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 저택으로 돌아가다 (9)
필릭스가 주문을 외우기 전에는 목구멍에서 위장까지 활활 타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면, 통처에서 하얀빛이 떨어져 나간 지금은 그 절반의 고통을 느끼는 것 같았다.
“통… 크흐… 통할 줄 몰랐는데, 됐네.”
“뭐 한…. 크흠. 뭐 하는 건데?”
“고통을 큭…! 반으로 나누는 거야. 컥! 고맙다고 말해도 큼! 좋아.”
“고, 끄으… 마워.”
“더 고맙다고… 크으으… 말해도 좋아.”
“많이 고마 커흠…! 고마워.”
내가 느낄 고통을 나누어 가져간 필릭스 덕분에 식도가 불타는 듯한 고통이 가볍게 바늘로 찌르는 듯 따끔한 고통으로 중화되었다. 곧이어 큰 알사탕이 식도에 걸린 듯 답답해졌고, 우리는 그 느낌이 사라질 때까지 목을 다듬으며 컥컥거려야 했다. 말을 할 때는 식도에서 가벼운 폭죽이 터지는 느낌이었다. 슈팅스타 아이스크림을 대량으로 퍼먹는 기분이다.
“근데 이 손은…. 크흠!”
“손을 떼면 링크도 끊…. 크으윽, 컥! 끊어져.”
내 가느다란 목을 휘어잡고 있는 필릭스의 두 손을 가리키며 왜 이러고 있냐 묻자 그는 잡고 있어야 마법이 통하는 거라며 고통이 사라질 때까지는 이런 우스운 꼴로 있어야 한다고 했다.
“말을… 컥… 하지 말자.”
“응, 그러… 크흠… 자.”
말을 하지 않는 편이 식도가 덜 아픈 느낌이었고, 말을 할수록 서로의 얼굴에 침을 튀기게 되어 어느 쪽이든 입을 다무는 편이 서로에게 이로웠다. 우리는 빨리 이 고통이 끝나기를 기다리며 조용하고도 어색하게 시선을 맞추었다.
30분이 지나도 고통은 줄어들지 않았다.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지? 마나에 관한 4황자의 기억을 더듬어 봤다. 이상하게 아무리 뒤지고 뒤져도 4황자가 축적된 마나를 마시는 기억이 있지 않았다. 4황자는 살면서 한 번도 마나를 마시지 않은 거다. 그럼 지금까지 원래 가지고 있던 마나로만 살았던 거야?
“이거… 끄흐으, 언제 나아지는지 알아?”
“몰, 크흠! 몰라. 네가 알지 내가 알겠어? 나도 마나는 너 때문에 가지고 다닌 거지, 내가 먹어 본 적은 없다고. 끄으으아! 이번 꺼 너무 따가웠…. 크흠! 너 말고 마나를 누가 먹어.”
그것도 맞는 말이다. 내가 알지 누가 알겠냐.
“큽! 이거 상한 거 아니지?”
“10년 전 거지만 아마 아닐 거야. 방부처리… 컥! 했으니까. 이제 그만 말해!”
그렇게 입을 다문 채 10분을 더 기다렸고, 서서히 통증이 완화돼 가는 게 느껴질 때쯤 옷 주변이 온통 붉은색 양념으로 범벅이 된 노반이 처음과 다름없이 깔끔한 젠의 손에 대롱대롱 매달려 들어왔다.
“미르! 다 했어! 다음은 깍두…. 너 이 새…. 으앗!”
내 목을 감은 필릭스의 손가락을 본 젠이 나를 구하기 위해 잡고 있던 노반을 저 멀리로 내던졌고, 중심을 잃은 노반은 크게 엉덩방아를 찧었다. 젠은 눈 깜짝할 새에 내 쪽으로 다가와 언제 잡았는지 모를 얇은 책을 필릭스의 머리를 향해 찍어 내렸다.
신체 능력은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은 필릭스는 무시무시한 기세로 빠르게 다가오는 젠을 피할 수가 없었다. 때문에 필릭스는 내 목을 감은 손을 놓고 무언 마법으로 실드를 펼쳤고, 아슬아슬하게 펼쳐진 실드 위로 젠의 책이 꽂혔다.
필릭스가 실드를 펼치기 위해 내 목에서 손을 떼자마자 난 성난 파도처럼 밀려오는 고통에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아픈 목을 부여잡고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미르 님!”
노반은 엉덩방아를 찧어 정신없는 와중에도 내가 쓰러지는 것을 보곤 벌떡 일어나 달려와서는 고꾸라지는 나를 받쳤고, 지극히도 평범한 책으로 필릭스의 실드를 부수려는 젠도 크게 놀라 내 이름을 불렀다.
“아! 진짜! 죽이려는 거 아니니까 진정하고 있어 봐! 곧 끝날 것 같았단 말이야!”
필릭스가 다급하게 소리치며 강한 손길로 젠과 노반을 밀치고 내 목을 향해 손을 뻗었다.
“<도우로 메디 디비스 무스단>!”
다시금 통증이 가라앉자 멈췄던 숨을 쉬었다. 이거 혼자 감당하면 죽을지도 모르겠는데? 4황자가 왜 마나를 마시지 않았는지 알 것 같았다.
“끄어어….”
필릭스의 손이 구명줄이라도 되는 듯 내 목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꽉 부여잡았다.
“미르! 왜 그래! 어디가 아픈 거야? 이 새끼는 왜 미르의 목을 조르고 있는 거고!”
당장이라도 노반의 나쁜 말투를 고쳐 주고 싶었지만 고통을 혼자 앓았던 그 짧은 순간 덕에 진이 다 빠졌다.
“10분만… 큭… 10분만 있다가 대답해 줄게.”
“미르, 많이 아파?”
“아니야, 안 아파.”
불안한 표정의 노반을 향해 걱정하지 말라고 옅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안 아프긴 개뿔, 아퍼! 컥! 무지 따갑다고!”
눈치를 밥 말아 먹은 필릭스가 소리치자 사색이 된 노반이 필릭스의 다리를 잡고 사정없이 흔들었다.
“뭐어? 어떻게 좀 해 봐! 우리 미르 아프면 안 된단 말야! 너 마법사잖아!”
“이것 말고는 방법이 없…. 크흠! 없어.”
힐링 마법은 통하지 않았고, 아픔을 느끼지 않는 마법은 없었다.
“미르….”
작은 어깨가 추욱 처져서는 큰 눈망울에 진주 같은 눈물을 그렁그렁 매달았다. 노반의 눈물에 마음이 약해졌다. 으아아, 내 새끼 울지 마.
“안 아파. 쟤가 엄살… 떠는 거야.”
“거짓말하지 마! 지금 미르 얼굴이 해골처럼 새하얗단 말야!”
“난 원래 하얘. 노반, 깍두기… 만들어야 된다 하지 않았어? 마린한테 알려… 줬으니까 마린한테 물어보고, 젠이랑… 같이 만들어. 얼른 갈게, 응?”
최대한 아픈 소리를 내지 않으려 노력하며 말을 이었다. 노반의 눈에는 그게 더 아파 보였는지 매달고 있던 눈물이 또르르 떨어지며 가만히 필릭스의 뒤에 서 있던 젠에게 뛰어가 안겼다.
“젠! 어떻게 좀 해 봐! 미르가 아파하잖아!”
노반의 울음 섞인 보챔에도 젠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저 차갑게 가라앉은 눈으로 필릭스의 손이 감긴 내 목을 바라보며 애석한 목소리를 냈다.
“제가…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빌어먹을. 마나 따위 먹지 말걸 그랬다. 젠의 저런 얼굴을 보느니 마법을 안 쓰고 말지.
“마린한테는… 말하지 마. 별거 아닌데 걱정할라.”
걱정도 걱정이지만 또 감금당할 거다. 그건 안 된다.
“그치만 미르….”
“끝났다!”
필릭스가 무슨 말을 하려는 노반의 말을 끊고 고통이 끝났다고 소리치자 필릭스의 뒤에 서 있던 젠이 내 목에 감겨 있는 필릭스의 손을 재빨리 쳐 냈다.
“악!”
짝! 소리가 나며 필릭스의 짧은 비명이 방을 울렸다. 그에 필릭스를 한번 쳐다본 젠이 고개를 숙이곤 여전히 가라앉은 표정으로 사과했다.
“힘 조절을 잘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참 예의도 바르지. 뉘 집 자식인지 잘생겼네.
“아, 아닐세….”
필릭스는 자신의 손등이 퉁퉁 부어 붉어지게 만든 젠에게 뭐라 해 주고 싶은 표정이었지만 잔뜩 쫄았는지 꼬리를 내렸다. 그래, 젠이 저 표정으로 말하면 신분과 상관없이 전부 쫄게 된다니까? 내가 쩌리인 게 아니라 젠의 표정이 무서운 거다. 반대로 나와 필릭스 둘 다 쩌리일지도….
“미르! 이제 괜찮은 거야?”
“억…!”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어서 빨리 10분이 지나기를 기다리고 있던 노반은 끝났다는 말에 허겁지겁 일어나 손등을 문지르고 있는 필릭스를 밀쳐 내고 내게 다가왔다.
“응, 난 괜찮아. 많이 걱정했어? 별거 아니었는데.”
“그럴 리가! 쓰러질 때 미르 얼굴이 확 구겨졌었다고!”
얼굴이 구겨졌다는 게… 심각하게 아파 보였다는 거지…?
“놀랐잖아! 난 미르가 또 쓰러지는 줄 알고…!”
어느새 또르르가 흘러넘쳐 흐어엉이 돼 버렸다. 힘차게 울어 대는 노반을 안곤 서러워 우는 아기를 달래듯 열심히 부둥부둥해 줬다.
“나 안 쓰러져. 우리 노반 많이 놀랐구나. 내가 미안해.”
“미르… 제발 아프지 마.”
노반은 일종의 보호자인 내가 쓰러지는 것에 약간의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었다. 부모가 건강해야 아이도 건강하게 자라는데. 이 못난 애비를 마음껏 치렴. 하염없이 흐르는 노반의 눈물을 닦아 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약속은 못 하지만 노력은 해 볼게.
“왜 아픈 거야? 또 밤새워서 그런 거야?”
“아니, 그런 건 아니고… 마나를 마셨는데 내가 많이 마신 건지 원래 이러는 건지 조금 따끔거린 거야.”
“마나? 마법사들 연료? 그걸 왜 마셔?”
응, 연료지. 연료…. 어째서 사람이 휘발유를 먹었느냐는 듯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노반에게 뭐라 설명을 해 줘야 할지 고민하며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에 밀쳐진 필릭스가 밍기적밍기적 다가와 노반에게 얄미운 말투로 말했다.
“왜냐하면, 나는 엄청나게 위대한 마법사라 원하는 만큼 마나를 만들 수 있는데, 미르는 마법을 너어어어무 못해서 마나를 못 만들어 내서 그래. 마나를 못 만들면 어떡해? 먹어야지, 안 그래? 그래야 마법을 쓰지. 어때? 이제 내가 좀 대단해 보여? 응? 내가 실력도 실력인데 이렇게 처맞고 밀쳐지고 그럴 사람이 아니라니까?”
“미르, 그거 먹지 마.”
“응, 안 먹을게. 나도 이제 먹기 싫어.”
절대 안 먹을 거다. 편하게 살려고 하는 건데 아파서야 쓰겠냐. 필릭스같이 마법 능력이 출중하고 고통을 같이 느껴 주는 착한 놈이 있어서 다행이었지, 필릭스가 없었다면 나 혼자 지랄지랄 생지랄을 했을 거다. 혼자서 그 고통을 겪었을 거라 생각하니 끔찍하다.
“이제 진짜 안 아픈 거지?”
“응, 이제 안 아파.”
노반은 양념으로 범벅이 되어 있는 자신의 소매보다 깨끗한 내 소매로 눈물이 그렁그렁 달려 있는 자신의 눈을 빡빡 닦고는 내 가슴께에 폭 기대어 안겼다.
노반에게 무시당한 필릭스의 옆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젠과 시선을 맞추며 노반의 등을 부드럽게 토닥였다. 괜찮아. 이제 안 아파.
젠의 눈빛은 처음처럼 가라앉아 있었다. 조금 나한테 화가 난 것 같기도 하고… 왜 어두운 표정을 짓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사과해야 한…. 아니야, 내가 알고 아픈 것도 아니고, 사과한다고 풀릴 일 같지는 않은데.
토라진 필릭스는 안중에도 없고, 어떻게 젠의 기분을 풀어 줘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을 때 젠의 시선이 잠시 노반을 향했고, 순간 고개를 팍 든 노반이 밝게 소리쳤다.
“미르! 내가 호 해 줄게. 인간은 호 해 주면 낫는다고 하지?”
“그런 건 또 어디서 배웠어?”
“클로에가 알려 줬어! 클로에는 로이가 아플 때 호~ 해 줬대. 나도 미르한테 호 해 줄래.”
내 목에 팔을 감고 해맑은 표정으로 호 해 준다는 노반을 사랑스럽게 쳐다보았다. 뉘 집 자식인지 너무 예쁘다.
“고마워, 노반. 그렇지만 난 이제 안 아픈걸? 호는 아플 때 해 주는 거야.”
“그, 그래도 해 줄래!”
“알았어. 노반이 호 해 주면 이제 안 아프겠다.”
아프지 않게 호 해 주라는 말에 노반은 묘한 웃음을 짓고는 내 목을 향해 입술을 쭉 빼냈다. 그러자 젠이 빠르게 다가와 노반의 뒷목을 잡아챘고, 던져지기 직전 내 목젖 위에 쪽 소리가 날 정도로 진하게 뽀뽀를 했다.
한 발 늦은 젠은 평소 같으면 침대와 소파에 던졌겠지만, 이번에는 거침없이 바닥으로 내팽개쳤다. 간신히 중심을 잡은 노반은 승리자의 미소를 지으며 못마땅한 표정을 짓는 젠을 향해 해맑게 말했다.
“나도 미르랑 뽀뽀할 수 있어! 너는 아직 못 해 봤지? 흥!”
음, 당연히 뽀뽀할 수 있지. 뽀뽀 받은 장소가 조금 야시꾸리하긴 했지만…. 근데 그걸 왜 젠한테 자랑하는 거니? 노반, 너 지금 불 난 곳에 기름 붓는 거야? 그렇다면… 더 해! 더더더! 젠, 너는 아직 나랑 뽀뽀 못 해 봤지? 무지 하고 싶지?
“….”
노반의 귀여운 도발에 굉장히 언짢은 듯한 표정을 짓는 젠을 봤다. 젠은 흔히들 말하는 차가운 도시 남자처럼 보이지만 성격은 그 반대다. 과하지 않은 배려심을 갖고 있고, 안 그럴 것 같지만 의외로 표정이 다양하다. 방금처럼 언짢은 듯한 표정도 자주 짓고, 살풋 미소를 지으며 다정한 말을 해 준다.
노반은 어느샌가 젠을 피해 다시 내 곁으로 돌아왔다. 그러고는 자신이 지을 수 있는 최대한의 귀여운 표정을 지으며 내게 다가왔다.
“미르, 원래 뽀뽀는 뺨이나 입술에 해 주는 거래. 다시 해도 돼?”
그럼, 해도 되지. 지금 눈에서 레이저가 나올 것 같은 젠이 허락한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