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 없다.
어린 아이 형상의 영혼은 금방이라도 사라질 듯이 희미했다.
그리고 소희씨의 귓가에 노래를 부르면 부를수록 더욱 그 힘이 약해지고 있었다.
이제는 언제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을 상태로 보였지만, 무엇이 그리 간절해서 저리도 최선을 다해 노래를 부르고 있을까 너무나 궁금했다.
열린 문틈 사이로 자신의 아랫도리 부분을 만지며, 소희씨를 바라보던 중년 남성이 잠시 뒤 사라지자 나와 민이는 은신을 풀고, 소희씨에게 다가갔다.
민이는 바로 소희씨에게 다가가 진정을 시켜주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괜찮아요. 나쁜 귀신이 아닌 것 같아요. 금방 괜찮아질 거예요.”
갑자기 나타난 민이를 보고도 놀라는 게 아니라 오히려 안심을 하는 소희씨였다.
이 무서운 공간에 자신 혼자만이 아니라는 생각 때문인지 오히려 안도감의 한숨을 내쉬었고, 그 노래 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자, 감사하다는 말만 계속하고 있었다.
그렇게 안심이 되는 상황이 되자마자 소희씨는 기절하듯이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아이야.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더 하면 네 영혼이 소멸될 수도 있어. 이미 가지고 있는 카르마가 바닥난 것 같은데, 이러면 환생도 힘들고 되더라도 미물로 태어날 거야.”
[도..와..주세요.. 제.. 동생..]
나를 보며 애처로운 표정으로 도와달라고 필사적으로 말을 하는 아이의 영혼을 보니,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도와주고 싶었다.
나는 강렬한 염원을 담아 말을 하였다.
“주변에 계시는 사자님이 계시면 한 분만 도와주세요.”
평소라면 월직 차사님이 나타나셨을 것이지만, 월직 차사님은 아직 징계중이시다.
- 수도권 제 3권역 담당자 박명자라고 하옵니다.
전형적인 저승사자님의 복장을 하신 사자님이 내 부름에 응답하며 나타나셨다.
다만 여성분이었다는 것이 조금은 특이하였다.
생전부터 강한 능력자들만 사자로 발탁되기 때문에 저승사자들 중에서 여성분은 굉장히 드물다.
여성의 인권이 낮았던 과거의 시대특성상 남성들보다 배움의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어, 자신의 재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역사속으로 사라진 여성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 눈앞의 이 분은 남들과는 차원이 다른 노력을 통해 사자까지 되신 분일 것이다.
“부름에 답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사자님. 다름이 아니라 이 어린 영혼이 소멸의 위험을 감수하고서도 힘을 쓰고 있습니다. 무슨 사연인지는 모르겠지만, 도움을 주고 싶습니다. 방법이 없을까요?”
- 영혼의 기억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주술과 카르마를 전달해 줄 수 있는 주술이 있사옵니다. 그러나 상당량의 카르마가 필요하옵나이다.
“그럼 제 카르마를 사용하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 우선은 영혼의 기억부터 들여다보시는 걸 권해드리옵니다. 간혹 자신이 남을 돕는다 착각하며 행하는 행동들이 오히려 악행이 되는 영혼들도 있사옵니다. 우선은 사연을 알아보시지요.
“그렇겠군요. 알겠습니다. 우선은 제 카르마로 저 영혼의 기억을 보여주시죠.”
- 그럼. 귀인이 원하시는 대로.
‘띠링!’
[수도권 제 3권역 담당 사자인 박명자로부터 카르마의 사용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승인하시겠습니까?]
“승인.”
내 몸에서 흘러나온 밝고, 성스러운 빛이 사자님이 들고 계신 태블릿으로 흘러들어갔다.
- 영혼 기억 재생 어플리케이션 사용. 어? 누가 비밀번호 설정 해놓은 거야? 아이씨! 내꺼 A/S맡겨놔서 아무거나 들고 왔더니!
무언가 잘 안되시는지 화를 내시며 연신 번호들을 눌러보고 계셨다.
- 0000. 1111. 1234. 아이씨! 뭐야!
“저.. 제가 잠깐 봐도 될까요?”
- 어? 귀인 죄송하옵니다. 제 것이 고장이 나서 공용물품을 들고 오다보니.. 호호.. 중요한 어플들은 잠금 장치가 되어있사옵니다.
잠깐 받아든 태블릿을 내 매직워치를 이용해 해킹을 시도하였다.
가볍게 태블릿의 암호가 해독되었고, 의도치 않게 저승에서 사용하는 서버에도 잠깐 접속이 되었다.
저승 서버의 접속 주소가 굉장히 특이했다.
공대생 특유의 호기심이 발동하려고 하였지만, 나중에 알아보기로 하고 암호가 풀린 태블릿은 사자님에게 전해드렸다.
“비밀번호는 4444 네요.”
- 아! 제가 깜빡했사옵니다. 공용 비밀번호인데.. 호호호. 아무튼 바로 실행하겠사옵니다. 영혼 기억 재생 어플리케이션 사용.
얌전히 서있는 어린 아이의 영혼과 태블릿에서 빠져나온 하얀 실이 연결되었고, 이내 태블릿에서 영상이 재생되기 시작하였다.
같이 보기가 힘들어서 아직 연결되어 있는 내 매직워치를 이용해 홀로그램으로 띄웠다.
- 오! 이런 기능이!
감탄하시는 사자님을 뒤로 하고, 나와 민이는 홀로그램 영상에 집중하였다.
그 영상은 끔찍했던 저 어린 영혼의 생전 기록이었다.
“언니. 오늘도 엄마 늦는 거야? 아빠랑 같이 밥 먹는 거 싫은데..”
“소희야. 그런 말 아빠 앞에서 하면 안 돼. 알지?”
“응. 당연히 안하지. 그런데 언니는 왜 잘 시간돼도 안자고 늦게 자? 엄마가 9시 되면 자라고 했잖아. 혼자만 너튜브 보면서 늦게 자는 거 아냐?”
이제 7살인 동생은 너무나 어리다.
사실 자신도 11살, 초등학교 4학년이니 어린아이가 맞다.
그러나 자신보다도 더 어린 자신의 동생은 자신이 지켜주어야 한다.
악마와도 같은 아빠의 손에서.
늦게까지 일만하는 엄마는 홀로 이 가정의 생계를 책임지느라 아빠에게 우리를 맡겨놓았다.
아빠가 악마인지도 모르고.
아니. 어쩌면 알고도 삶의 무게에 지쳐 외면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엄마에게 말을 하면 소희까지도 다 죽여 버리겠다는 아빠의 협박에 아무런 말도 못하고 있었다.
그저 자신만 입을 다물고, 자기전의 그 고통의 시간만 참아내면 된다.
그러나 이렇게 자신의 상황도 몰라주고 투정을 부리는 동생이 가끔은 밉다.
내가 얼마나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는지도 모르고 이런 말을 하다니...
[엘리베이터가 열립니다.]
동생을 어린이집에서 데려와 집에 들어가는 현관문 앞에 서서 망설이고 있었다.
저 문 안에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컴퓨터 의자에 앉아, 이상한 영상들만 보는 악마가 있기 때문이다.
“안 들어가?”
[삑! 삑! 삑! 삑!]
눈치 없는 동생은 바로 악마가 사는 문을 여는 비밀번호를 거침없이 누르며 문을 열고,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집에 들어가 버렸다.
어쩔 수 없이 나도 그 지옥 안에 발을 밀어 넣었다.
역시나 컴퓨터 방에서는 여성의 비명 소리 같은 신음 소리가 나고 있었다.
“왔으면 소희는 손 씻고! 소미 너는 라면 끓여!”
“응. 알겠어.”
“네...”
그렇게 우리는 아무런 대화도 없이 서로 정해진 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조용한 집안에는 컴퓨터에서 들리는 여성의 이상한 신음소리만이 가득하였다.
식탁에 모여 앉은 우리 사이에는 기묘한 침묵만이 가득하였다.
나와 소희는 조용히 라면만 먹고 있었고, 우리의 앞에는 아무런 것도 몸에 걸치지 않은 악마가 입맛을 다시며 붉게 충혈 된 눈빛으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오늘은 소미 너 먼저 자고, 소희는 아빠랑 같이 너튜브 보자.”
“안돼요!”
“왜? 나도 너튜브 보고 싶은데! 역시 언니만 늦게까지 보고 있었구나?”
철없는 동생은 저 악마가 하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고 좋아만 하고 있었다.
소미를 보면서 흉측한 아랫도리를 만지던 아빠는 내 안 된다는 말에 인상을 찌푸리며 들고 있던 젓가락을 나에게 던졌다.
“야! 아빠가 말을 하면 고분고분하니 말을 들어야지! 어디서 말대꾸야!”
“우리 소희는 안돼요! 아직 7살이란 말이에요! 제발 안 돼요! 제가 잘할게요! 제발...”
나의 간절한 표정에 잠시 고민하던 악마는 슬쩍 웃어보였다.
“그럼 오늘 내가 보여주는 영상 보고 따라해봐. 얼마나 잘하는지 보고 결정할거니까 잘해! 알겠어?”
소희의 양치질을 도와주고 침대에 눕혔다.
“언니. 금방 들어와야 돼. 나 혼자 자면 무섭단 말이야.”
“너 자고 나면 잠깐 갔다올게..”
내 말에도 어린 동생은 칭얼거리고만 있었다.
토닥거리며 잠을 재우는 나에게 동생이 말을 걸어왔다.
“언니. 자장가 불러줘.”
“그래. 불러줄 테니까 얼른 자. 알겠지?”
“응.”
“잘 자라.... 우리 아가... 언니가 지켜줄게..... 코 자라....”
울음이 터져 나올 뻔 했지만, 겨우 참아내며 동생에게 자장가를 불러주었다.
오늘은 내 동생을 위해서 마지막으로 해야만 하는 일이 있다.
언제부터인가 그 악마는 이 어린 동생까지도 노리고 있었다.
자신이 죽으면 동생이 당할까봐 참고 견디었지만, 이제는 어쩔 수가 없다.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아내며 마지막으로 자장가를 불러주었다.
어느새 잠에 든 동생에게 이불을 잘 덮어주고 밖으로 나갔다.
그 짧은 사이에 쇼파에 누워 잠에 빠져있는 그 악마를 향해, 숨겨두었던 칼을 들고 조용히 걸어갔다.
이 악마만 죽이고 자신도 죽으면 동생이 잘 못 될 일은 없을 것이다.
매일 일만하는 엄마는 우리를 도와줄 힘도, 마음도 없다.
그러니 내가 해야만 한다.
“이 부분은 빨리 넘기시죠. 보기가 조금 힘드네요.”
힘이 약해 깊숙이 박히지 않은 칼.
고통에 비명을 지르며 일어난 남성.
옆에 놓인 맥주병에 얻어맞아 머리에 피를 흘리며 쓰러진 어린 아이.
큰 소리에 놀라 거실로 나왔다가 끔찍한 거실 풍경에 비명을 지르며 제자리에 주저앉은 그보다 더 어린 아이.
힘없이 피를 흘리며 쓰러져서 자신의 어린 동생을 안타깝게 바라보는 어린 아이의 두 눈에서 흘러내리는 눈물.
자꾸만 감기는 눈에 보이는 어린 동생의 몸에서 퍼져나가는 노란 물.
그것을 마지막으로 어두워진 시야.
그리고 다시 주변을 인식한 어린 아이의 시야는 더 이상 인간이었을 때의 총 천연색 시야가 아니었다.
온통 흑백으로 되어있는 그 시야에 어린 동생이 들어왔다.
너무나 큰 충격에 기억을 잃어버린 어린 동생이 너무나 안타까워 떠날 수가 없었다.
회사를 그만둔 엄마는 충격에 기억을 잃은 동생을 돌봐줄 줄 알았는데, 동생을 집에 방치해놓고 밖으로만 돌아다니고 있었다.
얼마나 중요한 일이기에 아픈 동생을 놔두고 돌아다니는지 너무나 궁금해 엄마를 따라다녀 보았다.
엄마는 변호사 아저씨를 만나 탄원서라는 것을 열심히 쓰고 있었다.
남편의 죄를 감해달라는 탄원서.
자신의 남편은 평소 성실하였고, 남에게 해를 입힌 적도 없었다고 쓰고 있었다.
단지 술에 취해 실수를 하였다고.
아이가 사춘기라서 예민하였고, 먼저 공격한 것을 참작해달라고.
엄마는.. 아니 악마의 부인은 자식보다는 자신의 남편을 선택하였다.
그 노력의 힘인지 악마는 고작 13년형을 받았다.
그래서 동생을 떠날 수가 없었다.
그 악마가 13년 뒤에 되돌아와 내 동생을 노릴 테니까.
동생은 초등학교에 들어갔고, 중학교,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그리고 기특하게도 대학교까지 합격을 하였고, 친한 친구들도 만들었다.
비록 어린 시절의 기억은 잃어버렸지만, 괜찮았다.
그런 끔찍한 기억은 없는 게 더 좋을 테니.
그리고 그렇게 오지 않았으면 하는 순간이 와버렸다.
그 악마가 돌아왔다.
엄마라는 또 다른 악마의 손을 잡고서.
그녀는 뭐가 그리도 좋은지 삼겹살을 굽고, 연신 악마에게 술을 따라주었다.
악마들은 이제는 성인이 된 어린 동생도 한 잔 하라며 자꾸만 권했다.
그렇게 그 악마가 훌쩍 커버린 내 동생을 바라보는 그 눈빛도 모른 채로 동생은 홀짝거리며 악마들이 따라준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날 모두들 술에 취해 잠이 들었고, 그 악마는 밤이 되자 조용히 안방 문을 열고 나왔다.
그리고는 잠겨있지 않은 내 동생의 문을 슬며시 열었다.
나는 온힘을 다해 그 악마를 밀어냈지만, 내 손은 그저 그 악마의 몸을 통과만 할 뿐이었다.
미친 듯이 소리를 질렀지만, 아무도 듣지를 못했다.
그러다 동생이 뒤척이니, 그 악마가 잠시 눈치를 보며 멈춰 섰다.
기회였다.
나는 뒤척이는 동생의 귀에 염원을 담아 노래를 불렀다.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불러주었던 그 노래를.
[잘 자라.... 우리 아가... 언니가 지켜줄게..... 코 자라....]
“으음.. 언니.. 빨리 들어와...”
잠꼬대를 하는 동생의 입에서 언니라는 말이 들리자 멈칫한 그 악마는 나에게 찔렸던 가슴 부위를 만져보다 동생의 방을 나갔다.
그리고 매일 밤 자신은 그 악마로부터 동생을 지키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다.
그런데 이제는 그것도 마지막인 것 같았다.
너무나 어린 나이에 죽음을 맞이하다보니 살아생전 쌓아온 카르마가 금방 동이 나버렸다.
그래서 본능적으로 사용하게 된 영혼 자체를 잘라내 사용하는 방법을 사용하며 버텼다.
생전에 그 악마에게 얻어맞은 머리의 통증보다도 100만 배는 넘는 듯한 고통이 온몸에 몰아닥쳤다.
그리고 자신의 존재가 사라지는 본능적인 공포.
그 고통과 공포도 이제는 막바지였다.
‘제발.. 누군가 내 동생을.. 도와주세요..’
영상이 끝이 났다.
이제는 거의 사라지고 있는 어린 아이의 영혼을 보며 나는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민이도 아무런 말도 못한 채로 눈물만 흘리며, 기절하듯이 잠들어있는 소희씨의 머리만 하염없이 쓰다듬어 주고 있었다.
살아생전의 소미씨가 소희씨에게 그랬던 것처럼.
저 어린 영혼은 한 번도 자신의 제사상을 받아보지 못하였다.
자신을 기억해주는 사람이 아예 없기 때문이다.
그나마도 기억해주는 사람은 그 악마와 악마의 부인뿐.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동생은 너무나 큰 충격에 자신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런 상황에서도 저 어린 아이는 자기보다도 더 커버린 동생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영혼까지 잘라내 희생하며 커다란 고통을 감내하고 있었다.
“이제는 그만 쉬렴. 아저씨가 동생은 잘 지켜줄게.”
[내 동생... 소희....]
나는 사자님에게 부탁하여 다음 생에 좋은 부모 사이에서 태어날 수 있게 내 카르마를 전달해 주었다.
흐려졌던 영혼은 다시 선명해졌고, 영혼이 찢겨나가는 고통에 항상 고통스럽게 일그러져 있던 얼굴은 생전의 귀여웠던 얼굴로 변하였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아저씨. 그리고 제 동생 잘 부탁드려요.]
마지막까지 동생을 부탁하던 아이는 박명자 사자님의 손을 잡고 저승으로 떠났다.
그리고 남은 것은 악마가 살고 있는 이 집에서 기절하듯이 쓰러져 잠을 자고 있는 어린 소희씨 뿐이었다.
나와 민이는 깊은 잠에 빠진 소희씨를 힐링 타운의 기숙사로 옮겼다.
그러자 조금은 더 편한 표정으로 잠을 청하는 소희씨였다.
“사부님. 어디까지 이야기를 해줘야 할까요? 그리고 말을 해줘도 믿을 수나 있을까요?”
민이의 말대로 소희씨가 믿을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소희씨는 우리를 의심할 수도 있다.
그리고 자신의 발로 악마가 기다리는 집으로 되돌아갈 수도 있다.
이제는 자신을 지켜줄 언니도 없이.
“아무래도 기억을 되살린 다음에 설명을 해줘야 할 것 같다.”
“기억을 되살릴 방법이 있을까요?”
“그때의 경험을 그대로 다시 하게 만들어주어야겠지.”
나는 영혼의 기억을 저장하고 있었다.
그걸 토대로 어린 소희씨의 시야에서 보는 화면으로 재구성하였다.
어린 아이의 기억이다 보니, 중간 중간 영상이 끊어져있기도 하고, 흐려진 부분도 있었지만 최대한 보완을 해서 만들어내었다.
영상이 완성되자 잠을 자고 있는 소희씨의 매직워치에 전송을 하고, 그 영상을 틀어주었다.
“으음.. 언니...”
편안히 잠을 자던 소희씨는 인상을 찌푸리며 몸을 뒤척이기 시작하였다.
몇 번에 걸쳐 영상을 재생하였고, 그 영상이 반복될수록 소희씨의 미간은 더욱 더 찌푸려졌고, 어느 순간부터는 비명을 지르듯이 언니만 외치고 있었다.
“소희씨. 일어나보세요.”
“언니!! 허억.. 허억.. 소미 언니가... 어? 나는 언니가 없는데.. 아니. 소미 언니?”
많이 혼란스러워 보이는 소희씨에게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모르고 사는 게 소희씨에게는 더 나을 수도 있었을 테지만, 자신을 위해 영혼의 소멸까지도 각오하며 지켜준 언니를 위해서 이 정도는 감당하며 살아가는 게 맞다.
그 어린 영혼이 너무나 힘들게 지켜준 그녀의 삶에 대한 조그마한 보답은 그녀의 언니를 기억해 주는 것 뿐이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그러나 그 사람이 오래도록 살아가게 만드는 유일한 방법은 사랑하는 사람들이 기억해주는 것 뿐이다.
처음에는 우리의 정체를 알게 되어 깜짝 놀라하였고, 곧 이어서 설명한 우리의 말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듣고만 있었다.
그런 소희씨에게 그 당시의 신문기사와 그녀의 아버지의 수감 기록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날 일어났던 영혼의 기억과 어제 있었던 일들을 보여주니, 그제서야 믿기 시작하였다.
“언니는 그 고통을 당하면서도... 철없는 저를 위해서.. 그런..”
완전히 언니에 대한 기억이 돌아온 소희씨는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갈 곳이 없는 소희씨에게 힐링 타운의 기숙사를 배정해드렸다.
학업은 계속할 수 있게 등록금은 민이가 빌려주었고, 생활비는 아르바이트로 충당하기로 하였다.
이제는 홀로서기를 해야만 한다.
20살이라는 어린 나이의 독립.
먼저 겪어본 선배의 입장에서 보면 암담한 길이지만, 딱히 대안이 없다보니 강제로 걸어야만 하는 길이다.
그래도 꿋꿋하게 아르바이와 학업을 병행하는 그녀를 민이는 굉장히 안타까워하며 신경을 썼다.
그래도 너무 과한 도움은 주지 말라는 내 말에, 모든 것을 도와주고 싶은 자신의 마음을 잘 참아내는 민이였다.
가끔씩 사주는 치킨으로만 겨우 만족하며, 민이는 그렇게 누군가를 도와주고 싶다는 마음과 어떤 것이 최선인지에 대해서 계속 고민을 하고, 나에게 조언을 구하며 성장하고 있었다.
“무좀은 은밀하게”
“요로는 결석했니?”
“1부터 10까지 중에 얼마나 아파? 10.”
“겨터파크 개장.”
“응! 안 봐줘. 돌아가. 탈모 빔!”
“내가 디지털 난독증이라니.”
“알레르기 파.”
“양말 사이에 들어간 돌.”
“티나게 눈치 주니?” - 티눈 생성
“발톱이 조금 내성적이에요.” - 내성발톱
........
소희씨의 집에 몰래 다시 들어가 두 부부를 깊이 재워놓고, 그동안 봉인되었던 모든 재능들을 모조리 부여해주었다.
그리고 황급히 그 집을 벗어났다.
아쉬운 대로 봉인되었던 재능들을 쏟아내었지만, 마음속에 타오르는 이 불길은 도저히 꺼지지를 않았다.
편안하게 잠들어있는 악마들을 보고 있으니, 나도 모르게 살심이 구름처럼 일어났다.
‘첫 살인은 이정도 인간들이면 괜찮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나도 모르게 손을 들어 올리다 정신을 차리고, 황급히 자리를 피하였다.
이게 말로만 듣던 주화입마인 것 같았다.
들끓는 마음속의 불길을 제압하지 못한 나는, 그날 밤을 세도록 하염없이 달렸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는다면 몸속의 이 불길이 내 모든 것을 태워버릴 것 같았다.
문득 떠오르는 태양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강원도의 어느 산골이었다.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만 보다 김산 아저씨가 생각났다.
나의 인생을 바꿔줄 계기를 만들어주신 그분.
지옥 같은 몸의 고통보다 마음의 고통을 더욱 힘들어하시던 그분.
보잘 것 없는 나를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 행복을 빌어주시며 7777그루의 나무를 심어준 그 아저씨.
‘그래. 사람이 어찌 악마 같은 면만 있을까? 내가 지켜내는 이 땅의 사람들 중에서는 김산 같은 아저씨도 많을거야.’
다시 고개를 돌려 강원도의 산을 바라보니, 황무지 같던 이곳에 제법 생명의 녹색빛이 감돌고 있었다.
밍밍이가 그동안 많은 힘을 쓴 것 같다.
‘집에 가면 견과류를 종류별로 사줘야겠네.’
갑자기 집이 너무나 그리워졌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시답잖은 이야기들을 하며, 이 지친 마음을 달래고 싶었다.
회사에 출근하자마자, 힐링 자동차에서 일을 하던 그녀의 어머니를 해고 통보 하였다.
정당한 사유 없는 해고였기에 임원진들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의문을 가졌고, 반발을 하였지만, 처음으로 그 모든 조언들을 무시하고 회장 직권으로 강행하였다.
거대한 성이라도 하나의 틈에 의해 무너질 수 있다.
지금 힐링 그룹이라는 거대한 성에 하나의 틈을 만들면서까지 그녀의 해고를 강행하였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내가 견디지를 못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내 회사에서 내가 주는 돈을 가지고 그 악마들이 먹고 산다는 사실이 견딜 수 없을 만큼 분노가 치솟았다.
이 순간만큼은 신이 없다는 그 사실이 뼈저리게 안타까웠다.
죽으면 그 죄악의 대가를 받겠지만, 그때까지 내가 참을 수가 없었다.
과연 그녀는 자신의 딸들의 고통을 몰랐을까?
알면서 주변의 시선들과 자신의 체면을 위해 외면한 건 아닐까?
최소한 자신의 첫째 딸이 왜 죽었는지 알아보고, 남은 딸아이를 보호하고 싶지 않았을까?
모든 것을 알고도 억울하게 죽은 딸아이보다, 어린 딸들을 학대하고 살인을 한 자신의 남편을 선택한 걸까?
친딸을 학대하고 죽인 남편을 또 다른 친딸이 있는 집안에 아무런 거리낌 없이 데리고 들어올 수 있을까?
모든 것이 확실치 않지만, 이것 하나 만큼은 확실하다.
그녀는 엄마로서의 자격이 하나도 없다.
그리고 나는 그녀를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워한다.
그러므로, 그 어린 영혼이 겪은 영혼이 갈기갈기 찢겨지던 고통의 천 만분의 일이라도 느낄 수 있게 최선을 다할 것이다.
‘신은 없다. 그러니 조금이나마 내가 그를 대신할 것이다.’
내가 지켜볼 수 있는 범위는 아주 작지만, 두 눈을 크게 뜰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이 너무나 부족하지만, 부족하면 부족한데로 부지런히 행할 것이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겠다.
그렇게 신이 부재한 이 세상에 아주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었다.
나는 오늘도 이렇게 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