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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자님 먹고 싶어요-110화 (110/227)

110 별궁 지하실에 빠지다 (7)

“너 인간도 죽여? 그건 절대 안 돼!”

철수는 다급한 목소리로 말하며 내게 다가왔다. 그러고는 침대에 누워 있는 내 위에 올라타 멱살을 잡았다.

“커헉!”

“안 돼! 살생은 안 돼!”

“알았…! 크헉…! 이거, 으윽! 놔…!”

철수는 내 멱살을 잡으며 흔들었다. 철수의 손에 의해 머리도 함께 흔들렸고, 세상이 빙빙 도는 기분을 느끼며 점점 정신이 혼미해졌다.

더 이상은 못 버티겠다 싶어 다리를 들어 철수의 복부를 가격했다.

“으악!”

내 머리를 흔들던 철수는 내 완벽한 발길질 덕분에 떨어져 나갔다.

나는 아직도 어지러운 머리를 붙잡고 그를 향해 소리쳤다.

“안 죽여! 난 사람은 안 죽여!”

“정말이지? 살생은 절대 안 돼!”

어디서 배운 건지, 철수는 내 새끼손가락을 잡고 자신의 새끼손가락을 억지로 걸었다.

“다른 건 다 해도, 살생은 안 돼!”

철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강력하게 안 된다고 말했다.

“왜 안 돼?”

“이 몸이 말했었지? 정령의 계약자는 대부분이 선하다고.”

말 안 했었는데.

“했을 거야! 정령의 계약자는 살생해선 안 돼.”

“그러니까 왜 안 돼.”

“네가 살생을 하면… 이 몸이 소멸하니까.”

오.

“오?”

내 속을 읽은 철수가 상처받았다는 표정을 지으며 화를 냈다. ‘네가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라든가 ‘네가 그러고도 정령왕의 계약자야?’ 같은 말을 하는 듯했다.

“아니, 그냥 좀 신기해서 그런 거야. 소멸한다는 건 철수 네가 아예 사라진다는 거지?”

“응.”

“그럼 나는 어떻게 되는데?”

중요한 건 이거다. 정령왕이 죽으면 나는 어떻게 되는데.

조금 긴장하며 철수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에 철수는 내 눈치를 조금 보며 뜸을 들이다가 말했다.

“너는… 이 몸 없이 살아가는 거지.”

같이 죽는 게 아니었구나. 그런 거라면 뭐….

“최대한 조심할게. 근데 나도 모르게 죽여 버릴 수도 있잖아. 그건 어떡해?”

“그런 건… 아마 괜찮을 거야. 네가 의도를 가졌냐 아니냐에 따라서 이 몸의 소멸 여부가 좌우되니까.”

의도라….

“그냥 나쁜 마음만 먹지 마. 하… 불안해서 소멸하겠네, 진짜!”

철수의 후회가 느껴졌다.

‘오랜만에 인간이랑 계약해서 재미나 좀 보려 했더니, 꽝이었네! 이러다가 소멸당하면 죽도 밥도 안 되는 건데!’

같은 느낌이 아닐까 싶다.

“내가 소멸하는 건 괜찮아. 어차피 언젠가는 소멸할 테니까. 문제는 소멸하고 난 다음이야.”

“소멸하고 난 다음?”

“정령왕이 소멸하면, 그다음을 이을 정령왕이 언제 태어날지 몰라.”

그게 뭐?

“난리 나는 거지.”

“어떤 식으로?”

“불이 힘을 잃는 거야. 한마디로 사라지는 거지.”

응? 불이 사라진다고?

“우리 정령은 4원소로 이루어져 있어. 물, 불, 바람, 흙. 이 넷 중 하나에게 문제가 생기면 다른 것들도 함께 망가져.”

“네가 사라지면… 이 세계에선 불을 못 쓴다는 말이야?”

“그 세계가 정령과 이어진 세계라면. 네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세계도 마찬가지고.”

“네가 소멸하면… 세계 종말이겠네?”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철수에게 물었다. 그에 철수는 고개를 저으며 조심스레 말했다.

“그 정도는 아니야. 이 몸은 사라져도 하급, 중급, 상급의 불의 정령들이 남아 있으니까. 하지만 그들을 통솔할 불의 정령왕이 없으면 온전히 힘을 발휘하기가 힘들어. 나중엔 버티지 못하고 소멸하겠지.”

철수의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사태의 중요성이 느껴졌다.

“4원소의 정령왕은 서로를 눌러 주는 역할을 해. 4원소 중 하나가 빠지면 나머지가 힘을 주체하지 못하고 폭주하지.”

“….”

“불이 사라지면 물이 범람해서 홍수가 나고, 땅은 생명을 틔우지 못해. 바람은 방향을 잃어.”

싸해졌다.

그러니까… 나로 인해 세상이 망할 수도 있다는 거잖아…?

“그러니 이 몸의 계약자인 넌 절대 살생해선 안 돼.”

원래도 사람을 죽일 생각은 없었지만, 철수의 이야기를 들으니 지금보다 더욱 착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기랄. 또 이상한 거에 엮였다.

이 정도면 사주에 문제가 있는 걸지도 몰라. 이름을 바꿔야 하나…

“이 몸에게 이상한 거라니! 넌 정령왕을 만나는 게 쉬운 줄 알아?”

“굳이 만나고 싶진 않았는… 그래, 나한테 와줘서 고마워.”

괜히 솔직히 말했다가 고막 떨어질라. 대충 반응해 주고 끝내야지.

“….”

이상하게 차분한 공기가 흘러 고개를 들자, 철수가 차가운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대충 반응해 주자고?…”

아, 맞다.

“… 나 원래 이런 애야. 그러게, 계약은 신중하게 하는 거라니까….”

책임을 전가하며 슬쩍 철수의 눈빛을 피했다.

철수는 주먹을 꽉 쥐고 화를 삭였다. 정령도 분노를 느끼나 보다.

“후… 제발 살생만 하지 마. 어떤 이유든 간에 네 손으로 생명의 목숨을 앗아 가면 큰일 나는 거라고.”

“알았어. 노력해 볼게.”

철수를 위해, 아니, 세상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지만, 어려울지도 모른다.

평소에는 의식도 하지 못했던 것들을 누군가 하지 말라고 제한하기 시작하면 오히려 더욱 의식되기 마련이다. 앞으로 조금, 혹은 많이 화나는 일에 살인 충동이 올지도 모르는 일이다.

“내 손만 안 쓰면 되는 거지?”

“그렇지.”

“그럼 누군가가 나를 위해 살생하는 건 괜찮은 거야?”

철수는 내 물음에 대한 답을 곰곰이 생각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괜찮을 거야. 네가 의도한 건 아니니까.”

“내가 의도한 건 아니지만 그 사람이 죽기를 바랐다면?”

“…생각 정도야 괜찮을 거 같아. 그냥 네 손으로 사람을 안 죽이면 돼.”

그게 뭐야. 청부 살인은 가능하니까, 내 손만 조심하면 된다는 거야?

“그…럴걸.”

“….”

세상이 무너질 수도 있는 중요한 일인데 아주 허술하네.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어 철수를 바라보자, 철수는 내 눈빛을 피하며 중얼거렸다.

“실피드는 자세히 알고 있을 거야. 물어볼게.”

“실피드는 누구야?”

“바람의 정령왕. 우리 중에 세상을 가장 잘 알고 있어.”

그 말은 정령왕들 중에 가장 오래 살았다는 말인 것 같다.

이렇게 된 거 다른 정령왕들도 만나 보고 싶다. 가능하면 이름도 지어 주고. 철수, 영희, 민수, 현수, 등등.

“그것도 한번 물어볼게. 근데 아마 싫어할 거야. 정령은 너같이 음습한 애한테 호의적이지 않아.”

흥, 칫, 뿡.

철수는 나와 눈이 마주치는 게 싫은지, 휙 고개를 돌렸다. 반짝반짝했던 눈이 내 본성을 알게 된 후부터 살짝 식은 것 같다.

“계약 해지해 준다니까?”

“불가능하다니까. 정령왕의 계약은 네 목숨이 끊어질 때까지 이어지는 거야. 이 몸이 소멸하거나, 네가 죽어서야 끝나는 거지.”

“철수, 너보다 내가 더 빨리 죽겠지?”

“당연하지.”

쯧. 안타까운 마음에 혀를 찼다.

“아쉽지만 난 늙어 죽을 예정이야. 80년은 내 곁에 있어야겠네.”

“걱정 마. 정령 기준으로 80년은 눈 깜짝할 새에 지나가니까.”

맞는 말이다. 시간은 빠르게 지나간다. 그러니 지금을 소중히 해야 하긴 개뿔.

“으아- 뭘 했다고 이렇게 피곤하지? 머리도 좀 지끈거리는 것 같고….”

“많이 했지. 이 몸이랑 계약한 것만 해도 네 기운의 반이 빠졌을 거야. 너 내일 아플지도 몰라. 로테는 나랑 계약하고 한동안 아팠었거든.”

나도 곧 아플 거라는 말을 들으니 벼락을 맞은 듯 머리가 띵 울렸다. 그리곤 스멀스멀 뇌가 쥐어짜지는 느낌이 들고 몸 전체 근육이 잔뜩 굳었다.

아, 이거구나.

“쉽게 말하면 각성 같은 거야. 이 몸과 더욱 비슷해지기 위한 과정이지. 이 몸의 힘을 무리 없이 사용하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다 이렇게 아픈 거야? 나 지금 몸이 안 움직이는데…?”

“튼튼한 인간들은 딱히 이상이 없던 것 같은데 로테나 너같이 허약한 애들은 좀 힘들어한다고 하더라.”

신내림도 아니고, 정령이랑 가까워지기 위해 아프기까지 해야 해? 어이가 없어서….

불행 중 다행인 건 지금 내 곁에 노반과 마린, 그리고 젠이 없다는 거다.

그래, 아플 거면 안 보이는 곳에서 혼자 아파해야지. 괜히 낑낑거리면서 걱정시키는 것보다는 백배 천배 낫다.

“언제까지 아프….”

순간적으로 마법 상점에서 썩고 있는 아크레나의 제자의 말이 머릿속에 스쳤다.

[이 목걸이의 장점은… 음… 생사를 알 수 있다는 거? 상대의 목숨이 위험해지면 바짝 말라. 죽으면 유리가 깨지고.]

잠깐, 내가 아프면 젠이 차고 있는 목걸이가…!

“나, 가야 할 곳이…! 윽…!”

갑작스레 몸을 일으키자 귀에서 삐- 소리가 나며 두통이 일었다.

젠장.

“벌써 아파? 로테는 계약하고 다음 날에 아팠는데.”

“로테는 튼튼한가 보지. 으으… 머리야.”

“넌 애초에 건강하지 못한 몸인가 보네. 운동 좀 해. 인간은 체력을 길러야 한다잖아.”

철수는 툴툴대면서도 나를 침대 위에 눕혀줬다. 그리곤 이불을 덮어주며 일어나지 못하게 이마를 눌렀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일어나 아크레나의 제자에게 가고 싶었지만 일어나기는커녕 정신을 잡고 있는 것도 힘들었다.

한 번 아프다고 인식을 하니, 아픔이 큰 파도가 치듯 한 번에 밀려왔다.

종이에 손가락을 베였을 때 상처를 알아차리지 못한다면 아픔이 느껴지지 않지만, 상처를 확인하면 그제야 아픔이 느껴지는, 딱 그런 기분이었다.

“알아. 로테도 많이 힘들어했었어. 그래도 아프고 나면 전보다 튼튼해지니까 좀만 참아.”

튼튼해지든 강철이 되든, 관심 없다.

철수야, 내 부탁 하나만 들어줘라. 앞으로 선하게 살게.

“그래, 말해.”

“젠….”

젠한테 가 줘. 젠이 무사하게 해 줘.

혹시라도 아픔으로 요동치는 목걸이를 본 젠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떡해. 절대 안 된다.

“이 목걸이 주인을 말하는 거지?”

점점 희미해지는 정신을 붙잡으며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가 줄 수는 있어. 그치만 이 몸이 네 곁에서 떨어지면 네가 더 힘들어질 거야.”

상관없어. 죽는 건 아니잖아.

“인간의 육체가 정령의 힘을 받아들이는 과정이야. 이 몸은 불의 정령왕이니 다른 정령들보다 받아들이기 더 힘들어지는 건 분명해. 내가 멀어지면 고통을 오래 겪을 수도 있다니까?”

괜찮아.

“네가 많이 아플 거야. 실피드의 계약자 중에는 못 버티고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던 자가 있었대.”

난 안 죽어. 절대로.

“고집부리지 마. 너부터 살아야지.”

고집 아니야. 나 많이 아파 봤어. 그때도 버텼어.

“알았어. 진짜 힘들어지면 날 불러. 그럼 네 목소리가 나한테 전해질 거야.”

알았으니까, 얼른 가.

빨리 떠나라는 내 속을 읽었음에도 그는 잠시 내 곁에 머물며 송글송글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손으로 닦아 주었다. 그리고 그의 손길이 스쳤던 자리에 따듯한 입술이 닿았다.

그에 우글우글 벌레가 꼬인 듯 어지러웠던 머릿속이 조금이지만 맑아졌다.

철수는 마지막으로 내 상태를 확인했고, 자신의 몸을 서서히 투명하게 만들어 사라졌다. 사라지는 와중에도 나와 눈을 맞추며 걱정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하아….”

나는 어째서 항상 아파야 하는지 모르겠다.

이 세계에 오기 전에도 아팠고, 오고 나서도 꽤 자주 아팠다.

아픔의 이유는 몸이 허약해서 일지도 모른다.

아크레나 제자의 말처럼 나는 마법사도 아니고, 평범한 인간도 아닌 ‘돌연변이’의 몸으로 억지를 부리고 있으니까.

생각이 머릿속을 잠식하자 끓어오르는 벌레가 먹어 치웠다. 맑아졌던 머리도 다시 까만 안개가 끼기 시작했고, 몸이 조금씩 떨리는 거 보니 곧 전신에 고통이 울릴 것 같았다.

곧 시작되는 아픔을 피하는 방법은 잠에 빠져들어 정신을 놓는 것밖에 없다.

제발 편히 잠들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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