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3화 (153/170)

복제 인간

“현재 전국 주요 도시에 공장부지 구매를 완료하였고, 기초 공사를 시작한 상태입니다.”

아주 짧게 다녀온 중국 출장이었는데, 이 정도까지 일을 진행시켜놓았다니 민이가 정말 많이 고생한 것 같았다.

오히려 나보다도 일처리가 빠른 것 같으니, 이제는 믿고 맡겨도 될 것 같았다.

“짧은 시간 안에 많은 일을 해내셨군요. 특히나 조민 부회장. 고생 많았어요. 이번 프로젝트는 부회장이 맡아서 진행 시켜보도록 하세요.”

“감사합니다!”

내 말에 살짝 상기된 얼굴로 얼른 대답을 하는 민이었다.

“그리고 저는 이주 정도 휴가를 갈 예정이니, 제 결제가 필요한 경우에는 조민 부회장에게 문의하시기 바랍니다. 그럼. 다들 수고들 많으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정기 회의를 끝마치고 회의실을 빠져 나가는데 민이가 따라 붙었다.

“사부님. 더 쉬다 오셔도 되는데, 2주면 너무 짧지 않으신가요?”

정신과 상담 결과, 중국 출장 전보다 상태가 악화되어 충분한 휴식을 권유 받았다.

사실 이제는 회사도 안정되다보니, 스스로 잘 굴러가고 있었다.

내가 하는 주요 역할도 계열사들 간의 조율과 신사업 추진, 기술 개발에서 이제는 기술 개발만 하면 되는 상황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스마트 식물 공장 사업도 설계도와 핵심 기술들만 개발하여 넘겨주니, 알아서 사업이 진행되기 시작하였다.

지자체들과의 조율부터 판로 개척을 위한 유통 시스템과 홍보 방법까지.

모든 것들이 잘 연결된 톱니바퀴처럼 굴러가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은 잘 만들어진 시스템 덕분이기도 하지만, 그 모든 과정에 관여하며 미세조정을 해주는 민이가 있어서 가능했다.

큰 회장님의 피를 진하게 받아서인지 기업가로서의 감각도 날카로웠고, 의외로 아버지뻘의 임원진들까지도 가볍게 제압하는 카리스마가 있었다.

덕분에 나는 회사라는 족쇄에서 벗어나 마음껏 휴가를 즐길 수 있을 것 같았다.

“민이 네 덕분에 마음 편히 쉬다올 수 있으니, 그 정도면 괜찮을 거야. 하는 일은 별로 없어도 내가 회사에 안 나오면 직원들이 불안해 할 거니까 그 정도만 쉬다가 올게.”

“그건 그렇기는 한데, 너무 짧게 쉬시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어서요.”

“응? 그렇기는 하다는 건 무슨 뜻이냐?”

“안 나오면 직원들이 불안해하는 거요?”

“그걸 그렇게 쉽게 말하다니 자존심 상하네.”

“사부님이 회사에 안 나오시면 또 무슨 사고를 치실지 다들 걱정하던데요? 전략기획 실장님이 안절부절 못하시던데.”

“아니! 내가 무슨 사고만 치고 다니는 사람인줄 알아?”

내 말에 곰곰이 생각해보던 민이가 말을 하였다.

“대부분은 치셨네요. 이번에는 얼마나 크게 치셨는지 중국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공문을 보내왔습니다. 경제 제재를 철회하고, 힐링 그룹의 행사에 아무런 제약도 없을 것을 약속 한다고요.”

“그래? 그래봤자 이미 떠난 배인데 뭘. 그리고 왜 우리한테 이런걸 보내냐? 우리나라 정부에 보내야지.”

“중국 주석한테는 우리나라 정부보다 사부님이 더 무서울 것 같은데요?”

“에이. 설마.”

“중국 무림의 지존이잖습니까. 그 인맥과 영향력이면 주석도 눈치를 봐야하는 거 아닐까요?”

“그 정도는 아냐. 상무위원자리 하나 밀어 넣는 정도일 뿐이지.”

중국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공산당 중앙위의 최고위 서열인 정치국 상무위원.

국가 주석이자 국가 중앙군사위 주석인 서열 1위의 현 중국 주석을 시작으로 현재는 총 7명만이 그 막강한 자리에 앉아있다.

그 중 한 자리에 자신의 사람을 밀어 넣을 수 있는 힘이라면 엄청난 권력이 맞기는 하다.

그 정도 권력자라면, 공식과 비공식을 통틀어 중국의 서열 10위안에 위치한다고 보면 된다.

그리고 내가 밀어 넣은 상무위원 자리에는 아담이의 안드로이드 분신체가 등장을 하였다.

베일에 가려진 그 상무위원의 과거를 조사하느라, 전 세계 정보기관들이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었다.

“아무튼 이번에는 적당히 작게 치시고 오세요. 아예 안치는 건 너무 무리한 요구인 것 같고, 너무 큰 사고만 터트리지 않게 조심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만약에 이번에도 대형 사고를 터트리면, 전략기획실과 비서실 직원들 모두 파업할 것 같습니다.”

저번 쫄랑이의 힐링 그룹 감사 콘서트를 빙자한 프로포즈 프로젝트 때문에 전략기획실 직원들이 수많은 밤을 지새우며 노력을 하였다.

각 나라에 존재하는 공연기획사와 계약을 하고 일일이 진행 상황을 체크하는 일은 엄청나게 고된 일이었다.

각 나라의 시차가 전부 다르다 보니 그것에 맞추어 잠시도 쉬지 않고 전화를 하며 스케줄을 조율하고 있었다.

도저히 맨 정신으로 버티기 힘들 정도의 업무 강도였다.

그래서 전략기획 실장님이 정식으로 힐링 연구소의 주임 연구원과의 면담을 요청하는 강수를 두며 항의를 하려고 하였지만, 주임 연구원의 ‘AI를 이용하지 왜 그렇게 무식하게 일을 하냐’는 팩트 폭력에 다들 할 말을 잃어 버렸다.

그리고는 그 주임연구원이 AI에 몇 가지 키워드들을 입력하였고, 순식간에 업무가 진행되는 모습을 보니 자신들이 지새운 수많은 밤들이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결국은 AI에게 적절한 키워드들만 잘 등록을 하였다면 자신들이 해야 할 일들의 90% 이상을 쉽게 끝낼 수 있었을 것인데, 다들 고정관념에 빠져 쉬운 길을 굉장히 멀리 돌아간 것이다.

기획과 컨트롤은 사람이.

단순 노동은 AI가.

이것이 앞으로 힐링 그룹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는 것을 전략기획실 전 직원들이 뼈저리게 느끼게 된 계기가 되었다.

지금까지 힐링 그룹의 업무 프로세스 상에는 AI를 활용하는 부분이 빠져있었다.

그저 개개인의 판단에 의해 AI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거나, 거의 활용하지 않거나 하는 등의 차이를 보였다.

이에 전략기획 실장님은 자신의 무지와 실수를 빠르게 인정하시고, 지금은 모든 업무에 AI를 적절히 활용하는 프로세스들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각 계열사, 부서별로 새로운 업무 프로세스를 작성하는 작업으로 인하여, 전략기획실은 현재까지도 야근을 계속하고 있었다.

물론 전략기획실 직원들은 오랜만에 업무다운 업무를 하고 있다며, 오히려 사기가 오르고 있었다.

“그런데 직원들이 AI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게 너무 충격적이다.”

“음.. 가르쳐 주지 않았으니 알 수가 없었겠죠. 그리고 대기업일수록 업무 프로세스에서 벗어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니 더욱 힘들었을 것 같습니다.”

대기업은 철저한 시스템으로 움직인다.

사람이 곧 시스템인 중소기업과 다르게 대기업은 그 자리에 어느 누가 들어오더라도 모나지 않게 정확히 해야 할 일들만 할 수 있도록, 업무들을 프로세스화 하였다.

그래야 조직이 무너지지 않는 것이다.

다만 그 시스템의 단점은 천재가 크지를 못하거나, 배척된다는 것이다.

한 명의 천재가 수 만 명을 먹여 살리기도 하지만, 대기업의 시스템에서는 그 어떤 자리에 어떠한 바보가 끼어들더라도 문제없이 돌아가는 게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고, 그렇게 시스템을 만들었다.

그래서 전략기회실에서 업무 프로세스 개발이 필요한 것이다.

회사의 시스템에서 공인한 프로세스만이 회사에 적용될 수 있다.

어느새 국내외를 통틀어 2천 만이 넘는 사원들을 거느리는 초거대 기업이 되어버린 힐링 그룹의 시스템을 만든다는 것은 엄청난 업무량이기도 하지만, 그것을 자신들만이 해낼 수 있다는 엄청난 자부심에 전략기획실은 생기가 넘치고 있었다.

‘그 프로세스를 만드는 작업도 AI를 시키면 되는데 또 스스로들 하고 있으니, 아직도 멀었네.’

몸으로 느껴야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법이니, 다 끝나고 나면 알려주어야겠다.

“엄마! 저 왔어요!”

“우리 운이 왔니? 그런데 어쩐 일이야?”

송이의 프로포즈 프로젝트와 중국 출장 때문에 오랜만에 엄마의 고향에 방문을 하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오랜만에 보게 된 나에게 엄마는 어쩐 일인지 묻고 있었다.

왠지 모르게 죄를 짓는 것 같았다

“휴가를 내고 와서 조금 쉬다 가려고요. 그림도 좀 그리고, 작곡도 좀 할 시간이 필요했었거든요.”

마음에 병이 생겨서 쉬러 왔다는 말은 끝내 하지 못하였다.

꼭 해야 하는 말이 있기도 하지만, 꼭 하지 말아야 하는 말도 있는 법이다.

지금이 그런 때이다.

“그래? 그런데 어쩌지? 엄마는 베트남 여행가기로 했는데..”

“엥? 누구랑 가시는데요?”

나는 전혀 알지 못했던 상황이다 보니, 엄마에게 물어보는 방법밖에는 없었다.

그리고 엄마는 나와 송이의 국제적인 위치에 대해서 자세히 알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의 해외여행이 얼마나 국제 정세에 영향을 미치는지 전혀 모르고 계셨다.

아마 조만간에 엄마의 경호팀장님이신 보라누나가 연락을 해오셨을 테지만, 사실 보라누나도 내 영향력이 얼마나 강한지는 어렴풋이만 알고 계셨다.

“마을 부녀회에서 추수 끝난 기념으로 여행 갔다 오자고 하더라고. 그래서 나도 같이 가기로 했어.”

시골에서 가장 한가하고 풍족한 때가 추수가 끝난 이 시기쯤이다.

해야 할 일들도 전부 끝냈고, 일 년 농사의 결실을 보는 때이기 때문에 자금적으로도 그나마 풍족해지는 시기이다.

그리고 엄마의 고향마을 부녀회는 내가 몰래 지원해드리는 자금들도 풍족하기에, 큰 마음먹고 여행을 가기로 결정한 것 같았다.

“어... 그럼 저도 따라가도 될까요?”

“응? 운이 너도? 그럼 나야 좋기는 한데, 괜찮겠어? 얼마 전에도 중국 출장 갔다가 왔다고 했잖아. 쉬려고 내려온 것 아니었니?”

“뭐. 베트남은 관광지로도 유명하고, 날씨도 여기보다는 더 좋을 테니까 같이 가서 쉬죠 뭐.”

내 말에 엄마는 너무나 좋아하셨다.

동네 아주머니들과 같이 가는 것도 좋지만, 아들인 나와 처음 하는 해외여행이라서 그러시는지 너무나 좋아하셨다.

50대 초반을 지나 중반에 가까워지신 엄마는 우리와 헤어지고 아주 오랜 시간이 흘러, 다시 만났던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보다 아주 많이 젊어지셨다.

아이러니하게도 나이가 들어가실수록 더욱더 젊어지고 계셨다.

그때의 엄마의 모습과 지금의 엄마의 모습을 비교하면 모녀로 보일 정도이다.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만난 엄마는 내가 알던 그 예전의 엄마의 모습이 아니었다.

젊고 고왔던 중소기업 사모님에서 너무나 삐쩍 마르고, 지쳐있는 모습으로 변하였다.

마치 세월의 힘에 겨워, 늙고 병든 고목과도 같이 보였었다.

그곳이 장례식장이 아니었다면, 그것도 아버지의 마지막 가시는 길만 아니었다면, 엄마의 그 충격적인 모습에 우리 엄마인지 알아볼 수도 없었을 것이다.

아주 어렸을 적 잠깐 뵈었던 외할머니가 그곳에 앉아 계신 줄 알았다.

그러나 우리와 같이 생활하시며 마음의 안정을 찾으시고 행복한 노후를 즐기시다보니, 늙고 병든 노인에서 대학생 딸을 둔 아주머니로 서서히 변하셨다.

우리들을 먹이기 위해 정성스럽게 만들어주신 음식을 엄마도 같이 먹게 되었고, 송이의 성화에 예쁘게 염색도 하셨다.

나와 송이의 손을 잡고 아주 오랜만에 새 옷도 샀다.

그 긴 세월동안 못 먹고, 못 입고, 모든 것을 참아야만 했던 인고의 시간을 지나, 다시 부활의 시간을 맞이하셨다.

그리고 고향의 어릴 적 그 집을 선물해드린 순간.

엄마는 드디어 두 자식의 어머니에서 한 명의 어린 소녀로 다시 태어나셨다.

궂은 농사일로 건강해 보이는 구릿빛으로 변한 피부와 보라누나의 도움으로 시작하신 맨손 운동들 덕분에 이제는 누가 봐도 30대 후반의 여성으로 보인다.

그리고 가장 큰 변화의 이유는 내가 몰래 놔드린 [빨간약] 덕분이기는 하지만, 마음의 나이가 실제 나이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분명하게 증명해내신 분이 우리 엄마이다.

“그럼 엄마는 부녀회에 운이도 같이 간다고 이야기 해놓을게. 운이는 집에서 쉬고 있어. 오늘은 여행가기전에 다 같이 미용실 가기로 했거든.”

‘설마 시골 미용실을 같이 간다는 건 아니시겠지?’

“어.. 머리는 제가 만들어드린 미용로봇이 있잖아요. 굳이 엄마도 거기 가서 하셔야할 이유가..”

많이 걱정되어서 말려보려고 말을 해보았다.

“응? 그냥 나야 다 같이 여행 기분 내려고 가는 거지. 엄마는 머리 안 할거야. 집에서 다 가능한데 뭐 하러 돈을 쓰니?”

엄마는 아직까지도 자신에게 돈을 쓰는 것에는 부담을 느껴하신다.

그래서 송이가 주기적으로 옷이며 화장품들을 강제로 사서 보내준다.

그러나 경호원 분들이나 마을 주민 분들을 위해서는 아낌없이 쓰신다.

엄마가 사용하시는 용돈카드 내역을 보면 다 그런 식이었다.

“가시면 맛있는 것도 사 드시고 오세요. 저는 집에서 그림 좀 그리고 있을게요.”

“그래. 밥은 엄마가 해놓고 갈 테니까 꼭 챙겨먹고. 알겠지?”

“네. 걱정 마세요.”

마을 부녀회에서 계약한 여행사에 연락을 해서 기존의 항공편에서 내 전용기 중에서 가장 큰 것으로 바꾸었다.

그리고 중저가의 리조트였던 숙소를 송이의 스카이호텔 VVIP룸들로 바꾸었다.

엄마가 여행을 가신다는 것을 나나 송이가 알게 되었다면 다 알아서 해드렸을 것인데, 여행사를 통하다보니 가장 기본적인 패키지 여행 코스로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베트남 정부에 나와 내 가족이 여행을 간다고 통보하였다.

모르고 있다가 갑작스럽게 방문하는 나를 보면 놀랄 수도 있기에, 내 방문에 대해서는 미리 알려주어야 한다.

베트남 정부에는 국가적인 비상사태에 준하는 비상이 걸렸고, 그 정보는 베트남 언론사에 흘러들어가게 되었다.

[베트남의 여신! 천송이 회장의 생모. 베트남 방문 확정!]

[천송이 회장의 어머니. 이미정 여사의 베트남 방문이 베트남 경제에 미칠 영향.]

[힐링 그룹 오너 천운. 그가 베트남에 오는 이유는 천송이 회장의 사업 때문?]

아직 출발도 하지 않았는데, 베트남의 모든 방송국 채널에서는 온통 이 이야기만 흘러나오고 있었고, 그로 인해 베트남의 전 국민이 알게 되었다.

마을에 도착한 버스에 오르는 동네 아주머니들과 엄마는 베트남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도 모른 채로 처음 떠나는 해외여행에 너무나 설레고만 있었다.

“아따 운아! 무신 돈을 이리 많이 썼대? 그냥 부녀회 돈으로만 혀도 되는디. 애껴야 결혼도 허고 그럴 거 아니여!”

“아니에요. 괜찮아요. 이 정도는 당연히 제가 해드려야죠. 뭐 불편하거 있으시면 이야기 해주세요.”

나도 따로 움직이지 않고, 버스에 같이 타서 움직이다보니 아주머니들이 계속해서 먹을 것을 주시며 이야기를 걸어주셨다.

“아따 그란디 미정이랑 운이가 같이 있으니께 엄마랑 아들이 아닌 것 같어부러! 완전히 부부 같당께! 느그 엄마만 좋은 거 맥이지 말고 우리도 좀 나눠주라.”

“아유. 언니는 무슨 그런 소리를 하세요? 저도 같은 거 먹고 있어요.”

“아니야 언니. 분명히 뭔가가 있는 거 같어. 처음 봤을 때도 고왔는데, 지금은 나보다도 더 어린 것 같잖아. 누가 보면 내 딸이라고 해도 믿겠어.”

이장님의 부인이시자 부녀회장님이신 순희 이모는 엄마보다 세 살이 더 어리시다.

그런데 이모의 말처럼 언 듯 보면 모녀지간으로 보일 정도로 엄마가 어려 보였다.

물론 농사일 때문에 바빠서 관리를 못한 이모가 나이보다 더 들어 보이는 이유도 있지만, 엄마의 피부가 젊은 분들과 비슷하게 탄력이 생기면서 일어난 변화 때문이 더 크다.

“그만들 좀 해. 순희 너 자꾸 그러면 진짜 엄마라고 부른다!”

“워매! 그라믄 우리 헌티는 할매라고 불러라이!”

뒤쪽에 앉아계신 할머니에 가까운 아주머니 두 분이 엄마를 향해 말을 하셨다.

“언니!”

출발부터 아주 시끄러웠다.

그리고 무안 공항으로 향하는 1시간 반 동안, 정말 잠시도 쉬지 않고 이야기들을 하셨다.

중간 중간 알아들을 수 없는 사투리들이 난무했지만, 그래도 즐거운 그 감정들만은 진하게 전해져 왔다.

“그란디 그 뭐냐. 아! 인천 공항으로 가야되는 거 아녀?”

원래라면 인천공항에서 베트남으로 가는 국제선을 타야하지만, 무안공항에 내 전용기를 대기시켜놓았다.

“무안 공항에 비행기 준비해놨어요. 그쪽에서 출발하시면 되요.”

“그리? 그 짝에서도 갈 수 있대? 우리 딸래미가 인천공항인가로 가야한다고 그랬는디?”

“아따 아짐! 우리 운이가 다 알아서 허니께 걱정 좀 하지 마쑈! 맨날 그러케 걱정만 해싸니까 설사만 허제! 아짐 땜시 세 번이나 차가 섰다 가니께 비항기 시간 늦것소!”

“그거시 나오는 걸 어쪄? 그냥 싸?”

“적당히 해야제! 거기가 다 헐것소!”

절대 두 분이 싸우시는 게 아니다.

그냥 전라도 사투리가 조금 거칠고, 목소리 톤이 높아서 싸우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두 분은 둘도 없는 단짝이시다.

“조금 늦어도 괜찮아요. 비행기 시간 조절하면 되니까 너무 걱정 마세요.”

“그리? 아따 우리 운이가 공항에도 아는 사람이 있는갑써! 대단허네!”

그 말에 엄마 옆에 앉아 계시던 경호원 분들이 웃고 계셨다.

이 버스 안에서 나의 현재 위치에 대해서 가장 잘 아시는 분들이 듣기에는 너무나 웃긴 이야기들 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우리는 유쾌한 버스 여행의 종착지인 무안공항으로 들어섰다.

그런데 버스는 주차장에서 멈추지 않고, 그대로 활주로를 향해 계속해서 나아갔다.

그리고 활주로 한 가운데에 서 있는 비행기라고 부르기도 힘들 정도의 그 무언가.

마치 비행기 모양의 건물이 서 있는 것 같았다.

[부르릉]

그 비행기의 열려있는 화물칸에 우리가 타고 온 대형 버스가 그대로 올라가기 시작하였다.

사실 우리가 타고 온 대형버스는 일반 버스가 아니다.

방탄은 기본에 각종 보호 장비들과 비상 상황에서는 패닉룸의 역할까지 할 수 있는 아주 튼튼한 요새 같은 버스였다.

이번 여행을 위해서 힐링 자동차에서 특별히 개조를 한 기종이다.

그래서 베트남에서도 사용하기 위해 이 대형 버스를 그대로 옮길 비행기를 준비하였다.

내가 소유한 전용기 중에서 가장 큰 기종인 C-17을 커스텀한 기종이다.

C-17.

보우잉에서 제작한 전장 53m, 전폭 51.75m의 대형 전략, 전술 수송기.

미군에서 사랑하는 이 전략 수송기는 최대 77.52톤을 수송할 수 있다.

그리고 내가 보유한 이 C-17의 정확한 기체명은 BC-17.

민수용으로 설계된 이 버전은 연비 및 유지보수 비용이 일반 항공기보다 훨씬 많이 소모되기 때문에 보우잉사에서는 계획으로만 끝난 버전이다.

그런데 내가 비행선들을 만들기 위해 설계도를 참고하려고 보우잉사의 자료들을 확인할 때 이 기종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그래서 보우잉사에 주문을 하여 인도를 받은 것이다.

비행기까지 버스를 타고 올라오는 신기한 경험을 하였지만, 모든 것이 처음인 아주머니들은 원래 그런 줄 알고 계셨다.

그녀들에게는 그냥 이 모든 것들이 그 자체로 신기한 경험일 뿐이었다.

다만 경호원 분들은 경호를 위해 미리 동선을 안내해 드렸지만, 이 특이한 상황과 생각보다도 더 엄청난 규모의 수송기의 모습에 압도되어 당황하고 있었다.

“자 이쪽으로 올라가시면 방이 있으니까 조심히 올라가세요.”

수송기의 위쪽은 호텔방처럼 꾸며 놓았다.

다만, 뒤쪽에 좌석들을 마련해 놓아서 이륙과 착륙 시에는 안전을 위해서 그 좌석에 앉아 안전벨트를 해야만 한다.

“아따! 겁나게 좋아버리네! 이거이 비항기여 호텔방이여?”

“그라니까! 영화에서 보믄 이렇게 안 생겼던디, 겁나게 신기하구마이.”

“언니. 이거 일반 비행기 맞아? 아무래도 이상한데..”

순희 이모가 우리 엄마의 옆에 꼭 붙어서 조용히 물어보고 있었다.

“응? 이거 우리 운이꺼라던데? 운아. 이거 아들 것 맞지?”

“네. 제가 이럴 때 사용하려고 산거에요. 그래서 일반 비행기하고는 조금 구조가 다르니까 걱정 마세요. 이모.”

“그렇구나. 정말 신기하네. 이런 건 얼마나 하는 거야? 막 10억 넘고 그러는 거 아니야?”

순진한 눈빛으로 비행기의 가격을 물어보시는 이모의 물음에 개조비용까지 하면, 천억이 살짝 넘는 금액을 이야기 해드리기에는 조금 그랬다.

“조금 넘어요. 하하하..”

“그렇구나. 우리 대우도 같이 왔으면 좋았을 걸.”

열심히 군 생활 중인 대우가 생각나시나 보다.

“나중에 대우는 제가 다른 비행기로 태워줄 테니까 너무 걱정 마세요.”

“그래. 안 그래도 우리 대우가 운이 덕분에 군 생활 편히 하고 있다고 하더라. 고맙다 운아.”

“우리 사이에 뭘요.”

“이제 출발할 시간입니다. 다들 자리에 앉아서 벨트를 착용해 주세요.”

비행기의 승무원분들이 우리들을 자리로 안내하였다.

그렇게 우리는 베트남으로 향해 비행을 시작했다.

오늘은 그 유명한 천송이씨의 가족들과 지인들이 입국을 한다고 하였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고 닮고 싶은 그녀의 지인들이 베트남에서 처음 만나는 베트남 사람이 자신일 테니, 베트남에 대한 좋은 인상을 남겨주고 싶었다.

그렇게 새벽부터 웃는 연습을 하고, 한국어로 ‘안녕하세요.’라는 말도 연습을 하였다.

요즘 유행하는 한국어 교습소의 선생님에게 직접 배운 말인데, 한국에서 오신 분들이 잘 알아들으실 수 있으면 좋겠다.

“안뇨옹 하세요! 여권 주시게써요?”

붉은색의 등산복을 입고, 머리는 한 없이 뽀글거리는 특이한 헤어스타일의 한국 여성을 보며, 열심히 연습했던 인사말을 건네 보았다.

한국인들은 천송이씨처럼 세련된 줄만 알았는데, 복장도 헤어스타일도 특이하셨다.

특히나 관광이 목적인 줄 알았는데 등산복이라니, 베트남에 도착한 첫날부터 등산을 하려는 것을 보면, 정말 열정이 대단하시다.

“워매! 한국말도 잘허요. 여권? 여그 있쏘!”

자신이 배운 한국말과는 너무나 달랐지만, 내미는 여권을 보며 애써 밝은 미소를 지어 보여주었다.

깨끗한 여권에 스탬프를 찍어주며 생각을 하였다.

‘처음으로 하는 해외여행이 우리 베트남이라니, 더욱 친절하게 대해드려야지!’

“통과! 조흔 여행 되셔요.”

웃으며 다시 건네는 여권을 받아 드시면서 나에게 뭐라고 말을 해주셨는데,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다.

“고맙소! 아따 벌써부터 쪄버리네. 그랑께 아짐보고 이거 입으면 겁나게 덥다고 했는디! 고집은 아주 그냥 소고집이여! 저짝 뒤에 오는 저 아짐은 겁나게 까다롭게 통과시켜 주쑈! 아주 못된 아줌씨여!”

“왓? 죄송.. 통과...”

겨우 웃으며 다시 한 번 통과를 외쳐드리니, 연신 뭐라고 하시면서 지나가셨다.

그리고 그 분이 내 눈앞에 다시 나타나셨다.

“어? 뭐지? 아까 통과 하셨는데! 왜 또??”

너무나 놀라서 베트남어로 너무 빨리 말을 해버렸다.

“아따! 뭐시라고 허는지 나는 모르것소! 거 머시냐 여권? 이거 드리믄 된다고 허던디? 그란디 내가 저짝 아줌씨꺼하고 바뀌었는디 어쩐디야. 그래도 사진은 비슷허니께 그냥 통과시켜 주쑈!”

너무나 혼란스러웠다.

분명히 붉은 등산복에 저 뽀글거리는 파마머리는 방금 전에 지나가신 그분이 맞았다.

여성분이 내미는 여권을 얼떨결에 받아들며 여권을 상세하게 살펴보았다.

이름도 다르고, 스탬프를 찍은 흔적도 없었다.

‘아! 쌍둥이!’

쌍둥이가 틀림없을 것이다.

그중에서도 일란성 쌍둥이가 틀림없을 것이다.

그리 생각하며 여권에 스탬프를 찍고 건네 드리며, 다시 인사를 건네 보았다.

“아뇨옹 하세요. 통과! 조흔 여행 되셔요.”

“고맙소! 난중에 봅시다이! 수고 허쑈!”

조금은 당황했지만, 무난하게 통과를 시켜드렸고, 분위기상 좋은 인상을 남겨드린 것 같았다.

“다응 분!”

이제는 한국어 교습소에서 공부했던 말들이 수월하게 나오기 시작하였다.

나의 다음 분이라는 말에 다시 그 분이 또 나타났다.

붉은 등산복에 뽀글거리는 그 머리.

키도 비슷했고, 신발도 똑같았다.

그리고 저 말투.

“아따! 오래 걸리네이. 후딱허고 차에서 에어콘 키고 쉬고 싶구만. 아가씨 얼렁 좀 해주쑈! 허.. 허리.. 거 머시냐. 허리업? 으잉? 그거 좀 해가꼬 거시기 좀 해주쑈!”

설마 세 쌍둥이?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이 들지만, 문득 이상한 예감에 자리에서 일어나 길게 늘어선 줄을 바라봤다.

그리고 비명을 질러 버렸다.

“꺄악!!! 복제 인간!! 복제 인간들이다!!”

그녀가 바라본 그 긴 줄에는 온통 붉은색 등산복에 뽀글거리는 파마머리를 한 똑같은 키에, 똑같은 신발을 신은 똑 같이 생긴 여자들이 서 있었다.

“이.. 이건.. 악몽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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