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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자님 먹고 싶어요-79화 (79/227)

79 프레오나 황궁으로 가다 (14)

“낑! 끼잉끼잉!”

“노반!”

눈물을 뚝뚝 흘리며 서글프게 우는 노반을 얼른 안아 들었다. 왜 울고 있지? 어떤 새끼가 우리 노반 울렸어?

“노반, 인간으로 변해도 괜찮아. 말해 봐, 무슨 일이야? 왜 울고 있어?”

내 뒤에 서 있던 젠도 노반이 울고 있어 놀랐는지 미간을 찌푸리며 방을 확인했다. 인간으로 변한 노반은 감정을 조절하기 힘든지 변한 뒤에도 한참을 울었다.

“괜찮아, 노반. 괜찮아. 숨 천천히 쉬어 봐.”

조용히 노반을 부둥부둥 안아 주며 달래 주자 조금씩 진정이 되는 게 느껴졌다. 자기 억울할 때나 내가 다칠 때만 울던 씩씩한 노반이 어째서 목 놓아 울고 있는 건지 걱정이 됐다.

창문을 열어 밖을 확인하고 침대 아래, 커튼 뒤, 욕실, 소파 천까지 들어내 방을 전부 확인한 젠이 내 어깨에 얼굴을 묻고 있는 노반에 가까이 다가왔다.

“노반, 왜 울고 있는지 알려 주시겠어요?”

“흑….”

“괜찮아요. 지금 여기엔 노반을 겁나게 하는 게 없어요.”

그에 노반이 고개를 들어 젠을 바라봤다. 펑펑 운 노반의 눈이 빨개져 있었다.

“꿈에서 전부 사라졌었어….”

“꿈?”

“옛날에 살았던 마을처럼, 전부 불타 없어졌어. 미르도, 젠도, 마린도 하나도 남지 않고 전부.”

꿈 요정 나와. 저 귀여운 여우한테 좆 같은 꿈을 꾸게 해? 비 오는 날에 먼지 나게 맞아 봐야 정신을 차리지.

“개꿈이네요.”

“개꿈이야.”

나와 젠이 동시에 말했다. 북쪽 저택에 있을 때 종종 말도 안 되는 꿈을 꿨었는데 그때마다 ‘개꿈을 꿨어~’라며 꿈 이야기를 해 줬었는데… 그걸 또 습득했나 보다.

“노반, 꿈은 현실과 반대야. 걱정하지 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아.”

“응… 알고 있어.”

노반이 조금 멀리 떨어져 있는 젠에게 가까이 오라며 고사리손을 파닥파닥 흔들었다. 노반의 뜻대로 가까이 다가간 젠이 의문을 표하자 미간을 찌푸린 노반이 젠의 옷깃을 잡고 사정없이 당겼다.

“더 가까이 오라고!”

더 가까이 오라며 노반이 투정 부리자 젠은 노반에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갔고, 코를 훌쩍거린 노반은 내 품에서 벗어나 젠의 품으로 들어갔다.

“노반…?”

“미르 무거우니까….”

어쩜 울 때도 귀여울 수가 있을까.

젠에게 건너간 노반은 젠의 옷깃에 눈물을 닦고 안기기 편한 자세를 잡았다.

“짜증 나. 너무 딱딱하잖아.”

노반은 작게 주먹을 쥐곤 젠의 가슴께를 퍽퍽 약하게 쳤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젠에게 얌전히 안겨 있었다. 그런 노반을 안고 있는 젠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쿵쿵거리는 노반의 주먹을 묵묵히 받아 줬다.

“꿈 때문에 깬 거야?”

“으응….”

노반이 다시 울상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젠은 아까의 나처럼 손을 약하게 움직여 노반을 부둥부둥 달래 줬다.

“계속 기다렸는데도 안 오고, 마린한테 가려고 했는데 마린의 방이 어딘지 모르겠고, 미르 찾으러 나갔다가 길을 잃거나 이상한 놈한테 잡히면 무서워서… 그래서 기다렸는데 젠도 안 오고, 미르도 안 와서… 그래서 꿈처럼 없어진 게 아닌가 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무서웠던 거다. 다시 울먹이는 노반에게 가까이 다가가 젠이 내게 해 줬던 것처럼 천천히 손을 올려 노반의 두 뺨을 감쌌다.

“노반, 내 꿈이 뭐랬지?”

“오래오래 평화롭게 사는 거.”

“맞아. 그 안에는 젠도, 마린도, 노반도 있어. 한 명이라도 없으면 안 돼.”

“응….”

노반은 눈물을 참으려 젠의 옷깃을 강하게 잡았다.

“내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절대 널 혼자 두지 않을 거야, 절대로.”

결국 참지 못하고 눈물이 터져 나온 노반은 젠의 품에 얼굴을 박고 조금씩 들썩이며 울었다. 한참을 울던 노반은 젠의 품에서 잠이 들었다. 젠은 노반이 깨지 않게 살살 걸음을 옮겨 조심히 침대 위에 눕혔다.

“알게 모르게 트라우마였나 봐, 악몽까지 꿀 정도면.”

“오래 살았다지만 아직 어리니까요.”

“오면서 스트레스도 조금 받은 것 같아. 긴장도 했고, 낯선 사람이랑 같이 있었으니까.”

젠은 곤히 잠든 노반을 보며 이마를 쓸어 올렸다. 그와 함께 은근히 가려져 있던 젠의 금안이 드러났다.

“내일은 편하게 갈 수 있을 거예요.”

“응.”

나는 노반에게 이불을 덮어 주곤 그 옆에 누웠다. 아, 피곤해. 자야지.

“목욕물 받아 놓을게요.”

“아니야…. 안 씻을래. 나 깨끗해….”

“풀밭에 누워 계셨잖아요. 진드기가 붙었으면 나중에 고생하니 이리 오세요. 짧게라도 씻어요.”

“누웠더니 졸려서 못 일어날 것 같아….”

나른해졌다. 호숫가에서 보았던 밤하늘과는 전혀 다른 천장을 보며 점점 눈이 감길 때쯤, 정말 목욕물을 받았는지 젠이 내 옷가지를 가지고 데리러 왔다.

“나 녹은 것 같아. 일어날 수가 없어.”

침대에서 벗어날 수 없다 말하자 젠은 살짝 웃고는 공주님 안기로 나를 들어 올렸다.

“헉!”

공주님 안기로 안겨서 욕실까지 들어왔다. 적당한 크기의 욕조에는 적당히 김이 올라오는 따뜻한 물이 받아져 있었고, 그 위에 세 송이의 라벤더가 올려 있었다.

“제가 벗겨 드릴까요?”

내가 그저 젠에게 안긴 채 욕조를 바라보고 있자 그가 내 옷을 벗겨 주겠다며 살짝 눈웃음을 지었다.

“아, 아니! 괜찮아. 내가 씻고 나갈게!”

손을 저으며 괜찮다 거절하자 나를 내려 준 젠은 욕조에 너무 오래 담그고 있지 말라 당부하곤 밖으로 나갔다.

서둘러 옷을 벗고 욕조 안으로 들어갔다. 목욕물은 뜨겁지도 차지도 않은 딱 적당한 온도였다. 은은하게 풍기는 라벤더 향 덕에 피로가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 침대보다 욕조가 더 편한데…. 나는 눈을 감았다.

* * *

“미르.”

노반의 목소리다.

“헉!”

놀라 눈을 뜨니 하얀 천장이 보이는 푹신한 침대 위였다. 고개를 돌려 노반을 바라보자 살짝 부은 눈으로 활짝 웃으며 아침 인사를 해 줬다.

“미르, 잘 잤어?”

“응…. 아! 노반도 잘 잤어? 이상한 꿈은 안 꿨고?”

“응…!”

조금 부끄러워하는 기색으로 잘 잤다 말하는 노반을 껴안고 침대 위를 굴렀다. 귀여워, 귀여워, 귀여워! 내 새끼가 최고로 귀여워!

“미르! 곧 출발이래. 이럴 시간 없어.”

“그래?”

노반은 내 팔을 잡고 진정시킨 뒤 나갈 준비를 하라 재촉했다. 미리 준비되어 있는 옷을 입고 거울을 꺼내 얼굴을 살폈다.

“음, 잘생겼어. 예뻐.”

“준비는 끝나셨나요?”

밖에 나가 있었는지 젠이 검은 가죽 장갑을 벗으며 방 안으로 들어왔다. 순간 잊고 있던 게 생각났다.

“젠… 나 혹시 어제 욕조에서 잠들었어?”

내 질문에 장갑을 내려놓은 젠이 나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같은 남자끼리지만 태초 그대로의 모습을 젠에게 보였다니…. 내 얼굴이 잘 익은 사과처럼 화악 붉어졌다.

“깨, 깨우지…!”

“깨웠는데 못 일어나셨어요.”

그랬구나…. 욕실에서 처자고 있는 나를 씻기고 옷까지 입혀서 재웠을 거라 생각하니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고 기분이 묘했다. 어째서 일어나지 못한 것인가.

“미르! 나 이제 변할게!”

“아, 응.”

정리한 아공간 주머니를 젠에게 맡긴 다음 여우로 변한 노반을 안아 들었다. 노반은 내게 안기자 내려 달라며 작게 몸부림을 쳤지만, 젠과 눈을 마주치기 어색했던 나는 노반을 안은 채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

방문 밖에는 청록 빛의 캐주얼 드레스와 빨간 리본을 단 마린이 준비하고 있었고, 노반은 마린을 보자 내 품을 떠나 마린에게 안겼다. 이것도 나를 위한 거란 걸 알지만 아는 거와는 별개로 섭섭했다. 부모 품을 떠나 독립한 아들을 보는 기분이랄까.

“노반….”

다시 이리 오라며 노반을 향해 팔을 뻗었지만 노반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마린의 품으로 깊게 파고들어 갔다.

“어차피 마차에 같이 타야 하는데?”

“!”

그에 귀를 쫑긋 세운 노반이 마린의 품에서 뛰어내리더니 토실토실한 엉덩이를 흔들며 총총 걸어 내 옆에 섰다. 내 옆에 선 노반을 안아 들려 했지만 노반은 내 손길을 피했다.

“걸어가려는 것 같은데요?”

마린은 그런 노반이 기특한지 쪼그려 앉아 노반의 이마를 약하게 쓰다듬었다. 노반은 나와 눈을 마주치곤 마린의 말이 맞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알았어. 근데 엉덩이는 흔들지 마. 너무 귀여워.”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인 노반이 나를 따라 총총 걸었다. 엉덩이 흔들지 말라니까…!

“너무 귀여워…. 어떡하지. 진짜 깨물어 주고 싶다.”

“미르 님이 더 귀여워요.”

어느새 옆으로 온 젠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뭐야, 내가 귀엽다는 소리야, 내 엉덩이가 귀엽다는 소리야?

“내 엉덩이가…?”

“엉덩이요…?”

“내 엉덩이 이야기한 거 아니야…?”

“그것도… 귀여웠죠.”

엉덩이 이야기가 아니었나 보다. 난 왜 엉덩이 이야기를 한 거지…? 멍청이야? 어? 멍청이냐고. 맞아, 난 멍청이야.

수치스러운 마음에 얼굴을 가린 채 빠르게 걸었다. 미쳤어, 도브로미르. 이제 창피해서 젠 얼굴을 어떻게 봐.

“젠 님이 황자님 엉덩이를 본 거예요? 어쩌다가요? 설마…!”

눈을 반짝 빛낸 마린이 슬쩍 옆으로 와선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에 총총 걷고 있던 노반도 귀를 쫑긋 세우곤 나를 봤다.

“그런 거 아니야….”

“정말요?”

“그래…. 내가 그냥 욕조에서….”

“같이 목욕하셨어요? 어머, 어쩜!”

마린이 박수를 짝짝 치며 기특하다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마린 이런 거 좋아했었지.

“그런 거 아니야….”

“아니라구요…?”

난 고개를 끄덕이며 곧 지하로 들어갈 만큼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마린에게 말해 줬다. 내가 욕조에서 잠이 들었는데 젠이 씻겨서 옮겨 준 거 같다. 그래서 내 엉덩이를 본 거다. 별거 아니다. 네가 생각하는 그런 좋은 일이 있었던 게 아니다!

“그렇게 된 거군요…. 그럼 엉덩이만 아니라 다 봤겠네요. 한동안 젠 님 피곤해지시겠어요.”

“응?”

“아니에요. 미르 님은 그대로 순수하게 계셔 주세요.”

“응?”

순수? 정말 나와 어울리지 않는 단어다. 순수는 노반같이 하얀 애한테나 하는 말이지.

“불쌍한 젠 님, 눈앞에 있어도 못 드시고. 쯧쯧.”

혀를 차며 안타까운 표정으로 고개를 젓는 마린을 따라 노반도 고개를 저었다. 뭐야, 진짜. 나만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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