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 이야기
[천운님. 베트남 정부에서 움직였습니다. 군인들을 동원하여 베트남 북쪽에 존재하는 갱단들을 정리하려고 움직이는 중입니다.]
베트남 정부에서 나의 행보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명단에 나와 있는 악귀들을 처리할 때는 내가 항상 동행을 하였지만, 그렇지 않은 조직들 중에서 규모가 작은 경우에는 아담이 혼자서 정리를 하고 있었다.
그러다 규모는 작았지만, 베트남 경찰의 고위 간부와 깊은 관계에 있는 조직에 경찰 고위 간부가 방문을 한 것을 모르고, 아담이가 습격을 한 것이 문제였다.
그 조직은 주변의 조직들이 누군가에게 습격을 당하게 되자 불안해져서 정보를 얻고자, 자신의 갱단과 관계가 깊은 경찰 고위 간부를 초대해 술을 대접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아담이는 우선 제압을 해뒀지만, 스스로 판단이 되지 않자 나에게 판단을 떠 넘겼다.
범죄 조직과 관계가 깊은 비리 경찰이지만, 베트남의 공무원이었기 때문에 조용히 처리하는 것은 힘들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아담이의 모습을 직접 봐 버린 것이 문제였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베트남 정부에 잡아둔 경찰 간부를 넘겨주며, 간단하게 상황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었다.
베트남에 우리 힐링 그룹이 본격적으로 진출하기 전에 문제의 소지가 있는 조직들을 정리하는 중이라고.
사실 말이 안 되는 말이기는 하지만, 그것 말고는 댈 수 있는 핑계가 그리 많지 않았다.
뭐. 저승의 퀘스트라고 말할 수는 없는 일이니.
그러자 베트남 정부에서 신속하게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원래 베트남 정부에서는 베트남 남쪽의 갱단들이 누군가의 습격으로 와해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지만, 그저 그 조직들 간의 전쟁인 것으로 판단하고 있었다.
물론 그 전쟁의 규모는 엄청났지만.
그러나 어차피 그들만의 일일 뿐이니, 고위 관료들은 관심이 없었다.
다만, 갱단과 관련이 깊은 중간급 관료들만이 자신들의 다양한 연줄을 동원하여 상황을 알아보려고 했을 뿐이었다.
그러다 베트남 정부가 내가 개입을 한 것을 알게 되었고, 그 때문에 베트남의 주석과 지도층의 발등에 불이 떨어지게 된 것이다.
나는 아바타에 접속하여 움직이고 있었고, 간간이 호텔의 식당이나 주변을 산책하며 알리바이를 만들어두었기 때문에 내가 그런 일을 하고 있었다는 것은 누구도 몰랐었다.
아담이만 들키지 않았다면 아무도 모르게 끝났을 문제이다.
그리고 베트남 정부가 신속하게 움직인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하나는 내가 베트남에 진출할 힐링 그룹의 사업체 규모에 대해서 언급한 것이고, 두 번째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자연현상 때문이다.
구름이 가득하던 베트남의 하늘에 구름 사이로 한 줄기 빛이 아름답게 내리 쬐었고, 그 아름다운 장면을 목격한 관광객들이 그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게 되었다.
그리고 그 사진은 베트남 주석과 지도부의 핵 공격을 대비한 벙커로의 대피를 만들어내었다.
결국 이 문제가 빨리 해결되어야만 내가 베트남을 떠날 것이고, 그래야만 그들이 다시 지상으로 나올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아담아. 명단에 남은 곳만 빠르게 정리하자.”
- 존명!
“너 때문에 급해진 거니까 헛소리 하지 말고 잘해. 알겠어?”
- 아니! 정보가 부실해서 생긴 일을 왜 제 탓을 합니까? 그냥 목 따버릴 걸 그랬네요! 그랬으면 내가 이렇게 구박도 안 받았지! 착한 게 죄네!! 죄야!
“그래. 네 죄니까 너 사형!”
- 그래 천 사제. 일이 급박하니 빨리 움직이자.
“... 뭔 헛소리냐?”
- 저보고 사형이라면서요! 그럼 천운님이 사제 아닙니까!
“......”
- 낄낄낄낄! 이거 완벽한 라임이었어! 나의 개그감이 극에 이르렀구나! 크하하하하
[까드득..]
꽉 쥔 내 주먹에서 소리가 들려왔고, 잠시 뒤에는 아담이의 목에서 그 소리가 들려왔다.
- 사제. 목은 돌려주시게나. 뒤를 보면서 앞으로 걷기가 힘이 드는군.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다.
명단의 마지막 인물이 있는 곳에 도착을 하였다.
정글의 한 가운데 이런 마을이 있는 게 신기했다.
그리고 그 마을에 있는 학교 겸 병원이 내가 방문하는 목적지이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이런 오지에 오실 분은 아니신 것 같은데요. 더군다나 한국분이 신 것 같은데...”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성이 나의 방문을 보며 의아해 했다.
송호석.
35세의 한국인.
베트남의 뜨거운 태양에 피부가 상해서인지 실제 나이보다 더 들어 보였다.
이 오지의 마을에 학교를 세우고, 병원을 운영하는 그는 한국에서 대학병원의 의사 출신이다.
약 3년 전쯤에 베트남에 오게 되었고, 그 뒤부터 쭉 이곳에서 살고 있었다.
“송호석씨?”
“아.. 네. 제가 송호석입니다만, 무슨 일이신지..”
“대한민국 육군 9사단 백마부대 상병 송준오 맞습니까?”
“그걸 어떻게!”
당황한 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입을 달싹이고 있었다.
무언가를 말하려다 멈추고, 다시 말 하려다 멈추는 그의 입은 계속에서 달싹이고만 있었고, 입 밖으로 말을 내 뱉지는 못하고 있었다.
당황한 그에게 내가 말을 하려는 순간, 문이 열렸다.
“선생님! 손님 오셨다면서요? 엄마가 이거 가져다 드리래요!”
이런 오지에서 구하기 힘들었을 얼음이 띄워져 있는 차 두 잔이 아이의 손에 들려있었다.
이런 정성을 보일 정도인 것을 보면, 이 오지의 마을에서 이 송호석씨, 아니 송준오의 위치가 어떤지 알 수 있었다.
“아저씨! 우리 선생님 나라에서 온 친구시죠? 저도 나중에 한국으로 유학 갈 거예요! 그래서 공부도 많이 하고, 돈도 많이 벌어서 베트남에 학교도 세우고 병원에서 환자들도 치료해 줄 거예요!”
이 아이에게 송준오가, 아니 저 악귀가 그의 우상인 것 같았다.
“선생님은 손님과 할 이야기가 있으니까 나가봐라. 그리고 오늘 수업은 다음에 하는 걸로 하자. 다른 아이들한테도 이야기 해주고.”
“네!! 아싸!”
꿈은 거창하지만, 아직은 노는 게 더 좋은가 보다.
그래도 아이 덕분에 분위기가 많이 환기가 되었다.
“혹시 저승사자이십니까?”
그는 내가 놀랄정도로 담담하게 이야기를 하였다.
“사자는 아니지만, 그들의 일을 도와주는 사람입니다.”
내 이야기에 그는 잠시 고민하다 이야기를 했다.
“저에게 조금만 더 시간을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제가 갑자기 사라진다면 이 마을 사람들에게는 큰 충격일 겁니다.”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군요.”
나의 담담한 말투와 상황을 알아보려는 질문에 그는 잘 하면 그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시간을 벌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자신의 이야기를 해주기 시작하였다.
20살의 나이에 머나먼 타국으로 떠나왔다.
그것도 포탄이 비처럼 쏟아지던 전쟁터로.
그 보다도 더 어린 부인을 남겨두고.
솔직히 조국을 위한다는 마음은 없었다.
중대장이 지원서를 내밀며 부대원들에게 강제로 사인을 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다른 이유는 돈을 많이 벌 수 있다고 해서이다.
비록 부모님이 맺어주신 인연이었지만, 자신은 자신의 부인이 너무나 좋았다.
그래서 그녀를 고생 시키고 싶지 않았다.
그러려면 돈이 필요했다.
그래서 베트남의 전쟁터로 떠날 수밖에 없었다.
베트남에서의 생활은 끔찍했다.
모기, 지네, 산거머리, 불개미들은 항상 자신들을 괴롭혔고, 언제 총알과 포탄이 날아올지 모르니 계속 긴장하며 생활해야 했다.
오로지 한국의 집으로, 자신의 아내 곁으로 되돌아갈 날만 고대하며, 버티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견딘 자신에게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사건이 벌어졌다.
“소대장님! 다시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저기에는 여자들하고 아이들만 있단 말입니다! 정보가 틀린 게 맞다니까요!”
“시끄러워! 시키는 대로 하란 말이다! 전시 상황에서 항명은 총살이야! 내가 너 지금 쏴 죽여도 문제가 안 된다고! 송 상병. 정신 차리고 자리로 되돌아가라. 가서 소대원들하고 같이 정리하란 말이다!”
저 지옥과도 같은 곳에서 악귀들처럼 날뛰고 있는 소대원들하고 같이 악귀가 되고 싶지 않았다.
누가 봐도 여자들과 어린 아이들밖에 없는데, 이 진급에 미쳐버린 소대장은 저 여자들과 아이들이 베트공으로 보이나 보다.
그리고 어제까지 같이 웃고, 같이 먹고, 같이 잠을 자던 소대원들이 저기에서 그 여자들과 어린 아이들에게 하는 짓을 보면, 그 가족과도 같던 전우들이 맞나 의심이 든다.
모두들 미쳐버렸다.
아니면 그들이 정상이고, 자신이 미쳤던지.
울고 있던 아이의 입을 막고 있는 엄마는 자신의 아이가 숨이 막혀 축 늘어져 죽어 있는지도 모르고, 필사적으로 아이의 입을 막고 있었다.
그것만이 이미 죽어버린 자신의 아이를 살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것처럼.
10살 정도밖에 안 되어 보이는 여자 아이를 끌고 들어가는 김일병과 최이병은 불룩한 바지를 벌써부터 끌어 내리면서 집안으로 어린 아이를 끌고 들어가고 있었다.
총에 맞아 팔이 떨어져 나간 시체를 붙들고 있는 남자 아이는 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눈으로만 울고 있었다.
세상에 지옥이 있고 악귀가 있다면, 그건 바로 여기일 것이고 우리일 것이다.
‘이건 아니다. 이건 아니야. 우리는 적으로부터 이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서 온 것이지, 이 사람들에게 이런 짓을 하려고 온 게 아니야!’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어깨에 있던 것을 끌어내려서 손에 들었다.
“송 상병! 그 총 내려놔! 야! 송준오!”
“당장 이 미친 짓을 그만두지 않으면 쏘겠습니다! 당장 그만둬! 김 일병! 그 아이 놔줘!”
내 손에 들린 총을 본 김 일병이 아이를 놔주었다.
옷이 반쯤 찢어지며 집안으로 끌려들어가던 아이가 황급히 여자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달려가, 자신 보다도 더 어린 꼬마 아이를 끌어안고 벌벌 떨고 있었다.
“그 총 내려놓으라고 했어! 야! 소대장 말이 말 같지 않는 거냐! 명령불복종은 총살이라고 했다!”
“소대장님. 이건 너무나 부당합니다. 이건 정말 아닙니다! 한 병장님! 병장님이 말씀 좀 해보십쇼!”
그 말에 자신을 향해 조준하고 있던 총구를 그대로 유지하던 한 병장이 말을 하였다.
“그래. 내가 소대장님하고 이야기 해볼 테니까 우선 그 총 내려. 우리는 한 식구잖아. 우리끼리 이러면 안 돼!”
숨 막히는 정적이 흐르고 있었다.
마을 곳곳에 퍼져있던 소대원들이 어느새 모여들며, 나를 동그랗게 포위해왔다.
“마지막 경고다. 그 총 내려. 그러면 없던 걸로 해주마. 그리고 소대원들하고 같이 임무를 완수해. 내 명령에 복종하란 말이다!”
그 말에 나는 나도 모르게 손가락을 움직여 버렸다.
[타타탕!!]
그러나 이상하게도 소대장이 아니라 내 몸에서 피와 살점이 터져 나왔다.
“최이병... 너.. 쿨럭...”
배에서 느껴지는 엄청난 고통보다도 나에게 동생처럼 살갑게 굴던 그 최이병이 나에게 총을 쐈다는 사실이 더욱 아파왔다.
그래도 자신은 악귀가 되지 않고 죽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가족과도 같았던 소대원들을 자신의 손으로 쏘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미안해.. 여보..’
혼자가 될 사랑하는 자신의 아내가 마음에 걸렸지만, 자신의 아내도 자신이 악귀가 되어서 사는 것 보다는 이것을 더 원할 것이다.
그 착하디 착한 아내는 자신을 이해해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바닥에 쓰러지는데, 아까전의 그 여자아이가 눈에 보였다.
자신보다도 더 어린 아이를 끌어안고 떨면서 절망의 표정을 하고 있었다.
‘아... 저 아이.. 저 사람들..’
자신이 이대로 죽으면 다시 그들에게는 아까와 같은 지옥이 펼쳐질 것이다.
그럴 수는 없었다.
쓰러지는 몸을 겨우 추슬러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다행히 등 뒤에 벽이 있어서 기대앉을 수 있었다.
서서히 좁혀오는 소대원들이 흐려지는 자신의 두 눈에 악귀들처럼 보이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방금 전에 시도하려다 실패한 손가락을 힘껏 움켜쥐었다.
[타타타타탕!]
[두두두두!!]
[타타탕!]
“죽어!!”
“아악!!! 내 다리!”
“죽어! 죽어! 죽어!”
온몸이 몽둥이로 두들겨 패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떨어져나간 자신의 다리가 마치 거짓말처럼 자신의 눈앞에서 굴러다니고 있었다.
계속해서 손가락을 당기고 있었지만, 더 이상 총이 발사되지 않았다.
총알이 떨어졌나싶어서 고개를 겨우 내려 보니 손가락이 없었다.
‘이러니 나가지 않지...’
이 순간에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이 너무나 이상했다.
“커억... 끄르륵...”
숨이 넘어가는 순간에 바닥에 쓰러져 죽어가는 소대원들 몇이 보였다.
그리고 그 뒤에서 서로를 끌어안고, 떨고 있는 마을 사람들도.
‘죄송합니다. 결국 몇 명밖에는...’
거기까지 생각하다 의식이 사라졌다.
그리고 다시 정신이 들었을 때는 꽤 많은 시간이 흐르고 나서였다.
소대원들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보이지 않았고, 마을은 불에 타 연기가 자욱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마을 사람들은 살아가고 있었다.
슬픔의 흔적을 지우고, 부서진 집을 다시 세웠다.
그리고 자신이 살린 그 아이가 자신이 죽은 자리에 과일을 내려놓았다.
부족한 식량일 텐데도 그렇게 했다.
그 자리에 앉아 그들의 삶을 지켜보았다.
원래 있었던 집이 사라지기도 하고, 새롭게 집이 생기기도 하였다.
아이들은 어느새 자라 부모가 되었고, 부모였던 사람들은 늙어 죽기도 하였다.
그들은 죽으면 밝은 빛에 휩싸여 사라졌다.
자신은 사라지지도 않고 누구도 데리러 오지 않는데, 그들은 죽음 이후에도 무언가가 인도를 하듯이 데려갔다.
한 번은 그 빛에 자신도 같이 들어가려고 하였지만, 엄청난 고통만 느껴지고 튕겨져 나왔다.
자신의 영혼이 찢어지는 듯한 그 고통은 너무나 엄청나 다시는 시도하지 않았다.
그 뒤로는 그저 그가 죽은 자리에 앉아 바라만 보았다.
자신이 살려주고, 매일 자신이 죽은 자리에 과일을 놓아주는 그 여자 아이를.
그 아이는 어느새 자라 아이를 낳았고, 그 아이의 아이도 자라 또 다시 아이를 낳았다.
자신이 지킨 생명이 또 다른 생명을 만들어낸 장면은 경이였다.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증거이다.
그러다 그를 보게 되었다.
자신의 조국에서 온 젊은 의사.
그는 이 오지를 어떻게 찾아왔는지 모르겠지만, 오자마자 이 마을에 바로 동화가 되었다.
넉살좋게 웃으며 통하지도 않는 말을 손짓 발짓을 하며 마을 사람들과 어울렸다.
그러다 몇 달 동안 마을을 떠나 있다 다시 돌아 왔을때는 아예 눌러 살려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오자마자 마을에 건물을 만들기 시작하였다.
나중에야 그게 학교이며, 병원인 줄 알았다.
그는 너무나 밝았고, 성실했다.
마을 사람들은 그를 너무나 좋아했다.
그리고 자신이 구해준 그 아이도.
그 아이는 내 조국에서 온 그 젊은 의사가 마을에 정착할 수 있게 최선을 다해 도와주었다.
마치 자신을 구해준 나를 대신하여 그 젊은 의사에게 은혜를 갚듯이.
그러고 보면 그 젊은 의사는 나를 묘하게 닮았다.
그리고 내 아내까지도.
그래서 지켜보게 되었다.
그 젊은 의사가 이 마을에서 어떤 삶을 살고자 하는지가 궁금하였다.
매일 지켜보던 어느 날.
그 젊은 의사가 갑자기 심하게 아프기 시작하였다.
가만 보니, 부대원들이 앓았던 풍토병인 것 같았다.
고열에 정신을 잃고 쓰러진 그를 마을 사람들은 걱정하며 간호를 시작하였다.
그런데 아무런 의학 지식이 없는 자신이 보기에도 저건 아니었다.
이상한 풀을 짓이겨 황토와 함께 버물려 먹였다.
그리고 상태가 더욱 안 좋아지자, 자신들의 배설물이 썩은 물을 가져다 먹였다.
그 젊은 의사를 걱정하는 마음은 진정이었지만, 그 치료법은 아주 많이 잘못 되었다.
결국에는 거의 숨이 넘어가던 그 젊은 의사의 앞에 나는 설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그가 죽는다면, 아무것도 없다.
옛날 이야기에 나오는 저승사자도 없다.
자신이 겪은, 앞으로도 겪을 그 기나긴 외로움을 저렇게 착한 젊은이에게 겪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의 몸을 움직여 그의 물건 중에 항생제를 맞추고 싶었다.
영화에서 보면 귀신은 빙의가 가능하다고 나온다.
지금 자신에게 필요한 건 바로 그 빙의이다.
그를 보며 간절히 원했다.
잠시만 그의 몸에 들어가 움직여주고 싶다고.
그를 살리고 싶다고.
정말 간절히 원했다.
그러다 잠시 정신을 잃었고,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는 그의 몸 안이었다.
잘 움직이지 않는 몸을 겨우 움직여 그가 치료할 때 사용하던 한글로 항생제라고 써져있던 약을 주사기를 이용해 주사하였다.
그리고 며칠 동안 그의 몸을 치료하니, 많이 좋아진 것이 느껴졌다.
자신이 의학지식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의 몸에 있던 그의 영혼과 대화를 할 수 있게 되어서 가능한 것이었다.
내가 오래된 귀신이라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그가 아파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몸을 움직이는 주체는 자신이 되었다.
한동안 겨우 그의 처방대로 몸을 움직여 치료를 하고는 힘에 겨워 계속 쓰러져 있었다.
그러다보니 그의 영혼과의 대화만이 유일한 소일거리였다.
‘저는 유복자입니다. 저희 어머니가 어린 나이에 저를 혼자 낳아서 키우셨죠. 다들 반대를 하셨지만, 저희 어머니가 저를 지켜주셨어요. 그래서 제가 태어나게 되었죠.’
그의 삶의 시작은 불운했지만, 그의 인생은 불운하지 않았다.
자신을 사랑해주는 어머니가 있었고, 죽은 아버지가 물려준 좋은 머리가 있었다.
학교 공부만으로도 항상 전교 1등을 할 수 있었다.
그렇게 전액 장학금을 받으며 의과대학에 진학을 하였고, 병원에서 전문의까지 아무런 문제없이 할 수 있었다.
‘어느 날은 어머니가 아버지에 대해서 말씀해주셨어요. 원래는 절대 아버지 이야기를 해주시는 분이 아니었는데, 그날은 내가 전문의가 된 기념으로 둘이서 와인을 했었거든요. 달콤한 걸로 먹다보니 어머니의 주량을 넘어섰나 봐요. 그래서 아버지에 대해서 듣게 되었죠.’
그의 아버지는 자신과 같은 파병 군인이라고 했다.
그리고 베트남에서 죽었다는 전사 통지만 받았다고 한다.
그의 어머니는 그의 아버지와의 짧은 결혼 생활에도 그를 너무나 사랑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의 아버지도 그랬을 것이라고 했다.
나는 당연히 그랬을 것이라고 해주었다.
내가 그랬으니까.
아버지에 대해 듣게 되자 호기심이 생긴 그는 여러 가지 조사를 해보았고, 그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마을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고 한다.
쉽지 않았지만, 한국 군인들이 많이 죽은 전투가 있던 마을이라서 국방부에 기록이 남아있어서 겨우 알 수 있었다.
그러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곳을 직접 가보고 싶었다고 한다.
그래서 휴가를 내 이곳을 오게 되었고, 이 마을에서 자신의 영혼을 잡아끄는 무언가를 느끼게 되었다고 했다.
휴가가 끝나 한국으로 돌아가서도 이곳이 계속해서 생각났고, 많은 고민 끝에 한국 생활을 정리하고 이곳으로 오게 되었다고 한다.
자신의 아버지가 목숨 바쳐 지켜낸 이 마을을 아들인 자신이 이어서 지켜주고 싶었다는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자신의 어머니에게 그렇게 말을 했더니, 예상과는 달리 흔쾌히 허락을 해주시고 응원을 해주셨다고 했다.
마치 자신의 아내와 같이 착하고 현명한 사람인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말도 안 되는 감정이 왜 생기는지, 무엇 때문에 참을 수 없었는지는 자신도 설명할 수 없었다고 했다.
그저 그러고 싶은 마음만이 들었다고 했다.
‘저희 아버지 성함은 송. 준자 오자를 쓰십니다. 백마부대 상병으로 참전했다고 하시더군요.’
그 말을 듣고 엄청난 충격이 받았다.
자신의 아들이었다.
이 머나먼 타국에서 기적과 같이 자신의 아들이 자신을 찾아온 것이다.
아들의 영혼을 잡아 끈 것이 자신인 것 같았다.
‘아...’
그러나 아무 말도 아들에게 해 줄 수 없었다.
자신이 그리 대단한 일을 한 것도 아니었고, 자신은 오히려 이 마을을 학살하던 소대의 소대원이라고 말 하기에는 너무나 부끄러웠다.
그래서 서둘러 아들의 몸에서 빠져나가려고 하였다.
그런데 반쯤 빠져나가던 그의 영혼이 다시 무언가에 이끌리듯이 다시 아들의 몸으로 빨려 들어갔다.
수없이 시도하였지만, 마찬가지였다.
아들의 영혼과 이미 반쯤 섞여버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