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구
“우리 아이! 우리 아이 좀 살려주세요! 제발!”
머리를 산발한 맨발의 여성이 응급실의 문을 열며 소리쳤고, 그 뒤로 아이를 안고 있는 남성이 연이어서 들어왔다.
남성의 품에 안겨있는 아이의 팔은 이미 축 늘어져 있었고, 피부는 한국인 답지 않게 너무나도 창백했다.
급하게 의료진들이 달려왔다.
침대에 눕힌 당직의는 앞주머니에 있던 후레시를 꺼내 아이의 눈을 비춰보며 동공 반응을 살폈다.
그리고는 청진기를 귀에 꼽고, 아이의 여기저기를 청진기의 청진판으로 대보며 귀를 기울였다.
그런 과정에서 당직의의 표정은 점점 더 심각해졌다.
바로 할 수 있는 간단한 검사를 마친 당직의는 난감한 표정으로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 젊은 부부에게 말을 하였다.
“지금 몇 가지 검사를 추가로 해야만 정확한 것을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지금 저희 병원에는 소아과 담당 선생님이 없습니다. 그래서 검사를 하더라도 제대로 된 치료를 할 수 있는 인원이 없습니다. 지금 아이의 상태가 굉장히 심각해 보이는데, 소아과 의료진이 있는 곳으로 빨리 옮기시는 게 좋겠습니다.”
“네? 아니! 여기 종합병원 아닌가요? 종합병원에 소아과 의료진이 없다니요!!”
그 청천 벽력같은 소리에 주먹을 꽉 쥐고, 땀을 비처럼 흘리던 남자가 소리를 질렀다.
“한 분 계시기는 한데... 지금 학회 때문에 출장 중이셔서.. 정말 죄송합니다. 아이 상태가 급박하니 이럴 시간에 빨리 옮기시는 게..”
젊어 보이는 당직의는 굉장히 미안한 얼굴로 말을 하고 있었다.
“그럼 어디 병원으로 가야하는 건가요? 빨리 좀 알려주세요!”
아이를 다시 안아든 남성이 당직의에게 황급히 물어왔다.
“어... 아마 한국 병원으로 가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거기는 소아과 담당하시는 선생님들이 세 분 계시다고 들었거든요.”
“언제 거기까지 가!! 우리 아이 죽어 가는데!!”
아이의 엄마는 소리를 지르며 울부짖었고, 아이의 아빠는 그런 아내를 재촉하였다.
“지금 그런 말 할 시간 없어! 빨리 가자! 우리 애 죽어간다고!! 우리 의찬이 살려야 할 거 아냐!!”
그 말에 창백한 표정으로 눈물을 쏟으며 소리치던 아이의 엄마는 비틀거리며, 자신의 남편을 따라 응급실 현관문을 향해 뛰어가기 시작하였다.
“우리 의찬이.. 안 돼.. 제발..”
[4살 어린 아이가 소아과 전문의가 있는 병원을 찾아 헤매던 중에 사망하는 안타까운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2019년 80%였던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확보율은 올해 27.5%까지 급락하였습니다. 의사협회에서는 정부의 지원이 부실한 과의 경우에는 당연히 의사들의 지원율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자신들의 어려움을 토로하였습니다. 이에 정부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뉴스에서 안타까운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환자의 생명에 직결되는 필수 의료인 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과가 무너지고 있었다.
다행히 힐링 그룹으로 인하여 출산율이 늘어나다보니 산부인과를 선택하는 전공의들이 늘어나고 있었지만, 소아청소년과는 아직까지도 전공의들이 부족한 상황이다.
예전과 다르게 의사로서의 사명감을 우선하는 분위기는 사라졌고, 재수, 삼수를 해서라도 돈이 되는 과를 선택하는 전공의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시대가 변하였고, 사람들의 가치관이 변하였으니 당연한 변화였다.
그 당연한 선택을 비난할 수는 없지만, 많이 안타까운 것은 사실이다.
“사부님. 그 소식 들었습니까?”
“무슨 소식?”
“소아과가 없어서 찾아 헤매다가 길에서 죽은 아이 이야기요.”
“아.. 안 그래도 그거 관련해서 자료를 찾아보고 있는데, 많이 심각하네.”
“그러니까요. 지금 그쪽 의사들 평균 연령이 굉장히 높습니다. 그 분들이 퇴직하기 전에 관련 인력들이 확보가 안 되면, 심각한 상황이 발생할 것 같은데요?”
이번에 의료진이 뇌출혈로 쓰러져 사망한 사건이 발생하였다.
심지어는 그 의료진이 자신이 근무하는 종합병원에서 쓰려졌는데도 수술을 해줄 의료진이 없어 다른 병원으로 옮기는 중에 사망을 한 것이다.
의사 협회는 그 병원에서 수술을 했더라도 사망을 했을 것이라는 발표를 하면서 국민들의 많은 지탄을 받았다.
그 의료진이 의사였어도 수술을 안 했을 것이냐는 질문에는 제대로 답을 하지 않으면서도, 의료수가가 낮은 진료과에는 당연히 의사들의 숫자가 적은 것 아니겠냐는 말을 하였다.
이번에 문제가 된 신경외과의 경우에도 전공의가 모자란 게 아니었다.
다만, 힘들고 어려운 뇌혈관 개두술 분야는 기피하고, 돈이 되는 분야로 전공의들이 몰리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같은 과 안에서도 이렇게 돈이 되는 분야와 그렇지 않은 분야의 갭이 더욱 커져만 가고 있는 것이다.
“아무래도 돈이 안 되는 과에 대한 지원을 늘리는 게 맞지 않나 싶은데요?”
의사협회에서 발표한 것과 같은 말을 하는 민이의 말이 어느 정도 해결책은 될 수 있겠지만, 미봉책일 뿐이다.
지금 문제가 된다고, 그곳에 지원을 늘리면 그 과는 괜찮아 질수도 있겠지만, 그러면 또 다른 기피 과가 생기는 일의 반복이 될 뿐이다.
그리고 늘어난 의료수가의 부담은 국민들의 세금이나 의료보험 납부액의 증가로 메꾸어야 한다.
근본적인 문제는 부족한 의료진의 숫자다.
숫자가 부족하니 의료진이 부족한 과가 생기는 것이다.
필요한 숫자보다 조금 더 많은 숫자가 공급이 되어야만 큰 문제없이 돌아갈 것이다.
“그래봤자 미봉책이야. 지원도 늘려야 하는 게 맞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한 거지.”
“근본적인 해결책이요?”
“어. 의대 정원을 늘려서 의사 숫자를 늘려야지.”
의사들이 가장 선호하는 과 중에 성형외과가 있다.
그런데 그 인기 있는 과에 엄청난 숫자의 의사가 공급이 된다면, 과연 계속해서 인기를 유지할 수 있을까?
엄청난 경쟁 속에서 도태될 위기를 겪게 될 것이고, 그러면 의료 서비스를 늘리는 수순으로 가게 될 것이다.
그러면 수익은 줄어들게 되고, 나름대로 똑똑한 머리를 가지고 있는 의대생들이 과연 그 과를 지원을 할까?
당연히 그 다음 인기 있는 과를 선택할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밀리고 밀리는 의사들은 결국에는 가장 기피를 하는 과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백수는 될 수 없으니, 선택을 할 수밖에.
거기에 정부의 지원이 더해진다면,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의대의 정원을 늘릴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의사들이 반대를 하니 될 리가 있나?”
“그러면 어찌해야 할까요?”
“이번에 돈 많이 벌었지?”
[돈 되는 땅] 재능 덕분에 회사 유보금이 급격하게 늘어났다.
그 유보금 중 일부를 사회에 환원하기 위해서 고민 중이었는데, 이번에 제대로 사용을 해봐야겠다.
“넵! 빵빵하게 있슴다!”
내가 무언가를 하려고 하는 것 같자, 민이는 신이 나서 대답을 하였다.
“그럼 민이 네가 큰 회장님께 연락 드려서 의료법인 하나 만들자고 해.”
“병원 만드시게요?”
“어. 의사들 정신 좀 차리게 제대로 된 병원들 좀 만들어보자.”
“병원들이라면..”
“수도권에는 최소한 세 개, 지방에는 각 도마다 하나씩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아.. 그렇군요.. 역시 사부님의 스케일이란! 크으!”
또 저놈의 엄지손가락을 빼어든 민이를 한 번 째려봐 주고 말을 이었다.
“이번 정부에서 의료 민영화도 시도하는 것 같은데, 어차피 의료비가 급격하게 치솟지 않게 억제해야 돼서 병원을 운영 하려고 했었어. 그런데 자금이 넉넉하니까 전국에 다 만들어보자.”
“넵! 아.. 그런데 의사 숫자가 부족하다고 했잖습니까? 그건 어떻게..”
나는 그동안 생각한 병원의 체계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었다.
“진료는 AI가 보조를, 수술은 로봇이 도와주고, 환자 이송 등의 힘든 일도 로봇이 함께하면 충분히 가능할 거야. 최첨단 자동화 시스템들을 완비하는 거지. 그리고 부족한 의사들은 해외에서 수급하면 돼.”
지금 국내 의료진들이 받고 있는 평균연봉의 두 배 정도를 지급할 생각이다.
대신 실력보다도 환자를 대하는 진심과 사람 됨됨이를 우선해서 뽑는다면, 사람을 생각하는 병원이 되지 않을까 싶다.
어차피 부족한 실력은 AI와 로봇이 보완해주면 된다.
의사들도 당연히 돈을 벌고 싶은 기본적인 욕망이 있는 인간이니, 돈이 되는 과를 선택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다.
그렇지만, 어느 선이 있는 것이다.
오로지 환자를 돈으로만 생각하는 사람들이 생명을 다루면 위험하다.
데이블 데스가 두려워 다른 병원으로 전원을 시키고, 돈이 안 되는 환자는 퇴원을 종용한다.
환자의 두려움과 병에 대한 무지를 이용해 은근슬쩍 비 급여 항목의 치료를 권한다.
환자의 보호자들은 죽어도 좋으니 살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도 달라고 하지만, 국민건강보험공단의 평가에 문제가 되기에 그 마지막 기회조차도 냉혹하게 거절해 버린다.
내가 만들고 싶은 병원은 의사가 오로지 환자의 생명과 건강만 생각하면 되는 그런 병원이다.
가족이 돈 때문에 걱정을 하지 않을 정도로 연봉을 넉넉하게 지급받고, 사회적으로 존경을 받는 명예로운 자리로 만들어주면 무언가가 될 것 같았다.
“그럼 나는 이사장 겸 본원 병원장님이 되실 분을 만나러 가볼게.”
“이사장 겸 본원 병원장님이요?”
“응. 거기에 진료까지 하실 것 같기는 한데, 우선은 그렇게 알고 있어.”
“넵! 그럼 저는 할아버지께 제안을 해보겠습니다!”
[허준 한의원]
조그마한 건물에 수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건물 입구에서부터 길게 늘어선 줄은 건물을 빙 둘러 쌀 정도이다.
이런 일이 한 두 번이 아닌지, 건물 주위로 벤치 의자들이 주욱 둘러서 설치되어 있었고, 사람들은 그 벤치에 앉아 자신의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그 줄의 끝에 섰다.
너무나 긴 그 줄은 내가 벤치에 앉지도 못할 정도로 아주 길었다.
“아즉 젊은 것 같은디, 어디가 많이 안 좋아?”
한참을 기다리다 겨우 벤치에 앉자, 내 옆에 같이 서 계시다 먼저 앉으신 할머니가 나에게 말을 걸어 주셨다.
“아. 저는 아픈 건 아니고요. 여기 원장님을 뵈러 와서요.”
“다행이구먼. 우리같이 늙은이들은 언제 죽어도 조금 덜 억울 할건디, 총각처럼 젊은 사람들은 많이 안타깝지.”
할머니는 내가 괜찮다는 말에 진심으로 다행이라는 표정을 하셨다.
“할머니는 어디가 많이 불편하세요?”
“응? 나야 오히려 성한 곳이 별로 없지. 그란디 제일로 아픈 것은 머리여.”
“머리요?”
“응. 머리에 크게 뭐가 생겼다고 하더라고. 큰 병원에서 씨티인가 그것도 찍어보고 혔는디, 뇌종양이라고 허드라고.”
“아.. 그렇군요.”
“나이가 많으니께 수술도 힘들다고 허든디, 혀도 죽을 확률도 높고, 회복도 힘들 거라고 혀서 큰 병원에서도 포기 허드라고. 그란디 여그 허준 의원님이 아주 용하다고 혀서 마지막으로 와본거여.”
나는 할머니의 병에 대해서 듣고는 아무런 말도 못하고 있었다.
“너무 걱정허지 말어. 나는 괜찮혀. 가끔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픈 거 말고는 살만해. 그란디 아무리 늙어도 죽는 거는 무섭드라고. 손주 놈 결혼 허는 것도 보고 싶고, 증손주도 보고 싶네.”
그렇다.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죽음의 공포가 줄어드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죽음에 더 가깝기에 젊을 때보다 더욱 더 두려워진다.
나이 든 노인 분들이 병원쇼핑이다 뭐다 하면서 병원들을 자주 방문한다는 소리를 들었다.
물론 현재의 의료체계에서의 혜택들을 악용하는 분들도 분명히 있지만, 대부분은 자신의 죽음과 질병이 두렵기에 병원을 자주 가는 것이다.
죽는 것도 두렵고, 병에 걸리는 것도 두렵다.
자신이 아프면 누가 돌봐줄 것인가?
자신 스스로가 자신의 건강을 지켜야만 자식들의 걱정을 덜어줄 수가 있다.
그래서 기를 쓰고 아프지 않기 위해서 노력을 하신다.
길게 늘어선 분들은 각자의 사정들과 아픔들이 있을 것이다.
저기 앞에서 불안에 다리를 떨고 있는 젊은 남성도 그럴 것이고, 그 옆의 덤덤한 자세로 지팡이에 양손을 올리고 벤치에 앉아계신 중절모를 쓴 신사 같은 할아버지도 그럴 것이다.
아무리 허준 의원님이 대단한 의술을 가지고 계시더라도 물리적인 한계가 있다.
지금 여기에 줄을 선 분 들 중에서는 오늘 진료를 보지 못하고 집에 돌아가는 분들도 분명히 계실 것이다.
그 분들에게는 허준 의원님이 마지막 동아줄과 같다.
그러니 내일도 똑같이 길게 줄을 늘어설 것이다.
그런데, 이건 너무나 비효율적이다.
더 많은 사람들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을 내가 제안한다면, 의원님도 나의 제안을 꼭 받아주실 것이다.
그 누구보다 아픈 사람들을 사랑하시는 분이시기에.
어느덧 높다란 건물들 사이로 해가 뉘엿거리고 있었다.
안 그래도 많이 추워진 날씨에 몇 시간을 밖에서 대기하던 분들은 해가 사라져가자 하나 둘 일어나 집으로 향하였다.
“총각. 일 잘 보고 항상 건강혀.”
차갑게 식어 얼음장 같은 손으로 내 손을 잡아오신 할머니의 체온은 비록 차가웠지만, 그 걱정해주시는 마음만은 그 어느 것보다도 따뜻했다.
이런 것들 때문에 내가 이 땅의 사람들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이인데도 나를 걱정하는 그 마음이 진하게 전해져오며, 마음속에 뜨거운 감정이 차오른다.
“네. 할머니. 조심히 들어가세요.”
“그려. 총각도 조심히 들어가.”
아무래도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더욱 더 서둘러야 할 것 같다.
“오늘 진료는 모두 끝났습니다. 의원님이 밤에는 거동이 불편하신 분들 왕진 가셔야 해서요.”
간호사님께서 미안한 얼굴로 병원에 들어선 나에게 말을 하셨다.
“진료 때문은 아니고요. 의원님과 친분이 있어서 잠시 얼굴 뵈러 왔습니다.”
내 말에 굉장히 난감한 표정을 하신 간호사님이 그래도 단호한 말투로 말을 하셨다.
“그렇게 말씀하셔도 의원님은 만나실 수 없습니다. 내일 다시 줄을 서 주세요.”
아무래도 거짓으로 친분을 내세워 진료를 받으려는 환자들이 많았나보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마스크를 내리며 명함을 꺼내 건네 드렸다.
“힐링 그룹 회장 천운이라고 합니다. 이 병원 소유주이기도 하고요. 의원님께 제가 왔다고 말만 좀 전달 부탁드립니다.”
“어?? 어.. 어!! 힐링님? 헛!”
너무나 놀라 말을 못하시는 간호사님이 진정하실 시간을 드렸고, 겨우 진정을 하신 간호사님이 황급히 진료실로 뛰어 들어가셨다.
“어이고! 우리 물주 오셨는가?”
하얀 가운을 입으시고, 길게 흰 수염을 기르신 피곤에 찌들어 보이는 노인분이 나를 향해 웃으며 말을 걸어오셨다.
“네. 호구 왔습니다.”
나는 마주 웃어 보이며 의원님께 고개를 숙였다.
“그래. 오늘은 무슨 일로 왔는가? 설마 또 밖에서 줄 서 있었나? 시간이 금인 사람이 어찌 또 그런 짓을 하나? 이제는 그리 안 해도 내가 물주의 마음을 잘 안다고 하지 않았나. 용무가 있으면 그냥 먼저 들어오시게나.”
“그래도 다들 줄을 서 계시는데.. 어떻게 새치기를 하겠습니까? 다들 의원님의 진료가 마지막 희망이신 분들인데요.”
“허허허허. 그래도 자네가 제안하는 일들이 당장 한명의 목숨보다 더 많은 목숨을 살리는 길이니 그런 게지. 뭐 드라마나 영화에서 나오는 것처럼 한 사람의 목숨이 더 소중하다며 지랄하는 것들하고 나는 다르다네. 한 명 보다야 여러 명을 살리는 게 당연히 더 중요하지 않겠나? 자네가 지어준 이 병원 덕분에 얼마나 많은 목숨들이 살게 되었는지 아나? 저승에서 자꾸만 경고가 오네. 허허허허”
뭐가 그리도 좋으신지 연신 웃으시며 말씀을 하시는 의원님은 처음 뵈었을 때보다 많이 수척해지셨다.
“그래. 오늘은 무슨 호구 짓을 하러 오셨는가?”
내가 항상 조건 없이 의원님을 지원해드리니, 의원님은 나에게 물주 혹은 호구로 부르신다.
그게 악의가 전혀 없고, 자신의 쑥스러움을 표현하시는 방식이라서 전혀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사실 내가 호구 짓을 하러 온 것은 사실이니 기분 나쁠 것도 없다.
“네. 이번에는 정말 크게 호구 짓을 하려고 합니다.”
나는 내가 계획하는 [힐링 병원]에 대해서 설명을 드렸다.
생각하는 규모와 의료 체계.
AI와 로봇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미래적인 첨단 기술.
모든 진료와 수술 과정을 기록하고 분석하여 데이터베이스화 하는 작업.
그 데이터 베이스를 이용해 새로운 의료법을 개발하고, 의사를 보조해주는 시스템.
한의학과 양의학을 접목하여 서로가 보완하고, 발전할 수 있게 지원하는 계획.
그리고 경직된 의사 사회에 울리는 경종.
최종적으로는 이 땅의 누구나 돈이 없어 치료를 못 받는 일이 없도록 하고 싶다는 의지.
“의원님도 이제는 후학을 양성하셔야죠. 직접 진료를 하시는 것보다 후학을 양성하시는 게 더욱 많은 사람을 살리는 길이 아니겠습니까?”
내 말에 이미 무언가를 결심하신 듯한 표정의 의원님이 말씀하셨다.
“한의학에서 필요한 기계들도 자네가 많이 개발해주게나. 한의학이라고 침 하나로 사람을 살리는 걸로 다들 아는데, 기계보다 사람이 더 정확할 수는 없네. 나 정도의 경험이 쌓이려면 수많은 환자들을 경험하는 긴 세월이 필요하다네. 그러나 기계를 이용하면 그 시간을 아주 짧게 만들 수 있고, 더욱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지. 그것만 해준다면 내가 기꺼이 자네의 제안을 받아들이겠네.”
“네. 제가 직접 개발해 드리겠습니다.”
“허허허허. 역시나 호구로구먼. 병원도 지어줘. 돈도 지원해줘. 이제는 의료 장비들까지 개발해주겠다니. 호구가 맞네 맞아. 내 안 그래도 요즘 의학 논문들을 정리하고 있었다네. 나도 언제까지 이일을 할 수는 없지. 모든 일이 그렇겠지만, 특히나 다른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이 직업은 나이가 들면 은퇴를 해야만 하네. 손이라도 떨다가 사혈을 찌른다면 큰일이 아니겠나?”
아직도 열정이 넘쳐흐르시는 분이시지만, 그 자신이 아니라 환자들을 위해 의원으로서의 은퇴를 고려하시다니, 역시나 존경 할 만 한 분이시다.
“그럼 연봉 협상부터 해 볼까나? 그래 우리 호구께서는 얼마까지 알아보고 오셨을까? 계약금으로는 거 황재성 재단장이 타고 다니는 그 차가 좋을 것 같은데?”
아무래도 진짜 호구 잡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