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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자님 먹고 싶어요-61화 (61/227)

61 저택으로 돌아가다 (11)

“제 것이에요.”

“내 꺼야!”

“직접 물어볼 용기도 없잖아요. 노반 대신 제가 물어볼까요?”

“안 돼!”

내게 안겨 유치한 설전을 하는 노반과 젠을 바라봤다. 얘네 지금 나 가지고 싸우는 건가? 그치? 내가 눈치 하나는 끝장나는데 얘네 지금 나 가지고 싸우는 것 같아. 하, 이놈의 인기란. 가정이 파탄 날 정도로 인기 있으면 어쩌자는 거야.

“물어보지도 못하면서 소유권 주장을 하면 안 되죠.”

“안 물어봐도 다 아니까 그렇지!”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젠은 숲속에 불어오는 바람보다도 산뜻하게 싱긋 웃으며 노반의 입을 다물게 했다. 젠은 몸싸움도 잘하고 말싸움도 잘하네. 할 말이 없게 만든다.

“미르에 대해선 너보다 내가 더 잘 알아!”

“정말 그렇게 생각해요?”

노반은 지치지도 않는지 담담한 젠을 이겨 보려 끊임없이 말꼬리를 잡았고, 그에 젠도 별것 아니라는 듯 간단하게 내쳤다.

“미르는 밥 먹을 때 물부터 마셔!”

“알고 있어요.”

“미르는 장미 싫어해!”

“그것도 알고 있어요.”

“미르는 포도 주스를 제일 좋아해!”

“정확히 말하면 와인이죠.”

“당근을 제일 좋아해!”

“제일 좋아하지는 않아요. 노반이 안 먹으려하니까 좋아하는 척하는 거죠.”

“그런 거였어? 흠! 미르는 내가 읽어 주는 책을 가장 좋아해!”

“미르 님은 책 안 좋아해요.”

맞아, 나 사실 책 별로 안 좋아해. 여긴 할 게 없어서 책밖에 읽을 게 없으니 읽는 거지. 아무한테도 말 안 했는데 어떻게 알았지?

“미르는 코 안 곤다 그랬으면서 잘 때 코 골아!”

“침대 끝에서 끝으로 뒹굴기도 해요.”

나 코 골아? 게다가 뒹굴기도 한다고? 나 잠버릇 없는 거 아니었어? 나도 모르고 있던 나를 알게 되었다. 나를 너무 잘 알고 있는 젠에게 자꾸만 밀려 화가 나려 하는 노반을 부둥부둥해 주며 눈동자만 굴리고 있을 때, 멀리서 이쪽 상황을 주시하던 필릭스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나와 젠을 번갈아 보고는 흥미로운 상황을 보듯 눈을 빛내며 믹서기같이 보이는 물체를 들고선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누가 더 4황자를 잘 알고 있나 경합하는 거야? 그런 거면 내가 빠질 수 없는데. 우리 4황자는 어렸을 때부터 예뻤어. 세상에서 제일 예뻤는데 알고 있으려나 몰라.”

“….”

“….”

의기양양한 필릭스의 말에 노반과 젠은 동시에 입을 다물었다. 그에 더 신이 난 필릭스는 4황자와의 추억을 조잘조잘 떠들었다.

“당연히 모르겠지. 너네는 우리 4황자 만난 지 1년도 안 됐잖아. 나는 4황자랑 애기 때부터 붙어 있었으니까 뭐든 다 알고 있는데. 부럽지? 가만 보자… 어렸을 때 4황자는 편식도 안 하고, 누구보다 착한 아이였었는데 사실 단거 무지 싫어하고, 목욕할 때는 분홍색 오리 인형이 없으면 안 하려고 했어. 그리고 또….”

주둥이에 모터가 달린 듯 조잘거리는 필릭스를 놔두고 저택으로 들어갔다. 으, 귀 아파.

앵무새처럼 조잘거리는 필릭스를 피해 저택 안으로 들어가자 오늘 버무린 배추 겉절이와 깔끔하게 잘린 수육이 식탁 위에 올려져 있었다. 주방으로 들어가 마늘과 고추를 썰고 있는 마린에게 다가갔다.

“마린, 언제 준비한 거야? 혼자 한 거야? 나 부르지.”

“젠 님과 노반이 마당에서 싸우려고 하실 때요. 에반스터 경도 있는데 황자님이 허드렛일을 하시는 걸 보여 드릴 순 없죠. 아, 싸움은 젠 님이 이기셨죠?”

“어떻게 알았어?”

“그냥 그럴 것 같아서요.”

포근하게 웃어 준 마린은 정갈하게 썬 마늘과 고추를 접시에 담고 나를 식탁으로 이끌었다.

“아직도 싸우고 있나요?”

“아니, 지금은 필릭스가 조잘거리는 중. 너무 시끄러워서 나 먼저 들어왔어.”

“에반스터 경은 생긴 건 참 점잖게 생기셨는데…. 그래도 황자님 앞에서만 저러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그러고 보니 필릭스를 알고 있는 게 나뿐만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마린은 4황자의 시중을 들면서 필릭스를 봐 왔겠지. 4황자의 기억에는 옆에서 항상 촐싹대는 필릭스밖에 없어서 평소의 필릭스는 어떤지 잘 모르겠다. 촐싹대는 거랑은 반대로 점잖으려나.

“평소에 필릭스는 어떤데?”

“음, 말수도 없으시고, 신중해 보이기도 하고, 황자님이 알고 계시는 에반스터 경과는 차이가 큽니다.”

“전혀 상상이 안 가.”

“그럴 만도 하죠. 에반스터 경을 상대하는 게 힘들지는 않으신가요?”

지금의 내가 아닌 진짜 ‘4황자’를 알고 있는 사람을 상대하는 게 괜찮냐는 듯 은근슬쩍 물어보며 걱정하는 마린에게 괜찮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나쁘지 않아.”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애들 부를까?”

“네, 이제 다 준비되었으니 오셔서 드시기만 하시면….”

아직도 설전을 하는지 저택으로 들어오지 않고 있는 애들을 부르려 할 때, 노반과 필릭스가 마린을 부르며 들어왔다.

“마린!”

“로테스 양!”

마당으로 나가려던 나를 없는 사람인 듯 순식간에 지나쳐 마린에게로 가는 노반과 필릭스를 멀뚱히 쳐다봤다. 아까는 누가 나를 더 잘 알고 있나 싸워 댔으면서 이제는 마린한테 가는 거야? 너네 조금 서운하다. 입을 삐쭉 내밀고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중얼중얼거리다 뒤이어 들어온 젠에게 무슨 일이냐 물었다.

“쟤네 왜 저래?”

“둘이서 누가 더 미르 님을 잘 알고 있나 싸우다가 심판이 필요하다 해서요.”

아아, 그런 거였어? 서운해할 필요가 없었네. 잠깐, 그럼 젠은? 아까까지 젠도 노반이랑 싸우고 있었잖아.

“너는? 너도 아까까지 노반이랑 싸우고 있었잖아.”

“에반스터 경이 끼었잖아요. 전 당신을 잘 알고 있는 거지, 4황자는 알지 못해요.”

젠은 그리 말하며 부드럽게 웃고는 그 웃음에 홀려 멍하니 서 있는 나를 식탁으로 이끌었다.

“두 분 다 이제 그만하고 드세요.”

지겹지도 않은지 필릭스와 노반은 나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관심 없는 마린에게 누가 더 나에 대해 잘 알고 있나 판결을 내 달라고 조르고 있었다.

“그럴 순 없네, 로테스 양. 그대가 판결을 내리지 않으니 이 어린아이가 더 기어오르지 않나!”

“마린! 당연히 나 아니야? 이 초록이가 계속 박박 우겨!”

“초록이라니! 나에겐 필릭스 에반스터라는 멋진 이름이 있어!”

“나도 멋진 이름 있거든! 너만 있냐!”

“알고 있거든! 노반이잖아!”

“잘 아네!”

저건 싸우는 것도 아니고, 친해지는 것도 아니고….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는지 얼척이 없는 마린의 표정을 본 뒤, 저런 어이없는 상황에도 아무렇지 않은 젠을 바라봤다. 젠은 노반과 필릭스가 식탁 앞에서 자진모리장단을 치든 말든 상관없다는 듯 늘 하던 대로 내게 의자를 빼 주고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마린의 대답을 꼭 들어야겠는지 노반과 필릭스는 조용히 입을 다문 마린을 지켜보고 있었고, 그에 마린은 포기한 듯 한숨을 쉰 뒤 꾹 다물고 있던 입을 열었다.

“하아, 누가 더 황자님을 잘 아느냐고 물으셨나요? 그 질문의 답은 당연하게도 제가 아닐까 합니다. 노반은 황자님을 안 지 1년도 안 되었고, 에반스터 경은 어렸을 때부터 황자님을 봐 오셨지만 저만큼 오랜 날을 같이 지내시지는 않으셨죠.”

똑 부러지는 마린의 의견에 노반과 필릭스는 입을 다물었다. 그러게 왜 마린한테 개겨. 우리 집은 마린이 짱인 거 몰라?

“그래, 마린만큼 날 잘 아는 사람은 없어. 이제 밥 좀 먹자! 배고프다!”

우물쭈물하는 필릭스와 노반을 무시하고 젓가락을 한 손으로 잡고 수육을 찍었다. 쾅! 접시가 찍히는 소리가 크게 나고, 내 눈치를 보던 필릭스와 노반이 자리에 앉았다.

혹시나 접시가 깨질까 걱정했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내 힘보다 접시가 더 단단했다.

고기를 감싸기 딱 좋은 사이즈로 찢긴 배추 겉절이를 두툼하고 탱글탱글한 수육에 돌돌 말았다. 한입에 넣기엔 조금 힘든 수육 쌈을 어떻게든 먹어 보겠다고 입 안으로 욱여넣었다.

“므츤그즌므틍.”

“미르, 뭐라고?”

미친 개존맛탱이라고.

배추 겉절이는 버무린 양념이 짜지도 않고 많이 맵지도 않고 딱 좋다. 겉절이 속에 감싸져 있는 수육은 걱정했던 잡내는커녕 씹을수록 감칠맛이 나며 돼지고기 특유의 고소함이 느껴졌다. 탱글한 비계는 쫄깃한 식감과 함께 은은하게 풍기는 알싸한 허브의 향이 느끼한 맛을 잡아 줬다.

수육도 수육이지만 겉절이가 정말 맛있다. 장독대 안에서 푹 익으면 정말 맛있는 김치가 될 것 같다. 대충 기억나는 재료만 넣어서 맛이 부족할까 걱정했는데 다행이다.

노반은 항상 그렇듯 내가 먹는 방법을 따라 하며 먹었고, 맛을 음미하더니 눈이 땡그래지며 박수를 쳤다. 그에 마린과 젠도 노반의 뒤를 이어 수육 쌈을 먹었고, 남은 필릭스만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 음식이 무엇이냐 묻고 있었다.

“고대 음식입니다. 요즘 황자님께서 고대 음식에 흥미가 생기셔서 가끔 해 먹습니다.”

“고대 음식이군…. 미안하지만, 내가 가리는 게 많아서 조금….”

노반은 자신이 열심히 담근 겉절이에 손도 안 대는 필릭스가 아니꼬운지 직접 쌈을 싸서 입 안에 넣어 줬다. 그리고 난 봤다, 저 쌈 안에 마늘 두 쪽과 고추가 가득 들어 있는 것을.

“웁….”

“맛있지?”

“음…. 조금 매운 것 같은데….”

그렇겠지.

“원래 이런 맛인가?”

아닐걸.

“이거… 너무 매운 것 같은데….”

그렇겠지, 그거 청양고추거든. 그래도 안 뱉고 잘 버티는 거 보면 매운 거 잘 먹네.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꼭꼭 씹어 넘기는 필릭스가 기특해 제대로 된 보쌈을 하나 싸 건넸다.

“이거 먹어 봐.”

“나 그만 먹어도 될 것 같은…. 알았어.”

감히 내가 직접 싼 쌈을 거절하려고 해? 눈을 부릅뜨고 노려보자 그 기세에 놀란 필릭스가 씹고 있던 노반의 쌈을 바로 삼키곤 내 쌈을 얌전히 받아먹었다. 새로운 쌈도 매울까 봐 긴장한 듯 조심스레 몇 번 씹더니 나를 빤히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맛있지?

“안 매우니까 맛있다.”

“그치?”

“응, 고대 음식도 맛있네.”

필릭스는 수육의 맛을 알았는지, 쌈을 싸는 손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먹어 치웠다. 그러곤 아까부터 이상한 경쟁 심리가 붙은 노반과 누가 누가 더 많이 먹는지 대결까지 하느라 산처럼 쌓여 있던 수육과 겉절이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맛있게 먹어서 다행이긴 한데.

“아아! 더는 못 움직여!”

“난 움직일 수 있어! 그치만 조금 이따가 움직일 거야!”

배가 볼록 나온 필릭스와 노반이 소파에 발라당 누웠다. 아무래도 소화제가 필요할 것 같다. 방으로 올라가 미리 만들어 둔 소화제와 노반의 눈두덩에 올라온 멍을 진정시키기 위한 연고도 챙겼다.

방 밖으로 나오자 계단 난간에 기대어 내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필릭스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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