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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자님 먹고 싶어요-12화 (12/227)

12. 프레오나 제국, 로테 별궁에서 살다 (11)

“황태자 전하, 죄송합니다만 제가 술은….”

“잘 마시지 못하는가? 이상하군, 자네는 항상 자기 전에 보리주를 마시고 잔다 들었는데.”

보리주, 그놈의 보리주 시팔…. 술을 끊든가 해야지. 이 동네 사람들은 하루의 끝은 맥주로 마감하는 거 모르나? 음식도 몸에 안 받고, 재미도 없는 이 황궁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게 맥주였는데. 게다가 내가 맥주 마시고 잔다는 건 또 언놈한테 들은 거야. 2황자가 텟을 심어 놓은 것처럼 황태자도 누굴 심어 놓은 건가?

“아뇨, 못 마신다는 게 아니라… 사실 제가 술을 마시면 인사불성이 됩니다. 황태자 전하 앞에서 추태를 부릴 순 없습니다.”

“그것은 괜찮다. 긴장이 풀린 그대의 모습도 보고 싶군.”

“누군가가 올지도 모릅니다. 제가….”

“오늘은 오스먼드 놈도 방해하지 못할 테니 걱정 말게.”

“하하….”

타루스는 작정한 듯 어색하게 웃고 있는 내게 술을 권했다. 은근히 술을 거부하는 내 행동에 황태자의 표정이 점점 굳어 갔다. 이대로 조금 더 빼면 억지로라도 먹일 기세였다.

“그럼….”

황태자가 건네는 와인 잔을 받아 들었다. 나를 바라보는 황태자의 괄괄한 눈빛에 맹렬하게 굴리고 있던 머리를 잠시 멈춘 채, 황금색의 액체를 한 모금 삼켰다. 아멜로 잎은 4황자의 내성으로 통하진 않겠지만 어디서 났는지 모를 벌꿀주 때문에 뒷일이 걱정이다.

“맛은 어떤가.”

“아주 답니다. 술보다는 과즙의 맛이 강하게 납니다.”

“하이나스산맥에서 자란 나무 수액으로 만든 술이다. 그 산맥은 지대가 높고 환경이 열악하여 생명체의 종족 번식이 힘들다더군.”

“그렇군요….”

“그래서인지, 하이나스에서 채취한 수액에는 강한 최음 효과가 있다더군.”

타루스는 내가 들고 있던 와인 잔을 빼앗아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그는 놀라 잠시 굳어진 내 몸을 침대 위로 밀어 넘어트렸다. 그러고는 자신의 몸으로 덮고 일어나지 못하게 허리를 강하게 짓누르며 말했다.

“한 모금만 마셔도 발정 나게 된다지. 너무 걱정 말게, 내 오늘 그대를 예뻐해 줄 테니.”

타루스는 발버둥 치는 내가 도망이라도 갈 것 같은지 자신의 혁대를 풀어 손목을 결박했다. 옷깃의 단추를 풀어 헤친 그는 내 목덜미를 가린 천을 벗겨 낸 뒤, 드러난 하얀 살을 강하게 물었다. 이놈은 저번에도 목덜미를 쓰다듬더니만, 목덜미 페티시가 있는 게 틀림없다. 찌릿. 강하게 아픔이 몰려왔다. 내일이면 붉게 자국이 남을 것 같다.

“예쁘군.”

“황, 황태자 전하… 왜….”

“난 그대같이 아름다운 물건을 망가트리는 게 좋아.”

날카롭게 떠진 눈에 광기를 두른 타루스가 두껍게 껴입은 내 옷을 벗기려 들었다. 그 손길을 약하게나마 거부했다. 추문에는 자주 손을 올린다던데 괜히 크게 반항해 봤자 맞기밖에 더하겠나.

게다가 4황자의 몸은 허약, 허실, 약골 그 자체다. 황족이라면 응당 배워 하는 검술은 검을 몇 번 잡아 보니 소질이 없단 것을 알고 바로 포기했고, 친모의 가문에서 마법을 배웠다. 하지만 얼마 안 가 가문이 멸문했고, 스승은 참수당했다. 그 이후부터 자신의 궁에 박혀 식물에 빠져 산 거다. 책을 읽으며 지식을 쌓은 건 좋지만, 책 한 권 읽을 시간에 조금이라도 움직였으면 이 지경은 안 됐을 텐데.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황태자에게 겁탈을 당하겠지만 딱히 무섭지는 않았다. 원래 이럴 거라는 걸 알고 있었고, 단순히 아멜로잎 하나만 믿고 제 발로 걸어 들어온 건 아니었으니까. 그냥 이렇게 당하는 척하다가 재우는 게 가장…. 이 새끼가!

“잠, 잠깐…!”

“입을 막을 생각은 없지만 소리 지르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 그대의 고운 얼굴을 건들고 싶진 않으니 움직이지도 말고.”

옷 뒤에 달린 무수한 후크에 짜증이 나고 하나하나 정성 들여 벗기기엔 무리라 생각했는지 타루스는 차고 있던 작은 단검으로 내 옷을 찢기 시작했다. 이 무식한 새끼가! 이거 찢어지면 입고 나갈 옷이 없는데! 안 되겠다.

“<수에노>.”

털썩. 잠에 빠져드는 주문을 맞은 타루스는 눈을 까뒤집으며 순식간에 쓰러졌다. 더불어 타루스의 몸에 힘이 빠지면서 그가 들고 있던 단검이 떨어져 무방비한 옆구리를 약하게 베었다. 백옥 같은 피부에 붉은색으로 길게 상처가 났다.

“이 븅신 같은 새끼가….”

잠에 빠진 타루스의 대가리를 강하게 쳤다. 대가리에 든 게 없어 딱딱해서 그런가, 때린 내 손이 더 아프다. 뺨 싸대기도 한번 갈겨 준 뒤 손목을 억압하고 있던 혁대를 풀어 바닥에 던졌다. 순간 치밀어 오르는 짜증에 다시 한번 타루스의 대가리를 쳐 주려 했지만 옆구리에서 느껴지는 찌릿한 통증에 들어 올린 손을 내렸다. 이미 너덜너덜하게 찢긴 옷으로 피를 흘리는 옆구리를 지혈했다. 더럽게 아프네.

이젠 어떡하지. 단순하게 타루스를 재우고 조용히 빠져나오고 싶었을 뿐인데 피를 흘렸다. 검을 쓸 줄은 몰랐는데, 이놈은 내 생각보다 거친 놈이었다. 아니, 못돼 처먹은 놈이지. 그냥 잘라 버릴까.

오스먼드가 올 것 같기는 하지만, 그 영악한 놈은 내가 타루스에게 당하고 있을 거라 생각할 테니 보다 완벽한 추문을 위해 시간이 지난 뒤에 올 것 같고. 내가 마법을 쓰는 것도 이젠 무리다.

보통 마법사라면 마나를 다루는 일은 숨을 쉬는 것만큼 쉽게 다룰 수 있겠지만, 4황자는 그런 보통 마법사와는 달랐다. 보통 마법사들은 자신의 심장에서 마나를 생성하고 운용하여 쓰지만, 4황자는 마나를 생성할 수 없는 몸이다. 나는 죽은 어머니가 남겨 놓은 축적되어 있는 마나를 사용한다.

사람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마법은 마나 소모량이 크다. 때문에 오스먼드에게 쓴 서약 마법으로 몸에 있는 마나가 많이 빠져나갔다. 축적되어 있는 마나가 얼마 남아 있지도 않은데 타루스에게 수면 마법을 써서 이젠 간단한 염력조차 어렵게 되었다.

“어쩔까.”

피도 흘린 마당에 어쩌겠나, 오스먼드가 원하는 상황을 만들어 줘야지 뭐.

속옷을 포함해 타루스가 입고 있는 옷을 전부 벗겼다. 나도 같이 어울려 줘야 하니 찝찝하지만 와인 잔에 남아 있는 벌꿀주를 머리에 부었다. 몸 곳곳에서 단내가 풍겼다. 타루스의 머리도 헝클어뜨려 놓고, 땀이 난 것과 질척하게 당했다는 걸 표현하기 위해 남아 있는 벌꿀주를 타루스와 내 몸에 전부 부었다. 벌꿀주가 마르면 찐득해지겠지. 이런 거 딱 싫은데.

한 모금만 마셔도 발정이 된다는 벌꿀주는 내게 전혀 효과가 없었다. 조금 으슬으슬한 느낌은 있지만 중요한 남성이 반응하지는 않았다. 4황자 혹시 발기 부전이었나. 기억을 찾아보려 해도 정사를 해 본 적이 없는 순수한 아이였고, 몽정 또한 겪은 적이 없어 발기의 경험이 전혀 없었다. 뭐야, 얘 성자야?

내가 고자의 몸에 들어왔다니. 한마디로 내가 고자라니! 고자의 몸에 들어온 처지가 퍽 안타까워 머리를 쥐어 싸매고 있을 때, 한참이 지나 문 밖에서 소음이 들렸다. 오스먼드가 왔나 보다. 이 새끼 진짜 너무하네. 텟이 보고를 올린 지 두 시간은 더 된 거 같은데.

입고 있던 바지와 속옷을 벗어 바닥에 던져 놓은 뒤, 벌꿀주로 젖은 이불 안으로 들어가 몸을 웅크렸다.

“4황자님!”

우당탕탕 벌컥, 요란한 소리가 나며 문이 열렸다. 오스먼드가 왔을 줄 알았는데 눈앞에 보이는 얼굴은 레이가 몰베인이었다. 레이는 수십 명의 기사들과 함께 왔는데 기사들이 입은 하얀 갑옷을 보니 2황자의 휘하에 있는 로열 기사단의 갑옷이었다. 일반 기사도 아니고 로열 기사라니, 이 시간에 퇴근도 안 하고 있는 걸 보면 야간조려나.

“레이….”

“황자님 괜찮…. 헉, 피가!”

“살, 살려….”

쓰러져 있는 나를 발견하고 허겁지겁 달려오는 레이에게 손을 뻗으며 눈을 감았다. 타루스는 곧 일어날 거고, <수에노> 마법은 수면에 빠지게 되면 마법에 당한 당시의 상황을 잊어버리게 되니 내가 마법을 썼다는 기억도 없을 것이다. 진짜로 당하진 않았지만, 그동안 해 온 짓이 있으니 이 상황을 보면 자기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대충 짐작하지 않을까.

레이는 쓰러진 나를 이불로 감싸고는 아기를 안듯 조심히 안아 올려 에테네 궁을 빠져나왔다. 에테네 궁 바로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마차를 탄 뒤, 출발하라는 레이의 명에 따라 마차가 움직였다. 곧이어 목적지에 도착했는지 천천히 속도를 줄였고, 마차에서 내리자 다급한 마린의 목소리가 들렸다. 2황자의 궁일 줄 알았는데 내가 머물고 있는 별궁으로 왔나 보다.

레이는 안절부절못하는 마린의 안내를 받으며 내 방으로 들어와 이불로 돌돌 감싸진 나를 침대에 눕혔다. 우리보다 빠르게 도착한 의원이 곧바로 내 옆구리의 상처를 치료했다. 전라로 있는 것이 부끄러워 이대로 기절해 있는 척을 하고 싶었지만 소독약이 너무 따가워서 반사적으로 눈이 떠졌다.

“으으….”

“4황자님! 정신이 드십니까?”

“레이… 어떻게….”

“오스먼드 전하께서 보내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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