휴가로군요. 좋습니다. 요즘 월직 차사님이 자리를 비우셔서 그쪽 일까지 제가 하다 보니 스트레스가 많이 쌓였는데, 조금 풀다 가겠습니다.
“아.. 네.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 흐음... 향기로운 피 냄새로구나. 근 칠백년 만인가? 비록 소환된 상태라 사자로서의 능력에는 제약이 있지만, 생전에 쌓은 무술은 그대로 사용이 가능하니 실망시켜주지는 않을 것이다. 자 오거라. 날파리들아.
갑작스러운 강림 차사의 등장에 다들 당황하였지만, 어차피 한 명이 늘어났을 뿐이니, 자신들의 숫자를 믿고 달려들기 시작하였다.
- 하하하하하!!! 즐겁구나! 울부짖어라 미물들아!
강림 차사.. 아니. 천마가 팔을 들어 올리니, 모든 것이 숨을 죽이기 시작하였다.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던 무인들도, 그들의 움직임에 부산히 피어올랐던 먼지들도, 심지어는 공기의 흐름까지도, 모든 것이 숨을 죽이며 그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에게서 피어나오는 기운은 너무나 거대하고 음울하였다.
마치 거역할 수 없는 죽음처럼.
- 이것이 너희들의 선조들을 도륙한 [수박]이라는 것이다!
나는 천마의 움직임을 똑똑히 보았다.
그건 내가 배운 수박과 같으면서도 너무나 달랐다.
염라대왕님의 주먹 지르기를 더 잘 하고 싶은 마음에 도깨비 서버에서 발견한 수박을 열심히 수련하였다.
염라대왕님의 조언에 따르면 기초부터 다시 쌓는다면 새로운 길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말 때문이었다.
신체 능력은 이미 완성된 무인을 능가하고 있었고, 지고한 경지에 살짝 발을 담가놓아서인지 순식간에 수박에 익숙해졌다.
그런데 내가 배운 수박과 천마의 수박은 기본은 같지만, 종국에 도달한 곳은 너무나 먼 반대편인 것 같았다.
[스아악!]
‘손날 베기’
가장 앞에서 달려오다 천마의 기운에 놀라 멈춰서버린 소림 승려들의 목이 거짓말처럼 허공으로 떠올랐다.
- 이것도 받아 보거라!
‘가람 가르기’
[가람 - 강의 우리말]
아미파의 여승들이 진법을 펼치며 일렬로 서있다 천마의 [가람 가르기]에 두 배의 인원으로 늘어나 좌우로 갈라졌다.
- 반항 해 보거라! 미물들아!
‘가온 길 걷기’
[가온 길 - 가운데 길]
순식간에 무림인들의 뒤를 점한 천마가 양손을 들어 올리며 외쳤다.
- 이것이 바로 나의 바람 오의! [소소리 바람]이다!
[소소리 바람 - 이른 봄에 살 속으로 기어드는 차고 음산한 바람]
천마의 손짓에 스산한 바람이 불어왔다.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강하지는 않았지만, 모두의 몸을 으스스 떨리게 만드는 차갑고 음산한 바람이었다.
“크억!”
누군가 피를 토하며 쓰러지자, 나머지들도 하나 둘 씩 피를 토해내며 쓰러지기 시작하였다.
‘이대로면 전부 다 죽겠다!’
내가 익힌 수박과는 많이 다른 강림 차사님의 바람 오의에 모든 무림인들의 경맥이 박살나며 죽어가고 있었다.
다 죽여서는 안 된다.
다 죽이고자 이리 힘들게 저들을 모으고, 힘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그들을 제압하고, 굴종시키기 위함이지 모조리 죽이기 위함이 절대 아니다.
“명지바람!”
[명지바람 - 보드랍고 화창한 바람]
내 손에서 피어오르는 보드랍고 시원한 바람이 천마의 손에서 발생한 그 차갑고 음산한 바람을 부드럽게 감싸며 중화를 시켜주었다.
수박은 같은 것으로 시작하지만, 그것을 익히는 사람의 자세와 마음가짐에 따라 모든 것이 달라진다.
오의도 마찬가지다.
강림 차사님이 익힌 바람 오의 중 [소소리 바람]과 내가 익힌 바람 오의 중 [명지바람]처럼.
같은 손날 베기에서 파생된 바람 오의였지만, 그와 나의 바람 오의는 너무나 달랐다.
“차사님! 전부 다 죽이시면 안 됩니다!”
- 어? 귀인이셨습니까? 내 [소소리 바람]에 맞서다니 정말 대단하군요! 역시나 천상의 신으로 예정된 분은 다르기는 한가봅니다. 내 나이 100이 넘어서야 완성한 오의인데, 40줄도 안되신 귀인의 오의가 저와 비등하다니 대단합니다.
나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워주시는 차사님에게 얼른 말을 하였다.
“이들을 전부 죽이시면 누구와 협상을 하겠습니까?”
- 아! 그렇군요. 제가 이놈들의 선조들에게 쌓인 게 너무 많아서.. 하하하. 죄송합니다. 그래도 귀인이 손을 쓰신 덕분에 반이나 살아남았군요.
잠깐 사이에 반이나 죽어버렸다.
특히나 소림과 아미파는 거의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다.
“아담! 포위한 인원들 동원해서 제압하고.. 아니다. 얼른 응급처치부터 해라.”
- 넵! 명에 따릅니다!
기둥 뒤에 숨어 고개만 내민 아담이가 대답했다.
곧이어 안드로이드 부대들이 투입되어 사망자와 중상자를 분류하고, 위급한 순서대로 노틸러스호로 이동하여 응급 수술을 시작하였다.
천마 강림 재능을 사용하고, 단 오 분만에 벌어진 참사였다.
“도대체 무슨 원한이 있으시기에 이리도 심하게 대하신겁니까?”
내 말에 강림 차사님은 멋쩍어 하시며 말을 하셨다.
- 저만의 수박 오의들에 발을 들이고, 그것을 시험해보고자 천방지축처럼 날뛰었지요. 그러다 저를 말리러 왔던 저승사자들과 한 바탕을 하고, 겨우 몸을 빼내어 이곳으로 도망 왔었습니다. 하하하. 그때 패주었던 사자들이 지금은 제 수하들이 되었으니 참 세상 알다가도 모를 일이지요.
점잖게 생기신 것과 다르게 아주 과격하신 분이었다.
그러니 저기 중동의 [세트]신을 소멸 시키려고 하였고, 이곳에서는 천마라는 무시무시한 이름으로 불리고 있는 것이다.
다른 시스템 관리자들도 강림 차사님 이름만 들어도 치를 떤다고 하였다.
- 그러다 이곳에서 부상을 치료하며 숨어 지내고 있었는데, 이놈들이 아주 악질적이더군요. 민초들에게 보호비 명목으로 돈을 뺏어가고, 기분 나쁘면 목을 베고, 마음에 드는 여자가 있으면 어린 아이든, 유부녀든 상관없이 벌건 대낮의 길거리에서도 취했습니다. 어찌 이런 모습을 보고 그냥 지나칠 수가 있겠습니까?
말을 들어보니 나라도 참을 수 없었을 것 같았다.
- 결국에는 그 문파를 찾아가 혼내주었는데, 그 문파를 후원해주는 다른 문파가 덤벼들었고, 그 문파를 정리하니 무슨 무림맹인가 하는 것이 덤벼들어서 박살을 내주었습니다. 그러니 전 무림인들이 모여들어서 한 바탕을 했는데, 다행히 전투를 지속하다보니 저만의 오의들을 완성하여 이길 수 있었죠. 그래서 이놈들한테 복종의 맹세를 시키고, 민초들을 수탈하지 않도록 서약을 받았는데 잘 지켜졌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무슨 일이 있으셨나요?”
- 아하하.. 그게 이쪽 시스템 관리자들이 염라대왕님께 항의를 해서... 염라대왕님께 제압되어서 끌려가게 되었지요. 저 때문에 탈모가 심해지셨다며 화가 잔뜩 나셨더라고요. 하하하하!
염라대왕님의 물리 마법에서 살아남아 제압만 당하셨다니, 정말 대단하시다.
- 사자가 될 것인지, 아니면 지옥불에 구워질 것인지 제안을 하셔서 어쩔 수 없이 사자가 되었지요.
“저.. 그런데 그 용궁의 용왕님과 토끼 이야기는 무슨 일인가요?”
이 기회에 평소에 너무나 궁금하던 이야기를 물어보았다.
- 어? 하.하.하. 그게 조금 그렇기는 한데.. 뭐 저한테 세 시진의 휴가를 주셨으니 말씀을 해드리지요. 그때 용궁의 도움을 받아 필름 카메라를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용궁에게 무지막지한 양의 카르마를 뜯기게 되었고, 이에 화가 나신 염라대왕님이 저에게 임무를 맡기셨죠. 그래서 제가 꾀를 내어 지금 용왕님의 젊을 적의 토끼로 변신....
“크흠.. 시주.. 아니. 천운님. 잠시 이야기를 좀 할 수 있겠소이까?”
‘아! 중요한 순간인데.. 타이밍이 참!’
- 커험. 다른 사람들이 들으면 조금 그러니 차후에 다시 이야기를 해드리죠.
“어? 아니! 잠시만..”
“우리 무림은 정식으로 천운님에게 항복을 하겠소이다. 부디 무림의 명맥만은 잇게 해주시오.”
소림의 장문스님이 노구의 몸으로 나에게 오체투지(五體投地)를 하며 항복의 예를 바치고 있었다.
아쉽지만, 강림 차사님의 토끼 이야기는 나중에 들어야 할 것 같다.
“일어나시지요. 다른 분들도 회복이 되는대로 계약서를 작성해 볼까요?”
‘때가 어느 때인데 그냥 말로만 끝내려고 하나?’
당연히 공신력이 있는 문서 형태로 만들어야 한다.
소림의 건물에 마련된 회의실에 각 세력들의 수장들만 모이게 하여 계약서를 작성하였다.
다양한 조항들을 만들었다.
계약서의 핵심적인 내용은 나에게 중요한 것들은 허락을 받고, 상시적으로 나의 감사를 받는 것이다.
우리 그룹의 계열사 형식으로 운영될 예정인 (주)무림은 10명의 이사와 한 명의 이사장으로 구성된 이사회에서 운영할 것이다.
(주)무림에 등록된 일정 인원 이상의 문파별로 하나씩의 선출권을 갖고 이사를 선출하며, 그 이사회는 이사장인 나의 지휘를 받는다.
(주)무림에 등록되지 않은 인원이나 무리가 무공을 익히면 제재를 가하고, (주)무림에 등록을 시킨다.
인륜을 저버리는 방식의 수련은 금지를 하고, (주)무림의 인원이 범죄를 저지르면 그에 합당한 처벌을 한다.
각 문파는 무공 서적을 보관할 수 없고, 모든 무공 서적은 본사에서 보관하며 관리한다.
승급 대상자는 한국으로 와서 본사의 인성 평가를 통과를 해야 하고, 본사에서 그에 맞는 무공을 전수 받는다.
각 문파의 수장은 나의 허락을 받아야만 승계가 된다.
그리고 각 문파에 인트라넷을 설치하여, 회계 부분은 철저하게 사전 허락을 받아야 한다.
1년에 한 번씩 회계 감사를 받고, 내부 감찰은 수시로 행한다.
반대급부로 각 문파의 운영 자금 지원과 무공의 보완을 본사에서 책임진다.
계약서상에는 명시되어 있지 않지만, 문파에 아담이의 분신체들을 파견하여 제자로 지내며 상시로 감시를 할 예정이다.
“싸인이나 지장 또는 신물을 이용해 찍으시죠.”
아주 굴욕적인 조항들이었지만, 그들은 서명을 할 수밖에 없었다.
내 옆에서 지루하다는 표정으로 서있는 강림 차사님이 살짝씩 손을 들 때마다 어깨를 움찔거리는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리고 양민들을 협박하거나 기업가들과 결탁하여 자금을 얻는 것을 원천적으로 막아, 중국내 무림의 영향력을 서서히 줄여나가고, 힐링 그룹 본사의 자금 지원이 없으면 자립이 불가능하게 만들 것이다.
“자. 수고들 하셨습니다. 단체 사진 하나 찍을까요? 아담아. 잘 찍어봐라.”
- 자! 김치!
“김츠위...”
그렇게 찍힌 단체 사진은 전 세계 정보 단체에 배포가 되었다.
“이게 이제는 주식회사 무림의 이사가 된 인물들의 사진이라는 건가?”
“네. 그렇습니다.”
“뭐가 이리 화기애애한 것이지?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건가?”
“그것까지는..”
“그렇다면 사진에 이 검정색 블랙홀 같은 형상은 무엇인가?”
“그것도...”
“... 요즘 일하기 싫나? 미스터 T?"
"아니! 저는 미스터 T가 아니라고 몇 번을 말씀드립니까? 그리고 어떤 방법을 쓰더라도 그날 있었던 일에 대해서는 알아낼 방법이 없다는 것을 국장님도 아시지 않습니까?”
그 말에 허리를 의자에 깊숙이 기대며 국장이 말을 하였다.
“그걸 알아내라고 자네에게 미합중국이 막대한 연봉을 주는 거네. 그 연봉으로 자네가 입고 있는 T.. 그것도 사는 거고. 연봉에 걸 맞는 능력을 보여주게.”
“이제는 그걸 안 입는다고요! 이제는 다 나았습니다! 제가 여기서 보여드려야 믿겠습니까?”
흥분한 미스터 T는 회의 탁자위에 올라가 허리띠를 풀기 시작하였다.
“이게 무슨 짓인가! 그 흉측한 것을 왜 보여주려고 해! 당장 그만두게! 미스터 T”
“으아아! 내가 보여준다! 보여줘! 보십시오!”
“으악! 팬티까지 내리면 어쩌자는 겐가! 뭐하는 짓이야!”
[똑똑똑!]
“국장님. 회의 중에 죄송합니...... 이따가 들어오겠습니다. 헤브어 굳 타임.”
그렇게 미스터 T는 미스터 스몰 사이즈가 되었다.
“으아~ 역시 집이 최고구나.”
공항에서 나오니 살짝 잿빛의 하늘이 나를 반겨주었다.
그래도 중국보다는 훨씬 깨끗한 공기가 나름 신선했다.
“사부님!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어? 민이 네가 직접 왔어?”
“에이! 당연히 사부님이 오시는데 제자가 와야죠!”
일을 하다 왔는지 정장 차림에 슬리퍼를 신고 왔다.
“신발 없냐? 월급은 어디다가 다 썼어? 신발 하나 사줘?”
“어라? 아하하하. 급히 나오다보니 깜빡했슴다! 회사에 왜 이리 할 일이 많은 건가요? 이걸 혼자서 전부 처리하고 계셨슴까? 역시 사부님. 크으!”
나는 걸음을 빨리해 민이에게서 빠르게 멀어지기 시작하였다.
양손 엄지를 나에게 꺼내들고 격렬하게 위 아래로 흔들며 딸랑거리는 천운그룹 부회장이 절대 부끄러워서가 아니다.
다만 빨리 집으로 가서 쉬고 싶을 뿐이었다.
“갑시다. 부회장님. 엄지손가락 부러지기 전에.”
“이쪽입니다!”
황급히 슬리퍼를 끌고 내 앞으로 와 길을 안내해 주는 민이였다.
그래도 민이의 극진한 대접을 받으니, 집에 돌아온 것이 실감이 났다.
“아이코!”
까불다가 민이의 슬리퍼 한 짝이 날아갔다.
“하아... 먼저 간다.”
“아니! 사부님! 잠시만요!! 사부님!!”
공항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는 것 같아서 속보로 걷기 시작하였다.
[긴급 속보입니다 - 걷는 속도가 굉장히 빨라집니다. 사용하고자 하는 의지로 발동이 가능합니다.]
굉장한 속도로 멀어지니 당황한 민이가 뒤에서 소리를 지르고 있었지만, 최선을 다해 모른 척을 하였다.
“사부님! 에잇!! 분노의 급발진!”
[딱! 딱! 딱! 딱! 딱!]
들려서는 안 되는 재능의 사용 소리에 황급히 뒤를 돌아보았다.
단아한 오피스 룩 차림의 민이가 엄청난 속도로 슬리퍼를 끌며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슬리퍼가 공항 바닥에 부딪칠 때마다 엄청나게 큰 딱! 딱! 딱! 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머리를 묶은 끈은 어느새 풀어졌는지 머리는 산발이 되어 휘날리고 있었고, 너무나 빠른 심장의 박동에 눈은 벌겋게 출혈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공포의 슬리퍼 [딱! 딱! 딱!]소리.
결국 그날 우리는 공항경비대에 붙잡혀 경위서를 쓰고서야 겨우 풀려날 수 있었다.
잘못했으면 우리 그룹 법무팀이 출동할 뻔 했다.
“제성함다!”
분노의 급발진 재능의 부작용으로 온몸에 근육통이 온 민이를 등에 업고 차에 가는 길에 민이가 사과를 해왔다.
“구체적으로 어떤 게 미안 한 거냐?”
“어? 어... 빨리 못 따라간거요?”
역시나 평범하지 않은 아이다.
슬리퍼를 신고 미친 여자처럼 뛰어온 것은 미안하지도 않은가보다.
“그래. 다음에는 제대로 단련해서 빨리 따라와라. 이 사부는 오래 못 기다려준다.”
“최선을 다 하겠슴다!”
그래. 최선을 다해서 빨리 커라.
이번에 중국에서 너무나 많은 피를 보게 되었다.
무인들뿐만이 아니라, 그들의 싸움에 휘말린 일반 시민들의 희생도 컸다.
내가 직접 손을 쓴 것은 아니지만, 나로 인하여 무고한 중국 시민들이 피해를 보았다는 것은 변명할 수 없는 사실이다.
무림인들의 싸움으로 인하여 중국의 도시들은 원혼으로 가득 찬 죽음의 도시들로 변하였다.
비록 나와 내 가족, 이 땅을 지키기 위함이었지만, 결코 유쾌한 경험은 아니었다.
아니.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경험이었다.
그래서 내가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었지만, 아담이와 강림 차사님의 손을 빌렸다.
그러나 그건 얄팍한 수다.
직접 내 손에 피를 묻히지 않았을 뿐이지, 결국에는 나의 의지로 사라진 목숨들이었기 때문이다.
손에 든 칼이 사람을 베었다고, 그 칼을 든 사람이 아무런 잘못이 없는 게 아니듯이 이 모든 것들은 나의 의지로 행해진 일이다.
나름대로 각오를 다졌다고 생각하고 움직였지만, 아직도 망설여진다.
언젠가는 직접 내 두 손에 가득 피를 묻혀야 하는 때가 다가올 것이다.
그때를 위해서 최선을 다해 마음의 준비를 해야겠다.
그래야 이렇게 내 가족, 내 사람들이 이 땅에서 아무런 걱정 없이 살 수 있을 것이니 말이다.
저기 앞에 차를 세워놓고 기다리는 쫄랑이의 열심히 흔들어대는 꼬리와 내 등 뒤에 업혀 늘어져 있는 제자까지.
내가 사랑하는 모든 것들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게 내가 나서야만 한다.
이들을 지켜주고 싶다.
[뿌웅..]
“내려.”
“제성함다! 괄약근의 힘도 풀린 것 같슴다! 그래도 냄새는... 나네요!”
이 시간들이 너무나 소중했다.
“계속 귀에 이상한 노래 소리가 들려요. 어린 아이 목소리로 부르는 자장가 같기는 한데... 그런데 그 소리 때문에 미칠 것 같아요. 제발 저 좀 도와주세요.”
술취한 귀신으로부터 구해준 송지수씨와 조현병의 유혜성씨를 도와주고 한 동안 잊고 있었는데, 그쪽 학교에서 아주 용한 박수무당으로 소문이 나버렸다.
그리고 혜성씨에게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연락하라면 건네준 민이의 가짜 명함.
준비성이 과하게 출중한 민이가 박수무당 용 가짜 명함까지 준비해서 그걸 드렸었다.
그래서 이렇게 초췌한 표정의 어린 대학생 앞에 앉아 상담을 해주고 있었다.
“혹시 정신과 상담은 받아보셨나요?”
이전의 경험 때문인지 민이는 조현병을 의심하며 질문을 했다.
“아.. 네. 그래서 약 처방 받아서 먹고 있는데도.. 더 심해지는 것 같아요..”
간혹 약물 치료로 더욱 심해지는 케이스가 있기는 하다.
그런데 이 박소희씨는 그게 아닌 것 같았다.
민이는 아직 영력이 낮아서인지 잘 못 본 것 같은데, 그녀의 귀에는 아직도 귀기가 남아있었다.
“혹시 심해지게 된 게 언제부터인가요?”
내 말에 소희씨는 곰곰이 생각을 하다 말을 하기 시작하였다.
“아빠가 다시 집에 들어오면서인 것 같아요. 어렸을 때 무슨 일이 있어서 집을 떠나 계셨었는데, 얼마 전에 다시 집에 들어와 같이 살고 있거든요. 그때부터인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정신과 상담을 받았는데도.. 전혀 상황이 나아지지 않아서요. 그런데 혜성이가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을 안다고 해서...”
말을 하는 와중에도 끊임없이 자신의 손톱을 뜯으며, 고개를 숙이고 조용히 말을 하고 있었다.
주눅이 잔뜩 든 태도에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아무래도 원한이 있는 귀신 또는 장난이 심한 귀신이 붙은 것 같았다.
그러나 너무나 희미한 기운이라서 제대로 느껴지지 않고 있었다.
“제가 보기에는 조현병 증세는 아닌 것 같습니다. 물론 심리적으로 굉장히 몰려있으셔서 불안 증세는 확실히 있으시지만, 그것 때문에 환청이 들리는 게 아니라 그 환청 때문에 불안 증세가 나오는 것 같네요.”
내 말에 손톱을 뜯던 손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그 표정은 어두운 밤하늘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별빛을 발견한 듯한 표정이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요? 도와주세요. 제발..”
그 간절한 표정에 나도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아무래도 그 노래 소리가 들리는 상황을 저희가 직접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보통은 언제 들리나요?”
“대부분 제가 잠들려고 하거나 살짝 잠들면 들렸어요. 그래서 잠을 못자고... 항상 피곤해서.. 너무나 힘들어요..”
“알겠습니다. 그럼 오늘 밤에 저희가 소희씨 방에 숨어서 지켜보겠습니다.”
“어? 그럼 제 방에 같이 들어가야 하나요? 아빠가 다른 친구 데리고 오는 걸 엄청 싫어하시는데...”
소희씨는 아버지 이야기를 하면서 굉장히 불안해 하였다.
다시 손톱을 쥐어뜯으며 안절부절 못했다.
“저희는 아무도 몰래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평소처럼 지내시면 됩니다.”
그 말에 이해가 안 되는 표정을 하였지만, 자신의 아버지에게 말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안도를 하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아버지가 많이 무서우신 분인 것 같다.
[잘 자라.... 우리 아가... 언니가 지켜줄게..... 코 자라....]
“제발... 제발... 그만... 제발...”
희미한 꼬마아이 형상이 소희씨의 귓가에 조용히 속삭이고 있었다.
10살 정도 되어 보이는 그 형상은 금방이라도 사라질 듯이 깜빡이면서도 필사적으로 소희씨의 귓가에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 노래 소리에 소희씨는 침대에 무릎을 꿇고 앉아, 두 귀를 막고 눈물을 흘리며 엎드려 빌고 있었다.
그 모습을 나와 민이는 소희씨의 방구석에 숨어서 보고 있었다.
바로 나서려는 민이의 어깨를 잡아 막아섰다.
그리고 내가 공유해준 재능 하나를 사용해보라고 매직워치를 이용해 말을 해주었다.
이제는 다섯 개의 최하급 재능까지 공유가 가능해져서 새로 공유해준 재능이었다.
[너는 찍먹? 그럼 나는 부엉 - 부엉이의 야간 시력을 빌려옵니다.]
그러자 민이의 눈에도 똑똑히 보였다.
살짝 열린 문틈 사이로 중년의 남성이 팬티 바람으로 서서 울고 있는 소희씨를 지켜보고 있었다.
무언가가 많이 아쉬운 표정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