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3화 (163/170)

휴게소

그들은 결국 곱창에 볶음밥까지 야무지게 먹고 떠났다.

나노 로봇을 이용해 심장에 직접 새겨 넣은 문양은 그들을 그들로서 존재하도록 도와줄 것이다.

그 문양은 신의 힘은 그대로 받아오면서 맹신 상태로 만드는 정신을 제압하는 힘은 걸러주는 역할을 한다.

액운을 막아주는 부적을 재해석해서 만들어낸 내 오리지널 부적술이다.

상당한 기운을 소모하는 고급 문양이지만, 어차피 기운은 조금만 쉬면 차오르니 상관없었다.

그리고 나는 그들에게 지원을 약속하였다.

그들은 자신들과 뜻을 같이 할 동료들을 구하는 것이 먼저라고 하였고, 나는 그 동료들을 위해 나노 로봇들을 그들에게 전달해 주었다.

그리고 그들의 매직 워치에 문양을 새기는 명령어를 심어주었다.

명령어를 말하면 나노 로봇이 내 영력을 원격으로 지원받아 심장에 문양을 새기게 된다.

“그런데 이 주문이 무슨 뜻 인건가?”

그들은 내 주문에 대해서 궁금해 하였는데, 사실 별 뜻은 없다.

“한치 두치 세치 네치. 뿌꾸뽕! 뿌꾸뽕? 이건 한국말이 맞기는 하나?”

나는 다니엘의 그 질문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무시하고, 고티스 스워트 단장에게 지원에 대해서 말을 하였다.

“1차로 1억 달러를 지원해 줄 테니, 자리 잘 잡으시기 바랍니다.”

“.... 저를 어떻게 믿고 이런 거금을 주시는 거죠?”

“당신을 믿는 게 아니라, 당신의 신앙심을 믿는 겁니다. 인간은 유혹에 흔들리지만, 당신의 신앙심은 다이아몬드와도 같이 단단하니 나는 그것을 믿는 것이지요.”

“... 내가 당신을 오해했습니다. 당신을 위해 매일 신께 기도하겠습니다.”

“그것보다는 타 신을 믿는 사람들을 모두 이단으로 생각하지는 말아주시죠. 다른 신을 인정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들도 자신의 의지로 여호와를 선택해야 의미가 있지, 강요를 한다면 이전의 당신과 같은 상태가 되는 것이 아닌가요?”

나의 그 말에 그는 머리로 배운 지식과 자신이 직접 겪은 경험 사이에서 심각하게 고민을 하다가 힘겹게 입을 떼었다.

“하아..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자들은 건드리지 않겠습니다. 신앙이 강요한다고 되는 건 아니겠죠. 알겠습니다.”

결국에는 그리 말을 하고, 하늘을 보며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로키의 분신체들을 조심하라고.”

“그래. 너도 조심해라.”

“그리고 자리를 잡으면 주소를 보낼 테니, 쌈장 꼭 보내라.”

“..... 그래.”

나를 귀찮게 하는 세력들에 독을 풀어놓았다.

모두가 그런 건 아니지만, 일부 지역의 시스템 관리자들은 이상하게 나를 싫어하고 제거하고 싶어 했다.

특히나 성국이 그렇다.

성국이라고 해서 특정한 나라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영향력 안에 있는 시스템의 관리를 받는 나라들이다.

역사적으로도 유일신을 믿는 그들은 그 신을 강요하기 위해서 많은 피를 흘렸다.

자신들의 행동이 오히려 시스템을 움직이는 카르마의 양을 줄이는 것도 모르고.

여호와께서 그러라고 시킨 것도 아닌데, 신을 믿는 척하며 이용하는 자들은 자신의 권력과 재력을 유지하기 위해 성전을 일으켜 왔다.

그리고 신실한 신자들의 피와 목숨으로 온갖 향락을 누리고 살아온 것이 그들의 피의 역사였다.

거기에 새하얀 신앙의 존재들을 새롭게 풀어놓았다.

그 피로 물든 곳을 새하얗게 만들어줄지, 아니면 결국에는 그들 자신도 그 하얗던 몸과 영혼을 붉게 물들이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해줄 수 있는 것들은 최대한 지원하려고 한다.

[꺼억.. 이제야 소화가 좀 되네. 인간! 고기 좀 더 구워봐라. 이제 더 먹을 수 있다.]

겨우 다 치운 식탁에 앉아 나에게 고기를 요구하는 청설모를 바라보며 말을 하였다.

“삼겹살은 다 떨어졌는데, 다른 고기도 괜찮아?”

[다른 고기? 그것도 좋지! 세상의 모든 고기를 먹어보고 싶네!]

“그러면 가볍게 청설모 고기부터 시작해 볼까나?”

[좋지!! 좋아!? 응?]

집게를 딸깍 거리며 다가오는 나를 멍하니 보던 한 마리 청설모는 육식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앞발이 손이 되도록 나에게 빌었다.

“꼭 저렇게 얻어먹고, 치우지도 않는 놈들이 시키는 건 많아.”

“내 나이가 몇인데! 동생들이 당연히 해야지!”

저 조선시대 꼰대.

‘확 비틀어서 진짜 꼬아줄까 보다.’

[천운이형... 도움이 필요해요..]

대우한테서 메시지가 도착하였다.

깜짝 놀라 어디인지 물어보니, 휴가를 나와서 고향집에 고속버스를 타고 가다 일이 생겨 휴게소에 있다고 했다.

자세한 설명은 힘들고, 최대한 빨리 와줬으면 좋겠다고 울먹이며 말을 했다.

‘강도를 당했나? 아니면 협박? 휴게소니까 강매 사기를 당한 것일 수도 있고.’

온갖 상황에 대한 추측을 하며 빌딩옥상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성인인 대우가 저렇게 울먹이며 말을 하는 것을 보면 심각한 일이 틀림없었다.

그리고 빨리 와줬으면 좋겠다고 했으니 최대한 빨리 가야할 것 같다.

“헬기 준비 시키세요. 목적지는 대천휴게소입니다.”

탑승용 드론으로 날아가면 더 빠르겠지만, 대낮이라서 눈에 너무 띈다.

그래서 헬기를 이용해 가려고 준비를 시켰다.

대우는 군 생활이 편했다.

누구나 군 생활은 너무나 힘들고, 세상에서 자신이 있는 부대가 제일 힘들다고 한다.

그런데 대우는 정말로 군 생활이 편했다.

몸만.

“정 상병! 그거 그만하고 싸지방가서 쫌 쉬어. 그거 하다가 쓰러지면 큰일 나!”

비가 와서 막힌 하수구를 뚫는 작업을 하는데, 중대장이 황급히 뛰어와 자신을 만류하였다.

분대장이다보니 자신의 분대가 담당하는 구역을 처리해야하는데, 뭐만 하려고 하면 중대장이 달려와 아무것도 못하게 한다.

그러면 남은 분대원들끼리 알아서 해야만 하는데, 아무리 자신이 고참이라고 하더라도 눈치가 보인다.

다행히 천운이 형이 용돈을 넉넉하게 주고 가서 일이 끝나면 무조건 먹을 걸 사주며 위로를 해주는데, 원래 힘든 일을 같이 하면서 서로 부대껴야 전우애가 쌓이는 것이다.

그리고 같이 땀 흘리고 먹을 것을 사주는 고참이 참된 고참인데, 자신은 중대장 때문에 땀은 고사하고 햇볕에도 못나가게 해서 피부가 하얗게 변하고 있었다.

“아닙니다. 이것만 금방 하고 쉬겠습니다.”

“최 일병! 빨리 가서 3분대 데리고 와. 너희 분대는 내무반으로 복귀해. 얼른! 정 상병. 일은 3분대 오면 내가 시킬 테니까 애들이랑 가서 쉬어. 그러다가 탈나!”

그리고 우리 분대는 나 때문에 공공의 적이 되어버렸다.

“하아.. 미치겠네. 천운이형 때문에 몸은 편한데, 마음이 너무 불편하다.. 그렇다고 형한테 말하면 저번처럼 합참의장님하고 참모총장님이랑 같이 부대 방문하면 더 큰일이고.. 하아....”

피부는 하얗게 변하는데, 유독 눈 밑의 다크서클은 더욱 진해지고 있었다.

“정대우 상병. 부대 내 생활은 괜찮나? 뭐 힘든 일은 없고?”

“네! 없습니다. 중대장님이 신경써주셔서 모든 것이 좋습니다.”

그 말에 쇼파에 앉지도 못하고 뒤쪽에 부동자세로 서있는 중대장의 얼굴에 슬며시 미소가 퍼지고 있었다.

‘너무 귀찮게 해서 힘들다고 어떻게 말해?’

자신이 그렇게 말하면 저기 흐뭇한 표정으로 서있는 중대장은 서해의 무인도에 새로운 부대를 창설해서라도 거기 관리자로 떠날 것이다.

“그렇군. 혹시 형님이 뭐 말씀하신거나 그런 건 없지?”

“네! 없습니다.”

먼저 있던 사단장이 전역을 하고, 새롭게 사단장이 된 인물이니 천운이 형의 눈치를 당연히 볼 수밖에 없다.

“저.. 그런데.”

“응? 무슨 할 말이 있나?”

내 말에 사단장은 자세를 바로하며 귀를 기울였고, 중대장은 굉장히 긴장한 얼굴로 내 입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희 중대에 보일러가 잘 안되어서 뜨거운 물이 안 나옵니다. 이제 날이 추워질 텐데 다른 장병들이 걱정됩니다. 저희 중대장님이 사비를 들여서 고치겠다고 하시는데, 공적인 일에 사비를 쓰는 건 아닌 것 같아서..”

“보일러가? 당연히 고쳐야지! 중대장!”

“대위! 송섭!”

“그래. 자네가 사비를 들여서 고치려고 했다고? 그러면 안 돼지. 내가 바로 지시할 테니까 그걸로 처리해. 그리고 자네 부대원들을 위해서 사비까지 쓰려고 하다니 아주 좋은 지휘관이었어! 눈 여겨 보겠네.”

“감사합니다!”

“정 상병. 고맙다. 사단장님 앞에서 내 체면도 세워주고, 부대에 보일러도 새 걸로 교체할 수 있게 되었으니 이게 전부 정 상병 덕분이야.”

“아닙니다.”

이렇게 사단장이 와서 면담을 하는 날이면 적당히 중대장의 체면도 살려주고, 중대에 필요한 것도 슬며시 흘려준다.

그러면 모든 것에 앞서서 해결된다.

사실 정대우 상병을 아니꼽게 보는 부대원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정대우 상병을 좋아한다.

이전 사단장의 아들처럼 갑질도 전혀 없고, 부대 내의 일에도 아주 적극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번처럼 부대에 필요한 것들을 해결해주는 도깨비 방망이 역할까지 해주니, 안 좋아할래야 안 좋아 할 수가 없다.

그렇다보니 부대 내 사역에서 빠지는 거야 당연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을 했고, 전혀 불만이 없었다.

그런데 본인 스스로가 부대원들에게 미안해하니, 마음이 불편한 것이다.

“그래서 말인데 이번에 큰일을 해냈으니 포상휴가 좀 다녀와라.”

“휴가 말씀이십니까?”

휴가.

군인이라면 누구나 원하는 그것.

정대우 상병도 군인이다.

그러니 너무나 당연하게도 휴가라는 말에 화색이 돌기 시작하였다.

“5박 6일로 갔다 와. 더 주고 싶은데, 내 재량이 그 정도라서 미안하다.”

“아닙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래. 바로 준비해서 오늘 나가봐라. 휴가는 내일부터 시작으로 할 테니까 걱정 말고.”

심지어는 오전인 지금 내보내주면서 휴가는 내일부터 적용해주신다고 하셨다.

날아갈 것 같은 마음으로 소지품만 챙기고 바로 부대를 빠져나왔다.

옷이야 군복을 입으면 되고, 소지품이라고 해봤자 휴가증과 지갑만 챙기면 된다.

매직워치야 항상 손목에 채우고 있으니 다른 것은 필요가 없다.

“하아.. 사회의 냄새.”

아직도 남은 군 생활이 까마득해서인지, 사회의 이 냄새가 너무나 좋았다.

“버스 시간이 40분 정도 남았으니까 밥을 좀 먹어볼까?”

터미널 안에 있는 식당들 중에서 눈에 띄는 식당이 보였다.

중국집.

그 달콤한 짜장면에 노란 단무지를 같이 먹으면 천상의 음식이 따로 없다.

“짜장면 곱빼기 하나 주세요!”

자리에 앉자마자 호기롭게 주문을 마치고, 매직워치를 이용해 눈을 감은 상태로 걸그룹 뮤직비디오를 감상하고 있었다.

‘와... 어떻게 이렇게까지 예쁘지? 소속사가 예리엔터테인먼트면 천운이 형이 이사로 있는데, 혹시 만나봤을까?’

영상속의 화려한 춤과 외모의 걸 그룹을 보니, 만나보고 싶어졌다.

‘형한테 부탁해서 만나볼 수 있을까? 아니야!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염치없이 살았다고! 정신 차려! 그런데 사귀자고 하면 어떡하지? 나는 아직 군인인데.. 사귀기 쉽지 않은데...’

떡줄 사람은 생각지도 않는데, 김칫국을 한 사발 거하게 먹고 있었다.

“음식 나왔습니다.”

음식을 내려놓으며 말을 걸어주시는 종업원분의 말에 눈을 떴는데, 자신의 눈앞에 짜장으로 만든 산이 보였다.

“어? 이거 곱빼기 맞나요? 트리플 콤보 곱빼기인가요?”

“여기 사장님 아들도 군인이라서 군인만 보면 많이 주셔요.”

이건 많이 준 정도가 아니었다.

‘이걸 다 먹을 수나 있으려나?’

아버지는 상남자답게 자신이 뭘 하든지 간에 간섭도, 혼도 내지 않으셨다.

본인 스스로 알아서 하면 된다는 식이었다.

그런데 딱 하나.

아버지가 혼을 내시는 것이 있다.

바로 음식을 남기는 것.

내가 아주 어릴 때였다.

“네가 논에서 쌀이 나오는데 얼마나 많은 고생을 하는지 아냐? 너 내일 아버지 따라서 가자.”

옆집 대성동 할매가 준 사탕을 밥 먹기 전에 먹어서인지 입맛이 없었다.

그래서 밥을 조금 남겼었는데, 아버지는 바로 다음날 나를 논으로 데리고 가셨다.

그리고 하루 종일 땡볕에서 일을 하는 아버지를 지켜보게 하셨다.

아직 학교도 들어가지 못한 그 나이에 땡볕에서 서 있다 보니 너무나 힘들었다.

결국에는 지쳐 쓰러진 자신을 등에 업고 집으로 돌아온 아버지는 시원한 물을 수건에 적시어 내 온몸을 닦아주시며 말을 하셨다.

“아빠가 일하는 걸 보기만 하는데도 이렇게 힘들어하는데, 그렇게 고생해서 만든 음식들을 남기면 되겠니? 아직도 굶는 사람들이 세계에는 너무나 많다. 음식 남기면 나중에 지옥 가서 남긴 음식 먹는다고 하더구나. 그것도 전부 비벼서.”

그 뒤로는 무조건 음식을 남기지 않는다.

“하아.. 하아.. 와.. 이걸 다 먹었네.. 끄윽..”

짜장면이 너무 많다보니 중간부터는 목구멍에 꾸역꾸역 밀어 넣고 있었다.

그렇게 열심히 먹고 있다 보니, 또 다시 자신의 눈앞에 접시가 놓여졌다.

입안에 가득 들어있는 짜장면 때문에 말도 못하고 의아한 얼굴로 종업원분을 바라보았을 때, 그분이 말씀해주셨다.

“서비스요.”

아니 무슨 짜장면 곱빼기에 군만두가 서비스로 나오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무래도 사장님이 손님 드시는 걸 보고 흐뭇하셨나보네요.”

그리고는 살짝 웃으시며 카운터로 가셨다.

몇 번을 포기할 뻔 하였지만, 겨우 군인정신으로 해내었다.

“끄윽.. 죄송합니다. 여기 계산...이요..”

또다시 넘어오려던 트림인지, 군만두인지, 짜장면인지 모를 그것을 다시 목구멍으로 밀어 넣고, 매직워치를 내밀었다.

[결제가 완료되었습니다.]

나는 주방에서 잠시 나와 계산을 하는 나를 보며 흐뭇하게 웃으시는 주방장 겸 사장님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왔다.

하마터면 인사를 하다 구부러진 허리에 다시 무언가가 목구멍으로 올라올 뻔하였다.

“어휴.. 겨우 왔네.”

버스가 떠나기 직전에서야 바로 버스에 올라탔다.

너무나 많았던 짜장면과 군만두를 먹다보니 시간이 오래 걸렸다.

‘아.. 화장실 안 갔다 왔다.’

영광 터미널까지는 3시간 반이라는 굉장히 긴 시간이 걸린다.

그리고 거기에서 자신의 집까지는 또다시 2시간 정도를 마을 버스들을 갈아타고 가야한다.

시골이어도 너무나 먼 시골이다.

너무나 먼 거리에 고속버스를 타고 가다 중간에 휴게소를 하나 들린다.

그때 화장실에 가면 될 것 같았다.

그런데 그게 자신의 인생 최대의 실수였다.

차라리 표를 환불하고, 다음번 차를 탔어야 했다.

자신에게 웹소설의 주인공들처럼 과거로 회귀를 한다면, 버스를 타기 직전으로 갈 것이다.

중국집에 들어가기 전이거나.

아무튼 이 버스를 타기 전으로 무조건 돌아갈 것이다.

‘아... 읔... 하아....’

서서히 아파오던 배가 버스가 출발한지 30분 만에 급격히 아파오기 시작하였다.

아무래도 기름기가 많은 음식을 한계까지 먹어서 배탈이 난 것 같았다.

그래도 처음에는 잠깐 싸한 기분이 들었다가, 곧 잠잠해졌기 때문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었다.

그런데 그건 대군의 진입을 알리는 전령이었을 뿐이었다.

‘아읔... 안 돼....’

얼마나 힘든지 이마에서는 식은땀이 나오기 시작했다.

차에 타자마자 누워 잠을 청하시던 옆자리의 아주머니가 내 들썩임에 잠시 몸을 뒤척이시다 다시 자세를 잡고 주무신다.

‘하아.. 하아.. 휴게소가 얼마나 남았지?’

차도 없는 내가 매직 워치로 네비게이션 어플을 받아서 목적지까지의 남은 시간을 확인해 보았다.

‘대천 휴게소가... 40분?’

40분은커녕 4분도 못 참을 것 같았다.

‘잠깐 세워달라고 할까? 아니 그냥 내린다고 해버릴까? 어쩌지?’

머릿속으로 온갖 생각들이 휘몰아쳤다.

엉덩이에 힘을 주고 버티니, 아주 잠시간의 평화가 찾아왔다.

‘하아.. 하아.. 그래 이정도면 참을 수 있어. 다른 생각하자. 다른 생각하면 괜찮아질 거야.’

집에 연락을 하지 않고 내려가는 중이다.

깜짝 놀라게 해 줄 생각에 말도 없이 바로 출발한 것이다.

‘집에 가면 엄마가 깜짝 놀라시겠지?’

집에 가면 많이 놀라실 엄마의 얼굴과 무뚝뚝하시지만 속으로는 기뻐하실 아버지의 모습이 그려졌다.

농사일도 이제는 다 끝나서 소소한 일들 말고는 시간의 여유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풍성한 음식들도.

이것저것 내 배가 터지도록 엄마는 음식을 해주실 거고, 나는 그걸 먹다가 지치면 조금 쉬다가 다시 먹을 것이다.

먹고 쉬고, 다시 먹고, 싸고.

‘싸고.. 싸고... 싸고 싶다...’

다시 엄청난 기세로 대군이 몰려오는 것이 느껴졌다.

그 대군에 맞서 괄약근 결사대는 죽을힘을 다해 또 한 번의 파상공세를 겨우 막아내었다.

심호흡을 하며 겨우 겨우 그 공격의 여파를 해소해 나가고 있을 때, 기적과도 같이 대천 휴게소 5km라는 표지판이 스쳐지나갔다.

‘거의 다 왔다!!’

인간 승리였다.

장장 40분이 넘는 긴 시간을 엄청난 대군의 진격을 막아낸 것이다.

나는 안도하려던 그 마음을 황급히 다잡았다.

‘아니야! 벌써부터 풀어지면 안 돼! 방심하는 순간 끝이 날 수도 있어!’

마지막까지 긴장을 하며 힘을 주며 버티고 있는데, 그 대군과는 조금 다른 신호가 왔다.

[똑똑똑! 저는 방귀입니다. 통과 시켜 주세요.]

생각해보면 방귀를 내보내면 그만큼의 공간이 확보가 되면서 더 버틸 수 있는 힘을 줄 것 같았다.

그렇게 방귀들만 통과를 시키려고 괄약근에서 살짝 힘을 푼 순간.

[덜컹!!]

“아이! 기사님! 살살 좀 가요!”

잠을 자다 깬 아주머니가 휴게소를 들어가는 방지턱에서 속도를 줄이지 않고 달리신 기사님에게 화를 내셨다.

“어이고. 죄송합니다.”

“에이씨. 잘 자고 있었는데. 응? 뭐야. 벌써 휴게소야?”

드디어 휴게소에 도착하였다.

그리고 옆에 앉아있던 아주머니는 벗어놓은 신발을 신기 위해서 허리를 숙였고, 그러자마자 바로 벌떡 고개를 세웠다.

“뭐야! 이게 무슨 냄새야? 누가 똥 밟았어?”

똥을 밟은 게 아니라 깔고 앉아 있다.

나는 황급히 일어나 코를 막고 있던 아주머니를 밀쳐내고 화장실로 뛰었다.

그리고는 화장실 마지막 칸에 들어가 울면서 뒤처리를 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바지가 필요한 거네.”

“죄송해요.. 형.. 생각나는 사람이 형 밖에 없어서요...”

“괜찮아. 예전에도 그런 일 있었어. 그 큰 인물인 후배는 잘 사나? 갑자기 궁금해지네.”

“네?”

“응? 아냐. 휴게소에서 바지 파는지 확인하고 올게. 잠시만 기다려.”

“네... 고마워요..”

다행히 휴게소 화장실 바로 앞 가게에서 성인 남성 정장 바지를 팔고 있었다.

그런데 속옷은 구할 수가 없어서 그냥 바지만 사고, 검정색 비닐 봉투만 몇 개 받아왔다.

“이거 입고, 바지하고 속옷은 비닐봉지에 넣어서 잘 싸매. 그리고 거기 핸드크림 딸기향도 넣어놨으니까 엉덩이랑 손에 잘 바르고.”

“네? 이걸 왜?”

“.... 똥 냄새보다는 딸기 냄새가 나으니까.”

“......”

화장실 칸에서 나온 대우는 많이 울었는지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다.

“괜찮아. 다 그럴 수 있어.”

“네. 고마워요 형. 형 없었으면 정말..”

울먹이는 대우를 토닥여주며 휴게소 화장실을 빠져나가는 순간, 화장실 앞에는 엄청난 인파가 몰려들어 우리를 막아섰다.

그리고 그들의 손목에 있는 매직워치에서는 [녹화중]이라는 메시지가 선명하게 보이고 있었다.

“힐링님! 저 팬이에요!!”

“사랑해요!!”

“여기는 무슨 일로 오신 겁니까? 헬기까지 동원해서 오신 거면 급박한 일이 있으신 것 같은데요?”

그 중에 한 분이 기자이셨는지 질문을 해오셨다.

나는 대답대신 대우를 한 번 바라봤다.

상의는 군복을 입고, 바지는 검정색 정장 바지에, 신발은 군화를 신고 있었다.

그리고 손에 들고 있는 검정색 비닐봉투와 붉어진 눈가.

“아... 어서 가세요..”

사람들이 우리가 갈 길을 열어주었다.

우리는 향기로운 딸기향만 남기고 자리를 벗어났다.

그 길 끝에는 내가 타고 온 힐링 그룹 로고가 새겨진 헬기가 있었고, 대우는 그 헬기에 힘없이 올라탔다.

“.... 전국에 똥쟁이로 알려져 버렸어...”

대우는 모르겠지만, 나는 전국구가 아니라 전 세계급이다.

그래도 대한민국에서만 유명해진 걸로 알고 있는 상태가 나으니, 사실을 정정해 주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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