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5화 (165/170)

교통사고

6박 7일간의 한마음 체육대회는 전 세계인들의 엄청난 관심을 받으며 성황리에 치러지고 있었다.

전 세계에 있는 힐링 그룹의 직원들이 볼 수 있게 인터넷 방송과 예리 엔터테인먼트에서 소유한 방송국에서 방송을 하였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타 방송국들에서도 긴급히 중계권을 구매하여 방송을 하기 시작하였다.

밤에는 하이라이트 내용을 편집해서 뉴스에서 알려주기까지 할 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

그 인기의 비결은 올림픽처럼 스포츠를 통해 극한의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휴먼드라마가 아니라, 그냥 우리의 인생을 보여주는 휴먼 드라마여서이다.

서류 던지기 종목.

같은 팀원이 결재 서류를 가지고 오면, 그것을 받아든 선수가 서류를 내 던진다.

그러면 던진 서류가 얼마나 멀리 날아갔는지의 거리 점수와 얼마나 상대방에게 모멸감을 주는 말을 하였는지의 예술 점수의 합산으로 순위가 매겨진다.

“부장님. 결재 좀.”

받아든 서류를 한 번 쓱 보던 남성은 서류를 결재판에서 꺼내들더니 돌돌 말았다.

그리고 그 서류를 같은 팀원의 가슴을 쿡! 쿡! 누르며 말을 하였다.

“종이 아깝게 똥을 써오면 어쩌냐? 이러는 거 네 부모님은 아시냐?”

[삑!]

“감점 -1점! 가족 디스는 중대한 반칙입니다.”

“아.. 죄송합니다. 제가 이런 걸 안 해봐서..”

“아니! 부장님! 이거 하나도 제대로 못하십니까? 나오세요! 심판님! 선수 교체합니다!”

서로 자리를 바꾼 두 사람은 2차 시도를 하였다.

“대리님. 결제 좀.”

방금 전의 부장이 건네 준 서류를 받아든 대리가 서류를 받아들더니 말을 하였다.

“김 부장! 결재판을 내 쪽으로 돌려서 안주나? 이런 기본적인 예의도 모르면서 무슨 회사 생활을 하나? 이런 식이면 이 보고서를 내가 봐야하는 의미가 있나? 그리고 폰트는 이게 뭔가? 줄 간격! 띄어쓰기! 폰트 크기! 뭐 하나 제대로 된 게 없어!”

말을 하며 결재판에서 서류를 꺼내 손에 쥔 대리는 부장을 향해 힘차게 뿌리며 말을 했다.

“다시 해와!”

그 말과 함께 하늘로 힘차게 날아오른 서류는 부장의 머리를 지나 한 없이 멀리 날아갔다.

“4미터 12! 신기록!”

“우와!!! 부장님! 저희가 해냈습니다!!”

신나하는 대리와 진심으로 기분 나빠하는 부장의 떨떠름한 표정이 묘하게 어울리는 대회였다.

이 외에도 [정수기 물통 빨리 갈기], 서류 복사를 누가 더 정확하고 깔끔하게 해내는지 겨루는 [복사왕 대회], [사직서 작문 발표회], 면접관과 역할 바꾸어 [면접관 울리기] 종목, [업무 시간에 상사에게 걸리지 않고 인터넷 쇼핑몰에서 물건 사기] 같은 다양한 경기들이 있었고, 쇼핑몰에서 물건 사기 대회의 여파로 전 직원들의 책상위에서 거울이 사라지게 되었다.

그러나 모든 종목들이 전부 인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사내 부장들만 참가가 가능한 스탠딩 코미디 대회.

대회를 온라인 방송으로 지켜본 사람들의 실시간 투표로 승리자를 가리는 대회인데, 최악의 대회로 손 꼽히며 다음 체육대회에서의 1순위 폐지 종목으로 결정 났다.

그러나 참가자들과 나는 아주 만족한 대회이므로, 다음 번 체육대회에서도 무조건 존속이 가능할 것이다.

그룹의 실세들이 전부 원하니 당연히 존속 되겠지?

“거 내가 회사가 끝나면 자주 가는 바가 있어요. 거기가 분위기도 좋고, 술도 저렴해서 단골들이 많지. 오죽하면 우주인들도 단골이라니까? 응? 바 이름이 뭐냐고? 당연히 우주인들도 오는 바니까 [스페이스 바]”

“.....”

[짝! 짝! 짝! 짝!]

“푸하하하하하!!!”

정적이 흐르는 대회장에 참가자들과 나만이 박수를 치며 좋아하고 있었다.

[12명]

온라인 투표수가 12명이었다.

시청자는 처음 3200만 명에서 지금은 120명.

증설한 서버비용이 아까울 지경이었다.

그러나 어쨌든 나만 재미있으면 된다.

“제 친구가 이민을 가서 꽃가게를 열었는데, 망했어요! 왜 그러냐고 했더니 이민을 잘못 가서래요. 아니 도대체 어디를 갔기에 꽃가게가 망하냐니까. 친구 놈이 뭐라고 했는지 아십니까?”

다들 고개를 갸우뚱하며 고민하고 있을 때, 무대 위의 부장이 정답을 말해주었다.

“시드니”

온라인 시청자 수는 10명이 되었다.

“아하하하하. 아이고 너무 재미있었다. 민아 저 종목은 꼭 존속 시켜라. 알겠지?”

“..... 아무리 회장님이시라고 해도 그건 좀..”

“어허! 부장님들이 얼마나 힘들 게 일하고 있는데! 부장님들도 스트레스를 풀어야지!”

“그냥 혼자 풀면 되지. 그걸 왜 사람들한테 다 들리게..”

“뭐라고?”

“아님다! 알겠슴다! 한마음 체육대회 조직위에 건의해 보겠슴다!”

그리고 건의한 민이는 조직위원장 자리에서 짤렸다.

“사부님. 제가 토스트 가지고 왔는데, 점심은 간단하게 이걸로 하시죠!”

“그래? 알겠어. 다른 애들은 잘 먹고 있나?”

“네. 지금 야구 경기 준비하느라 컨디션 조절 중입니다.”

송이 소유의 독수리 구단과 힐링 그룹 대표팀 간의 친선 야구 경기가 열리게 되었다.

독수리 구단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과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는 탑 클래스 선수들까지 합류하며, 강력한 우승후보로 손꼽히는 팀과의 경기이기 때문에 모두들 당연히 독수리 구단이 승리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특히나 내가 투수가 아니라 외야를 보는 중견수로 출전을 하다 보니, 더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었다.

민이는 투수, 아담이는 포수, 쫄랑이는 지명 타자로 출전을 한다.

“민이 너는 투구가 좀 익숙해졌냐?”

“넵! 사부님이 가르쳐 주셔서 바로 익숙해졌슴다!”

내가 투구에 대해서 알려주니, [스승의 마음] 재능의 힘으로 민이에게 새로운 재능이 생겼다.

[아리랑 볼의 대가]

아리랑 볼.

아이들이 공을 던지면 높이 솟아올랐다가 힘없이 떨어지는 것과 비슷한 공이다.

그런데 실제로 민이가 던진 아리랑 볼을 보았을 때, 이건 프로 선수들에게도 통하겠다고 생각을 하였다.

물론 연속으로 던진다면 무조건 얻어 맞겠지만, 패스트볼과 섞어 던진다면 꼼짝없이 당할 정도이다.

타자의 매커니즘은 엄청나게 빠른 판단에 따라 몸이 스스로 움직인다.

그리고 그 움직임은 130km가 넘는 공의 스피드에 맞추어져 있기 때문에 너무나 느린공이 오면, 오히려 판단력과 타격 밸런스가 무너진다.

변화구 중에서 단일구종으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커브가 그런 식인 것이다.

“아무튼 네 똥볼도 아리랑볼하고 같이 하면 상당히 빨라 보일 거니까 열심히 해봐라.”

“넵!!”

“그런데 그냥 토스트만 가져온 건 아니지? 잼은? 나는 딸기잼이 좋은데.”

“여기 이렇게 챙겨왔슴다! 제가 집에서 소분해서 먹던 통을 그대로 가져왔슴다! 요거 빨간색이 딸기잼임다!”

나는 민이가 건네준 내용물이 빨간색인 반찬통의 뚜껑을 열고 나이프를 푹 찍었다.

“.... 딸기잼이 어째서 오징어 젓갈 같이 생겼냐?”

“어? 어... 어? 아무래도 제가 먹던 오징어 젓갈을 들고 온 것 같슴다! 통이 비슷해서 헷갈렸나봅니다. 에헤헤헤. 그래도 오징어 젓갈이 맛있슴다!”

나는 민이가 강제로 만들어 준 오징어 젓갈 토스트를 한 입 베어 물었다.

“오물.... 오물...”

말 그대로 [오물]이었다.

“야!! 제대로 치라고!”

독수리 덕 아웃에서 지르는 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나풀. 나풀. 후우웅!!! 퐁!]

나비처럼 가볍게 날아와 엄청나게 박력이 넘치는 방방이를 피해, 아담이의 글러브에 살포시 들어왔다.

“스윙! 쓰리 아웃 체인지!”

모두의 예상을 깨고 독수리의 테이블 세터와 3번 타자까지 모두 삼진으로 잡아낸 민이는 가볍게 뛰어 덕 아웃으로 들어왔다.

“나이스! 공 좋다!”

나는 외야에서부터 달려와 자리에 먼저 앉아있던 민이에게 칭찬의 말을 건넸다.

민이의 아리랑 볼은 전광판에 스피드가 찍히지 않을 정도로 느렸다.

그 아리랑 볼을 처음 본 1번 타자는 처음에는 웃었다.

아무래도 예능으로 받아들인 것 같다.

그러나 두 번째 포심패스트볼이 몸 쪽으로 꽉 차게 들어왔을 때,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구속이 137km가 나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투구.

처음 보았던 그 아리랑 볼이 다시 날아올랐다.

본능적으로 휘둘러지려는 방망이를 겨우 참아내었다.

그러나 그렇게 엄청난 인내심으로 참아낸 결과는 루킹 삼진 아웃.

멍하니 서있다 심판의 경고를 듣고서야 겨우 덕 아웃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2번과 3번 타자도 마찬가지였다.

특히나 3번 타자는 메이저에서 겨우 모셔온 메니 마차동이라서 그 충격은 배가 되었다.

그런 충격적인 사건은 우리의 타선에서 또 다시 벌어졌다.

1번 타자는 비서실 대리였는데, 142km의 포심에 멍하니 서있다 그냥 다시 덕 아웃으로 들어왔다.

그제 서야 독수리 선수들과 시청자들은 웃으며 경기를 즐기기 시작하였고, 2번 타자로 나온 아담이를 상대로 던진 완벽한 몸 쪽 커브가 장외로 날아가자 다시 웃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3번 타자 천운.

모두의 예상은 내가 4번 타자로 나올지 알았지만, 나는 3번 타자로 나왔다.

독수리의 선택은 고의 사구.

언뜻 보면 현명한 선택일 수 있겠지만, 내 뒤의 타자의 자존심을 건드렸다.

나는 마음만 먹으면 2루, 3루 도루에 이어 홈 스틸까지도 노릴 수 있지만, 내 뒤의 타자를 믿고 그냥 1루 베이스를 밟고 서있었다.

[4번 타자. 지명타자. 쫄랑이.]

강아지가 귀여운 야구 헬멧을 쓰고 앞말에 보호대를 찬 채로, 입에 야구 방망이를 물고 나타나니 경기장에 있는 모두가 일제히 탄성을 지르며 동영상 촬영을 하기 시작하였다.

“어쩜 저렇게 귀여울까?”

“아.. 힐링된다..”

심지어는 상대팀인 독수리의 포수가 쫄랑이를 쓰다듬다가 심판으로부터 경고를 받았다.

그러나 방금 전 장외 홈런을 맞았고, 자존심 상하는 고의 사구를 한 투수는 승부욕에 불타오르고 있었다.

자신을 상대로 개를, 그것도 4번 타순에 내 보내다니, 자신을 개보다 못한 놈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작년 전체 드래프트 1순위의 투수이자, 고교 야구 넘버 1.

메이저 전 구단에서 컨텍이 왔지만, 막대한 계약금을 제시한 독수리로 입단한 자신이다.

‘똑똑히 보여주겠어!’

1번 타자에게는 142km의 연습구 같은 공을 던졌지만, 자신은 최대 162km까지 던질 수 있는 파이어볼러이다.

포수의 사인에 고개를 끄덕이고, 1루에 서있는 힐링님을 바라보았다.

도루를 할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이셔서 다행이기는 하지만, 어차피 도루를 아무리 하더라도 타자가 공을 치지 못한다면 홈 베이스를 밟을 수 없다.

‘전력으로 잡아주마!’

아직 시즌이 시작하기 전의 휴식기라서 몸상태는 최상은 아니지만, 힐링님을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최선을 다해서 준비를 했다.

비록 그와의 대결은 감독님의 결정인 고의사구로 넘어 갔지만, 저런 개한테까지 질 수는 없다.

“후압!!”

큰 키에서 내려 꽂히는듯한 엄청난 포심이 포수의 글로브를 향해 날아갔다.

[158km]

전광판에 찍힌 속도가 그 공의 위력을 말해주었다.

그러나 자신이 던진 이 멋진 포심이 포수의 글로브에 들어가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따악!!]

날아가던 속도보다도 더욱 빠른 속도로 날아간 그 공은 자신이 보아온 그 어떤 공보다 더욱 높고, 더욱 멀리 날아갔다.

야구 경기장이 맞나 싶을 정도로 고요해진 곳에서 쫄랑이가 쳐낸 공이 아담이가 쳐냈던 장외 홈런보다도 더 멀리 날아가 주차장에 세워진 차량을 맞추고, 차량의 경보음이 들리자 경기장은 엄청난 함성으로 뒤덮였다.

“우와와!!!!! 쫄랑!! 쫄랑!! 쫄랑!!”

방망이를 가볍게 내려놓은 쫄랑이는 사뿐 사뿐 뛰며 베이스 런닝을 시작하였다.

그러면서 혼자 중얼거렸는데, 1루에 있던 독수리 선수가 그 혼잣말을 들었다.

‘개가 말을 해? 설마..’

자신이 들은 게 진실인지 자신조차도 의문이었다.

“내 이름은 쫄랑이! 인데, 왜 다들 쫄랑! 거리는 거야?”

그렇게 멘탈이 완전히 박살난 선발 투수가 마운드에서 내려오고, 전 LA다저스 소속의 훌리오 우리아스가 올라와 가볍게 아웃 카운트를 늘렸지만, 경기는 혼돈 속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었다.

그래도 프로 선수들이다보니 민이의 공은 타이밍이 맞아 들어가기 시작했고, 포심과 아리랑볼 투 피치 투수의 한계로 인하여 매 이닝 1점에서 2점을 내주었다.

그러나 외야로 날아오는 공은 어디로 가든지 간에 내가 전부 잡아내었고, 심지어는 담장을 넘어가는 공조차도 내 글러브를 벗어나지 못하였다.

그러다보니 독수리는 어쩔 수없이 작전 야구를 할 수밖에 없었다.

번트, 도루, 스퀴즈, 페이크번트 앤드 슬래쉬, 히트 앤드 런 등의 온갖 작전을 구사하였다.

그러나 아담이, 나, 쫄랑이로 이어지는 중심 타선을 막아내지 못하고, 점수를 내준 전 메이져 최고의 투수는 결국에는 연속 고의사구를 이용해 만루 작전으로 갔고, 그게 통했다.

결국 12 대 7의 점수로 독수리의 승리가 되었지만, 인사를 하기위해 모인 선수들의 유니폼은 승리자와 패배자의 모습이 뒤 바뀐 것 같았다.

온갖 작전을 구사하느라 슬라이딩을 해댄 독수리 선수단들의 유니폼은 흙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고, 우리 힐링 그룹 야구단의 유니폼은 새것처럼 깨끗하였다.

나와의 승부를 피할 수밖에 없었던 훌리오 우리아스는 나에게 이벤트 매치를 제안했고, 나는 흔쾌히 그의 공을 지구상에서 다시는 찾을 수 없는 곳까지 날려주었다.

‘이거 내년에도 독수리 꼴찌 하는 거 아냐? 멘탈이 완전히 나갔는데?’

그래도 프로선수들인데 이 정도는 극복할 것이다.

나에게 자극을 받은 훌리오 우리아스는 그날부터 엄청난 훈련을 시작하였고, 그 훈련 덕분에 개막전에서 퍼펙트 게임을 성공하였다.

그리고 너무나 무리한 나머지 부상으로 시즌 하차.

홈구장 개막전에서 훌리오 우리아스의 실력에 자극을 받은 다르빗수 류도 혼신의 역투를 해내서 KBO 최초로 같은 팀 연속 퍼펙트 게임을 달성하였다.

그리고 훌리오 우리아스를 따라 부상으로 시즌 아웃.

민이의 아리랑볼에 멘탈이 터져나간 폴 골드수미트와 메니 마차동은 향수병이 심하게 들어 제대로 된 컨디션이 아니었다.

결국 여느 시즌과 같은 최하위 성적을 유지하는 꾸준함을 보여주며 팬들에게 ‘내년은 다르다’는 주문을 외우게 만들었다.

“이 팀은 저주 받았어..”

송이의 머리카락 숫자가 살짝 줄어든 것 같은 건 나의 착각일 것이다.

“어르신. 혹시 저기 부대 가시는 길이면 제가 짐 좀 들어드릴까요?”

한 손에는 치킨을 들고 서 있던 중년의 남성이 할머니에게 공손히 물어보시고 계셨다.

그리고 그 중년의 남성을 쳐다본 할머니는 기분좋게 웃으시며 말을 하셨다.

“어이고.. 고맙소. 그쪽도 면회 가우?”

할머니는 중년의 남성의 손에 들릴 것을 보며 물어 보셨다.

“네. 아들놈이 이제 자대 배치를 받았다고 해서 얼굴 보러 왔습니다.”

“우리 손주 놈도 그렇다고 허던디.”

“어? 그럼 할머니 손주하고 저희 아들놈하고 같은 동기일 수 있겠네요. 하하하”

“이렇게 좋은 아버지가 있으니까 아들도 좋은 사람이겠구먼. 우리 손주랑 잘 지내면 좋것어.”

“네. 저도 그랬으면 좋겠네요.”

늦은 나이에 얻은 귀한 아들이었다.

나는 그냥 우리끼리 살아도 좋다고 하였지만, 아내는 꼭 아이를 가지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병원을 15년을 넘게 다녔다.

연이은 시험관 시술에 들어간 비용도 비용이지만, 항상 실망하는 아내의 모습을 보니 그게 더 힘이 들었다.

검사 결과는 둘 다 이상이 없다고 나오지만, 이상하게도 아이는 생기지 않았다.

아무래도 삼신할머니께서 많이 바쁘신가보다.

그러다 병원도 가끔 가게 되던 어느 날.

회사에서 일을 하던 자신에게 아내는 울먹이며 전화를 걸어왔다.

자신은 울먹이는 아내의 목소리에 큰 일이 생긴 줄 알았지만, 이내 임신 테스트기에 두 줄이 생겼다는 말에 자신도 모르게 환호성을 질러버렸다.

다행히 팀원들과 사장님은 사정을 듣고는 같이 환호해 주셨고, 다음날 찾아간 산부인과에서 임신이 되었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에 우리 부부는 조용히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시작된 아내의 임신 생활.

그런데 너무나 늦은 나이에 아이를 가진 아내는 체력적으로 많이 힘들어 했다.

마흔이 훌쩍 넘은 나이의 아내는 나이답지 않게 날씬한 몸매를 가지고 있었지만, 체력은 그렇지 않았나보다.

그래서 회사가 끝나면 팀원들과 한잔하던 즐거움도 마다하고, 가장 빠른 귀가를 했다.

밀린 빨래와 청소, 설거지를 하였고, 아내는 그런 자신을 보며 너무나 미안해하였다.

그러나 음식 냄새만 맡아도 전부 토해내는 아내는 자신의 몸 하나도 제대로 건사를 못할 정도로 힘들어하였으니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힘든 시기를 보내고, 다행히 큰 문제없이 아이를 출산했다.

아들이었다.

간호님이 건네주신 가위를 이용해 아들의 탯줄을 자를 때는 눈물이 앞을 가려서 제대로 자를 수도 없었다.

그리고 초췌한 얼굴의 아내.

입술은 전부 부르터서 갈라져있고, 너무나 많은 땀을 흘려 머리는 흥건히 젖어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서는 한참을 돌아서 눈물을 흘리며 겨우 마음을 추슬러야만 했다.

“자기야... 고생했다..”

그 힘든 시기를 보냈으니 이제는 괜찮을지 알았지만, 육아는 전쟁이었다.

자신은 회사에서는 부장이었지만, 집에서는 초보 아빠에 불과하였다.

모든 것이 처음이었고, 그러므로 모든 것이 서툴렀다.

“안 가우? 신호 바뀌었는데?”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는 그 짧은 시간이었지만,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아들을 키우던 날들을 추억하고 있었다.

키울때는 너무나 힘들었지만, 어느새 이렇게나 커서 군대까지 가게 되었다.

잘 자라준 아들이 너무나 고마웠다.

“가시죠. 어르신.”

한 손에는 아들을 줄 치킨을 들고, 다른 손에는 아들놈의 동기 할머니 짐을 들고 횡단보도에 발을 내딛었다.

[부아아아앙!!! 끼이익!!]

엄청난 굉음을 내며 달려오는 외제 스포츠카가 눈에 들어왔다.

요즘에는 대부분이 자동주행인데, 가끔 저렇게 수동으로 운전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도 신호가 걸려있으니 멈출 것이라고 생각하며 횡단보도를 걷고 있었는데, 순식간에 자신과 어르신을 향해 돌진을 해왔다.

“위험해요! 어르신!”

손에 든 치킨과 어르신의 짐을 손에서 놔버리고, 어르신을 향해 손을 뻗었다.

[콰앙!!!]

하늘을 나는 자신의 시야가 아주 천천히 흘러가기 시작했다.

자신이 밀쳐낸 어르신이 바닥에 천천히 나뒹구는 모습.

자신이 손에서 놔버린 치킨과 할머니의 짐이 자동차에 깔려 터져나가는 장면.

자신의 몸에 부딪쳐 부서져 나간 외제차의 범퍼와 앞 유리창.

그 차량 안에서 젊은 여성과 젊은 남성이 알몸으로 웃고 있는 모습.

아들이 배치 받은 부대의 입구.

그리고 정말 오랜만에 보게 된 너무 맑은 하늘.

‘아.. 하늘이 정말 맑네. 이제 많이 추워질텐데, 아들놈 감기는 걸리지 않겠지?’

유독 잔병치레가 많았던 아들은 날이 추워지면 감기를 달고 살았다.

그래서 이렇게 맑은 하늘의 겨울날이면 항상 걱정이 된다.

‘미안해.. 여보..’

그리고 자신의 사랑하는 아내.

그녀에게 정말 미안했다.

[마약에 취한 20대가 몰던 차량에 60대 남성이 사망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 20대는 클럽에서 구매를 한 마약을 같이 있던 20대 여성과 투약을 하였고, 알몸으로 같이 차량을 운행하다 고의로 사고를 낸 것으로 조사 결과 밝혀졌습니다. 이 20대 남성의 아버지는 현직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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