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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자님 먹고 싶어요-71화 (71/227)

71 프레오나 황궁으로 가다 (6)

“황자님!”

방으로 올라가려는 찰나, 마린이 부르는 소리에 멈췄다. 마린은 미리 정리해 둔 짐을 챙기고 여우로 변한 노반과 함께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심지어는 설거지도 끝마친 채 말이다.

“설거지는 언제 다 했어?”

“식사를 끝내고 바로 했습니다. 지금 출발하시는 건가요?”

“응, 역시 척하면 척이네. 나 잠깐 챙길 거 있어서 올라갔다 올게.”

“네, 그럼 저는 마차를 정돈하러 먼저 나가겠습니다.”

내가 탈 마치를 정돈하겠다는 마린을 보내고, 달려드는 노반을 껴안은 채 방으로 들어왔다. 황제가 기다리는 것이니 서둘러 준비해야 하지만, 아무리 늦어도 잔소리 조금 하는 게 끝이겠지.

굳이 우위를 정하자면, 오스먼드를 죽일 수 있는 내가 위니까. 물론 나도 함께 죽어야 한다는 단점이 있지만, 강대한 제국의 지배자를 농락할 수 있다는 게 어디야.

“노반, 텃밭은 시아가 봐줄 거야. 파드가 답장을 가져왔어.”

오늘 아침, 노반이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시아의 편지가 도착했다. 늦을까 봐 걱정했는데 어떻게 잘 전달된 모양이다.

익숙한 곳만 갈 수 있는 전서구의 단점 때문에 시아에게 직접 보내지는 못했다. 셀비스에게 보내면 셀비스가 시아에게 전해 주는 방법을 썼다. 다행히 떠나기 전에 도착했다. 파드도 황궁으로 데려가야겠네.

“끼앙!”

“읽어 줄까?”

“컁!”

읽어 달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모르겠지만, 읽어 달라는 뜻이겠지?

“노반, 여우 모습일 때는 내가 못 알아들으니까 긍정을 뜻할 때는 컁! 이나 끼앙! 이나 상관없으니 소리를 내고, 싫으면 대답하지 않는 건 어때?”

“끼앙!”

“좋다는 거지? 알았어. 그럼 읽어 준다?”

“컁!”

노반은 컁컁 짖는 것도 귀엽다. 이건 절대 콩깍지 같은 게 아니다. 동물을 싫어하는 사람이라도 노반을 보면 뒤로 쓰러질 게 분명하다. 너무 귀여우니까. 뭐 그런 거 있지 않은가, 노반 좋아하는 사람 팔 접어 했더니 우주가 반으로 접혔다는 그런 거. 공룡 팔도 있고 뭐, 다양하게 있더만.

“친애하는 황자님께, 잘 지내시고 계신가요? 슬슬 날이 추워져 나뭇잎이 떨어지고… 어쩌구 저쩌구… 아, 부탁하신 대로 주에 한 번 저택에 찾아가 텃밭을 확인하겠습니다. 조심히 다녀오시고 무운을 빌겠습니다. 라는데?”

“컁!”

“만족해?”

“끼야항!”

시아가 와 준다는 소식에 노반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하이 톤의 컁컁을 부르짖었다. 아주 만족하나 보다.

“네가 좋으면 그걸로 됐어.”

“컁!”

“흐흫, 귀여워.”

똘망똘망한 눈동자를 빛내는 노반의 이마를 두 손가락으로 약하게 긁어 줬다. 그러자 마음에 들었는지 노반이 컁! 하고 짖었다.

중요한 것은 전부 아공간 주머니에 넣었고, 아공간 주머니를 숨기기 위해 가볍게 챙긴 가방을 들고 방을 나갔다. 방문 밖엔 아무것도 들고 있지 않은 젠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짐은? 다 챙긴 거야?”

“네, 제 건 마차에 실어 뒀어요.”

그는 자신의 것은 이미 마차에 실어 뒀다 말했고, 어느 순간부터는 내 짐 가방이 그의 손에 있었다. 전혀 몰랐다. 언제 가져간 거야?

“갈까요?”

“응, 가자.”

난 부드럽게 이끄는 그의 손을 놓치지 않게 꽉 잡았다.

* * *

프레오나 황궁으로 가는 길은 수월했다. 몇 달 전에 우리는 프레오나 황궁에서 북쪽 땅까지 오는 데 2주 정도 걸렸었는데, 이번에는 황제만 다닐 수 있는 비밀 길인가 뭔가로 가기 때문에 길어 봐야 일주일이란다. 그런 길이 있었으면 진작 알려 줬어야지.

“그때 개고생했었는데.”

“끼잉?”

“나랑 마린이랑 북쪽 땅으로 올 때 꽤 힘들었었거든. 쿠나 경이 없었으면 큰일 났을 거야.”

“낑?”

“지금은 우리 둘밖에 없으니까 편하게 있어도 돼.”

마린은 마부석에, 젠은 그의 흑마인 가넷을 타고 있기 때문에 마차 안엔 나와 노반만 타고 있었다. 노반은 작은 창문 밖으로 바깥 상황을 한번 살핀 뒤 괜찮다며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

“낑.”

“불안해서 그래?”

“낑….”

“기억 바꾸는 마법 할 수 있으니까 들켜도 괜찮아. 길어야 10초지만, 그 정도면 충분할 거야. 걱정 말고 편하게 있어.”

전에 필릭스와 관련된 기억을 훑었을 때, 마법에 소극적이었던 4황자가 처음으로 자신의 의지로 마법을 사용한 기억이 있었다. 그 마법은 평소 4황자의 성격으로 보아 절대 쓰지 않을 것 같던 마법이라 조금 놀랐었다.

당시 마법을 썼던 상황도 웃겼었지. 끊임없이 자신을 놀리는 필릭스에게 화가 난 4황자가 부들부들 떨다 컵을 깨트렸고, 그걸 수습한다고 마법을 사용해 필릭스의 기억을 바꿔 버렸다. 필릭스가 컵을 깨트린 걸로. 그 행동력과 뜻밖의 실력에 본인도 꽤 놀랐었는지 눈이 땡그래져서는 한동안 필릭스의 눈치를 봤었지.

“푸아!”

들켜도 내가 다 해결해 줄 테니 걱정하지 말라는 말에 안심하고 인간으로 변한 노반은 우리가 앉아 있던 반대편으로 가 앉았다.

“난 여기 있을게. 혹시라도 누가 들어오면 바로 변할 수 있으니까.”

“내 옆에 앉아도 되는데….”

“미르가 곤란해지는 건 싫어.”

아이고, 내 새끼. 언제 이렇게 컸대. 요즘 들어 노반이 성장한 게 느껴진다. 처음에는 성질도 부리고 남 생각은 조금도 안 하고 순 제멋대로 굴었는데. 이제는 남을 배려할 줄도 알고 말도 예쁘게 한다. 기특해라.

“알았어. 어지러우면 이리로 와야 한다?”

“응.”

노반은 고개를 끄덕이며 나를 바라봤다. 그러곤 아까 하던 이야기를 다시 해 달라는 듯 눈을 반짝반짝 빛냈다.

“음… 어디서부터 말해 줘야 하나. 내가 세네카 제국의 황자라는 건 말해 줬었지?”

“응, 지도에서 봤어!”

“지도?”

“응, 젠이 보여 줬었어. 미르가 살던 곳이라고.”

그랬구나. 하긴 경제학, 정치학, 지리학, 등등 가리지도 않고 가르치더만, 안 그래 보여도 제국인 세네카를 모르면 서운하지.

“나는 세네카에서 살다가 볼모의 신분으로 이곳에 오게 됐어. 볼모가 뭔지는 알아?”

“응, 알고 있어….”

“응, 내가 그 볼모로 프레오나에 오게 됐고, 북쪽에서 살기 전에는 프레오나 황궁에서 지내다가 노반을 너무 만나고 싶어서 이곳으로 온 거야.”

“젠 팔아서 왔다고 하지 않았어?”

갑작스레 머리가 멍할 정도로 타격이 큰 딜이 들어왔다. 아아… 그랬지, 그랬었지. 하하…. 그에 그치지 않고 순수한 노반의 악의 없는 극딜이 이어졌다.

“그래서 한동안 미르가 젠한테 되게 미안해했잖아. 그거 젠 팔았던 게 미안해서 그런 거지?”

“….”

“그런 거 아니었어?”

“그, 그랬었지….”

어색하게 웃어 보이며 긍정을 하자 노반이 푸핫! 하고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 그 녀석은 강하니까 어디로 보내든 잘 살았을 거야. 또 모르지! 주인 잡아먹고 자기가 주인이 됐을지도!”

“응?”

“젠을 노예로 팔았다는 소리 아니야?”

노예…? 노예라고?

“그런 거 아니야. 그리고 노예 제도는 폐지된 지 오래인걸?”

“응? 아니야. 아직 노예를 부리는 사람들이 있는걸? 나를 돌봐 줬던 인간도 노예를 가지고 있었어.”

“시종이 아니라?”

시종을 노예로 착각한 게 아니냐는 내 물음에, 노반은 그건 아니라며 고개를 저었다.

“그 인간이 그랬어, 노예 주제에 눈을 부릅뜬다고.”

노반이 저렇게 말할 정도면 확실한 것 같고, 누군지만 알 수 있다면 있는 죄 없는 죄 전부 물어서 매장시켜 버리고 싶은데. 한번 제대로 알아볼까? 지금은 좀 어렵겠지만 오스먼드를 살살 구워 보면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 같긴 한데.

“노반, 그 인간에 대해 기억나는 건 없어?”

“되게 뚱뚱했어! 그리고 나한테는 잘해 줬었지만 다른 사람들한테는… 미르 방식으로 말하면 못돼 처먹었고, 천 쪼가리를 입은 예쁜 여자랑 잘생긴 남자도 많이 있었어. 묶어 두고 긴 채찍으로 때리고, 엉덩이를….”

“뭐?!”

“헉! 미르, 조용…!”

쿠당탕!

마차가 급정거를 하며 한쪽으로 기울어졌다. 멍한 정신을 곧바로 차리자 타이밍을 맞추기라도 한 듯 마차의 문이 강하게 열렸다.

“미르 님…!”

마차의 문을 연 것은 젠이었다. 가넷을 타고 전방에 있어야 할 그가 언제 후방으로 온 건지. 머리카락도 잔뜩 흐트러져서는 검은색이라 할 수 없는 탁한 오라가 도는 검을 뽑아 든 채였다.

“괜찮으십니까?”

“어, 어… 벌레가 들어와서 놀란 것뿐이야.”

별일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자 그는 날카로운 검에 흐르던 오라를 재빠르게 감췄다. 전에 노반이 보았다는 이상한 오라가 저것이었나 보다. 이상하다 할 만하다. 검은색도 아니고, 하얀색도 아니고, 그렇다고 회색도 아니다. 이상한… 말 그대로 무언가가 잔뜩 섞인 오라였다.

“낑…!”

어느새 여우의 모습으로 변한 노반이 자리에서 껑충 뛰어 내게 안겼다. 젠의 검을 보며 덜덜 떨고 있는 노반을 부드럽게 쓰다듬어 준 뒤, 곤란한 표정을 지은 젠에게 말했다.

“왜 그래?”

“….”

왜 그러냐 묻는 말에도 대답이 없는 그를 빤히 바라봤다. 그러자 언제 온 건지 호위를 끌고 온 오스먼드가 마차의 앞부분을 보곤 곤란한 듯 표정을 찌푸렸다.

“이런, 이 마차는 더 이상 못 쓰겠군.”

“예…?”

“죄송합니다.”

안타까운 표정을 지은 오스먼드에 이어, 곤란한 듯 미간을 찡그린 젠이 고개를 숙여 나에게 사과했다.

“응…?”

혹시, 설마, 그럴 일은 없겠지만, 마차가 망가진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에 서둘러 밖으로 나가 마차 상태를 확인했다.

“지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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